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모기인간의 시대
작가 : 차경
작품등록일 : 2019.10.16

이루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없는, 미래를 거세당해 끝내 모기가 된 남자의 이야기

 
균열의 시작
작성일 : 19-10-16 16:27     조회 : 374     추천 : 0     분량 : 309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프롤로그

 

 “우리, 헤어질까.”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지오는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와 지오는 서너 발짝쯤 떨어져 있었다. 나란히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강둑을 따라 세워진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반쯤 몸을 돌려 지오를 향해 섰다.

  “그만하자.”

  지오의 등 뒤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여의도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며칠째 평년 기온을 웃도는 포근한 봄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날씨가 포근한 탓에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피었고, 거리는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오와 내 사이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숭숭 빠져나갔다. 하늘은 선명하게 푸르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발그레하게 물든 벚꽃이 흩날렸다.

  “……. 그래.”

  한참 후 지오가 말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친구로 지내자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젠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겠지 여자친구도 아니니까.”

  지오는 덤덤하게 말한 뒤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며칠 동안 전전긍긍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지오는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였다. 나는 무안했고 지오가 얄미워졌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지오에게 화가 났다. 덕분에 이별의 감상 따위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런 감정마저 무뎌졌다.

  이별의 장면을 떠올리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이라고 느껴졌던 몇 초.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난 뒤 대답을 하기 전 잠깐의 시간 동안 지오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지오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지오의 표정은 흩날리는 꽃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순간은 이와이 슈운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기만 했다.

  나중에는 지오도 예감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헤어지기에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지오의 부모님이 크게 작용을 하고 있었다. 또 그즈음 나는 여유가 없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회사일로 정신이 없을 때였다. 출근과 퇴근으로 구분되는 하루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참아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때때로 지오는 이유 없이 불안했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불현듯 불안이 밀려들 때면 지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을 떨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 감정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럴 때마다 지오를 안고 어깨를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였을 때는 보듬어주고 싶은 지오의 불안이 애인이 되고 난 뒤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랬다. 나는 지오의 불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그 불안에 발목 잡혀 허우적댈 것 같았다.

  헤어지고 난 뒤 지오에게서는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가끔 지오의 소식이 궁금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지오가 화제에 오른 것은 잠시뿐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살겠지. 걔네 아버지가 누군데’라며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모두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오의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듬해 봄에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지오의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1

 

  나는 종종 지오를 생각했다. 어쩌면 만나고 있을 때보다 더 자주 지오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었다. 만나고 있을 때는 보고 있지 않아도 지오를 다 안다고 믿었기에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하면 전화해서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장면에서든 지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와 밥을 먹는지, 어떤 얼굴로 잠이 드는지 궁금했다. 지오와 사귄 6년과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 만난 것까지 합치면 함께 한 시간은 1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서 지오를 빼니 남는 것이 없었다. 반 이상 조각이 비어있는 퍼즐처럼 허전했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이 저렸다.

  조여사에게 전화가 온 것은 여름이 막 시작되려는 6월 초였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만나는 사람마다 철없이 성급한 더위를 원망하던 때였다. 사무실 창문으로 깊숙이 들어온 햇빛이 어깨를 짓누르기라도 하듯 온몸이 무거운 오후였다. 무심결에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랐다. 때마침 지오의 사진을 보고 있던 터라 가슴이 뜨끔했다.

  “혹시 최근에 지오 만난 적 있니?”

  조여사가 대뜸 물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근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예고도 없이 클라이맥스로 들어가는 건가. 나는 슬며시 심통이 났다.

  “아니요.”

  나도 모르게 잔뜩 웅크리고 있던 어깨를 펴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 한 번 만나봐라.”

  잠깐의 침묵 뒤에 이어진 얘기는 뜻밖이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제가 왜요?”

  “지오가 이상해.”

  조여사는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묵직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전화기를 바짝 갖다 댔는지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엿들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지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긴 한숨소리가 들렸다.

  “모기가 되려고 해.”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아차 싶어 황급히 입을 막았다. 단박에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가 나서 말끝마다 너 같은 애, 운운하며 얼굴이 일그러지던 조여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여사는 잠잠했다. 내 웃음기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진지했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시간 봐서요.”

  “그래.”

  나는 될 수 있는 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지오를 만나는 동안 말대꾸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 조여사는 겉으로만 듣는 척할 뿐 전혀 새겨듣지 않는다며 못마땅해 했지만. 어쨌든 이제는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 만났으면 하시더니 제가 아쉬울 때도 있네요. 한 마디쯤 더 보탰어야 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그런 후회를 곱씹느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 내 일상의 균열의 시작이었음을.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8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2019 / 10 / 16 230 0 1973   
27 탈출 2019 / 10 / 16 200 0 4801   
26 지오가 있는 곳 2019 / 10 / 16 230 0 4902   
25 그녀는 산책 중 2019 / 10 / 16 219 0 3088   
24 정치인 아버지 2019 / 10 / 16 234 0 5323   
23 바퀴벌레 여자의 죽음 2019 / 10 / 16 207 0 4030   
22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지 2019 / 10 / 16 237 0 7411   
21 나도 벌레입니까? 2019 / 10 / 16 223 0 7988   
20 벌레가 되는 방법 2019 / 10 / 16 221 0 6469   
19 늘 잊혀지는 중 2019 / 10 / 16 211 0 3433   
18 또 하나의 지오 2019 / 10 / 16 222 0 6427   
17 밝은 고시원-2 2019 / 10 / 16 208 0 5624   
16 밝은 고시원-1 2019 / 10 / 16 236 0 6463   
15 모기인간의 습격 2019 / 10 / 16 215 0 6935   
14 봉천동 자취방 2019 / 10 / 16 228 0 7184   
13 파출소에서 2019 / 10 / 16 241 0 6877   
12 내가 모르는 그, 그가 없는 나 2019 / 10 / 16 228 0 6655   
11 그의 여자 친구 2019 / 10 / 16 218 0 2910   
10 지오의 아버지-2 2019 / 10 / 16 210 0 3452   
9 지오의 아버지-1 2019 / 10 / 16 215 0 4796   
8 바퀴벌레 인간 2019 / 10 / 16 217 0 5864   
7 자살 방지법 2019 / 10 / 16 218 0 5698   
6 주인없는 방 2019 / 10 / 16 211 0 7107   
5 광장의 여자 2019 / 10 / 16 214 0 2995   
4 당연한 일상 2019 / 10 / 16 224 0 4163   
3 그, 그리고 그녀의 사정 2019 / 10 / 16 208 0 3940   
2 재회 2019 / 10 / 16 222 0 4100   
1 균열의 시작 2019 / 10 / 16 375 0 309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