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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지
작성일 : 19-10-16 21:49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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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혀 이상한 거 눈치 못 챘어요? 피를 빨려고 했다거나.”

  “모른다니까 몇 번을 말해요? 검사 결과 아직도 안 나왔어요? 나 언제 보내줄 거예요?”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무테안경과 면담이 이어졌다. 무테안경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내 대답도 한결같았다. 무테안경은 몇 번이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테안경은 초조해 보였다. 나는 무테안경이 심증만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진짜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겁니까?”

  무테안경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탕 쳤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무테안경이 웃는 모습을 보자,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깨를 펴고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냈다.

  “당신들이야말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심증만으로 가둬두고 있잖아요! 당장 내보내줘요!”

  “뭐야?”

  무테안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잔뜩 약이 오른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들어와 스포츠머리에게 다가갔고, 스포츠머리가 다시 무테안경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무테안경의 낯빛이 변했다. 그리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뭐예요? 어디가요?”

  “적당히 합시다. 서로 좋게 좋게, 응?”

  무테안경이 나가고 스포츠머리가 말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잠시 후 무테안경이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며 땀을 닦고, 풀어진 넥타이를 고쳐 맸다.

  “다시 합시다. 잘 생각하고 대답해요. 서지오씨, 모기인간 맞죠? 지금 어디 있습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나 내보내줘요.”

  “무테안경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씨발, 너 지금 서기찬 그 자식 믿고 이러지? 하지만 안 믿는 게 좋을 거야. 그 자식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리고 서지오 생각한다면 서기찬보다는 우리한테 말하는 게 나을 걸? 가족이라는 게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얘기해.”

  “이거 놔요!”

  “진정 하십시오. 이거 놓고 말씀하세요.”

  스포츠머리가 다가와 무테안경의 손을 떼어내려고 애를 썼다.

  “이년아, 서지오 지금 어디 있어? 너 서지오하고 무슨 관계야? 너, 그 새끼하고 잤지?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병신 새끼하고 잤지?”

  “변태새끼. 너 이름이 뭐야? 씨발, 내가 나가면 가만있을 것 같아?”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년이 미쳤나.”

  “아이고, 정말 왜 이러십니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천둥 같은 고함소리에 모두들 동작을 멈췄다.

  “서의원님,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스포츠머리가 먼저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무테안경이 나를 밉살스럽게 노려보고는 내 옷깃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나는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손으로 툭툭 옷을 털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소. 대체 누구 허락 받고 하는 겁니까?”

  서의원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모르셔서 묻는 건 아닐 텐데요. 의원님이야말로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바쁘신 양반께서. 여긴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이 친구는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아무나 붙잡아둬도 되는 겁니까? 이건 범죄입니다. 범죄!”

  무테안경이 주먹을 쥐고 발끈했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에만 천만이에요, 경기도까지 이천만이고요. 결과 나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비약하지 마시오. 그런 우려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않소. 그리고 결과는 이미 나왔지 않습니까!”

  무테안경은 서의원을 외면했다.

  “정말입니까?”

  스포츠머리가 무테안경에게 물었다.

  “진짜예요? 그럼 저 이상 없는 거예요?”

  “그래.”

  서의원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날 잡아둔 거예요? 대답해 봐요.”

  나는 무테안경에게 따졌다. 무테안경은 내 말을 무시했다.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옷 벗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서의원이 나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아드님, 걱정 안 되십니까?”

  무테안경의 목소리가 우리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서의원과 내가 무테안경을 돌아봤다.

  “지금 아드님 어디 있는지 모르시죠? 상태도 모르고. 그런데 너무 뻣뻣한 거 아닙니까?”

  “내 아들 걱정은 내가 알아서 하지. 네 놈은 네 모가지 걱정이나 해. 이번엔 그 어른께서 네 뒤를 봐주실 수 없을 거야. 꽤 바쁘실 예정이니까.”

  서의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무테안경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만 가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스포츠머리가 앞장을 섰다.

  “별 말 안 했지?”

  서의원이 스포츠머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오에 대한 얘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데려다주면 좋겠지만, 당대표님하고 약속이 되어 있어서.”

  서의원이 스포츠머리를 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데려다 주겠습니다.”

  스포츠머리가 넙죽 인사를 했다.

  “조만간 평창동에 들러라.”

  서의원이 빠르게 속삭인 후 차를 타고 떠났다.

  “우리도 갑시다.”

  스포츠머리가 어제 타고 왔던 봉고차를 가지고 왔다. 안에는 스포츠머리 한 사람뿐이었다. 나는 뒷좌석에 기대어 앉았다.

  “가까운 터미널까지만 태워다주세요.”

  “그럴 순 없지, 누구 분부인데. 걱정 말고 푹 자요. 곱게 모셔다 드릴 테니.”

  스포츠머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느라 차가 덜컹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들뜬 마음에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문을 열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테안경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방이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해주일거라고 생각했다. 반가워서 뛰어가 해주의 손을 붙잡았다. 해주야, 내가 방금 꿈을 꾸었는데……. 나는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을 듣는 해주는 반응이 없었다. 해주야. 나는 해주를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악! 나는 놀라서 손으로 밀쳤다. 넘어진 무테안경이 나를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그곳은 어제 내가 잔 그곳, 하얀 방이었다.

  “악, 이 씨발 새끼야!”

  “이봐, 일어나요!”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스포츠머리가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뭐예요!”

  나는 기겁을 하며 스포츠머리를 밀쳤다.

  “다 왔다고요. 거 참, 잠꼬대 한 번 요란하네.”

  나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한밤중이었지만 어딘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눈에 익은 거리, 내가 사는 동네였다.

  “누구한테 그렇게 욕을 해댑니까? 혹시 나요?”

  스포츠머리가 투덜거렸다.

  “그럼 죄 없는 사람 가둬두고 좋은 소리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 미안하게 됐소. 너무 나쁘게 생각마쇼.”

  스포츠머리가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봉고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집엔 불이 꺼져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어렴풋이 해주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해주의 곁에 가서 누웠다. 해주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해주에게 바짝 붙어서 그녀의 몸에 팔을 둘렀다. 해주야. 나는 가만히 해주의 이름을 불렀다.

 

 6

 

  이틀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닌 한, 이틀 만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엊그제 내가 보았던 세상과 오늘은 차이가 없는 듯 보였다.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이었다.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도 짜증나지 않았다. 알람 소리에 마지못해 일어나 세수를 하고, 꽉 막힌 지하철에서 내려 종종 걸음으로 회사에 가는 길이 처음인 것처럼 새롭고 신기했다. 회사에 가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면 더 놀랄 거야……. 들뜬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안녕하세요?”

  나는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어, 은수씨…….”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김대리였다. 예상했던 대로 나를 보고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기대한 반응과 사뭇 달랐다. 다른 직원도 나를 보고 저희들끼리 쑥덕거렸다. 나는 의아하게 여기며 내 자리로 갔다.

  “이거 뭐야?”

  내 자리는 비어 있었다. 책상에 있던 물건들과 슬리퍼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은수씨, 얘기 못 들었어?”

  뒤에서 이제 막 출근한 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자리 왜 이래? 누가 이랬어?”

  내가 미영에게 다가가려하자 미영이 자연스럽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리도 잘 몰라. 사장님이 치우라고 했어.”

  “언제?”

  “은수씨 잡혀간 날.”

  “잡혀가긴 뭘 잡혀가? 내가 죄졌어?”

  내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사장님 어디 있어?”

  “아직 출근 안 했어. 오늘 외부에 일 있어서 오후에 사무실 들어온다고 했어.”

  “알았어. 기다리지 뭐.”

  나는 비어 있는, 이틀 전만 해도 내 물건들로 가득했던 자리로 가서 의자를 뺐다. 내 옆자리인 미영은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안절부절 했다.

  “은수씨, 그건 좀……. 사장님 언제 오실지 시간도 정확하지 않고, 여기 있는 건……. 감염될 지도 모르는데.”

  “나 감염 안 됐어. 검사 받았어.”

  “그건 은수씨 생각이고,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미영씨,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두 사람 다 그만해.”

  김대리가 다가와 말렸다.

  “은수씨, 그러지 말고 회의실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 내가 사장님께 전화해 볼게.”

  나는 회의실로 갔다. 잠시 후 김대리가 종이컵을 들고 들어왔다.

  “커피 마시면서 기다려.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네. 다시 해 볼게.”

  “고마워요.”

  김대리는 뭐라 더 말하려다 그만 두고 회의실을 나갔다. 유리벽을 통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잘 보이는데. 불과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나 사이가 하얀 방과 이 사무실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미영이 직원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 보였다. 직원이 뭔가를 들고 내 자리로 가서 넓게 뿌렸다. 미영이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후 미영은 한 번도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회의실을 지나치기만 할 뿐,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끈질기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커피를 마셨다. 이마저도 없었으면 참 처량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장이 올 때까지 아껴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

  “은수씨는 점심 안 먹어?”

  “드시고 오세요.”

  모두가 나간 뒤에도 나는 자리를 지켰다.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의자에 꼭 붙어 있었다.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면 내 자리는 영영 없을 것 같았다.

  “배 안 고파? 이거 먹어.”

  점심을 먹고 들어온 김대리가 봉투를 내밀었다. 샌드위치였다.

  “미영씨가 산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에 걸렸나 봐. 은수씨가 미운 건 아니니까. 이해하지?”

  나는 미영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얼른 고개를 돌리는 미영의 모습이 보였다.

  “약 바른 건 아니겠죠?”

  나는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샌드위치는 가방에 넣었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회의실에서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먹는 건 왠지 비장함이 떨어져 보일 것 같았다.

  사장은 5시가 다 돼서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회의실 앞을 지나갔다. 나는 달려가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갔던 일은 잘 해결 됐나?”

  사장은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물었다.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이것저것 서류를 뒤적였다.

  “네. 검사 받았고, 이상 없다고 했어요.”

  “잘 됐군.”

  “제 자리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 내가 치우라고 했어.”

  “이유가 뭐죠? 이상 없으면 된 것 아닙니까?”

  “이은수씨.”

  사장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이은수씨 자리를 치우라고 한 건 엊그제이지만, 그날 내가 결과를 알았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야. 이은수씨가 자리를 비운 이틀 동안 회사는 어땠는지 아나?”

  “저 때문에 회사나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가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미안할 필요 없어. 아무렇지 않았거든. 이은수씨가 빠져도 전혀 문제없었다고. 그런데도 내가 이은수씨를 더 봐줘야 할 이유가 있나? 더군다나 요즘 같이 어려울 때 개인사정으로 이틀이나 자리를 비운 직원을?”

  “이건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왜 이은수씨만 그러느냐고! 그렇게 따지면 다 개인사정 아냐?”

  “이건 말도 안 돼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해고할 순 없어요. 다른 직원들도 가만 있지 않을 거예요.”

  “다들 이은수씨 눈치만 보고 있는 거 못 봤어? 다들 동의한 일이야. 아는 거지. 회사 사정 뻔하고, 어차피 누구 하나는 그만둬야 한다는 거. 속으로는 자기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걸.”

  “왜 하필 저예요?”

  “빌미를 만들지 말았어야지!”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사장실을 나서서 사무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뒤따라 나온 미영이 퇴직금은 이번 달 안으로 정산이 될 거라고 말했다.

  “은수씨, 미안해. 하지만 감염될지도 모르는데 같이 일할 수는 없잖아.”

  차라리 너 대신 내가 잘릴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더 나았을까. 그녀는 올라가서 내가 있던 회의실에 뿌옇게 약을 뿌릴까. 나는 미영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봤다.

  “샌드위치 고마워.”

  세상은 변했다. 적어도 내 세상은 그랬다. 이틀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 불과 몇 시간이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게 세상이었다. 나는 변덕스런 세상 속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편의점 앞에 앉아 혼자 술을 마셨다. 햇빛이 짱짱한 시간에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에이씨. 나는 가방에 있던 샌드위치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빈속에 마신 탓에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해주 오랜만이다. 한집에 살면서 얼굴 보기 힘드네.”

  “술 냄새 나.”

  “너는 내가 집에 안 들어왔는데 걱정도 안 했어?”

  “언제?”

  “나쁜 계집애. 너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하얀 방에 갇혀서, 모기냐고……. 그리고 오늘 회사에 갔는데 사장이…….”

  “술 취했으면 일찍 자.”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내가…….”

  “술주정 그만하고 자라고.”

  “야! 술주정 아니야. 그리고 내 말 들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이런 얘기 할 사람이 누가 있냐? 너밖에 없잖아.”

  나는 설움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우냐.”

  “서러우니까 그렇지.”

  해주는 말없이 등을 돌리고 누웠다.

  “야, 자냐? 진짜 자?”

  “응.”

  “자면서 어떻게 말을 하냐?”

  “얼른 자.”

  나는 계속 해주를 불렀다. 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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