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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21
작성일 : 19-10-17 12:16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1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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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는 결국 총기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전우는 한 신발공장의 디자인부서에 이미 취직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동에게 마춤형 조깅화를 선물하리라 약속까지 했었는데 전우는 머리의 반이 너덜하게 떨어져 나간채로 눈을 부릅뜨고 죽어 버렸다. 그것은 분명한 자살이었지만 부대는 그 사실을 덮었고 사고사로 발표하고 전우의 부모에게도 ‘사고’라는 말로 함구했다. 거대한 권력은 모순을 병풍화했고 시간은 모순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게 만들어버렸다.

  마동은 그날도 밤새도록 연병장을 달렸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어야 했다. 세상은 의미라고는 눈뜨고 찾아 볼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배위의 집합체다. 전우의 기억은 달리고 또 달려도 잊히지 않았다. 길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에 전우의 세포와 머리카락이, 눈동자와 손톱과 췌장이 흩어져서 묻어 있었다. 전우는 그렇게 마동을 뒤쫓아 오고 있었고 마동은 전우를 떼어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회사의 직원들은 마동이 매일매일 달리는 이유를 건강에서 찾으려고 했지만 마동에게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달리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목적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난! 모든 걸 버리기 위해서 달리는 겁니다! 난 당신과 달리는 의미가 달라요! 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말은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았고 타인의 생활에 간섭도 없었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침묵은 말보다 힘이 크다는 것을 마동은 안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피해를 주지 않으면 나를 파괴할 권리는 있다고 프랑스와즈 사강도 말을 하지 않았던가. 타인의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은 애당초 신경 쓰지 않았다. 타자를 인정하되 침범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무엇을 선택하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나 선택이 몰고 오는 결론이 옳은 것인지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두지 않게 되었다.

  먼저 유용성에 있었다. 가치라고 불리는 유용성은 마동이 보는 모든 것에 부여하기 시작했다. 논리로 이해가 되고 시각적으로 들어오는 모든 부분, 사물, 유기체, 때로는 물 같은 물질이나 용기에도 담아 둘 수 없는 연기에도 마동은 유용성을 부여했다. 보지 못하는 부분, 오컴의 면도날이 적용되지 않는 술수나 권모나 술책에 대해서는 공허하고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여겼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부분에 단계별 유용성이 있고 마동은 거기에서 철저하고 편협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서(도) 피해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 자신만의 리추얼을 생활반경에 구축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꿈의 리모델링 회사에서 훈련을 받고 일을 하면서 제 3의 세계와 인간의 무의식에 괄목하게 되었다. 그것에 입김을 불어 놓듯 유용성을 부여했다. 마동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애써 회피하며 지내왔지만 마동에게 놀라움을 전해주고 일을 가져다주고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쌓이게 하고 감동을 전해주는 모든 부분이 마동이 알지 못하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불특정다수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마동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돈을 받기에 움직인다는 꺼림칙함이 조금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작업은 하지 않았지만 오너는 마동에게 그렇게 차단을 하며 차별을 두어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라고 마동은 느껴왔기에 두 마음의 충돌을 늘 떠안고 있었다. 회사의 사람들은 마동이 달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일일이 설명은 불가능 했지만 매일 달리는 행위를 멈출 수는 없었다.

  마동은 버려야 할 것이 많았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있을 때 바로 버리지 못한 것이 그는 실수라는 것도 안다. 버려야 하는 것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동일한 것이라 마동은 쉽게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마른번개가 먼 하늘에서 번쩍 거렸다. 달려서 장군이가 있는 카페 앞으로 갔다. 장군이의 주인이 말한 산책할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으므로 해변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토하고 소리를 질렀다. 쓰레기통은 넘어져서 그 냄새가 해변으로 퍼졌다. 쓰레기 같은 어떤 인간이, 넘치는 쓰레기통을 발로 찼다. 쓰레기가 해변으로 쏟아졌다. 해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욕을 했다. 사람들은 쓰레기통을 그저 빙 둘러 돌아갔고 어디선가 해변의 경찰들이 와서 쓰레기 같은 인간과 언쟁을 벌였다. 쓰레기 같은 인간은 술은 취했지만 이정도로 남들에게 교묘한 피해를 주며 권력에게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은 무사유의 인간으로 머릿속에 ‘나 이외의 사람’라는 개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은 곳곳에서 넘쳐났다. 공중화장실이 근처에 있었지만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이 귀찮은 남자들은 넘쳐나는 쓰레기통에다 소변을 보았다. 심지어는 행인 쪽으로 페니스를 드러내 놓고 비틀거리며 오줌을 갈겼다.

  마동은 장군이가 있는 카페 앞으로 걸어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해안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그들의 손에 이끌려 나온 큰 개들이 마동을 보며 심하게 짖거나 꼬리를 내리거나 했다. 마동이 크게 짖어대는 개들의 눈을 공허하게 만들었고 개들은 마동의 시선을 피하며 꼬리를 바짝 잡아 당겼다. 큰 개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감지했다.

  개들은 분명 인간들과는 다른 불가사의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신진대사가 인간들보다 빨라서 인간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새는 더 빠르다. 새들을 보라, 음식물을 섭취하자마자 활공하며 배설을 한다. 개들은 그럼에도 그들의 삶에 비관적이지 않다. 오직 처음 본 주인에게 순종의 형식을 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그들이 바라봐야 하는, 내가 꼬리를 흔들어줄 수 있고 혀를 내밀어 핥을 수 있는 주인이 있으면 그만이다. 대통령이 온다 한들 유명한 배우가 온다고 한들 그들에게는 중요치 않다. 개는 인간과 다르다. 인간처럼 사랑을 주고 빼앗고, 그 사이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 믿어버린 가장 친한 사람에게 휘둘리는 인간과는 달리 개는 한 번 주인에게 맹목적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가치척도를 가늠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요놈 어디 한 번, 하면서 자객의 눈초리로 지켜보지 않는다.

  누군가 개는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라고 할 만큼 아이와 개는 어떤 면에서 비슷한 사랑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지 않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미 어떤 이들은 주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처럼 보듬고 핥았던 개들을 건전지 버리듯 버리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버려진 개들은 인간의 세계 속에서 인간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야생을 맛보며 흉측하게 변하기도 한다. 개들은 동물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인간의 생활로 밀접하게 들어왔지만 인간이 아닌 인간화가 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지만 애매하고 안타까운 동물이 되었다.

  그래서 마동은 자신이 개를 키우지 못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큰 개들이 마동을 보며 짖어 댔지만 그 모습 속에는 지정되지 않은 여러 가지 감정이 결여되어 있거나 많은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있었다. 개들은 주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개들은 마동에게서 어떤 위협적인 모습을 감지해낸 것이다. 마동은 카페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의식으로 사람들의 무의식과 의식이 혼합되어 전해졌다. 해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구어와는 다르게 내뱉고 있었다. 해변에 나온 사람들에게는 마동을 향해 지나치는 개들이 크게 짖어대는 모습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들은 모두 바쁜 사람들이고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웅, 웅웅, 웅웅웅.

  마동은 해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군상의 에르고숨을 느끼며 장군이가 있는 카페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제와 같이 송아지만한 블랙 그레이트데인 장군이가 서 있었다. 작은 카페 안의 테이블에는 이미 자리가 없었고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점령한 해변에서도 아직 이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군이 주인이 대단하게 보였다. 작은 카페에서도 풍기는 커피 향은 넓은 바닷가에 깔려 있는 더러운 냄새를 차단했다. 사람들은 커피 향에 이끌려 에어컨바람이 세게 나오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여러 가지 음료가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이곳은 커피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커피의 종류가 많았고 각각의 맛을 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만 장군이의 주인은 따뜻한 커피를 만들어서 파는 것일까. 아니면 늘 그런 것일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무더운 여름의 해변에서 모두 하나같이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이 후텁지근한 여름밤의 해변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이하다면 기이했다. 이 작은 카페에서도 인간의 기호가 후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무더운 여름에 뜨거운 커피는 의외로 잘 어울릴 수 있다. 장군이가 있는 작은 카페에도 코피루왁을 판매하고 있다.

  도대체 코피루왁이라는 고가의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왜 이렇게 한국에는 많은 것일까.

  순수한 맛의 귀하고 고가의 커피가 한국의 카페에서는 죄다 판매되고 있었다. 과연 맛도 잘 구별할 수 없는 코피루왁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들여가며 사람들은 잘도 마시고 있었다. 이제 코피루왁은 채취가 아닌 사육으로 퍼지고 있고 인스턴트로 코피루왁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여기 카페의 주인은 코피루왁을 어디서 구해오는지 모르지만 작은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어떻든 코피루왁을 맛 볼 수 있었다. 어쩐 일인지 지금 해변의 작은 카페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전부 코피루왁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금방 끓여낸 닭죽처럼 뜨거운 코피루왁을. 장군이가 있는 카페역시 사육당한 고양이에게서 구입한 코피루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의 무의식을 뚫고 하나의 의식이 전해졌다.

  -그건 아니다 오로지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채취한 것만으로 만든 코피루왁 그건 내가 장담하다-

  마동은 고개를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에게 이렇게 정확하게 의식을 텔레포트 해 줄 만한 존재가 근처에 있다는 말이다. 그 존재는 여기 카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이 카페근처로 나오라고 했으니. 마동은 형사의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의식을 전달하는 존재를 찾을 수 없었다.

  -곧 알게 되니 조금만 기다려준다-

  어법은 어딘가 빗나가 있었지만 의식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동이 그 의식에 텔레포트하는 방법을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외에 퍼지는 코피루왁의 냄새는 질 좋은 커피 향을 품었지만 마동은 커피가 마시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혀.

  평소에 에스프레소를 종종 마셨다. 간단하고 깔끔하게 만든,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마시는 커피는 맛있었다. 커피는 허겁지겁 마시는 경우는 없다. 커피의 입장에서도 금방 마셔서 없어지면 더없이 서글플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에서 커피는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커피도 한 번에 다 마셔버리는 경우도 드물었고 뜨거운 커피도 뜨거운 대로 맛을 음미해가면서 마시게 된다. 멸종하는 존재가 많이 있어도 커피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카페 뒤에는 장군이가 미동도 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아지만한 그레이트데인은 어제와는 다르게 마동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마동은 장군이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서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장군이도 마른번개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를 한 장군이 주인이 카페의 뒷문을 열고 나오면서 자, 이제 갑시다. 라는 말과 함께 장군이의 목줄을 기둥에서 풀었다.

  장군이의 주인은 마라토너 팬츠에 라운드네크라인의 타이트한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손목에는 손목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몇 번 하고 허리를 꺾어서 몸을 푸는 동안 장군이는 주인을 참을성 있게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주인은 몸을 다 풀었는지 마동에게 가자며 따라오라고 했다. 장군이는 주인이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서 옆에서 같이 달렸다. 다른 개들처럼 킁킁 거린다거나 묶여 지내는 개들이 보이는 행동(앞으로 박차고 돌진하려는)은 보이지 않았다. 취객이 난무했고 경찰들의 모습이 틈틈이 보였다. 밤바다의 모래는 인공불빛을 받아서 부드럽게 빛났고 밤의 점령자들은 살가운 모래가 보기 싫은지 우악스럽게 밟아댔다. 해안가를 따라서 조성된 조깅코스를 지나서 이백여 미터를 달리면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아 보였지만 걸어서 올라가도 15분 미만이면 꼭대기에 도달한다. 계단은 완만했고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해안의 모습이 전부 보이기 때문에 산책을 즐기며 다리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어서 등대공원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계단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에 최상위에 있다고 느끼는 바였다. 어떤 이는 아스피린이 최고의 발명품이고 어떤 이는 가위가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물품이나 건축물 중에 마동은 계단이 그 꼭대기에 속해있다고 믿고 있었다. 베이비오일과 마찬가지로.

  마동은 분홍간호사가 있는 내과에 오르는 계단에서도 잠시 계단이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계단을 타고 어딘가로 오른다는 것, 수직을 향하는 인간의 열망은 계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바슐라르를 통해 이미 촛불의 미학에서 수직하는 몽상가들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되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철탑에도 계단이 있다. 쉬안쿵사도 계단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다. 계단에 앉아서 책을 보면 집중에 잘 된다. 계단에 서서 이야기를 하거나 서류를 읽어도 집중도는 훨씬 좋다. 헤밍웨이는 일어서서 글을 적었다. 집중의 문제였다.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해볼만하다고 늘 말했다.

  변이가 와도 변이에 패배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의 오전에 아파트계단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시원하기까지 했다. 아파트 꼭대기에 있는 터뷸런스를 아파트의 척추를 타고 각층의 계단으로 흩어졌다. 계단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올랐다가 내려가는 이음새의 역할을 하는 장소다. 계단이라는 공간은 ‘머무르다’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그렇지만 마동은 병원의 계단에서도 아파트의 계단에서도 잠시 머물러 계단이 주는 사려 깊음에 대해서 잠기기도 했다. 계단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계단이 아니었다. 계단 중에 본디 지니는 의미를 가진 계단에서 벗어난 계단이 있었다. 일반계단에서 벗어난 계단 말이다. 그런 계단에서는 기이하게 머무르게 된다. 마동은 그동안 사람들을 지켜봤다. 10층 이상의 건물을 애써 계단을 이용하여 오른다거나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사정은 있겠지만 그 누구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에 시간에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계단을 억지스럽게 올라오는 이와 마주친다면 그 사람도 마동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쳐가면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마동과 장군이, 장군이 주인은 해안선을 타고 달려서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달했다. 계단은 해무 때문에 끝이 더욱 보이지 않았다. 저 너머에는 마치 이계가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송림이 등장하고 송림휴양지의 조깅코스가 등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건물의 계단은 시큰둥하며 관심이 없지만 야외에 있는 휴양지 해안가에 있는 계단에서는 머물러서 이야기도 하고 유치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며 한 여름 밤바다의 정취에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등대로 올라가는 너비가 5미터 정도로 꽤 넓었으며 높이는 한 계단과 한 계단사이가 1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있어서 단 높이가 낮았다. 등대로 나있는 해안가의 계단을 오르면서 마동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을 스치고 지나쳤다.

  우우웅.

  촉이 드러난 시끄러운 소음이 점점 사라졌다. 이내 웅웅 웅웅하는 공명이 거의 소멸했다. 이명이 확실히 줄었고 사람들의 생각은 또렷하게 들렸다. 드디어 마동의 귀에 들어오는 노이즈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순수한 소리로써 타인의 의식이 마동에게 전달되어 왔다. 밤공기의 단층을 가로질러 어둠을 소리도 없이 타고 들어온 사람들의 무의식과 의식은 마동의 의식으로 하여금 차단과 받아들임의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동은 자신의 의식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일일이 차단했다. 대부분 희미한 생선비린내처럼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의식의 가치전환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밤을 어떤 식으로 보낼 것인가가 그들의 주요사항들이었다. 마동이 무의식을 받아들이는 통로를 크게 뚫어놓고 있어서 텔레포트를 보내는 그 존재가 마음 놓고 의식을 전달 할 수 있도록 했다. 마동과 장군이의 주인과 장군이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장군이는 덩치가 송아지처럼 컸지만 주인이 개를 끄는데 힘들어하지 않게 옆에서 주인의 페이스를 맞춰 주었다. 마치 페이스메이커 같은 모습으로 앞을 보며 주인의 옆에서 발걸음을 맞춰 가는 모습이 폴메카트니의 공연을 봤을 때처럼 신기하게 보였다.

  마동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도 거대한 개가 아무렇지 않게 해안가의 계단을 앞만 보며 우아하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통의 장면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레이트데인이 사람들의 옆으로 지나가도 경계한다거나 무서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당황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거나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묘한 분위기를 장군이는 가지고 있었다.

  장군이는 주인과 함께 일주일에 3, 5일은 해안가를 따라서 조깅을 한다고 했다. 해안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은 장군이가 지나가면 장군이를 쓰다듬었고 어린아이들도 손을 내밀어 장군이의 등을 슬쩍 만지고 엄마의 품으로 안겼다. 장군이는 사람들이 등을 쓰다듬고 머리를 만져도 앞을 보며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주인이 천천히 달려가면 옆에서 장군이도 천천히 달렸고 빠르게 달리면 빠른 페이스에 맞게 달렸다. 볼수록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개였다. 어제 의식을 전달해준 무엇의 존재가 장군이가 아닌가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장군이는 마동에게 시선을 던져 주지도 않았고 어떠한 의식도 소리도 이후에 들을 수 없었다.

  마동은 장군이와 주인 옆에서 같이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렸다. 계단의 중간에 올라왔을 때 장군이 주인은 땀을 많이 흘렸다. 장군이 주인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닦은 후 조금 천천히 잠시 쉬었다. 계단의 그 지점에서는 해안가가 환히 잘 보였다. 해안의 끝은 해무가 껴서 풍경을 가렸다. 해무덕분에 보이는 가로등불빛은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파의 어금니처럼 보였다. 계단 가까이 보이는 해안가는 형형색색의 인공조명이 먼 곳의 풍경과는 달리 사람들의 움직임을 활기차게 보여 주었고 대조적으로 검은 빛의 바다가 일렁이는 모습은 불안하게 보였다.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번쩍 떨어졌다.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사람들은 마른번개를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해안가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해안가에 데면데면 들어서있는, 먹을거리를 파는 포장마차나 간이음식점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조깅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동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피규어의 세계가 조밀하게 움직였다가 평온한 척 보이는 풍경은 해무가 무섭게 들어차면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펑하는 굉음 속에서 화염을 뿜으며 끈적이는 촉수가 가득한 암흑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했다. 곧 암흑의 한 부분에서 자줏빛 혓바닥이 나오더니 사람들을 집어 삼켰다. 암흑은 박절한 사람들의 상체는 삼키고 하체는 밖으로 버렸다. 핏빛이 사방에 튀었고 오줌을 지리는 남자도, 놀라서 기절을 하는 여자도,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도 암흑의 혓바닥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집어 삼키거나 찢어 발겼다. 암흑만큼 어두운 현기증이 마동에게 밀려왔다. 이 모든 것이 녹아들고 총기의 발화처럼 순식간에 시야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숨이 막혔고 얼음물속에 몸에 담군 것처럼 냉기가 발뒤꿈치를 탔다. 마동은 장군이를 쳐다보았다. 도자기색으로 가득한 장군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주인이 계단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니 장군이도 엉덩이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해안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만히 있었다.

  “자네는 전혀 땀을 흘리지 않는구만.” 장군이 주인이 장군이의 목덜미를 만졌다. 장군이는 주인이 좀 더 잘 만질 수 있게 고개를 들어주었다.

  “장군이는 훈련을 잘 받은 개이네. 훈련을 잘 받았다지만 장군이 같은 개는 나도 처음 봤네. 이 녀석은 마치 내 마음을 읽고 따라 주는 것 같아. 훈련을 많이 받은 대형 개들도 묶여 있다가 산책을 나서면 흥분하기 마련이네. 헌데 장군이는 전혀 그러지 않지. 이 녀석은 집을 잘 지킬 수 있게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왔네. 누군가들, 그러니까 자네는 믿지 못하겠지만 우리 카페를 눈여겨보는 자들이 많지. 그들은 호시탐탐 염탐을 하러오네. 커피의 종류는 뭘 쓰는지 로스팅은 어떻게 하는지,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그놈들이 손님으로 가장해서 와도 장군이는 알아내지. 굉장한 소리로 짖는다네. 몇 번 짖지 않아도 불온한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도망을 가게 되어있네. 경각심이라는 것을 안겨준다네. 신기한 일이야.”

  “자네가 왔을 때 짖지 않았지. 장군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자네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모양이야. 낯선 이들이 카페 뒤로 돌아오면 짖게 마련이거든. 묘한 일이야.” 장군이의 얼굴 가까이 주인이 다가가니 장군이는 혀로 주인의 얼굴을 한 번 핥았다. 장군이의 혀를 보는 순간 암흑의 혓바닥이 잠시 스쳤다.

  “인간은 누구나 땀을 흘리지. 땀을 흘리지 않는 인간은 없네.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개들은 땀을 흘리지 않지. 혀로 체온을 조절 할 뿐이야. 그런데 장군이는 땀을 흘리네. 인간과 흡사한 땀을 흘린다네. 자 보게.” 주인은 장군이의 배를 만져 보게 했다. 만져보니 축축했다. 땀방울이 배에 가득했다.

  “기이하지 않나? 장군이는 마치 사람 같네. 내 개라서 하는 말이 아닐세. 자네는 땀을 전혀 흘리지 않고 장군이는 땀을 흘리고 말이야.”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장군이를 보거나 만져 보려고 장군이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나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들은 장군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군이의 머리를 한번 씩 쓰다듬고 지나갔고 장군이와 주인은 늘 있는 일인 듯 그들을 보고 웃었다. 이미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장군이를 아는지 그 큰 그레이트데인을 겁내지도 않고 만지며 장군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장군이의 눈은 아이의 눈빛도 어른의 눈빛도 아니었다. 장군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엄마는 그만 가자고 했고 아이는 장군이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듯 떼를 썼지만 장군이의 주인도 장군이를 데리고 일어났다.

  “자, 이제 뛰어가지.” 주인은 마동에게 가자며 장군이와 함께 달렸다. 마동은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땀을 흘리는 대형견. 마동은 어제 자신에게 의식을 전달을 해 준 이는 장군이라는 확신이 섰다.

  내가 변이를 하듯 장군이도 변이를 한 모습이다. 개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나 눈빛이 달랐다. 밤 11시를 향해 가는 해안가는 해무가 점령을 시작했다. 바다의 저 먼 곳에서 이곳으로 해무는 영역을 넓혀오고 있었다. 선량함이라는 조금도 없고 해무에 젖으면 슬픔에 목이 잠길 것 같았다. 등대는 해무에 대비하라는 하울링을 정박해 놓은 배를 향해 토해냈다. 계단의 끝에 올라서니 송림으로 몰려온 해무가 뿌옇게 모든 광경을 잡아 먹었다. 해무가 몸에 닿자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동은 팔뚝을 보았다. 해무가 팔뚝에 와 닿았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기억이 몰고 온 소용돌이처럼 마음에서 한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는개와 손끝이 닿았을 때 들었던 느낌과 비슷하다. 팔뚝이 닿은 해무가 정말 습한 것인지 습하다고 생각하는 기억이 몰고 온 감촉인지 마동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해무는 송림의 저쪽에서 차차 몰려와 그들이 움직이는 곳까지 순식간에 덮쳤다. 마동과 장군이와 장군이 주인의 몸을 에워쌌다. 해무가 구름처럼 몰려와 마동의 몸을 감돌았을 때 마동의 집적된 기억이 해무를 타고 마음속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변기 속,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이 나왔던 소용돌이처럼, 는개의 손끝이 닿았을 때처럼.

  마동은 오래되고 압축률이 강한 기억의 시작이 어딘지 몰라 답답했다. 여름밤이면 해안가에 해무가 늘 밀려들어왔지만 다른 날에 비해 유독 질척이고 습한 기운이 가득했고 해무에 자줏빛이 감돌았다. 송림 사이를 뚫고 만들어 놓은 조깅코스를 따라서 죽 들어가면 하얗고 큰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송림공원은 이곳주민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위해 해안가에서부터 이곳까지 조성을 잘 해놓았다. 해변을 찾는 타지의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산책코스가 되어서 오래 머물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시와 정부는 개발계획 하에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다고 선출된 구청장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때 전 구청장은 자신의 숙원사업이었던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한 개인의 일생을 걸었다고 했다. 구청장은 전폭적인 구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구청장은 소외된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하지만 구청장은 뇌물수수로 구치소에 갇히게 되었고 구민들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외로움을 지닌 사람들이나 타인에게 받은 상처의 결이 깊은 사람들은 멘토를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지지를 하다 그 정치인이 타락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정치인을 지지하면 되지만 이미 기대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은 종교화되어서 믿어버린 정치인에게 흡수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타락하고 무너지면 사람들은 같이 무너지는 것이다.

  송림공원은 30미터마다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붙박이 운동기구들을 설치해 놓았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비가 온 다음 날에도 물기에 녹이 슬지 않고 운동을 즐길 수 있었다. 여름에는 당연하게도 다른 계절보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송림공원을 찾았고 밤 운동을 즐기고 조깅을 했다. 더불어 사건사고가 잦았고 송림 속의 새들이 지저댄다고 해서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독버섯을 덜 뿜어내지는 않았다. 빌딩이 많은 도시 숲의 여름밤보다 해안가의 송림공원은 시원했다. 송림이 뿜어내는 기운을 마시기 위해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마저도 오늘은 해무가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달리면서 마동은 장군이 주인의 의식을 엿보았다. 주인은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지금 장군이와 달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집중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와 같이 달린다면 신경을 써야 마땅하겠지만 주인의 의식은 zilch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주인의 의식은 우주와 같았다. 훈련을 해온 모양이었다. 장군이의 의식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개의 의식에는 접근을 하지 못했다.

  의식이 들리는 사람이 있고 들여다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그럴까.

  아마 동물협회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당장 달려와서 연구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보다 마동의 상태를 알면 마동을 흰옷을 입혀 눕혀놓고 바늘을 찔러가며 연구를 먼저 할 것이다. 마동은 이제 귓가에 웅웅거리는 잡음 섞인 소리 없이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분명 몇 개의 공백이 자리를 잡았고 해수면 밑의 공기 덩어리와 같이 부풀어 오르는 여백이 있었지만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정확하게 들으려는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접근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변이를 거친(것이 분명한) 장군이의 생각에 도달하면 앞이 딱 막힌 큰 벽이 살아있는 뇌처럼 물컹거리는 앞을 가로막았다. 회반죽 같이 아직 덜 마른 벽이 살아있는 말랑한 뇌 같았다. 접근 할 수 없는 하얀색의 벽이었다. 높이가 5미터에 너비는 73미터 정도 되는 하얀 벽, 장군이는 확실히 변이한 생명체였다. 장군이의 주인은 달리는 동안 자신의 의식을 모두 어딘가에 집어넣은 다음 무의식의 상태에서 달리는 행위에 몰두했다. 그런 훈련을 꾸준하게 달리면서 해왔을 모양이었다. 인간으로서 가능한 훈련인지 어떤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송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해무는 여전히 뿌옇게 모든 공간을 틈새 없이 골고루 채워져 있었고 해무가 지니는 습한 기운이 그들을 둘렀고 축축하기만 했다. 달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방해했다.

  “오늘은 해무가 엄청나군. 해무가 들어차고 이렇게 앞이 전혀 보이질 않으니 달릴 수가 없구만.” 장군이 주인은 땀을 많이 흘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팔뚝으로 닦았지만 팔뚝에서 흐르는 땀과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그저 교차했다. 마동도 장군이 주인의 말에 그렇다고 했다. 장군이 주인은 한 손으로는 길 앞의 공간을 휘저으며 걷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마동과 장군이도 장군이 주인의 보폭과 속도에 맞춰서 걸었다. 송림의 조깅코스를 밝혀주던 인공조명도 자신의 역할은 해내지 못하고 늙고 닳아버린 할아버지의 쪼글쪼글한 얼굴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송림에서 나오는 나이든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며 내려갈 것을 권고했다. 달리는 마동의 일행과는 다르게 내려오는 치장들의 말로는 해무가 깊어 등대주위의 바위는 보이지 않아서 올라서거나 바위에 올라가려고 하면 미끄러져 바다로 굴러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송림을 빠져나갔다.

  “해무는 우리가 이곳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지. 해무는 언제나 여름의 밤이 되면 저 멀리서 늘 이곳으로 오곤 했네. 포그에 관한 영화들이 많이 있지만 실제로 해무가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지. 해무는 늘 하던 대로 하는 것뿐이네. 인간들이 그 해무가 다가오는 곳에 들어서서 변화를 꽤 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모두 해무의 탓으로 돌리니 말이네. 며칠 전부터 기괴한 현상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네. 해무가 이렇게 껴 있지만 저 멀리서 한 번씩 내리치는 마른번개가 보이나?”

  마동은 보인다고 했다. 장군이 주인은 마른번개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마동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른번개가 며칠 동안 이렇게 꾸준하게 내리친 적은 없었네. 마른번개가 잦아지고 해무도 이렇게 짙어져 버렸어.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네. 자연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지. 인간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거 같네. 나 역시 잘 모르지만 말일세. 사실 사람들은 마른번개가 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네. 믿지 못할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지금 저 멀리서 내리치는 마른번개를 보지 못하네. 아니, 인식하지 못해. 신경 쓰지 않지. 왜 그럴까? 뉴스에도 나오지 않고 일기예보에도 보도되지 않지. 어째서 그럴까?”

  송림 속의 소나무들은 자신들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것을 뽐내듯 도도한 자태를 자랑하며 해무를 한껏 빨아들여 수줍게 젖어 있었다. 숲은 장군이 주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장군이의 주인은 걸으면서 땀을 닦았다. 숨이 차오르는 모양이었다.

  “며칠 전 장군이가 하늘을 향해 한참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나는 카페 안에서 목격했네. 장군이가 다른 개들과 다르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장군이가 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도대체 장군이는 어디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카페의 뒷문으로 나가서 장군이에게 다가갔네. 장군이는 주인인 나를 보며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고 나는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군이가 바라보는 하늘을 쳐다보았네. 그곳에서 거대한 마른번개가 내리치고 있더군. 자 보게, 지금처럼 말이야.”장군이 주인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의 한 점을 가리켰다. 뿌옇고 짙은 해무 속 저 먼 곳에서 번쩍하며 한줄기 마른번개가 하늘에서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자네는 마른번개를 언제부터 보았나?”

  마동은 생각했다.

  언제부터 마른번개가 눈에 들어왔을까.

  장군이처럼 며칠 전이었다. 멀쩡할 줄 알았던 집에 연일 계속되는 비로 느닷없이 물이 새어 들어오듯 마동의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부터 저에게도 마른번개가 보였습니다. 마른번개가 낮에도 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전 요즘 낮에는 몸살 때문에 사투를 벌이는 지경입니다. 사무실에서 탈수가 덜 된 젖은 수건처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자네는 역시 다른 이들과 달라. 마른번개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게. 마른번개가 저 멀리서 내리치고 있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네. 알고 있지 않아. 저렇게 눈에 보이는데 말이야. 장군이도 며칠 전부터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던 거야. 나도 그런 장군이의 모습을 처음 봤네. 한참을 그러고 있더군. 마른번개 역시 어쩌면 단순하게 해무처럼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의 부산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마른번개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네.”

  등대 곁으로 다시 갈수록 드문드문 보이는 벤치에서 이미 술에 취한 사람들과 공원 관계자들의 실랑이가 보였다. 그들은 이미 만취했고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지하고 협박으로 받아들여 공원관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공원관리원의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취객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없었다. 좀 더 큰 소리와 퇴색한 눈빛으로 공원관리인들을 대할 뿐이다. 타인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았다. 취객은 관리원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월하게 뒷일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저들은 평소에는 동네 슈퍼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다. 공원관계자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겪은 듯 삿대질하며 만취한 이가 말하는 공원관계자들의 의무수행 규칙이 1절도 끝나지 않았는데 송림공원을 내려가기를 권유하고 있었다. 취객의 눈에 공원관리원들은 그저 아파트 관리인처럼 보일뿐이었다. 관리인은 취객의 안전에 대해서 말했다. 취객들이 앉아서 술병을 비우고 있는 벤치는 낭떠러지에서 2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관리인의 말투는 권유에서 점점 훈령조로 바뀌었다. 취객이 원하는 대로 슬슬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른번개는 더 자주 더 강하게 내리치고 있다네. 자네는 이미 느꼈을 거라 생각이 드네만. 마른번개는 환희 적으로 내리치는 동시에 경악스러움을 가득 짊어지고 있네. 앞으로는 더 그러하겠지. 저 마른번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장군이 주인은 많은 땀을 흘렸다. 해무는 땀과 함께 얼굴과 팔과 등에 붙어서 더욱 많은 양으로 흘러 내렸다. 마동의 윗도리는 해무로 인해서 축축해졌고 장군이의 주인이 입은 운동복 역시 땀과 해무로 젖어 있었다. 20분 정도를 송림의 코스를 따라서 걸어 들어갔다. 해무는 성에가 낀 안경알처럼 더욱 뿌옇고 폐병환자의 혈액처럼 짙어 졌다. 달작지근하고 시큰한 냄새도 났다. 향을 피울 때 나는 연한 향내 같은 냄새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마동이 단지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무는 무취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해무 속으로 팔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다. 무엇인가는 마동의 기억일지도 모르고 부조화스러운 에고의 모습일지도 모르고 치누크를 타고 온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앞이 온통 회색뿐인 도로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해무 속에 손을 집어넣어 저어봤지만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건 축축한 해무의 잔해뿐이었다. 엄청난 해무 덕에 마동의 얼굴과 목덜미에도 땀이 흐르는 것처럼 이내 젖었다. 팔과 팔뚝과 얼굴에 해무가 묻지 않는 곳은 없었다. 마동은 마른세수를 하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훔쳤다. 등대는 라이트를 한 단계 더 밝히고 하울링을 더 크게 울렸다.

  부우웅. 부우웅.

  이 소리는 근해에 정박해 있는 대형 유조선에서도 울려 퍼졌고 유조선 사이를 피해서 들어와야 하는 고깃배에도 똑같이 전해졌다. 해무는 세계를 집어삼킬 만큼 바다에서 육지로 밀려 들어왔다. 해안가에서도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막는 안전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송림 곳곳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공원관리인들의 훈령에 의해서 끝내 마시던 술병을 들고 투덜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취객들은 해무를 탓했고 관리인들에게 욕을 했고 국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세금내고 자신들이 있겠다는데 왜 못 있게 하는 것이냐! 그들은 관리인들과 들리지도 않을 해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가래를 한 번 뱉었다. 그들이 내려가고 뱉은 가래에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공원관리인들은 같은 봉급에 여름밤이면 몇 배는 힘들게 일을 했다. 그들의 삶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흘렀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컸다. 고된 일거리가 많은 여름밤이 그들 입장에서 좋은 것인지 편안하게 참호 속에서 쉬며 가끔 순찰을 돌면 되는 겨울밤이 좋은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나 북적되고 시끄럽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여름이 겨울보다 사건사고가 덜했다. 겨울은 그저 고요하고 가라앉아있고 칼바람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생활고나 처지의 비관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은 모두 겨울의 이곳을 찾았다. 새벽동안 살을 찌르는 추위를 견디고 있으면 어느 새 바다에 누군가 몸을 던지는 일을 관리인들은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었다. 순찰을 돌고 와서 추위와 싸워가며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누군가가 크레바스 같은 테트라포드 사이에 몸을 던져 바다에 빠지고 만다. 사고가 일어나면 경위서를 작성하고 관리인은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고요한 겨울밤이 더욱 애타는 계절이었다. 그들은 겨울이 도래하면 마음이 날카로워졌으며 눈빛도 달라졌다. 공원에서 무더위를 피해 여름밤을 즐기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갔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드물었다. 몇몇만이 해무가 만들어 놓은 습기를 머금고 달리고 있었다.

  장군이주인과 장군이와 마동은 등대 밑까지 왔다. 등대는 오랜 세월의 모습을 죽 지켜오다가 몇 해 전에 새 단장을 했다. 더 크고 화려해졌고 세련되었다. 등대의 소리와 불빛도 새롭게 탈바꿈했다. 등대 안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을 했고 이곳의 특성상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하에는 세미나실을 마련해서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인들에게도 열어 두었다. 세미나실에는 빔으로 빛을 쏘아 회의가 가능한 프로젝트를 구비해두었고 간단하게 준비해온 식사를 조리할 수 있는 작은 주방도 있었다.

  새 단장한 등대는 빛을 360도 돌아가며 그린라이트를 발사 할 수 있지만 송림 쪽으로는 육지이기 때문에 등대의 빛이 360도 돌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등대는 공원개발에 힘입어 감성어린 등대에서 벗어나 로봇의 얼굴형상을 하고 있어서 마동은 시큰둥했다. 등대근처도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버렸고 등대의 입구에는 큰 마당이 있었지만 등대의 관계자들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들이 마당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들은 대부분 3000CC이상 고급 승용차였고 등대 주위의 바닥은 이전의 흙바닥에서 붉은 벽돌이 깔려 길바닥을 만들었고 인공 잔디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서 송림이 가지는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풍경이었다. 등대의 바로 밑은 바다로 이어졌으며 그 밑에서는 바다에서 그날 잡은 해산물을 관광객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 해녀들이 있었다. 오늘 해무는 그런 모든 풍경을 잠식해 버렸다.

  해무는 큰 바다와 송림을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고 인간들을 송림에서 몰아내고 있었다. 송림으로 오기 전 거쳐 온 이곳 해수욕장은 해운대처럼 북적이지 않았다. 메트로폴리탄의 외곽지역의 한적한 해수욕장의 해안은 타지에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과 타지로 나가지 못하는 이곳 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이라 북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명동의 낮처럼 인파로 터져 나가거나 청계천의 새벽처럼 한산해지는 법도 없었다. 밤낮으로 늘 비슷한 사람들이 꾸준하게 몰려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여기 해수욕장이 가지는 특성이었다. 이 모든 풍경마저도 해무가 온통 삼켜 버렸다.

  마동은 장군이의 도자기색 눈빛을 쳐다보았다. 장군이의 눈빛은 등대로 올라오기 전보다 긴장을 하고 있었다. 마동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군이는 분명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군이의 주인은 마동에게 장군이의 목줄을 건네주고는 등대에 볼일이 있으니 들어갔다가 나오겠다며 등대 안으로 사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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