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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6
작성일 : 19-10-18 08:49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1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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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하려고 일어서서 주문하는 곳까지 걸어가는 연초희를 쳐다보았다. 카페에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 사람이 없는 탓에 그녀가 벨을 들고 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진동이 울렸다. 연두가 일어섰지만, 그녀는 자기가 가져오겠다고 하더니 연두 어깨를 눌러 앉혀놓고 쟁반을 들고 왔다.

 “고마워.”

 연초희는 말없이 웃으면서 머핀을 포크로 떼어먹었다.

 “연두야, 아침 먹었어?”

 “아침?”

 “아, 난 아침 먹고 나왔거든. 근데 요즘 아침 먹는 애들 별로 없잖아. 넌 지각을 자주하니까, 아침은 먹고 다니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 좀 놀라웠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녀는 이것저것 계속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말하기도 했다. 연두 역시 그녀에게 대답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대화 내용은 대부분이 서로의 생활패턴에 관해서였다. 그러다 초희와 음악 감상 교수 험담을 하면서 신나게 웃고 떠들 때였다. 연두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떨다 보니 언제간지 모르게 순식간에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는지 남은 시간이 고작 15분 정도였다.

 “초희야, 이제 그만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시간 거의 다 됐어.”

 “벌써? 아, 들어가기 싫다. 근데 여기 연유머핀, 먹을 때마다 맛있단 말이야. 너도 다음에 먹어봐. 진짜 맛있어.”

 “이미 나도 먹어봤어. 응. 맛있더라.”

 “아, 이미 먹어봤구나.”

 초희는 킥킥대면서 말했다.

 “근데 연두야. 먼저 들어가. 나 잠깐 들를 데 있어.”

 “지각할지도 모르는데. 강의실까지 꽤 멀어.”

 “알아. 걱정 마. 시간 별로 안 걸려. 바로 갈 거야.”

 “알았어.”

 “응. 먼저 가.”

 카페에서 나와 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초희 쪽을 쳐다보았는데, 반대쪽으로 돌아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고나서 초희는 그대로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강의가 시작되고 십 분, 이십 분, 한 시간 반이 지나고 강의가 끝날 때까지도 초희는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여태 들어오지 않은 건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가기 전에 잠깐 출석 좀 부르자.”

 어쩔 수 없었다. 초희는 이제 꼼짝없이 지각 아니면 결석이었다. 교수님은 차례차례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성은, 네, 유이선, 네, 조연수, 네, …진연두, 네, …최재민, 최재민.

 “최재민 안 왔어?”

 최재민이 끝이었다. 이상했다. 잘못 들었는지 못 듣고 놓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교수님에게 뭐라고 말할지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떠올리면서 초희 이름이 불릴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초희’라는 이름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연두는 옆자리에 앉아있는 유이선에게 물어보았다.

 “연초희 출석 불렀어?”

 “연초희? 그게 누구야? 우리 과?”

 “초희 몰라? 우리 과잖아.”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런 애는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 과에 연초희라는 애는 없어. 다른 과 애를 착각한 거 아냐?”

 지금 듣고 있는 건 전공과목인데 다른 과 학생이 일부러 신청해 듣는다?

 

 초희에게 연락해볼까 했지만, 아직 초희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이래서는 따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강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도 초희는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꼭 들어오겠다고 하더니 무슨 일인지 신경이 쓰였다. 카페에서 나와 어디론가 다급하게 뛰어가던 초희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잠깐 어디 들렀다가 바로 갈 거라고 했는데.

 쨍. 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도서관건물 앞. 끝나면 바로 와.’ 초희에게 어떻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는 건 다음 시간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달리 방법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연두는 지수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35. 기억

 

 찰칵.

 

 지수가 기다리고 있을 건물 앞으로 가는 도중에 ‘오후 두 시 예약’이라는 메모를 떠올렸다. 그 메모를 어디서 보았는지 갑작스럽게 뜬금없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먹었던 기억이 전부 떠오른 순간 그 자리에서 멈췄다. 연두는 가방을 뒤져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 수첩 첫 장에서 봤는데, 대체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 메모에 대한 기억을 집에서 떠올렸을 때 여기저기 다 찾아다니면서 뒤지고 물론 가방 안까지 뒤지고 탈탈 털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들 중 분명 이 수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도 못 알아봤다니, 어쨌거나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수첩 표지를 넘기자, 첫 장에 그 메모가 나타났다.

 오후 두 시 예약.

 아직도 기억이 안 나. 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면 지나간 후라도 언젠가 기억나겠지.

 연두는 마음을 좀 느긋하게 갖기로 했다. 억지로 떠올리고 기억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기억이 안 나는 것 같고, 그 때문에 더 괴로울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건물로 들어서는 계단 위에 서있어야 할 지수는 그 근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추워서 안으로 들어간 건가 싶었다. 그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찾아보았다. 1층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없었다. 연두는 계단을 올라가며 지수를 찾아보았다. 이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등을 보인 채 돌아서서 통화 중인 지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깜짝 놀라게 할 생각으로 발뒤꿈치를 바싹 들고서 발끝만으로 소리가 나지 않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좀 더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연두는 망설이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는데도, 낮게 깔리는 목소리 때문인지 통화를 하는 지수는 자못 심각해 보였다. 지수가 목소리를 무겁게 내리깔며 작게 말하는 탓에 뭐라고 하는지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라앉은 목소리 때문인지 통화하는 중인 지수모습은 정말로 더 심각하게만 느껴졌다. 연두는 놀라게 해주려고 살금살금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데 그때 의도하지 않게, 지수가 말하는 내용 일부가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그건 왜.”

 왠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가 평소와 많이 다르지는 않았다. 지수가 말을 마치고 무언가,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불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리고 뭉개진 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끊기자, 지수가 다시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네 멋대로 그렇게 한다고? 박사님이 아니더라도, 교수님보다 먼저 일단 내가 가만 안 둘 거니까.”

 지수는 이 말을 끝으로 수화기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를 무시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더니 연두 쪽으로 돌아서면서 아무렇지 않게 연두를 불렀다. 마치 연두가 몇 계단 아래쪽에 서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정말 당황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늦어?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뭐가. 끝나고 바로 왔는데.”

 강의 끝나는 시간이 5시. 시계는 5:17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내가 더 일찍 끝나는데 17분이나 여기서 기다렸잖아.”

 “누가 기다리래?”

 정말 어이가 없었다. 누가 기다리라고 하지도 않았고, 도서관에 있다고 끝났으면 오라고 그것도 강의 끝나고 나서 문자한 사람이 누군데.

 

 찰칵.

 

 “더 일찍 끝나서 기다렸다니 무슨 소리야.”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 참, 어제 빌린 책 읽어 봤어? 설마 한 줄 읽다가 잔 거 아냐?”

 반 층 위에 도서관 입구를 올려다보며 지수가 물었다. 그런데 어제 빌렸다는 책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빌린 책?”

 “그래. 네가 베고 자다가 나갈 때 빌린 책 있잖아. 설마, 꺼내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방 안에 있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기억나지 않는다.

 지수 말을 들으며 계속 뭘 빌렸는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봐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모르겠다. 불안했다. 대체 무슨 책을 빌린 것인지, 반납기한은 어떻게 되는지 당장 확인해야했다.

 

 “제 이름으로 책을 빌렸는데, 반납은 언제 해야 되는지, 책 제목이 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진연두요.”

 “음, 빌리신 책 제목이, ‘상아’고요, 기한은 10월18일까지입니다.”

 상아.

 “저기, 그 책 소설이에요?”

 “네.”

 옆에서 보고 있던 지수가 끼어들었다.

 “정말 아예 펴보지도 않았나보네. 책 빌려갔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거야? 혹시 요새 머리 아프거나 그래?”

 “안 아파.”

 

 이렇게 도서관에 와서 물어보고 확실히 대답까지 들었는데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상아를 알고 있었다. 왠지, 어렴풋이, 책을 빌렸던 기억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책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고, 상아도 그 이름만이 익숙했다.

 상아는 아마도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이름 아닐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 뒤를 지수가 별 다른 말없이 따라 나왔다. 조용히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가면서 지수에게 물어보았다.

 “지수야, 혹시 상아라는 사람 누군지 알겠어?”

 “상아? 네가 빌린 책 제목이라며.”

 “그러니까.”

 “당연히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혹시, 초희는? 지수가 초희를 알지 않을까?

 초희는 음악 감상 강의를 듣는다고 했었다. 그러니 어쩌면 지수가 알지도 모른다.

 “지수야, 그럼 혹시 연초희라는 애는 알아? 음악 감상 강의 듣는다고 하던데.”

 “연초희라고?”

 “응. 혹시 알아?”

 “아니, 모르겠어. 처음 들어보는데.”

 초희를 아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지수 목소리는 어쩌면 그보다 한참 전부터 이미, 왠지 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런데 지수가 한 번 더 분명하고 단호하게 딱 잘라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없다니까. 갑자기 그런 건 왜.”

 “아니, 오늘 결석했는데, 강의 시작하기 전까지 쭉 같이 있었거든. 카페에서 얘기하다가 시간이 거의 다 돼서 가야 된다고 했더니, 잠깐 어디 들러야 한다고 먼저 가라는 거야. 그래서 그냥 먼저 들어갔는데, 강의 끝날 때까지 안 들어왔어. 금방 간다고 했는데.”

 “같은 과라고?”

 “잘 모르겠어. 아닌 것 같아.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모르는 애라고 했거든.”

 미간을 찌푸리면서 지수는 살짝 인상을 썼다.

 “무슨 과인지도 몰라?”

 “아, 그게, 강의 전에 카페에서 어쩌다보니까 갑자기 친해지게 된 사이라서.”

 “잠깐. 근데, 우리 지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어느새 계단을 다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와서 서있었다. 여태 연두는 어디 서있는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감기 들려고 그러나. 으슬으슬하다. 얼른 낫지도 않을 것 같은데.”

 “감기? 감기 걸릴 것 같다고?”

 “응, 왜?”

 “아니,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연두도 지수도 별 말없이 조용히 걷기만 했다. 아무래도 어딘지 모르게 은근히 험악한 분위기였던 통화를 하고나서부터 지수 기분이 쭉 안 좋은 상태인 것 같았다.

 

 좌우로 곧게 뻗은 큰 도로 앞까지 지수와 같이 걸어갔다. 인사를 하고, 연두는 오른쪽으로 지수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걸으면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에 올라타서, 버스 안에서, 벨을 누르면서, 멈춰선 버스에서 내려서서, 횡단보도 앞에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떠올리려고 찾아내고 기억해내려고 머릿속을 헤집고 뒤졌다. 어디에 있는지 기억 속을 더듬고 또 더듬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마치 한바탕 쓸어내고 말끔하게 비워내 휑해진 방 같았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머리에서 열나는 것 같아.

 집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는 집처럼 연두 속도 텅텅 비어 있었고, 피곤했다. 목 아래 깊은 곳에서 무겁게 무언가 떨어지려는 것 같았다. 축축 늘어지는 몸뚱이를 침대 쪽으로 끌고 가서 매트리스에 걸쳤다가 그 위로 기어오르듯 누웠다. 그리고 곧 무게에 지치고 피로에 지쳐서 잠들고 말았다.

 

 

 36. 어떤 장소에서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안 보이는 시야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보였다면 시야가 밝고 환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정말 어색했을 것 같았다. 등에 닿는 감촉이 차갑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이건 연두 방에 두고 쓰는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가 아니었다.

 이 느낌은 마치, 맞아. 병원에 있는 것 같아.

 손으로 좌우를 더듬어 만져보려고 했지만,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팔이 있는지 없는지도 느낄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상태가 어떨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뭔가 하나라도 움직여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오로지 뒤통수와 등의 일부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뒤통수와 등에 느껴지는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감각이었다.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었고, 좀 차갑다는 걸 제외한다면 등과 뒤통수에 닿는 감촉 또한 꽤 편안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눈을 떠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시력을 잃은 건지 사방이 깜깜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재 볼 수 없는 상태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청각과 후각 또한 잃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했다. 침대에 몸을 비벼봄으로써 스윽스윽 소리가 나게 하여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등과 뒤통수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등과 뒤통수를 대고 있는 그 어딘가에 그대로 붙어 있는 채였다. 좀 차갑고 단단한 편이지만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고 느끼기 밖에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꿈 아닐까. 자각몽일지도 몰라. 자각몽이라. 신기하다.

 문제라면, 자각몽은 자각몽이되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밖에 전혀 움직일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 꿈인지 모르고 그냥 꾸는 꿈처럼 시야도 환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마르지 않도록 눈 깜빡거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후 두 시 예약’과 ‘상아’를 떠올렸다. 그거라면 눈뜨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머리를 쥐어짜낼 기세로 생각하고 있었고, 생각해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또 떠올라서 꿈속에서까지 기억해내려 노력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 메모는 연두가 써놓은 게 아니고 책 또한 도서관에서 들은 대로 정말 빌린 적 없는 건 아닐까, 혹은 연두가 한 게 맞더라도 알고 보면 실상 신경 써서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각몽을 꾸고 있는데, 그 꿈속에서까지 그걸 기억해내려 하고 있다니.

 그때, 시야에 서서히 회색이 나타나 번지면서 출렁거리는 수은처럼 물결치기 시작했다.

 천천히 어느 한 지점에서 번져 나오는 모양으로 마치 불빛 같은 암회색이 조금 더 밝게, 점점 더 밝아지는 회색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조금 더 밝은 회색으로 점점 밝아지면서 그럴수록 그 위로 파랑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다음 희미하게 여러 가닥 선으로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밝은 곳은 마치 청색전등이 켜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까만색 탁한 가루를 전체에 흩뿌려놓은 것 같은 시야는 지독히도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을 보고 있는 듯했다. 형태가 드러나 보이고 있었지만 청색전등 옆으로 뻗어나가다 굽어져나가는 선이 흐리게 서너 개쯤 나타난 정도였다. 굉장히 신경 써서 살펴봐야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희미했다. 물결치듯이 드러나는 명암과 희미하게 스며든 청색으로 인해 얼룩진 모습밖에는 알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 시간 동안 눈만 끔벅거리고 있었다. 사실 정말 연두가 그렇게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눈을 끔벅거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끔벅거리고 있다는 느낌은커녕, 아예 눈꺼풀이라는 감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놀랍게도 귓가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수가 통화할 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것과 비슷한 소리였다. 뭉개져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 약간 높게 들려오던 소리. 집중했다. 그런데 그 소리뿐이 아니었다. 고음이어서 두드러진 것이었을 뿐, 좀 더 낮은 소리도 간간히 섞여들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전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점점 더 선명한 형태를 띠어가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시야도 좀 더 밝아졌으면 좋겠는데. 아, 들린다.

 “그래서…거야?”

 “…해야 도에…”

 흐리게 몇 가닥 선으로 나타났던 형태만큼이나 흐리게 들리는 소리들은 오히려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더 나은 수준이었다. 정말 답답할 뿐이었고, 말 그대로 펄쩍 뛰고 싶은 지경이었다.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대화중에 강조되는 몇몇 단어뿐이었다. 그것도,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 말끄트머리나 감탄사로 여겨지는 소리들에 불과했다.

 

 끈질기게 귀 기울여 노력한 끝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오류’라는 단어 단 두 글자뿐이었다. 연두는 뭔가 좀 더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계속 귀를 기울여보려고 했다. 그런데, 솔솔 때맞춰 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잠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짱하던 머릿속이 잠 때문에 흐려지는 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건 꿈속에서 또 다시 잠을 자게 되는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 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굉장히 날이 선 비명 같기도 했다. 화가 나도 정말 단단히 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37. 10월16일, PM2:00

 

 “진연두!”

 눈 뜨기 직전 가볍게 떨리는 눈꺼풀 너머 시야가 발갛다. 학교가라고 일어나라고 부르는 목소리. 방밖에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는 꿈에서 들었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달력을 확인했다. 수요일. 시간이, 9:27.

 강의는 10시부터였다. 지금 빨리 나가야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벌떡 일어나서 왜 이제야 깨웠냐고 신경질을 부렸다. 곧장 후다닥 씻고, 바쁘게 옷을 찾아 걸쳤다. 그 다음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둘둘 말아 벽에 붙여놓고, 가방을 팔에 낚아채듯 꿰어 들었다. 그리고 현관으로 미끄럼을 탔다.

 “아침 먹어야지.”

 “시간 없어요. 늦었어요.”

 “연두야!”

 “네.”

 “너무 늦지 마라.”

 연두는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신발을 신은 뒤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 도둑고양이들을 흘긋거리면서 오르막을 뛰어올라갔다. 횡단보도 신호등에 걸려서 잠깐 쉬었다가 정류장까지 또 뛰었다. 이럴 땐 버스가 바로 와 주면 참 좋겠지만, 버스 올 시간이 되려면 몇 분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았다.

 

 지각처리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의시간에는 결국 늦고 말았다. 강의실로 들어서서 초희가 있는지 없는지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초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초희가 다른 과라면, 아니야, 다른 과라도 마찬가지지.

 이번에도 초희는 끝날 때까지 강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유이선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찰칵. 학기 시작하고 두 번째 시간에 교수님께선, 앞으로는 강의 시작 1분 전에 네가 이 반 출석 확인하라고 하시면서 유이선을 출석담당으로 지정하셨다. 그리고 이후로 매 시간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선이라면 연초희라는 이름이 출석부 명단에 들어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가방을 챙기고 있는 유이선에게 다가가 혹시 연초희를 아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모른다고 말했다. 초희를 아냐는 물음에 그녀 역시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하는 말끝에 그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 어제도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어? 어제 물어봤던 것 같은데.”

 “연초희라는 이름 혹시 들어본 적 없는지, 너한테 이미 물어봤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우리 과에 그런 애도 있냐고 했었는데, 생각 안 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나? 너한텐 안 물어본 줄 알았는데. 어쨌든, 모른다는 거지. 알았어. 내일 보자.”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시선을 연두 쪽에 두고 있으면서도 유이선은 인사하는 걸 못 들은 모양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듯해서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만히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고 뒤쪽으로 빠져나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연초희라는 애 확실히 우리 과 아니야. 아마 네가 듣는 모든 강의 수강생들 다 합쳐도 그 안에 연초희라는 사람 없을 것 같아. 그 안에 연초희라는 애 아마 없을 거야. 너랑 나랑 같은 과인데, 난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이거든.”

 “어쩌면 다른 과일수도 있어.”

 “네가 정확히 누굴 얘기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 네 말대로 다른 과일 수도 있고, 어쩌면 네가 걔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걸 수도 있어. 그것도 아니면 걔가 사기 친 거고. 그런데 왠지 나는 네가 속은 것 같은데. 내 말은, 그냥 그럴 것 같다는 거야.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정 궁금하면 사무처에 가서 한 번 확인해봐.”

 유이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두가 서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서두르는 몸짓으로 재빠르게 강의실에서 빠져나갔다.

 

 머릿속에 그녀가 의심하고 있는 바와 거의 같은 의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었다. 정말 사무처에 가서 알아보면 곧바로 정확하고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과 사무실부터 가봐야지.

 연두는 사무처 쪽으로 돌렸던 발길을 과 사무실 쪽으로 돌렸다.

 “언니, 안녕하세요.”

 “응. 연두 왔니?”

 은조언니는 바쁜 것 같았다. 인사에 대답하면서도 눈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바빠 보였다. 일단 초희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언니, 혹시 연초희라고 아세요?”

 언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바쁜 걸까. 때를 잘못 맞췄나.

 “으응? 지금 나한테 말한 거였어?”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한참 뒤에야 자판에서 손을 떼고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쳐다보았다. 하지만 얼굴에 바쁘고 급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아니에요. 언니, 바쁜데 미안해요. 다음에 얘기할게요.”

 “그래. 내가 지금 많이 바쁘다. 다음에 얘기하자. 잘 들어가고.”

 “네. 안녕히 계세요.”

 괜히 바쁜 사람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유이선 말대로 사무처에 가서 알아봤으면 곧바로 알 수 있는데, 괜히 과 사무실부터 먼저 가서는 바쁜 사람만 방해한 꼴이 되었다. 결국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과 사무실에서 나왔다. 연두는 그길로 곧장 사무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근데 초희가 정말 학생이 아니라면, 대체 왜 그런 거지?

 

 사무처 문 앞 복도에 서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한차례 숨을 크게 한 번 내쉰 후, 무거운 유리문을 밀어열고 들어가서는 바로 앞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저기요.”

 “예. 무슨 일로 오셨어요?”

 마주보고 앉은 교직원이 몇 가지 확인하려는 듯 연두에게 물어보았다. 학생과 무슨 관계인지, 왜 물어보는지 등등.

 연두가 한 번 더 초희 이름을 말하고 나서 교직원은 별 말 없이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을 두드렸다. 학생 이름이 뭔지 한 번 더 물었다. 그런데 교직원은 그렇게 모니터화면을 쳐다보다가 다시 자판을 치고 화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확인해보니까, 그런 학생 없다고 나오는데요, 뭔가 착각하신 것 같아요. 학생이름이 ‘연초희’라고 하신 거 맞으시죠?”

 “네. 연초희요.”

 “그런데 여기 보면, 연초희라는 사람은 없어요. 은화대에 없다고 나오는데.”

 아…

 “정말, 학생 중에 연초희라는 이름이 아예 없어요?”

 “네. 현재 재학 중인 학생 중에 연초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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