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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정치인 아버지
작성일 : 19-10-16 21:54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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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문을 열어 준 것은 뜻밖에도 지오의 아버지였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취직자리를 알아보면서, 정 안 되면 서의원에게 부탁을 해 볼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터였다. 그러나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서의원은 집에 있으면서도 금방이라도 외출을 할 것처럼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서 와라.”

  “지오 어머니는 안 계세요?”

  “몸이 안 좋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여사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지오를 찾지 못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겠지. 나는 서의원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는 법전이 즐비한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이 집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지만 서재는 처음 와 보는 것이었다. 지오도 서재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서재로 부르는 것은 야단을 칠 때 뿐이었으므로, 지오로서도 서재 방문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오는 아버지가 서재에서 손님을 만날 때는 누구든 서재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었다. 문 앞에 있어도 무슨 이야기를 속닥거리는지 밖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걸 두고 지오는 ‘서기찬 밀실 정치의 요람’이라고 비웃었었지.

  그 서재에 내가 들어왔다. 서의원이 검사 시절, 거물 정치인을 잡아들일 계획을 세웠고 국회의원이 될 준비를 했던 서재였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지오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버지와 맞짱을 떴구나, 라며 파이팅을 외쳤을까, 아니면 악마의 소굴로 끌려간다며 혀를 찼을까.

  “그 뒤론 귀찮게 안 했나?”

  회색양복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네. 그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지오를 찾는 거죠? 그보다 지오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니? 지오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니? 그, 지오의 상태 말이다.”

  “아뇨. 처음에는 알고서 절 찾아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확실히 잘 모르고 있는데, 찾아서 확인하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이상했어요.”

  “아마 나 때문일 거다.”

  서의원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은 약 6개월 전이었다. 통화를 할 때면 누군가 엿듣는 느낌이 들었고, 집 근처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사적인 만남이나 가족 행사에서도 따라붙는 사람이 있었다. 서의원은 자신이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도 정부 기관에게 말이다. 서의원은 여당 의원인 자신이 감시를 받는 이유를 추측했다. 당내의 중진 의원들은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한 서의원을 좋게 보지 않았다. 서의원은 그들과 자주 의견이 부딪혔고, 젊은 의원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내 소장파로 분류가 되었다. 소장파로 불린 부류들은 종종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청와대와도 대립각을 세워 주류 인사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소장파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높아져만 갔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대통령의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었다. 소장파 외에도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 청와대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올 때였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국회의원들은 또 선거를 치루고 살아남아야 하니까.”

  서의원은 자신 이외에도 감시를 받는 의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은밀히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두려웠겠지. 밝혀지면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일 테니까. 내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을 거야. 그러다가 지오의 일도 알게 된 거고.”

  때마침 서의원은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기나 바퀴벌레, 최근의 파리 등 벌레 인간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이것 또한 청와대의 공분을 샀다. 영부인이 카메라를 통해 전 국민에게 생중계 한 약속을 파기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의원은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대통령-영부인이 했다고 해도-이 임의로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겼다. 이전에도 대통령은 당의 사정과 무관하게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거나 당의 충고를 무시해 해당 지역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난처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소장파는 대통령의 독단에 제동을 걸 필요를 느꼈고, 서의원이 선봉에 서기로 했다. 벌레인간에 대한 정부 지원에 불만을 품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도 서의원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청와대로서는 다급했을 거야.”

  “그게 지오하고 무슨 상관이죠?”

  “지오를 잡아서 나한테 타격을 주려는 거겠지. 제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제 정치생명을 위해 자식을 팽개치면서, 같은 고통에 빠진 가족들을 외면한다고. 세상에 지오를 뜯기 좋은 먹잇감으로 던져주려는 거다.”

  “당신, 그걸 알면서 어쩜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어요?”

  문 앞에 조여사가 서 있었다. 조여사가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파리한 얼굴에 기운이 없어 보였다. 눈동자도 초점이 없이 멍해 보였다. 조여사는 없는 사람처럼 나를 지나쳐 서의원에게 갔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도 당신 걱정만 하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 얼굴에 먹칠할까 봐 그 생각만 하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당신이 제대로만 키웠어도 지오는 이렇게 안 됐어. 지오 잘못됐을 때 처음부터 나한테 얘기만 했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다고!”

  “끝까지 내 탓이라 이거지? 알았으면 당신 어땠을까? 남들 모르게 가둬버릴 사람이야. 소문나기 전에 차라리 죽으라고 할 사람이라고! 지오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조여사는 서의원의 옷깃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서의원이 거칠게 그 손을 떼어냈다. 조여사가 의자 위로 쓰러졌다. 조여사는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서의원도 표정이 침통했다.

  “잠깐 있어라.”

  서의원은 조여사를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서의원이 서재로 돌아왔다. 서의원은 지쳐 보였다.

  “그 법안 발의는 안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지원해주다 보면 거미든 지네든 한없이 늘어날 거다. 그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그러면 모기는 해 주고 거미는 안 해준다며 차별이라고 또 들고 일어날 거고 불만은 더 쌓여갈 거다. 어쨌든 미친놈들은 점점 늘어갈 테니까.”

  “하지만 치료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게 치료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나도 모른다. 치료가 되는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한 명도 없다. 지원금을 받은 몇 사람 중에서 치료가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당연한 일이지.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치료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럼 그 뒤로는 어떻게 됐을 것 같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려보냈다. 치료를 할 수도 없고 마땅한 수용시설도 없으니까 가족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죽었다.”

  서의원은 죽은 벌레인간들은 대부분 가족에 의해 그런 일을 당했다고 말했다. 언론에 나오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바퀴벌레 여자의 부모는 오지랖 넓은 노인과 사명감 투철한 일선 경찰에게 재수 없게 걸려든 사례라고 했다.

  처음엔 슬퍼하고 당혹스러워하던 가족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슬픔의 농도가 점점 옅어졌다. 벌레로 변한 가족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수치였으며, 처리하지 못할 골칫덩이였다. 참다못한 가족들은 벌레인간을 돌보기를 포기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크기에 따라 방이나 좁은 공간에 가두고 방치하기만 하면 된다. 그마저도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음식에 살충제를 탄다. 단박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굶어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단 시간이 절약된다. 다소 과격한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파리채를 휘두르고, 신문지를 말아 탁! 내려치는 것이다.

  가족들은 다른 벌레와 구별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아무리 작아도 30센티미터 이상인 벌레를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사람들은 벌레가 된 가족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갔다가 타인에게 봉변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가족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너도 집에서 손으로 모기를 잡지 않니? 똑같은 거다. 벌레가 된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거지.”

  “너무 잔인해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약에 벌레인간들이 그것을 원했다면 어떠냐?”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그 인간들이 기껏 벌레가 되어 가족들 손에 죽고 싶었다는 건가.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오는요? 지오도 의원님 손에 죽고 싶어 할까요?”

  내 말 속에는 비난조가 서려 있었다. 서의원이 지오의 생각 따위는 묻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처럼 들렸다.

  “사정이 이런데 이들에게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지원 예산 중 일부가 대통령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소문이 떠도는 마당에.”

  서의원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지오,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르니?”

  “네. 안산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너는 지오가 왜 그러는 지 아니?”

  서의원이 잔뜩 쉰 목소리로 물었다. 입술이 허옇게 마르고,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찾아야지. 그때까지는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지. 권력이든 뭐든 손에 쥔 게 있어야 그 녀석을…….”

  서의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소파에 구겨 앉은 그의 어깨가 움츠러들어 보였다. 고단함이 사정없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핸드폰이 울린 것은 우리 사이에 괴괴한 침묵이 웅덩이처럼 고일 때쯤이었다. 서의원의 것이었다. 그가 핸드폰의 액정을 확인했다.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전화를 들고 서재 밖으로 나갔다. 중요한 전화라고 느낀 이유는 왠지 모르게 허둥대는 듯한 서의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를 당황시키는 일이 뭐가 있을까. 지오와 관련된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번쩍였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났다. 서의원의 목소리를 찾아 주의를 기울였다. 웅얼웅얼 말소리가 들렸다. 2층이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당신, 안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몸을 붙였다. 조여사가 2층에 있었나 보다.

  “지오를 어디에 둬요? 정신병원……. 제정신이에요?

  조여사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봐, 목소리 좀 낮춰.”

  “누가 들을까 겁나요? 그게 두려워서 내 집에서 내 아들 얘기도 못 해? 정신병원 들어갈 사람은 지오가 아니라 당신이야! 서기찬 당신!”

  “제발 정신 차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아? 방법이 없잖아!”

  “도대체 지오한테 왜 이렇게 잔인해? 다 당신 때문이잖아! 그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조여사의 절규가 희미해졌다. 나는 도망치듯 지오의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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