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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19
작성일 : 19-10-15 11:26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17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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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공간속으로 차가운 달빛이 들어와 산란하며 어둠을 밝게 비추듯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던 어두운 힘의 방해자를 끊어버리게 도와주었다. 달빛을 받으며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향해 달려갔다. 마동은 달려가면서 소리를 쳤다. 마동이 내뱉은 말은 이미 언어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크루느족의 구어 같았다. 마동은 자신의 몸이 증오로 인해 나타나는 변이의 총체가 되었다는 것이 점점 느껴졌다. 그 변이는 무릇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마동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와는 다른 것이다.

  근원적인 순수.

  새로운 에고가 저지르는 악행을 보고 있던 마동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려하지만 무엇인가에 꽉 잡혀있었다. 말랑한 꽃봉오리 같은 관념이 마동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체제일지도 몰랐다. 시대적 과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쇠처럼 단단하게 마동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가 있는 공터로 가려고 애를 썼다. 저 광경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어떻게든 움직여 지금은 저 아이들을 구해줘야 한다. 남아있는 아이들이라도 구해야 한다. 울고 있는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에서의 발로였다. 너무 깨끗하고 투명해서 가시처럼 날카로운 것이다. 세공을 하지 않으면 뾰족하고 칼날 같아서 위험하다. 마동은 그 순수를 꺼내들고 횡포가 심한 새로운 에고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다. 마동 속에서 나오는 순수는 악마적인 모습을 지닌 순수 그 자체다. 악마적인 순수성으로 새로운 에고를 죽일 것이다.

  새로운 에고를 죽이기 위해. 죽이기 위해.

  죽여버릴 것이다.

  바람이 마동의 볼을 스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도화지 같았다. 마동의 손과 팔은 이미 변이를 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마동은 새로운 에고가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공터로 달렸다. 마동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새로운 에고의 폭력을 마동은 순수의 폭력으로 소멸시키기 위해 달렸다.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 의식의 변경이나 신체의 변이를 가져온다해도 상관없었다. 이제 상황은 어떠한 경계의 영역을 뛰어 넘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거칠어질수록 마동은 점점 환희가 차오름과 동시에 환멸에 분노한 숨소리를 뿜어냈다. 새로운 에고를 잡아서 반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이고 그 징그러운 입을 갈라놓을 것이다. 아주 격렬하게 소름끼치고 무섭게, 새로운 에고의 횡포를 저지할 것이다. 새로운 에고 녀석은 아이들을 짓밟으면서도 도넛을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한 아이의 얼굴은 이미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동은 더욱 포효했다.

  안 돼! 아이들을 건들지 마!

  새로운 에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동은 그곳을 향해 마구 달렸다. 주위의 모든 것이 빛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마동은 팔을 휘저었다. 달리는데 마동의 앞에 거치적거리는 건 전부 뜯어 버리면서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향해 달렸다. 그때 마동은 또 다시 무엇인가가 자신을 땅바닥에 고정시키는 힘을 강하게 느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힘을 내지 못하게 했다.

  달이 사라졌다. 달이 사라짐과 동시에 달빛도 소멸했다. 소멸하면서 마동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눈앞에 새로운 에고가 아이들을 폭행하고 짓밟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마동은 다가가지 못했다. 뇌를 통해서 고통이 전해졌다. 한순간에 머리를 짓누르는 고통이 한꺼번에 육체마저 고통스럽게 눌렀다. 마동의 팔은 끊어질 듯 아팠고 몸은 강력한 바닥과 일치가 되어 있었다. 바닥에서 자라난 고목나무처럼 땅바닥에 붙었다. 고목나무가 마동의 다리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고목나무의 형상이 는개였다. 마동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 숨을 헐떡거렸다.

  는개가 왜 나를 막으려고 하는가.

  는개는 사력을 다해서 마동을 막았다. 이봐, 저기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어. 가서 아이들을 구해야 해. 나를 좀 놔줘. 마동은 입을 다물고 는개에게 말했지만 는개는 얼굴을 일그러트려가며 마동을 붙잡았다.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는개는 마동의 다리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잡았는데 마동은 비명소리를 듣고 는개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마동은 몸을 움직였다. 달빛을 받지 않더라도 마동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는개, 이건 옳은 일이야. 옳은 일을 하는데 할 수 없이 ‘악’을 사용하는 거야. 그러니 나를 막지 말아줘.

  마동은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자의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저 놈을 죽일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는개, 나를 놓아줘 제발.

  일어나 일어나라구! 여기서 나가야 저놈을, 저 폭력으로 똘똘 뭉친 저놈을 죽여버릴 수 있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등의 살가죽이 벗겨져나가는 고통이 수반되어 왔다.

  끄아아아악.

  눈물이 핑 돌았다. 눈동자가 충혈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잔재를 보며 마동은 붙어있는 땅바닥에서 육체를 떨어뜨렸다. 동시에 피와 근육이 몸에서 분리되어 나가고 핏줄이 덜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혈관이 터진 모습이 눈으로 들어왔다.

  마동은 마침내 자신을 붙들고 있던 큰 고목에게서 벗어났다. 고목은 고목일 뿐이다. 달려가면서 팔을 흔들 때마다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바닥에서 분리된 마동의 몸은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새로운 에고는 한 아이의 얼굴을 발로 차려고 했다. 마동은 안 돼! 하며 새로운 에고를 덮쳤다. 냄새가 났다. 누린내가.

  이미 아이의 얼굴은 맞아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짓이겨진 빵부스러기처럼 망가져있었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잡고 바닥에 넘어트렸다. 새로운 에고는 마동에게 저항 따위를 하지 않았다. 넘어진 채로, 도넛을 입에 물고 있는 채 그대로 있었다. 마동은 이미 이성의 경계에서 벗어났다.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떠한 부분도 마동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폭력적인 새로운 에고가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역시 상관없었다.

  너 따위는 죽어야 해. 너 같은 놈이 왜 내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새로운 에고가 저항을 하던, 하지 않던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죽여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동은 에고를 똑바로 눕히고 뾰족해진 순수성으로 배를 찔렀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배가 갈라졌다. 자주색을 띤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목을 졸랐다. 마동의 몸에서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피가 팔을 타고 손목을 지나 그 녀석의 목과 얼굴에 떨어졌다. 녀석은 흘러내린 마동의 피를 몸으로 흡수했다.

  마동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마동은 흐르는 피를 보며 더욱 폭주하기 시작했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에고의 목을 누르며 마동은 선과 악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글귀로 옮겨다 놓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 누워있는 새로운 에고는 악의 근원이다. 마동은 손아귀의 힘을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새로운 에고의 목을 돌랐다.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로 마동은 힘을 주었다.

  새로운 에고의 얼굴이 그전에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새로운 에고의 얼굴은 마동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목이 졸려가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목이 졸려 숨이 막히면서도 마동을 비웃고 있었다. 눈동자가 변해서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비웃고 있었다. 입안에 도넛을 가득 담고서 마동을 비웃고 있었다.

  죽여버려야 한다. 이 비웃는 모습을 없애야 한다.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잔뜩 드는 얼굴이었다. 그 기분 나쁜 얼굴이 마동을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너무 보기 싫었다. 마동은 더욱 목을 누르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손가락이 손에서 해체 될 정도로 힘을 주었다.

  마동 자신이라고 불리는 에고는 그동안 이드를 누르고 있었다. 이성과 감정의 사이에서, 선과 악의 사이에서, 현실과 초현실의 사이에서 이드는 온갖 욕구를 방출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만 에고는 이드를 꾹 누르고 있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욕구들마저 에고는 모두 누르고 있었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사소한 욕구들마저 누르며 참아왔다. 언젠가부터 에고는 그러한 자신의 인지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인지를 부정하면서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타인의 마음을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만나려했다. 에고는 자신의 힘으로 작은 마음에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잃어버린 세계를 찾으려고 했다. 마동에게서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에고는 자신의 힘이 턱없이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초자아를 불러냈다. 동시에 이드도 불러냈다. 이드를 함부로 방출하지 못하도록 너무 힘을 줘서 누르고 있었다. 이드는 욕구를 참는 동안 누르고 있던 악질적인 고뇌가 한 번에 폭발해버렸다. 부정은 곧 통제가 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로 변모하여 악을 대동하고 악제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고는 이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치가 모호해진 채로 기분 나쁜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목이 졸리고 있었다. 섬뜩한 광경이었다. 눈동자는 사람의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마동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동은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새로운 에고의 목을 있는 힘껏 졸랐다.

  목이 끊어지기를 바라면서.

 

  눈을 떠보니 철탑 밑이었다. 철탑 밑의 수풀 더미에서 마동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마동이 눈을 떴을 때 습한 공기가 나무사이를 통과하면서 나뭇잎 특유의 냄새를 전해주었다. 나뭇잎 냄새 사이에는 슬픔의 냄새가 있었고 핏빛의 냄새도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냄새. 모순의 냄새였다.

  무엇일까.

  냄새는 언젠가 진하게 맡아본 냄새였다. 애써 잊어버리려고 했던 냄새. 잊어버릴 수 없는 냄새. 후각은 브라운관의 영화처럼 기억을 재생시킨다. 냄새의 기운.

  나는 왜 여기 쓰러져있을까.

  마동은 눈을 홉뜬 채 그대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숲속의 풀이 팔과 다리에 와 닿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동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 때문에 깔려있는 자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풀거림이 팔과 다리에 닿을 때 간지러운 감촉이 좋아서 마동은 바로 일어나지 않고 자신이 왜 여기 누워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떠 올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말처럼 달리고자 아파트를 벗어났다.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최원해를 만나서 같이 조깅을 했다. 최부장은 힘들어했고, 마동은 코스를 바꾸었다. 저수지를 끼고 만들어놓은 산행 길로 코스를 정하고 같이 올랐다. 그리고 또 그리고, 다음이 없다. 그저 눈을 떠보니 여기에 쓰러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마동은 여기에 왜 누워있는지에 대해서 설명 가능한 이유를 찾으려했다. 바람이 한 번 불었다. 부자연스러운 냄새가 계속 풍겼다. 이 냄새는 마동이 진하게 맡아본 냄새가 맞았다.

  오래전이었다. 어린 시절에 마동이 살고 있던 마을이었다. 경진시에서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50분가량 굽이진 도로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마을. 경진시 참근읍에 위치한 마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서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아버지의 어이없는 사고사. 아버지의 사고에 마동은 자신이 깊게 개입을 하고 있다는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고 나이가 들수록 거대한 여귀처럼 주위에서 맴돌았다.

  어린 시절의 자세한 기억은 없다. 뜨문뜨문 중간 중간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 속에 10살 때의 일은 지울 수 없었다. 마동이 살고 있는 동네위에는 기차가 다니는 숲속의 철길이 있었다. 철길은 어린 마동의 놀이터이자 전쟁놀이를 했던 전쟁터이기도 했다. 전쟁터라고 생각이 났다면 같이 전쟁놀이를 모의했던 친구들이 있다는 말이다. 철길위에는 위험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마동과 친구들은 철길위에 올라서서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말 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 맞아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시간만 나면 나는 철길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놀았지.

  마동의 옆에는 친구 두 명이 있었다. 마동은 친구들의 얼굴도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들과 전쟁모의는 언제나 철길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곳에서 끝을 맺었다. 끝을 맺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내일 또 모이자는 묵언으로 합의를 한 터였다. 철길은 아이들의 숨결이자 육체의 한 부분이었고 집결의 장소가 되었다. 마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철길이 좋았다. 철길을 따라 끝없이 난 길을 따라가면 세계의 끝에 도달할 것만 같았다. 매끈하고 아름답게 죽 뻗어있는 철길을 오랫동안 쳐다본다는 것이 마동과 친구들은 좋았다. 철길 사이에 박혀있는 돌도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과는 달랐고 철길에 엎드려서 한 쪽 눈을 감고 저 끝의 궤적을 바라보는 것은 마동과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놀이였다. 철길위로 올라오는 레일의 알 수 없는 냄새와 거부할 수 없는 차가운 감촉 그리고 검은 빛을 닮은 쇠붙이의 기이한 색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때 낌새가 느껴지면 철길위에 귀를 갖다 대고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면 저 궤적의 끝에서 달려오는 기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가 전부 꺼져버린 고요한 세상에 숨 쉬는 고래처럼 쿠둔 쿠둔 하는 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리.

  마른 침을 삼키게 만드는 소리.

  오로지 궤적의 끝으로 모든 것을 집중시키는 소리.

  아이들은 그 소리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매끈한 철길위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이 점점 거세질수록 마동과 친구들의 심장 역시 파열에 가깝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저 멀리 기차의 모습이 뱀처럼 나타날 때 심장의 소리가 대공포의 소리로 변하면서 아이들은 그 자리를 피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덩치의 기계덩어리가 긴 줄을 만들어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고 힘차게 숨을 뿜으며 지나쳤다. 이런 산속을 지나가는 기차는 대부분 화물 기차였다. 간간이 기차를 몰고 가는 차장이 마동과 친구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고 마동과 친구들은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덜커덩 덜커덩 하며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답례로 환호해주었다. 거대한 기계 뱀이 지나가고 나면 하나를 끝낸 안도감이 들었다. 노을이 어스름하고 여트막한 어둠이 몰려오면 마동과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날이 되기를 크리스마스 기다리듯 기다렸다가 그곳에서 다시 모였다. 반복이었다. 매일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대못을 들고 가서 아름답게 죽 뻗은 매끈한 철길위에 올려놓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덩치가 ‘부앙’ 하며 지나가고 나면 대못은 납작하고 평평해져 있었다. 모양이 완전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납. 작. 하. 게.

  손에 들려 있던 원래모양의 대못의 모양에서 그야말로 변이를 한 것이다. 그렇게 납작하게 변해버린 대못을 기차가 지나가자마자 만져서 손을 다 대인적도 있었다. 모양이 변해버린 대못은 그들의 보물이었고 아이들만의 비밀이었다. 대못을 납작하게 만든 것을 동네의 어른들에게 들키면 다시는 철길 위에 오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른 날보다 훨씬 빠르게 식어버리기 때문에 마동과 친구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오는 대로 철길위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만끽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만 기차가 지나갈 때면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야 했다. 아이들은 기찻길위에서 한 시간 이상 놀고 싶었지만 기차는 수시로 지나갔고 해가 넘어갈 기미가 보이면 마동과 친구들은 기찻길에서 떨어져서 집으로 와야했다. 더 놀고 싶었지만 인생이란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마음껏 할 수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철도청에서 파업을 하는 날이면 마동과 친구들은 기찻길위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없이 누워 있곤 했다.

  파. 업. 을. 하. 는. 날. 이. 면. 하. 루. 종. 일. 누. 워. 있. 을. 수. 있. 다.

  바람이 불어와 누워있는 마동과 친구들을 스쳐 지나가고 얼굴을 간질이고 어딘가에서 풀냄새를 몰고 와서는 아이들의 얼굴에 다가 쏟아 부었다. 기찻길에 깔려있는 따뜻한 돌들이 등에 닿는 느낌도 좋았다. 그렇게 파업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마동과 친구들은 기찻길에 올라가서 그저 드러누워서 하늘을 봤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자세하게 보였고 구름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것이 좋았기에 파업에 대한 뉴스가 들려 올 때면 마동뿐만 아니라 친구들 역시 귀를 기울였다.

  그날도 철도가 파업을 했다. 마동이 그 소식을 제일 먼저 듣고 친구들에게 전했다. 뿌듯했다. 마동은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마동과 친구들은 기찻길위에서 마음껏 놀며 그들의 비어있던 마음을 채워가고 있었다.

  두어 시간 정도 놀았을까.

  마동과 친구들은 지쳤고 수순처럼 기찻길위에 조르륵 누웠다. 하늘을 쳐다봤다. 파란 것은 하늘이고 하얀 것은 구름이었다. 파란하늘에 뭉게구름이 양을 만들기고 하고 개를 만들기도 해야 했지만 그것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저 구름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구름은 흘러가면서 시시때때로 모습이 번했다. 어린 시절에 구름은 인간의 마음처럼 변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붓이 없음에도 구름은 알아서 모양을 일그러트려가며 서서히 움직였고 마동과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꿈속으로 빠져들었으며 햇살은 더욱 따뜻하게 마동과 친구들을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 덮어 주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마동은 오줌이 마려워 눈을 부스스 떴다. 눈을 뜨기 싫었지만 눈을 뜨고 일어나서 오줌을 누러 갔다.

  소변이 마려웠다.

  마동은 기찻길에서 떨어져 나와 숲으로 들어갔다. 기찻길 가에서 소변을 보려는데 난데없이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숲으로 조금 걸어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기찻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숲으로 들어왔다. 그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훔쳐보는 풀벌레도 없었다. 마동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시원하게 눴다. 소변을 보는 것은 몸속의 체증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묘한 흥분이 소변을 타고 귀두 끝으로 전해졌다. 소변은 평소보다 많이 나왔다. 마동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소변의 방향을 지그재그로 틀었다. 오줌줄기는 풀잎을 나풀거리게 만들었다. 그때 무엇인가 큰 생물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동의 작고 미세한 신경을 부스럭거리는 곳으로 온통 집중이 되었다. 마동은 엉덩이를 밀어 넣고 소변을 다 뽑고 잘 턴 다음 바지를 올리면서도 신경은 부스럭 거리는 쪽으로 향해 있었다. 허리를 조금 굽혀 낮은 자세를 취한다음 부스럭 거리는 숲으로 마음을 졸이며 다가갔다.

  부스럭 부스럭.

  마동은 팔을 뻗어 나뭇가지를 살짝 걷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에는 큰 생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은 나뭇가지를 헤쳐서 움직이는 생물체를 쳐다보았다. 마동은 놀란 눈이 되었다. 그것은 아주 큰 야생 고양이었다. 비록 나이가 어린 마동이었지만 야생동물은 강도처럼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고양이는 마동의 다리만큼 큰 고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와는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부스럭 거리며 움직이는 동물은 너구리였다. 그렇지만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선생님이 설명 해 준 너구리보다 더 큰 덩치였다. 몸의 빛깔은 대체로 옅은 갈색에 등 부분의 가운데에는 검은색의 어두운 띠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구리의 앞다리로 지나가는 띠가 잘 만들어진 문형에 가까웠다. 마치 무명화가가 솜씨 좋게 띠 모양으로 그려 놓은 듯했다.

  털은 짧았다. 짧은 털은 빳빳하게 보였다. 실은 무척 부드러운지도 모른다. 너구리는 야행성이다. 하지만 천적이 많아져 버린 탓에 너구리들이 낮에도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닌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이 했다. 너구리는 육식동물에 가까운 잡식동물이다. 마동이 지금 보고 있는 너구리는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동의 눈에 비치는 너구리는 땅을 꾸준하게 팠고 주위의 나뭇가지를 치우기도 했다. 뭐랄까 그저 땅을 파보기도 했고 숲속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이동시켰다. 마동의 눈에는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보였다.

  눈 밑에 반점이 있는 걸로 보아 너구리가 확실해 보였지만 어딘지 너구리라고 부르기에는 부조화스러운 면이 많았다. 너구리는 너구리였지만 너구리가 아니었다. 다만 너구리를 닮은 비슷한 동물이었다. 너구리는 아주 멋진 꼬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저 녀석은 꼬리가 없었다. 꼬리가 잘렸다든가 짧은 꼬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꼬리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인간의 엉덩이처럼 꼬리라는 게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너구리처럼 보이는 저 동물의 엉덩이에 말이다.

  마동은 선생님에게 전해들은 너구리에 대한 모습에서 벗어난 형태에 겁이 덜컥 나버렸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의 나뭇가지를 밟았다.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 너구리가 고개를 들어서 마동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구리의 눈은 동물의 눈이 아니었다. 동물의 눈에는 흰 자위가 없다. 저 너구리의 눈은 인간의 눈처럼 흰 자위가 있고 그 속의 눈동자를 움직였다. 적의가 가득 들어차있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너구리를 닮은 저 녀석의 눈빛에는 인간을 보고 불안함이라든가 놀람이 아닌 적의만이 가득했다. 마치 살인 현장을 들켜버린 살인자의 눈빛 그것이었다.

  마동과 너구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구리는 마동을 노려보고 마동은 놀라는 눈으로 너구리를 쳐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너구리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누렇고 냄새나는 지옥의 칼 같은 너구리의 이빨이 드러났다. 숨을 죽이고 적의에 가득한 너구리의 눈빛을 받은 마동은 그만 다리에 남아있던 힘이 완전히 빠져 나갔다. 다리가 구부러지며 밑으로 주저 앉아 버렸다. 인간의 다리가 풀어지는 방식에는 라면을 끓여 먹는 방법만큼 많은 방식이 있지 않다. 그 몇 가지도 되지 않는 방식 중에 제일 나약한 방법으로 마동의 다리는 풀어졌다. 그 순간 너구리가 쉐엑 하는 소리를 뿜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괴성은 고요한 물에 파문이 퍼지듯 순식간에 숲의 풀잎사귀를 흔들었다. 마동은 일어나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큰소리로 불렀다.

  “얘들아, 얘들아!”

  마동은 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냈다. 목구멍은 작은데 소리를 너무 질러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마동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눈이 아프고 목이 칼칼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친구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날카로운 종이가 목을 스쳐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게 소리를 질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이 위험한 너구리의 존재를 알려야 했고 마을의 어른들에게도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구리에게 마동은 잡혀 먹힐 것만 같았다. 마동은 너구리가 쉐엑 하는 변질된 포식의 신음을 토해내자마자 일어나서 아이들 쪽으로 달렸다. 소변을 보러 이렇게 숲 속 깊게 들어왔는지 몰랐다. 마동은 풀숲을 헤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많이 달렸지만 기찻길은 보이지 않았다. 마동은 아이들이 누워 자고 있는 철길위로 달려가기 위해 숲을 헤치느라 평화롭게만 보이는 풀잎에 베이기도 했다. 그런 것쯤은 지금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동은 사력을 다해서 달렸다. 칼날 같은 풀잎은 마동의 얼굴을 스치기도 했고 팔뚝을 스치기도 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팔에 피가 배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다. 너구리를 닮은 녀석이 마동의 뒤를 쉐엑 거리며 포식자의 본능으로 쫓아왔다. 어린 마동의 눈에 들어오는 푸른 숲의 풍경이 퇴색되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던 풀과 나무의 모습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퇴색되어 버린 숲의 모습은 너무 기이하여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마동은 달리는 것은 자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달리면서 할 수 있는 놀이 말고 딱히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동과 친구들은 서로 경쟁하며 달리는 놀이를 즐겼다. 풀이 얼굴 앞으로 다가오면 마동은 손바닥을 펼쳐서 얼굴을 가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쉐엑 쉐엑 하는 소리가 더러운 화장실의 물청소하는 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마동은 달렸다. 달리는 것 이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뒤돌아서서 너구리와 맞붙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횃불을 들고 숲의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녀서 너구리를 생포해서 통나무에 매달아 마을로 들고 온다. 동네 어른들은 신명나게 춤을 춘다. 너구리를 포획한 것에 대해서 모두들 기뻐한다. 그런데 매달린 너구리는 조소를 띠며 어린 마동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도 이리저리 굴려가며.

  마동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풀숲을 헤쳤다.

  저 앞에 철길이 보인다.

  기찻길이 있는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쉐엑쉐엑.

  마동은 뒤로 돌아볼 틈도 없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아이들을 깨워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너구리를 닮은 저놈이 나 이외에 친구들을 본다면 놀라서 풀숲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가 우세하니까 우리 모두 너구리를 상대한다면 그 녀석도 도망 갈 것이다.

  일말의 기대를 안고 마동은 달렸다. 비로소 철길 위 모습이 드러났다. 마동의 모든 신체기능이 상실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숨이 차고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게 어딘가가 몹시 아팠다. 이대로 계속 달리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모든 기관의 기능이 활동을 포기하거나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마동은 달리기를 멈추지 못했다. 멈출 수 없었다. 마동은 저 멀리 철길위에 누워 잠들어 있는 괴성이 마동의 바로 뒤, 가까이에서 들렸다. 아주 가까운 곳까지 따라왔다. 마동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힘을 다했다. 양팔을 번갈아가며 세차게 흔들어대며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때였다.

  마동의 뒤에서 바람이 쑤욱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거대한 굉음의 소리.

 

  기차다.

 

  파업이라고 했는데 기차가 지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동은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게 기차가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아이들이 누워있는 기찻길을 힘 있고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기차의 굉음에 묻혀 아이들은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아이들은 기차의 톱니바퀴 속으로 종이처럼 말려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조각 조각난 아이들의 잔재가 기분 좋은 구름과 바람, 숲의 모습과는 기기묘묘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분쇄된 피비린내와 철길의 냄새가 풍겼다. 모순의 냄새를 마동은 그대로 일어선 채로 맡았다. 근육으로 위배의 냄새가 파고들었다. 냄새는 발가락 끝으로부터 등을 타고 뒤통수를 잡아 당겼다. 마동은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하늘이 부서지고 숲에서 대폭발이 일어났고 검은 구멍이 생겼다. 구멍으로 모든 것이 빨려들어 갔다. 마동도 폭발과 더불어 구멍으로 몸이 쑥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냄새가 났다.

  바람 냄새?

  마동은 철탑 밑에서 바람이 전해주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누워있던 마동은 고개를 들었다. 마동 앞에 거대한 철탑이 서 있었다. 마동은 최원해와 함께 이곳을 조깅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나는 여기에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달할 수 없는 답이다. 바람은 어디선가 맡아 본 위배의 냄새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바람은 과거의 어딘가에서 그 냄새를 몰고 와서 전달했다. 오래전 기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흩뿌려진 피비린내와 흡사한 냄새. 마동은 눈을 뜨고 바람 속에 뒤섞여 있는 뒤틀린 내음을 알아차렸다. 바람은 철길의 냄새와 피비린내를 마동에게 왈칵 쏟아 부었다. 구토가 났다. 철탑 밑에는 약간의 수분을 머금은 풀이 수북하게 그 밑을 점령하고 있었다. 풀들은 마치 꿈틀대는 실지렁이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나의 메타포가 철탑을 휘돌고 있는 바람에 따라서 하늘하늘 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는 어디서 흘러오는 냄새인지 몰랐지만 그 냄새는 철길위에서 맡았던 피비린내였다. 냄새는 영혼의 표피를 걷어내고 어둡고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이곳까지 왔다.

  현실의 바람이 마음의 모래 탑을 건드렸다. 마동은 누운 채로 철탑을 올려다보았다. 철탑은 또 다른 세계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철탑의 다리부분에서 자라는 풀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정돈된 모습이었다. 아마 구청의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나와서 철탑 주위를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철탑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철탑 주위에는 철조망으로 바리케이드가 쳐 있었고 촉수처럼 자라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철탑근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는 풀은 인간의 손으로 잘라내지 않고 가만 두면 몇 달 만에 높은 곳을 향해 녹색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올라 갈 것이다. 녹색으로 덮여있는 그들의 진화는 육안으로 전혀 볼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면 저 먼 곳까지, 저 높은 곳에 이미 닿아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동물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질소를 뿜어대며 녹색을 지닌 생물이 인간이 빠져나간 자리에 들어앉을 것이다. 건물을 뒤덮고 도로를 가득 채울 것이다. 강변이나 마을의 잘 가꾸어진 정원의 풀들은 인간에게 친절하다. 사진의 배경으로 우리와 친밀함을 가득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숲에 들어가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하늘을 제외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녹색으로 덮어버린 그곳에 서 있으면 낮이라도 공포다. 사방에 녹색의 그것들은 바람에 의해서만 하늘거릴 뿐 전혀 자의로 움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속의 그것들에 둘러싸이면 두려워진다.

  풀잎은 때로 날카로워서 사람에게 상처를 낸다. 마동은 너구리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 얼굴을 베였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마동은 손을 들어서 뺨을 한번 만졌다.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산속으로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숲은 살아서 너희 세계로 나가라고 고여한 외침을 지른다. 마치 뱀의 소굴에 들어온 것처럼 무섭다. 그래도 나가지 않으면 숲은 인간을 고립의 세계로 인도한다. 산은 바다와도 같다. 갈매기가 하는 말을 들었다. 자연은 아주 자연스러운 공포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테러블 한 것과 거리가 있는 공포다. 숲의 무서움은 찰나로 한꺼번에 해(이롭지 아니하게 하거나 손상을 입힘)를 가하지 않는다. 서서히 차분하게 마음을 잠식한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잡초에 지나지 않아 손으로 쑥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들은 돌처럼 가만히 놔두면 물을 주지 않더라도, 일일이 관리를 해주지 않더라도 어디든지 기어오르며 영역을 넓혀간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는 더 마땅한지도 모른다. 인간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언어를 무시한 채 도로를 덮고 집을 덮고 다리와 댐을 전부 덮어버린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증식방법으로 개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상황에 맞게 변이를 감행하며 멀리까지 진화해 나간다.

  철탑 밑의 풀은 관리해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철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송전을 방해 할 것이다. 철탑을 관리하는 대상자가 어떤 집단인지는 몰라도 철탑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들에 의해 꾸준하게 철탑을 관리해 오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두워지고 계절이 끝나가는 겨울이 되면 도심지 속의 숲이지만 이곳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지니게 되는 공간으로 바뀐다. 도시의 한낱 작은 마을의 뒤편에 있는 산으로 불리지만 너구리와 고라니, 요즘 같은 계절에는 뱀도 많이 나온다. 지역구를 이어주는 산이기 때문에 규모는 여러 종류의 철새 떼가 힘차게 하늘을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구청에서는 마동이 누워있는 산을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했다. 산의 외모는 살리고 동물들과 자연을 유지하며 산으로 둘러싸인 저수지의 보존에도 돈을 쏟았다. 저수지의 물고기는 외래어종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리를 잡았고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동이 누워있는 자리에 높고 거대한 철탑이 들어섰다. 덕분에 구청장은 재선에서도 구민들에 의해 선택을 받았다.

  철탑이라는 것은 가까이 와서 보지 않으면 규모나 모양에 대해서 흘려버리기 쉬운 철골 구조물이다. 마동은 일어나지 않고 누운 채로 올려다보는 철탑의 꼭대기는 마치 바벨탑의 꼭대기처럼 다른 세계로 뻗어가지 않을까하는 착각이 들었다. 철탑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져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인간이외의 것들과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인간을 위해서 지낸다. 다양한 산짐승들의 영혼이 철탑근처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마동은 짙은 냄새와 촉감으로 알 수 있었다.

  철탑 밑으로 많은 동물들이 지나다녔다. 마동처럼 그 밑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도 했다. 철탑의 꼭대기에는 무시무시한 전선의 갈래들이 보였다. 머리카락이 수세구멍에 버려진 것처럼 엉켜있어서 쉬이 철탑에 오른다거나 그 무시무시한 전선에 손을 뻗어 만진다는 의식이 사람에게 생겨나게 하지 못하는 위엄이 있었다. 철탑이라는 구조물은 그 위용만으로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몇 안 되는 철골구조물이다. 철탑은 인간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그 역할은 인간생활의 편리를 도모하지만 인간가까이에는 다가오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철탑이라는 것이 송전선의 지지물로 사용되는 이유다.

  마동은 건축과 시간에 토목건설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교수는 철탑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대부분이 아이들이 전공이 아니라서 딴 짓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했다. 마동은 철탑이 아주 흥미로웠다. 교수가 하는 말,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교수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젊은 교수였다. 환경공학 교수였는데 어쩌다가 철탑에 대해서 강의를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교수의 손은 하얗고 여자 같은 손가락 마디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디에 수염처럼 검은 털 몇 가닥이 길게 나 있었다. 학생들이 대부분 듣지 않아도 혼자서 강의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마동은 베키의 눈동자를 하고 수업을 들었다.

  “철탑이라는 것은 말이죠, 송전전력, 전압, 지형 등에 따라 산속이나 들판, 사람들이 없는 외곽지역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보기 흉하고 큰 철골이 마을이나 시내에 세워진다면 사람들은 인상을 쓰겠죠. 철탑의 높이는 대부분 60미터 정도 됩니다. 60미터에서 그 이하로 있지만 거대한 거인로봇의 뼈대처럼 보여서 높이와 크기를 떠나서 사람들은 철탑에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송전선의 철탑은 보통 3상 2회선, 6개의 전선을 애자로 지지하고 있고 철탑사이의 거리는 20~30미터정도 됩니다. 철탑에 가설한 전선의 지표로부터 최저높이는 전기설비기술에 의해서 정해져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해져있는 무엇인가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는 유용한 철탑이 아니라 그저 거대한 철골구조물일뿐이죠. 그러니까 거대한 뼈대로만 이루어진 천덕꾸러기인 것입니다. 철탑은 15만 볼트의 선로의 경우는 6미터 정도가 됩니다. 보통 선로가 넓은 강이나 깊은 계곡을 건널 경우에는 경간이 생깁니다. 따라서 작은 것 또는 배전선이나 전화선의 지지물로서 단일기초위에 세우는 철주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념체이기 때문에 인간은 철탑이라는 것에 대부분 쀼루퉁하거나(이런 말은 교수가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수업에 집중을 하는 학생들이 없었기 때문에) 무관심하죠. 철탑 가까이는 가지 말라고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교육을 받습니다. 어른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위험하다, 홀라당 타버린다. 같은 말을 듣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심지에 반드시 필요한 철탑은 주위 어딘가에 세워져 ‘고압전류위험’이라는 푯말이 늘 붙어 있습니다.”

  털이 붙은 하얀 손가락의 교수가 강의 중에 한 말이었다.

  아마도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삶에 철탑이라고 불리는 구조물을 들여놓지 않는 인간이 대부분이다. 철탑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고속도로나 어딘가에서 눈으로 봤지만 스쳐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람들은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철탑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누구하나 철탑에 관심을 가지는 인간은 없다. 관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인간은 철탑을 인간의 범주에서 빼. 버. 렸. 다.

  철탑이 어느 순간엔가 땅에서 발을 들어 쿵쿵 하며 서서히 걸어서 인간들에게 다가와 ‘이것보라구 인간들, 나 말이야 너희를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오나 휑한 곳으로 외롭게 너희들의 안위를 위해서 언제나 봉사를 하고 있었어, 너희 따위에게 멸시받을 이유가 없어!’라며 인간의 집을 발로 밟거나 도심지로 뛰쳐나와서 인간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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