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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Record Of U
작가 : 저녁의나팔수
작품등록일 : 2019.9.6

"세상의 끝이 오지 않아 난처해하는 인류가 있다고 한다면 믿겠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상에 두 사람이 있다.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았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그들을 찾아올지 두려워하며 벽 속에 숨어 살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며 아랑곳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무수히 많다.
이 둘은 어느 쪽인가? 적어도 첫 번째 부류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 번째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배달부다. 악어가 끄는 배를 타고 아직 덜 끝난 세상의 벽과 벽 사이를 오간다. 화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의 사이를 오간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던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선장은 아직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Tape 1-5
작성일 : 19-10-17 05:35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5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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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시점.

 

  기상 조절 위성이 제공하는 온통 희뿌연 하늘의 빛이 더러운 유리창을 통해 지저분한 사무실을 밝힌다. 그렇지 않아도 곳곳의 균열과 얼룩으로 을씨년스러운 방은 곳곳에 되는 대로 올려놓은 서류와 집기를 더하니 그야말로 쓰레기장이라고 해도 별 말을 듣지 않을 풍경이었다. 그래도 온전히 방 하나를 개인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점은 시애틀 폴리스의 경비대 제 1 관리자씩이나 되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이기도 하다. 본인이 그걸 정말 호사라고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들어와.”

 

  주변보다는 약간 덜한 높이로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의 산을 천천히 허물고 있던 남자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노크 소리에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오늘도 바쁘나 보네.”

 

  스물에서 겨우 한두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의 젊은이가 노크만큼 익숙하게 말을 걸며 안으로 들어왔다. 매일 볼 수 있는 얼굴은 결코 아니었지만 책상에 앉은 남자는 여전히 눈길을 돌리지 않았고, 젊은이 역시 대수롭지 않은 듯 튼튼해 보이는 서류의 절벽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폭파 전과가 있는 보호 관찰자의 소재 파악이 안 돼.”

 

  한 손으로 서류 한 움큼을 옆으로 치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탭댄스를 추듯 자판을 두드린다. 별로 리듬감은 느껴지지 않는 반주가 남자의 한탄처럼 들리는 가사과 함께 이어진다.

 

 “연례 대규모 축제가 코앞인데, 방벽 수비 병력에는 결원.”

 

  요약하자면 파티 전날이지. 이라고 소리 없이 덧붙여진다.

 

 “다행이네, 평소대로라서.”

 “그래. 그래서 나쁜 소식은 뭔데?”

 

  젊은이는 주머니에서 꺼낸 데이터 칩을 남자 쪽으로 던져준다. 군말 없이 그것을 한 입 덥석 베어 문 컴퓨터의 화면에 몇 개의 보안 파일 목록이 공기방울처럼 떠올랐다.

 

 “전에 부탁한 거. 스콧 오티스 살해 사건의 최신 자료야.”

 

  남자는 첫 글자가 알파벳 A에 가장 가까운 파일부터 차례로 열고 내용을 위로 쭉 끌어올렸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보자면, 별로 관심도 없는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 넘기는 것 같은 태도였다.

 

 “FOTE 자료로군. 생물학 연구 같은데.”

 

  이게 무슨 상관인데? 라는 질문은 생략된 채로 젊은이에게 대화의 공이 넘어간다.

 

 “4번째 파일을 봐봐.”

 “IE 형질 자극…이건 유행 지난 지 한참이지 않아?”

 “이래봬도 롱아일랜드까지 가서 얻어 온 자료라고.”

 

  조금 전부터 듣기 시작한 이들에겐 맥락이 전혀 잡히지 않을 법한 대화가 둘 사이에서 캐치볼을 하듯이 오간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남자 쪽에서 먼저 책상 위의 서류를 옆으로 밀어놓고 엉켜 있는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아무튼, 이게 그 살해 사건의 어떤 실마리라는 건데?”

 “형이 나한테 그 건을 넘기고 말이야.”

 

  시애틀 폴리스 내에 거주하던 한 약제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증거도 동기도 전혀 짐작 가는 점이 없던 이 골치 아픈 살인 사건은 사설탐정이자, 경비대 제 1 관리자의 동생인 에릭 하트먼의 손에 넘어갔다.

  상당히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되었음에도,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나 참고할 수 있는 목격담도 전혀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게 누구든 간에, 이 분야에 상당한 전문성을 가진 자의 소행이 분명했다.

  가용 인원과 수사 범위가 제한된 경비대 대신 에릭에게 사건을 맡긴 형 캘빈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평소 맡던 사적인 업무는 미뤄둔 채, 조사는 오랜 기간을 두고 꼼꼼하게 이루어졌다. 폴리스 간 장거리 통신에 접근할 수 있는 형의 도움으로 에릭은 마침내 스콧 오티스 이후로 발생한 복수의 습격, 살해 사건의 점과 점 사이를 이어낼 수 있었다.

 

 “놈은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어. 습격당하는 시설과 인물은 왜인지 생물학 연구와 관계된 사람이었고. 결국은 그 파일이 정답이었지.”

 

  연구의 내용은 백신 개발과 살포로 이미 절멸되었다고 선언된, IE 감염의 형질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백신으로 억제된 감염을 다시 일으킨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진화의 추종자(FOTE)’라는 연구 단체는 남아 있는 어느 대륙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연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실험은 백신이 처방된 적 없고, IE에 감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체에게 다른 약물을 투여하여 특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거 식물의 포자를 통해 퍼지며 유전자 시술의 효력이 열화된 IE의 온전한 원래 기능을 부여하는 게 최종 목표. 허나 그 가능성과 타당성을 넘어 이 실험의 가장 중대한 결함은, 이에 해당하는 실험체를 이제는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IE의 백신과 치료제는 개발된 이후 인류가 거주하는 모든 지역에 거의 뿌리다시피 전달되었고, 후에는 기상 조절 위성을 활용해 행성 전체에 정말로 ‘뿌려’졌다. 이미 일어난 변이는 되돌릴 수 없지만, 더 이상의 새로운 감염과 변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물론, 가뜩이나 드물게 태어나는 신생아들도 모두 필수적으로 백신 접종을 받는다. 이는 '쾌락 전쟁'이자 두 번째 재앙이라 불리는 대 폭동 중에도 변함없이 이어져, 이제는 이 감염이 ‘절멸’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런데 여기 피험자가 있네.”

 “그래. 그것도 가족손님으로. 첫 번째 재앙 직전에 개인 방공호로 대피했던 것 같아.”

 

  꽤 유니크한 아이디어지. 하고 에릭이 중얼거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엔 보기 드문 해법이긴 하지만, 분명 그들의 생존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용의자가-”

 “칼 노우드. 형이라면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어. 좀 오래된 이름이지만…그럼 앞뒤는 맞는군.”

 

  지금 보고 있는 자료는 구 북미 대륙의 정반대편까지 용의자를 쫒고 나서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연구소에서 손에 넣은, 처음으로 범인을 앞지를 수 있는 단서.

  사건의 줄거리는 결코 쾌적하지도 빠르지도 않았던 대륙 횡단 여행보다는 훨씬 짧았다. 칼 노우드와 그의 가족들은 장기간을 생활할 수 있는 지하 방공호를 자택 아래에 갖추어 놓고, 그 아래에서 꼬박 10년을 외부와 모든 연결을 끊고 살았다. 통신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마 방공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도록 한 조치였으리라. 허나 그 선택은 다른 방식으로 그와 가족들의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방공호의 환기 시설은 그 당시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오염과 위험 요소를 차단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었지만, IE 감염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지은 것이라 그에 대한 방호 대책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워낙 철저하게 설계된 덕인지, 포자가 가족들에게 눈에 띄는 영향을 끼칠 때까지 10년이나 걸렸다.

  마침내, 그리고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그들은 가장이자 그나마 가장 상태가 나았던 칼 노우드가 방공호 바깥으로 나와 치료제를 얻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옳은 결정이었다. 당시 그야말로 미친 듯이 뿌려 댄 덕에, IE 절멸 선언이 나온 이후로도 치료제는 전 세계 어느 약국에서든 찾으면 나오는 물건이었다.

  잘못된 결정은, 하필이면 그가 찾은 약국의 주인이 스콧 오티스였다는 아주 사소한 불운일 뿐이었다. FOTE와 커넥션이 있던 그는 칼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피험자 부재로 오래 전에 동결되었던 한 프로젝트를 떠올렸고, 창고 안에서 잠자고 있던 조금 성분이 다른 치료제를 칼에게 건넨 것이다.

 

 “이후 경과도 보면 알겠지? 아내인 신디와 딸 리제트 모두 끔찍한 변이 끝에 사망.”

 

  IE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던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전체에서 반복되는 가사와 같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패는 단 한 명의 성공한 실험체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것도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고 복수심에 가득 찬 한 남자를.

 

 “이 프로젝트의 입안자는….”

 “그래, 바로 여기에 있어. 이거 보고 나서 그야말로 발에 불나도록 뛰어 왔다고. 도중에 아저씨를 못 만났으면, 시간에 못 맞췄을 거야.”

 

  사건의 원흉이 된 프로젝트의 입안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추격이 시작된 바로 이 도시, 시애틀 폴리스에 위치한 FOTE 지부의 인물이었다. 칼 역시 이 문서를 손에 넣었다면, 역시 전속력으로 모든 것이 시작된 이 도시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것이었다.

 

 “솔직히 그냥 내버려 두고 싶은데.”

 “그 맘 알어. 하지만 우리 둘 다 할 일을 해야지. 당장 신변 보호 들어가고, 방벽 출입 부서에 수배 명령 내려 줘.”

 “그래. 옛날엔 나름 유명인이었으니, 몽타주는 금방 만들 수 있을 거야.”

 

  경비대가 아닌, 본인 소유 데이터베이스의 오래된 섹터를 뒤지던 캘빈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다시 한 번 에릭에게 질문한다.

 

 “-너는?”

 “아, 미안. 나머지는 맡길게. 난 좀 신경 쓰이는 걸 찾아서.”

 

  대충 얼버무리려던 에릭은 그러건 말건 추궁하고 들겠다는 캘빈의 표정에 일찌감치 포기하고는 두 장의 사진을 더 그에게 건넸다.

 

 “여긴-?”

 “구 시애틀 외곽. 노우드 가족의 집이 있는 곳이야.”

 

  첫 번째 사진에는 쾌락 전쟁 이후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부서진 마을의 풍경이 부감에서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거. 얼마 후의 모습일 것 같아?”

 

  다음 사진을 넘겨본 캘빈이 대화를 시작한 이래 눈에 띄게 굳어졌다. 첫 번째 사진 한쪽에 위치하고 있던 집 중 하나가 가까이에서 찍혀 있다. 그러나 그 사진의 내용은, 지금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이 무색하게도 싱그럽고 화사한 것이었다.

 

 “이쪽의 폐품업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돈 지 꽤 되었어. 적어도 석 달 전.”

 “에릭, 너 설마.”

 

  이제 할 말은 다 끝났다고 소리 없이 전하며 에릭이 서류 더미로부터 일어난다. 그의 코트에 붙어 있던 종이 몇 장이 떨어져 얌전히 산 위에 내려앉는다.

 

 “그 쪽은 형이 할 수 있잖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그 느낌 알잖아? 무슨 상관인지는 몰라도, 놔두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만약에 만약의 경우에,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은 저 곳에서 날 것 같아. 가서 정확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을 맡게 된 이상 확인해 보고 싶어."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릴게. 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에릭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벽 바깥의 매캐한 바람만을 남겨놓은 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올바른 수순이라면 그를 막거나, 적어도 인원을 붙여 주겠다고 해야겠지만, 서로의 일에 그런 참견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형제가 각자의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정한 약속이었다.

 

 “우리 둘 다, 그 아저씨랑 너무 오래 알고 지냈어.”

 

  딱 한 명, 저 동생보다 더 기묘한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그의 느낌에서는 곧 그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꿈틀대고 있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보게 되는 그 사람. 대체 무엇이 그와 그 본인만큼 희한한 배를 움직이는 것일까. 형제가 일생 동안 풀기로 마음먹은 그 남자의 정체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번 이야기의 결말로 향하는 동생을 말릴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창밖으로 바라본 인공의 하늘은 여전히 그 빛깔 하나 바꾸지 않고 멀건 빛을 땅으로 쏘아 보내고 있다. 먼 과거의 보존된 기후 데이터에 따라 재현하는 이곳의 날씨 치고는 드물게도 하루 종일 맑은 날이었다. 조금 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처럼, 캘빈은 다시 방 안 가득 쌓여 있는 먼지 나는 빙하를 허물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일이 막 시작되기에 딱 걸맞은, 고요한 전 날의 오후였다.

 

 
작가의 말
 

 시작은 1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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