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차장실.
윤 차장은 사무실에서
징계위원회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귀남의 방송사고 때문이었다.
잘 마무리 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방송국 업무에 마비가 될 정도로 파급력은 컸다.
" 네……네…… 아닙니다.
제가 직접 면담을 했습니다.
아니 그 직원이 평소엔 괜찮다가……
가끔 귀신을…… 아니……
약간의 장애가…… 있습니다.
예예…… 말이 갑자기 튀어 나는 거요.
맞습니다. 가끔 욕도 막 하고 그렇습니다.
신 후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확인 되었고요.
이건 신 후보자님께서도 충분히 해명해 주신 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요?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 이번만 묻고 넘어갑시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타 방송국이랑 신문사에서도 물고 뜯고 있다는 걸요.
그래도 이건 좀.......
지금 그 정도로 일할 수 있는 인원도 없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현.
종이를 흔들어 보이며 전화를 끊으라는 몸짓.
" 일단 당사자와 같이 인터뷰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벌써 결과 다 나왔는데 뭐하세요?"
" 아니 벌써?"
" 다행히 감봉으로 끝났어요."
" 아니 그래도 뭘 따져 보고 처벌을 하던지 해야지. "
" 따져 볼게 뭐 있어요.
그 또라이 짓을 하고 안 잘린 게 다행이죠.
하도 해명하라는 말이 많아서
빨리 처리 됐어요. "
" 야 그래도 회사에서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
징계위원회도 안 열고
신 PD 얘기도 들어봐야 되는 거 아냐?"
"들어볼 게 뭐가 있어요.
일단 선 처리 하고 나중에 인터뷰 할 모양이에요.
지금도 제대로 처벌하라고 난리에요.
구렁이 담 넘듯 했다가 이미지 박살나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나마 사장님 덕분에 잘 해결 된 모양이에요."
" 나 참. 큰일이네 이거."
" 됐어요.
끝났어요. 귀남이는.
방송국 생활 끝이에요. 이제."
" 넌 선배라는 놈이 할 소리냐?"
"귀남이 그 놈 신 후보자랑 뭐 있을게 확실해요."
" 네가 어떻게 알아?"
" 제가 짬밥이 얼만데요.
딱 보면 알아요.
두고 보십쇼."
"야 근데 귀남이 왜 그렇게 한 것 같냐?
네가 제일 오랫동안 봐왔잖아."
" 뭐 신입 때부터 쭉 봐오긴 했죠.
2년 동안 내가 데리고 살기도 했고."
"이상한 거 없었어?"
"이상한 거요?"
" 어 뭐 좀 미스터리한 그런 거.
뭐 우리가 못 보는 걸 본다거나
뭐 어떤 염력이나 초능력 같은 게 있다거나."
"이젠 하다 하다 초능력 까지 나온 거예요?"
" 그러면 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냐?
생방송 중인데 말이야.
이런 적이 예전에도 있었나?"
" 방송 중에 카메라 켜졌는지 모르고
지나간 애들은 있었어도 이런 건 처음이에요.
그리고 그건 다 신입 때나 하는 짓이라고요."
" 그럼 왜 그랬을까?
참 신기한 일이네."
" 저도 어제 식겁 했다니까요.
걔가 좀 특이한 짓을 한 번씩 해서 그렇지
그 정도로 미친 짓 할 애는 아니거든요.
아니, 이 새끼 설마 그걸로 이슈되서
다른 방송국에 스카우트되려고 꾸민 짓 아니에요?"
" 다들 미쳐 돌아가는구나.
너희 집 살 때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새벽에 출근할 때도 많은데 하도 집이 멀기에
택시비 아끼라고 방 하나 줬죠.
워낙 싹싹해서 저희 부모님들도 다 좋아하시고
제 여동생 귀남이한테 시집보낸다고 까지 했었어요."
" 혹시 뭐 약 같은 거 했나?"
" 예? 설마요. 너무 가셨다."
" 아니 뭐 요즘 그런 거 많이 한다고 하니까."
"그건 아닐거에요. 돈 아까워서 담배도 안 피는 놈인데."
" 그래? 좀 깊이 생각해봐.
분명히 뭔가 있을 거야. "
"글쎄요.
사실 혼잣말을 좀 많이 하긴 하는데."
" 혼잣말은 나도 많이해.
너도 많이 구시렁거리잖아."
" 아니 뭘 또 제가 구시렁거렸다고 그러세요."
" 아니 그런 거 말고 요즘 뭐 특이한 거 없었냐고?
이거 행여 그럴 리 없겠지만
정치적으로 엮여 있는 거면 사단 난다."
" 워낙 특이한 놈이라
한번은 사고 칠 줄 알았어도
이런 일을 계획적으로 할 만큼
천방지축은 아니에요. "
" 그러니깐 말이야.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 하는 놈인데 말이야.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아 맞다!"
"어 뭔데?"
"촉이 좋아요 그 녀석"
" 촉? 무슨 촉?"
" 귀남이 입사하고 지금까지
회식 사다리 타기해서
걸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 흔한 커피 한잔 산 적이 없어요."
어이없이 쳐다보는 윤 차장.
" 그게 촉이 좋은 거냐?
지금 장난 칠 때냐?
네 후배 목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어마어마한 거죠.
4년 동안 한 번도 안 걸린 거면
카드 뽑기를 해도 제비뽑기를 해도
단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어요.
심지어 가위 바위 보를 해도."
"됐다야 나가봐. 생각할 시간 좀 갖게"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춘 태현
" 아 맞다."
" 뭐? 기억나는 거 있어?"
" 뭐 특별한 건 아닌데. 귀남이 그 자식
좀 특이한 이력이 있긴 해요.
사실 이것도 뭐 우연인 것 같기도 하지만."
" 특이한 이력? 뭔데?"
"그 지은 작가 아시죠?"
" 지은 작가? 누구지?"
" 아 왜 있잖아요.
그 아이돌 나와서 소개팅 하는 프로그램이요.
거기 메인 작가로 있는 애.
갑자기 프로그램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 아 송지은이?
지은 작가가 왜?"
" 지은이 돈 떼먹고 튄 남자친구 찾아 줬잖아요. 귀남이가."
" 돈을 떼먹었어?
지은 작가 남자 친구가?
그걸 귀남이가 잡아 줬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어떻게 찾아 줬는데?"
" 지은이 그 짠돌이가 차곡차곡 모아 둔 적금이랑
돼지 저금통까지 털어서 튄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6개월이 지나도 못 찾고 있다가
귀남이가 알려줘서 찾았잖아요."
" 귀남이가 전에 알던 사람이었나?"
다시 되돌아와서 윤 차장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은 태현.
누가 들을까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말한다.
" 아뇨.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데요."
" 그런데 어떻게 찾아 줘?"
" 지은이가 그 놈 잡으려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주변 친구들도 다 수소문하고
사설로 사람 찾아 주는 것 까지 의뢰했는데 못 찾았어요."
"그런데?"
"지은이가 귀남이 대학교 동기거든요.
맨날 지은이가 그 일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으니까
귀남이가 그거 보더니 자기가 해결 해주겠다고 나섰던 거예요. "
" 직접 찾으러 나선 거야?"
" 아뇨.
무슨 바빠 죽겠는데
친구 남친을 찾으러 어떻게 가요."
"그럼 어떻게 했는데?"
" 그냥 다짜고짜 사진 달라고."
" 사진? 사진으로 뭐하게? 그 남자 모른다면서?"
아는 경찰이 있었던 거 아냐?"
" 귀남이 그런 인맥 하나도 없어요."
" 그럼 뭐야?"
" 지은이가 처음엔 쪽팔려서 싫다고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으로
사진을 보여 준거에요. 그랬더니."
" 그랬더니?"
"그 남자 사진을 계속 보기만 하는 거예요."
" 그냥 보기만 했다고?"
" 네. 한참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딱 이랬어요."
" 뭐라고 했는데?"
" 물비린내……."
" 물비린내??
그게 무슨 소리야?
사진만 보고 물비린내가 난다니."
태현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귀남을 흉내 냈다.
" 물비린내……
또…… 구린 돈 냄새……
그리곤 손을 막 긁어 대는 거예요."
뭐에 홀린 사람처럼"
" 야 진짜야? 이거 구라지?"
" 아니 지금 이 상황에 제가 장난치겠어요?
손을 막 파르르 떨고 긁으면서 동쪽으로 가 봐……
딱 이러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거예요."
침을 삼키고 의자를 바짝 당겨 태현 쪽으로 가는 윤 차장.
" 야 이거 나 소름 돋은 거 봐라."
" 동쪽에 물비린내면 뭐겠어요?"
" 바다? 동해?"
" 돈 구린내는 왜 나겠어요?"
" 설마?
태현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 이그젝틀리!
카지노에서 딱 걸렸잖아요."
" 야 그거 신통하다.
그래도 뭐 완전히 맞춘 건 아니네.
그 카지노는 산골짜기에 있어.
바다 쪽 아냐."
" 카지노에서 딱 발견했는데 이놈이 튀었어요.
완전히 잡힌 건 망상 해수욕장 이었데요."
" ……."
" 그러니까요. 하여튼 신기 방기한 놈이라니까요.
지은이가 그러는데 대학교 때부터 유명했데요.
교수님들 사주도 봐주고 여자애들 손금도 봐주고."
" 손금은 야 나도 좀 볼 줄 알아."
" 차원이 달랐데요.
진짜 잘 맞춘대요. "
" 야. 그럼 진짜 그 말이 맞는 건가……
신 후보자가 왕관을 쓰고 있었다는 게……. "
윤 차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 네? 왕관이요?"
" 아. 아냐."
윤 차장은 어제 귀남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앞뒤가 맞아 떨어졌다.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들어왔고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귀남이었다.
" 어어 들어와."
태현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쌩하고 나갔다.
"태현 선배 아직 화 안 풀렸어요?"
" 어……어…… 그래."
"차장님 왜 그러세요?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혹시 제 얘기 하고 있었어요?"
윤 차장은 귀남의 신기하고 소름끼치는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 차장님.
저 어떻게 됐어요?"
" 뭐가?"
" 저 잘리나요? "
" 잘리긴……
취업규칙에 없어.
생방송 중에 헛소리해서 해고당하는 건."
" 잘 처리가 된 건가요?
엄청 쫄고 있었는데……."
" 근데 처벌은 불가피하다.
사람들 눈도 있고 말이야.
네가 해명만 해줘도 될 것 같은데
그 해명이 먹힐 것 같진 않고
암튼 감봉 정도로 끝날 것 같아."
" 알겠습니다."
" 기다려 봐.
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생각이 많은 것 같으니까.
너 그런데 말이야. 너 정말 뭐가 보이는 거냐?
어제 술 취해서 장난으로 한 말 아니었어?"
"네?"
" 네가 보인다는 거 말이야.
너 지은 작가 돈 떼먹고 튄 남자도 찾아 줬다며?"
" 그 얘기 하고 있었던 거예요?
뭐 제가 찾아 줬다 하기보다
어디 있는지 알려준 거죠.
지은이가 직접 가서 데려왔어요."
" 너 정말이었구나.
우리가 안 보이는 게 넌 보이는구나.
미래 같은 거 말이야 .
다가올 일들이……."
"뭐 그냥 거창한 거 아니에요.
약간 미래를 바라보는 선견지명이 있다고나 할까?"
" 선견지명은 무슨.
뭐 몇 개 맞아 떨어진걸 가지고.
그러면 언제부터 그랬던 거냐?
뭐 어떤 계기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에겐 보이는 거야?"
" 차장님도 가끔씩 뭔가 느껴질 때가 있지 않아요?"
" 뭐 그럴 때가 있긴 하지.
섬뜩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고"
그래도 뭐 눈에 안보이니까."
"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런 것들이 보인다는 게……."
윤 차장은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정황상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