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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24
작성일 : 19-10-20 11:33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2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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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제발……”

  아내는 남편에게 애걸하며 말한다. 그런 아내의 말을 남편은 무시했다. 방안은 정적이 차갑게 감돌고 있었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아내는 생각했다. 남편의 눈은 핏빛가득 들어찼고 흰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눈의 생기는 몽땅 빠져나가버린 죽은 생선의 눈알을 한 채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아내는 흐느꼈다. 고요한 방의 정적 속에 흐느낌이 방해가 된다는 듯 남편은 아내에게 조용히 하라고 차갑게 속삭였다. 남편이 입을 열 때마다 침이 흘렀다. 그동안 눈물을 많이 흘려 이젠 눈물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내의 눈은 구멍이 더 크게 뚫린 것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요, 여보.”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절규의 눈빛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사정했다. 남편은 그런 말 따위는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무서운 인간의 눈으로 아내를 쏘아보았다. 아내가 계속 애걸하자 남편은 아내의 스타킹을 돌돌 말아서 아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남편은 다시 흡족한 모습의 추악한 인간으로 돌아왔고 남편의 눈도 무서운 눈빛에서 원래의 생기가 없고 죽어버린 생선의 눈알로 돌아왔다. 아내는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불 꺼진 방에 가늘게 뻗어 나오는 스탠드의 불빛을 받아서 몸이 샛노랗게 보였다. 아내의 엉덩이는 의자는 앞부분으로 나와 있고 의자에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눈이 풀린 남편의 거친 삽입을 받아들였다. 외부의 자극에 대한 감각을 아내의 성기는 이미 손실했다. 훼손되어서 기능도 소멸했다. 남편은 아내의 성기에는 대형 딜도를 삽입해 놓고 자신의 페니스를 아내의 항문에 삽입을 했다. 아내는 입안에 스타킹을 꽉 문 채 남편의 삽입을 참아내고 있었다. 아내는 몸이 떨렸다. 그저 행복하기만 한 결혼 생활이라고 기대를 가지며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갔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지 못함을 알고는 남편은 변하기 시작했다. 원인이 아내에게 있음을 알고 아내는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노력은 뜬구름 같은 것이다. 남편은 술이 취해서 들어오면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실을 결혼 전에 말하지 않았다며 푸념을 늘어놓다가 점점 폭력성을 뛰었다. 폭력은 날이 갈수록 수위가 심해졌고 남편은 흉포해져갔다. 학회의 세미나에서 동료교수들에게서 자식자랑을 듣는 날이면 그의 폭력은 도를 넘어섰다. 집으로 들어올 때 성기구를 사들고 오는 날이 늘어났다. 도구는 아내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을 자는 것도 모른척해야 했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 집과 아내의 집에서 행동이 달랐다. 아내의 집에서도 딸의 남편에게 미안한 눈치다.

  어디선가 아내와 잠자리의 행위를 다르게 해보라는 이야기를 남편은 들었다. 이야기를 들은 곳이 가끔씩 찾던 초이스 하우스였다. 그곳에서 어린 파트너가 그의 위에서 허리를 돌리며 한 말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것저것 불길한 것을 요구했고 아내는 남편의 명령에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행위는 도를 넘어섰다. 연탄재를 어디서 구해와 와인에 타서 그것을 성기 주위에 바르기도 했다. 식용 구더기를 사와서 샌드위치 사이에 넣어서 아내에게 먹으라고도 했다. 혹시 아이를 가질지 아냐면서, 아내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이렇게 되어서 변명 한 마디,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남편의 폭력과 수치심이 가득한 언어를 받아내야 했다. 남편의 아이에 대한 집착은 성도착증으로 변질 되었고 그 수위는 영화에서나 가능할 정도의 것으로 높아져만 갔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채찍과 바이브레이터, 딜도 등 성인용품이 종류별로 아내의 옷장을 채워나갔다. 매조킥 속옷과 교복, 세라복, 메이드 복장도 장롱 속의 또 다른 공간에 들어차있었고 그 양은 마치 전시를 방불케 할 만큼 많았다.

  남편은 아내의 항문에 삽입을 하다가 힘이 빠지고 자신의 페니스가 죽어 버리면 보이는 아내의 엉덩이에 채찍을 휘둘렀다.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핏자국이 선명하게 났다. 채찍의 흔적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남편의 얼굴은 환희에 찼다. 남편은 아이도 가지지 못하는 여자는 쓸모없는 노리갯감이라고 말했다. 우리 집안에는 아이가 필요했는데 어디서 이런 여자가 굴러 들어와서 내 삶을 다 망쳐 놓았다고 아내에게 퍼부었다. 남편은 아내를 죽일 궁리만 했다. 이렇게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금방 났다. 이제 아내는 늙어 보였고 탄력은 전혀 없었다. 저 쭈글쭈글한 피부를 홀라랑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뚫려 있는 구멍에 화약을 붓고 라이플만큼 긴 심지를 꽂아서 저기까지 늘어트린 다음 불을 붙이면 아내는 구멍에서부터 지글지글 타오른다. 탄력 잃은 피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곧 살갗이 오그라드는 모습이 보인다. 머리를 떼서 케이크로 잘 만든다. 생크림을 바르고 딸기를 올린 다음 아내의 집에 선물로 보내는 것이다. 남편은 채찍질을 하면서 입을 벌리고 침을 계속 흘렸다. 이미 아내의 엉덩이는 많은 날 동안 채찍질을 당해서 엉망이었다. 아내는 결혼 후 공중목욕탕에는 가지 못했다. 약국에서 많은 연고를 사야하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여러 약국을 이용해야 했고 다 쓰고 버린 연고만 해도 수백 통이 넘었다. 남편은 방바닥에 늘어트린 온갖 성기구들을 아내의 성기에 마구잡이로 삽입을 했다. 기능을 잃은 아내의 성기는 완전한 남편의 노리개일 뿐이었다. 마구 휘저었다. 남편은 발기가 3분미만으로 조루증이었다. 그나마 그 전에 사정을 할 수 있어서 남편은 아내가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 모든‘이유’를 아내에게 돌리고 남편은 자신의‘권리’를 찾기 위해 아내를 노리개 취급하는 것을 정당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서히 괴물로 변해 버렸다. 수정이 불가능한 아내와 조루증이 심한 자신의 비하에서 오는 성도착증은 상상을 넘어섰다. 남편은 초이스 하우스에서도 좋아하는 고객이었다. 젊은 아가씨들은 서로 자신이 남편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매춘이 거의 불가능해서 그저 배 위에서 허리만 돌려주는 것만으로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 페니스가 서지 않았지만 그는 교수라는 지위 때문인지 초이스 하우스에서 술을 마시면 파트너의 가슴에 더블에 팁까지 두둑하게 꽂아주었다.

  아내는 남편이 틀어놓은 에어컨디셔너 바람에 심한 냉기를 느꼈다. 에어컨의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은 항문을 통해서 성기를 거쳐 내장을 전부 마르고 갈라지게 만들었다.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리라 믿고 싶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아내는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이제 드디어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남편을 미워하지 말자. 그래도 나를 한때나마 사랑해서 결혼까지 온 것이 아닌가.

  정신이 아득한 저 곳에서 행복하고 따뜻한 봄날처럼 보냈으면 좋겠다. 아내는 평소에 좋아하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렸다. 소풍을 온 것이다. 이제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면 된다. 돌아가서는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내는 스타킹을 세게 물었다. 더 이상 세게 깨물 수 없을 정도로 힘을 다해 스타킹을 꽉 물었다. 하체의 힘이 줄어들며 축축하고 따뜻한 기운이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면서 차가운 몸에 한줄기 따뜻함을 전해 주었다. 흐르는 따뜻한 한 줄기의 오줌은 포근한 감촉이었다. 불쾌하지도 않았다. 아내는 다시 꿈이 남긴 여운을 찾으려고 악착같이 꿈속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스타킹을 꽉 깨물었던 입의 힘을 뺐다. 스타킹 밑으로 입에 고여 있던 침이 흘러 내렸다. 침이 합성수지로 만들었진 스타킹을 타고 입 밖으로 나오니 묘한 냄새가 났다. 남편은 아내가 지린 오줌을 핥아 먹으며 정신이 빠져나가버린 사람이 되었다. 아내는 어떠한 감각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묶여 있는 끈이 피를 통하지 못하게 했다. 다리가 저릴 법도 한데 아내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기운이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그동안 잘 버텨왔다. 눈물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이 감겼다. 남편의 눈은 벌겋게 변하여 더욱 신이 났다. 성도착의 남편은 아내의 푸르게 변한 허벅지의 오줌을 빨아 먹기에 바빴다. 발바닥은 피가 전혀 통하지 않아 청록색으로 변해 판의 미로 속 난쟁이의 몸을 보는 듯했다. 남편의 눈에서는 단 일말의 이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희번덕거리는 동공 속에는 며칠 굶주려 먹이를 노리는 육식동물의 눈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맹렬했다. 광기에 가득한 무서운 눈빛. 그 광기만이 동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편의 눈에 들어오는 아내는 자신의 장난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손이 불타올랐다. 몸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 강하게. 더 활활 타올랐다.

  웅. 웅.

  우우우우웅.

  마동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30대 중반의 독신남자는 바를 경영한다. 독신남자가 경영하는 바는 다운타운에 위치한 비교적 입자가 좋은 곳이다. 상업지구가 들어서도 각종 병원(성형외과가 밀접한)과 카페테리아, 술집이 집중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지역이다. 손님들이 많았고 그는 그곳에서 30킬로미터가 떨어진 사무실형 회사가 밀집 된 지역에 또 하나의 바를 더 경영하고 있었다. 독신남자는 수완이 좋은 사업가였다. 바는 9시까지는 요리도 주문이 가능했지만 9시 이후에는 술과 간단한 샐러드만 가능했고 손님들도 늦은 밤에는 요리 같은 안주를 원하지 않았다. 남자는 9시 이후에는 바를 토프리스로 경영하고 싶었지만 전혀 허가가 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토프리스 형식의 영업을 대놓고 성범죄와 매춘을 유발하는 형태로 간주했다. 9시가 넘으면 대부분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다. 적어도 전문적인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고 저녁시간에는 여유를 즐기는 중년이상의 남자들이 손님 대부분이었다. 손님들은 술만 마시거나 간단하게 조리한 레토르트 식품에 맥주나 와인을 곁들이기도 했다. 독신남이 경영하는 두 개 중에 1호점 바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았다. 바의 분위기는 영국 맨체스터의 바 중에 한 곳을 옮겨놓은 느낌이 들었다. 근처에 외국학원이 즐비해 있었기에 밤늦게까지 수업을 하거나 새벽까지 이어지는 수업에 지친 외국인들이 바를 찾았다. 테이블과 바에 늘어선 의자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냄새가 서로 섞여있다. 바에 가요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싸이나 비티에스의 노래가 나와서 흥을 돋우기도 했지만 주로 영국노래가 흘러 나왔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연주나 비비킹과의 협연, 오아시스, 제시제이 등 영국출신 가수들의 음악이 꾸준하게 나왔다. 물론 찰리 푸스도 크리스 도트리도 사이사이에 흘렀다. 외국인들은 한국으로 몰려들어와 낮 동안 노동을 했고 저녁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바를 찾았다. 통조림 올리브와 신선함이 떨어지는 채소가 곁들여져 있는 비교적 비싸지 않은 스테이크와 기름을 두른 감자튀김을 먹었다.

  고급스럽지 않고 최고의 요리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독신남이 경영하는 바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인인 독신남자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슈트가 잘 어울렸다. 영어발음도 좋았다. 웨이브가 진 머리칼은 배우 같은 이미지를 남겼다. 영어로 말을 하면 목소리가 새벽의 영혼 같은 소리로 들렸다. 그는 1호점을 외국인들을 겨냥한 바의 운영방식으로 직원들을 구했다. 머물다 가는 외국인들이기에 요리나 음식에 상당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주방과 카운터를 제외하고 서빙을 보는 직원은 전부 여자들을 채용했다. 대부분 여대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했다. 파트별로 돌아가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홀에서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재빠르게 제공하기위해 언제나 7명을 유지했다.

  7명이나 있을 만큼 홀은 크지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고집했다. 그 고집은 먹혀들었다. 여대생들의 복장은 짧은 타이트한 반바지에 부츠를 신었고 티셔츠는 바의 로고가 새겨진 붉은 색의 브이네크라인의 상의였다. 상의는 비비안웨스트우드에서 고급으로 전부 사들였다. 아르바이트 여대생들은 자신이 입고 있는 비비안웨스트우드가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티셔츠도 타이트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들은 모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한 여대생만 아르바이트가 가능했다. 그런 분위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들에게 어쩐지 묘한 마음을 끌어냈는데 손님들이 자신보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더 찾거나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질투가 났다. 무엇보다 팁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은 외국에서 보다 많은 팁을, 한국 땅에서 서비스가 좋고 예쁜 아르바이트생에게 찔러주었다.

  30대 독신남의 사장은 매니저에게 지시하여 테이블에 많이 선택받고 서비스를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수당이외의 커미션을 더 제공했다. 당연하지만 늘씬하고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많이 불렸고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기본금을 제외하고 시급의 차이가 났다.

  자연스럽게 여대생들에게는 승부욕이라든가 아르바이트 비용을 더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끌어냈다. 3500CC급의 고급세단을 몰고 다니며 배우 같은 모습에 독신이기까지 한 사장은 일을 잘하면 수당을 더 지불한다는 무언의 슬로건아래 여대생들은 자연스레 사장에게 호감을 가졌다. 30대 독신 사장은 자신의 바에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형성했다. 정직원은 매니저 한 명과 요리사 한 명으로 족했다. 나머지 고용은 모두 아르바이트로 충당했고 그의 바에서 일을 하려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을 하면 외국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데이트도 가능했다. 그런 역할을 사장이 마련해 주기도 했다. 소문은 빠르게 급물살을 타게 된다. 외국인들에게는 재미있는 경험일 뿐이지만 여대생들은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날씬한 여자여야만 한다는 기류를 만들어내어서 다이어트를 하는 긴장을 가지게 된다. 그녀들은 배가 나와 보일까봐 저녁을 아주 조금 먹거나 굶기 일쑤였다. 일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식비로 나가는 비용은 비례하지 않았다. 독신남은 2호점의 바에 들러서 마감을 한 후 다시 다운타운가의 1호점에 들렀다.

  1호점은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하지만 그 시간까지 문을 열어놓는 경우는 드물었다. 1시부터 집이 먼 여대생부터 한명씩 퇴근을 시켰다. 독신남은 언제나 자신이 마지막에 문을 잠그고 퇴근을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나씩 퇴근을 하고 나면 마지막에 남은 아르바이트생과 독신남은 밤을 즐겼다. 독신남이라는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직원으로 만나서 밤을 보내게 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여대생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도왔다. 남자는 잠자리에서 여자를 배려 할 줄 알았고 가방과 옷도 사주었다. 물론 고급브랜드로만.

  모든 것을 가지고 완벽한 남자와 이렇게 친밀하게 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여대생은 행복했다. 남자는 늘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헤어가 바뀌면 스타일을 알아차려주었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버건디 네일에서 젤네일로 바뀐 것도 알고 있었다. 입고 있는 바지와 화장에 대해서도 칭찬을 해주었다. 새벽의 안개처럼 중저음의 목소리는 여대생의 마음을 이미 잡아당기고 있었다. 가끔 시간이 맞아서 독신남이 학교에 자신을 데리러 올 때면 고급세단이 자신을 위해서 대기했다. 자동차의 문을 열면 일상과 단절된 일탈의 세계가 밖으로 흘렀다. 여대생은 그 냄새에 도취되어서 올라탔고 친구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대생은 오늘도 그의 집에서 보낼 것이다.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 여대생은 독신남의 집을 좋아했다. 자신의 집에서는 맡을 수 없는 모던한 향기와 푸른빛의 조명이 은은하게 집을 과하지 않게 비춰 주었다.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집이었다. 그렇다고 부담이 될 정도로 큰 집도 아니었다. 많은 음악과 책이 가득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남자가 와서 확신에 찬 움직임으로 책을 빼들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윌리엄 포크너는 말이야, 하면서 얼굴가까이 와서 속삭였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무는 시늉을 하고 윌리엄 포크너에 대해서, 그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들과 늘 가서 마시던 술에서 벗어난 술이 있었고 그에 맞는 술잔도 종류별로 있었다. 심지어 냉장고는 와인 냉장고 외에 카메라를 보관하는 저장고도 따로 있었다. 남자는 보관하고 있는 여러 대의 카메라 중에서 라이카의 붉은 딱지가 붙어있는 카메라를 꺼내 여대생을 담아 주었고 그것을 사진으로 인화해서 건네주었다. 매일이 꿈같은 하루이며 여행이었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 바에 남아서 남자와 술을 같이 마셨다. 독신남은 여대생에 비해서 지식이 풍부했다. 언어적 유희도 여대생이 현혹되기에 충분했다. 2시쯤에 마감을 했다. 늘 그렇듯이 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간단하게 한잔 마셨다. 내일은 수업이 없기 때문에 오늘은 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된다.

  그리고 남자의 집으로 같이 갔다. 오늘은 바에서 4시까지 있었다. 새벽 4시가 되어가는 동안 여대생은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컨디션이 별로였다. 빨리 남자의 질 좋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싶었다. 물론 배려에 압도당하는 섹스를 하고 말이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평소보다 술에 취했다. 그래도 남자의 품에 안길 생각을 하니 참을만했다. 여대생에 비해서 독신남은 멀쩡했다. 4시 10분이 되어서 남자는 여대생을 데리고 바의 문을 닫고 나왔다. 몸 자체가 매력적인 여대생은 독신남에게 업혀 나올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이상했다. 고작 위스키 몇 잔을 마셨을 뿐인데 몸이 죽은 생선 같았다. 콜라와 섞어 마셔서 괜찮을 법 한데 정신이 이렇게 가물가물 한 것이 현실처럼 와 닿지 않았다. 여대생은 몸을 전혀 가눌 수 없었다. 데쳐진 시금치가 되어 남자의 차에 구겨지듯 넣어졌다. 남자는 그동안 여대생과 술을 마실 때마다 여자가 마시는 술에 GHB와 엑스터시, 러미나정을 번갈아가며 타서 먹여왔다. 바에서는 두 사람이 사귀는 것처럼 기정사실화되어서 다른 여대생들에게 질투를 불러 일으켰고 독신남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아르바이트 여대생들도 있었다.

  여대생은 정신이 없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새로 구입한 고출력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같았고 여자를 위했고 무엇보다 돈이 많았다. 주머니를 털면 돈다발이 두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여자는 그동안 술을 마시며 남자가 자신의 술에 약을 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약을 술과 함께 먹으면 기분이 좋았고 몸이 뜨거워지며 섹스가 가져다주는 쾌락을 몇 배나 느낄 수 있었다. 독신남자를 알기 전 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잠을 잘 때와는 다른 양질의 쾌락이었다.

  여자 속에 숨어 있던 욕정을 끝없이 끌어 올렸다. 여대생은 초반에 엑스터시와 마약 최음제의 효과로 몸이 밑으로 한없이 쳐지는 느낌과 함께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천상의 기분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이 희미해져 버리고 뇌의 중추신경의 억제기능이 감소되어서 환시, 환청이 들렸고 현실을 왜곡해 버리는 정신병적 증상을 보였다. 그 사실을 본인만 몰랐을 뿐이었고 그럴수록 그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술에 약을 타서 먹거나 정신이 아찔해지면 남자가 또 다른 약을 투여해 주었다. 그러면 세상은 황홀해졌다. 걱정근심이 새가 되어 모두 싹 날아갔다. 바다위의 고급 보트에서 마련한 물위의 침대에 엎드려 서비스를 받는 기분이었다. 굉장히 경이로운 경험. 일상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쾌락적 환희였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대생은 현실을 잊기 위해서 독신남자에게 약을 원했고 남자는 술에 약을 타서 밤마다 바에 남아서 마시거나 자신의 집에서 술을 먹이고 여대생을 탐닉했다. 바에서 업혀 나온 여대생의 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늘어졌으며 살 가마니처럼 무거웠다. 그녀는 이제 남자가 어떠한 행위를 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쾌락만을 추구하는 정신과 육체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그 마저도 버거워 보였다.

  여자를 업고 있는 독신남은 등으로 그녀의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집으로 올라갔다. 맥박이 빠르고 불규칙적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집 현관문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열고 들어가 여자를 침대에 눕혔다. 여자는 이제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미미한 소리만 낼 뿐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인큐베이터안의 아기가 되어 가만히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를 본 후 와이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두 개 풀었다. 남자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일그러진 일탈로부터 시작된 망가진 땀이었다. 남자는 방의 에어컨을 틀었다. 깨끗한 에어컨디셔너는 조용하게 주둥이가 벌어지더니 차가운 바람을 만들었고 후텁지근한 집안을 곧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남자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방독면을 꺼냈다. 방독면 두 개가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하나는 여자의 얼굴에 씌우고 하나는 자신의 얼굴에 뒤집어썼다. 남자 역시 이미 환상 속의 세계에 들어온 얼굴이었다.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정신이 없는 여자의 얼굴에 방독면을 씌운 다음 자신의 침대 밑에 가득 있는 하이힐 중 굽이 제일 높은 지미추 힐을 꺼내 여자의 발에 신겼다. 치마를 걷어 올렸다. 스타킹을 찢고 팬티도 찢었다. 다리를 벌리니 여자만의 냄새가 풍겼다. 남자는 하이힐을 한 번 보고 여자에게 올라탔다. 여자는 맥박이 너무 불규칙적이고 빠르게 뛰었다. 독신남의 손이 어린 여대생의 가슴으로 올라갔다. 여자가 입고 있는 윗도리를 다 벗기지 않고 유륜이 보이게 상의를 젖히고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여자의 가슴은 남자가 만지기 위해 만들어 진거야, 남자가 말했다. 여자가 잠시 미미하게 미동을 했다. 남자가 방독면을 쓴 채 소리를 쳤다.

  이곳이 천국이다!

  여자가 쓴 방독면 안면렌즈부분에 성에가 꼈다. 여자는 더 이상 숨쉬기가 힘이 들었다>

 

  마동의 무의식 속으로 내팽겨진 인간들의 삐뚤어진 의식이 파고들었다.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상대방 때문에 화를 내고 화해를 하지만 그것은 본디 자신이 편해지려고 화해를 야기하는 본성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삶을 인간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에 이기적이라는 관념의 이름으로 건물을 세우고 건물은 삽시간에 땀을 흘리는가 싶더니 끈적끈적한 돌기를 만들어내고 그 돌기에서는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썩어 들어갔다. 연기가 전해주는 냄새는 두통을 동반했고 동시에 구토를 자아냈다.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치누크를 타고 마동의 무의식으로 들어왔다. 냄새는 하수구의 모습보다 추악했으며 시궁창의 쥐보다 추잡스러웠다. 시간의 연속성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불구덩이의 붉은 색은 증식함에 따라 뚝뚝 떨어지는 오래된 혈액의 색으로 변해 질척함을 보였다. 마동의 몸은 이내 핏빛으로 덮여버리고 거센 뜨거움을 느꼈다. 어린 친구들의 몸뚱이가 서로 맞지 않은 얼굴에 붙어서 마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너구리가 되었다가 너구리의 몸에 눈동자가 없는 친구의 얼굴만 붙어서 마동에게로 다가왔다.

 

  뜨겁다. 너무 뜨겁다.

  하아.

  참을 수가 없다. 이대로 화마에 몸이 다 타버릴 것만 같다.

  순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떠오른다.

  소피의 얼굴로 바뀐다.

  분홍간호사의 얼굴이 다시 소피의 얼굴 위에 입혀졌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골이 선명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을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몸은 화염에 휩싸여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다. 온 몸에 기름을 들이붓고 거기에 성냥불을 던져서 화악 불길이 번지듯 내 몸은 영락없이 불에 타고 있었다. 나는 육신에 불이 붙어 생명이 타들어간다는 신호를 본능이 알아차렸지만 그대로 두고 보고 있다.

 

  본능도 몸이 새까맣게 변해버릴지 모르는 불타오르는 세포를 가만히 놔두었다. 갈비뼈가 움직이는 느낌을 마동은 느꼈다. 뼈대가 길어지거나 옆으로 꺾였고 움직이니 갈비뼈가 폐와 심장을 찌르는 고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둠이 강하게 낀 흉가에서 맛보았던 흉포한 공복을 느꼈고 불타오르는 몸에서 촉수가 밖으로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피부에 붙은 불은 푸른빛을 뽑아냈고 아픔 속에 정신을 가물거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피부를 찢고 나온 촉수는 시체의 홉뜬 눈 같았다.

  마동의 몸은 푸른 불꽃에 홀라당 타들어가고 있었다. 푸른 불꽃은 마동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며 키가 커져갔다. 푸른 불꽃은 인간에게 손짓을 하는 본질이었으며 동시에 다가가서 덮치려는 욕망이었다. 마동은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역시 푸른빛의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원형의 두 마음이 파란 불꽃 속에 있었다. 하지만 곧 잿더미가 되리라는 두려움은 일지 않았다. 공포의 기척도 들지 않았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이제 뜨겁지 않았다. 그저 불타오르고 있었다. 푸른색의 불꽃은 마동의 세포를 태워가며 뿜어져 나왔지만 마동의 몸 바깥에서 연소되듯 타들어가고 있었다. 공기와 마찰을 일으켜 작은 폭발음을 자아내며 파란색의 불꽃은 굳은 결의로 타올랐다. 마동은 어딘가로 깊게,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깊은 곳으로 떨어질수록 빛과는 대조되는 어둠이 마동의 주위에 가득했고 마동의 몸에 붙은 파란 불꽃으로 어둠에 대항 할 수 있었다. 얼마만큼이나 떨어졌을까. 어둠은 짙어지고 끈적끈적했다.

 

  어디선가 느껴본 어둠의 질.

  본적이 있는 어둠이 촉감.

 

  암흑의 기류가 마동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암흑이 도사리고 있는 더 밑바닥의 끝, 보이지 않는 암흑의 끝으로 마동은 떨어지고 있었다. 마동의 몸에서 무게감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동굴 밑으로 천천히 떨어지듯 떨어졌지만 엘리스와 다른 점은 전혀 동화 같지 않다는 것이고 몸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본능도 타올랐다. 갓 비행을 시작 한지 하루가 지난 제비의 가벼운 깃털처럼 몸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고 투포환 선수들의 무서운 쇳덩이 같기도 했다.

  마동은 그렇게 깊은 지하의 암흑으로 어두운 기류 속으로 떨어졌다. 푸른 불빛 사이로 메마른 도시의 그림자들이 마동의 시야에 들어왔다. 푸석푸석하고 썩어빠진 악취 가득한 더러운 먼지의 그림자들이었다. 그림자 속에는 정념이 다 말라서 틀어져버린 인간의 영혼이 퀭한 하나의 눈으로 마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일까. 제대로 죽지도 못하고 이런 곳에서 떠돌고 있는 저들은.

  그 순간.

  이것이 죽음인가.

 

  늘 생각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마동은 현재를 대입해 보았다.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그동안 착실하게 해왔다. 삶과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죽음에 다가가려했다. 어떤 유명한 철학가는 살아있다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에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살아있다고 느끼는 그 이면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밝은 아침이 오면 처음부터 아침이 밝은 것이 아니라 어둠이 있었기에 밝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살아있다’도 그런 것이다. 죽음이라는 관념은 끝이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삶을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서 죽 이어지는 하나의 연장선 같은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오래전 돌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우에게, 아버지에게 전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심연의 중심에서 커다란 울림이 들렸다. 몸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재가 되어 버린다면 친구들에게도 누구에게도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다. 아아 이렇게 허망하게 끝을 맞이할 수는 없다. 며칠 있으면 소피도 한국으로 온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서 확정지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는개를 만나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마동은 떨어지는 암흑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도대체 최원해 부장은 어떻게 된 것일까.

  는개는 날 걱정하고 있을까.

  클라이언트의 꿈리모델링 작업의 진행은 순조로울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소피는? 분홍간호사는?

  아아

 

  마동은 또 머리가 조여왔다. 두통의 고통이 뇌를 터지기 일보직전으로 몰고 갔다. 마동은 밑으로 떨어지면서 중력을 거부하고 애써 몸을 움직여 일어서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바람에 불은 점점 활활 타올랐다. 손바닥을 목 언저리에 올렸다. 목에서는 전기밥솥에서 갓 꺼낸 밥처럼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때 어두운 암흑의 저 앞에서 누군가 마동을 불렀다. 목소리는 불사의 목소리 같았다. 불사의 목소리가 따로 있지는 않겠지만 장군이의 목소리와도 달랐고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와도 달랐다. 목소리는 두려움을 띠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연약하고 신비스러운 목소리였다. 알고 있는 목소리. 불투명하고 축축한 공기층의 암흑을 뚫고 보이지 않는 가능성으로 마동의 귀로 전달되어 왔다. 처음에는 아주 작게 들렸지만 가능성은 확실히 눈에 또렷하게 보이는 피사체처럼 점진적으로 확실성을 띄었다.

  “사라, 당신이 어떻게 온 것입니까”

  목소리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하기에는 불확실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동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뿐이지 않는가. 하지만 마동이 부른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황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를 받아들였다. 그 목소리에서 사라 발랸샤 얀시엔을 확신했고 계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큰 소리로 불렀다.

  “사라, 사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아닌가? 그럼 누구의 목소리일까. 연약한 목소리는 어둡고 불투명 층위를 뚫고 마동에게 전달되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마동은 자신에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목소리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엇나가기만 했다. 집중하지 않았지만 마동의 주위에서 들리던 목소리, 봄눈이 내리던 저녁의 바람 같은 목소리, 사려 깊은 고양이의 눈 같은 목소리, 사회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목소리, 일종의 안온감이 드는 목소리였다. 마동을 부르는 불사의 목소리는 그랬다. 마동의 머리는 무질서에 가까웠다. 곁에 머물렀던 목소리의 주인을 마동은 애타게 불렀다.

  “어디 있어요? 여기는 어디입니까? 제발 좀 나와주세요. 실은 무섭다구요!”큰소리로 부르고 또 소리를 질렀다. 입을 벌릴 때마다 입에서 파란 불꽃이 무섭게 나왔다. 어두운 공간에 울리던 불사의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우우웅 우우웅 두개골을 쪼개버릴 굉장한 이명이 마동의 머리를 조여왔다. 눈이 없고 퀭한 모습의 도시의 그림자들이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시간의 흐름이 뒤틀리고 어두운 공간 속 도시의 제멋대로인 그림자들이 크윽 소리를 내며 구부러지고 차가운 물속에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동의 몸에서 타오르는 불구덩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몸을 불태우던 푸른빛의 화마가 마동에게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화마가 사라지자 마동이 입고 있던 옷들이 전부 까맣게 재가 되어서 허공에서 흩날렸다. 마동은 발가벗은 채로 힘없이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살아있는 실체처럼 푸른빛은 마동의 몸에서 빠져나와서 입고 있는 옷과 함께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퀭한 하나의 구멍의 눈을 가진 수십 명의 영혼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뱉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그 모습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의 수초가 해류에 휩쓸리는 모습이었다.

  구오오옹.

  소리는 목 없는 자들의 영혼의 고통을 말해주었다. 그때 마동의 눈앞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나타났다. 아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선명하지 않았고 뿌옇게 보였다. 기름종이 뒤의 피사체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은 부얘보이기만 했다. 뿌연 모습 속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마동의 손을 잡으려고 팔을 내밀었다. 마동은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차갑고 냉정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아 보고 싶었다. 또 정신이 번쩍 뜨일 그녀의 싶은 눈빛과 숨이 멎을 것 같은 그녀의 가슴골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마동도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팔. 을. 뻗. 는. 다.

  늘 그렇듯이 팔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동의 입에서 또 한 번의 욕이 나왔다. 의족을 옮겨다 붙여 놓은 듯 전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작 팔을 들어서 그녀의 손을 잡는 것뿐인데 어이 이봐, 가만있어, 나는 더 이상 네 생각대로 움직이기 싫어, 라고 팔은 마동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모습에 곰팡이가 끼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곰팡이가 그녀의 몸에 완전하게 증식했다. 마동은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뻗어서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은 미술관의 거대조각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저것도 나의 또 다른 에고일까. 슈퍼에고는 아이들을 괴롭혔고 그녀까지 괴롭히고 있다. 어째서 또 다른 나는 사람들을 괴롭히려고만 하는가. 나는 이럴 때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가. 제발 멈추라고!

  팔은 암흑의 바닥을 향해 밑으로 내려가 있을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 보고 싶어, 사라 발렌샤 얀시엔.

  그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곰팡이가 덮어 버렸다. 곰팡이는 그녀의 몸을 점점 갉아 먹더니 먼지로 만들었고 흐리고 흐린 하나의 뿌연 그림자로 보일뿐이었다. 그림자의 모습은 는개였다.

  아니, 는개가? 아아, 괴롭다.

 

  눈을 뜨니 낯선 방이었다. 예상 밖으로 어제보다 눈이 잘 떠졌다. 몸은 아주 가벼웠다. 그렇지만 몸은 아직 뜨거웠다. 몸이 뜨겁다는 명제에서만 벗어나면 정상적인 상태였다. 뜨겁다는 느낌은 뭐랄까, 뜨겁지만 뜨겁지 않았다. 분명 몸은 뜨거웠다. 불에 달군 주전자의 몸통처럼 뜨거웠지만 만져질 수 있는 뜨거움이었다. 눈을 떠서 동공을 움직여 방안을 살폈다. 시야에 들어오는 환경이 마동이 사는 집이 아니라서 놀랐고 일어나려고 팔을 드니 팔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또 한 번 놀랐다. 가만히 생각을 했다. 암흑의 밑바닥 끝으로 한없이 추락을 하면서 불투명한 막 저편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보며 팔을 뻗었지만 팔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모습이 는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애당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아니고 는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되었던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럼 나를 불렀던 그 연약한 목소리는 는개의 목소리란 말인가.

  는개의 손과 닿았을 때 마동이 보았던 암흑의 세계를 는개도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아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시신경으로 받아들이는 사물과 풍경이 전부 구겨져서 안으로 말려들어오는 기분이다. 엉망진창이다. 누구하나 제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 검사를 하고 나온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는 말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째서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일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변이가 시작되고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고 질문투성이다. 마동은 옥상의 난간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리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먼 곳에서 밝아오는 빛을 보며 자신의 몸은 파란 불꽃에 휩싸여 타올랐다. 파란 불꽃은 욕망과 본능이 결합하여 증폭되었다가 마동의 몸에서 떠나갔다.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분명 어제를 포함해 이전의 아침에 비해 몸이 가벼웠고 눈도 제대로 떠졌다. 헌데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대수술을 거치고 정신을 차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몸은 그대로이고 정신만 멀쩡했다. 팔도 다리도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몸에 맞지 않는 톱니바퀴를 이어 붙여놓은 듯 삐거덕 거렸고 철탑인간이 몸을 뚫고 마동의 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팔다리는 마동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붙어있고 팔을 들어 올리니 불편함이 녹록히 전해져왔다. 마동은 일단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있다가 눈을 뜨면 다시 돌아 올 것이다. 평소대로.

  침착하게 마음을 갖자.

  혹여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일들과 변이에 마동의 사고와 신체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은 모두 쉬쉬했다. 단체로 죽음을 맞이하면 그 만큼의 비용이 충당되는 것이다. 서류와 결제를 통해 드는 비용이 많아지면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고 갈등을 소비하려 또 비용이 든다. 자본주의는 들어가는 비용이‘최소한’이라는 목적에 맞추어서 움직이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소’의 비용 속에는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도 용인된다. 단체로 맞이한 죽음에서 누군가 죽지 못해 살아났다고 하면 살아난 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여가 또 시작된다.

  요컨대 정부가 공무수행 중에 정부의 차에 치여 교통사고를 당한 일반인이 팔다리를 잃었거나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면 정부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개입을 하고 개인을 위한 허울 좋은 보상이라는 명분으로 매스미디어를 이용한다. 국가는 축척의 욕망이 가득하여 자본을 매몰시켜 놓는다. 그 와중에‘공공성’이라는 관념이 빠져버리게 된다. 국가 기둥의 붕괴는 이곳저곳 늘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속에서 국민의 죽음이 이루어지면 공공성은 더욱 회복하기가 어려워지고 국민을 위한 국가구조가 아닌 소수를 위한 시스템으로 불신만 가중된다. 갈등이 점진적으로 커져가며 갈등해소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어마어마해진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 당사자만 절망 속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고 정부를 비난하며 시간이 갈수록 일상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정부를 비난하는 당사자에 사람들의 손가락 짓이 늘어나고 당사자는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소외되어 간다. 일부 당사자와 가족이 전사로 변하지만 정부는 거대한 아케이드다. 맞서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당사자는 시간이 갈수록 과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인가. 국가가 나서서 해줘야 할 일을 국가가 외면해 버리고 나면 피해를 받은 당사자는 격렬한 사랑을 하며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라고 불리는 큰 덩어리,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당사자의 암울한 모습을 하고 생활하는 것을 시간이라는 매개를 빌려 덮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개인의 고통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가 강했으며 관료들은 친분으로 쌓은 탄탄한 권력으로 자본을 회수하려는데 주력할 뿐이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악마를 보는 것이다.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집밖에 나와서 하루에 볼일을 하나정도 보고 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릴 만큼 이 사회는 그들에게 냉대하기만 하다.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은 소외된 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괜히 나서지 마라. 빅브라더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묵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에어컨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전력과다수급이 필요하고 한쪽에서는 폭염에 쪽방촌사람들이 죽어갔다. 대부분의 식당은 음식의 원형에 가까운 요리를 멀리했고 접시의 공백을 필요 이상으로 양념과 양으로 덮어버렸다. 팔아버리면 그만이었고 현지화에 가까운 조리법으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에 급급했다. 냉면을 먹고 있으면 냉면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냉면을 냉면으로 받아들이느냐 냉면 이외의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인식론의 문제였다. 무의미가 의미를 대신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본질이 사라져 버린 후 경험적 인식은 미디어의 정보와 마찰을 겪지만 결국에는 방대한 정보에 무릎을 꿇고 만다.

  타인과 달라 보이는 외모,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냉대 받는 사회, 오직 젊음이 삶의 상징이고 젊음에 상응하는 외모지상주의는 사회를 이루는 구축점 같은 모습이라고 미디어는 아닌 척하며 조장했다. 늙어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신성한 현상임에도 사회는 애써 외면했다. 자연스러움을 배척한 모습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늙어가는 사람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적 기능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려움과 우울함을 동반하는데 자본주의는 한몫을 했다.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룬 영화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나이가 들어 죽음에 다가갈수록 인기가 하락했으며 사회는 그런 인간의 상승과 하강을 보며 조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지식은 올랐지만 의식은 밑바닥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상상력의 고갈은 가족 간에도 칼부림을 만들었다. 현대판 고려장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일각에서는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죽음을 찾아가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자본주의는 죽음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과 젊음은 추앙하는 반면 죽음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인간은 싹둑 배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자본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되찾기 위해 꿈리모델링 회사를 찾는 것이다. 꿈을 다시 되찾고 또는 그 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자본주의사회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죽음에 이르렀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몸에 푸른 불꽃으로 어딘가로 떨어질 때 휑한 눈으로 마동을 바라보았던 악취 가득하고 더러운 그림자들에게 둘러 쌓였었다.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죽음’그것이었다. 마동은 그 죽음이 가득한 암흑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천국은 없더라도 지옥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폭행을 일삼는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들 때문이라도 지옥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법망을 피하고 잡혀들지 않는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죽고 나면 지옥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완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뼈가 익어가고 고통을 받아야한다. 그래야 한다.

  푸른빛의 불꽃은 욕망과 본능이 응축된 불꽃이었다. 마동은 퀭한 두 눈의 더러운 그림자들 틈 속에서 죽음에 닳았다고 생각했을 때 이곳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다행이었다. 마동은 철도청의 파업 소식을 잘못들은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마동은 죽은 후 지옥으로 가야 마땅했다. 몸이 뜨거워져 즉각적인 대처도 하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눈을 뜬 이곳은 지옥은 아니었다. 적어도.

  낯선 곳에 누워있었다. 침 대 위.

  낯선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 곳, 여기는 어디일까.

  마동의 뜨거웠던 몸도 다시 정상적인 체온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마동은 옥상의 난간에 앉아서 새벽에 밝아오는 것을 맞이하다가 몸이 뜨거워졌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없었다. 뜨거워진 다음에 어떠한 이유로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마동의 머릿속에는 최원해부장과 산속을 조깅하다가 철탑 밑에서 쓰러져 기억이 없을 때처럼 그 부분이 몽땅 누락되어버렸다. 대신 누락된 부분에 실재로 느껴지는 다른 가설이 들어와 거리를 메꾸었다. 단순히 악몽이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서 무엇인가 이루어진 곳이다. 눈을 뜨고 낯선 곳에 누워있었지만 몸이 뜨거웠던 것은 진리에 가까운 현실이자 사실이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그녀는 마동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옥 속에서 마동에게 손을 뻗어온 것이다. 그곳까지 마동을 데리러 온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었을까.

  그녀의 얼굴은 는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애당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는개가 나를 구하려고 온 것일까. 왜 그랬을까. 어째서 는개의 모습이었을까. 도대체 왜 는개가.

  떨어지는 암흑 속에서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인지 는개의 손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흐려져 안과에서 치료를 받은 첫날 보는 세상처럼 뚜렷하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동은 낯선 방에서 눈을 감고 치누크가 불어오던 강변의 대나무 숲의 벤치에서 안았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크로노프 손목시계를 해부한 모습을 떠올리듯 막막하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을 지우개로 뭉개놓은 것처럼 윤곽이 살아나지 않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 대한 기억이 점점 추억처럼 엷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성을 띠고 여기까지와 여기서 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생김새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칼질을 잘하는 칼잡이가 기억을 싹둑 잘라서 가져가 버린 것이다. 거짓말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리면 는개가 생각났다.

  마동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렸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동안 팔이 움직이고 다리가 움직였지만 마동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힘에 의해서 팔다리가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군.

  두 팔로 침대의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은 마동의 몸을 겨우 일으켰고 그 느낌은 상당히 불온했다. 등을 옆으로 돌리고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는 동작은 마치 처음 가동하는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기기긱 하며 위태롭게 움직였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동은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누가 이곳으로 옮겨 놨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소용없는 것에는 온 힘을 다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언젠가 와 봤던 곳일까. 아니면 꿈속에서 보았던 곳일까.

  질문 모두가 다 허공에 떠 있는 담배연기처럼 의미 없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마동은 이러쿵저러쿵 생각자체를 그만 두었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의 변화도 없었다.

  참 난처하군.

  오로지 생각밖에 없는 상황은 자신을 난처한 구석으로 몰고 가기만 할 뿐이었다. 마동은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두운 방안에 붉은 빛깔의 다운라이트 조명이 천장에서 열심히 방안을 밝히고 있었고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하얀색으로 된 벽면은 붉은빛을 띠는 다운라이트 빛을 받아서 엷은 붉은색을 띠었다. 방은 3명 정도가 앉으면 꽉 들어찰 정도로 작은 방이었으며 한쪽 벽에 간이침대가 붙어있었고 마동이 그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시간이 몇 시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동은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었다. 얇은 여름용 트레이닝팬츠와 폴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옥상으로 올라간 그 모습 그대로 이 방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옷은 마동이 입고 간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동의 몸을 타오르게 만들었던 불꽃이 사라짐과 동시에 입고 있던 옷은 재가 되어 허공에서 소멸했다. 누군가 마동에게 옷을 입힌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맞은편에 보이는 문으로 가려고 일어나려 했지만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 문 건너편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미묘한 긴장의 끈이 머리를 치고 경추를 건드렸다.

  누구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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