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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나멜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20

요양 간 오지마을에서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

 
에나멜 09
작성일 : 19-10-20 08:51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1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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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수운아저씨.”

 크게 불러봤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저씨를 부르면서 우희설은 어쩌고 있나 싶어 1층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노해림이 밖에서 불을 켰는지 내 앞으로 그늘이 졌다. 방 안 불을 켜고 아저씨가 집에 오긴 왔는지 우희설 머리맡에 유리병을 갖다놓긴 했는지 확인하려고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베고 있는 베게 주변을 샅샅이 살펴 찾아보았다. 하지만 없었다. 혹시 아래 떨어졌나 싶어서 침대 아래쪽을 살피고, 잠결에 손으로 끌어내렸나 싶어서 그녀 주변을 빙 둘러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데도 없었다. 토마토 맛 내용물이 들어있는 유리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아저씨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건가 싶었다.

 “재은 씨. 이리 와 봐요.”

 “아무래도 아저씨 여기 안 오신 것 같아요.”

 노해림이 부르기에 나가면서 말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그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날 돌아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난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다시 말했다.

 “희설 씨 지금 자고 있는데, 유리병은 없어요. 아저씨가 아직 안 갖다놓으신 것 같아요.”

 “일단 와서 이거 좀 봐봐.”

 “뭔데요.”

 그는 계단 뒤쪽 시야에서 가려지는 사각지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뭐가 있기에 그러는지 보니, 계단 뒤쪽 어둡게 그늘진 곳에 토마토 맛으로 가득 채운 유리병 여러 개가 쌓여있었다.

 “이거 진짜 뭐지?”

 “이게, 여기 이렇게 여러 개 있었네요.”

 왜 하나라고 생각했을까.

 약간 심각해진 목소리로 얼굴로 그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아저씨 지금 이 집 안에 있어.”

 “아저씨가 여기 있다고요?”

 “현관에 아저씨 신발이 있어요. 근데, 그 옆으로 빈 유리병들이 잔뜩 쌓여있어.”

 그 말대로 현관에는 아저씨 닳아진 검정 구두가 엷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빈 유리병들 쌓은 탑이 여러 줄 현관 옆 벽으로 바싹 붙어 놓여있었다.

 “이건….”

 “이건 빈 병이니까 상관없다 쳐도 방금 계단 뒤에서 본 것만 해도 엄청난 양이야. 재은 씨, 그 많은 토마토를 전부 어디서 구했을까.”

 좀 전의 심각한 어조 그대로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따라서 심각해졌다. 정말 어디서 구한 거야? 그리고 아저씨는 어디로 가신 거지?

 “우리 우선 아저씨부터 찾아요. 1층에 없는 걸 보면, 2층이겠죠.”

 “그래. 2층으로 올라가 봐요.”

 토마토 맛 가득 담긴 유리병들을 봤던 쪽으로 되돌아가서, 그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2층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서 조용하긴 1층과 마찬가지였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리고 방문은 닫혀있었다. 그런데 2층 방문은 그냥 닫혀만 있는 게 아니라, 안에서 잠가놓은 상태였다. 난 문을 열려다 잠금장치에 걸려서 툭툭 거릴 뿐 돌아가지 않는 문고리를 잡고 여러 번 흔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약간 낮은 어조로 노해림이 말했다.

 “잠겨있어요?”

 “네. 분명 이 안에 계시는 것 같은데, 왜 잠가놓으신 거지.”

 나와 노해림은 방문이 왜 잠겨있는 건지, 아저씨가 잠근 건지 문이 고장 나서 저 혼자 잠긴 것인지, 아저씨가 잠근 거라면 왜 잠근 건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면서 열쇠를 찾으러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아까 방에 들어가서 봤을 때 우희설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희설 씨 깨워서 물어보는 게 좋겠어요.”

 “아니. 깨우지 마요. 희설 씨 지금 깨우면 안 돼. 저 혼자 일어날 때까지 그냥 둬야지. 내가 전에 한 번 신경접속회로 공부했다고 말한 적 있죠?”

 “네. 근데,”

 “지금 억지로 깨워놓으면, 희설 씨 분명 일어나자마자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려 할 거야. 그럼 되돌리기 훨씬 더 힘들어져.”

 “알겠어요. 좋아요. 그럼 그냥 우리가 찾아봐요. 근데 정말 공부 많이 했나 봐요.”

 “공부, 좀 많이 했죠.”

 “그럼 이따 자료 있으면 좀 보여줄 수 있어요? 관련 책이라든가 공부한 내용이라든가, 아무튼 신경접속회로에 관련된 자료들로요.”

 웬일인지 좀 전부터 아마도 2층에 올라가서부터 미소 짓고 있던 그는 이내 숨죽이는 소리로 풋 웃기라도 할 것처럼 더 크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아, 근데 일단 열쇠부터 찾아야 되니까,”

 “내가 방에 들어가서 찾아볼게요.”

 “난 여기 주변에 뒤져볼게.”

 

 우희설이 잠들어 있는 방에서는 내가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노해림은 싱크대 수납공간부터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곤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밖에서 비명인지 뭔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리와 함께 가까워지는 모습이 익숙한 게 꼭 수혁아저씨 같았다. 그런데 아직 먼 거리에 모자를 깊게 푹 눌러쓰고 있어서 수혁아저씨가 맞는지 아닌지 헷갈렸다.

 “저기 수혁아저씨 같은데, 맞죠?”

 난 유리문 바깥에 이쪽으로 뛰어오면서 소리 지르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헷갈리네.”

 노해림도 헷갈려하고 있었다. 난 수혁아저씨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소리 지르며 가까워지던 사람은 곧 벽에 가려지는 오른쪽으로 지나가버렸다.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저기까지 쫓아나가기도 그렇고, 그보다는 어쨌거나 수운아저씨에게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방문부터 열어봐야했다.

 

 찾으려는 건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데, 계속해서 찾아 뒤지기만 하다 보니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겹쳐들면서 한숨이 나왔다. 쓸데없는 생각들이었지만 순간 힘이 빠져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밖에 갖가지 소리 들리는 쪽을 내다보니 노해림은 여기저기 뒤지고 찾는 데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벌써 6시27분이었다. 아저씨가 유리병만 있던 자리에 갖다놓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지도 한 시간 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지쳐서인지 피곤해서인지 철퍼덕 앉아선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열쇠 찾든가 말든가 상관없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 그때 초인종이 울리더니, 곧이어 거세게 현관문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식 전화벨 소리 초인종 두 번 울리고,

 한 번 반복되고, 쾅쾅쾅,

 다시 울리면서

 쾅쾅쾅쾅,

 “우희설. 황수운, 문 열어.”

 수혁아저씨였다. 순간 난 눈이 크게 뜨이도록 놀란 상태로 현관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방 밖에서 열쇠 찾느라 소란스러웠던 노해림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그는 그대로 문 쪽을 쳐다보았다가 느리게 일어서고 있는 날 돌아보았다.

 

 적어도 사흘은 걸릴 거라던 수혁아저씨가 벌써 깨어났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몰라도 아저씨는 다급하게 희설 씨를 찾고 있었다. 아저씨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어주려 현관으로 나가는데, 그가 벌떡 일어서면서 날 불렀다.

 “재은 씨.”

 “황수운. 우희설!”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노해림을 쳐다보며 멈칫해 있는데 또 다시 쾅쾅쾅쾅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더 수혁아저씨는 소리쳐 희설 씨를 부르더니 수운아저씨까지 찾았다. 뒤이어 구식 전화벨 초인종 소리를 들었을 때, 난 곧장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아저씨는 어딘지 화난 것 같았다. 부릅뜬 두 눈 흰자위 가장자리 빙 둘러 붉어져 있었다. 조금 놀라서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우희설!”

 굳은 얼굴로 흥분하여 소리 지르듯 쏟아내는 목소리였다. 뒤로 물러서다 벽에 가로막혀 굳어있는데, 그런 아저씨 목소리에 또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서 급히 숨 들이키는 소리에 반응하듯 아저씨는 내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 그제야 내가 서있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너 왜 여기 있어?”

 “아….”

 순간 말문이 막혀서 굳은 채 멍해 있었다. 그런데 안쪽에서 크게 말하는 노해림 목소리가 들렸다.

 “희설 씨 지금 방에 잠들어 있어요.”

 “뭐?”

 아저씨는 그를 쳐다보며 사정없이 인상을 찌푸리곤 따지듯 대꾸했다.

 “우희설 씨, ‘진짜 잠’자고 있어요.”

 왠지 말하는 어조가 어딘가 어색하게 들려서 노해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아저씨는 그 말을 듣더니 성큼성큼 빠르게 발을 옮겨 우희설 방 쪽으로 움직였다. 난 그런 아저씨 뒷모습을 가만히 눈으로 쫓았다.

 노해림은 탁자에 기대선 채로 가만히 앞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문을 열더니 들어가지는 않고 그 자리에 가만 서있는 아저씨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는 문 열고 서있는 아저씨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난 탁자 쪽으로 살살 뛰어서 노해림 옆으로 갔다. 그리고 아저씨 등을 쳐다보았다. 무얼 보는지 생각하는지 아저씨는 우희설 누워있는 모습을 들여다보는지 가만 서 있다가, 갑자기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잠들어있는 우희설을 잡아 흔들며 깨우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우희설.”

 가서 아저씨를 말리려고 하는데, 노해림이 날 붙잡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에요. 지금.”

 “그냥 놔둬 봐요.”

 “뭐라고요? 미쳤어요? 이거 놔요.”

 붙잡고 있는 팔을 놓으라고 잡힌 팔을 잡아 빼려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 안에서 아저씨는 여전히 우희설을 흔들고 부르면서 깨우고 있었는데,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지 점점 그 목소리와 손길이 커지면서 거칠어지고 있었다. 조마조마했다. 노해림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 나보고는 깨우지 말라고 했으면서.

 “이것 좀 놔요!”

 아무리 해도 내 힘만 빠질 뿐 그는 잡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깨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윽.”

 내게 물린 팔에 순간 힘이 빠졌을 때 잽싸게 빠져나왔다. 그러곤 아저씨를 말리려고 곧장 방으로 쫓아 들어갔다.

 “우희설, 일어나!”

 이제 아저씨는 양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워서 흔들고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 뒤로 다가가서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우희설이 먼저 눈을 떴다. 내가 아저씨 바로 뒤에 서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난 그녀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녀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는 못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런 그녀를 그전보다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수운이 어디 있어.”

 “...”

 “지금 황수운 어디 있냐고.”

 “수운아저씨 2층 방에 있어요.”

 정신을 못 차리는 우희설 대신 내가 소리 지를 듯이 말했다. 어차피 그녀는 수운아저씨가 여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다그치듯 잡아 흔들며 물어보길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러곤 노려보는 것도 아니면서 지그시 끈질기게 따라붙는 눈길로 내 눈을 맞추어 쳐다보았다. 난 시선을 피하려 이리저리 돌리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뒤에 버티고 있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돌아보았는데, 다름 아닌 노해림이었다.

 “괜찮아요?”

 걱정스레 쳐다보며 말하는 그 목소리에 난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는데 거칠게 서랍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또 뭘 하려는 것인지 돌아보니 아저씨가 침대 옆 서랍을 열어 뒤지고 있었다. 아까 내가 열쇠를 찾아 뒤적였던 곳이었다. 분명 침대 옆 서랍에 열쇠는 없었다. 그런데 첫 번째 칸을 그냥 닫아 넘기고 나서 아저씨는 서랍 두 번째 칸을 열어 뒤적거리더니 곧 열쇠를 꺼내들었다.

 “아저씨.”

 열쇠를 들고 방에서 나가는 아저씨를 불렀는데, 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계단 쪽으로 빠르게 거의 뛰다시피 움직여갔다. 2층 방으로 올라가려는 게 분명했다. 난 곧장 그 뒤를 쫓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노해림이 또 팔을 붙잡았고, 우희설은 뒤에서 날 불러 세웠다.

 “재은 씨, 잠깐만요.”

 

 그녀는 나와 노해림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했다. 메스꺼운 속으로 내뱉을 때처럼 뱃속으로 말려들어가는 목소리였다.

 “너무 어지럽고, 머리도, 아파요. 그래서 그러는데.”

 “무슨 일인데요?”

 그녀에게 대답하며 내가 안쪽으로 돌아설 때까지도 노해림은 잡은 팔을 놓지 않고 있었다. 잡힌 손목을 풀려고 돌리면서 내려다봤다. 그런데 좀 전에 깨물었던 팔에 멍이 번져 있었다.

 “알았어요. 여기 있을 테니까 이거 놔요.”

 대답 없이 미적거리면서 손을 풀어 내려놓은 모양이 느리게 보였다. 그렇게 천천히 제 다리 옆으로 내려가는 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깐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저씨가 어쩌나 좀 보려고 그런 건데, 희설 씨 위험해질 지도 모르는 거 생각 못한 게 잘못이지.”

 “아니,”

 왜 그런 거냐고 물어보려는데, 우희설 쪽에서 낮은 신음에 섞여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재은 씨, 나,”

 “많이 안 좋아요?”

 그녀는 찌푸리며 고개를 내젓곤 부정확하게 흐린 목소리로 토마토라고 말했다.

 “토마토?”

 말없이, 우희설은 양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 고개 숙인 채 몇 차례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곤 약간 편해진 듯 가볍게 한 번 더 내쉬며 내뱉었다.

 “그게, 나한테 갖다 주고, 아저씨한테 뭘 좀 먹여야 되는 건데,”

 “먹인다고요?”

 한 번 더, 크게 내쉬고 한 번 더 길고 깊게 숨 쉬고, 한결 편안해지는 안색.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갖다 주는 거예요. 굳이 먹이려고 할 필요 없이 받으면 아저씨가 알아서 잘 드실 거예요.”

 “그게 뭔데요? 혹시 토마토에요?”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짚다가 주변을 더듬다가 들춰보면서 말했다.

 “아, 그게 뭐냐면, 근데, 혹시 여기서 유리병 못 봤어요? 항상 여기 베개 밑에다 넣어두는데 아무리 봐도 없네요.”

 토마토 맛 담겨있는 유리병 얘기인 게 분명했다. 정말 수운아저씬 유리병 제자리에 두고 오겠다고 갖고 나가시더니, 이 집에 와서는 들고서 곧장 2층 방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체 문은 왜 잠그신 건지 전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바로 옆에 듣고만 서있던 노해림이 입을 열었다.

 “그 유리병 아마 수운아저씨한테 있을 거예요. 근데 수혁아저씨한테 먹인다는 게 혹시 유리병에 들어있는 내용물이에요?”

 “네. 맞아요. 그거에요. 아마, 방금 전 수혁아저씨가 나한테 그런 것도 유리병 때문일 거예요.”

 그녀는 수혁아저씨가 그 유리병 때문에 그렇게 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아저씨는 유리병 얘긴 꺼내지도 않았고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계속 수운아저씨만 찾았었다.

 “아닌 것 같은데요. 아까 보니까 계단 뒤쪽에 유리병이 여러 개 있던데, 그 내용물 때문이었으면 그렇게 뛰어서 2층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잖아요.”

 내 말을 듣더니 우희설은 뭔가 생각해보는 듯했다. 옆에서 노해림은 전에 몇 차례 볼 수 있었던 예의 그 뭔가 뚫어보려는 것 같은 눈길로 우희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내가 자길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흘긋거리는 것처럼 내 쪽을 보고나서 말했다.

 “그 토마토 맛 내용물, 정체가 뭐에요?”

 유리병 속 토마토 맛 내용물에 대해서라면 두말할 것 없이 나도 진짜 궁금해 하고 있었다. 어쩌면 최다인과도 관계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두레까지 포함하여 그 셋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걸 듣는 순간 말 그대로 귀가 쫑긋해지면서 눈까지 크게 뜨였다. 그런데 우희설은 난처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곤 손을 내저었다.

 “나도 잘은 몰라요. 그냥 집에 있던 거라서. 근데 휴지기 없이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려고할 때 그게 꽤 도움 되더라고요.”

 휴지기 없이, 신경접속회로.

 찌푸린 표정 그대로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근데, 그걸 먹어본 거예요?”

 “아까 재은 씨가….”

 “아까 한 입 떠먹어봤어요. 근데 그거 토마토로 만든 거 맞죠?”

 내 말에 그녀는 또 다시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창백해져서는 난처한 듯 미소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러더니 머리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숙였는데, 이내 몸까지 앞으로 수그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희설 씨, 머리 많이 아파요?”

 듣지 못한 것인지 대답하기 힘든 것인지 우희설은 말없이 일어서면서 일그러뜨린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따라서 나까지 표정이 찌푸려졌다. 걱정되는 마음에 안절부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불안하게 노해림을 쳐다보았는데, 그 역시 앙다문 입술을 깨문 채 찌푸리고 있었다.

 “그, 계단 뒤에, 유리병 하나 수혁 씨 주고, 나한테도, 부탁드릴게요.”

 점점 더 고통이 심해지는지 그녀는 꺼져드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하얗게 불거질 정도로 이불을 틀어쥐는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더 이상 그녀에게 뭘 어떻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쥐었던 주먹이 뜨거워져 있었다. 난 손에 힘을 풀고 꽉 틀어쥐고 있는 그녀 손 위로 가만히 내 손을 얹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노해림과 계단 뒤쪽으로 가서 각자 유리병을 하나씩 들었다. 우희설은 아저씨에게 먼저 갖다 주라고 했지만, 난 그녀 방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노해림이 앞질러 가면서 말했다.

 “재은 씨보다 내가 더 빨라. 올라가 있어요.”

 여기서 몇 걸음 되지도 않는 방까지 더 빠르고 느린 게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먼저 움직인 건 사실이었다. 순간 헛웃음으로 피식거리고는 들고 있는 유리병을 내려다보며 2층으로 올라가려고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유리병 쌓아놓은 자리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 하나씩 챙겨들 때만 해도 몰랐는데, 병 개수가 처음 봤을 때보다 줄어 있었다. 몇 개인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빈자리 없이 똑같은 높이로 쌓은 병들이 여러 줄 늘어서있었는데, 맨 바깥쪽 줄에 두 병 있어야할 자리가 비어있었다.

 2층에 올라가보니 방문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잠시 1층 방에서 나눈 얘기를 떠올렸다. 우희설은 휴지기 없이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할 때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난 수혁아저씨한테 왜 이걸 드리라고 한 건지 왜 수혁아저씨가 이걸 먹어야한다는 건지 아까 방에서 물어봤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그럴 때 먹는 걸 왜.’하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렇지만 아까 말하면서 그녀는 아저씨도 토마토 맛 내용물에 대해 잘 안다고 했었다. 그러니 들어가서 지금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될 거였다. 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풍경은 신기할 정도로 2층 내 방과 닮아있었다. 신경접속회로 설치한 자리부터 모양만 다를 뿐인 거울과 서랍장까지 위치가 똑같았다. 수혁아저씨는 신경접속회로 의자 옆으로 등을 대고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었다.

 “아저씨.”

 의자에 수운아저씨가 누워있었다. 그런데 난 그 앞에서, 내 눈앞에 놓인 광경이 어떤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로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서이지 않을까―

 바닥에 앉아 신경접속회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는 수혁아저씨는 다리를 구부린 채 이따금 왼쪽 관자놀이 위쪽을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가볍게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 팔꿈치를 구부린 무릎 위로 걸쳐 힘을 빼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끝으로 이어지는 손에 곧 떨어뜨릴 것처럼 병뚜껑이 들려있었다. 안을 싹 비운 유리병 두 개가 아저씨 오른쪽 옆으로 놓여있었는데, 하나는 닫혀있었다. 그걸 보자 들고 있는 유리병을 줘야하는지 망설여졌다. 난 유리병 들고 있는 손을 뒤로 돌린 채 잠시 고민하다가 의자 위로 내려놓고, 아저씨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약간 아래로 향해 있던 고개를 들어 올리곤 말했다.

 “재은아, 수운이.”

 “네?”

 “좀 봐줘. 수운이. 나 좀 힘들어서 그래.”

 “왜 그래요? 혹시 이거 때문이에요?”

 “아니야. 그냥 좀, 잠깐 이러는 거야. 수운이나 봐봐.”

 좋지 않았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힘겹게 느린 움직임으로 손사래 치며 앉아있는 아저씨에게서 고개 돌리지 않은 채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완전히 섰을 때 수운아저씨가 누워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때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노해림이었다. 그는 쓱 둘러보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말했다.

 “아저씨는?”

 “두 분 다 별로, 안 좋아요. 수혁아저씨는 힘이 하나도 없고, 수운아저씨도 어디 좀 안 좋은 것 같고. 희설 씨는요?”

 “유리병 열어서 먹고 있어요. 근데, 수운아저씨 지금 신경접속회로 사용하고 있는 거야?”신경접속회로 의자에 누워있는 아저씨 모습을 보며 그는 뭔가 맘에 안 든다는 듯 말하곤 내 옆으로 섰다.

 

 아마 방금 전까지는 신경접속회로에 연결하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 꼭 깊이 잠든 것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아마도 편안한 표정으로 아저씨로선 꿈꾸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 목 아래쪽에 꽂혀있었을 바늘은 섬유다발뭉치와 이어진 채로 팔에 걸쳐있었다. 바늘을 밀어 넣었던 자리가 찢어지고 피가 나면서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의자 위로 한 방울 떨어진 흔적도 있었다. 그런데 수운아저씨는 여전히 눈 감은 채 잠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아저씨를 붙잡고 가볍게 흔들어보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아저씨, 아저씨.”

 “이거 강제종료잖아. 수혁아저씨 짓이에요?”

 의자에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표정은 꼭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고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딱 그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건지 혹시 정말 잠든 건 아닌지 좀 더 세게 흔들며 깨워보려고 했다. 하지만 노해림이 말렸다.

 “잠깐. 지금 이 아저씨, 강제종료 당한 상태잖아. 억지로 깨우면 안 돼. 그냥 놔두는 게 그나마 안전해. 억지로 깨우려다가 호흡곤란이라도 일으키는 날엔 정말 끝장이야.”

 더럭 겁이 났다. 난 수운아저씨에게서 한 발짝 뒤로 쓰윽 물러나면서 노해림을 쳐다보았다.

 “그럼 어떡해요? 진짜 이대로 못 깨어나면요?”

 그는 미간을 구긴 채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는 수혁아저씨 앞에 다시 마주보고 서며 말했다.

 “왜 그랬어요. 왜.”

 아저씨는 고개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재차 불러도 마찬가지여서 한 번 더 크게 부르니,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던 노해림도 수혁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앉아서 말해보려는데 고개를 푹 꺾고 있어서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수혁아저씨.”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아저씨 어깨를 살살 흔들면서 다시 불렀다. 그러자 아저씨가 한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곧 그 방향으로 쓰러졌다. 약간 거칠지만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난 움직이던 동작이 그대로 멈추면서 코웃음이 났다. 어이없어 쳐다보고 있는데, 노해림 목소리가 들렸다.

 “수혁아저씨 그러는 거, 아무래도 저거 때문인 것 같은데.”

 소리 나는 쪽을 올려다보니 그는 날 쳐다보곤 내 오른쪽에 와 앉았다. 그리고 옆으로 누워 웅크리고 있는 아저씨 발치에 놓인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대체 그게 뭔데요. 뭔지 알아요?”

 설레설레 내저으면서 그는 나도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 유리병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뭔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지가 않아….”

 답답했다. 노해림은 답답해하고 있는 걸 얼굴 가득 있는 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답답하기론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 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수운아저씨 깨우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저러다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요.”

 그는 날 쳐다보더니 유리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재은 씨, 지금 같이 우리 집에 가요.”

 “노해림 씨 집에요?”

 “응. 저 아저씨 어떻게 해야 될지 좀 찾아봐야 되니까. 유리병에 든 게 뭔지도 알아봐야하고.”

 “그럼 빨리 가요.”

 방을 나서기 전 아저씨들을 한 번 돌아보았다. 계단을 내려와 1층에서 깜깜해진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유리문을 통해 나가면서 저 안 계단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설마 그 사이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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