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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연애의 시작과 끝
작가 : 퍼니바크
작품등록일 : 2016.8.29

회사일에 치여 살던 주인공에게 대학시절 첫사랑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와 그 시절을 오가는 로맨스 소설입니다.

 
그녀와 나의 거짓말
작성일 : 16-10-06 23:00     조회 : 337     추천 : 0     분량 : 10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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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전

 

 이틀 전,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것에 대해서 난 여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 맘속엔 ‘그럴만한 말 못할, 나한테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 뭘까?’ 하는 생각과 ‘누구지? 어떤 놈이야, 설마 제대했다던 전 남친인가?’ 하는 다른 두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저녁에 누나를 만나야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누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떡하지...’ 하다가 선화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 누나, 나 재민인데 3일전에 민영이 누나 뭐했는지 알아?’

  ‘ 민영이...민준이랑 영화보러 갔잖아, 몰랐어?ㅋㅋ from 선화누나’

  ‘ 어...누나가 나한테 말한다고 했었어?’

  ‘ 응...둘이서 영화보러 간다길래 내가 너한테 말하고 가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말했다길래...내가 괜한 얘기한거 아냐? from 선화누나’

  ‘ 아냐아냐, 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거 였으니까 신경쓰지

  마, 알았지?ㅋㅋ'

 

 선화누나에게는 그렇게 보냈지만 내 속은 엉망진창이였다. 뭐가 어디서 어긋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하다보니 누나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약속 장소에 가니 누나가 먼저 와있었다.

 

  “ 왔어?”

  “ 일찍 와있네.”

  “ 응, 여기 근처에서 볼일 볼게 있어가지고.”

  “ 달링!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누나가 말하거나 내가 말하거나 둘 중 하나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 할 말?”

  “ 어, 나 오늘 선화누나한테 들은게 있어서.”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얼더니 이렇게 말했다.

 

  “ 선화한테 들었어...아...내가 미리 얘기 할랬는데...”

  “ 뭘? 남자랑 단 둘이 영화보러 간다고? 그런데 그게 전

  남자친구라고?”

  “ 미안해...”

  “ 그리고 거짓말은 왜 했어, 처음부터 간다고 했으면 나

  충분히 아니 조금 갈등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보내주는

  방향으로 결정했을텐데 나 누나한테 실망했어...”

 

 그러나 누나가 내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 미안해, 자기야~ 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그럴게, 그러

  니까 화 풀어~ 자기 화내는 거 싫단 말이야~ 자기야~”

 

 누나의 애교를 보고 있자니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 다음부터 진짜 그러면 안 된다!?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 웅~약속!”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딱 붙어서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내 맘 속 저 깊은 곳엔 여전히 왜 전 남친과 영화를 봤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예전 같지 않은 누나를 대하는, 아니 누나를 느끼는 내 기분에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데이트가 끊나고 누나의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있었는데 누나가 내게 말했다.

 

  “ 근데 자기야, 자기는 내가 왜 걔랑 영화 보러 갔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해 할 줄 알았는데.”

  “ 궁금하지, 왜 안 궁금하겠어, 달링이 얘기를 안 해주

  니까 무슨 말 못 할 이유가 있는거겠지 생각했지.”

  “ 그 와중에 내 생각한거야? 자기 너무 착한거 아냐?”

 

 누나의 집앞에 다 왔을 쯤이였다.

 

  “ 이게 뭐가...”

 

 누나가 내게 키스를 했다. 내가 먼저 한 첫 키스와는 달리 이번엔 당하는(?) 키스라 기분이 사뭇 달랐다. 내 입술과 누나의 입술이 포개어짐과 동시에 누나가 두손으로 내 목을 감쌌고 자연스럽게 내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게 됐다. 누나와의 꿀 같은 키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그 길이 오늘 아침 집을 나섰을때의 길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다.

 

 현재

 

 그 사람과의 만남 이후, 선화누나에게 그 날에 대해 말할려고 약속을 했고, 오늘이 그 날이다. 약속장소에는 웬일로 누나가 먼저 와 있었다.

 

  “ 어? 일찍 왔네?”

  “ 그냥, 버스가 생각보다 일찍 와 가지고.”

  “ 들어갈래? 바깥에 바람이 많이 부네.”

  “ 그치? 좀 춥긴 춥다.”

  “ 뭐 마실래?”

  “ 난 카페모카.”

 

 ‘역시’라고 생각했다. 선화누난 항상 카페모카만 마시기 때문이다. 내가 마끼아또를 마시는 것처럼. 내가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누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커피들이 나오고 난 그걸 들고 누나에게 갔다. 누나가 한 모금 마시더니,

 

  “ 역시 맛있어, 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놔봐.”

  “ 별거 없었다니까. 그 날 전화로 말한게 전부야.”

  “ 그래도 말해줘.”

  “ 일단 만났을 때 초반에는 난 아직 어색해서 머뭇머뭇거렸

  었는데 그 사람은 안 그런가보더라구, 계속 말을 했어.”

  “ 그리고?”

  “ 곱창 구워먹으면서 소주 한 잔 했지.”

 

 그 때, 누나 폰에 전화가 왔다.

 

  “ 여보세요? 네, 팀장님! 재민아, 잠시만!”

 

 누난 입모양으로 ‘어후, 또 이팀장이야!’라며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갔다. 누나가 가고 멀뚱멀뚱 남은 의자롤 보고 있었는데 의자 밑에 떨어져있는 무언가가 내 시선을 집중시켰다. 수첩이었다. ‘누나 수첩인가?’ 하고 주워서 안을 봤는데 매일 뭔가가 적혀 있었다. 오늘 날짜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한 장을 뒤로 넘겨보니 이런게 적혀있었다.

 

  ‘ 내일은 재민이에게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듣는 날이

  다. 그게 무슨 일이든지간에 기분이 좋지야 않겠지만 어떻

  게든 그런 말을 하며 예전 생각에 행복해하는 재민이를

  볼 수 있다는거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뭐지...? 누나 수첩에 내 얘기가 왜...?’ 누난 아직 밖에서 보이지도 않는 팀장이란 사람에게 제스처까지 하면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또 수첩을 넘겨보니 이틀 전, 내가 그사람을 만난 날, 그 전날 순으로도 이런게 적혀 있었다.

 

  ‘ 아침에 재민이와 연락이 닿았다. 잠을 한 숨도 못 잤지

  만 재민이가 별일 없다는 말에 피곤이 싹 날아가는 듯했

  다. 그런데 민영이가 재민이 집에서 잤다고 한다. 어제

  둘이 술을 마셨단다. 아무 일 없었다는 재민이의 말이

  사실이였으면 좋겠다.’

 

  ‘ 오늘은 재민이가 민영이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재민이가

  민영이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미련이나 가슴속에 응어리 맺힌것들을 훨훨 털어냈으

  면 좋겠다.’

 

  ‘ 오늘 하루종일 폰을 켜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

  다. 내일 재민이가 민영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러 가

  지 말라는 내용과 그리고 지난 10년간 내가 널 좋아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것 같다. 민영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재민이에

  게 위로를 못해줄망정 내가 고백을 해서 더 힘들어하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언제쯤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선화누나가 나를 좋아했다니...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10년씩이나...그럼 그동안 나는 날 좋아해주는 사람앞에서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상담을 한 셈이었다. 그동안 혼자서 속앓이를 했을 누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가만 생각을 해보니 누나가 내게 몇 번 티를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때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왜냐면...왜냐면 누난 내겐 이성이기보다는 항상 의지가 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밖에서 통화가 끝났는지 누나가 돌아오고 있었다. 재빨리 수첩을 핸드백 안에 넣었다.

 

  “ 미안, 통화가 길었지?”

  “ 아냐, 무슨 일 있어?”

  “ 아니, 이팀장이 나한테 시킨 일이 있었는데 그거 때문

  에.”

  “ 아.”

  “ 우리 얘기 어디까지 했지? 곱창 먹고 소주 한 잔 하고

  그 다음엔?”

 

 누나의 수첩을 안 봤을때는 몰라도 본 내게 그 다음 일을 말한다는건 누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였다. 그래서 할 수가 없었다. 얼른 화제를 넘겼다.

 

  “ 뻗었지 뭐, 누나 배 안 고파? 나 배고픈데.”

  “ 말 돌리기는. 나도 배고프긴 한데, 뭐 먹지?”

  “ 나 찌개나 탕류 당기는데, 누난?”

  “ 나도 둘 다 당겨, 여기 앞에 감자탕 집 있던데 거기 가

  자.”

  “ 역시~ 누나 밖에 없어.”

  “ 치~이럴 때만?”

 

 감자탕 집에 들어서니 역시나 시간대가 저녁시간대라서 그런지 사람이 북적거렸다. 줄까지 서 있었다. 20분이나 기다린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고 얼마 안되 음식이 나왔다. 기다릴 때 미리 주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 누나, 그릇 줘. 덜어줄게.”

  “ 내가 할게, 네게 떠서 먹어.”

  “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누나에게 따로 몰래 시켰던 수제비 사리를 듬뿍 떠서 줬다. 누나가 수제비를 좋아한다고 말한게 생각나서였다.

 

  “ 어? 수제비네? 언제 시켰어?”

  “ 어, 아까전에 누나 화장실 갔다올 때내가 시켰어. 누나

  수제비 좋아한다며.”

  “ 그거 예~전에 말한거 같은데 기억하네?”

  “ 내가 누군데~”

 

 누나의 수첩을 보고 나서인지 식사를 하는 내내 누나를 보는 내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했다. 아마 수첩의 영향이 맞을거라 생각된다. 혼란스러웠다. 항상 내 옆에서 내가 힘들때면 있던 선화누나가 날 좋아한다니...나도 누날 좋아하지만 이 감정은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직 그 사람을 못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나올 때 얼마 전에 그 사람이 내가 선화누나랑 연락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세명이서 한번 만나자고 했던게 생각이 났다.

 

  “ 참! 누나, 그 사람이...”

  “ 그 사람? 민영이?”

  “ 응.”

  “ 민영이가 왜?”

  “ 누나 만나고 싶대.”

  “ 나를?”

  “ 응. 얼마 전에 연락하다가 누나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누나랑 아직 연락하고 있다니까 셋이서 한 번 보자고 했어.”

  “ 셋이서? 나랑 민영이 말고 누구? 너?”

  “ 그럼 나지, 누가 있겠어.”

  “ 걔는 나한테 바로 물어보면 되지, 왜 너를 거쳐서 얘기

  하냐, 내 번호는 안 물어보든?”

  “ 어, 그러고 보니 번호를 달라는 말은 못 본거같네.”

  “ 그래? 음...난 다음주 수요일 빼고는 이번 달은 별다른

  약속은 없을걸?”

  “ 다음주 수요일?”

 

 ‘ 어? 저 날 영화보러 가기로 했는데 나랑, 다른 약속이 잡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으이그, 멍충아. 그날 너랑 약속 있는 날이잖아.”

  “ 아, 난 또 다른 약속 잡혀있는줄 알고.”

  “ 누가 멍충이 아니랄까봐, 그럼 지금 민영이한테 문자

  보내봐, 이왕 너랑 같이 있는 김에 약속 잡자.”

  “ 그럴게.”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 지금 선화누나랑 같이 있는데 저번에 셋이서 만나

  자고 얘기 했었잖아, 그래서 물어보더니 같이 보는거

  좋다는데? 시간 맞춰보게 이번달 안에 스케줄 있는 날

  있어?’

 

 바로 답장이 왔다.

 

  ‘ 그래? 둘이서 뭐한대ㅋㅋ 난 다음주밖에 시간 안되

  는데 다다음주에 회사에서 프로젝트 준비하는 바람에

  매일 야근 해야 할 것 같거든 ㅠㅠ from 그 사람’

  ‘ 선화누나는 담주 밖에 시간이 안된다는데...’

 

 라고 문자를 치면서 누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데 누나가 바로 내 옆에서 바싹 붙어서 폰을 보고 있었다. 당황해서 그런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 그러면 다음주 월요일? 넌 시간 돼?”

  “ 안되도 만들어야지?”

  “ 오~ 센스!”

  “ 물어본다?”

 

  ‘ 다음주 월요일 어때?“

  ‘ 난 좋지, 선화는 괜찮대? from 그 사람’

  ‘ 응, 그럼 그때 보는거다?’

  ‘ 그래, 선화랑 좋은 시간 마저 보내~ from 그 사람’

  ‘ 결정 났어?“

  ‘ 어, 월요일에 보재. 누난 몇 년 만에 보는거야?“

 

  “ 나? 음...졸업하고 한번도 못 봤으니까 8,9년 정도?”

  “ 나랑 비슷하네.”

  “ 넌?”

  “ 난 한 10년?”

  “ 너도 꽤 오래 못 봤다가 얼마 전에 봤구나.”

 

 그러는 사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도착한지 얼마안되서 누나가 타는 버스가 왔다.

 

  “ 어? 버스 온다.”

  “ 그래? 그러네, 그럼 나 먼저 간다~”

  “ 그래, 들어가.”

 

 버스에 탄 누나가 버스가 출발해서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버스를 봤다. 오늘 누나의 수첩에서 본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얼마 안되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차가 출발하고 창문 밖을 바라보는데 유난히 달이 밝아보였다.

 

 10년전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같이 먹던 원석이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 아! 저번에 그 영화시간은 왜 물어본거냐?”

  “ 아...그거...?”

 

 옆에서 도현이가 조심스럽게,

 

  “ 혹시 우리가 본 사람이 네 여자친구 맞아...?”

 

 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윤이가 말했다.

 

  “ 저번에 우리가 잘못 본 거라고 하고 끝나지 않았나?”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 너희들이 본 거 잘못본거 아냐...누나 맞았어...”

 

 얘길 했다. 순간, 얘네들도 멈칫하다가 내게 물었다.

 

  “ 진짜 네 여자친구였어?”

  “ 그러면 옆에 있던 남자분은 누구야?”

  “ 너 몰래 간거야?”

  “ 잠깐잠깐, 하나씩 물어봐. 진짜 내 여자친구 맞았고 옆

  에 있던 그 남자는 전남친이래, 나 몰래 간거고.”

  “ 아...”

  “ 여자친구한텐 얘기했냐, 네가 알고 있다고?”

  “ 어, 며칠전에.”

  “ 뭐래?”

  “ 할말 없냐고 물어보니까 없다길래 다 얘기했지, 그러

  니까 미안하대, 잘못했대.”

  “ 왜 갔대?”

  “ 그건 안 물어봤어. 괜히 알았다가 득 될 것도 없고 뭔

  가 사정이 있겠지하고 넘어갔어.”

  “ 안 궁금하냐?”

  “ 궁금하지..! 미칠 것 같지..!! 그런데 무슨 내가 알면 안되

  는 이유가 있었으면 다른사람한테 둘이서 영화보러 간다

  고 얘기 안 했을거야.”

  “ 누구한테 얘기했는데?”

  “ 내가 아는 누나 과 친구한테.”

  “ 그 사람한테 얘기한건 어떻게 알았냐?”

  “ 물어봤지. 혹시 누나 그날 뭐했는지 아냐고.”

  “ 아, 네 얘기듣고 보니까 별 특별한 이유나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어보이지는 않긴 하네.”

  “ 그럼 그렇게 얘기하니까 네 기분 다 풀어졌어? 난 절대

  안 풀릴 것 같은데.”

  “ 그럼 당연히 안 풀리지, 그런데 그 사람이 내 기분 풀

  어줄려고 애교도 부리고 아양도 떠는데 거기서 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지.”

  “ 그럼 그렇지.”

  “ 그래도 마음 저 구석엔 아직 안 풀린게 있는 거 같아.

  그 사람 대하는 내 태도가 그 일 전후로 확연히 달라.”

  “ 그렇게 느낄 필요는 없는데, 빨리 풀어버려라. 참! 말

  나온 김에 송재민 기분 풀어주는 겸 오늘 저녁에 한 잔

  어떤데?”

 

 역시 뭐든 갖다 붙여서 제 원하는 대로 만드는 건 원석이 만한 놈이 없다.

 

  “ 좋지~”

  “ 나도.”

  “ 주인공이신 송재민씨는?”

  “ 난 여친한테 물어보고.”

  “ 아오~!”

 

 날 위로하려던 놈들이 순식간에 야유를 퍼붓는다.

 

  “ 니들도 여친 사귀어봐. 안 이러는지.”

  “ 너만큼은 절대 안 한다. 퉤퉤퉷! 그러니까 민영이누나가

  영화보러 가지.”

  “ 뭐라고?!”

  “ 장난이야, 장난!”

 

 말은 저래도 나도 간만에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누나한테 문자를 보냈다.

 

  ‘ 달링,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

 

 속으로 ‘있어라, 있어라.’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 진짜 물어보냐?”

 

 원석이가 비꼬는 듯이 말한다. ‘징~’ 문자가 왔다.

 

  ‘ 어ㅠㅠ 아 오늘 과제해야되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돼, 근데 왜? from 여친님’

  ‘ 왜긴 보려고 했지. 그럼 나도 학교에 늦게까지 있어야지.’

  ‘ 나 때문에? 안 그래도 되는데ㅜㅜ from 여친님’

  ‘ 아냐, 나도 사실 과제 있어가지고 달링한테 물어본거야.

  괜히 나 때문에 약속 안 잡고 그러는 거 안해도 된다고.’

  ‘ 그런거였어? ㅋㅋ from 여친님’

  ‘ 그럼 과제 끝나고 연락해? 알았지?ㅋㅋ’

  ‘ 그래용~♡ from 여친님’

 

 폰을 끄고 주위를 보니 시선이 내게 몰려있었다. 원석이가 물었다.

 

  “ 뭐라시냐?”

  “ 나도 오늘 될 듯.”

  “ 술 마셔도 된대?”

  “ 과제한다고 거짓말했는데?”

  “ 그러다 들키면?”

  “ 안 들켜, 늦게까지 과제한대, 누나도.”

  “ 타이밍 괜찮은데~.”

  “ 빨리 오후 수업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넷이서 술 약속을 잡고 식당을 나와 강의실로 향했다. 아마 강의시간 내내 우리 네명 머릿속엔 ‘빨리 수업끝나고 술 마시러 가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강의 내용은 하나도 들어오질 않았을 것이다.

 

  “ 건축에서 환경도 빠지면 안 된다는 거야. 오늘 수업

  은 여기까지, 질문 있냐?”

  “ ... ...”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 없으면 수업 끝.”

 

 교수님이 나기사자마자 우리 네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까의 술 약속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는 눈빛들을 보냈다. 강의실에서 나오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애들이 얘길 했다.

 

  ‘ 난 수업 끝 ㅋㅋ 달링은?’

  “ 아함~지루했네, 오늘따라 유난히 그러네, 너희들은

  수업이 귀에 들어오던?”

  “ 그럴 리가 있겠냐, 강의 시간 내내 언제 끝나는지

  생각만 했는데.”

 

 역시나 내 생각대로 였다. ‘징~’ 문자가 왔다.

 

  ‘ 난 아직, 강의 하나 더 남았어ㅠㅠ from 여친님’

  ‘ 오늘 과제 때문에 힘들텐데 수업도 많네ㅠㅠ’

 

 내가 조금씩 나머지 세명보다 뒤처지는걸 눈치 챘는지 원석이가 내게 와 폰을 보더니,

 

  “ 와~얘 또 여친한테 보고하네.”

 

 라고 말했고,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로 야유를 보냈다.

 

  “ 잡혀사네 아주.”

  “ 시끄! 빨랑 어디 가서 술 먹을지나 정하시죠?”

 

 대충 저렇게 화제를 돌리니 자기네들끼리 어디가 좋니, 저기가 좋니 하면서 내 얘길 안 했다. 폰을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 어쩔 수 없지ㅠㅠ 자기는 지금부터 과제해? from 여친님’

 

 문자를 보고 속이 ‘뜨끔’ 하긴 했지만 답장을 보냈다.

 

  ‘ 아직은 아니고 저녁 먹고 조원들이랑 만나기로 했어,

  조별과제라서.’

  ‘ 저녁 맛있게 먹고 과제 열심히 해~♡ from 여친님’

 

 그녀에게 미안했다. 같이 과제를 하는 조원들은 앞에서 여전히 행선지에 관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만 입단속을 하면 걸릴일은 없었다. 괜히 이상한 데를 갈까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끼어들려던 찰나,

 

  “ 콜!”

 

 이란 세 명의 대답이 들렸다. 궁금했다.

 

  “ 어디로 정해졌냐?”

  “ 너 모르는 데야.”

  “ 왜 거긴데?”

  “ 분위기가 괜찮거든, 어두침침하게 술 마시는 기분이 난

  다니까.”

  “ 너희들은 가봤어?”

  “ 난 선배한테 들었어, 애들은 가봤고.”

 

 지윤이가 말했다.

 

  “ 분위기 안 좋기만 해봐라.”

 

 원석이의 말대로 뒤를 따라가보니 꽤 큰 건물이 나왔다.

 

  “ 여기 몇 층이 술집이야?”

  “ 3층, 저기 ”Drink Drunk' 보이지? 저 건물이야.“

 

 간판은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큼의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원석이를 필두로 도현이, 지윤이 그리고 나 순으로 술집에 들어왔다. 술집에 들어서고 10초도 안되어 원석이가 왜 분위기가 괜찮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두침침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여자 손님들이 많았다. 자리에 앉아 술과 안주 몇 가지를 시켰다. 도현이가 눈으로 주위를 훑더니 이렇게 말했다.

 

  “ 원석아, 우리 저번에 왔을 때보다 물이 더 좋은 것 같

  던데?”

  “ 저번에 언제 왔었냐, 너네 둘?”

  “ 왜 저번에 나랑 도현이 말고 한명 더 끼여서 과팅 한

  적 있었잖아.”

 

 지윤이가 자긴 처음 듣는다는 듯이,

 

  “ 나는?”

  “ 우리도 너랑 할려고 했었는데 그 날 너희 어머니였나

  아버지 생신이라고 일찍 갔었을껄?”

 

 그제야 지윤이가 생각이 난 것 같았다.

 

  “ 아! 그 때!”

  “ 어, 그 때. 완전 망한 날이었지. 여자 애들이랑 술만

  막 퍼마시다 갔었어.”

  “ 애프터는?”

  “ 있으면 망했다고 했겠냐!”

  “ 그런데도 여기 오자고 했냐?”

  “ 너도 느꼈다시피 여기 분위기가 좀 좋냐? 그래서 왔지.”

 

 그 말에 대해서는 나도 십분 공감했다. 주문한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안주가 들어오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주 퀼리티도 퀼리티였지만 양도 다른 곳보다 훨씬 많았다. 그 때, 원석이가 말했다.

 

  “ 참고로 여긴 안주 시키면 무한 리필이다. 5000원씩만

  내면.”

 

 그래도 우리가 이득인 것 같았다. 도현이가 내게 술병을 내밀며 말했다.

 

  “ 여친 있는 사람한테 한 잔 받자, 그래서 그 기운 좀

  받자.”

 

 괜히 으쓱했다.

 

  “ 그래.”

  “ 대신 너처럼 잡혀살지는 않게.”

  “ 이게!”

 

 도현이의 술잔이 넘칠때까지 술을 줬다. 다음으로 지윤이랑 원석이도 달라고 해서 똑같이 은혜를 베풀었다. 내 차례가 되자 도현이가 술병을 잡더니 이렇게 말하며 내게 가득 줬다.

 

  “ 이제 적당히 보고하길.”

  “ 참나!”

  “ 그럼 우리 짠! 할까?”

  “ 짠!”

 

 넷이서 잔을 부딫히고는 모두 원샷을 했다.

 

  “ 으~달다.”

  “ 으~쓰다.”

 

 각자 첫 샷의 맛을 음미하며 안주를 입에 넣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녀의 문자였다.

 

  ‘ 나 이제 수업 끝나서 과제하러가. 자기는 과제 잘 하고

  있어?ㅋㅋ from 여친님’

 

 과제,,,하고 있지,,,Drinking이라는 과제...

 

  ‘ 응, 하고 있어ㅋㅋ 달링도 열심히 해.’

  ‘ 응, 자기두~♡ from 여친님’

 

 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갤 드니 셋 다 날 고양이가 쥐 잡아먹는 마냥 보고 있었다.

 

  “ 보고 다 했냐?”

  “ 뭐하냐? 여기까지 와서?”

  “ 술잔 갖고 온나. 친구들이랑 술 먹는데 뭐? 문자를 해?

  이럴땐 벌주(罰酒)지.”

 

 그러면서 잔을 가득 채웠다. 한잔 쯤이야 하고 한번에 털어놓고 안주를 집어 먹으려는데 지윤이가 내 팔을 잡더니 지그시 말했다,

 

  “ 아직 이르지, 내 벌주도 마셔야지~.”

 

 두 번째 잔도 무리없이 원샷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뒤따라오는 안주에 대한 갈망은 배 이상으로 컸다. 마지막으로 원석이가 조용조용하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내 잔을 다시 채웠다. 연달아 두 잔을 마셔서 그런지 잔을 잡은 손이 입에 다가가질 못했다. 그러자 원석이가.

 

  “ 어라? 쉬네? 다시 한 바퀴?”

 

 라고 말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 벌주도 입속에 흘려보냈다. 그리고는 안주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 독한 놈들...”

  “ 뭐라고?”

  “ 아냐, 아냐;;”

 

 그 때, 출입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 넷 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들어왔다. 우리 모두 조용히 입으로만,

 

  “ 아...”

 

 라고 얘기했다. 뒤이어

 

  “ 같이 가.”

 

 라는 말과 동시에 어떤 여성분이고 낯이 익은 목소리의 사람이 오는 듯 했는데 지윤이가 실수로 나한테 물을 쏟았다.

 

  “ 아...”

  “ 미안, 거기에 물컵이 있는줄 모르고.”

 

 그 때 출입구쪽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도현이와 원석이가,

 

  “ 오! 여자다...어?!”

 

 라고 말했다. 난 얼른 물을 닦아내고 말했다.

 

  “ 왜? 처음엔 환호였다가 당황인데?”

 

 그러자 도현이와 원석이가 머뭇머뭇거렸다.

 

  “ 왜? 뭔데?”

 

 원석이가 말했다.

 

  “ 민영이 누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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