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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나멜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20

요양 간 오지마을에서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

 
에나멜 05
작성일 : 19-10-20 08:46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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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광고가 차강에서 벌어졌다는 살인사건 기사가 지워진 직후 떴다면, 그 기사에 붙어있는 광고였다는 건가?”

 토마토 썩은 물은 대나무깔개로 그 아래 바닥으로 완전히 스며든 것 같았다. 저거 이제 버려야하는 건가. 좋아하는 건데. 이 집에서, 아니 이 마을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해도—대나무깔개를 정말 버려야하나 심각한 가운데 아저씨는 어디를 보는 건지—아저씨도 깔개 생각을 하는 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아저씨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동쪽 문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코에 이미 익숙해진 것인지 썩은 냄새가 좀 전처럼 안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냄새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인이 정말 아저씨네 집 안에 숨어있는 거 아닌지 다시 찾아보는 게 좋을 같아요.”

 등 뒤에서 말하는 노해림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그런데 칼은 어디다 둔 건지 빈손이었다.

 “칼 들고 가지 않았어요?”

 “아, 이제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 그래서 그냥 1층 식탁 위에다 두고 왔는데, 혹시 또 쓸 일 있는 거예요?”

 “아뇨, 그냥 들고 나간 것 같았는데 안 들고 있어서.”

 그때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그래. 어쩌면 우리 집에 있는데 못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다인이가 우리 집 뒤쪽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했으니까.”

 “네. 그러니까요.”

 

 다시 아저씨 집으로 건너가면서도, 나는 주변에 혹시 최다인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지 온 사방을 유심히 둘러보면서 갔다. 걸어가는 내내 그렇게 나는 계속 빙빙 돌면서 움직여갔다. 하지만 최다인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딘가 나타나지 않을까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최다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저씨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일단 집 뒤쪽부터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집 뒤쪽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뭐 하나 쌓아두지도 않은 빈 공간이었다. 그 옆집으로 이어지는 빈 공간일 뿐이었다. 막 대청소를 끝마쳤을 때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오지마을은 울타리 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실 누구 집 뒤라고 말해도 정확한 범위가 정해져있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땅에 서있는 집을 제외한 모든 땅은 오지마을 공공용지나 마찬가지라고 말해도 무방하다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집 바로 뒤이다 보니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놓는 게 보통이었다. 마치 열린 창고처럼 나무박스에 담아서 벽을 따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양이 많아지면 처분하고, 다시 쌓아두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오지마을에 있는 집들은 거의 전부가 대청소한 직후가 아니고는 뒤쪽 벽을 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통칭 ‘다인이네’인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여서, 북쪽 벽은 차곡차곡 쌓아놓은 박스에 가려 있었다. 그래서 하얀 벽 일부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네 집 뒤쪽 벽이 방금 전 대청소한 것처럼 훤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습이었다. 옆에서 노해림이 꽤나 감탄한 듯 말했다.

 “아저씨, 대청소 하셨어요? 근데 언제 하신 거예요? 이거, 아무리 봐도 방금 전에 한 것 같은데.”

 한 발짝 뒤에 물러서 있던 아저씨가 알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무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느 샌가 나는 다시 신경접속회로 곁으로 다가가려는 중이었다. 좀 이상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아저씨 목소리에 난 퍼뜩 최다인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끌어오려던 신경접속회로 생각을 저 멀리 어딘가로 밀어 치워버렸다.

 “수운이가 했어. 여기 청소는 나랑 수운이가 돌아가면서 하거든. 그런데 이번엔 수운이 당번이라서. 해림 씨, 아까 집 뒤쪽으로 들어왔을 때 청소 되어있었을 텐데, 그땐 못 봤나봐?”

 노해림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쳐다보던 나는 신경접속회로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아래쪽 잔디로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집 뒤쪽부터 그 옆에 있는 집까지 초록으로 잔디가 깔려있었다. 일부러 깔아놓은 건 아니라는데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지 항상 초록이었고, 사람들이 집주변관리라면 다들 잘 하는 편이어서 일부러 깔아놓은 것처럼 깨끗했다. 그렇지만 다들 나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오지마을 통틀어 나무라고는 절벽 앞 언덕에 최다인이 심어놓은 세 그루와 노해림 집 근처에 한 그루까지 단 네그루뿐이었다. 다른 데는 전부 풀이었다. 난 잘 관리해놓은 초록에 살짝 안쪽으로 말려든 낙엽이 하나 내려앉는 모양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있다가 바람에 날려 그 낙엽이 내 쪽으로 굴러왔을 때였다. 문득 아저씨도 그 모양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아저씨를 쳐다보자 아저씨가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서 다인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찾아보자고.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다인이가 이리 들어온 게 분명하다면, 어쩌면 여기 창문으로 들어갔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치, 해림 씨? 재은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었다. 안에서 잠가놓지만 않았으면, 밖에서 열고 들어가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닐 터였다.

 “맞아요. 이 정도 높이면, 열고 들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근데, 내가 와서 살펴봤을 때 분명 잠겨있었어요.”

 “최다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본인이 들어온 입구를 잠갔을 지도 모르잖아요.”

 노해림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다지 동의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 집에서, 난 최다인 이름을 크게 부르며 찾아다녔다. 최다인, 내 목소리 들었으면 나와.

 “최다인, 여기 있으면 나와. 내 목소리 들리면 나오라고. 최다인. 대답해.”

 한참을 뒤졌지만, 아저씨 집을 찾아보자고 했던 말은 헛수고로 끝났다.

 

 

 막막한 상황에서 난 무작정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았다. 돌아다니며 찾을 만한 장소도 별로 없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마구 돌아다니기라도 해야 했다. 아저씨와 노해림도 같이 돌아다니며 최다인 찾는 걸 도왔다. 하지만 오지마을에서 몇 채 되지도 않는 집 사이사이에 어디 다 큰 성인이 숨어있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비어있는 집도 다니면서 전부 확인해봤지만 현관문에는 단단히 자물쇠를 채워놓은 그대로였고 1층에 난 창문들도 단단히 잠겨있었다. 사람들 사는 집집마다 물어보고 다녔지만, 봤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좁은 마을에서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난 깜깜한 밤이 된 후에야 그만두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열심히 찾아다녔는데도 노해림이 분명 봤다고 말한 최다인은 아무데서도 볼 수 없었다. 최다인이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가 필름신문에 실렸다. 썩은 토마토에 에나멜을 뒤집어씌워놓은 것이 3차원팩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난 그 토마토를 필름신문에서 보고 팩스로 받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기분이다.

 이제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최다인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채로 여느 때처럼 잠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난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머릿속에 에나멜토마토를 떠올리고 있었다.

 

 원래 신경접속회로는 사용할 당시 경험이 기억으로 남지 않게 되어있었다.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하는 건 마치 꿈을 꾸는 일과 비슷한 경험이어서, 물론 기억에 남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문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용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신경접속회로 사용 중에 경험한 것들을 점점 더 또렷이 기억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처음 한동안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을 때, 꾸긴 꿨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 꿈처럼 찜찜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최다인이 사라지기 직전 사용했던 경험은 전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장면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았던 토마토들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가방 안에 가득 차있던 토마토, 방 안 가득 굴러다니던 토마토와 온 사방에 진동하던 토마토냄새가 아직도 진짜처럼 생생했다. 난 그 토마토들 속에 파묻혀 범벅이 된 기분으로 모르는 사이 잠들었다.

 

 잠에서 깨면서 최다인을 떠올렸고, 눈뜨자마자 신경접속회로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면 바로 앞쪽으로 신경접속회로가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다인은 곁에 없었다. 그나마 혼자 수치조정기기를 맞춰보려 시도할 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사실 어젠 처방내역보다 덜 사용했지만, 신경접속회로에 대한 생각도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니 어느 정도 가라앉았었다. 게다가 잠들기 직전엔 신경접속회로연결바늘까지 아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꽤 뿌듯했다.

 이제 내일까지였다. 이달 말일까지인데, 오늘이 벌써 8월30일이었다. 이제 내일이 지나고 나면 더는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거였다. 난 처방전을 어디다 두었는지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처방받은 사용기한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이 밀려들었다. 어떡해야하나. 지금 곁엔 최다인도 없다. 수치조정기기는 최다인 말고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서서 어제 반으로 자른 에나멜껍데기를 찾았다. 에나멜껍데기는 버리지 않고 거울 앞에 올려두었었다. 난 놓아둔 그대로 얌전히 올려져있는 에나멜껍데기를 집어 들어 만져보았다. 그런데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제 구겼다 폈다 다시 구겨서 내던진 필름신문이 그 아래 내 발치에 뒹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방 안을 둘러보니 어제 치우지 않고 그냥 잠들었던 흔적 그대로인 모습이었다. 동쪽 문은 완전히 열려있었고 자르고 바닥에 떨어지고 날린 머리칼들도 그대로였다. 그 옆에 벌어진 가위와 가위에 붙어있는 머리칼, 저 앞 수치조정기기 위에 꺼내놓은 섬유다발뭉치와 바늘. 난 신경접속회로 의자를 쳐다보다가 발치에 굴러다니는 필름신문을 집어 들어 다시 펴보았다. 혹시나 뭐 남아있지 않은지 다시 살펴보려던 거였지만, 3차원팩스로 보내면서 원본필름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구석구석 쪼그라들고 녹아들어간 모양으로 불 위에 올려놓았던 것처럼 타들어가서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에 그슬린 흔적이야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데서 뭘 찾을 수 있다고.

 팩스 가는 데만 최소 나흘은 걸릴 텐데, 답장 올 때까지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주치의에게 보내는 거야 보내고 받는 데 서로서로 바로바로 이루어지니 넉넉하게 잡아도 열흘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두레로 보낸 건 누가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바로 답장을 보내줄지 답장을 보내려고 하긴 할지까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필름을 다시 3차원팩스로 보낼 때 노해림이 의심스럽다는 듯 말하던 건 이런 뜻이었나.

 

 난 필름을 벌어진 가위 옆에 놔두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청소 같은 경우도 거의 최다인이 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온통 어질러진 방을 보면 뭐라고 할까. 잘 모르겠다. 이 방 꼴을 보면 과연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 눈은 방 안을 배회하다가 신경접속회로 의자, 수치조정기기, 그 위 바늘과 섬유다발뭉치사이에서 맴돌았다. 그것들을 눈으로 죽 훑어보았다. 그러곤 거울을 등지고 서서 다시 한 번 시계방향으로 빙 둘러 훑어보았다. 그리고 신경접속회로 의자에 가서 기대앉았다.

 

 섬유다발뭉치를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300밀리미터 내외로 잘라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잘라내는 길이가 섬유다발뭉치를 쓰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었다. 300밀리미터라고 정해놓은 건 섬유다발뭉치 구조에 따르는 이유일 뿐이었다. 그 이상 넘어가도 상관이 없지만, 한 단위로 끊어지는 292밀리미터보다 짧은 길이로 자르게 되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어제 이미 바늘과 연결해둔 섬유다발뭉치를 40센티미터 길이로 잘라냈다. 아껴 사용해야한다면 당연히 더 짧게 잘라야 하겠지만, 그건 일회용으로 사용할 때 해당되는 말이었다. 난 얼마 전부터 일회용으로 나온 섬유다발뭉치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하고 있으니, 다시 사용할 때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내고 써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 좀 길게 자를 필요가 있었다. 이제 바늘을 꽂아 넣을 차례였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신체지수측정을 해야 했다.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사실에 난 수치조정기기 왼편에 달아놓은 침을 꺼내들어 양손 약지를 번갈아 한 번씩 찔렀다. 그러자 곧바로 침이 달려있는 기기에 내장된 인쇄기에서 결과가 빠져나왔다. 난 매번 이 신체지수측정기와 수치조정기기를 하나로 묶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그 때마다 최다인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그 둘이 하나로 합쳐져 나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었다.

 난 측정결과가 인쇄되어 나온 출력물을 들여다보곤 수치조정기기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살펴보면 볼수록 점점 더 머리만 복잡해졌다. 조정은 포기하고, 무작정 순서대로 갖다 맞추었다. 그리고 바늘을 집어 왼쪽 위팔 바깥쪽 아래부터 3분의 1정도 높이에 바늘 끝을 갖다 댔다.

 이제 방향을 잡아서 바로 찔러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바늘을 밀어 넣는 건 좀 느리다 싶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정확히 한 번에 끝내는 게 이래저래 좋은 거다. 예전에 신경접속회로 사용 초기에는, 빨리 해치우려다가 제대로 찌르질 못해서 두세 번 뺐다 찌르기를 반복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바늘을 쓸 때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방향을 잡은 후 닿아야할 곳까지 천천히 찔러 넣는 데에 완전히 전문가가 다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히 긴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크게 실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게 식은 이마와 세게 쥐고 있는 손에 식은땀이 솟았다.

 

 수치조정기기를 딱 맞게 조정하는 건,

 

 난 바늘을 내려놓고, 신경접속회로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동쪽 문으로 나가서 밑으로 내려가 한 번 둘러보았다. 여전히 최다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했지만, 그새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난 1층으로 들어가서 다시 크게 불러보았다.

 “최다인. 최다인!”

 

 그렇게 몇 차례 부르다보니 화가 치밀었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어서 숨은 건가? 그렇다고 왜 숨는단 말인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왜. 알리바이가 확실한데 왜 숨느냔 말이다. 설마 정말 차강에 있는 건가? 최다인 지금 차강에 있는 걸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차강에 가려면 오지마을 밖 도로까지 나가서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마을 밖 도로까지 나가는 데 걸린 시간보다 배 이상 걸리는 시간동안, 그 도로를 따라 한참이나 더 가야하는 거였다.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제 오후 마을에서 최다인을 봤다는 목격자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난 집을 나서서 그길로 곧장 노해림 집으로 갔다.

 아직 한창 자는 중인지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문을 세게 두드리며 불렀지만, 불 꺼진 집 안에선 어떤 인기척도 반응도 없었다.

 “노해림 씨.”

 난 있는 힘껏 현관문을 두드리다가, 바깥벽을 따라 돌면서 1층에 있는 창문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동쪽으로 나있는 대문에서 두 번 꺾어들어 서쪽 벽으로 돌아선 자리에서 노해림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해림은 잡동사니상자들 쌓아둔 쪽으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집배헬기로봇에 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둘 다 서로 이미 이 마을 밖으로 나가서 알아봐야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한 번은 차강에 가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다인이 대체 거기까지 어떻게 갔을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살인사건이 일어난 당시 정말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난 최다인이 살인범일 가능성이야 아예 배제해놓고 있었다. 그저 운 나쁜 목격자일 경우를 가정해서 얘기해보자면 그렇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하자, 노해림 역시 최다인이 용의자로 지목되다니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그럴 리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난 좀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지마을 밖으로 나가는 건 진짜 얘기하면 할수록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얘기하다보니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야기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도록 답답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계속 답이 나오지 않자 나도 노해림도 점점 말수가 줄어들면서 목소리도 잦아들어갔다. 그러던 중 문득 노해림이 집배헬기로봇이야길 꺼냈다. 노해림 말로는 집배헬기로봇에 원래 사람이 탈 수 없게 되어있지만, 잘만 하면 타고 나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집배헬기로봇은 안에 부품들로 꽉 차있는 기계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우편물 실어가는 공간이 있으니까.”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예전에 한 번 본 적 있는데, 그 때 보니까 정말 편지봉투 한 묶음밖에 안 들어가겠던데요.”

 반박하는 말에 노해림은 바로 뭔가 말하려다가 멈추더니,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근데 재은 씨, 여기서 어디로 소포 보내는 거 본 적 있어요?”

 “소포요?”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하긴 좀 그렇고, 오래 있었다고 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그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오지마을에 살면서, 소포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편지 부치는 것도 거의 보지 못했다. 마을 밖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락하고 지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어보면 다들 친척친지친구들과 잘 연락하고 지낸다고 말하긴 했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 3차원팩스를 이용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이용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3차원팩스를 갖고 있는 집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가까운 노해림이나 아저씨만 봐도 그렇다. 노해림은 우리 집에서 3차원팩스를 봤을 때 계속 쳐다보고 있기 바빴고, 아저씨도 집에 3차원팩스 있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집배헬기로봇 올 때마다 보면 실어가는 우편물이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포는 거의, 아니, 난 단 한 번도 집배헬기로봇이 소포 실어가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아뇨, 없어요. 여기서 누가 소포 보낸다고 한 적 없는 것 같아요.”

 “그럼, 재은 씨가 여기에 오고 나서 집배헬기로봇이 몇 번이나 왔다갔는지 혹시 알아요?”

 “두 번쯤? 여기 온 지 이제 열 달 다 되어 가니까요.”

 “재은 씨가 온 지 열 달 되었는데 한 번도 외부로 소포 보내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말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난 여기서 지낸지가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래. 밖에서 들어오는 건 고사하고 누가 밖으로 나간 다든가 뭔가를 밖으로 보내주려고 하거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마을전체에 집이라곤 열일곱 채뿐인데, 그 중에서 빈 집이 여섯 채나 될 정도로 외진 곳에서 말이야. 말로는 다들 외부지역과 항상 잘 연락하고 지낸다고 하지. 근데 이상하지 않아? 여긴 전화선 연결조차 안 되어있는 곳이야. 내가 알기로는 다른 집에도 그 어떤 통신장치도 없어. 물론 직접 확인해본 건 아니지만, 재은 씨도 알다시피 심지어 여긴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다가 외부무선통신망에 연결할 전파조차 안 잡히는 곳이잖아. 물론 재은 씨 오고 나서부터는 외부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는 3차원팩스가 생기긴 했지만, 이 마을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수혁아저씨랑 나밖에 없어. 그것도 바로 안 것도 아니고 어제되어서야 알았고.”

 “아, 그건,”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에 내가 당황하여 변명하려는 몸짓을 취하자 노해림은 고개를 내저으며 잽싸게 가로막았다.

 “아니. 재은 씨 때문이 아니에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뿐이야.”

 “아뇨, 난 일부러 말 안한 게 아니라,”

 “알아. 그럴 시기를 놓쳤다는 거.”

 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노해림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약간 쓰게 웃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언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어조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가만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전부 직업이 없어. 뭐 하는 일도 없고, 매일같이 한두 마리씩 물고기만 잡아먹고 살지.”

 “그건 해림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맞아. 그게 문제에요.”

 “네?”

 이젠 노해림이 무슨 얘길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뭘 알아듣게 설명해줘야 할 거 아닌가.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이해하면 뭘 어쩌자는 건지. 내가 뭔가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난 기분에 빠져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해림은 아랑곳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분명 난 물고기를 잡아먹었어. 그런데 재은 씨. 내가 정말 낚시를 했는지는 가물가물해. 그리고 난 최근 1년 동안 아무데도 연락한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그런데 어디서 연락이 온 적도 없어.”

 “갑자기 또 무슨 말이에요?”

 “난 여기 온 지 2년 되었다는 건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그뿐이야. 사실 1년 전에 감전사고 당했던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을 겪었거든. 뭐, 이제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여기 살기 시작한지 2년 되었다는 거랑 절벽 앞 언덕을 좋아했다는 것 빼곤 전부 잊어버려서,”

 “네? 정말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정말 깜짝 놀라서 물어보자 노해림은 자기가 더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놀랐어? 나도 그래.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런데 생각나는 게 없어서 답답해도, 누가 나에 대해 이것저것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어떻게 알아볼 방법도 없더라고. 감전 당했다가 정신 차리고 일어났을 때 집에 혹시 뭐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혹시 편지를 썼던 흔적이 있지 않을까싶어서 찾아봤지만, 집 안 어디에도 이 마을에 그렇게 흔한 봉투 하나조차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 집에 혹시 전화가 있나 물어보려고 뒷집에 갔는데, 이 마을엔 아예 전화선자체가 안 들어와 있다고 했어. 그런데 그땐 그 말이 어찌나 황당하던지,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혔어. 그래서 그럼 혹시 다른 개인통신장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냐고 물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역시 없다고 하니까.”

 “저, 근데, 우리 집엔 있잖아요. 3차원팩스. 말했으면 빌려줬을 텐데.”

 “그땐 재은 씨가 여기 없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생각나는 연락처도 없었는데 뭐. 그런데 어쨌거나, 일단 재은 씨랑 나, 둘 다 이 마을에서 누가 소포 보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거 말고도 여긴 이상한 것투성이고.”

 “네. 그런데요?”

 “그럼, 만약 이 마을에서 소포 보낼 일이 생기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 봤던 기억을 더듬어봤을 때, 집배헬기로봇은 고작해야 편지봉투 백 개짜리 묶음 하나 실을 수 있을만한 짐칸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집배헬기로봇으로는 도저히 소포를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거기에다 무슨 소포를 싣겠어요. 봉투보다 큰 건 못 실을 게 뻔하고, 집배헬기로봇 보면 좀 무거운 건 싣고 가지도 못할 것 같던데.”

 “내가 보기에도 그렇긴 해. 그런데 재은 씨, 바로 오늘이 집배헬기로봇 오는 두 번째 날이에요. 매년 4월, 8월, 12월 달 30일에 오니까. 그래서 시간이 없어. 여유가 있다면 재은 씨 3차원팩스로 연락해서 우체국에 알아보겠지만, 지금 우리한테는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하죠? 근데, 몇 시에 오는지는 알아요?”

 “12시30분쯤.”

 

 12시30분이면 온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시계를 찾았다. 그런데 주변에 보이지 않아서 몇 시인지 물었다. 노해림은 8시52분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근데 배고프지 않아요?”

 사실 배고픈 것 보다는 다시 한 번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해야한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데 어제와는 달리, 그건 연결 자체가 간절해서가 아니라 신경접속회로 사용 중에 봤던 토마토 때문이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여기서 토마토를 본 건 신경접속회로 사용 중에 본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3차원팩스로 받은 에나멜토마토가 유일했다. 근데 그 둘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얼토당토않게 느껴졌다. 아까 노해림과 얘기할 때 토마토얘길 꺼냈지만, 그에게서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다.

 

 이제 남은 시간 3시간 반. 난 눅눅하고 질긴 빵 껍질을 찢으면서 말했다.

 “이제 세 시간 반밖에 안 남았어요.”

 “내가 봤을 땐 집배헬기로봇에 매달려서 나가는 수밖에 없어. 나한테 집배헬기로봇에 매달아 묶을 수 있을 만한 사다리가 있으니까, 그걸로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어쩌면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지도 몰라요. 우리 두 사람이면 못해도 최소 120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데, 집배헬기로봇이 감당할 수 있겠어요?”

 난 두어 번 한 입 크기로 찢어낸 빵을 씹어 먹어보려 시도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노해림이 며칠 된 빵을 어디 그늘진 창고에 사온 그대로 넣어두었다가, 그 상태 그대로 내온 모양이었다. 있는 대로 눅눅해진 빵은 입 안에 놓고 한 번 씹어보려 하면 껌인 양 이에 달라붙었다. 이건, 빵 먹으려다가 힘 빠져서 도로 배고파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결국 먹으려고 집어 들어 몇 차례 씨름하던 빵을 접시에 도로 얌전히 내려놓았다.

 노해림은 집배헬기로봇이면 어찌어찌 매달려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아무래도 그렇게 하긴 힘들 것 같았다. 밧줄이 튼튼해서 끊어질 일이야 없다고 하더라도, 과연 집배헬기로봇이 두 사람이나 매단 채 공중에 뜰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것도 양보해서 어찌어찌 두 사람을 매단 상태로 공중에 떴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문제로 가는 도중 뚝 추락해버리면 그땐 어쩐단 말인가?

 “노해림 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두레에 보낸 3차원팩스 답변을 기다려보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최다인.

 최다인.

 토마토.

 에나멜껍데기.

 “재은 씨. 우리 지금 시간이 얼마 없어. 그거 답장 오려면 열흘은 걸린다면서요. 너무 늦어. 다인이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죠.”

 썩은 토마토와 그걸 감싸고 있던 에나멜껍데기, 신경접속회로 사용 중에 나타났던 토마토들과 필름신문에 실린 광고 속 에나멜토마토.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 토마토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분명 토마토에 뭔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맞아요. 시간이 촉박한데, 팩스는 너무 오래 걸려요. 근데, 해림 씨, 아까도 말했던 거지만, 토마토에 분명 뭔가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두레에서 왜 하필 그 토마토를 보냈겠어요? 그게 뭔지 알아봐야겠어요. 당장 신경접속회로를 사용해서 확인해봐야겠어요.”

 “재은 씨.”

 노해림은 놀란 것 같다가 좀 큰 숨을 내쉬더니 그건 아니라고 말하듯 내리깐 목소리로 날 불렀다. 토마토에 관해 더 말할 것도 없었기에, 난 정말 시간이 촉박한 만큼 이제 바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노해림이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하면서 손목을 붙잡았다.

 “재은 씨, 신경접속회로라는 게, 예전에 한 번 수혁아저씨한테서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혹시 2층에 설치해 놓았다는 의료기기 말하는 거예요?”

 “네.”

 “그건 말 그대로, 재은 씨 병을 치료하기 위한 단순의료기기일 뿐이잖아요. 근데 그런 걸로 뭘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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