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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바람의 향기
작가 : 향이
작품등록일 : 2019.10.10

 
숨바꼭질 -9-
작성일 : 19-10-18 15:48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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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자신들의 모습들을 지루하게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두 인영(人影).

  하나는 덩치가 제법 있었고 하나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진, 상반된 느낌을 주는 이들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모양인지 호리호리한 체격의 인영이 지루함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붙을 거면 좀 붙던가. 무슨 장승도 아니고 제자리에서 대체 몇 시간을 꼼작도 안는 거야. 지겨워 죽겠네.”

 

  그에 덩치가 있는 이가 체격과는 다른 빠른 말투로 지겨움을 한가득 뿜어내고 있는 호리호리한 인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지겹긴 마찬가지네만, 자네 좀 참을성이 부족한 듯 하이. 그래가지고는 어디 무슨 일 하나 제대로 하겠는가? 가진 능력은 좀 있어 보이네만 영 마뜩찮단 말일세. 좀, 남자라면.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것이라도 있어야지 생긴 건 무슨 계집애 저리가라처럼 생겨가지고는…쯧쯧-대체 자넨 목소리만 남자지 생긴 거나 성격이나 계집애도 아니고 뭐, 이것저것 섞어 만들어놓은 인형 같아서 별로야. 마음 같아서는 훈련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건 원판이 계집애 저리가라라 훈련해도 남자 같지는 않겠어.”

 

  꿈틀-

  살짝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가며 호리호리한 이가 동안 담아뒀던 듯 빠르게 말했다.

 

  “……아, 예. 그러십니까? 나도 아.저.씨.가 마음에 썩 드는 건 아닙니다만. 덩치 값 좀 하시죠. 그만한 덩치에 그렇게 빠른 말투라니.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요? 거기다가 나이도 살인적이시더군요. 말이나 됩니까? 서른네 살이라니. 뭐, 내가 아는 어떤 이보단 대단하지는 않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대단해서요. 아무리 봐도 말이죠, 오십은 되어 보인다는 겁니다. 오십이나 되신 아.저.씨.말이죠, 아.저.씨.”

 

  또박또박 나름 중요하다 생각하는 단어를 강조하며 호리호리한 이가 생긋 웃어 보였다.

 

  “어디 가서 서른네 살이라고 하지 마세요. 몰매 맞을 겁니다, 아.저.씨.”

 

  꿈틀꿈틀-

  덩치 있는 이의 주먹이 한순간 꽉 쥐어졌다.

  그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자네가 이러는 거, 나리는 아나? 이걸 보여줘야 하는데 정말 아깝군, 아까워!! 너무 아까워서 주먹이 운다네. 어허허허허허허!!!!”

 

  “나리요? 아하하하하!! 당연히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닐 텐데요? 옆집 원씨라는 친근한 이웃의 정체가 사실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라는 걸 안다면 나보단 더 실망이 클 걸 알고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류가 튀는 듯한 착각이 일정도로 둘은 쉽게 자신들이 누군지 알게 해주었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히 신경전을 벌였다.

  그 때 무언가를 느낀 듯 한 곳에 시선을 주다가 다시 거둔 원씨가 현을 보았다.

 

  “……뭐, 그건 나중에 얘기토록 하지. 지금은 급한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그리곤 휑하니 고개를 돌려 원씨가 잠깐 보았던 곳에 시선을 둔 현이 손짓했다.

  바람이 분다고 느껴질 만큼 한순간 바람이 원씨를 스쳐지나갔다. 그 스쳐 지나감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원씨는 마지막 행선지를 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걱-파락-

  무언가 잘렸다.

  그럼에도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 건 훈련이 잘된 이인가 아님 지독한 수행에서 얻은 결과인지 그것도 아님……

  어떠한 것일지 생각하는 원씨의 귀에 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동안 저런 목소리를 낸 적도 들을 기회도 없었던 터라 원씨는 현이 조금 새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 뿐이다.

  원씨 자신에겐 맡겨진 그 ‘무언가’를 제외한 다른 것들을 담을만한 공간이 없었기에.

  그래서 그는 다시 무감각한 시선으로 현을 보았다.

 

  “그렇게 인기척도 없이 다가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텐데, 죽어도 괜찮나보지? 뭐-몰랐던 모양이니까 그 정도로 봐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자기소개를 먼저 하도록 해. 알았어?”

 

  현은 쌓인 게 많았다.

  욕정이든 불만이든 뭐든 간.

  그러니 눈앞에 거슬리는 게 적이든 아군이든 호의적일리가 없었다. 그걸 모르는 이가 불쌍할 따름일 뿐.

  대답 없이 풀숲에서 나오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현이 다시 손을 휘저으려던 순간 원씨가 말했다.

 

  “…그렇게 겁주면 무서워서 나오겠나?”

 

  “그럼 직접 하시던가요.”

 

  “쯧쯧-무슨 젊은애가 기다림도 없어, 기다림도.”

 

  “날 보고 말하시죠. 어딜 보고 말하시는 겁니까?”

 

  “뭐, 딱히 자넬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네. 세간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향한 내 마음이지.”

 

  “아, 그러십니까? 하! 그런데 너는 정체도 안 밝히고 그대로 도망가시려고?”

 

  살짝 풀숲이 흔들렸다가 멈췄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풍박!”

 

  “으윽!!”

 

  첫 번에는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상처를 건드린 건지 때맞춰 소리가 들렸고 현은 비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 빈정거렸다.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도망칠 생각을 하는 거겠습니까?”

 

  자신을 보며 말하는 현의 모습에 원씨의 두터운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내가 우스워서 저 놈이 도망을 치려고 한다고?”

 

  “아니면 뭐겠습니까?”

 

  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지만 원씨는 저런 어린애와 쓸데없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 하에 깊숙이 눌러 내려 참았다. 그에 따른 그의 행동은 현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무언가에 묶인 듯 허공에 떠있는 이를 향했다.

  물론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원씨는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자신이 ‘능력자’인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그저 ‘능력자’가 쓰는 ‘능력’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거기서 눈앞의 무언가는 ‘바람’일 것이다. 보이지 않게 묶는 것들 중엔 ‘소리’도 있고 ‘공기’도 있고 ‘바람’도 있을 수 있다. 또는……전설 속에서나 전해질 법한 ‘의지’, 그 자체만으로도 묶을 수 있다고 하지만 보지도 못했고 그저 전해지는 이야기라 신빙성은 없어보였다.

  여하튼 느껴지는 것으론 ‘바람’이다.

  그 바람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고 어깨 부분이 깊게 베여 피가 흥건한 것이 짓눌려 신음하는 모양이었다. 원씨는 신음을 흘리는 이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자 의문점이 들었다.

  이상하다.

  알 것도 같은 얼굴인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가득 짖고 있는 현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씨는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허공에 떠있는 이가 더욱 신음을 흘린다는 것 또한 인식하지 못하고.

 

  ‘것 참, 낯익은 얼굴인데…누구더라. 으흠~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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