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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바람의 향기
작가 : 향이
작품등록일 : 2019.10.10

 
호(岵) 황국(皇國)의 고민거리 -13-
작성일 : 19-10-16 12:15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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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꿈인가?

  그렇다면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처럼 맑은 하늘을 보고 잠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깨어있는 상태인지는 잘 모르겠는 모호한 느낌 속에서 현은 진심으로 자신이 의식하는 미소를 그려 넣었다.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안다.

  이때가 기억하는 한 가장 행복했었다는 것을.

  그의 눈앞엔 따뜻한 햇살에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푸르른 풀밭. 그 가운데는 자신과 똑같은 머리색에 초록색 눈을 가진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의 여자가 이것저것 섞어있는 들꽃을 한 아름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무 환해서 눈이 부신 것 같을 정도로 티 하나 없는, 보는 이마저도 따라 웃게끔 만드는 웃음.

  그것을 시기하는 건지 갑자기 그 여자의 주위로 검은 것이 일렁이며 느릿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여자를 보며 따라 웃던 현은 빠르게 여자의 곁으로 가려고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리 달리고 외쳐도 좀처럼 여자와 가까워지지 않았다.

  여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저 웃기만 하고 있었다.

  그에 애가 타는 건 현이었다.

  현은 정말 미친 듯이 소리치고 소리쳤다. 달려가는 것도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겨우 도착했나보다 했을 때 여자는 검은 것에 완전히 감싸여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잔뜩 놀란 현은 어느새 새카매져 버린 주위를 둘러보며 여자를 찾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한 점 들어와도 순식간에 이 새카만 공간에 잡아먹힐 듯이 새카만 곳이었다.

  그는 미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제는 눈에 핏발까지 서는 것 같았다.

  순간.

  어디선가 뭔가 빛이 난다고 느껴졌고 그 빛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걸음은 빨라졌다.

  현의 심장도 미친 듯이 뛰었다.

  불안했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며 다독이던 결과는 빛이 쏟아져 내리는 곳에 도착했을 때 무너져 내렸다.

  분명 있어야 했다.

  저런 곳에 구멍이 나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아냐. 저건…아니야.

  현의 시야가 갑자기 흐릿해졌다.

  한 번 감았다 뜨니 선명해졌지만 무언가가 이물감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갔다.

 

  “…아……이런…하하…말도 안 되잖아. 말도 안 된다고! 왜 또! 왜! 어째서!! 일어나! 거짓말이잖아! 일어나라고!!!!! 장난하지 말고 일어나란 말이야!!!!”

 

  몸도 같이 무너지는 것처럼 현의 몸이 주저앉아버렸다.

  이물감은 느낄 새도 없이 계속 흘러내리며 시야가 흐려졌다 맑아졌다를 반복했지만 태반이 흐린 경우였다.

  그는 아무리해도 움직이지 않는 여자를 이윽고 붙잡고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채 식지 않은 피가 현의 몸에 물들어갔다.

 

  “제발…이러지마. 왜 그래. 일어나줘, 응? 전처럼 웃는 게 힘들다면 안 해도 괜찮아. 전처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도 힘들다면 안 해줘도 괜찮아. 때 쓰지 않을게. 그러니까 아무 일 없다고…제발. 흑……일어나서. 일어나서 한 마디만 해줘. 현이라고 불러줘. 아무것도 안 바랄 테니까….”

 

  여자는 정말 가족이 아니면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심장이 있고 살이 있어 보이지 않아야 할 왼쪽 가슴은 뻥 뚫려있었고 곧고 윤기 나던 머리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산발해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피가 묻어있거나 피가 나고 있었다.

  이윽고 현은 눈을 감아버렸다.

  더 이상은 여자를 볼 수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소리는 참아낼 수 없는지 아프게, 슬프게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울부짖음을 힘겹게 앙다문 현이 자신의 흑색의 보석 같은 눈을 떴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만이 보였고 전의 새카만 공간에서 있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건. 현의 두 손에, 옷에 묻어있는 피와 그의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이 말해주고 있었다.

 

  “……으윽…용서하지 않……누구든….”

 

  깊게 가라앉은 현의 목소리가 흰 공간을 음울하게 울렸다.

 

  “……안 좋은 꿈을 꾸나 봐요.”

 

  “그런가보구나. 네 또래 같아 보이는데 이게 뭔 일인지. 쯧쯧-할미는 잠깐 나갔다오마.”

 

  “조심히 다녀오세요.”

 

  못 들었는지 낡은 문소리만이 청아한 목소리에게 대답하는 듯 했다.

  그러다 다시 문이 삐걱하며 열리고 노파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할머니가 말했다.

 

  “나리야, 뭔 일 있으면 옆집 원씨에게 말하고.”

 

  “네, 걱정 마세요.”

 

  “그려.”

 

  다시 낡은 문소리가 나며 할머니의 인기척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리라 불린, 미나리(彌娜裏)는 자신의 검은색의 긴 머리를 낡은 천조가리로 동여매며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는 남자를 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힘겨워 보이는 남자는 정말 악몽을 수차례 반복하며 꾸는지 미나리의 마음을 연신 안타깝게 만들었다.

  벌써 5일 이었다.

  동안 흘린 땀만 해도 일주일치 물의 양 같은데 또다시 흐르는 땀을 보니 애가 다 탈 지경이었다. 저러다 탈수해서 죽지 싶을 정도로 물을 마신 것보다 곱절로 내보내니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미나리였다.

  땀을 닦아주려고 대야에 손을 넣어보니 그 사이에 또 미지근해진 모양이었다. 아니 미지근해질만도 했다.

  아프지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하는 건지 땀뿐만 아니라 몸에선 열도 내보내고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물을 갈며 땀을 닦아줘야 했기에.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양반이었지만 몸에서는 쉬이 열이 가라앉지 않았다.

  해서 물을 갈아주러 가려는데 그녀의 발길을 붙잡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으…으윽!!”

 

  아프다고 외치는 구슬픈 음성.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 일 없어요.”

 

  미나리는 다독이고 다독이며 진정시켰다. 땀은 계속해서 쏟아 부을 듯이 흘러나왔고 열도 좀 내려갔다 싶었더니 또 오르기 시작했다.

 

  ‘미치겠다. 제발. 나와요, 꿈속에서. 이러다 당신이 죽어요.’

 

  눈물이 날 것 같아 미나리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남자를 품에 안아 올렸다.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녀의 손길대로 따라오면서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 했다.

  뭔가 따뜻한 품이 그리웠던 걸까.

  남자는 차츰 고른 숨을 내쉬며 언제 찌푸렸냐는 듯이 편안한 안색으로 그녀의 품에서 안정을 찾아갔다.

  의외의 성과를 거둔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녀는 안타까움이, 아픔이 진하게 몰려왔다.

 

  ‘내 품이 무에 그리도 편하다고 이리도 동안 노력한 것이 무색할 만큼 편안해 하는지…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대체 어떠한 사람이기에…….’

 

  더욱 품에 안아주며 미나리는 울먹임이 가득한 음성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가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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