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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미안해..
작가 : 소영이
작품등록일 : 2019.9.10

제게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약간의 허구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후, 우리는
작성일 : 19-10-18 18:07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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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퇴원하기 전날 밤, 케이크를 사서 퇴원 축하 파티를 했다. 그때 먹었던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목수술을 하고 나서 밥을 먹는데 계속 토를 하는 바람에 밥을 먹지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같은 병실을 썼던 할머니의 간병사 분께서 안쓰러웠는지 간병사들끼리 저녁밥으로 먹으려던 치킨에서 작은 두 조각을 주시더니 간호사 몰래 먹으라며 커튼을 치고 맛있게 먹었다. 하자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마자 속이 안 좋아 물을 계속 마셨더니 결국 우웩 하고 말았다. 그때 맡았던 토 냄새는 전날 밤 먹었던 따끈따끈한 후라이드 치킨 냄새라 간호사나 의사 선생님께 내가 뭐 먹었냐고 엄마를 나무랄까 걱정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렇게 계속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다 보니 병원에 있는 동안 뭘 먹은 게 없었던 지라, 그때 먹었던 케이크 맛은 달콤했다. 다행히 그땐 더 이상 토 하지 않았고 간호사를 포함하여 같은 병실에 계셨던 보호자와 환자분들과 같이 퇴원 축하 파티를 했다. 다음 날이 퇴원 날이라는 게 나로서는 그리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퇴원을 하게 되면 엄마와 헤어져야 하고, 미애원으로 다시 가야하니까 내게는 절망적이었다. 더군다나 목 수술을 한 뒤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제한 되면서 보육 교사와 같이, 그리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인창병원에서 재활을 받았다.

 일주일에 1번 정도 받은 걸로 기억한다. 다리에 힘이 없어던지라, 혼자 앉고 일어나기, 중심 잡으며 걷기 같은 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잘 걸을 수 있고, 잘 앉았다 일어섰다를 할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미애원에서의 생활 자체가 무서워서 정신력으로 할 수 있게 된 게 아닌 가 싶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때 맞췄던 보조기를 낀 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당연히 보기에 흉하여 학교 갈 때만큼은 보조기를 끼기 싫었지만, 눈치가 보여 꼈다. 그 보조기를 끼면서도 이젠 더 이상 안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꼈다. 그렇게 나는 보조기를 낀 채 생활했다.

 중학생이 돼서도 재활은 게속 받았다. 초등학교 생활과는 전혀 달랐던 중학생 생활이라 재활까지 하기 너무 피곤했지만, 잘 버티고 견뎌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이젠 혼자서도 생활해도 될 만큼 힘이 붙었다. 중학교를 경남여자중학교를 다녔다. 소진이와 같이 다니다 보니 초등학생 때보다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졌고, 남들과는 다르게 더 애틋해져 갔다. 어쩌면 애틋한 게 다행인 지 모른다.

 

 5월 쯤 되었을 때 우리는 드디어 미애원을 나가게 되었다

 우리가 미애원을 나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미애원을 나가기 위해선 원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절대로 허락해 줄 리 없는 원장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무작정 짐을 쌌다. 갑자기 나가게 된 거라 꼭 필요한 짐만 챙기고 우리는 나갈 준비를 했다.

 게속 허락을 해 주지 않아 우린 우리 뜻대로 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빠가 처음에는 미애원에 나가고 싶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 허락해 주더니 나중에 원장 말 듣고부터는 그냥 미애원에 있으라는 말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우린 그래도 더 이상 미애원에서 생활할 수가 없어 고집을 부렸다. 결국 미애원에서는 허락을 해 주지 않아, 보육 교사가 짐 싼 걸 방에 올려 놓으라는 말에 잔뜩 화가 나 욕을 바가지로 말하고는 가방을 던졌다. 그렇게 우리는 미애원을 나갔다.

 원래는 이틀 동안 있을 에정이었지만, 우린 일요일이 돼서도 월요일이 돼서도 절대로 미애원에 가지 않았다. 나중에는 결국 우리 뜻대로 미애원에서 완전히 나가게 됐지만, 그때 던지고 나왔던 우리의 짐과 나머지 짐들은 나중에 엄마와 언니가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없어지고 사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후회가 되어 머릿속이 미친듯이 사무친다. 그때 짐을 방으로 내던지지만 않았더라면, 조금의 짐은 가지고 왔을텐데.. 라는 후회가 게속 된다.

 

 미애원을 나가게 되면서 이제 행복만 남았다 라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힘든 일을 겪게 되면서 우리는 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미애원 나가기 전, 엄마가 우리에게 미애원에서 나가게 되면 미애원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 나이에 엄마와 빨리 살고 싶고 미애원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던 우리는 어떤 힘들이 와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몸소 경험했다.

 
작가의 말
 

 항상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후회없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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