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 비밀? 그게 뭔데?"
귀남과 동일은 21살 그때를 떠올렸다.
" 처음 삽질할 때 기억 나냐?"
" 삽질?"
" 그래.
진짜 처음 할 때 죽는 줄 알았는데."
" 뭘 그런 것 까지 기억하고 있냐?
난 처음부터 잘한 것 같은데?"
" 잘하기는
너랑 나랑 밖에서 공부만 하다 왔다고
군대에선 필요도 없는 놈들이라고
엄청 혼났던 거 기억 안나?"
" 그랬나?
생각해보니 삽질 엄청 한 것 같네."
" 와 진짜 2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귀남은 잠시 눈을 감고 그 때를 떠올렸다.
그날은 뜨거운 여름이었고
선임들이 웃통을 벗어 던지고 한참 축구를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머리가 짧았던
둘은 선임들이 축구를 하는 동안
부대 안에 있던 큰 나무 밑에서 삽질 연습을 했다.
그때의 모습들이 떠올라 웃음이 머금어졌다.
" 그땐 왜 그렇게 삽이 손에 안 익었지?"
" 당연하지.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 자랐는데."
" 그래도 넌 어머니 때문에 시골에서 좀 살았었잖아?"
" 기억도 안나."
" 한 번도 다시 안 가 봤어?"
"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바빠서."
" 폐가에 갈 시간은 있고 어머니 보러 갈 시간은 없냐?"
" 뭐 시간되면 가야지."
" 그때 삽질 안 해본 거야?"
" 애가 무슨 삽질을 하냐?"
" 하긴, 정말 우리 그때 바보 같았어.
선임들이 스물이나 넘어서 뭘 배웠냐고 갈궜잖아."
" 그때 우리 부대에 완전 큰 나무 있었던 거 기억나?"
" 기억나지. "
" 우리 맨날 그 나무 밑에서 삽질이랑 곡괭이질
연습했잖아."
" 맞아. 일부러 선임들 축구하다가 보라고
엄청 열심히 하는 척 했지."
" 그 나무 지금도 있을까?"
" 있을걸."
" 하긴 너무 크니까.
오래되기도 했고
함부로 자를 순 없을 걸. "
" 아니. 그 나무가 너무 크고 오래 되서가 아냐.
절대 자를 수 없는 이유가 있어."
" 왜? 그거 부대 자산이었나?"
" 야 무슨 나무가 무슨.
그 나무에 비밀이 있다니까."
귀남은 눈을 크게 뜨며 놀리듯 동일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무슨 비밀?
아 진짜 무섭게 왜 그래?
뭔데?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비밀?"
" 무섭고 슬픈 비밀."
" 아씨 나 맨날 거기서 누워 있고 그랬었는데."
거기 또 뭐가 있었던 거야?
진작 말 좀 해주지."
"해코지 할 만 한 나무는 아니니까."
" 말해 봐. 그 비밀."
" 우리가 자대 배치 받아서
육공에서 내릴 때부터
그 나무는 우릴 쳐다보고 있었어."
" 나무가 쳐다보고 있었다고?"
" 뭐 정확히 말하면 나무가 아니지.
나무에 사는 사람들이었던 거지."
" 나무에 사는 사람?"
"그렇지."
" 야 잠깐만
나 오줌 마렵다."
" 아 중요한 비밀 말하려는데.
빨리 갔다 와."
" 못가겠어."
동일은 어린 애처럼 굴었다.
" 야 빨리 갔다 와."
"같이 가자."
" 아씨 귀찮아 빨리 갔다 와.
하여간 간은 콩알만 해서는"
" 같이 가자. 진짜 무섭다니까.:
"거참 귀찮게 하네."
귀남은 동일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 손잡고 가자."
" 야 적당히 해라.
빨리 들어 갔다 와."
" 너 안 들어 올 거야?"
" 여기 있을게 빨리 갔다 와."
" 야 나 무서운데"
귀남은 얼굴을 찡그렸다.
"알겠다. 아 새끼 같이 가주지."
그때 귀남은 동일이 들어간 뒤 다리를 절며 화장실로
빨려 들어가는 어떤 존재를 보고 말았다.
귀남은 재빨리 그 정체를 보려 바로 들어갔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 야 뭐야 뭐야! 뭔데!
아 놀래라.
밖에 있는 다더니 뭐냐 너 무슨 일이야?
오줌 묻었잖아!"
" 너 괜찮냐?"
" 뭐가?
아 진짜 무서워 죽겠다.
너랑 있으면 내가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다."
" 참나. 걱정 되서 들어왔더니만."
" 무슨 걱정?"
" 방금 네 뒤따라서 누가 들어왔단 말이야."
사색이 된 동일은 펄쩍펄쩍 뛰며
등을 털었다.
" 아오씨 귀신 얘기 계속하니까
귀신들이 달라 붙나 보다.
일단 나가자."
" 너 최근에 어디 갔다 왔냐?"
" 어딜 갔다 와?"
" 뭐 상갓집이나 잔치 집이나 묘지 같은 데나. "
" 아니 없어."
" 그럼 됐어. 그럼 대체 뭐지?"
" 아. 있다. 벌초 갔다 왔다."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는 귀남.
" 아 뭔데?
벌초하다가 조상님 붙은 거야?
어떻게 하면 되냐? 굿을 해야 하나?"
" 뭔 굿을 해.
조상님들 머리 깎아 드려서
고맙다고 뭐라도 해줄 거
있나 싶어서 오신 거지."
" 그런 거야? 복권 사야 하는 거야?"
" 그런 불손한 생각만 하니까 안 되는 거야."
" 하긴 내가 뭐 조상 덕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 야! 다 들으신다고!
맨날 네가 조상 복도 없다고 떠들어대니
그 분들이 퍽이나 돕고 싶겠다."
" 아 그런 거냐?"
동일은 뒤돌아서 손을 비비며 절을 했다.
둘은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 야 진짜 무섭다.
난 이런 얘기가 안 맞나 봐."
" PD라는 놈이 그렇게 무서워서 되겠냐?"
" 무슨 상관이냐? 겁 많은 거랑 PD인 거랑."
' 이 얼마나 대단한 소스냐?
너 친구가 귀신이 보인다니까?"
" 야 됐다. 이런 주제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아요.
21세기에 무슨 귀신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드냐?
뭐 신PD가 간다. 이런 거? 너무 구식이야."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니까."
둘은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족발을 먹으려고 했지만
이미 뻣뻣하게 굳어 버린 상태였다.
" 야 이거 왜 이렇게 갑자기 뻣뻣해졌냐?"
" 왜인 줄 알아?"
" 왜?"
"귀신들이 우리 화장실 간 사이에
스윽 훑고 지나갔거든."
동일은 겁에 질러 젓가락을 던져 버렸다.
" 야 그만해라. 진짜 오줌 싸겠다."
" 야 그러면 그 나무에 대한 비밀은 안 듣고 싶은 거야?"
" 무슨 나무?"
" 지금까지 얘기하고 있었잖아.
우리 군대 있을 때 나무."
" 아 진짜 무서운데 궁금하기는 하고. 미치겠다."
" 하지 말까?"
"잠깐만."
동일은 손을 비벼 열을 내어 눈과 목에 갖다 댔다.
와 오랜만에 이런 얘기 들으니까 혈액순환이 안 된다."
" 마흔 넘어서 쫄기는."
" 뭐 나이 먹으면 안 무섭냐?"
" 준비됐냐?"
" 해봐 "
" 우리 전입 와서 육공 트럭에서 내릴 때부터
그 나무가 우릴 보고 있었어."
" 그래. 거기 까지 했어."
" 그런데 참 이상하지."
" 뭐가?"
" 그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거야."
" 뭐가? 열매?
그 나무 뭐였지?
은행나무였나?
잣나무였나?"
" 열매가 아니었어."
" 그러면?"
" 죽은 자들이 주렁주렁."
" 아씨 욕할 뻔 했네.
진짜로? 그 나무에?"
" 어. 잔인하지만 이 표현이 딱 이야.
주렁주렁."
" 야 왜 진작 말 안했냐?!
맨날 삽질하고 거기서 누워 있고 그랬는데!"
" 뭐 시원하긴 했잖아.
그분들 덕분에."
" 완전 미친놈일세."
" 그 사람들 한(恨) 때문에 서늘했어. 그 땅이."
" 이거 봐라. 소름 돋은 거?
근데 그 사람들은 왜 죽었는데?"
" 내가 홍 병장이랑 근무 나가서 사고 친 후에
다음날 연병장 돌았다고 했잖아."
" 아 그때 그 사람들이 알려 준거야?"
" 그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아.
그냥 보일 뿐이지.
있으면 안 되는 곳에서 사는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최소한의 배려라고나 할까?"
"너처럼 그들이 보이는 너 같은 사람들에나 배려지.
그러면 어떻게 전달하는 거야?"
"꿈."
"꿈?
그러면 꿈이나 환상으로 너한테 전달하는 거야?"
" 그렇지. 그때 연병장 돌다가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그 나무 밑에서 퍼졌어. 그냥 뻗어 버렸어.
벌러덩 누워서 나무 위를 쳐다보니까
겉에선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빼곡한 거야.
정말 빼곡하게.......
사람들 모두 한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봤어.
잊을 수가 없어. 그 눈빛. 그 표정. "
" 너도 무서웠겠다."
" 아니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어."
" 그 밑에서 잠이 오더냐? 나 참."
" 난 귀신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니까.
그날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 힘들어서."
" 한 숨 푹 자고 나니까 괜찮데?"
" 몸은 개운해졌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졌어.
그들이 꿈에 나와 했던 말들 때문에
내 상식으론 절대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했어."
" 그 나무에 있던 사람들이었어?"
" 어. 비참한 몰골을 하고"
' 꿈을 통해서 뭔가 전달을 하려고 하는구나."
" 맞아. 꿈이 그들과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야."
" 넌 깨어 있어도 잠들어도 피곤하겠다."
" 뭐 그냥 똑같아.
어떨 땐 꿈속에서 사는 게 더 나아.
현실이 지옥 같을 때도 많잖아."
" 그래서? 그 사람들이 뭐랬는데?"
" 자신들은 처형된 사람들이라고."
" 처형?
대한민국에서 처형당할 일이 뭐가 있지?"
" 전쟁."
" 아, 근데 왜 우린 전역할 때까지 몰랐지?"
"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아니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해야지.
억울한 것을 풀기 위해서 널 찾은 거 아냐?
죽어서도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뭘 숨기려고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길 원해서
꿈에 나타났던 거야.
절대로 말하지 말고 지켜야 할 비밀이라고."
" 꼭 지켜야 할 비밀?"
" 어. 죽을 때 까지 밝혀지면 안 될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