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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23
작성일 : 19-10-19 11:32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1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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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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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렉트메시지:동양의 멋진 친구. 난 그 뒤로 B급 영화에 출연을 하다가 성인배우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거라구. 어때? 나의 이야기 말이야.

  마동은 소피의 긴 이야기를 듣고 무게감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소피는 고독과 외로움을 어떤 식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어린 나이에 소피는 비참한 행위를 당했고 자아를 잃어버렸으며 그것을 자기만의 (어떠한)방식으로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소피는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서 암울했던 기억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애썼을 것이다.

  다이렉트메시지: 글쎄, 나 지금 말이야 최초에 감기가 걸린 기분이야. 감기가 걸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분명히 팔다리가 멀쩡하게 붙어있지만 프라모델 조립을 잘 하는 이가 내 팔다리를 뜯었다가 엉망으로 붙여 놓은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야 지금.

  다이렉트메시지: 그런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동양의 멋진 친구. 하하.

  소피가 웃음을 띠었다. 아마 마동의 기분을 알려고 다가왔다가 몰라서 나오는 웃음일 수 있었다. 아니면 위배의 웃음일지도 몰랐다.

  다이렉트메시지: 소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합리적으로 보이는 모순성을 느껴서 몸이 떨렸어. 소피? 어째서 나에게 떠올리기 싫은 치부를 들려주는 거지?

  다이렉트메시지: 이봐, 동양의 멋진 친구.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친구는 나를 다른 남자가 나를 생각하듯 생각하지 않는다고 봐. 어쩌면 동양의 친구도 남자니까 나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지. 친구에겐 그런 이야기쯤 털어놓는다고 내 생활이 망가진다거나 피해가 오지 않아. 오히려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만족해. 나도 동양의 친구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걱정하지 말라구.

  소피는 말을 이었다.

  다이렉트메시지: 시간이 지나서 깨달은 게 있었어. 그때 블랙우드가 한 말이 어쩌면 맞았어. 꼭 왓치맨을 보는 거 같아.

  다이렉트메시지: 욋치맨?

  라고 마동은 물었다.

  다이렉트메시지: 왓치맨에 코미디언이 나오잖아. 그는‘선’의 편이지만 어쩐지‘선’이 아니야. 그건 악마, 악의 모습이야. 본능적이고 폭력적이지. 누구하나 코미디언을 착하게 보지 않아. 모순이지. 그런 코미디언을 낳은 코미디언의 엄마역시 악이었을까. 알 수 없지. 결국 코미디언은 악의 모습으로 실크 스펙트를 강간하지. 그 둘 사이에‘제인’이 태어나잖아. 그리고 제인은 가장 선한 편에서 선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야. 닥터 맨허튼을 정신으로 지탱해주지. 코미디언이라는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인이라는 선한 모습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거지. 제인은 무모순성의 모습을 띠는 거야. 선과 악이란 정말 모호한 거야.

  마동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의 마디가 평소보다 크게 보였다. 손가락의 마디에도 변이가 영역을 뻗었는지도 모른다. 손가락의 마디는 다가오는 변이에 억제력을 보이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변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고스란히 내주었는지도 모른다. 소피가 다시 다이렉트메시지를 보냈다.

  다이렉트메시지: 아무리 바빠도 휴일은 있고 나에게도 시간이라는 게 주어지지. 작년에 같이 일하는 동료를 따라서 병원에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우들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한 일이 있었어. 그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관념 앞에 이미 조용히 무릎을 꿇거나 타협을 한 사람들이야. 과연 죽음이 눈앞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낌이 어떨까? 그런데 말이야, 그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하고 편안하게 보였어. 우리들처럼 아등바등 거리지 않아.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떠나고 났을 때 남은 사람들이었어. 오히려 본인보다 남은 사람을 생각하는 거야. 죽음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니야.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기대가 있었어. 당연하지만 흥분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지.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감동도 있었어. 멜로디가 있었고 포용력이 있었어. 물론 두려움과 아픔이 여러 번 존재해있었지. 그들에게는 평온함이라는 우리와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나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어. 화장실에서 울었어. 화장실은 그런 용도야.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평온해지는데 그동안 나는 몰랐던 거지. 난 그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고 하면 이상할까. 그 계기로 시간이 나면 그곳에 들러서 봉사활동을 했어.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내가 그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들을 옮기거나 물건을 정리하거나 말동무를 하는 정도니까. 그들은 나의 직업이 뭔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의 모습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 나를 하나의 인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해줬어. 소아암에 걸린 아이는 친구들에게 받은 소중한 초콜릿을 먹지 못하고 있었어. 다 나으면 먹을 거라며 숨겨두었던 걸 나에게 주었어. 난 그 초콜릿을 받을 때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잘 참았는데. 그 꼬마 녀석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어깨를 두드려줬어. 그리고 웃어주었어.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해주는 거야. 친구란 그런 거야. 동양의 멋진 친구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고 있어. 친구란 그런 것이거든.

  마동이 가만히 있자 소피가 다시 다이렉트메시지를 넣었다.

  다이렉트메시지: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하지? 오늘 죽으면 더 이상 내일부터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야. 죽음이 눈앞을 가리는 순간까지도 어떻든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거야.

  마동은 죽음에 대해서 다가가 보았고 삶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인간이 삶을 헤쳐나가는 건 어떤 관념을 지니며 어떤 의미인 것인가. 모두가 언젠가는 죽지만 그것은 나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은 하찮은 존재다. 사후경직 3시간정도가 지나면 인간의 육체는 끝에서부터 그리고 안으로부터 썩어가기 시작한다. 음부의 끝에서 죽음의 꽃은 피어나며 검은 잎의 냄새도 심하게 난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존재들이 문명을 이루고 있다. 존재 자체는 하찮을지 모르나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는 또 다른 인간을 풍요롭게 하거나 위태롭게 한다. 소피가 당한 일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고 같인 인간에게 분노가 들었다. 근육이 경직되었고 심장이 3분전보다 거세게 뛰었다.

 

  다이렉트메시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사후기증을 서약했지. 마음이 아주 기뻤어. 그것이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일인지도 몰라. 죽음이란 삶의 한 부분이야.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통해서 그걸 알 수 있었어.

  다이렉트메시지: 사람들이 소피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동은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마동은 자신의 진심이 이역만리에 있는 소피에게 통화망을 타고 전해졌으면 했다.

  다이렉트메시지: 어니 괜찮아 친구.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나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 편견의 세계는 그것대로 또 하나의 세계이니 말이야. 포르노배우가 너무 착한 이미지면 그것대로 매력이 없는 일이지(소피는 웃었다) 동양의 멋진 친구. 그래, 기이한 몸상은 좀 어때? 곧 한국에 가면 당신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들뜨는 거 같은데. 나 어떡하지?

  마동은 소피가 자신을 만나서 들뜬다기보다 그동안 성인영화와 포르노배우라는 타이틀 속에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확고한 자리싸움과 입지를 통해 소피라는 하나의 게슈탈트를 지니느라 고생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에 들떠한다고 여겼다. 소피는 자신이 쌓아놓은 집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더불어 한국은 블랙우드를 떠올리게 할 것이고 그 일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소피는 마동을 만나는 것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저녁에 만나는 것이라 마동에게는 다행이었다.

  다이렉트메시지: 몸살은 계속 진행 중이야. 낮 동안은 몸살이 심하고 밤이 찾아오면 몸살은 내 몸에서 떠나가 버려.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야. 언젠가는 몸살이 끝날 거야. 그 언제가 되기 전까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은 내 힘이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로 했어. 소피의 말대로 말이지.

  다이렉트메시지: 잘 생각했어. 동양의 멋진 친구.

  다이렉트메시지: 마치 내 몸속에서,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되는 것 같아. 그것이 꿈틀거릴 때마다 두려워. 두려움이 계속 커져 가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또 다르게 이건 정말 굉장하군, 이건 마치 처음 와 본 유럽에 살고 있는 동양인의 느낌이야.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거와 비슷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거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소피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 같아.

  실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설명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피는 괜찮다고 했다. 소피는 마동의 언어적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소피는 그곳에서 마동이 만난 사람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냈다. 소피는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그 무엇에 대해서 느꼈다고 했다. 먹구름처럼 몸을 잠식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마동은 장군이가 한 말을 되새겼다. 마동의 변이 속에 어둠의 도트가 느껴진다고 했다. 장군이가 느낀 것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지금 마동의 마음속에서는 그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에고가 눈을 떴다. 또 다른 에고는 마동의 변이로 깨어난 것인지 또 다른 에고를 통해서 마동의 변이가 시작된 것인지 역시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건 어떤 식으로든 변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와 뒤엉킨 원래의 에고를 타협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타협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과 기름이 어울리지 않듯이.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나의 유년기에 대해서 말했으니 이제 친구차례야. 라고 하면 놀라겠지.

  소피는 웃었다. 웃음소리가 활자로 변하여 화면에 나타났다.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의 유년기는 만나서 듣기로 하지. 동양의 멋진 친구의 소원은 무엇인지 말해봐.

  마동은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끔거리며 아파왔다. 순간 어린 시절의 핏빛 가득했던 기찻길로 들어갔고 성난 얼굴을 한, 눈알은 빠져버리고 촉수를 마구 흩날리며 촉수 끝으로 끈끈하고 미끄덩거리는 액체를 흘리며 크르릉 소리를 내고 묘한 악취를 풍겨대는, 송곳니를 드러낸 악마의 기차가 마동의 머릿속에 나타나서 헤집고 다녔다.

  끔찍한 피비린내의 향연, 토막이 나버린 피지 못한 작은 몸의 친구들, 기억이라는 것은 몹쓸 것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낸다고 하는데 바위에 깊게 박힌 머릿속의 대지에 마구잡이로 거대한 삽을 이용해 그 기억을 물었다. 과정은 마동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거대한 삽은 마동의 몸뚱이 두 배나 되는 크기였고 그 삽을 들고 머릿속의 쇠말뚝 주위 땅을 파들어 갈 때면 마동의 작은 손이 견뎌내질 못했다. 손바닥의 이내 물집으로 가득했고 물집은 고집스럽게 형체를 유지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비웃기라도 하듯 터져버리고 말았다. 찢어지고 상처로 가득한 손바닥이지만 멈추면 안 된다. 뒤틀어져버린 기억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오기 전에 얼른 묻어야했다. 땅바닥은 삽으로 파 들어가기 전에는 말랑말랑하고 푸르른 대지였지만 막상 삽을 들고 땅으로 꽂는 순간 탕하며 삽의 날이 튕겨 나올 만큼 딱딱하고 견고했다. 대지의 힘은 인간의 나약함으로 어림없다고 말을 했다.

  인간은 그동안 많은 것을 훼손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더 이상 가질 것이 없음에도 양손은 이미 많은 것을 들여서 얼굴이 일그러져도 더 가지려고 했다. 탐욕스러운 것들!라고 대지는 말했다. 마동은 그런 말 따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지는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처럼 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동은 삽으로 마구 대지를 팠다. 손으로 쥔 삽의 기둥으로 손바닥의 물집이 터져 피와 끈적끈적한 액이 흘렀다. 마동은 쉬지 않고 대지에 구멍을 냈다. 구멍을 파내면서 나온 흙으로 마동은 쇠말뚝 같은 기억을 덮었다. 대지는 고개를 흔들며 졌다는 듯 나약한 부분을 마동에게 내주었다. 마동은 팔이 떨어져나갈 만큼 대지에 삽을 내리 꽂아서 구멍을 내고 또 구멍을 크고 깊게 만들었다. 구멍은 만들어질수록 불길한 전운의 얼굴이 번져갔다. 마동은 틀어진 기억의 상자를 꺼내서 구멍에 넣고 묻었다. 발로 밟았다.

  마동은 그곳을 빠져나와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 모든 것을 잊었다. 비온 뒤 촉촉한 숲을 달려서 덤불 속으로 달렸다. 가시가 몸을 찌른다.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술실의 매스처럼 가시는 팔을 긋고 허벅지를 그었다. 가시가 스친 곳은 이내 핏빛의 방울이 맺히더니 바람에 날려 옆으로 떨어졌다. 피가 떨어진 대지는 흥분으로 울렁거렸다. 마동은 달렸다. 이끼긴 바위를 밟고 달리다가 넘어졌다. 머리가 돌에 닿아 퍽 하며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기증이 앞을 가렸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서 달렸다. 뒤를 돌아보니 사시덤불의 나무들의 형상이 아른 거렸다. 그들은 대지와 함께 아우성을 지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따갑게 느껴졌다. 달리는 자동차의 유리창을 제거하고 앉아있는 기분. 나는 얼마나 달렸을까.

  바람의 냄새가 났다. 구토가 나올 만큼 선연한 냄새. 나는 이 냄새를 알고 있다. 바람은 후퇴한 시간의 냄새를 몰고 왔다. 냄새가 나를 쫓아왔다. 내가 아무리 빨리, 멀리 달려도 냄새는 나를 쫓아왔다. 냄새가 내 몸을 덮었을 때 암흑의 냄새로 바뀌었고 하늘은 암흑의 비를 뿌렸다. 시간의 전후가 바뀌려고 했다. 나는 암흑의 비를 맞고 울부짖었다. 달렸다. 더 힘차게.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나는 비 때문에 앞의 구멍을 보지 못하고 그만 발이 빠져 넘어지고 말았다. 누군가 나의 젖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가시에 찔린 팔의 상처를 보듬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의 감촉은 나는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을 Em기 싫었다. 눈을 뜨면 그녀는 가버리고 만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부드럽고 차가운 감촉, 냉철하지만 온기가 퍼지는 손길, 나는 알고 있다. 손길의 주인공을.

  ‘당신은 바로 나예요’

  그녀의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귀에 살짝 입김을 후 불어주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 입술이 귀에 살짝 닿았다. 속삭임은 어느새 교성으로 바뀌고 나의 몸을 흡수한다.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이렇게 교성만이 아니야.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는개가 있었다. 놀란 나는 는개의 상체를 두 팔로 붙잡았다. 순간 스르르 연자주색의 푸석한 먼지처럼 녹아내렸다. 아아, 난 어쩌지 못하는 결락의 끝을 맛보았다.

 

  마동은 숨이 차올라 크게 쉬어야 했다. 정신은 누군가 뒤로 돌아와서 스위치를 내린 다음 가져갔다가 와트수가 다른 전구를 꽂아서 스위치를 올려 버린 것 같았다. 제어가 불가능한 두려움이 마동의 몸을 엄습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장이 크게 뛰었고 맥박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고 소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이렉트메시지: 소원이라곤 별거 없어. 여기서는 모두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난 마당이 있는 큰 집에 살고 싶어. 그리고 정원에 한국산 소나무를 심어놓고 매일 바라보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마동은 이제 소원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이렉트메시지: 소나무? 확실히 동양의 친구는 멋진 사람이었어. 내 직감은 빗나가지 않아서 나는 지금 더욱 기쁜걸.

  다이렉트메시지: 그래 소나무 말이야. 여기서는 소나무를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소나무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아. 하지만 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신비로운 생명체야. 게다가 근처에 늘려있는 소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그렇다고 일본산 소나무는 아니다- 소나무가 많은데 한국 금강송이라는 소나무를 심어놓는 거야. 나무가 띠는 빛이 오묘하고 소나무의 몸통이 붓놀림과도 같아. 소피도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겠네. 붓글씨? 혹시 알아?

  다이렉트메시지: 설마? 내가 알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전혀 모르겠는걸.

  다이렉트메시지: 그래 나중에 만나게 되면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줄 수 있을 거야-만약 만나게 된다면 말이지- 집의 정원에 큰 소나무를 심어놓고 하루 종일 어루만지며 관리를 하는 거야. 소나무를 쳐다보며 지낸다면 매일 행복할거야. 소원이지. 나의 소원. 왜 그런 따위가 소원이 되었을까. 나도 잘 알 수가 없어 소피.

  마동은 갑자기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했다. 서른 개를 했다. 역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는 소나무를 잊기 위해서 갑자기 운동을 했을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운동을 하라고 시킨 것일까.

  마치 철탑 밑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힘 있게 팔굽혀펴기를 했다. 하지만 마동은 왜 팔굽혀펴기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스무 개를 하고 다시 열 개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 파트를 순식간에 했다. 턱의 끝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내려갔다가 팔을 뻗어 힘차게 올라왔다.

  다이렉트메시지: 저기 소피?

  다이렉트메시지: 응? 동양의 친구?

  다이렉트메시지: 나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블랙우드가 생각나지 않아?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친구, 난 그동안 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어. 직장인들처럼 같은 사람을 매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 그들은 정말 세상에서 별종의 인간들이야.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나의 친구여. 나는 당신을 꽤 믿어 버렸어. 나 역시 어떻게 당신이라는, 보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믿어버리게 되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대답할 길은 전혀 없어.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 내 마음이 향하는 촉을 믿는 거야. 나에게 철없이 흘러간 시간과 맞먹을 만큼 독선적인 직감이 내제되어 있어. 그리고 그만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경험과 관찰이 있지. 나의 직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와 나이가 되었다는 거야. 감각이 있어. 그것뿐이야. 그 외에는 없어. 동양의 친구.

  마동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발현의 꿈틀거림이 포착되었다.

 

  마동은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다. 새벽의 밤공기도 단조롭게 옥상에 내려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의 어둡고 불길한 하늘을 보았다. 마른번개가 불규칙적인 주기로 내리쳤다. 이제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닥쳤을 때는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가 하는 자세에 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치누크가 몰고 온 묘한 바람의 흐름을 느꼈던 그날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고 조금씩 변이하고 있었다. 그것이 실로 진정한 변화인지 마동의 본성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난 후 깨어나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비록 신체의 상태 변화 뿐만 아니라 의식의 변화까지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속도감 있게 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의식의 본질은 껍질을 벗고 껍질 속의 새로운 살갗의 냄새를 맡았다. 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서 기포를 타고 올라왔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붕괴하고 질척이는 피 냄새도 났다.

  어김없이 해가 아침을 점령하면 난 어제보다 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동은 허리를 약간 구부렸다. 다리는 옥상의 난간 밖으로 나 있었다. 엉덩이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고 양 손도 옥상의 난간을 위태롭게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마동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린아이가 뒤에서 살짝만 밀어도 아파트 밑으로 추락할 것 같은 모습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들고 온 꿈의 리모델링 작업 때문에 회사에서 연락이 많이 올 것이다. 어쩌면 연락 속에서 최원해 부장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지도 모른다. 최원해는 아직 지각 한 번 조퇴 한 번, 결근도 한 번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회사입장에서는 충성도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이제 하루 이틀 뒤에 경찰이 와서 최원해의 실종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니 취조를 할 것이다. 눈앞에 그런 광경이 죽 나타났다.

  가스층이 두터운 여름밤의 어두운 하늘이 밝았다. 마른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하늘은 기분 나쁘게 더 밝아졌다. 마른번개가 마동의 마음에 어떤 미지의 자극 같은 것을 전해주었다. 마동은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자신의 마음속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질서가 깨져 버리니 외부의 풍경이나 사물,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되지 않았다. 마동은 다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흐리고 꿉꿉하고 그 사이에 밝은 하늘빛이 눈앞에 어울리지 않게 펼쳐졌다.

  며칠 만에 아주 뜨거운 무더위가 한반도를 찐 고구마로 만들었다. 열기 가득한 더위가 몰려오기 전, 태풍의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를 한껏 머금고 있는 여름의 새벽하늘이었다. 욕망에 가득한 충혈 된 눈처럼 보이는 구름이 하늘 사이사이에 껴있었다. 마동은 들었던 고개를 숙여 아파트의 밑을 바라보았다. 이 새벽에 아직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술에 취했는지 걸음걸이가 완벽함에서 벗어났다. 습한 공기의 암울함은 밤의 세계를 떠나기 싫다는 듯 서로 엉겨 붙어서 불안한 걸음걸이로 걷는 사람들의 숨에 들어차 그들의 불쾌함을 더욱 자극했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느리게 만들어 주었다.

  새벽의 단신상들이 모여 오후의 군상을 만들어내고 하나일 때 없었던 힘은 집합으로 하여금 큰 소리가 된다. 비록 불합리성을 지닌 목소리라도 여럿이 떠들어대면 정합성이 되어 버리고 만다. 폭주한 기차처럼 앞으로 끝없이 나가지만 멈추지는 못하는 것이 인간 군상이었다.

  마동은 아슬아슬하게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앉아있었지만 고층에 대한 공포가 들지 않았다. 그는 고소공포가 심했다. 예전에 마동은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적당히 높은 곳이 아니었다. 고층의 외부가 드러난 곳이었다. 올라가니 심장이 빨리 뛰었고 손과 발바닥에서 이유 없이 땀이 났다. 무엇보다 지상에서 할 수 있었던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고 타인이 되어서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는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리는 이유식을 먹는 아기처럼 힘이 몽땅 빠져나가 서 있기도 불안했다.

  옥상 난간에 앉아있는 지금은 그런 증상이 전혀 없었다. 변이 덕분이었다. 현재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매달려 있어도 상관없었다. 딱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하나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대신 또 다른 새로운 두려움이 들었는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시작된다. 누가 했던 말일까.

  또 다른 두려움을 감싸고 있는 가려진 실체는 어렴풋하나 옅은 커튼 뒤의 형체와 같았다. 여름밤의 아파트옥상은 낮 동안 내려 받은 복사열과 밤새도록 집집에서 가동하는 에어컨 열기 때문에 달아오른 거대한 두꺼비집처럼 변했다. 짙은 새벽으로 시간이 나아갈수록 공기의 밀도는 조여오기 시작했다. 험악하고 음산하고 기분 나쁜 습한 새벽의 공기가 마른번개가 치는 저 곳에서 이곳으로 와서 마동의 어깨며 팔다리를 좋지 못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이내 어깨를 쓰다듬더니 습함은 마동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여름밤 대기에 노출되어있는 피부에 달라붙었다. 얼굴로, 그리고 얼굴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음험함이 습, 하며 빨려 들어왔다.

  오토바이 한 대가 처절한 굉음을 내며 아파트단지 밑의 도로를 질주했다. 아파트에 자아를 저당 잡힌 70대 노인이 떠올랐다. 아파트와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노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동은 어린 시절 그 사건 이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적어도 타인보다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고 세포들이 점점 죽어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나면 육체가 쇠퇴하여 그 사이로 틈입해 온 바이러스는 신나게 증식을 한다. 그리하여 고요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게 서서히 오는 경우가 있고 느닷없이 오는 경우가 있다. 가까이 와있지 않던 죽음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 죽음을 맞보는 그 몇 초, 몇 분, 몇 시간, 며칠은 깨달음과 환멸이 교착되는 시간이다. 그 외의 감정은 배재하게 되거나 이탈해버리게 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마동은 그동안 죽음에 다가서는 훈련을 많이 해 왔다. 종교가 없어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훈련을 한 것은 아니었다. 현세에 불만족이나 누리지 못한 부분을 죽어서 천수를 누리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죽음이란 삶의 한부분이다. 소피의 말을 생각했다. 소피는 죽음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적어도 마동보다는 훨씬 가까이 다가갔었다. 그렇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그녀는 분명히 죽음이 있는 그 너머의 세계가까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죽음이 던지는 관념에 대해서 만져보고 느껴보고 왔다. 오늘 죽으면 내일부터는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와 닿았다. 마동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의 느낌이라든가, 죽음을 형해 달려가는 흐름에 대해서.

  어떤 방식이 되었던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훈련.

 

  물론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기에 죽음 그 후에 펼쳐지는 완전무결한 세계에 대해서 알 수는 없다.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말도 신빙성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마스처럼, 미지의 한 부분처럼 말하고 있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인간은 그 사실을 안다. 다만 그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겁이 난다. 진실이 앞으로 오면 고개를 돌리고 만다.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모순이 가득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티브이에서 정치가들이 거짓으로 일관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거짓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고 있는 그곳의 땅이 어떤 이유로(앞으로 이런 저런 지질학적인 이유로) 갈라진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충격으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죽음에 자신은 집어넣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기 싫을 뿐이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동은 포함시켰다. 매일 포함 시켰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죽음의 영역에 꽤 다가갔다고 생각했다. 마동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실제로 보았다. 그 모습은 계속 마동을 따라다녔다. 트라우마라고 정신분석학자들이 부르게 좋게 만들어 놓은 단어에 의해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어젯밤 뉴스에서는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가 터져 뇌수가 흘러나온 시체를 보고 지나가던 임산부가 아이를 유산한 소식이 전해졌다. 임산부는 각인되어 버린 그 모습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앞으로의 확신도 없었다. 직접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죽음의 순간을 직각적인 자각 작용으로 깨닫게 되면 그것은 가혹한 경험이 되어 버린다. 평생을 따라 다니며 괴롭히게 된다. 설령 그 임산부가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 훈련을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자신에게서 벗어난 죽음의 경험이기 때문에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바다에 가라앉은 배에서 건져내지 못한 시신들을 100일이 지난 다음 잠수부에 의해서 바다 위로 올라오지만 그 잠수부에게는 인간의 모습에서 완전하게 탈피한 시체의 모습이 눈을 감으나 뜨나 계속 나타난다. 그들은 매일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막으로 들어와 버린 시체들의 비참한 모습이 평범한 삶에 매복하고 있다가 눈치 챌 수 없게 불쑥불쑥 나타나서 왜 깨우지 않았냐고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마동 역시 밤마다 악몽을 꿨다. 친구의 얼굴에 이 친구의 몸이 붙어있고 저 친구의 팔다리를 한 채 아이들은 마동의 주위를 돌며 기차가 지나가고 난 뒤에 납작하게 된 대못을 들고 있었다. 친구들의 몸이 분쇄가 되었다는 공포와 기차에 대한 분노, 파업 소식을 잘못 전해들은 것에 대한 자신의 부족함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도 모른 채 마동의 뇌 속 여러 구간에서 굶주린 절지류처럼 지속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너도 언젠가는 죽을 거야, 비참하게’라는 이명이 매일 들려왔다. 적막한 어둠에서 무서운 자줏빛이 어떤 날은 콜롬비아어로 들렸고 어떤 날은 루마니아어로, 어떤 날은 크라켄으로 나타나서 말해 주었다.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마동은 정신과 상담을 받지 못했다. 시골에서 정신과 치료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고 전우를 잃었다. 조깅을 하다 지나치며 알게 된 노인도 이제 곧 아파트와 함께 생명은 끝날 것이라 했다. 서쪽 숲을 찾아 평생 헤매던 완구점 주인도 그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죽음에 대해서 훈련하는 것은 깊은 밤하늘의 달과 가까워지는 것이라 여겼다. 군대에서 마동은 침묵하는 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마동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미친놈이라 욕을 하겠지만 마동은 달의 언어를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침묵 속의 언어는 마동의 등을 두드려주었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야.

 

  그렇다고 해도 신체변이에 대한 반응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마동은 받아들이는 수순을 비교적 잘 밟고 있었다. 그동안 죽음에 대해서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마동은 늘 잠도 부족했다. 매일 조깅을 하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마동에게는 소용없는 논조였다. 잠을 일정기간 렘수면 상태를 벗어나서 잠들어야만 몸은 탈이 나지 않는다고 의학 관련 프로그램에서 의사들이 나와서 말했다. 마동은 육체를 구석까지 몰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마동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점진적으로 잠자코 방아들이는 것이 훈련의 결과라 여겼다.

  고개를 들어 구름이 반쯤 가리고 있는 새벽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늘 차갑지만 언제나 아름다웠다. 독특한 서정성을 가득 품고 마동에게 무엇인가 말을 해 줄 것만 같았지만 침묵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냉정한 달은 밤이면 어두운 하늘로 꿈처럼 떠올라 마동을 내려다보았다. 그럴 때마다 자위력을 잃어버린 마동을 어디론가 데리고 갈 것만 같았다. 마동은 철탑 밑에서 달이 전해주는 빛의 포자를 한껏 빨아 들였다. 안개가 몸 안에 들어차 하얀 빛을 피웠다. 어딘가에 반사되어 빛을 내는 해와 달리 달은 스스로 빛을 낸다. 달은 마동에게 말은 없었지만 빛을 나누어 주었다. 달이 드디어 마동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준 것이다. 바람이 잦아들고 습한 기운만이 새벽의 대기에 가득 들어찼다. 이 상태로 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입고 있는 옷이 축축해질 것이다.

  겨울의 새벽이 여름의 새벽보다 따뜻하다. 관념적인 말이지만.

  지금 여름의 새벽은 습하고 축축함이 따뜻하게 아파트 밑에서 올라왔다. 여름밤의 습한 기운은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기이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다에 붙어있는 마을은 더더욱 습한 기운을 직접적으로 맞이했다. 해변의 카페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장군이가 어리었다.

  장군이는 어떤 변이체일까.

  그 존재가 진정 동물인지 어떤지, 물질의 혼재인지, 오래전의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질렀는지 또는 그 반대편에 있었는지 학습으로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더불어 설명이 불가능한 방법이 소설가의 책장에 꽂힌 책만큼 많았다. 짐작을 할 수 없는 존재. 유추가 되지 않으며 상상 할 수 없는 존재. 예부터 먼지처럼 떠돌다가 유전자처럼 지금까지 내려온 존재.

  마동은 어려운 말을 걸러내고 그렇게 간추렸다. 장군이가 어떤 존재인지 무슨 관념체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또 다른 생명체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장군이는 지금 여기 인간의 세계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찾았을 것이다. 대형견 그레이트데인 장군이를 생각하니 혈관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동의 몸속의 피가 마치 살아서 그레이트데인과 가까이 접합하려는 듯 수면에서 깨어나서 몸속의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품었을 때처럼.

  장군이는 자신을‘형성변이자’로 소개하고 오랜 시절부터 인간과 같이 살아오는 방법에서 평범함과 타협을 선택했다. 장군이는 마동에게서도 자신과 비슷한 어두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거역할 수 없는 어둠의 도트가 마동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도트가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 힘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 영향을 가져다주는지 가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최악의 경우 자신은 죽음으로써 그 도트의 움직임을 끝내야 한다.

  죽음.

  그레이트데인 장군이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서로 얽혀있는 관계일까.

  그들은 연결된 관계가 아니라 얽혀있어서 서로 꽈리처럼 꼬아진 매듭이 아닐까. 매듭을 풀려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방법이라는 것을 동원해도 매듭을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장치일 뿐 풀리지 않는다. 그런 관계로 형성되어있는 존재들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장군이다.

  옥상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마동은 달을 바라보았다. 침묵하는 달.

  그 뒤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며 언어를 내보이는 마른번개.

  무엇하나 마동에게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마동은 마른번개의 언어를 알아듣고 싶었다. 여름 새벽의 기운은 마동을 흥분시켰다. 여름밤이라 그러한지 달빛 때문인지 마음이 흥분되었다. 첫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고취되어있었고 가슴이 뛰었다. 마른번개가 좀 더 큰 규모로 내리쳤다. 따뜻했다.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따뜻함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 멀리 여명이 보인다. 벌써 날이 밝아오는 것인가. 아니다. 아직 시간이 이르다.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일까.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눈앞에서 그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과 가슴골을 보니 목이 뜨거워져 있었다. 오른손을 목 언저리에 갖다 대었다. 확실히 손바닥으로 뜨거운 기운이 밀려왔다. 여명이 세상을 한순간에 밝게 비쳐주었다. 새로 산 전구를 갈아 끼운 듯 세상이 밝아졌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날이 밝아 오는 것이 아니다.

  저 붉고 밝은 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째서 사람들은 저 밝은 빛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새벽에 가지는 시간개념은 한낮에 보이는 달처럼 아이러니했다. 이 새벽을 사람들은 다른 층위에서 즐기고 있었다. 그런 여름의 하루, 새벽시간에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 마동은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목에 대고 있던 오른손바닥으로 연탄이 자신을 버려가며 재가 되기 직전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마동은 밝아오는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답답하더니 한순간에 에고가 과잉되어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날이 밝아 온다. 아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여명 같은 빛이 점점 더 거대하게 빛을 발하며 마동이 있는 난간으로 뻗어 왔다.

  마동은 빛에 잠식되었고 답답함을 느꼈고 몸은 빛에 의해 불타올랐다. 방파제에 나간다면 저 멀리 보이는 빛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순간 대지가 재빠르게 뜨겁고 푸른빛을 강하게 냈다. 마치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을 인간들이 꼴 보기 싫어서 전부 깨어나게 하기 위해 제우스가 심술을 부리듯 과격한 빛을 세상에 뿌렸다. 낮처럼 환해지기 시작했다. 룸바드 스트리트처럼 미간에 주름이 졌다. 환해지는 빛에 닿아 마동의 몸은 너무 뜨거웠다. 빛이 강해서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양손을 겨우 들어서 쳐다보았다. 양 손의 끝에 불이 붙어 버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몸이며 팔이 뜨거웠다. 그렇지만 핀란드식 사우나보다 더 뜨거운 곳에 오래 앉아 있는 느낌도 아니었다. 무더위에 오랫동안 달려 숨이 차올라 막히는 느낌도 아니었다. 이건 몸이 그저 타오른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불이 활활 타올랐지만 만져지지 않는 타오름이었다.

  몸 안의 에고가 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워서 고통스러웠지만 실체가 없는 불타오르는 느낌을 마동은 어찌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마동의 양 손을 몸에 갖다대어봤다. 몸이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펄펄 끓어오르는 물주전자의 불룩 나온 몸통을 만지는 것과 흡사했다. 마동은 몸이 불덩이 같아서 몸에 갖다 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을 타인의 손을 쳐다보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보았다. 마동의 손이었지만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손바닥이 익어 갔고 손의 움직임이 이질적이었다.

  웅웅.

  마동의 무의식으로 새벽시간 속에 흡수된 사람들의 암울한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웅.

  깨어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전달되었다. 몹시 불쾌하고 더러운 의식이 마동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것은 지하세계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눈이 없는 생물체보다 더 깊은 추악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소리였다.

  웅웅웅.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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