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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슈퍼비틀
작가 : 백점토끼
작품등록일 : 2019.8.31

슈퍼비틀이라는 사슴벌레에서 발견한 당뇨병 완치제(GLP-K2 유사체)를 강탈하려는 일본과 한국 정보기관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집니다.

 
제32화 - 로보트 태권브이
작성일 : 19-10-18 16:32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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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을 떠날 때만 해도 자주 찾아 볼 것이라 다짐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수영을 낳고 바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할머니의 묘소를 찾는 횟수가 점점 줄어 들었다. 요즘은 설이나 추석 때에도 오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할매! 저 왔습니더."

 창정은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종이컵에 담긴 소주를 묘소 주변에 골고루 나눠 붓고 상석 위에 올린 새우깡을 잘게 부수어 멀리 던졌다. 창정은 봉분에 올라온 잡풀들을 몇 개 뜯다가 할머니 옆에 앉았다. 저 멀리 예전에 할머니가 일구시던 밭 자락이 보였다.

 '제가 참, 할매 속 마이 썩였지예!'

 

 * * *

 

 "병식아!"

 "와?"

 "이쪽으로 좀 더 온나."

 창정은 오른손에 사슴벌레를 쥐고 왼손으로 나뭇가지를 붙든 채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창정이 발을 디뎌야 할 지점에 병식이의 등이 닿지 않아 계속 발만 아래로 찔러보고 있었다.

 "왔는데?"

 "그런데 왜 발이 안닿는데?"

 "아닌데? 내가 등을 좀 더 들어볼게."

 "어! 됐다. 이제 닿는다."

 창정은 병식의 등을 밟고 무사히 땅바닥으로 내려왔다. 과연 엄청나게 큰 놈이었다.

 "오! 예쓰!"

 "오! 예!"

 창정과 병식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물 사슴벌레를 잡고 나니 다른 것들은 눈에 차지 않아 모두 놓아주었다. 둘은 이심전심 그 녀석의 이름을 로보트 태권브이'라고 지었다. 제일 멋지고 큰 사슴벌레를 잡으면 로보트 태권브이라고 이름을 짓기로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마에 커다란 V자를 단 최고의 로봇, 로보트 태권브이는 그들이 제일 좋아하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둘은 집으로 내려오는 동안 로보트 태권브이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다. 창정은 병식이가 엄마 몰래 훔쳐온 설탕물을 태권브이에게 먹여 가며 나무 들어올리기, 몸 뒤집기, 자갈 속에서 빠져나오기 등 온갖 고난도 훈련을 시켰다. 둘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학교 최고의 강자 '마징가'를 꺾고 사슴벌레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만호의 사슴벌레 마징가는 5학년이 된 이후로 아무도 이겨 본 아이들이 없는 무적의 사슴벌레였다. 마징가는 보통 사슴벌레 크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엄청난 덩치와 믿기지 않는 힘으로 도전자들의 허리와 목을 싹둑싹둑 잘라댔다. 둘은 거의 한달 밤을 산에 오르며 로보트 태권브이를 찾아냈고 결전의 날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니 내일 도전 받아줄 수 있나?"

 "언제든지!"

 "자!"

 창정은 100원짜리 동전을 만호에게 건넸다. 5원으로 문방구에서 과자를 사먹던 시절이라 100원은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 쉽게 만질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마징가에게 도전 기회를 얻기 위해 파이터 머니를 지불하거나 만호가 원하는 물건, 예를 들면 딱지, 병뚜껑 등을 손에 쥐어 주어야만 했다.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파이터 머니는 고스란히 마징가의 몫이 되는 게 규칙이었다. 창정은 만호가 정해놓은 파이터 머니를 마련하기 위해 할머니의 주머니에서 100원을 훔쳤고 그 대가로 할머니의 빗자루 몽둥이를 수 없이 맞았다.

 "됐제?"

 "어디서 할래? 장소는 니가 정해라."

 "학교 마치고 조회대에서 하자."

 "정확하게 몇 시?"

 "4시 됐나?"

 "어! 됐다!"

 창정은 만호와 챔피언 결정전 조인식을 끝냈다. 창정과 병식이는 이 번 만은 자신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훈련과 영양식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둘이 본 사슴벌레 중에서 제일 큰 놈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학교를 마친 후 병식이는 로보트 태권브이를 가지러 자기 집으로 갔다. 창정도 마루 위에 가방을 집어던져 놓고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니 어디 가는데?"

 "……."

 할머니는 옆집 아저씨에게서 리어카를 빌려오는 길에 집에서 뛰어 나오는 창정을 만났다.

 "이놈의 새끼! 할매는 쌔가 빠지게 일한다고 온 만신이 쑤tu 죽겠는데 니는 맨 날 쳐 놀로만 다니냐? 커서 뭐 될라꼬?"

 "……."

 "밭에 가자."

 할머니를 따라 밭에 일을 하러 가면 창정은 할머니가 일을 할 동안 맨 날 커다란 일개미를 잡아 싸움을 붙이며 놀았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고 나면 리어카에 수확물을 싣거나 집에 올 때 할머니 뒤에서 리어카를 잡아주는 게 자신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밭에서 내려오는 길이 가팔랐기 때문에 짐을 많이 실었을 때는 반드시 리어카를 뒤에서 잘 잡아줘야 했다.

 "지금 학교 가야 되는 데예. 선생님이 오라했어예."

 "니 또 일하기 싫어서 거짓말 하는 기제?"

 "아니라예! 선생님이 교실 청소한다꼬 우리 반 아들 다 오라했어예. 진짜라예. 딴 아들은 벌써 다 갔어예."

 창정이 하도 발을 동동 구르며 정색을 하자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보내주었다.

 "그라모 빨리 갔다가 밭으로 온나이? 알았나? 딴데 가지 말고 바로 온나이?"

 "예!"

 창정은 할머니의 허락을 받은 후 고무신을 벗어 들고 학교로 뛰어갔다. 할머니는 밭에 난 풀을 매고 난 후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화장실 옆 거름자리에 모아 두려고 리어카를 빌려온 것이었다. 거름자리에 풀이나 볏집을 쌓아놓고 똥이나 오줌을 뿌린 후 삭히면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잠시 후, 운동장 조회대에는 이미 1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사슴벌레는?"

 "병식이가 갖고 올끼다."

 "병식이가 니 쫄뱅이가? 하하하!"

 만호에게 붙어 호의호식하는 아이들이 비웃었다.

 '너것들은 오늘 끝인 줄 알아라!'

 만호는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병식이가 오기 전부터 마징가를 꺼내 놓고 온갖 세리모니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병식이가 나무 곽으로 된 성냥 통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함 보자!"

 만호는 도전자의 모습이 궁금한 듯 성냥 통에 든 사슴벌레를 보여 달라고 했다. 창정은 조심스럽게 성냥 통 뚜껑을 열고 로보트 태권브이를 꺼냈다. 마징가 앞에 내려놓으니 누가 더 큰 지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창정은 만호의 눈을 살짝 쳐다보았다.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마 이정도로 커다란 맞수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시작하자!"

 창정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도전을 알렸다.

 "자자! 지금부터 동양 미들급 타이틀 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을 자처하는 훈식이가 바람을 잡았다. 무늬만 심판이지 사실상 만호의 똘마니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 때 당시 박종팔 선수가 미들급 동양타이틀 챔피언을 하고 있을 때라 아이들은 장난으로 권투를 할 때나 진짜 싸움을 할 때도 항상 동양 미들급 타이틀 매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청코나~ 체중~ 모르고~ 키~ 모르고~ 빵승 빵무 빵패~ 도전자~로보트~태권~부이~."

 창정과 병식을 뺀 모든 아이들이 체중 모르고, 키 모르고, 빵승, 빵무, 빵패라는 훈식의 말에 배를 잡고 웃으며 뒤집어졌다. 창정도 솔직히 웃음이 나왔지만 혓바닥을 꾹 깨물고 참아냈다.

 "홍코나~ 체중~ 100키로~ 키~ 170~ 25전~ 25승~ 무패~ 동양 미들급 챔피온~ 마징가~ 제트~."

 "와! 와!"

 아이들은 환호했고 만호는 마징가를 손으로 잡고 마치 권투선수가 인사를 하듯 네 방향을 향해 인사를 시켰다.

 "자! 대라!"

 창정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꼬리를 만호 쪽으로 향하게 한 후 조회대 위에 놓았다. 챔피언이 선공을 하도록 도전자는 허리를 대 주는 것이 경기 규칙이었다. 경기 중에 도전자가 챔피언의 공격에서 빠져 나오거나 둘 다 뒤집어 지면 그 때부터는 정면으로 승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창정과 병식은 일단 로보트 태권브이가 마징가를 등에 업은 상태에서 뒤집은 후 동일한 조건에서 맞붙는 전략을 짰다. 그래서 무거운 물건을 로보트 태권브이의 배에 올려놓고 뒤집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마징가의 첫 공격에 몇 발 걸어보지도 못하고 허리가 잘려나간 사슴벌레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창정은 로보트 태권브이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슴부위를 잡고 마징가의 공격을 기다렸다. 만호는 마징가의 분노게이지가 최고치에 다다를 때까지 아랫배와 등을 사정없이 간질이더니 로보트 태권브이 위에 얹어 놓았다. 마징가는 무쇠 같은 턱으로 로보트 태권브이의 허리를 꽉 집었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필사적으로 몸을 바둥거렸으나 워낙 마징가의 몸집이 크고 싸움에 이골이 난 놈이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공격! 공격!"

 "잘라삐라!"

 "죽이라! 죽이라!"

 야만적인 아이들의 구호에 맞서 창정도 로보트 태권브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나 날아 태권브이!"

 병식이는 엉겹결에 창정을 따라 노래를 불렀고 만호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더 큰 소리로 둘의 응원가에 대항했다. 마징가의 노련한 공격이 생각보다 강했는지 로보트 태권브이는 뒤집기를 포기하고 마징가를 등에 업은 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허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로보트 태권브이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병식의 얼굴은 찌그러져 있었다.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창정은 온 힘을 쏟아 로보트 태권브이를 응원했다. 로보트 태권브이도 창정의 응원이 힘이 되었는지 제법 힘을 쓰는 듯 보였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마징가를 떨쳐내려 하였고 마징가는 필사적으로 뒷다리를 쭉 뻗으며 선공을 유지하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징가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로보트 태권브이의 두 눈에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마징가를 응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불안함 묻어나기 시작했다.

 '됐어!'

 기회를 이리저리 엿보던 로보트 태권브이는 마징가가 턱을 잠시 풀었다가 다시 잡으려는 순간 몸을 재빠르게 일으켰다. 털보 씨름선수 이승삼의 환상적인 뒤집기가 연상되는 로보트 태권브이의 역공이었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힘찬 뒤집기에 놀란 마징가는 중심을 잃었고 둘은 두어 바퀴를 구르더니 조회대 아래로 떨어졌다. 둘은 다 같이 조회대 아래를 쳐다 보았다. 로보트 태권브이와 마징가는 누런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멀찌감치 떨어져 뒤집혀 있었다.

 "……."

 정적이 흘렀다. 창정과 병식이는 마음속으로 엄청난 환호를 질렀다. 만호와 똘마니들은 믿기 힘든 광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반칙!"

 만호가 돌연 '반칙'이라는 말을 내 뱉고 조회대 아래로 내려갔다.

 "뭐가 반칙인데?"

 "이기 마징가를 밖으로 밀었으니까 반칙이지."

 창정은 어이가 없었다. 그건 반칙이 아니고 '중지', '정지'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창정은 그 때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오징어나 사다리타기 놀이를 할 때 뭔가 잘못되면 무조건 '반칙'이라는 말로 그 상황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이다, 같이 싸우다 떨어졌는데 왜 반칙이고?"

 병식이 항의했다.

 "내가 아까 떨어질 때 보니까 마징가가 로보트 태권브이 위에 있더라. 니 안 봤나?"

 "어! 나도 봤다. 로보트 태권브이가 마징가한테 깔려서 떨어지더라."

 만호의 똘마니들은 마징가가 유리한 쪽으로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창정은 분통이 터졌다.

 "그런게 어딨는데? 로보트 태권브이가 마징가를 뒤집어서 떨어졌으니까 우리가 이긴 거지."

 "그러면, 훈식이가 결정하면 되겠네. 훈식이가 심판이니까."

 만호는 심판 훈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어, 갑자기 떨어져 가지고 내가 자세히 못봤는데……."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하면 되겠네?"

 만호의 주위에 있던 누군가가 바람을 잡았다.

 "어, 어, 처음부터 다시 하자. 그러면 되겠네."

 누가 봐도 로보트 태권브이가 마징가의 공격을 떨쳐낸 후 조회대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훈식이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승기를 잡은 상황을 인정해야 했지만 만호가 안겨준 심판이라는 자리 값을 하려는 눈치였다.

 "나 안할끼다. 마징가가 떨어졌는데 와 처음부터 다시 하는데?"

 창정은 이들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의 턱에 로보트 태권브이의 허리를 다시 내놓을 수 없었다.

 "내 돈 조라!"

 "못준다!"

 "비겼다 아이가?"

 "비기기는 뭐가 비겼는데? 심판이 다시 하라 안하나?"

 만호는 100원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미 똘마니들에게 맛있는 쫄쫄이를 뿌렸을 수도 있었다.

 "빨리 조라! 우리 할매 돈이다."

 "못주겠다! 이겨서 가지 가든가 니 맘대로 해라!"

 창정은 병식이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우짜꼬 병식아?"

 "진짜 나쁘제?"

 창정은 병식에게서 저 친구들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100원을 포기하고 로보트 태권브이를 살릴지, 100원을 찾기 위해 로보트 태권브이를 다시 전장에 내 보낼 지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었다.

 "니 아까 봤나?"

 "뭐?"

 "저 위에서 떨어질 때 마징가 완전 힘빠진 거 같던데?"

 "어! 완전 힘빠진 거 같더라."

 창정은 조금 전 상황에서 마징가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봤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면 로보트 태권브이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좋다! 다시 하자!"

 창정은 다시 조회대에 올랐고 로보트 태권브이에 묻은 흙먼지를 툴툴 턴 후 만호쪽으로 배를 갖다 댔다. 만호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마징가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간질이더니 로보트 태권브이 위에 얹었다. 독이 잔뜩 오른 마징가는 온힘을 턱에 모아 로보트 태권브이의 허리를 꽉 집더니 로보트 태권브이 위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와!"

 마징가의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사슴벌레 싸움에서 최고의 장면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마징가에게 제대로 물렸는지 꼼짝도 못하고 창정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더듬이만 까딱거렸다. 조회대에서 떨어지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보트 태권브이의 엄청난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창정의 귓가에는 사자에게 사냥당한 물소가 죽기 전에 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징가는 승기를 잡은 듯 로보트 태권브이의 등 위에 앉았다 물구나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럴 때 마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조금이라도 덜 아픈 쪽으로 몸의 위치를 잡으려는 듯 다리를 움직여가며 방향을 틀기만했다.

 "야!"

 "이깄다!"

 "하이팅!"

 갑자기 마징가의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징가~ 승리!"

 훈식이가 마징가의 승리를 외치는 순간 마징가는 로보트 태권브이의 끊어진 상체안쪽 질퍽거리는 살덩어리에서 자신의 턱을 꺼내고 있었다.

 "마징가 만세! 만세!"

 마징가의 아이들은 미친 듯이 뜀박질을 하며 운동장을 달려 나갔다. 창정과 병식 둘만 남은 조회대에는 두 동강이 난 로보트 태권브이가 다리를 바둥거리고 있었다. 창정은 할머니에게서 훔쳐온 돈도, 로보트 태권브이도 모두 잃고 말았다.

 "씨발 새끼들 진짜 나쁘다. 아까 떨어졌을 때 우리가 이깄는데……."

 병식이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듯 욕을 내뱉았다. 창정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두 동강 난 사체를 집어 들었다.

 "우리, 묻어 주러 가자."

 둘은 로보트 태권브이를 묻을 만한 장소를 고민했고 자주 가는 냇가에 돌무덤을 만들기로 했다. 물이 불어나도 떠내려가지 않을 만한 곳에 땅을 파고 바닥에 넓은 돌을 깔았다. 창정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두동간난 몸을 하나로 합체시켰다. 하지만 로보트 태권브이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돌 위에 로보트 태권브이를 놓고 냇가에서 주워온 작고 아담한 돌멩이들을 그 위에 쌓았다. 마징가를 물리칠 생각만으로 로보트 태권브이와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둘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회대 밖으로 떨어졌을 때 경기를 포기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기운을 회복한 후에 다시 도전을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창정아! 우리 또 잡으러 갈래?"

 병식은 창정에게 사슴벌레를 잡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창정은 기꺼이 동의했다. 둘의 처참한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강한 로보트 태권브이를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병식은 집에 가서 엄마 몰래 손전등을 가져 왔고 둘은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가마솥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산으로 향했다.

 "이번에 잡는 것도 로보트 태권브이로 하자 알았재?"

 "당연하지! 무조건 로보트 태권브이다."

 "로보트 태권브이 1호, 2호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그자?"

 "어! 오늘 잡으면 로보트 태권브이 2호!"

 둘은 새로운 기대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두 시간이 넘게 로보트 태권브이 2호를 찾아보았지만 허탕을 쳤다. 예전에 로보트 태권브이 1호를 잡은 곳에도 가 보았지만 둘의 기대를 충족할만한 용맹스러운 사슴벌레는 없었다. 둘은 다음날 설탕물을 준비해서 다시 산으로 오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갔다.

 날은 완전히 저물어 동네에는 어둠이 자욱했다. 해가 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쓸쓸했다. 특히 딱지를 모두 잃거나 친구들과의 싸움에서 지고 올 때는 더욱 그랬다.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데 웬일로 마루와 마당에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전기세 아낀다고 할머니는 거의 불을 켜지 않고 생활을 하셨다. 원래 마당에는 전깃불도 없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불만 훤하게 켜진 것이 아니라 마루와 마당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무슨 일이지?'

 마당 위를 가로지르는 하얀색 전선들과 군데군데 달린 백열등이 창정을 맞이했다. 창정은 초조한 마음으로 천천히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을 반쯤 걸어 들어가면 할머니가 부엌에서 갑자기 나와 '밥도 안 쳐묵고 머한다꼬 싸돌아 댕기냐!' 라며 고함을 치셔야 하는데 오늘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고, 창정이 왔네. 우짜꼬!"

 옆집 아주머니가 흐느끼며 창정에게 말했다.

 "여보! 경석이 아빠요! 창정이 왔십니더."

 방에서 옆집 아저씨가 나왔다.

 "니는 어디 돌아댕기다 이제 오냐? 어?"

 아재는 몹시 화가 난 듯 보였다.

 "빨리 들어 온나!"

 동네 사람들은 창정을 계속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짜면 좋을꼬? 저리 어린 걸 놔 두고……."

 "뭐한다꼬 칠순 노인네가 리아카를 끌고 거기를 내려왔단 말이고, 아이고 참 보통일이 아이다. 창정이 부모도 없는데……."

 창정은 자신의 집 마당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신발을 벗고 마루를 오르기가 두려웠다. 창정은 벌써 코를 씰룩거리며 울고 있었다.

 "어서 들어 온나."

 옆집 아저씨는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창정에게 손짓하더니 창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창정에게 말했다.

 "창정아, 절해라. 할매요! 흑흑! 창정이 왔십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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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9화 - 납치 2019 / 9 / 16 188 0 1586   
9 제8화 - 신주쿠스시 2019 / 9 / 11 213 0 3181   
8 제7화 - 청와대 2019 / 9 / 9 199 0 2104   
7 제6화 - 박유진 연구원 2019 / 9 / 8 213 0 4185   
6 제5화 - 일본 수상 관저 2019 / 9 / 2 191 0 2040   
5 제4화 - 국가생물종연구소 2019 / 9 / 2 193 0 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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