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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재회
작성일 : 19-10-16 16:30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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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오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조여사에게 연락을 받은 그날 바로 지오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조여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는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여전히 지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전화를 걸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더 걸렸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이별의 순간에 덤덤했던 지오의 얼굴이 떠올라 몇 번을 망설였다. 혹시 이제와 뒤늦은 원망의 말이라도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잘못들을 기억해 내기 위해 꼬박 하루를 보냈다. 약속 시간에 늦거나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고 엉뚱하게 지오에게 화풀이를 한 일들이 떠올랐다. 그런 일들은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고 지나치게 사소한 일 같기도 했다.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 흔한 일이었다. 전화를 하지 못할 만큼 잘못한 일은 없었다. 전화를 건 지 세 번 만에 지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수야.”

  첫 마디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래, 지오는 이런 목소리로 이런 말투로 나를 불렀었지.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겨우 안부를 묻고 만나자는 말을 꺼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부러 무뚝뚝하게 말했다. 지오는 머뭇대는가 싶더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별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싱거운 반응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그 짧은 대화가 그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를 지난 시간 앞으로 바짝 끌어다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지오를 만나기로 한 이후부터 내내 들떴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전처럼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런 기대는 확신으로 굳어져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서 어느 틈엔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지오를 만나기로 한 이유를 말이다. 지오를 기다리는 동안 그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바퀴벌레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에 대한 기사였다. 하지만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기사 속의 남자는 모기가 아닌 바퀴벌레가 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바퀴벌레와 모기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했다. 둘 다 곤충이었던가. 그러다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지오처럼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 왜. 게다가 조여사의 과장은 전부터 유명하지 않았던가. 고등학교 때 감기에 걸린 지오를 일주일이나 종합병원에 입원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열이 40도를 오르내렸지 뭐예요. 담임과 함께 병문안을 갔을 때 조여사는 담임에게 그렇게 말했다. 보통 그 정도면 사람이 죽지 않나요. 내가 끼어들었다. 조여사가 발끈했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이봐라, 지금도 지오 얼굴에 열이 오르지 않았니. 지오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열 때문이 아니었다. 창피했기 때문이라는 걸 조여사만 모르고 있었다. 그때 담임은 왜 아이들을 우르르 데리고 병문안을 갔을까. 겨우 감기였을 뿐인데. 어쩌면 지오에게 다른 일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결혼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리가 헤어진 것이 벌써 이 년이 지났다. 나도 그 사이에 만난 사람이 있었다. 지오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지오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상을 하니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질투가 났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공원에 도착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도착하자마자 들고 있던 김밥을 몇 개 집어먹었다. 일에 쫓겨 급하게 나오느라 저녁밥도 먹지 못한 탓에 오는 길에 산 것이다. 만든 지 꽤 지난 탓인지 밥알이 딱딱했다. 나는 딱딱해진 밥알들을 입속에서 굴리며 공원을 어슬렁거렸다. 지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왔다 가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공원에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텁텁한 열기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간간이 세워져 있는 가로등의 불빛 때문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다가온 지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귀신인 줄 알았잖아!”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조심스럽고 설레던 감정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 지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두워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오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지오가 뒷걸음질을 쳤다. 지오를 붙잡았다. 지오의 팔은 나무젓가락처럼 뻣뻣했다. 그 느낌이 낯설어 속으로 깜짝 놀랐다.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춰 서자 지오의 얼굴이 보였다.

  “너 …… 왜 이래?”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지오는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양 볼이 움푹 패여 있었고 살이 빠진 탓인지 퀭한 두 눈이 도드라져 보였다. 키도 줄어든 것 같았다. 원래 나는 여자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했고, 지오는 그런 나보다 10센티미터 정도 더 컸었다. 그러나 마주하고 보니 나와 지오의 눈높이가 얼추 비슷했다. 낯선 느낌은 외모 탓만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고 만지고 있어도 없는 느낌, 지오가 아닌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너무 달라진 모습 탓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오의 표정에서 지오를 찾기 위해 애쓰는 사이 눈빛이 달라졌다는 알아챘다. 허무와 체념이 뒤섞인 지오의 눈빛 말이다. 한 번도 치열하게 살아보지 않은, 가진 자의 여유이자 오만이라고 단정했던 그 눈빛이 새삼 지오를 지오로 만드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오가 실은 무심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늘 지오를 비난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지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밀랍인형처럼 희멀건 가죽을 덧붙여 놓은 얼굴과 텅 비어버린 눈빛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지오의 팔을 끌어 공원 벤치에 팽개쳤다. 지오는 물에 젖은 종이마냥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마주앉아 지오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똑바로 눈을 바라보자 한참 만에 지오가 웃어보였다. 얼굴가죽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웃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먹어.”

  나는 김밥을 지오의 입에 가져다댔다.

  “먹으라고.”

  나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지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몸을 떨며 자꾸만 시선을 피했다. 나는 한 손으로 지오의 턱을 잡고 김밥을 쑤셔 넣었다.

  “네 꼴을 봐! 굶어죽을 작정이야? 먹어!”

  지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팔을 허우적댔다. 그러다 팔로 나를 밀쳤다. 나는 벤치 밑으로 나동그라졌다.

  “누가 뭐래도 나는 모기가 될 거야!”

  지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갔다. 어찌나 빠른지 붙잡을 틈이 없었다. 공원 바닥까지 내려앉은 어둠 속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나는 벤치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모기가 이렇게 힘이 세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넘어질 때 부딪혔는지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네 말도 소용없었단 말이지.”

  공원을 나와 조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여사는 침착했지만 상황을 듣고 난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척 낙심한 것 같았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다시 한 번 얘기해 볼게요.”

  말을 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내뱉어버린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본 후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 터였다. 그런데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만간 집에 한 번 들러라.”

  조여사에게 그간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는 자업자득이라고 쏘아붙여 주고 싶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나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할까 봐 미안해졌다.

  기운이 쑥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했다. 지오를 만난 것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졸다가 꿈을 꾼 것은 아닌지 헷갈렸다. 왜 지오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리고 왜 그동안 나에게 아무 연락도 없었을까. 나쁜 자식. 모든 게 다 화가 났다.

  문득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자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어떤 문제든 내가 나서기만 한다면 지오가 순순히 따라줄 거라고 믿었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지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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