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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광장의 여자
작성일 : 19-10-16 16:43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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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다. 온종일 지오에게 전화가 올까봐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지오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오늘 당장 연락이 닿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오늘 이상해. 새로 연애하나 봐. 남자가 속 썩여?”

  회사 동료인 미영이 놀려도 대꾸할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애가 탔다. 점심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미영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출퇴근 시간과 마찬가지로 광화문역 인근은 점심시간에도 전쟁이 벌어진다. 커다란 아스팔트 광장을 가운데 두고 몇 개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12시가 되면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비슷한 옷차림에 각기 다른 회사의 사원증을 목에 건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인근의 식당에서 비슷한 메뉴의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각자 회사로 들어간다.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러한 광경이 신기했다. 나도 그들 사이에서 발을 맞춰 걷는 것이 이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진 후에는 그런 획일적인 모습이 싫증날 때도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다른 생각은 사라지고,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 눈빛 봤어? 진짜 변태 같아.”

  점심을 먹는 동안, 미영은 사장의 표정과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자신을 바라볼 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미영의 옷차림을 보면 누구라도 다시 한 번 쳐다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영은 시원시원한 눈매에 턱선이 갸름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즐겨 입는다. 가방이며 입고 다니는 옷들은 꽤나 고가의 제품들이다. 새로 무언가를 산 다음날 아는 척이라도 하면, 신이 나서 내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제품에 대해 떠들어 댔다. 나는 미영의 얘기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속으로는 그녀의 취향을 무시했다. 하지만 함께 다닐 적에는 예쁘고 세련된 그녀의 모습에 은근히 주눅이 들었다.

  점심을 먹은 후 회사로 돌아오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의 이순신 동상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물러서십시오.”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방역복을 입은 무리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도로에 차들이 지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미영과 함께 그들의 뒤에 따라붙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들이 멈춰 섰다. 그곳엔 경찰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경찰관들 틈으로 누군가 보였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아니,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덩치만 작을 뿐 아이가 아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양손과 양발을 짚고 엎드려 있었다. 여자가 헝클어진 머리를 반쯤 들자, 얼굴이 보였다. 날짐승 같은 눈빛이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주시하는 것 같았다. 경찰관들은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자세히 보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때 경찰들이 일제히 여자를 공격했다. 포위망을 좁혀 도주로를 차단한 뒤 동시에 달려들어 여자를 붙잡았다. 경찰들에게 붙들린 여자는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원피스가 접혀 올라가 여자의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겨울에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여자는 비명 대신 극극 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었다. 여자가 계속 저항하자, 경찰관 한 명이 진압봉으로 여자의 목덜미를 내려쳤다. 여자는 팔과 다리를 벌린 채 축 늘어졌다. 경찰들이 짐을 던지듯 여자를 바닥에 부려놓았다. 물러서 있던 방역복 무리들이 잽싸게 달려들어 여자에게 흰 연기를 분사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방역복 무리들이 돌아서서 인파를 향해 가스를 분사했다.

  "이것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약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이것은 인체에 전혀 무해한 가스로……."

  확성기 소리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부연 연기로 가득한 광장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허둥댔다. 가스 때문에 목이 따끔했다. 찔끔 눈물도 나왔다. 사람들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콜록거렸다. 바람이 불어 연기가 걷히자,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도 미영과 함께 회사를 향해 뛰어갔다. 온통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각각의 건물 속으로 우르르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이 꼭 바퀴벌레 떼 같았다.

  광장에서 있었던 일은 회사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자고로 여자들이란,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과장은 ‘하여튼 여자들이 문제야’ 라며 여자의 옷차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았다. 진보 정당의 당원인 김대리는 경찰과 방역 당국의 처사에 대해 부당함을 성토했다.

  “세탁비는 누구한테 청구해야 하는 거야? 이 옷 어떻게 해, 오늘 처음 입은 건데.”

  미영은 얼룩진 옷을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얼룩은 세로로 길게 음영을 만들어 마치 미영의 몸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젊을 때는 안 그랬는데. 하여튼 요즘 것들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할 일 없어서 저러지. 일들 안 해?”

  사장의 호통에 직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심기가 불편한 사장의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할 일 없는 광장의 여자’처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퇴근 무렵엔 여자의 일을 입을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직원들은 내일 있을 회의와 매일 반복되는 퇴근 지하철의 복잡함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해야 할 일은 늘 넘쳐났다. 나는 퇴근하기 전까지 지오에게 몇 번 전화를 걸었다. 지오는 받지 않았다. 조여사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나는 조만간 집으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머릿속이 지끈지끈 울렸다.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여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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