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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나멜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20

요양 간 오지마을에서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

 
에나멜 07
작성일 : 19-10-20 08:49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1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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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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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랍 앞에 서서 에나멜껍데기를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반질반질한 바깥표면에 비해 안쪽은 그다지 매끄럽지 않았다. 분명 토마토 표면 그대로 굳었을 것 같은데, 에나멜껍데기 안쪽에 토마토 색으로 물든 군데군데 마치 주름을 밀어놓은 것 같은 굴곡이 나있었다. 난 다시 그 자리에 껍데기를 내려놓고 서랍에 기대섰다.

 “아저씨, 지금 몇 시에요?”

 “1시35분이야.”

 “네? 근데 왜 이러고 있어요? 집배헬기로봇은요? 어떻게 된 거에요? 왜 안 갔어요?”

 “재은아, 우리 둘 다 아까 집배헬기로봇 올 시간에 맞춰서 나갔었어. 근데,”

 

 정오에 수운아저씨와 노해림은 집배헬기로봇을 기다리기 위해 챙겨야 할 밧줄을 챙겨들고 나갔었다고 했다. 수운아저씨와 노해림 두 사람이 들려준 바, 노해림이 아저씨에게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니 아저씨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단다. 그러곤 어쩌면 좀 일찍 올지도 몰라서 30분전에 나갔는데, 집배헬기로봇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몇 나와 있었단다.

 

 그 사람들은 외부에서 들어올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는 거였어. 왜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느냐고 물었는데, 말하길 집배헬기로봇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 대답을 듣고는 좀 뜨끔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도로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우리 역시 그렇다고 말하곤 그 사람들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었지. 근데 문득 궁금해지는 거야. 여기가 워낙 어디 연락하기 힘든 곳이니까, 대체 어디서 우편물이 온다는 건지 말이야. 그래서 가까이 서있는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차강에 사는 누나한테서 우편물이 올 거라고 하더라. 그거 사실 별 말도 아닌데, 그냥 차강이라는 단어 때문에 깜짝 놀랐어. 다른 사람들한테까진 안 물어봤어. 15분 20분 되니까 긴장되고 물어볼 정신도 없었거든. 근데,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30분이 되었을 때, 진작 하늘 저쪽에서 날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여야 할 집배헬기로봇이 안 보이는 거야. 20분이면 저 멀리서 날아오는 중인 집배헬기로봇이 손톱만한 크기로 보여야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약간 초조하면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하고 있는데, 36분 37분쯤 됐을 땐가 아무튼 35분 넘어가고 얼마 안 돼서, 멀리 서쪽하늘에 집배헬기로봇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어. 집배헬기로봇이 내려왔을 때, 다들 빨리 우편물을 내놓길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어. 그런데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어. 집배헬기로봇은 배달할 우편물을 가져다달라고만 했어.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각자 집으로 들어갔을 때, 집배헬기로봇 몸통에 밧줄을 묶었어. 혹시 누군가 배달할 우편물이 있어서 갖고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무도 뭘 갖고 나오지는 않더라. 사실 저번에 왔을 때 사람들이 뭘 많이 보내서, 이번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긴 했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집배헬기로봇에 매달려 가는 방법은 성공확률이 낮아. 밧줄을 두르면서 생각해봐도 이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어. 그리고 내가 가버리면 여기서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도 어려울 것 같았지. 원래 내가 가려고 했지만, 얘기한 끝에 아저씨가 가기로 하고 단단히 묶었어. 차강에 도착하면 팩스를 보내기로 했어. 며칠 걸리겠지만 그것 말곤 어떻게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1시가 다 되어가도록, 집배헬기로봇이 꿈쩍도 안 하는 거야. 아직도 내려앉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 집배헬기로봇은 원래 10분 기다리고 돌아가게 되어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어. 그런데 혹시 몰라서 좀 더 기다리다가 당신 상태가 어떤지 어쩌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려고 집으로 들어왔어. 그리고 여기 당신이 푹 자고 있는 것처럼 누워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아저씨는 집배헬기로봇이 언제 가버릴지 모른다고 다시 나갔어. 그러다 들어온 거지.

 

 “근데, 걔들은 하는 것도 없이 앉아있는 게 일이야. 별 다를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어. 그냥 시간 맞춰 앉아 있다가, 시간 맞춰 일어나는 게 걔들 일이거든.”

 “노해림 씨?”

 “이상하지 않아? 걔네들 말이야.”

 “해림아, 대체 무슨 뚱딴지같이, 갑자기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지금.”

 집배헬기로봇이 뜨지 않고 앉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얘길 끝내고 나서, 우리 세 사람 모두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아저씨는 방 안에서 서성거렸고 노해림은 수치조정기기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신경접속회로 의자에 그대로 기대어 누워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노해림이 뜬금없이 앞뒤도 없이 말하는 거였다. 누구 얘길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나한테 털어놓듯이 말이다. 아저씨 눈에도 그런 노해림 모습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 저렇게 찡그리며 대체 누구 얘길 하는 거냐고 따지듯 물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집배헬기로봇 때문에 꽉 막힌 듯 무거운 분위기에서 또 다시 횡설수설하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으니, 거기다 대고 내가 그러려던 걸 아저씨가 대신해준 기분이었다.

 

 “재은아, 아무래도 해림이가 정말 많이 피곤한가보다. 혹시 깨어있는 채로 잠꼬대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아저씨 말을 들으니 정말 노해림이 잠든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어깨를 잡아 살살 흔들어 보았다.

 “노해림 씨,”

 “전혀 피곤하지도 않고 조금도 졸리지 않아.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한층 날카로워진 눈초리로 말하는 노해림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그 얼굴은 전에 에나멜껍데기를 잘라봐야겠다고 말할 때와 비슷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노해림을 쳐다보는 수운아저씨 역시 긴장한 듯했다.

 “궁금한 게 있다고? 뭔데?”

 “여기 오지마을로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거죠?”

 “어떻게 들어오게 된 거냐고?”

 “네. 재은 씨는 건강상 문제로 의료기기와 3차원팩스까지 준비해서 오게 된 겁니다. 전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가만 보면, 여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같지는 않거든요. 다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여기로 오게 된 것 같은데, 서로서로 말하길 꺼려하는 분위기라 어떻게 얘기해볼 수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혹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 궁금한데.”

 갑자기 달라진 말투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해림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되었다. 아저씨는 바로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가만 서있었는데, 그를 마주보던 시선을 돌려 에나멜껍데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시선을 따라서 내 눈길도 에나멜껍데기에 꽂혔다.

 볼 때마다, 정말 뭔가 중요한 물건이라는 걸 점점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차강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기사에 토마토광고가 괜히 딸려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두레에서 에나멜토마토를 괜히 보낸 것도 아니며,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는 내내 토마토가 보인 것도 분명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짐작일 뿐이니 답답했다. 에나멜껍데기는 여전히 노해림이 자른 모양 그대로 서랍 위에 놓여 있었다.

 

 안쪽에 노랑으로 번져나가는 모양으로 물 빠진 다홍으로 물들어 있는 모양 그대로였다. 그리고 또 다시 한가득 차오르는 최다인 생각에 슬픈 기분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에나멜껍데기 쪽을 쳐다보며 아무 말 않고 서있었는데, 노해림이 기다리고 있기가 답답했는지 다시 말했다.

 “아저씨, 곤란하세요?”

 “아니, 곤란할 것까지야 없지. 어차피 다들 뭔가, 그래. 해림이 네 표현대로 뭔가 ‘말하길 꺼려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잖아. 결국 서로 비슷비슷하다는 건데 굳이 뭐 하러 일부러 숨기겠어.”

 수운아저씨 말에 나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저씨가 무슨 이유로 오지마을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런 때에 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예전부터 나도 몇 번 물어보려고 했지만 말을 꺼내려하면 지나치게 어두워지는 수혁아저씨 얼굴 때문에 얘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에 아저씨가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듣게 되다니.

 “나랑 수혁인, 지금 쫒기고 있어.”

 쫒기고 있다니?

 “쫒기고 있다니요? 누구한테요?”

 “아저씨.”

 내 물음에 별 반응도 없던 아저씨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노해림이 지그시 집중하는 눈으로 쳐다보며 부르자 결심한 듯 말했다.

 “말하자면, 우린 수배자야. 이리저리 숨어서 도망 다니다보니 우연찮게 여기로 오게 된 거지.”

 혀, 현상수배범? 혹시 최다인 알고 있었을까.

 말을 마치고는 날 쳐다보는 아저씨 얼굴에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난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에 깜짝 놀라고 있었는데, 노해림은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아저씨에게 또 묻고 있었다.

 “왜 쫒기는 건지 말해주실 수 있어요?”

 “우린 정말 심각한 오해를 받고 있는데, 그러니까, 누명을 쓴 셈이야.”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말하는 아저씨였다. 그때 더 캐물을 요량인지 노해림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누명을 썼다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 뭔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그 순간 노해림이 말했다.

 “설마 살인누명 뭐 이런 거예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수운아저씨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표정만으로 어떻게 안 거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노해림은 다인이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꽁꽁 숨어서 도망 다녀야할 정도면 살인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강력 범죄정도여야하지 않나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리둥절할 만큼 놀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도 잠시였다. 살인누명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아저씨 말을 들으니, 아저씨들처럼 어딘가 꽁꽁 숨어 다니며 몸 사리며 신경을 곤두세운 채 경계하고 있을 최다인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이젠 이전처럼 믿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이건 수혁아저씨가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면서 의자에 누워있는 모습을 봤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살인범으로 몰려서 도망 다니는 중이었다니, 저 말을 믿어야 하는 건가?

 화가 났고 울컥 치밀어 올라서 아저씨를 째려보았다. 어딘지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아저씨얼굴은 약간 창백했다. 핏기가신 얼굴로 노해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하는 데에 대고 힘겨운 듯 털어놓고 있었다.

 “그럼 아저씨,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어쩌면 아저씨가 들어온 방법으로 나갈 수도 있잖아요.”

 “그건 힘들어. 여기 들어올 때 바다로 배 타고 들어왔는데, 거의 다 왔을 때 배가 부서져서 최소 100m이상은 헤엄쳐 들어온 거거든.”

 “용케 여태껏 안 들키고 여기에 숨어계신 거네. 대단하시다.”

 이제 딱딱해진 얼굴로 노해림을 쳐다보는 아저씨였다. 아무래도 나나 노해림이 신고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노해림은 말투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응. 그렇지. 근데 해림인 기억 잃었다고 했지?”

 “네. 전 기억 잃은 지 꽤 돼서, 이젠 그다지 찾고 싶지도 않아요.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이미 지워져버린 거. 근데, 아저씨 그럼 현상금도 있어요?” 그때 난 노해림 팔을 잡아채며 목소리에 잔뜩 힘주어 불렀다.

 “이봐요, 노해림 씨.”

 “왜. 물어보지도 못해?”

 말하면서도 노해림은 서랍에 기대서있는 아저씨 쪽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엔 없었어.”

 “아….”

 이렇게 아저씨한테 현상금이 걸려있는지 아닌지 그런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급한 건 따로 있었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려야겠다 싶었다. 난 뭔가 또 말하려고 하는 노해림 팔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그가 멈칫하는 사이 먼저 집배헬기로봇 얘기를 꺼냈다.

 “집배헬기로봇 있는 데로 한 번 가 봐요. 어쩌면 그사이 가버렸을지도 모르잖아요.”

 아저씨는 당황한 듯 날 보며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아니. 아마 그대로 있을 거야. 분명 처음엔 뜰 시간됐을 때, 프로펠러가 돌아가려고 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고장 나는 소리가 나면서 느려지더니 나중엔 아예 멈춰버렸는데 뭐.”

 “그래도요.”

 

 아저씨 말대로 집배헬기로봇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밧줄도 아저씨와 노해림이 묶어놓은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집을 돌아나가서 가려있던 집배헬기로봇이 보이자 노해림이 말했다.

 “저렇게 꿈쩍도 안 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우체국하고 통신이 끊긴 것 같아. 원래 우체국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는 거잖아. 집배헬기로봇은 연료도 원격충전식으로 공급받는데, 통신이 끊긴 게 아니라면 연료가 떨어질 일도 없을 테니까.”

 “수혁이가 지금 깨어있으면 좋을 텐데 억지로 깨울 수도 없고, 아쉽네. 수혁이, 기계라면 일가견이 있거든.”

 여전히 잠들어있을 수혁아저씨를 떠올리자 괜히 심술이 나려고 했다. 신경접속회로 설치하는 방법까지 알 정도였으면서 전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니.

 난 집배헬기로봇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몇 걸음 떨어진 뒤쪽에서 뒤따라오며 좀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속이 답답해서 이렇게 살펴보며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있지만, 노해림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정말 우체국과 통신이 끊어진 거라면 이렇게 와서 아무리 들여다보고 살펴본다한들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통신이나 전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기계자체에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섣불리 손댔다간 오히려 더 망가뜨릴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제 어떡해야 되는 거야.

 

 집배헬기로봇을 계속 살펴본들 헬기로봇을 이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더 나아질 것도 없었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도 않고 정말 이대로 두레에서 답장보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하는 건지, 그야말로 속만 타는 상황이었다. 난 계속 집배헬기로봇 주변을 돌면서 만지기만 할 뿐 뭘 더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면서 떨어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너 번쯤 돌았을까. 문득 노해림과 수운아저씨가 서있는 쪽에서 누군가 낯선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돌아서 살펴보니 노해림이 아는 사람인지 대답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난 집배헬기로봇잡고돌기를 그만두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근데 이거 왜 안 뜨고 여기 이러고 있는 거죠?”

 “아무래도 우체국하고 통신이 끊긴 것 같아요. 그나저나 희설 씨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요새 통 안 보이시던데.”

 “네. 요즘 한 달 정도 안에만 있었어요. 근데 깨어나서 커튼 걷고 내다보니까, 저게 갈 때를 훌쩍 넘긴 것 같은데도 안 가고 여기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가만 보니 노해림 뒷집에 사는 우희설 같았다. 그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수운아저씨는 노해림 바로 뒤쪽에서 팔짱낀 채 어딘지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근데 그렇게 듣고 있는 아저씨모습이 마치 두 사람을 감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하세요? 팔짱까지 끼고 서서.”

 수운아저씨는 날 보더니 팔짱끼고 있던 걸 풀고는 표정도 한결 편안하게 바뀌었다. 그러고는 서너 걸음 떨어져있는 내게 빨리 옆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내가 느릿느릿 가까이 가 서자, 아저씨가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집배헬기로봇 뜰 시간이 벌써 한 시간 반 가깝게 지났는데, 아직도 저렇게 있는 걸 보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야. 여기서 이렇게 집배헬기로봇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말고, 일단 들어가서 다른 수를 강구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래. 재은 씨, 들어가서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다인이 찾아야지.”

 

 한 시간 반이나 지나갔다는 말에 몇 시인지 물어보니 벌써 2시23분이었다. 왜 이렇게 점점 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 바로 찾을 수 없다면 두레에서 답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멀게 느껴졌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한다는 마음이 초조하기만 했다.

 집 쪽으로 걸어가면서 옆에 걸어가고 있는 세 사람은 저들끼리 최다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우희설에게 설명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들리는 목소리 사이사이에 ‘필름신문’이라든가 ‘살인사건’, ‘토마토’ 같은 단어들이 간간이 들어있었다. 몇몇 단어들만 내 귀로 흘러들었을 뿐 나는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서는 내 바로 뒤에서 노해림이 우희설에게 물어보는 목소리가 또박또박하고 선명하게 들렸다.

 “근데 희설 씨 대단하다. 어떻게 한 달이 넘게 밖으로 한 번도 안 나오고 집 안에만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러게요. 정말 대단하죠? 근데 예전에 한 번은 넉 달 동안 안 나온 적 있는데. 해림 씨 기억을 잃었으니까 모르겠지만요.”

 노해림은 대답을 들으니 퍽 당황스럽다는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우희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저렇게 말하다니.

 “해림아, 희설 씨 전에도 정말 한 번 그러는 것 같던데. 나 여기 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땐데, 그때 넉 달쯤 안 나오고 집에만 있다가 바로 이어서 다음 넉 달 동안은 밖에서 돌아다니고. 그러지 않았어?”

 “네. 맞아요. 어떻게, 잘 아시네요.”

 “내가 여기 산 지 거의 일 년 다 되어 가는데, 뭐.”

 그때 문 열려다 말고 뒤돌아서서 얘기하는 걸 가만 지켜보고 서있는 나에게 노해림이 말했다.

 “재은 씨, 들어가죠.”

 

 얘기하다보니 어떻게 얼버무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네 명이 1층 계단 옆 탁자에 둘러앉았을 때, 이번엔 노해림이 아닌 내가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근데 희설 씨,”

 “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한 달 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집에서만 있기도 힘들잖아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근데 한 달 내내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일하느라 정신없었으니까요.”

 “그럼 한 달 동안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계속 일만 한 거예요?”

 난 놀라서 눈까지 크게 뜨일 정도였다. 그런데 우희설은 멋쩍게 수줍은 듯 웃으면서 작게 네 하고 말할 따름이었다.

 “쉬지도 않고요?”

 “아뇨. 쉴 땐 그래도 쉬었죠. 어떻게 쉬지도 않고 계속 일만 하겠어요.”

 아무리 그렇대도 어떻게 한 달씩이나. 정말 일하느라 밖에 나오지 않은 건지 못한 건지, 어쨌든 직접 듣고도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나저나 슬슬 최다인 얘길 해야 하는데, 도통 그녀는 말하길 그만두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황수혁 씨는 어디 있어요? 아저씨 옆에 황수혁 씨가 안 보이니까 이상하네. 설마 또 신경접속회로에 연결하고 있는 거예요?”

 “우희설 씨.”

 “아니, 그러고 보면 애초에 내 말이 맞는 거였어.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요. 황수혁 씨 분명 그거 중독된 거라니까. 확실해. 아저씨, 사실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확인하려는 듯 뭔가 더 말할 것 같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말문이 막히기라도 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몇 걸음 옮겨 유리문 쪽으로 가다말고 바닥에 살며시 쪼그리고 앉더니 이내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같이 둘러앉아 듣고 있던 나, 노해림, 아저씨 세 사람은 당황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이게 무슨….”

 “아저씨, 지금 희설 씨가 수혁아저씨 얘기하는 거 맞아요?”

 나도 노해림도 아저씨를 쳐다보았는데, 마치 당황한 얼굴 그대로 잠시 멈춘 듯했다. 그러다 이내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나 노해림 두 사람 모두 아저씨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래도 희설 씨가 꿈을 심하게 꾼 것 같지? 아직 잠이 덜 깼나?”

 멀쩡히 본인 집에서 집배헬기로봇이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와 여러 마디 얘기도 나누다가 다시 우리 집까지 같이 걸어왔는데, 아직까지 잠이 덜 깼다니.

 “그게 말이 돼요?”

 

 질끈 눈을 감았다 뜨는 모습. 아저씨와 마주앉아있는 나, 아저씨 옆자리에 앉아있는 노해림. 그리고 아저씨와 노해림 뒤편에 양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은 채 주저앉아있는 우희설.

 난 아저씨가 손목에 두르고 있는 전자시계를 쳐다보았다. 작은 창에 숫자는 현재 2시49분이라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 움직이지도 않은 채 고개 숙이고 있던 아저씨가 스륵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유리문 앞 우희설이 앉아있는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게 됐네. 사실 희설 씨,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는데, 몇 년 전부터 신경접속회로 처방받아 사용하고 있는 환자야. 그런데 처방에 따르지 않고 그 이상으로 과다사용하는 바람에 안 됐어.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면서 휴지기를 두지 않고 사용한 거지. 사용하고 나서도, 깨자마자 다시 연결한다거나 한두 시간 정도 잠깐 정신 차릴 수 있을 정도만 쉬고 바로 또 바늘 꽂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한 번 씩 사용할 때마다 점점 연결하고 있는 시간도 길어진 거야. 아까부터 희설 씨 가만 보면 말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고 있잖아. 이번에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면서 본 것들을 현실처럼 지각하다가 깨어난 후에까지 거기서 못 벗어나는 거야. 그녀 스스로, 현재 본인이 신경접속회로에 연결 중으로 알고 있는 거지.”

 

 과다사용….

 난 아까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고 있던 걸 강제종료하게 만들고 억지로 깨어나게 한 노해림을 떠올렸다. 내 팔에서 바늘을 뜯어내고 쏟아내던 말들. 하지만 난 절대 과다사용이 아니었다. 그땐 최다인을 찾기 위해, 토마토에 담긴 의미가 뭔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럼 우희설 씨는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할 때와 아닐 때를 전혀 분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세요?”

 “진짜 아예 구별하지 못하게 된 건지는 어떻게 검사해볼 방법이 없어. 그런데 저러고 있는 모습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말도 안 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그렇다고 어떻게 4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깨어나는 일없이 사용할 수가 있어요?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는 중이라고 해도, 신진대사는 평소 때와 마찬가지잖아요. 오히려 때때로 평소보다 더 활발해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체 노해림은 어떻게 이렇게 신경접속회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혹시 노해림도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닐 거였다. 일단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려면 설치부터 해야 하는데, 집에 몇 번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 집 안에 신경접속회로는 흔적도 없었다.

 그때 우는 듯 싫은 소리로 누군가 칭얼거리는 게 들렸다.

 “싫어요. 그냥 있을 거야. 싫어어어.”

 우희설이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그녀 옆에 있었는데, 부축해서 같이 일어서려하니 그게 싫은 모양인지 떼쓰는 어린애처럼 우는 소리를 하면서 어리광부리듯 발버둥 치며 떨쳐내려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는 그녀를 거의 끌어오다시피 하여 내 앞자리에 앉혔다. 그러곤 뒤에서 앞으로 쏠리는 어깨를 붙잡은 채 말했다.

 “나도 그게 좀 이상하긴 해.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할 때 잠든 거나 마찬가지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신진대사는 평소 때보다 더 활발해진다고 들었거든.”

 “근데, 신경접속회로를 처방 받은 환자를 본 건 내가 유일하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의사 처방으로 사용했건 아니건 나와 상관없는 문제였다. 지금 해결해야할 문제는 살인누명을 쓰고 있는 최다인이었고, 최다인과 두레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에 노해림도 드러내놓고 반가워하면서 부추기듯 말했다. 난 좀 얼떨떨했다.

 “맞아요. 분명 아저씨는 의사 처방으로 신경접속회로 사용하는 사람을 본 건 재은 씨가 처음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방금 전엔 또 희설 씨가 신경접속회로를 처방 받은 환자라고 했죠. 아깐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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