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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자살 방지법
작성일 : 19-10-16 16:48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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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있어 줄래?”

  그때 지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지오를 남겨두고 꿋꿋이 집으로 왔다. 한 번쯤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우리 사이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오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또 비어있을 지오의 방을 나서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있어 줄래. 나는 조용히 입 속으로 되뇌었다. 마음 한 구석이 쩌르르 울렸다.

  조여사를 따라 일층의 거실로 내려왔다. 나와 마주앉아 있는 것이 어색했는지 조여사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별로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지긴 했지만, 젊은 애들이야 만나고 헤어지는 것 흔한 일이죠. 그런 얘기까지 해야 되나? 고등학교 2학년 땐가 약을 먹었었는데, 아니 농약 같은 건 아니고요, 그냥 수면제 서너 알. 대학 때는 목을……. 선풍기 전선으로 그랬죠. 그때 열대야가 굉장히 심했는데. 뭐, 그 정도야 예민할 때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일 겪지 않나요? 스트레스요? 아휴, 그 애가 얼마나 낙천적인데……. 근데 지금 얼굴 안 나가는 거 맞아요? 애 아버지가 이거 한 줄 알면 질색할 텐데. 남편 회사 사람들이 나 다 알거든.”

  텔레비전에서는 심층 취재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 중년 여자가 뒤늦게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여자의 오른손 모양이 흐릿해졌다. 이마에서 코 중간까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선명한 것은 여자의 입술뿐이었다. 입술은 립스틱이 많이 지워졌지만 붉은 색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아랫입술 오른쪽에 있는 점이 도드라져 보였다. 목 아래 드러난 검은색 드레스는 층층이 레이스가 달려 있어 방송 출연을 위해 일부러 장만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왼손에는 구겨진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종이컵은 붉은 립스틱과 커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한물간 연극배우를 연상시켰다. 여자는 어딘가 모르게 조여사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흘깃 옆을 바라보았다. 조여사는 텔레비전 화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프로그램 중간에 자료 화면이 나왔다. 화면에 등장한 것은 경찰들이 젊은 여자를 끌고 가는 장면이었다. 낯익은 장면이었다. 화면의 주인공은 바로 낮에 광장에서 본 여자였다. 나는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컵을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둔탁한 마찰음이 거실 안에 메아리 쳤다. 조여사가 탁자의 유리를 살피며 혀를 찼다.

  “아직까진 이러한 사례가 극히 드물고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한 유전적 변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정신 질환으로 인한 뇌파의 교란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체적 변형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양에게서 바퀴벌레의 특징으로 보이는 신체적 징후가 확인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점차 규명이 이루어져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회적 혼란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며, 그에 따른 대책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증가할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방역 활동과 공공의료 시설 확충을 위한 재원이 확보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노동력 상실에 대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작년에 국회를 통과한 일명 ‘자살 방지법’도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얻은 것 아니겠습니까?”

  모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라는 남자는 몸을 뒤로 젖힌 채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언뜻 보기엔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듯 했지만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어 거만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원인이 뭐란 말인가. 왜 전문가들이란 알지도 못하면서 늘 모호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걸까. 나는 그 교수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조여사는 그렇지 않았다. 진지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자살 방지법’에 관한 대목에서는 눈썹을 움찔했다. 꽤나 심각한 얼굴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자살자 수는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던 뉴스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던 정부도 늘어만 가는 자살자 수를 줄이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내놓았다. 한강 다리 곳곳에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고 상담 센터를 늘이는 한편 매체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직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지하철역에서는 여전히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하철 투신사고 후유증을 호소하는 기관사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져갔고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려던 사람을 구하려다 구조원이 실종되는 사고가 잇따랐다.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던 사람이 지나가는 행인을 덮쳐 행인이 사망하는 사고도 잦았다. 자살자 유가족과 보험사와의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보험사들은 계약서상에 ‘가입 후 2년 내 자살은 보험금 지급 불가’ 이외에도 여러 조항들을 첨부하였지만, 자살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자살 방지법’이 제정된 데에는 대형 보험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대기업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도 전혀 근거 없는 일만은 아닌 듯 했다.

  결정적으로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한 국회의원 때문이었다. 그 국회의원에게는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외동딸이 있었다. 장차 서울대를 가느니, 미국 아이비리그로 유학을 가느니 고민을 할 정도로 똑똑해서 국회의원 아버지에게조차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어느 날, 공부에 지친 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딸이 가던 골목길 저만치 앞서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기에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옷차림이나 걸음걸이로 봐선 30대 후반 정도의 비교적 젊은 아저씨였다고 딸은 기억했다. 얼마쯤 가다가 남자가 자리에 멈춰 섰다.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르던 국회의원의 딸은 남자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꼈다. 한 자리에 멈춰 선 남자가 꾸물꾸물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행동은 몇 분간 지속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전화를 받는 것 같지도 않고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 같지도 않은, 하여튼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명민한 딸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워낙 늦은 시간인지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인근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문구가 보였지만, 정작 일이 발생하는 순간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딸은 집에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엄마와 전화가 연결이 되어 사정을 말하고 위치를 설명하려는데 딸이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놀란 엄마가 황급히 딸이 말한 곳으로 뛰어갔다.

  딸의 엄마가 도착했을 때 골목길은 입구에서부터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소방관들이 합심하여 불을 끄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틈에 딸이 있었다. 딸은 잔뜩 겁에 질려 엄마도 알아보지 못하고 소방관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본 엄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불길이 잡힌 후 까맣게 타버리고 남은 것,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몸에 붙어있었을 사람의 다리였다.

  횡설수설하는 딸의 말을 종합해 보면,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멀쩡해 보였다. 어디서나 흔히 있는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불길은 남자의 전신을 감쌌다. 거대한 불길이 되어버린 남자는 그 자리에서 몸부림쳤다. 딸은 불길이 너울거리는 그 모양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는 새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딸은 그때의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수능을 망쳐 아이비리그는커녕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사건에 대해 남자의 사인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남자의 몸에서는 기름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죽기 전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이 점에 대해서는 목격자의 증언이 오락가락했고, CCTV도 흐릿하여 제대로 판독을 할 수 없었다.). 부검 끝에 불길은 남자의 내부, 정확히 말해 몸 안의 장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밝혀져 인체자연발화로 사망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목격자인 여고생의 아버지, 즉 국회의원은 이것을 믿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분노했다. 자신의 자랑거리를 망친 그 자식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연발화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국회의원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자연발화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과 죽은 남자가 젊은 나이에 해고를 당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남자의 사인이 자살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자살자들, 그러니까 인생에 실패하여 이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 죽으면서까지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며 ‘자살 방지법’을 발의했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자살자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로 한 것은 정부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것이 없었다. 한 개인이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경우, 그때까지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각종 세금 및 자살자 처리에 발생하는 비용을 계산하여 그 유가족에게 청구하도록 한 것이다. 법안은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국가에서 지정한 장소를 이용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시신 수습에 따른 제약과 유가족이 지불해야 하는 벌금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법안은 쉽게 통과되었다. 발의 당시,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반발을 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는 그다지 힘을 얻지 못했다. 자살을 줄이려는 노력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없었거니와 법안 통과 후 자살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서 죽는 사람에게 죽어서도 세금을 내라니, 별 거지 같은 법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놓고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 법을 반대하는 것은 내가 자살을 고려하고 있다거나 혹은 내 가족 중에 자살할 사람이 있다는 것처럼 비춰질 것 같아서였다. 그것은 곧 나 혹은 내 가족이 이 사회의 낙오자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지오는 모기 따위가 되려고 하는 걸까. 얼핏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오의 집을 올려다보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조여사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대문 앞에 다다르자 나를 멈추게 하고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밖을 좌우로 살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내보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한 번 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서둘러 대문을 닫았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내 자신이 반밖에 차지 않았음에도 문밖에 내던져진 쓰레기봉투처럼 느껴졌다.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지오의 집을 향해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 찜찜한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담장에 힘껏 발길질을 했다. 담장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골목은 조용했다. 지나는 사람이 없어 더 무안해지는 고요만 흐르고 있었다. 담장을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경사진 길 아래로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주홍색 불빛들이 소리 없이 빛나고 있었다. 포근해 보였다. 그 불빛 하나마다 모여 앉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스위치를 내리듯 저 불빛들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꺼 버리면 어떻게 될까. 온전한 어둠 속에서 경계가 사라져버린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불빛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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