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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밝은 고시원-2
작성일 : 19-10-16 21:32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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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원 일층 입구에 들어서면 곧바로 총무가 앉아 있는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옆으로 계단 두 개를 올라가면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6개의 방이 있다. 로비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없었다. 불과 다섯 걸음이면 충분할 공간에 장식이라고는 사람 키 만한 나무 화분과 벽에 붙은 ‘축 개업’이라고 쓰여 있는 거울이 전부였다. 앉아 있을 만한 의자도 없었다. 나와 오유미는 입구 오른쪽에 섰다. 그곳에 허리 높이의 입간판이 있었는데, 전구가 나갔는지 ‘밝은 고시원’에서 ‘시원’ 부분이 어두웠다. 그래도 밝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물건 같았다. 우리는 그 옆에 서서 지오가 오는지 살폈다.

  밤이 깊어가자 사람들이 속속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고시원 총무와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고, 신경도 쓰지 않고 사무실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간혹 고시원 총무와 방값을 이유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설 때, 입구에 서 있는 나와 오유미를 스윽 쳐다본다는 것이다. 기분이 영 꺼림칙했다.

  “거기, 길 막고 계시면 안 됩니다.”

  고시원 총무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나는 우리가 정문 앞에 서서 통로를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다음부터는 문 앞에 서 있다가 사람들이 오면 최대한 벽 쪽으로 몸을 붙여 길을 터주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적의처럼 느껴졌다.

  “웬 아가씨들인가? 여기 사는 것 같진 않은데.”

  “애인 만나러 왔어?”

  “씨발, 뭘 쳐다 봐? 구경 났어? 술 취했으면 곱게 잠이나 자!”

  하마터면 사람들과 싸움이 붙을 뻔했다. 오유미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한 것 같았다.

  “아휴, 이 자식은 왜 안 오는 거야!”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나는 오유미가 굉장히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오유미와 내가 느끼는 불편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내가 느끼는 불편이 이미 경험해서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일부러 거리를 두며 적당히 불편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라면, 오유미의 불편은 태생적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 난감하고 당혹스러워 불편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오유미는 이 그림에 어울리지 않았다. ‘밝은 고시원의 밤’이란 그림에 오유미의 사진을 찢어서 어설프게 덧붙인 것 같았다.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덧붙인 것은 티가 난다. 그런 점에서 오유미와 지오는 닮은 구석이 많았다. 지오가 아닌 척을 해도 지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오의 서민 코스프레를 참아주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오는 가진 것을 자랑한 적도, 그걸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무시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래봤자 흉내내기일 뿐이며 언제고 걷어치우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밝은 고시원의 303호와 평창동 지오의 방을 비교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하는 동안 나는 지오에게 그것이 코스프레가 아님을 증명하라고 은연중에 강요했었다. 실은 증명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처럼 말하지 않아도 오유미의 불편을 이해하듯, 지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시간은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슬슬 지루해졌다.

  “언제까지 거기 계실 거예요? 11시 되면 저도 여기 없어요.”

  고시원 총무는 잠을 자러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유미의 전화가 울렸다. 오유미는 발신번호를 확인하더니 고시원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악! 악!”

  통화를 하던 오유미가 비명을 질렀다. 여기저기 방방 뛰어다니며 전화기에 대고 화를 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주먹질을 하고 발로 쓰레기봉투를 찼다.

  “가야겠어.”

  무슨 일이냐고 물을 사이도 없이 오유미는 돌아가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같이 가고 싶었다. 다리도 아프고 남겨지는 것이 겁이 났다. 기다린다 해도 지오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사이 지오가 떠나기라도 한다면……. 지하철 막차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 12시까지만 기다려 보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혼자서 지오를 기다렸다. 혼자 기다리니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오늘처럼 긴 시간 동안 지오를 기다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오를 기다린 것이 몇 번이나 될까. 언제나 기다리는 것은 지오의 몫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하잖아. 직장 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나는 실컷 기다리게 해 놓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쳤었다. 돌이켜 보면 자꾸 미안한 일만 늘어갔다.

  10시 55분이 되자 고시원 총무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근무시간이 5분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고시원 총무의 불성실함에 치를 떨었다. 나중에 사장에게 꼭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고시원 총무가 아쉬워졌다. 객실 이곳저곳에서 고함소리와 간드러지는 여자의 교성이 들렸다. 바깥에서는 욕설과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이 된 기분이었다. 누구라도 다가와 말을 건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 말을 걸어주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와 사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서워서 더는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돌아가려는 찰나, 고시원으로 들어오는 사람과 마주쳤다. 외국인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고개를 까딱하고 옆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 남자도 똑같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반대편으로 갔더니 남자도 똑같이 움직여 내 앞을 가로막았다. 살짝 짜증이 났다.

  “이쪽으로 갈게요.”

  나는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한국말을 아는지 알 수 없지만, 손가락으로 가리켰으니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또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 나는 남자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가만히 멈춰 서서 남자에게 지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싹 소름이 끼쳤다.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와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걸었다. 젠장, 사귄다는 말 취소.

  “미안해요.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요.”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오지 마. 꺼져. 오면 소리 지를 거야.”

  여차하면 한 방 날릴 기세로 주먹을 쥐고 가슴께로 양 팔을 올렸다. 하지만 그것이 남자를 자극한 것 같았다. 남자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더니 내 팔을 덥석 잡았다.

  “이거 놔! 사람 살려요! 도와주세요.”

  나는 눈을 꼭 감고 되는대로 팔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했다. 남자는 내 팔을 붙든 채 계속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손을 놓았다. 퍽. 신음소리와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어찌된 영문인지 남자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되는대로 휘두른 내 주먹에 맞은 걸까. 때리는 느낌은 없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미처 느끼지 못한 건지도 몰랐다.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놀랐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다. 나도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았다.

  “은수야.”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살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지오가 서 있었다.

  “어딜 다녀오는 거야?”

  “너는, 왜 여기에.”

  “물었잖아. 어딜 다녀왔느냐고.”

  “물가, 갔었어.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서.”

  “밖은 위험해. 물은 고시원에도 있잖아.”

  “여기선 갈증이 가시질 않아.”

  나는 지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오지 마. 그대로 있어.”

  “왜? 나를 물 거니?”

  “수컷은 안 물어. 혈액성 먹이, 필요 없거든.”

  “물어도 상관없어.”

  나는 다가가 지오를 그러잡았다.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내 쪽으로 지오의 몸을 돌렸다. 지오가 팔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그 팔을 끌어내렸다. 지오는 고개를 돌리며 나를 피했다. 나는 힘으로 지오를 붙들었다. 지오의 말투가 어눌했다. 말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온통 까맣고 비쩍 마른 몸에 허연 얼굴만 떠 있는 유령 같았다. 외국인 남자가 도망간 건 지오의 모습 때문인 것 같았다.

  “안 보여 주고 싶어.”

  “그럴 걸 왜 하는데? 보여주고 싶지도 않은 걸 왜 되려고 하냐고. 사람들이 너 보면 가만 놔둘 것 같아? 잡아서 짓밟고 들쑤셔서 다 까발릴 거야.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어내서 두고두고 너 괴롭힐 거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네 말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한테는 그저 화풀이 할 대상이 필요한 거라고.”

  “그러면 안 돼?”

  “네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돌아가자. 지금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집에 가자. 돌아가서 네 자리 찾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

  “내 자리, 맞긴 한 거야?”

  “무슨 말이야?”

  “한 번도 내가 원했던 적 없었어.”

  “그래서 고작 원하는 게 모기가 되는 거야? 도대체 왜 하필 모기야? 다른 것도 많잖아. 차라리 개나 고양이가 됐으면 데려다 키우기라도 하지. 왜 하필 피나 빨아 먹는 모기냐고!”

  나는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내가 모기와 다를 게 뭐야. 너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 아냐?”

  지오가 나를 말갛게 바라봤다.

  “너희 부모님은? 걱정 안 돼?”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부모님 이야기를 꺼낸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겨우 그거군, 내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그게 뭐가 나빠? 다들 그렇게 살아. 거창한 이유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몇 명쯤, 이렇게 돼도, 세상은 좋잖아.”

  “너 죽을 수도 있어!”

  “할 수 있는 건 없어. 너도, 나도.”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오가 달아나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 그리고 오지 마.”

  “여기 계속 있어. 그럴 거지?”

  “다음에 오면 나 없을 거야. 이젠 얼마 안 남았어.”

  “정말, 방법은 없어?”

  내 목소리가 떨렸다. 목 안쪽이 뻐근했다.

  “돌아가. 이젠 데려다 줄 수도 없는데.”

  지오는 고시원 안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걸어가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네 탓이 아니야.”

  가다 말고 돌아서서 지오가 말했다.

  “뭐?”

  나는 어리둥절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다. 지오가 들어간 후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막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안산역을 향해 뛰어갔다. 뛰어가는 동안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물길을 가로막던 돌덩이를 치운 것처럼 후련했다.

 

  그때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가벼워진 이유를 고민하고, 지오에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나중에 알았다. 그 말이 날 위한 거였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내 마음 한구석에는 지오에 대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못 견디도록 불편하게 만들었고, 나는 언제든지 그 불편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나보다 지오가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내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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