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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나도 벌레입니까?
작성일 : 19-10-16 21:46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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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거, 에어컨 좀 꺼. 이번 달 전기세가 얼마나 나왔는 줄 알아?”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온 사장이 호통을 쳤다.

  “전기세, 가스요금, 수도요금 안 오르는 게 없어. 누군 땅 파서 사업하는 줄 아나.”

  사장은 고지서를 흔들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게요. 다음 달부터 보험료도 오른다고 하던데. 나라가 나한테 해 준 게 뭐 있다고 돈만 뜯어가네요.”

  김대리가 맞장구를 쳤다.

  “모긴지 벌레인지 치료비 지원한다잖아. 세금 부지런히 걷어야겠지. 요즘 뉴스에서는 나라에 돈 없다고 난리던데.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한테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는 거야? 그냥 벌레 하라고 하면 안 되나?”

  “오, 미영씨가 뉴스도 보는 줄 몰랐네.”

  김대리가 짐짓 놀란 척을 했다.

  “일 안 해? 자네들도 백수 되고 싶어? 그놈들 다 백수라면서? 하여간 이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야. 왜 그런 놈들한테 내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느냔 말이야. 싹 다 잡아들여야 돼.”

  “어쨌든 우리도 감염되면 큰일이잖아요.”

  미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장의 기분이 안 좋아지자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애먼 곳으로 불똥이 튈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영은 자리에 앉아 나를 보고 입을 벙긋거렸다. 사장의 험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은수씨! 그것 좀 안 할 수 없어? 가뜩이나 더운데 정신 사나워 죽겠어. 더위 먹었어? 틱 장애, 뭐 그런 거야? 병원 가봐, 병원.”

  “네?”

  미영이 내 손을 가리켰다. 내가 모나미 볼펜을 들고 쉬지 않고 딸깍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 몇 번이나 지적받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책상 밑으로 볼펜을 던졌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서류를 뒤적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웠다. 사장이 출입문 근처에 앉은 직원을 일으켰다. 직원이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자 회색 양복을 입은 남자 두 사람이 직원을 밀치고 들어섰다. 사장이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삿대질을 했다. 그들은 사장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보여줬다. 사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상황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회색양복들이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들이 내 앞에 멈춰 섰다.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이은수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할 것이 있어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당신들 누구에요? 무슨 일인데요?”

  나는 양쪽에서 팔을 잡는 회색양복들을 뿌리쳤다. 회색양복 중 무테안경을 쓴 남자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PSIS. 생소한 기관이었다. 신분증에는 남자의 이름도 없었다. 사진만 있고 그 밑에 President Security 어쩌구 하는 영어가 있었는데, 미처 다 읽기 전에 무테안경이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서지오씨 아시죠?”

  무테안경이 바짝 다가와 나직이 물었다. 안경알에 반사된 눈빛이 무척 매섭게 보였다.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요.”

  이번에는 스포츠머리를 한 남자가 말을 거들었다.

  “서기찬 의원 아시죠? 그 양반 체면 생각해서 이 정도로 하는 겁니다.”

  무테안경의 말투는 정중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김대리가 언성을 높이며 막아섰다.

  “비키시죠. 공무집행 방해로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공무집행? 어디 소속입니까? 영장 있어요?”

  “영장? 필요하면 당장 받을 수 있지. 아, 당신 체포영장도 같이 받아줄까?”

  스포츠머리가 윽박을 질렀다. 사장이 김대리의 옷을 잡아당겼다. 회색양복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는 김대리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사장이 귓속말을 하자 김대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장이 김대리를 말렸다. 다른 직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보고만 있었다.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가 보면 압니다.”

  무테안경이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봉고차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무테안경은 내 옆에, 스포츠머리는 맞은편에 앉았다. 회색 양복들은 말이 없었다. 운전하는 사람까지 세 명이었지만, 저희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지도 않았다. 허가받은 내용 이외에는 말해줄 수 없다며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지오는 지금 어디 있나요?”

  무테안경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은 건가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묻나?”

  스포츠머리가 사나운 눈빛으로 나에게 따졌다. 무테안경이 스윽 그를 쳐다봤다. 스포츠머리가 머쓱한 지 헛기침을 했다.

  “걱정 마쇼. 잡아먹진 않을 테니.”

  스포츠머리가 키득거렸다. 무테안경은 못 말린다는 듯 도리질을 쳤다.

  차는 한참을 달렸다. 도시를 빠져나와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시계를 보니 대략 세 시간쯤 지난 것 같았다. 스포츠머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시커멓고 우중충한 지하실의 주홍빛 전등 아래서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다 그런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바보처럼 느껴졌다. 무테안경은 노트북을 들고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차창에 달린 커튼을 젖히니 강원도임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한참동안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올라갔다. 어지러워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테안경이 먼저 내려서 나에게 내리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뒤에서 스포츠머리가 재촉했다. 스포츠머리까지 내리자 봉고차는 왔던 길로 내려갔다. 꽁무니 뒤로 자욱이 먼지가 피어올랐다.

  도착한 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사방을 빙 둘러보아도 온통 산이었다. 머리 위 하늘만 뻥 뚫려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 들어가고 뭐 하나?”

  스포츠머리가 어깨를 툭 쳤다. 무테안경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만치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회색 건물이 보였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이었다. 문 앞에서 무테안경이 출입문 손잡이 부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외관과 달리 시설은 좋은 것 같았다. 내부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물처럼 깨끗했다. 벽이며 복도까지 모두 흰색이었다. 복도는 출입문에서 반대편까지 곧게 뻗어 있었다. 눈이 부셔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회색 양복들을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 양쪽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복도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가운을 입은 이들은 회색양복들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인사를 했다. 무테안경은 가볍게 목례를 했고, 스포츠머리는 손을 흔들며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해서 무테안경에게 핀잔을 들었다.

  “화학 실험실 갔네요.”

  “비슷하지. 연구소거든.”

  무테안경은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러 번 모퉁이를 돌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내부가 굉장히 넓었다. 꼭 미로를 걷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테안경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정했다. 무테안경이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가운을 입은 여자가 인사를 했다.

  “이제부터 몇 가지 검사를 받게 될 겁니다. 끝나고 얘기합시다. 전화는 나한테 줘요.”

  “싫어요.”

  “싫으면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안 될 거요.”

  “이게 뭐야? 왜 안 되지?”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도 문자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 건물은 특수 보안시설이라서 전파가 차단되어 있으니 헛수고하지 마세요.”

  무테안경이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여자가 나를 안내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그냥 건강검진 받는다고 생각해요.”

  회색양복들이 나가자 여자가 친절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에요?”

  “누구요? 아, 그렇죠. 높으신 양반들이죠. 우리 같은 일개 연구원들은 쳐다볼 수도 없는.”

  “여긴 뭐하는 곳이에요?”

  자신을 연구원이라 밝힌 여자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질문을 바꿔서 물었다.

  “감옥이나 그런 이상한 곳은 아니에요. 실험하고 연구하는 곳이죠. 참, 이름이……? 이은수씨. 이은수씨도 검사하고 이상 없으면 곧 귀가조치 될 거예요.”

  “이상 있으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의심될 만한 증상이 있어요?”

  연구원이 반색을 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요즘 워낙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혹시나 걱정도 되고, 궁금해서요.”

  연구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건……….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겉으로 봐서는 괜찮아 보이네요.”

  검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몸을 소독했다. 차가운 수증기가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 다음은 연구원의 말대로 회사에서 해마다 받는 건강검진과 비슷했다. X-RAY를 찍고 피를 뽑고, 혈압과 맥박을 쟀다. 검사가 끝난 다음에는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최근에 아픈 곳은 없는지, 식욕은 괜찮은지,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지 세세하게 물었다. 검사가 끝나자, 스포츠머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시다.”

  “이번엔 뭐예요? 쉬는 시간은 없어요?”

  나는 세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한 뒤 이것저것 검사를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내 움츠리고 있던 탓에 몸도 뻐근했다. 눈이 침침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소풍 온 줄 아나.”

  스포츠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다그쳤다. 다시 모퉁이를 휙휙 돌아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유심히 주위를 살피다가 얼마 못가서 포기했다. 너무 복잡해서 도저히 길을 외울 수 없었다.

  “들어가쇼.”

  스포츠머리가 어느 방의 문을 열고 섰다. 나에게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들어가 보니 네모난 책상이 있고 무테안경이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많이 봤던 취조실의 모습과 비슷했다. 무테안경은 비어있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스포츠머리는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팔짱을 끼고 앉아 이쪽을 바라봤다.

  “제가 왜 검사를 받은 거죠?”

  “몰라서 물어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지오씨하고 어떤 사이입니까?”

  “친구예요.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친구라……. 사귀는 사이라고 하던데 아닙니까?”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오래 전에 헤어졌어요.”

  “그런데 왜 경찰관에게는 애인이라고 했습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7월 초에 평창파출소에서 연락받고 서지오씨 데리러 간 적 있죠?”

  “애인이라고 한 적 없어요.”

  “간 건 인정하는 겁니까?”

  무테안경의 입술이 묘하게 뒤틀렸다.

  “7월 말에 안산에 있는 밝은 고시원에도 갔었죠? 그땐 왜 애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까? 아니라면서.”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서지오씨 상태가 어떻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경찰관하고 고시원 총무가 증언했습니다. 상태가 이상했다고. 그러니까 말해 봐요. 서지오씨 상태가 정확히 어땠습니까?”

  뭔가 미심쩍었다. 여기에 올 때만 해도 나는 회색양복들이 지오를 데리고 있거나, 상태를 자세히 알기 때문에 나를 데리고 온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하는 걸로 보아선 무테안경은 지오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무테안경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을 알기 전까지는 지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서지오씨 어디 있습니까?”

  “고시원 총무를 만났다면서요?”

  “그 뒤로 못 만났습니까? 연락도 없었고?”

  “네.”

  무테안경이 안경테를 치켜 올렸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이 방에 들어온 뒤로 한 번도 나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무심히 그의 시선을 흘렸다. 아무래도 지오는 밝은 고시원을 떠난 것 같았다.

  “만났을 때 어때 보였습니까?”

  “무슨 뜻이에요?”

  “시치미 떼지 마세요. 알고 있잖습니까.”

  무테안경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했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지만 다른 건 잘 못 봤어요. 어두웠고 잠깐 만난 거라서.”

  “그게 다입니까? 거긴 왜 갔습니까?”

  “지오를 만나러 갔죠. 집에는 없다고 하고, 연락도 안 된다니까. 원래 가출하면 내가 찾아다녔어요. 사춘기가 워낙 긴 녀석이라.”

  “헤어진 애인한테 그렇게 신경을 씁니까? 오유미씨는 왜 같이 갔습니까?”

  맞다, 오유미!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오유미를 잊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왔다면 오유미도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파출소도 고시원도 함께 가지 않았던가.

  “오유미도 여기 있나요? 검사를 받았어요?”

  “왜 오유미가 검사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죠? 역시 서지오씨, 뭔가 있는 거죠?”

  나는 무테안경이 비열하게 웃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오유미도 왔나 싶어서 반가워서 물어본 거예요. 여기 따분하고 심심하니까. 있기는 뭐가 있어요?”

  나는 일부러 톡 쏘아붙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어차피 검사 결과 나오면 확실해질 테니.”

  “도대체 뭘 검사하는 건데요? 난 언제 보내줄 거예요?”

  “기다려요. 결과 나올 때까지 2~3일은 걸리니까.”

  “미쳤어요? 누구 밥줄 끊기는 거 보고 싶어요? 책임질 거냐고요.”

  무테안경은 내 말을 무시한 채 유유히 방을 나갔다.

  “이봐요!”

  나는 무테안경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자, 진정하고 갑시다.”

  스포츠머리가 나를 달랬다. 나는 왔을 때처럼 스포츠머리를 따라 나왔다. 스포츠머리가 또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이 방에서 자요.”

  병실 같았다. 침대와 테이블, 소파가 있고, 침대 맞은편에 있는 수납장 위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창살이 달린 작은 창문이 있었다. 소파 위에는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저녁 식사가 놓여 있었다.

  “정신병원이야?”

  나는 못마땅해서 불평을 했다.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쉬는 데 불편한 것은 없을 거요. 설령 있어도 좀 참고.”

  “회사엔 어떻게 얘기해요? 동생한테도 얘기해야 하는데.”

  “그건 걱정마쇼.”

  아아악.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굴렀다. 그러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끝났소?”

  스포츠머리는 귀를 막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얌전히 있어요. 나갈 생각은 말고.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겠지만.”

  스포츠머리가 나갔다. 문을 잠그진 않은 것 같았다. 창밖을 보니 어둑어둑했다. 얼추 8시쯤 된 것 같았다. 나는 더 어두워지면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영화든 탈출은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이루어지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 나가기엔…… 너무 배가 고팠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식욕을 느끼는 내 정신력에 감탄했다. 그래, 밥을 먹어야 움직일 수 있지.

  밥을 먹고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9시 뉴스가 끝나는 것을 확인하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 마침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벽을 따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복도마다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다들 퇴근을 했는지 고요했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저 정문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씨, 대체 어디야!”

  나는 복도에 주저앉았다. 졸리고 다리도 아팠다. 누구라도 와서 나를 방에 데려다 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면 누구든 나를 발견하겠지.

  “나갈 생각 말라고 했죠?”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어느새 스포츠머리가 다가와 있었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여 계면쩍게 웃었다.

  “이 건물은 특수보안시설이라고 하지 않았소. 아무나 들어오고 나갈 수 없지. 그러니까 그만둬요. 또 그러면 문을 잠글 수밖에.”

  “네네.”

  방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스포츠머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탈출은 진즉 포기해 버렸다. 건물을 나갈 수도 없거니와, 서울로 가는 차도 벌써 끊겼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또 이 밤중에 산길은 어떻게 내려갈 건가. 나답지 않게 무모한 행동을 했다. 어쩐지 요즘 들어 점점 이성이 퇴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오를 닮아가는 걸까. 저들의 의심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까무룩 잠이 들면서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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