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말이네!”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말리는 건 무슨 이유에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서 말이야!”
“아니든 기든 그것은 내가 정합니다! 비키세요!”
“그거 아나! 자네와 같은 이들 때문에 우리와 같은 ‘능력자’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걸 말이네!”
“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드러내고 싶으면 드러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요.”
“모두가 자네와 같은 줄 아는 건가! 자네처럼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말이네!!”
“아무렴 어떻습니까! 비키기나 하시죠!! 비키지 않으면!!”
“비키지 않으면 같이 베어버릴 거라 이 말인가?”
“……잘 아는군요. 시간이 없으니 비키세요.”
“그렇겠지, 시간이 없겠지. 원래 술래는 잡혀야 하는 거니까.”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
아니 들려선 안 된다기 보다는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가 현의 귀에 들려왔다.
기척은 느껴졌었다.
자신이 쳐 놓은 바람을 가르는 무언가들이 들어오고 있음을.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이곳의 평온함을, 고요함을 건드리려는 것들은 다 없애기로 마음먹었기에.
해서 두었다.
너무 자신했던 건지.
현은 입가를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여기에 왜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이들이 현의 눈에 보였다.
“……어찌 아셨습니까.”
옹은성은 재밌다는 얼굴 그대로 현의 물음에 답했다.
“왜, 모를 것 같았나?”
“……”
“미안하지만 흑풍. 황국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 거 아닌가? 사람이기 이전에 ‘능력자’란 모든 나라에선 자신의 나라의 ‘재산’이라 여기고 있지. 당연히 이 호황국도 예외가 될 수 없어. 그런데 흑풍이라는 아주 뛰어난 재산을 만들고 그 재산이 있는 사고 없는 사고를 하면서 그에 따르는 뒤치다꺼리를 그냥 해줄 만큼 황국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야. 충분히 알 지 않나?”
“……‘행사’라는 이름의 대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호~알기는 제대로 알고 있구만? 허면 이리 사고를 치고 여러 사람 불러들여 고생 시켰으면 고분고분하게 왔어야지. 이런 쓸데없는 힘자랑은 뭐하러하는 거냐. 설마 ‘행사’ 좀 했기로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이런 심본가?”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그에 함께 했던 붉은 향도 멈췄지만 바람이 사그라지면서 보이지 않았던 붉은 향의 뿌리가 보였다. 웃기게도 그러한 뿌리를 보고도 동요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익숙한 것인지 무시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옹은성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 현을 보았다.
현은 가라앉아버린 바람처럼 아무런 느낌이 보여 지지 않았다.
“뭐, 치기어린 애는 벗어난 모양이군.”
“……그래서 무엇을 말하시고자 함입니까.”
“본심을 얘기해줄까, 아님 흑심을 얘기해줄까?”
정말 분위기 깨는데 있어서 옹은성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현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긴 한숨을 내쉬고는 알아서하라는 듯 옹은성을 바라보았다.
현의 눈에서 온은성은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지만 입을 열었다.
“일단, 가는 걸로 하지. 이래가나 저래가나 똑같겠지만 적어도 황제폐하께서 하명하신 걸로 가는 것보단 나을 거다. 적어도 이런 승냥이들을 보여주지 않는 걸로 말이다.”
그러더니 언제 손에 쥐었는지 모를 노란 종이 몇 장을 핏물이 고여 있는 곳에 던지자 치익하며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에 현과 원씨 뿐만 아니라 같이 온 일원들도 신기하다는 눈빛을 지어보였다.
“아, 그건 이번에 ‘개발’한 거라고 하더군. 그 ‘통신석’처럼 말이야. 아니 ‘통신구’인가? 아무튼간 ‘주문’이 없어도 소유하고 있는 이의 ‘능력’만 인식하게끔 해놓으면 ‘능력자’들이 손쉽게 쓸 수 있다더군. 다만 단점이……이렇게, 종이이다 보니 약해서 감당 못하고 찢어져서 쉽게 유통이 되려면 좀 걸린다는 거지. 해서 이렇게 상급자 몇몇만 시험 삼아 몇 장 쥐어주더군. 사용 한 번 해보고 감상을 알려달라고. 그런데 내가 잘 갖고 나온 듯 하구만.”
“그렇군요. ‘얼음(氷)’의 능력자가 ‘불(火)’의 능력도 구사할 수 있다는 건 큰 전력이겠군요.”
“그렇지. 그 어떤 문헌에도 ‘능력자’가 자신 고유의 능력을 제외하곤 다른 능력을 사용했다는 건 없었으니. 아마 바람의 대륙 역사상 최초의 시도일 거다.”
꼭 그 자신이 개발한 듯이 열변을 토하는 옹은성이었다. 그런 옹은성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한 건 의외로 원씨였다.
“자, 자, 나라 자랑은 그 쯤 하시고 이 골치 덩이를 데려간다고?”
원씨에겐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던 모양이다.
★ 용어설명 ★
* 행사 - ‘천’에서 의뢰받아 하는 일을 할 때 쓰는 다른 말.
* 애향방 - 여자들이 몸을 건전하게 간판 걸고 파는 곳. 방주는 애향방의 주인입니다.
* 보천성 - 고려 시대에, 궁중의 공예품과 보물을 보관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조선 태조 때에 군자감으로 고쳤다…에서 따왔습니다. 하는 일은 비슷해요.(음, 그럼 아예 몽땅 갖고 온 것이 되려나;;;)
* 음지각 - 애향방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다만 음, ‘방’과 ‘각’의 차이이겠지만. 음지각은 애향방보단 좀 더 크고 넓은 의미로 똑같이 한 단체입니다. 각주 또한 방주와 같이 그 각의 주인이란 뜻입니다.
* 사냥꾼 - 뭐, 사냥꾼이라 함은 딱 하나밖에 없긴 합니다만 쓰기에 따라선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죠. 여기서는 ‘사냥꾼’이 그 자체의 뜻도 있으나 주로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어떤 단체보단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해결사’의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덫’은 ‘사냥꾼’이 쓰는 공격 방법입니다. 사람을 잡던 죽이던 하는.
* 북흑전 - 호 황국의 황궁을 중심으로 이러한 ‘전’들이 있습니다. 그 중 북흑전은 ‘흑천’이 머무는 곳입니다만 ‘천’들은 알려지면 안 되기에 ‘지’들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