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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지오가 있는 곳
작성일 : 19-10-16 22:02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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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나와 오유미는 택시를 타고 지오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택시 안에서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오유미가 장마철에 널어놓은 빨래 마냥 축 늘어져 있을까봐 걱정한 것이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유미에게도 회색양복들이 찾아왔었는지 궁금했다. 오유미는 하얀 방에 갔다 왔을까.

  “내가 왜?”

  오유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끝을 올렸다. 회색양복들은 오유미의 집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인상착의를 들어보니, 무테안경과 스포츠머리인 것 같았다. 아마도 그들이 이 일의 실무담당인 듯 했다. 오유미는 그들이 동행을 요구했을 때도 지금처럼 따졌다. 싫다고 했더니 공권력을 들먹이며 그녀를 끌고 가려고 했다.

  “협박을 하잖아, 그 자식들이! 제깟 놈들이 뭐라고.”

  회색양복들이 오유미를 붙잡았을 때 오유미는 발버둥을 치며 버텼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아파트 사람들을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회색양복들은 당황했다.

  “국정원 다니는 사촌도 있고, 우리 작은 아버지는 장관이라고 말했지. 내가 다 알아보겠다고, 이름하고 소속 대라고 난리 좀 쳤지.”

  “진짜야?”

  “뻥이지. 알게 뭐야. 또 모르지. 아버지가 다섯이나 되는데 찾아보면 그 중에 하나 없겠어?”

  오유미는 고소해하며 웃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결국은 안 가고 넘어갔는데,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잖아. 난데없이 찾아와서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야하는 거야? 그 자식들 이름도 안 밝혔어. 그리고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뒷조사 한 게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잖아. 씨발, 대통령 이름 팔면 다 되는 거야? 지금이 5공 때도 아니고, 촌스럽게……. 열 받아서 청와대로 달려갔지. 그쪽도 안 갔지?”

  오유미는 당연하게 물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나의 수동적인 태도와 소심하고 줏대 없는 행동을 책망하는 것 같았다. 그 눈빛 앞에서 나는 형사에게 죄를 자백하는 범인처럼 하얀 방에 다녀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대가리야? 왜 따라가?”

  오유미가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회사만 잘렸다.”

  나는 일부러 명랑하게 말했다.

  “안 되겠다. 씨발, 아저씨 차 돌려요! 다시 청와대로 가요!”

  오유미는 당장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우선은 지오가 급하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씨발, 그깟 놈의 회사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잘 그만뒀어. 부당해고로 소송 걸고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왕창 청구해.”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 방식의 위로였다. 투박한 말투로 위장하고 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얀 방에 다녀온 뒤로 내 하루하루는 제 멋대로 어긋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그랬던 내 일상이 오유미의 한 마디로 한층 느슨해지는 듯 했다.

 

  지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3층 이내의 낮은 건물들이 2차선 도로 옆에 모여 있는 작은 도시였다. 도로옆 건물 뒤쪽으로는 일반 주택과 야트막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조여사가 가르쳐준 곳은 인근에서 유일하게 높은 6층 건물이었다. ‘○○마음병원’이란 글씨가 건물 외벽에 정직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우선 이름이 정신병원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사이 서의원이 마음을 바꿨나 싶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병원은 한산했다. 우리는 1층의 안내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지오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조여사의 당부였다. 지오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고 가급적 사람들과 마주치지 말라고 했다. 지오의 병실은 5층 505호였다. 입구의 안내표지판에 ‘특별병동’이라 표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씨발, 여기 병원 맞아? 분위기가 왜 이리 거지같아?”

  병원이라기엔 지나치게 복도가 좁았고, 조명이 어두웠다.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열기가 느껴졌다. 그 열기 아래로 적막함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아아악! 갑자기 괴성이 들려왔다. 소리는 금세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몇 초 후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려오는 사람도 없었다. 5층 중앙에 자리한 데스크에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한 명 있었지만, 그녀는 내내 코를 박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쨍그랑. 이번에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볼펜을 집어 던지며 의자를 밀치고 일어났다. 간호사는 그제야 우리를 발견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누구 찾아오셨죠?”

  간호사가 추궁하듯 물었다.

  “아니에요.”

  내가 서둘러 간호사의 말을 끊었다. 불현듯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에요, 라니. 둘러댄다고 한 말이 너무 성의가 없었던 것 같았다. 대체 뭐가 아니란 말인가.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 찾아오셨느냐고요.”

  “층을 잘못 찾았어요.”

  오유미가 선수를 쳤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계단으로 향했다. 저기요. 뒤에서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고도 간호사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어휴, 다들 어딜 간 거야.”

  간호사가 멀어져갔다. 소리가 난 곳으로 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지오의 병실로 향했다. 5층에는 가운데 데스크를 중심으로 양쪽에 8개씩, 총 16개의 병실이 있었고 한쪽에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각 501호~504호, 505~508호가 자리 잡고 있다. 병원 직원들 둘이 한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502호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우리는 열린 문틈 사이로 그들이 뛰어 들어간 502호를 훔쳐봤다. 좀 전의 간호사가 그곳에 있었다. 들킬세라 발길을 돌리려는데 오유미가 나를 막았다.

  유리파편과 물건들로 어지럽혀진 병실에 환자가 한 명 있었다. 환자는 몸부림을 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자 주변에 간호사와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환자를 눌러 제압한 뒤, 침대에 환자를 묶는 중이었다. 양 팔을 묶고 양 발목을 각각 묶었다. 환자가 발버둥을 치자, 간호사가 그의 다리를 찰싹찰싹 때렸다. 직원 한 명이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노인네가 왜 이리 기운이 좋아? 죽으려면 아직 멀었나 보네.”

  나는 오유미의 옷을 잡아당겼다. 우리는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502호를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505호로 들어갔다.

  “지오야.”

  병실은 어두웠다. 커튼이 쳐져 있었고, 불도 켜지 않아 희미하게 보였다. 침대 위에 이불을 뭉쳐둔 것처럼 희끄무레한 것이 있었다. 지오였다.

  “불 켜도 돼?”

  대답이 없었다. 나는 불을 켜는 대신 창문으로 가서 커튼을 걷었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병실이 밝아졌다. 침대와 서랍장, 작은 냉장고와 1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는 1인실이었다. 하얀 방과 흡사했다. 지오가 침대 위에서 빛이 닿지 않는 구석으로 몸을 움직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지오는 전보다 더욱 왜소해 보였다. 조여사가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오는 얼추 모기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지오가 입고 있는 흰색의 환자복은 팔뚝까지 어깨선이 내려왔고, 손을 덮을 정도로 소매가 나와 있었다. 입은 것이 아니라 대충 옷을 걸쳐 놓은 것 같았다. 핏줄이 툭툭 불거진 어깨가 짙푸른 색으로 보였다. 얼굴은 더 많이 변했다. 코는 형태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눈은 충혈된 것처럼 새빨개 보였다. 입은 길고 뾰족했다. 환자복이 아니었다면 한층 더 모기다워 보일 것 같았다.

  “등신, 이렇게 못 생긴 모기는 처음 본다.”

  오유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파출소에서 본 뒤로 안산에서 지오를 만나지 못했으니 나보다 더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이게 뭐야?”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기다란 끈을 집어 들었다. 침대의 철제 난간에 매여 있는 것이었다. 반대쪽도 똑같은 끈이 있었다. 오유미가 지오의 팔을 잡고 소매를 걷어냈다. 뼈만 남은 팔목에 띠를 두른 것처럼 검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아문 상처 위에 다시 상처가 생긴 것 같았다. 끈에도 얼룩이 묻어 있었다. 나와 오유미는 아연해졌다.

  “씨발새끼들!”

  오유미가 누구에게인지 모를 욕을 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뜨거운 냄비를 만진 것처럼 반사적으로 손을 떼었다. 손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았다.

  “날개, 곧 날 수 있어.”

  지오가 띄엄띄엄 말했다. 지오의 말처럼 양쪽 어깻죽지가 두드러지게 솟아난 것이 날개처럼 보였다.

  “씨발, 너는 지금 그런 말이 나오냐? 네가 원했던 게 이거야? 만족해?”

  오유미가 분통을 터뜨렸다.

  “데리고 나가자.”

  “어쩌려고?”

  “이런 거지같은 곳에 더 둘 수 없어. 진짜 미쳐버리고 말거야.”

  “지오 부모님이 결정한 거야. 우리는 끼어들 자격 없어.”

  “그걸 왜 부모가 결정하냐고? 싫으면 빠져. 내가 데리고 나갈 거야.”

  오유미가 지오의 팔을 낚아챘다. 지오가 힘없이 끌려왔다. 나는 지오의 반대쪽 팔을 덥석 잡았다.

  “어차피 데리고 나갈 수 없어. 밖에 사람들도 지키고 있잖아. 데리고 나간다고 해도 그 다음은? 갈 데 없어. 전에 너도 말했었잖아. 어린애처럼 굴지 마. 대책 없이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 게 더 나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 어른이면 다 그러는 거야? 그럼 아무것도 안 바뀌잖아.”

  우리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쪽은 정말 상관없는 거야?”

  “알아. 나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걸까.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그 순간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괜찮아. 모기 죽었다고 죄책감 느끼는 사람은 없어.”

  지오가 말했다. 무덤덤한 말투였다. 표정도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그 무심한 한 마디가 바람이 되어 쏴르르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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