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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55년생 순자씨
작가 : 춘자
작품등록일 : 2019.10.16

82년생 김지영의 부모 세대 이야기.

 
시집가는 종의
작성일 : 19-10-16 08:15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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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11월, 일본인 지주가 수확량의 75%를 소작료로 요구하자 당시 농민 조합의 간부를 중심으로 소작료 인상에 대한 단체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평균 소작료는 이미 43%에 육박해, 그마저도 먹고 남는 쌀이 별로 없을 때였다. 소작농 500명이 모여 만든 단체는 중간 관리인을 통해서 소작료 인상을 재검토해달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한 후, 바로 다음날 인상된 소작료는 그대로 유지된다, 재검토할 사안이 아니다 라는 답변을 듣고 소작료 납부를 거부한다. 이에 일본 경찰은 조합장을 잡아가고, 소작농 단체는 주재소를 습격해 검거된 그를 구해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합장 뿐 아니라 일부 간부들 및 습격에 적극 참여한 소작농 등을 모두 잡아 재판에 세우고, 항쟁은 실패로 끝난다. 소작료는 75%로 관철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군의 쌀 수탈은 더 심해져갔다. 군산 주민들의 생계는 더더욱 어려워져갔다. 일본으로 운송해가는 쌀 외에도, 소위 순찰이랍시고 마을을 기웃거리던 일본군인들이 민가에 들어가 다 지어놓은 밥을 가마솥 째로 빼앗아가는 일도 잦았다. 종의네 집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고모가 드시기 너무 뜨거울까봐 갓 지은 밥을 후후 불며 푸려는 찰나 일본군이 들이닥쳐 밥솥 째로 내놓으라고 호령했다. 깡마르고 작은 종의가 지지않고 "우리 식구 이거 가지고 일주일 먹을 양이요!" 하며 대들었다. 따귀를 맞지 않을까 두려워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이, 군인 한 명이 손을 치켜들었다가 고개를 돌려 밥 위에다 가래침을 퉤 뱉고는 종의를 설거지더미에다 밀치고 나가버렸다. 종의는 주걱으로 침 뱉은 부분을 얼른 덜어내고, 혹시나 고모가 들으실까봐 소리도 못내고 앞치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열 일곱 꽃다운 나이의 종의는 다섯 살 어린 종숙이 열 다섯을 넘을 때까지는 본인이 보살펴줄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 해 전인 열 여섯일 때부터 동네에서 혼사를 주선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종의는 고집스럽게 버텼다. 처녀 나이 으레 열 여섯에서 열 일곱 쯤에 혼사를 치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여자 나이 스물을 다 채우면 데려갈 남자가 없다는 걱정의 말도 많았다. 하지만 어딘가 또래에 비해 어리숙한 데가 있는 종숙이 오빠를 잘 따르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으며, 오빠 종호 역시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은 잘 하지 못했으므로 종의 입장에서는 미더운 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많아 몸도 예전같지 않은 고모도 좀 더 돌봐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소작료를 떼고 남는 25%를 가지고 소작농들이 먹고 살자니 유통되는 쌀값이 올랐고, 식구 중 한 입만 덜어도 쌀이 떨어지는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 실제로 매끼 밥을 차리는 역할을 하던 종의는 본인의 밥을 점점 덜 푸기 시작했고, 그렇잖아도 여리여리한 몸은 더 말라가고 고운 얼굴에는 하얗게 버짐이 피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고모 대신,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디 가던 길에 들른 척 하며 종의네 집에 찾아와 혼사 이야기를 꺼냈다. 모 마을 모 씨가 누구 네 둘째 아들인데 어쩌구 저쩌구. 최대한 공손하게 동생도 챙겨야 하고 고모도 돌봐드려야 하니 아직은 아닙니다, 라고 거절해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종호의 소학교 친구 충희가 집안에 좋은 일이 있어 떡을 했다고 집에 갖다 주러 왔다가 종의를 보고 마음을 품게 된다. 걸걸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의 충희네는 외항선을 타는 아버지 덕에 마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살림이 윤택한 편이었고, 충희의 외가에서는 큰 이불 가게를 하며 유곽과의 거래도 잦았다. 몸이 불편한 고모의 뒤를 이어 유곽 삯바느질과 빨래를 계속 맡아오던 종의는 이불 배달을 하러 갔던 충희의 외할머니 조여사와 마주치고, 마침 짐꾼으로 있던 충희의 호들갑 덕에 외손자가 마음에 둔 아가씨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전부터 바느질이며 세탁 상태가 야무지고 깔끔하다고 눈여겨 봤던 터라 종의를 보자마자 흡족히 여긴 조여사는 혼사는 어른들끼리 결정하는 것이니 할미에게 맡겨보라며 충희를 일단 진정시켰다. 부러 인력거를 대동해서 종의네 집에 도착한 조여사는 종의의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 같아서야 얼른 시집 보내고 싶지만 종의의 뜻이 저렇게 확고하니, 내가 저를 쫒는다고 생각할까봐서라도 종의가 원하는 때에 시집 보내고 싶다." 라는 종의 고모 의사를 전달받은 후, 조여사는 딸과 상의해 조용히 봉채(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결혼 전에 보내는 혼서지)를 준비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조여사는 종의네 마을로 사람 둘을 보낸다. 횃불로 짚을 조금 태운 후 연기를 피워 소란을 일으키며 "불이야!" 하고 누군가 외치자 다들 놀라서 허겁지겁 달려나오는데, 그 틈을 타 다른 한 명이 종의네 고모 방으로 들어가 옷장에 봉채를 집어넣고 나온다. 불이 꺼지고 연기가 가라앉으며 소동이 잦아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종의의 부축을 받으며 방에 들어서던 종의 고모는 낯선 발자국에 깜짝 놀라 주저앉는다. 소리를 듣고 방에 들어온 종호가 옷장 앞에서 멈춘 발자국을 따라가보다, 옷장 문을 여니 봉채가 떡하니 있는 것이다. 일단 봉채를 받은 신부 집에서는 이를 물릴 수도 없었으며, 부득이하게 물려야 할 경우에는 파혼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종의 나이 열 일곱, 조여사의 계략에 의해 시집을 가게 되버린 것이다. 동생 종숙이를 부둥켜 안고 이를 어쩌나, 시집을 가면 너는 어쩌고 고모는 어쩌나, 울며 밤을 지새우는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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