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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불타버린 재와 무덤지기
작가 : 오렌지핥고싶다
작품등록일 : 2019.9.8

세계를 이루는 다섯가지 색은 변질했고, 대륙의 중심을 다스리는 여왕은 숨을 거두었다. 백성들은 변질한 통치자를 그저 두려워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을 연명한다. 대륙의 나머지를 다스리는 4명의 여왕은 타락해 고귀하던 영혼을 더럽혔다. 신은 이 모든 참사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렇기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몸에서 흐르는 검붉은 혈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는 다짐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를 반드시 되돌려 놓겠다고.

 
개화(開花)
작성일 : 19-10-14 22:00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4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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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스...”

 

 절규를 토해낸 이루실라의 굵은 줄기가 마치 채찍 같은 기세로 날아와 론을 후려쳤다. 론은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날아가 역겨운 줄기가 꿈틀대는 장소에 처박혔고, 아리아는 이리저리 날아오는 줄기를 계속 베어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리아라고 해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줄기들을 모두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불을 있는 힘껏 터뜨려 줄기들을 태워버린다고 해도 또 다른 줄기들이 날아와 앞길을 가로막는다.

 

 몸에 끈적히 묻은 체액을 손으로 털고 있자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론이 뛰어와 아리아의 머리를 겨냥한 줄기를 베어냈다. 이윽고 뒤에서 날아온 줄기는 여러 줄기와 얽히고 섥혀 두꺼운 몽둥이 같은 형태가 되어 론과 아리아를 가볍게 저 너머로 날려 버렸다.

 

 “으윽.. 이제 우리 어쩌지..”

 

 제 몸을 휘감는 촉수를 불로 태워 버린 후, 멍한 표정을 지은 아리아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었다. 론은 눈을 부릅뜬 채로 괴성을 지르는 이루실라의 얼굴을 강렬하게 쏘아 보았다. 저것이 아샬리아의 영혼을 흡수한 자의 말로이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다.

 

 형태가 모두 똑같진 않겠지만, 괴물로 변한 여왕은 앞으로도 셋이나 더 남아 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대륙의 안정을 가져오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자신의 전부였던 여왕을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기도 했다.

 

 “..누님, 그 삽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 삽이 왜?! 이건 그냥 나 같은 견습 무덤 지기용 삽이라고! 좀 튼튼한..”

 

 순간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진 줄기 때문에 아리아의 말이 끊어졌지만, 아리아는 즉시 줄기를 태워버린 뒤 말을 계속이었다.

 

 “..삽. 그 인간이 나 숲에 처박아 뒀을 때에 두고 간 거야. ‘언젠간 그게 네 힘을 깨우칠 때에 도움이 될 거다’ 라고 씨부리고 간 삽이지!!”

 

 아리아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내심 신경질이 난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계속 날아오는 줄기를 베는 손이 거칠어졌으니. 론은 줄기를 방어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열심히 입을 놀리며 아리아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 아뇨! 절대로 평범한 금속은 누님의 불을 담을 수 있도록 강하지.. 않습니다!”

 

 론은 자신을 후려치려는 줄기를 대검으로 방어하곤, 검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에 인상을 구겼다. 조금씩 줄기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이루실라의 얼굴도 조금씩 험악한 분위기를 띠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간략하게 말할게요! 누님, 처음에 삽에 피 떨어뜨려서 불을 강화했죠?! 무덤지기 혈통의 불에, 그걸 강화한 것을 견딜 수 있다는 건..”

 

 심장을 노려 날아오는 줄기를 다시 한번 방어하고 론은 아리아와 거리를 좁혀 삽의 끝 부분을 덥썩 움켜쥐었다. 아리아는 급작스러운 론의 이상행동에 눈을 크게 치켜뜨더니, 욕으로 추정되는 발음 새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렇지만 론은 개의치 않은 채 그대로 손을 삽 끄트머리에 꾹 눌렀다. 어찌나 세게 눌렀는지 론의 손에서 피가 줄줄 새었고, 삽은 기다렸다는 듯 그 피를 흠뻑 빨아들였다.

 

 “너, 너 뭐 하는 거야!? 이 미친놈아!!”

 

 “..제 피를 사용해, 더 강하고 큰불을 만들 수 있다는 금속이란 말이죠! 아샬리아 님의 힘을 직접 받은 자의 피이니.. 자, 빨리 싸워요!”

 

 처음에는 미친 사람을 보는듯한 표정이었지만 론의 말을 들은 아리아의 표정에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아리아는 즉시 몸을 낮추어 도약 자세를 갖추더니, 다리에 온 힘을 끌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론은 씨익 웃으며 아리아의 뒤를 쫓는 줄기들을 솜씨 좋게 잘라냈다. 커다란 대검을 한 손만으로 질풍같이 휘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리아를 쫓는 줄기들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쪽을 주시하는 이루실라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핏줄은 울룩불룩 불거졌고, 눈에는 핏발이 섰다. 하지만 아리아의 몸에 붙은 속도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론이 그녀를 쫓던 줄기들을 모두 잘라낸 덕이다. 드디어 아리아는 이루실라의 얼굴에 근접했고, 그 뒤를 식은땀을 흘리던 론이 뒤따랐다.

 

 “끼히야아악!! 한.. 한스!!”

 

 이루실라는 자신에게 근접한 아리아가 큰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나마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토해낸 작은 탄환 같은 것이 재빠르게 날아가 아리아의 왼쪽 팔을 관통했으니.

 

 아리아의 쇳소리 섞인 신음소리가 터졌으나, 아리아는 팔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는 듯 이루실라와의 거리를 계속해서 좁혔다. 약 20미터, 꽉 움켜쥔 아리아의 삽 끝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났다. 14미터, 불꽃은 점점 더 커져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8미터, 커질 대로 커진 불꽃은 미친 듯이 일렁이며 눈이 멀 것만 같은 광채를 뿜었다. 드디어 4미터. 아리아는 자신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온 이루실라의 거대한 얼굴을 정확히 겨냥하여, 한가운데에 삽을 박아 넣었다.

 

 “..젠장.”

 

 하지만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들려온 것은 아리아의 신경질적인 욕설 한 마디였다. 론은 불꽃을 터뜨려 주위의 줄기들을 제거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리아의 모습에 불안을 느꼈다.

 

 이빨이었다. 아리아를 절망적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불이 피어오른 삽을 이빨로 물어버린 이루실라의 끔찍한 치악력이었다. 이루실라는 제 얼굴을 미친 듯이 달궈대는 불꽃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기를 박아넣으려 애쓰는 아리아의 옆구리에 굵은 줄기를 때려 박았다.

 

 아리아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옆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분노와 당혹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론은 급하게 달려가 아리아의 목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눈을 감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아리아였지만, 일단 맥은 뛰었다.

 

 다행이다. 척추가 부러져 즉사라도 한 줄 알았다. 상상 이상으로 아리아의 몸은 정말 단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분명 불은 통했다. 이루실라의 얼굴은 불로 잔뜩 짓물렀으며, 눈은 녹아버려 녹색과 붉은색이 뒤엉킨 역겨운 액체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루실라는 버텨냈다. 그 어떤 부위보다 단단한 이빨로, 몸 깊숙이 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아리아가 조금만 더 위를 노렸다면 이루실라는 그대로 내부가 불타버려 즉사했을 것이다.

 

 “하안.. 스으.. 나, 나 아파.. 안.. 보여.. 어디 있어.. 어, 어디 있어.. 내.. 내 눈 먼.. 눈 먼 정의..”

 

 이루실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나열하며 알현실을 꽉 채우고 있는 줄기들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줄기들은 가까운 위치에 있는 론의 위치조차 알아채지 못했으며, 점점 휘두르는 속도가 느려져 알현실 내부를 두드리는 진동도 차츰차츰 약해져 갔다.

 

 “진짜.. 제대로 먹이셨군요.”

 

 즉사 시키지 못했을 뿐이지, 너무나 약해진 이루실라는 그저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중간중간 구슬픈 목소리로 한스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이상 행동은 없었다. 내심 그것이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론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리아의 몸을 끌어와 제 몸에 기대게 했다. 대충 옷을 들추어 옆구리를 살펴보니 붉은 피멍이 커다랗게 들어 있었다. 내장이 다쳤을 수도 있기에 깨어났을 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야 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한.. 스... 미안해..”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되는 대로 줄기들을 휘두르던 이루실라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 갔다. 꿈틀대던 꽃잎은 축 쳐져 움직이지 않았고, 알현실 문을 감싸 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줄기는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여신의 대지에..”

 

 론은 흐물흐물 형태를 잃어가는 이루실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에서는 한스가 읊조리던 기도가 새어나왔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기도를 하는 건지, 그것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위대한 이루실라 님의..”

 

 이제 이루실라의 얼굴은 반쯤 액체가 되어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지 못했다. 줄기들도 모두 바스라져 모습을 잃었다. 온전히 뚫린 알현실의 문 너머에서는 환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아샬리아 님의 축복도.”

 

 모든 기도가 끝나자, 이루실라가 있던 곳에는 그저 잿빛 재만이 남아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론은 그곳을 향해 무릎을 꿇은 뒤, 머리를 꾸벅 숙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검과 삽은 망토 안에서 꺼낸 밧줄로 단단히 묶어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렇게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아리아를 등에 업어 알현실을 나섰다. 삽은 괜찮았지만, 길이가 너무 긴 대검이 바닥에 쓸려 내는 소리가 내심 귀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고맙습니다.”

 

 알현실을 나와 성 밖으로 가는 길을 거슬러 걸어가며, 론은 감사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기절해 있는 아리아가 이 감사에 답을 해 줄 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론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담았다.

 

 이윽고 성 밖으로 발을 옮기자, 가장 먼저 이 둘을 반긴 것은 뺨에 닿는 따스한 햇살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무수히 솟아나 빼곡하게 하늘을 가린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성을 나와 마을 쪽으로 발을 옮기자 두 번째로 귀에 들려온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임이었다.

 

 통곡 소리, 환호 소리, 가족을 찾는 소리, 놀라움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 등, 많고 많은 소리들이 뒤섞여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주변을 메우던 거대한 꽃들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 있는 것은 감격에 찬 표정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에 론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주변의 놀라움과 호기심이 섞인 시선이 론과 아리아에게 꽂혔을 때에도, 론의 표정은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채였다.

 
작가의 말
 

 인물 TMI: 아리아의 키는 154, 한스의 키는 166으로 둘다 신장이 작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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