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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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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7 12:49     조회 : 453     추천 : 3     분량 : 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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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년 후 돌아올 거라며 떠난 그는 사 년이 지난 뒤에야 돌아왔다.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빚을 최대한 갚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빚이란 놈은 매우 근면 성실하여 가만히만 둬도 뛰룩뛰룩 제 몸을 불렸다. 다행히 똑똑하고 착실한 그는 조금 나은 직급으로 승진되었고, 쥐새끼만큼의 봉급 인상은 그의 발목을 잡고도 남았다. 살은 십 킬로나 빠지고 새까맣게 그을어 버린 그를 엄마는 몰라볼 뻔했다. “깜디가 돼 삐맀구만.” 엄마가 눈물을 감추며 말했다.

 

 고작 네 살이었지만 그때 그를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저씨는 누구세요?”하고 묻는 나에게 그는 다정히 웃어 보였다. 그의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와 선 분홍 잇몸이 드러나자 그는 오히려 더 외국인 같아 보였다. “아저씨가 아니고 아빠다. 우리 나린이 아빠.” 그가 엄마와 비슷한 억양으로 대답했다. “나는 아저씨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아저씨가 아빠에요?” 솔직히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어디 먼 데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아빠’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처럼 나와 엄마와 살지 않았다는 게, 그리고 이제 와서야 갑자기 나타났다는 게 어색하고 이해가 잘 안 됐다. “아빤 저짜게 머언 나라서 열심히 일해가꼬, 돈 많이 벌어서 왔지.” 그는 내 볼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놀림은 내 연약한 살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날 아프게 했다. 오랜 노동에 갈라진 손 틈새를 채운 굳은살은 그의 손을 때수건보다도 더 거칠게 만들어 놓았다. 솔직히 그의 손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내 ‘아빠’라는 이 사람에게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건 어린 나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고, 난 그냥 그를 내버려 두었다. 나의 얼굴을 관찰하는 그의 눈길을 따라 나도 그의 얼굴을 관찰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아저씨 돈 많아요?” “그럼.”

 

 그의 대답은 새하얀 거짓말이었다. 어렵게 다시 하나가 된 우리 가족이 당시 가지고 있던 돈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은 서울 시내에 흔치 않았다. 우리는 수유리에 있는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그는 노가다 일을 시작했고, 엄마도 허드렛일을 멈추지 않았다. 적게 버는 만큼 적게 쓰고 악착같이 모으자. 모아서 전셋집을 마련하고, 또 모아서 우리 집을 마련하자.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있어도, 단 일 원, 일 전의 빚도 더는 만들지 말자. 둘은 다짐했고 실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건 다 엄마의 제안이었고 부탁이었지만 그는 엄마의 말을 잘 따랐다.

 

 단칸방은 어른 두 명이 누우면 가득 찰만한 크기였다. 엄마와 그가 나란히 눕고, 난 그들의 머리맡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잠을 자다가 나를 머리로 받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하며 두 발을 제대로 뻗고 자지 못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지하방은 항상 습하고 곰팡이는 아무리 닦아내도 없어질 줄 몰랐다. 곰팡이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봐도 그것은 꽤 흉물스러웠다. 그 검고 쾌쾌한 것이 살아 있다는 게, 그게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징그럽게 불어나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게 소름 끼치게 기분 나빴다. 좁은 방에서 벽에 몸이 닿지 않고 자는 건 불가능했지만, 난 작은 내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잤다. 처음엔 시커먼 벽만 봐도 곰팡이 하나하나가 코와 입을 통해 몸 안에 파고들어 내 안에서 바글바글 살 것처럼 숨이 막히더니, 이내 대수롭지 않아져 오히려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곰팡이보다도 훨씬 크고 징그러운 것들을 건물 밖 대로변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가면 만날 수 있었다. 아침이면 화장지나 신문지 구긴 것들을 들은 사람들이 추레한 모습으로 길게 줄을 섰다. 모두들 엄마나 그와 같이 삶에 잔뜩 찌든 얼굴이어서 똥을 싸러 들어가는지, 씹으러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난 그들 틈에 서 있기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그 줄에 껴있으면 ‘나는 곧 저 더러운 똥간에 더 많은 똥을 채울 것이요.’ ‘저 똥간에 들은 똥이 모두 내 똥이요.’ 하고 온 세상이 다 듣도록 크게 떠드는 것 같았고, 이는 미칠 듯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결국 난 어린 나이에 만성 변비를 앓게 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똥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나 그는 전혀 몰랐다. 이사를 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 배가 미칠 듯이 아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에 가는 도중 쓰러지고 말았다. 대낮이었던지라 사람들은 금세 날 에워쌌다. 방에서 멸치 똥을 따는 일을 하던 엄마는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에 밖에 나왔다가 바닥에 꼬꾸라져 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했다. 잔병치레 한 번 없던 애가 쓰러졌으니 엄마는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 생각하고 나를 업고 뛰었다. 아이는 무거웠지만 택시를 탈 돈이 없었다. 십오 분 정도 거리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면서, 엄마는 그 순간에도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있는 본인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버스 안에서 정신이 든 난 울고 있는 엄마를 보고 더럭 겁이 났다. 엄마가 우는 걸 본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내가 엄마를 울린 건, 내가 똥 같은 하찮은 문제로 엄마를 울린 건 너무 미안하고 슬픈 일이었다. “배 아파. 똥 마려.” 똥을 참아서 이렇게 됐다는 건 차마 말 못했다. 엄마는 “배가 아프다꼬? 의사 선생님이 다 고쳐줄끼다. 걱정 마라.” 하며 내 배를 어루만져줬다. 엄마 손은 신기하게도 통증을 없앴고 난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엑스레이 검사 후 내린 처방은 ‘관장’이었다. 흑백 사진처럼 보이는 내 몸뚱어리 안 사진을 가리키며 젊은 의사가 말했다. “여기 까만 것들 보이시죠? 이게 다 가스랑 변이거든요. 어린애가 이 정도 변비가 있었으면 많이 불편했을 텐데 아무 말도 없었나요?” 의사 말을 듣고 사진을 다시 보니 정말 내 안엔 똥밖에 없었다. 엄마는 사진과 날 번갈아 보며 마치 자기 탓이란 듯 말했다. “암말 없었는데예. 우리 아가 원체 착해서예.” 나 착한 거 아닌데. 내가 바보같이 똥 참아서 이렇게 됐는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의사,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똥을 한 무더기 싸내며, 앞으로 똥이 마려움 바로바로 싸야겠구나, 안 그럼 엄마를 슬프게 만들고, 돈이 들어 엄마를 걱정하게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똥을 싸는 망신을 당하는구나, 조용히 깨달았다.

 

 빈민촌에서 똥 싸는 것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연탄가스였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였으니 연탄가스 사고로 죽는 사람 수는 현저하게 떨어졌을 때지만 우리 동네선 심심찮게 벌어지던 일이었다. 연탄을 때봤자 방은 별로 뜨뜻해지지 않았는데 연탄가스는 어디서 들어오는지 연탄의 열기보다 더 강하게 방안을 잠식했다. 그날은 그와 엄마가 모두 일을 다녀와서 곯아떨어졌었다. 너무 추웠던 나머지 나는 둘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고, 우린 한 덩어리로 뭉쳐져 한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꿈을 꾸었다. 꿈에서 엄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소복을 입은 채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키가 아주 작고 얼굴이 까만 마흔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이게 시방 뭔 일인겨.” 하자 엄마는 “뭐 이래 됐으요. 엄니.” 했고, 아주머니는 “워째 이래 됐냐.” 한 게 대화의 다였는데, 난 이유 없이 미칠 듯이 슬픈 기분이 들어 엉엉 울었다. 아니, 엉엉 울고 싶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누군가가 나를 이불에 돌돌 말아 꽁꽁 싸맨 뒤 산 매장을 한 듯 답답한 기분이 들어 손발을 아무리 휘저어도 꿈쩍도 안 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깨어났을 때 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엄마가 우는 걸 보고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며 한마디 했다. “나 외할머니 봤다.” 엄마는 내가 뇌 손상을 입어 정신이 어떻게 됐나 싶어 “아이고 선상님 우리 나린이 좀 봐주세요. 우리 아가 이상합니더.” 하며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내가 꿈에서 본 거라 얘기하자, 엄만 넌 외할머니 얼굴은 구경도 못 했는데 어떻게 외할머니인 줄 아느냐며 의아해 했다. 난 “엄마가 ‘엄니’하고 불렀고 그 아줌만 자주색 한복을 입고 있었어. 머리는 쪽을 져서 꼬챙이로 꼽고.” 했다. 엄마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유일한 모습이 자주색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릴 한 모습이라고. 엄니가 우리 가족을 살린 거라고.

 

 말은 바로 하자면 우리 가족을 살린 건 외할머니가 아니라 그였다. 워낙 잠귀가 밝은 그는 동네 개 짖는 소리에 깨어 일어나다가 휘청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게 딱 연탄가스중독이어서 한 손엔 엄마를 다른 한 손엔 날 둘러업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조금만 늦었으면 난 꿈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외할머니를 만났을 거란 게 의사 말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 한겨울에도 문을 조금 열어놓고 잤고, 아무리 이불을 여러 겹 덮고 자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고 아침에 일어나면 몽둥이로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가난은 강하다. 가난은 곱던 엄마의 손을 갈래갈래 갈겨놓았고, 한두 달이면 없어질 줄 알았던 그의 그을림 위에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열심히 죽을 만큼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는 건,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뜻이었다. 희망이 없는 자들에겐 싸움만 있었다. 엄마는 그와 싸우면 그를 ‘그 인간’이라고 불렀다. 안 싸웠을 때도 ‘느그 아빠’라고만 불렀으니 큰 차이는 아니었으나 엄마가 그를 ‘그 인간’이라고 부르는 날은 각별히 행동을 조심해야지 아니면 불똥이 나에게 튄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가 그를 ‘그 인간’으로 부르는 날이 점점 늘어나더니 ‘느그 아빠’란 말은 듣기 힘들어졌다. 난 아무 잘못도 없이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한밤중에 둘의 싸움 때문에 깨는 날이 허다했다. 눈을 꼭 감고 계속 자는 척했지만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하게 들렸다. 하루는 자는 나를 아예 들어 올려 서로 “니가 데불꼬 가라.” “내가 와? 니가 데불꼬 나가라.” 하며 싸웠다. 어린 마음에 계속 자는 척하면서도 둘이 헤어지면 그보다는 엄마랑 살고 싶으니 그가 이기길 바라야 하는 건가 고심했다. 그가 이겨도 엄마가 날 놓아두고 안 데리고 가면 그만이란 데 생각이 미치자 난 패닉상태가 되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확 뜨자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나를 애써 그에게 넘겨주려 하고 있었고 그는 싫다고 손을 내젓고 있었다. 원망과 두려움에 가득 차 울지도 못하고 있던 내 눈빛을 보자 엄마도 그도 할 말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는 없었고 엄마만 봉투를 붙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난 그의 행방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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