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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그, 그리고 그녀의 사정
작성일 : 19-10-16 16:31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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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기 전까지 나를 뒤척이게 만들었던 묘한 기분은 다음날 눈을 뜨자 말끔히 사라졌다. 심지어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지오를 만났던 일도 내가 그랬던가, 할 정도로 희미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또 잠을 자는 것으로도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오직 그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출퇴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졸거나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있을 때 잠깐 동안 지오를 떠올리기는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연락을 해 볼까 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두었다. 연락이 없는 것이 별일 없다는 뜻일 거라 여기며 지오의 일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래서 여동생인 해주가 지오의 얘기를 꺼냈을 때 깜짝 놀랐다.

  “지오 소식은 들어?”

  지오와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해주가 지오의 이름을 먼저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해주가 뭔가 알고 있거나, 그동안 지오와 연락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해주는 지오와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취미가 비슷했고, 성향이나 가치관도 잘 맞았다. 셋이 만날 때는 내가 모르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얘기에 열을 올렸다. 내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더니 어느 틈에 해주가 스스럼없이 지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점이 못마땅했다.

  “한 살 차인데. 나이가 중요한가, 친구 사이에.”

  지오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고 나는 그것이 더 못마땅했다. 여러모로 나보다는 해주가 지오와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두 사람이 사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화를 낼 수도 없어 속으로만 애를 태웠다. 지오는 그럴 때마다 이유도 모른 채 나를 달래느라 쩔쩔맸다.

  친했던 사이였으니 지금껏 해주와 지오가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지오는 어떤 얼굴로 해주를 마주했을까. 내가 모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있었을 수많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그 감정은 질투였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화가 나는, 치사한.

 

  해주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재작년 초 무렵부터였다. 드라마 피디가 되겠다며 대학원까지 다닌 해주는 졸업하고 나서도 한동안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언제 돈 벌어서 언제 시집을 갈 거냐고 다그치면서도, 속으로는 해주가 드라마 피디가 되기만 하면 여기저기 자랑할 꿈에 부풀어 있던 엄마의 실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간 해 온 아르바이트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었다. 낭만적인 대학생활이란 꿈도 꾸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바빴다. 그 당시 내 바람은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생크림 가득한 커피 한 잔을 먹는 것이었다. 반면 해주는 대학원에 다닐 적에도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았다. 때대로 화가 났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다기에, 이런 것이 막내의 특권이겠거니 여기며 참았다. 내가 몇 차례 공무원 시험을 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주는 그렇게 한심하게는 못 산다며 매번 펄쩍 뛰었다.

  해주가 시험 준비를 시작하면서 학원비를 보태주라는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네 엄마야? 언제까지 그렇게 시간을 낭비할 거야? 네 또래 다른 애들 어떻게 사는지 안 보여?”

  “갚아. 누가 안 갚는대?”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리고 도대체 언제 갚을 건데?”

  나는 해주의 말에 더 화가 나 쉴 틈 없이 퍼부어 댔다. 해주는 몇 마디 대꾸하다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대학원은 왜 갔어? 누군 학교 가기 싫어서 안 간 줄 알아? 내가 뭐랬어. 처음부터 취직하라고 할 때는 코웃음 치더니…….”

  실은 꼴 좋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해주가 ‘한심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운운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콕 찍어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심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패배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누구에 대한 패배인지도 모를 그런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었다. 어쩐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랬던 해주가 이제와 공무원 준비라니. 나는 코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해주가 그런 속내를 알아차린 게 아닐까 싶어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그 뒤로 나와 해주는 한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해주는 의식적으로 나를 피했고,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좁은 원룸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없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퇴근을 한 후에는 함께 저녁을 먹었고 함께 드라마를 봤다. 그러나 나는 해주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주는 전처럼 나를 붙잡고 시답잖은 일을 한참동안 떠들어대지 않았으며, 용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봐서는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의 미묘한 변화였다. 나는 그것이 영 거슬렸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더 껄끄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지오와 헤어진 뒤에는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해주가 꼬치꼬치 물어봤을 것이 분명했고, 해주에게만큼은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주는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낄 법도 하건만,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불빛이 해주의 얼굴 위로 번쩍였다. 푸르고 붉게 변하는 불빛에 따라 해주의 표정이 이지러지는 것 같았다. 나도 텔레비전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철 지난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개봉 당시 지오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평범한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후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알고 보니 그 배후에는 정부기관의 거대 조직이 있었고, 주인공은 최종 배후로 밝혀진 정부의 핵심 인사를 죽인 뒤 그 사이 만난 여자와 어디론가 떠난다. 두 시간 내내 폭발이 일어나고 주인공은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펄펄 날아다닌다. 극장을 나서며 지오와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플롯에 대해 얘기하며 깔깔댔었다. 나는 바다 한가운데 빠져도 다시 살아나는 주인공의 생명력에 대해 감탄했다.

  “어쩌면 한 명이 아닐지도 몰라. 진짜는 죽었고 그때마다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 복수를 이어가는 거야.”

  “알고 보니 쌍둥이? 아니면 복제인간?

  지나치게 진지하게 말하는 지오의 의견에 나는 놀리듯 대꾸했고 우리는 또 한 번 와, 하고 웃음을 터트렸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지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 저토록 수많은 위험 속에서 어떻게 매번 아무렇지 않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한 다섯 쌍둥이쯤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국정원 직원으로 설정이 되어 있어도 말이다. 제임스 본드라면 몰라도 국정원 직원은 좀, 설득력이 떨어졌다. 일개 개인이 거대 권력을 상대로 복수에 성공하는 것도 진정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어른이 될수록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지오 만난 적 있느냐고.”

  내가 대답이 없자 해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 너는?

  해주가 나를 쳐다보았다. 음영이 드리워진 표정이 서늘해보였다.

  “나도 없어.”

  나를 빤히 바라보던 해주가 공부나 해야겠다며 벽에 기대어 책을 펼쳤다. 나는 해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말을 하자마자 시선을 피하듯 책을 펼쳐 든 것이 수상쩍었다. 그렇다고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실제로 해주가 지오를 만났었다면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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