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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55년생 순자씨
작가 : 춘자
작품등록일 : 2019.10.16

82년생 김지영의 부모 세대 이야기.

 
전쟁 그 이후
작성일 : 19-10-18 19:01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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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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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잦은 피난으로 종의는 그야말로 지쳐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없는 살림을 다시 일으키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대를 이을 건강한 아들을 기다리는 친척들의 등살에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했다. 군산으로 돌아오자마자 낳은 넷째도 딸이었고, 어른들의 재촉에 연년생으로 다섯째 순자씨를 낳은 후에는 기력이 다 소진한 느낌이었다. 유난히 부기가 빠지지 않아, 가까이 지내는 옆집 함안댁이 늙은 호박을 푹 고아다 주었다.

 

 "이거라도 먹어 둬, 성. 기운도 좀 나고 부기도 빠질 것이여."

 "고맙네." 마실 거라도 내줘야지 싶어 종의는 몸을 일으켰다.

 "됐어. 일어날 거 없어." 호박이 식을까 행주로 감싸갖고 온 냄비를 마루에 두고 함안댁은 다시 떠났다.

 

 함안댁 덕분에 부기도 가시고 몸도 가벼워졌지만, 아직 젖도 떼지 않았을 때 호박을 먹어서인지 젖이 잘 나오지 않았다. 순자씨는 자연스레 배가 곯아 자주 울어 댔고, 멀리 배를 타고 나갔다 들어온 남편은 밤에 잠을 못 잔다며 성질을 부렸다. 본인이 너무 성급하게 호박을 먹었나 싶어 종의는 마음이 아팠다. 분유를 구하기도 힘든 시절, 밥을 지을 쌀을 조금 남겨다가 미음을 푹 끓여서 먹였는데 이마저도 젖이 고팠던 건지 잘 먹지 않았다. 순자씨는 미음을 먹여주면 삼키지는 않고 입에 물고 있었다. 고집스럽기는, 하고 종의가 한숨을 쉬며 배를 쓸어 주던 따뜻한 손길을 아직도 순자씨는 어슴프레 기억한다. 어머니의 손길 덕분인지, 입에 물고 있던 미음이 조금씩 목 뒤로 넘어가는 모양인지, 미음을 먹이고 부터 순자씨는 적어도 밤에 울지는 않았다. 이 무렵 큰 아들의 건강 상태도 조금 양호해져서 집안 어른들의 '아들 하나 더 낳아야 한다'는 고나리에서 종의는 조금 편해졌다. 아직 학교가 온전히 복구되지 않아, 집을 자주 비우는 아비 대신 큰아들이 어미 종의를 자주 도와주어 그나마 일손을 조금 덜었다. 건강만 좀 더 나아지면 좋으련만, 저녁 시간을 넘기면 기운이 없어 누워 있는 큰아들을 보며 종의는 생각했다. '늬 아부지는 너도 배를 탔으면 하시지만, 그건 아니여. 이렇게 애러운 세상일수록 나랏일을 해야 하는 겨.' 실제로 큰아들은 춘희를 따라 배에 오르기도 했으나, 기력이 워낙 약한 탓에 배멀미 증상을 보여 바로 내려온 적도 있었다.

 

 순자씨가 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 쉽게 버는 돈에 잠시 눈이 먼 춘희가 뱃사람들과 어울려 도박을 하다가 늘 타던 외항선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아이고, 그래 내가 뭐라 그랬나 이 사람아! 그런 검은 돈 손 대는 게 아니라고!" 춘희의 외할머니가 등짝을 치며 혼내켰다.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한 춘희는 맞고만 있었고, 남편의 편을 들기도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던 종의는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다섯인데 어쩌나. 이를 어쩌나. 이제 유곽들이 망해서 빨랫감도 없는데.' 아궁이 불을 쬐며 종의는 혼자 생각했다. '상에 오르는 밥 숟가락이라도 하나 줄여야 하나...뒷집 원주댁 셋째는 미군에 입양보냈다던데...'

 

 "엄마!" 밖이 소란스럽자 낮잠을 자다가 깬 순자씨가 갑자기 부엌에 들어오며 종의를 불렀다.

 "에구 깜짝이야!" 미처 사람이 올 줄 몰랐던 종의는 아궁이 앞에서 뒤로 넘어졌다. 순자씨는 그런 엄마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해맑게 웃는 순자씨를 보고 종의는 가만 생각했다. '내 너만이라도 배부르고 등 따신 집 보내야 할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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