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판타지/SF
이스트 포인트
작가 : 필스너
작품등록일 : 2019.9.3

* 美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와 비교해도 생도들의 자질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자신의 학교를 '이스트 포인트'라고 부르기도 하였음. 


<집필 의도>

 1653년, 무역선을 타고 네덜란드를 떠나 태평양을 거쳐 일본의 나가사키로 향하던 젊은 선원 하멜은, 뜻하지 않게 제주도 근처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선원들과 함께 강제로 조선에 억류됩니다.
이후 하멜은 조선에서 보낸 13년 동안의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하였고, 극적으로 조선을 탈출하여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그 기록을 토대로 소위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출간하는데,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 이후 미지의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호기심을 반영하듯, 당시 '하멜 표류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하멜 표류기’를 모티브로, 동서양의 실제 인물과 역사를 소재로 삼아, ‘이스트 포인트’라는 사관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우정,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판타지 세상 안에서 그려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발명품이 포함된 '르네상스 시대'의 눈부신 발전과, 동방을 정복하겠다는 '대항해 시대'의 거친 야망이 서양의 소재라면,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흥기, 병자호란의 발발과 이후 전개된 효종의 북벌준비가 동양의 소재입니다.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이에 동화되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겸손한 자세도 중요한 주제로 잡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현 세자와 세자빈의 높은 뜻도 기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에,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나오는 ‘최후의 만찬’과 같은 어떤 수수께끼를 담아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나오는 비행기나 낙하산도 판타지 안에 넣었습니다.
 고구려의 웅대한 기상이 서려있는 만주 벌판까지 이야기의 무대를 넓혔으며,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넘보려는 일본의 탐욕에도 일침을 가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은 네덜란드의 왕자 하멜과 조선의 공주 하이란이 결혼을 하는 로맨스로 결말을 맺습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양국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기원합니다.


 
<9화>
작성일 : 19-10-14 12:06     조회 : 197     추천 : 0     분량 : 2252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부 줄거리

 

  콕센(Coxen) 대륙을 제패하기 위해 네론(Nehron) 왕국의 국왕 마크(Mark)1세는 영토확장과 식민지정복에 열을 올렸지만, 가장 강력한 경쟁국인 앵글(Angle) 왕국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마크 1세의 손자 하멜이 태어나던 날, 아주 밝은 유성이 콕센의 하늘을 지나쳐 멀리 동쪽으로 날아가자, 천문학자 레오(Leo)는 그 별이 바로 예언에 나오는 절대힘의 원천 ‘사자의 심장’이라고 단언한다. 마크 1세의 외아들인 황태자 요한슨은 아버지를 대신해 유성을 차지하려 동방으로 원정을 떠나지만, 2년 후 얀스라는 과학자만이 가까스로 돌아와 원정대가 폭풍우와 해적을 만나 전멸했다는 소식만을 전한다.

 

  그로부터 18년 뒤, 청년으로 성장한 왕자 하멜은 미지의 동방에서 '가장 위대한 자'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자의 심장’을 차지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레오 박사의 수제자인 얀스와 함께 아버지처럼 원정을 감행한다.

 

  하멜을 태운 스페르(Sperr)호는 지구의 정반대 편 호렌(Horen) 대륙에 거의 도착하지만, 갑자기 풍랑을 만나 대부분의 대원이 죽고 하멜과 얀스만이 낯선 곳에 표류한다. 호렌의 동쪽 끝 코르(Corr)왕국의 코지(Cozee)섬에 표류한 하멜과 얀스는, 주변 정찰에 나서다 원주민의 공격을 받아 얀스는 붙잡히고, 하멜은 계속 따라 다니던 흰 사슴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다. 

  그 사슴이 인도하는 어떤 동굴로 들어간 하멜은 갤라(Gaela)산 지하에 있는 환상적인 신선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곳의 왕으로부터 아버지인 요한슨이 18년 전 심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로 이곳에 표류했었고, 결국은 숨을 거둬 자기가 타고 온 사슴으로 환생했다는 얘기를 들은 하멜은, 눈물로써 아버지 사슴과 해후를 한다. 절대힘을 가진 유성을 찾아 그 힘으로 아버지를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하며, 하멜은 사슴의 목에 걸려 있는 아버지의 반지를 가지고 당당하게 지상으로 나아간다.

 

  원주민의 성에서 얀스는 18년 전 함께 동방원정에 나섰던 옛 친구 파르코를 만나는데, 코르의 해군제독이 된 그는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이방인이 표류했다는 보고를 받고 수도인 한즈(Hanz)에서 내려온 것이다.

 

  파르코가 얀스에게 지난 일과 현재 코르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자, 하멜과 얀스는 유성을 찾기도 전에 우선 코르를 탈출해야 함을 깨닫는다. 한편 하멜은 원주민의 총독 완저의 딸 하이란(Hiran)을 만나 그녀와 가까워진다.

 

  18년 전 ‘7일 전쟁’의 패배로 퓨그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코르는,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비밀유지를 위해 이방인을 국외로 내보내지 않는다. 하멜과 얀스는 현재 호렌에서 가장 위대한 자인 퓨그의 황제 호크런의 손에 '사자의 심장'이 있을 게 분명하다고 확신하며, 퓨그의 수도 디퍼슨(Deeperson)으로 갈 방법을 찾는다.

 

  파르코가 얀스와 하멜을 한즈로 압송하려 코지섬을 떠나는 과정에서, 무예가 뛰어난 하이란은 사관학교인 이스트 포인트에 들어가 호크런에게 복수할 기회를 잡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남장을 하여 몰래 배를 탔다가 하멜에게 들킨다. 얀스는 하이란의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코르를 탈출할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고, 하이란은 이스트 포인트에 들어가 훌륭한 장교가 되면 매년 정기사신단에 끼어 디퍼슨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한즈로 압송되어 국왕 휘레스(Phoiress)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코르의 백성이 되라는 의미로 주술사가 이마에 새기는 문신이 하멜에게만 제대로 찍히지 않자, 군부의 최고 실권자인 대장군 에반은 하멜이 부정한 요물이라며 당장 죽이자고 건의하지만, 왕은 아직 어리니 일단 두고 보자며 파르코가 책임지고 이방인을 관리하라고 명한다.

 

  하멜은 한즈의 성곽과 이스트 포인트 영내를 관할하는 경비대에서 일반 병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얀스는 무기공장에 배속되어 더욱 발전된 무기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 빨리 퓨그와 코르 간에 전면전이 일어나야 그 혼란 중에 코르를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얀스는 코르군이 생각지도 못했던 첨단무기들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한편 하이란은 파르코 장군의 수하가 되어 무술을 가다듬는데 여념이 없다.

  

  국왕은 요절한 브리젠(Brizenn) 형님 부부의 참배를 위해 크란산 전몰장병의 묘지에 들르는데, 추도식이 끝난 후 에반은 난데없이 사냥대회를 개최하여 국왕과 왕세자 베니안의 참석을 종용한다.

 

  에반의 아들 에보크는 엄청난 무술실력을 뽐내며 좌중을 압도하고, 에반은 그런 아들을 치켜세우며 에보크와 대적할 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한다. 이때 파르코의 호위무사로 변장한 하이란이 나서고, 하이란은 에반과 에보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뛰어난 무예와 재치로 왕을 감동시킨다. 

  남자답지 않은 왜소한 몸으로 훌륭한 성과를 올린 하이란에게 왕이 상을 내리겠다며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자, 하이란은 남장을 벗고 완저(Wanzer) 총독의 딸임을 솔직히 밝히며 이스트 포인트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이스트 포인트 출신인 에반은, 학교의 전통을 깨는 여자의 입학은 불가하다며 반발하지만, 결국 자신의 건의가 묵살되자, 분노하여 다음 날 사냥 중에 왕과 왕자를 제거하려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이번에는 얀스와 하멜이 에반의 음모를 눈치채고, 치명적인 위기에서도 결국 왕과 왕자의 목숨을 구한다.

  이에 크게 감동한 왕은 이방인의 소원도 들어주어, 하멜은 하이란처럼 이스트 포인트의 입학을 허락받고, 얀스는 이스트 포인트의 교수직에 오른다.

 

 

                   에피소드 1. 하멜과 사자의 심장

 

                                 2부

 

  9. 대단한 신입생

 

  하이란은 코지에서부터 어머니가 보낸 뜻밖의 소포를 받았다. 

  보자기를 풀어보니 멋진 옷이 있었다. 빨강, 파랑이 섞인 상의와 흰색의 바지였다. 어깨와 팔에는 노란색 실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여 만든 화려한 장식과 술도 달려있었다. 길고 고운 흰색 깃털이 꽂혀 있는 모자도 함께 배달되었다.

  바로 이스트 포인트의 제복이었다. 

  딸이 입학을 허락받았다는 소식에 완저(Wanzer)는 기뻐서 손수 제복을 만들어 보낸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감동한 하이란은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하이란은 하멜을 만나서 제복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빨강, 파랑, 하양의 삼색은 이스트 포인트를 상징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하멜의 얼굴이 갑자기 상기되기 시작했다. 하이란이 이유를 물으니 이 세 가지 색깔은 네론(Nehron) 왕국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고국에 대한 향수만 자극해서 미안하다고 하이란이 말했다. 하멜은 괜찮다고 하면서 하이란의 어머니가 이처럼 가슴이 따뜻한 분임을 몰랐다고 덕담을 보내줬다.

 

  하지만 속으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입학은 허락받았지만 언제 코르를 탈출할 것이며, 또 언제 돌아갈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마음은 더 심난했다.

  하멜은 지금껏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 사랑조차 받은 적 없이 유모의 손에서 자랐었다. 그런 하멜에게 하이란이 보여준 선물은 부모의 얼굴을 모르고 자란 한을 더욱 가슴 깊이 사무치게 했다. 그럴수록 '사자의 심장'을 빨리 찾아 네론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의 묘소에 꽃 한 송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 빨강, 파랑, 하양은 태극기의 색이면서,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제복의 기본 색깔이기도 함. 또한 하멜의 고국, 네덜란드의 국기인 삼색기의 색깔도 이와 동일함.

 

 

  3월 초

  **‘뜨거운 가슴엔 조국의 미래를’

  입학식이 열리는 날, 교정으로 들어가는 정문에 걸린 구호가 하이란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가슴이 너무 뿌듯해. 여기 들어오면 모두 애국자가 될 수밖에 없겠어. 두고 봐, 내가 우리 코르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 중의 주역이 될 거야.” 하이란이 입술을 굳게 물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넌 정말 잘 해낼 거야. 나는 그걸 믿어.” 하멜이 웃으며 말했다.

  “하멜, 전부터 너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나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넌 도대체 여길 왜 들어오겠다고 한 거니? 생도가 되면 폐하께서 널 사신단에 넣어 디퍼슨에 보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너 혹시... 나 좋아하니?” 하이란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하자 하멜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어? 누, 누가 널 좋아한다고 그래? 그냥 경비대에서 졸개로 사는 것보다는, 생도가 되어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더 멋지니까 그런 거지..." 하멜이 말을 더듬었다.

  "에이, 솔직히 말해. 너 나 좋아하지?" 하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하이란이 더 짓궂게 말했다.

  "아, 아니라니깐. 어떤 남자가 너처럼 막무가내인 여자를 좋아하겠냐? 뭐... 이번 신입생 중에 진짜로 예쁜 샤니라는 생도가 있다는데, 혹시 걔를 좋아하면 또 몰라도..." 그래도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하멜은,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던졌다.

  "뭐야? 누구??!!" 하이란은 얼굴이 갑자기 변하며 하멜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하멜은 '아차!'하는 탄식과 함께 도망가듯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 반반이? 노랑머리? 너희 같이 천한 애들이 여긴 웬일이냐?” 저쯤에서 말을 타고 오던 에보크가 하이란과 하멜을 보자 비웃으며 말을 던졌다. 하지만 둘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얼굴 좀 반반하니까 계집도 이스트 포인트엘 다 들어오질 않나... 하다못해 노랑머리도 여길 다니겠다고 난리를 치지 않나... 하여간 웃기는 세상이야...” 에보크가 조롱을 하자 그를 뒤따르는 친구 몇몇이 같이 웃었다.

  “야! 너, 말 조심해. 나를 여기 다니도록 허락하신 분은 바로 폐하셔. 하멜도 그렇고. 우리의 입학을 비웃는다는 건 폐하를 비웃는 거랑 똑같은 거야. 너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말하다간 네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그리고 신입생이 건방지게 말을 타고 교정에 들어오니? 넌 입학도 하기 전에 이스트 포인트의 명예를 더럽힐 셈이냐?” 하이란이 에보크를 질책하며 또박또박 따져 물었다.

  “이스트 포인트의 명예? 하하, 하이란, 네가 뭘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우리 가문은 조상 대대로 이스트 포인트 출신이다. 우리 아버지는 이스트 포인트 수석 졸업과 함께 역대 최연소로 장군과 대장군에 올라 그 명예를 드높이신 분이지. 너 그걸 아직도 몰랐니?” 에보크가 거만을 떨며 말했다.

  “그런 집안 출신인데 넌 왜 매사에 태도가 그 모양인지 모르겠네? 너네 조상 망신시키지 않으려면 앞으로 아주 많이 말조심 행동조심하고 다녀야겠다.” 하이란은 비웃는 말을 툭 던지더니 앞으로 나아가 하멜의 팔짱을 확 끼었다. 그러자 하멜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저 계집을 그냥...” 에보크가 이를 부드득 갈며 말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주위의 친구들이 다가와, 하이란이 천한 출신이니까 너무 성내지 말라며 에보크를 말렸다.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슬로건 중에서 발췌함.

 

  이스트 포인트의 일과는 늘 시계처럼 정확히 짜여있었다.

  오전에는 주로 이론 수업을 들었다. 현재 코르(Corr)가 처한 정세와 역사, 외교적인 문제를 배울 때는 다른 생도보다 하멜의 관심이 더 컸다. 이곳에서 새로 태어난 것이라고 자신을 정의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퓨그(Fuug) 제국의 언어를 배우는 수업도 있었는데 하멜에게는 이 시간이 제일 어려웠다. 코르의 말은 파르코의 마법 덕분에 그냥 하게 되었지만, 퓨그어마저 거저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렵다고 중간에 포기할 하멜은 아니었다. '사자의 심장'을 얻기 위해서 언젠가는 호크런과 대적해야 할 것을 알고 있기에, 낮 동안에는 죽기 살기로 공부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하이란은 다른 생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퓨그어를 빨리 배웠다. 마치 그곳에서 오래 살다가 온 사람처럼 발음도 정확했고 어휘도 풍부했다.

 

  에보크는 퓨그어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른 과목은 그렇게 잘하는 에보크였지만 이 시간만 되면 딴전을 피웠다. 자신이 앞장서서 퓨그를 무찌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오후에는 무술을 연마하고 체육활동을 했다. 누가 봐도 에보크와 하이란의 무예는 다른 생도들을 압도했다. 칼싸움, 활쏘기, 말타기, 맨손무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이 둘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둘만의 대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이란과 함께 입학하여 남자 생도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 또 다른 미녀 신입생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샤니(Shanny)였다. 3학년 생도 중에서 늘 수석을 차지하는 ***샤키(Sharky)가 친오빠였다. 

  이 남매의 아버지는 이스트 포인트 출신은 아니지만 충성심이 강하여 전방 근무를 자처한 해군 대령 블리온(Blion)이었다.

 

  둘은 어려서부터 코르와 퓨그의 국경인(=코르와 맨츠 벌판의 경계이기도 함) ****두크린(Duckreen)강에서 배를 타면서 자랐고, 아버지를 닮아서 무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아직도 두크린강 하구의 유스토(Usto)시에 위치한 국경 수비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남매는 더 큰 뜻을 품고 한즈(Hanz)로 올라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며 살았다. 

  샤키가 먼저 이스트 포인트에 입학해서 우등생이 되었고, 이번에는 샤니도 하이란 덕분에 여자이지만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본 것이었다.

 

 

  ***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의 남매 캐릭터에서 인용함.

 

  ****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압록강

 

  

  다음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하멜은 갤라(Gaela)산 지하 세계에서 보았던 광경이 계속 떠올랐다. 학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다가 땅에 내려오면서 사람으로 변했던 신선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처럼 한 번 날아보겠다는 상상으로 하멜의 머리는 꽉 차있었다.

 

  에보크와 하이란이 저녁에도 무술을 가다듬기에 여념이 없을 때, 하멜은 기숙사에 처박혀 종이를 학 모양으로 접어 날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래가지고는 내년에 제대로 2학년으로 진급이나 하겠냐며 다른 생도들이 걱정을 했지만, 하멜은 매번 다른 모양으로 학을 접어 날려보았고, 그때마다 종이학이 활강한 모습과 거리를 기록하며 날개와 몸통의 부분을 계속 변형시켰다. 

  갈수록 하멜이 만드는 종이학의 크기도 커졌고 그 비행거리도 계속 늘어났다.

  

  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얀스(Jans)의 소원도 들어주었다. 그는 이스트 포인트의 교수직을 희망했고, 우선은 ‘콕센(Coxen) 세계의 과학과 무기들’이란 제목의 강의로 한 학기를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별도의 연구실을 제공받은 얀스는 코르군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신무기 개발에 더욱 열을 올렸다.

 

  하멜이 얀스와 단 둘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이제 얀스의 연구실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멜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는 것처럼 동료들에게 말하고는, 가끔 혼자 얀스에게 들러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했다.

 

  하멜은 우선 얀스가 어떤 발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얀스는 *****사정거리를 확실히 증가시킬 수 있는 대포와 포탄, 가벼워서 휴대하기도 간편하고 화살도 더 멀리 나가는 석궁의 설계도면을 하멜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하멜은 그다지 성에 차지 않아, 결국은 향기섬(Balm island) 근처를 날아다니던 학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얀스는 자신도 스승인 레오 박사와 함께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었다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이 딸려 빠르게 날개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도 말했다.

 

  하멜은 왜 굳이 날개를 움직여야 하느냐며 반문했다. 

  하멜은 자기가 접은 종이학을 보여주며 이를 가볍게 날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평범하게 접는 것과의 차이를 설명하고는, 만약 종이학을 아주 크게 만들어 사람을 밑에 태우면 어떻겠냐고 얀스에게 물었다.

  얀스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하멜이 그동안 기록한 것을 보여주며, 매 번 다르게 날개를 만들었을 때 비행하는 양상도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키자 태도가 달라졌다.

  얀스는 왕자가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하멜은 갤라산 얘기는 꺼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계속 향기섬의 학만 팔았다.

 

 

  ***** 모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나옴.

 ​

 

  ​4월 초,

  오늘은 전쟁사 담당 교수인 나리프(Nariff) 장군이 ‘7일 전쟁의 개시’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는 날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강의는 ‘문서 보관실’ 옆에 위치하여 계단식으로 지어진 반원형의 노천극장에서 해가 진 뒤에 시작하였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에보크는 늘 함께 다니는 무리를 이끌고 신나게 떠들며 뒤에 자리를 잡았고, 하멜과 하이란은 맨 앞줄에 조용히 앉아서 교수를 기다렸다.

  

  19년 전 겨울, 호크런이 친히 매머드 군단을 이끌고 얼어붙은 두크린(Duckreen)강을 건너 코르 왕국의 정벌에 나선 사건이 ‘7일 전쟁’이었다.

  당시 국왕이던 슈젠타(Pseuzenta)는 결사 항전을 하자는 군부의 의견도 무시한 채 퓨그에게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코르는 역사상 최초로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겪었다. 그리고 패전의 대가는 말할 수 없이 가혹했다.

  슈젠타의 친 아들인 브리젠(Brizenn) 왕세자와 휘레스(Phoiress) 왕자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백성이 디퍼슨(Deeperson)에 볼모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노예로 살다가 기아와 추위에 죽어간 백성 또한 부지기수였다.

  이후 코르는 퓨그가 정한 숫자 이상의 정규군을 가질 수 없게 되었고, 1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고문단에게 핵심 군사시설을 모두 개방해, 군사력 증강을 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시켜야만 했다.

  

  이 전쟁사 강의는 당시에 코르가 왜 졌으며, 퓨그는 왜 강했으며, 코르는 앞으로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겸한 시간이었다.

  나리프 장군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부관들은 당시 전쟁터에서 정찰병으로 활약했던 송골매 몇 마리를 데리고 들어와 강의를 준비했다.

  연단 위에 놓여진 향로에 불을 붙이니 은은한 향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상자를 열고 흰 천을 펼쳐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극장의 주변을 밝히던 횃불은 대부분 끄고 연단 주변에는 아주 작은 초만 최소한으로 켜놓아, 생도들이 앉아 있는 계단식 청중석은 갑자기 짙은 어둠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나리프는 자못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극장으로 들어왔다. 지팡이를 짚은 늙은 주술사가 그와 함께 있었다.

  나리프가 눈치를 주자 주술사는 주머니에서 약초가루를 꺼내어 향불 위에 천천히 뿌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계속 주문을 외웠다. 그 사이에 나리프는 탁자 위에 놓인 ‘전쟁 일지’를 펼쳐 지난 '7일 전쟁'이 터졌던 날을 찾아 생도들에게 이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키겠다고 말했다.

  향기섬(Balm island)에서만 자라는 신비한 약초의 꽃과 잎을 말려 주문과 함께 향에 뿌리면, 당시에 정찰을 담당했던 송골매들의 지난 기억을 깨울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곧 강한 향이 극장 안에 진동했고 공중으로도 퍼져나갔다. 송골매들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탁자 위에서 잠시 비틀거리더니 전쟁 일지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가리를 상하좌우로 총총 바꿔가며 일지에 적힌 글이나 그림을 읽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큰 날개를 몇 번 펼치며 ‘끼약!’하는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송골매의 몸에서도 많은 깃털이 빠지며 사방으로 날렸다. 얼마간 이러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주술사의 주문은 계속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디서 반딧불이가 조금씩 날아오더니 시간이 갈수록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향기에 이끌린 반딧불이는 연단 위의 탁자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고, 전쟁 일지에서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송골매의 깃털은 천천히 공중을 떠다니기 시작했고 반딧불이는 허공에 움직이는 영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반딧불이 하나는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수십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모두 모이니 눈 앞에 잡힐 만큼 생생한 화면이 생겼다.

  코르와 퓨그의 국경인 두크린강 하류의 지형이 그려졌고 병력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나리프가 전쟁 일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반딧불이가 만드는 영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했다. 생도들은 탄성을 지르며 일어나 반딧불이를 한 번 만져보려 팔을 뻗었으나 손에 닿지는 않았다.

 

  나리프는 코르군 소속의 정찰 송골매가 본 것만 재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병력이 없던 중상류의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했다. 영상의 움직임에 따라 나리프는 개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강의를 시작하였다.

  

  두크린강의 중상류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적의 대군이 동시에 이동하기는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코르는 하류에 여러 성을 쌓아 침략에 대비하고 있었고, 적의 주력군과 이곳에서 일전을 벌이는 듯했다. 하지만 하류에 나타난 적은 생각보다 수가 아주 적었다. 겉으로만 대군인 것처럼 위장을 한 것이었다.

  영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퓨그의 대군과 매머드는 갑자기 강의 중류 쪽에서 나타났고, 이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으며 코르의 본토 깊숙이 진격했다.

 

  여기서 나리프는 생도들에게 두 가지 의문점을 제시했다.

  첫째, 두크린강 하류에 집결한 아군 병력의 규모와 이동 경로를 적은 어떻게 알고 먼저 움직였을까?

  둘째, 전쟁이 끝나고 퓨그군이 모두 물러간 다음에 코르군이 강의 중상류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매머드가 강을 건넌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적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매머드를 이끌로 넘어왔단 말인가?

 

  아직 두 번째의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첫 번째에 대한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나리프는 힘주어 말했다.

  코르에 미리 잠입한 적의 첩자가, 정찰 송골매를 날려 아군의 상황을 몰래 보고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의 감찰단은 지난 십수 년 간 그 첩자를 색출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잡지는 못했다.

  나리프는 이런 이유로 군의 기강확립을 위한 감찰을 지금도 계속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모든 군이 에반 대장군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또다시 이런 첩자에 의해 우리 코르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듣고 있던 에보크는 당연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몇몇 생도가 따라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좀 거북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때 모든 남자 생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샤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어려서 두크린강 근처에서 살아 그쪽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머드가 건널 만큼 큰 다리나 평탄한 지형이 중류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다는 것도 불가능할 테고요. 제 생각엔 퓨그군이, 힘들어도 강의 발원지이자 가장 상류인 *화노블(Farnoble)산 자락을 넘었을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 같습니다.” 논리정연하게 샤니가 이야기를 하자 그 모습에 반한 남학생들은 손뼉을 치거나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나리프는 매머드가 험준하고도 대부분이 눈에 파묻힌 화노블산을 넘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이 꽁꽁 얼었으니 대군이라 하여도 중류 정도면 충분히 건너지 않았을까요? 땅도 얼었으니 발자국이 남지 않았고 이후에 다시 눈이 내려서 모든 걸 덮었으니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만약 그게 아니면 상류의 폭이 좁은 협곡을 골라서 다리를 만든 다음, 퓨그군이 새끼 매머드를 데리고 그 다리를 건넌 후에, 우리 진영에서 호크런이 마법을 부려 어른 매머드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에보크가 장난조로 말하자 주위의 생도 몇이 낄낄거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리프가 에보크 생도는 유머도 풍부하다며 오히려 칭찬을 했다. 다른 생도들은 이런 나리프의 태도에 어이없어 했지만, 나리프는 개의치 않았다.

  

  “꼭 중류라는 결론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교수님? 달빛이 없는 밤에 거대한 뗏목에 매머드를 실어 일단 하류를 건넌 다음, 아군에게 들키지 않게 강둑 밑을 따라 중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멜은 진지하게 질문을 했으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보크의 비웃음이 먼저 들렸다.

  “하하, 이방인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서기는... 당시에 적은 7일 만에 한즈를 함락시킬 만큼 전격전을 펼쳤는데, 걔네들이 강 하류에서 한가하게 뗏목이나 만들고 앉아있었겠니?” 에보크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자, 하멜이 “뭐? 이방인 주제?!”라고 응수했지만 이미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때 하이란이 불쑥 손을 들어 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물론 첩자가 기밀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혹시 아군이 모르는 정찰장비가 적에게 있지는 않았을까요, 교수님?”

  “정찰장비? 아군이 성 주변에 정찰견을 풀고 하늘에는 송골매와 통신비둘기를 날려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우리의 동태를 적이 어떻게 알아요?” 질문하는 하이란에게 오히려 나리프가 따지듯 되물었다.

  “뭐... 적 진영에서 열기구 같은 것을 아주 높게 띄워 정찰을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나리프의 주장에 반박하려고 말은 꺼냈지만,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아 하이란은 자신 없게 말했다.

  

  “열기구? 거 요즘 파르코 장군과 얀스 교수를 비롯하여 해군들이 브로(Bro)강 근처에서 사람을 실을 수 있는 연을 띄운다는 둥, 열기구를 시험한다는 둥, 헛짓거리를 좀 하나 본데...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래요? 그리고 '7일 전쟁'이 일어 날 당시에는 한겨울이라 강풍이 휘몰아쳐서 새들조차 날기 힘들었단 말이죠. **우리의 적인 퓨그는 강력한 기동력을 갖춘 육군과 매머드 군단의 힘으로 맨츠(Mantz)와 지안(Jiaan) 대륙을 제패한 나라입니다. 적의 수도인 디퍼슨이 맨츠 벌판의 한가운데 있는 걸 잊었나요? 우리나라 해군은 바다로 나가서 해적이나 처치하면 되는 겁니다. 퓨그에 복수를 하는데 해군이 도대체 왜 필요해? 전쟁은 뭐니뭐니해도 육군이 진격을 해서, 활을 쏘고 포를 쏘고 창을 던지고 하면서 공성전으로 적의 성을 무너뜨리고, 최종적으로 아군의 깃발을 꽂아야 끝이 나는 겁니다. 다른 이상한 방법으로 전쟁을 해보겠다고 설치는 파르코 장군 같은 사람의 얘기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이예요. 앞으로 내 수업시간에 해군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도록. 밥맛 떨어진다니깐. 전쟁 일지랑 송골매를 여기 계속 놔둘 테니까 영상을 더 보고 싶은 생도들은 남아서 계속 보도록! 부관들은 다 끝나면 정리를 잘 하게!!” 하이란의 질문에 심사가 뒤틀린 나리프는 강의를 중단하고 툴툴거리며 원형극장을 나가버렸다.

 

  에보크와 친구들은 하이란을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떤 남학생들은 샤니에게 다가가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이라고 칭찬을 했다. 자기 같으면 충분히 화노블산을 넘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하이란의 안색은 붉게 변했고,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씩씩거렸다.

  그러자 하멜이 다가와 정말 나리프 장군은 구제불능이라고 말하며 하이란을 위로했다. 그때 샤니도 다가와 하멜의 말이 맞다고 거들었다. 그러자 하멜은 샤니에게 가볍게 웃음을 던졌다. 그런 둘의 모습에 하이란은 더 울화통이 터졌다.

 

 

  * 백두산

 

  ** 청나라는 팔기군을 주축으로 한 강력한 육군의 힘으로 만주와 중원의 패권을 차지했음.

 

 

  생도 대부분은 이미 자리를 떴고, 나리프의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던 하멜, 하이란, 샤니는 그대로 극장 안에 남았다. 반딧불이는 여전히 공중을 맴돌고 있었고, 세 사람은 영상을 보며 계속 의견을 교환했지만 뚜렷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왜 대부분의 육군 교수님은 해군을 그렇게 무시하고 얕보는지 모르겠어.” 샤니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다. 아버지가 해군이라서 그런지, 겉으로 보이는 표정보다 속이 훨씬 더 상한 말투였다.

  “그게 다 자기들의 아집 때문이야.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늘 하던 방식대로만 하고 있으니... 그러다 '7일 전쟁'에서 참패를 했으면서 아직도 그걸 깨닫지 못하잖아? 답답하다, 답답해.” 하이란이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샤니?”

  그때 원형극장 위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 오빠!”

  샤니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친오빠인 샤키(Sharky)였다. 운동복 차림의 샤키는 웃으며 계단을 뛰어내려와 세 사람이 있는 맨 앞줄까지 다가왔다.

 

  “우리 오빠야. 3학년 중에서 늘 수석이지! 이쪽은 하멜이고 이쪽은 하이란. 콕센에서 온 하멜... 여장부 하이란... 오빠도 잘 알지?” 샤니가 살짝 웃으며 샤키에게 말했다.

  “샤키라고 한다. 너희 둘의 사냥 대회 무용담은 이미 많이 들었어. 이스트 포인트에 너희들 이야기가 쫙 퍼진 건 알고 있지? 아, 한 명 더 있다. 생도들이 밥맛 없어하는 아주 고귀하신 신입생이 하나 더 있잖아. 그렇지?” 샤키가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다들 잠시 웃었다.

  “예. 반갑습니다, 선배님.” 하멜이 겸손한 자세로 샤키와 악수를 했다.

  “하이란입니다.” 하이란도 다소곳한 자세로 가볍게 악수를 했다.

  

  샤키가 하멜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둥, 동생인 샤니가 철부지라 더 신경이 쓰인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하이란은 아까와는 다르게 나긋나긋한 표정을 지으며 샤니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너의 친오빠 맞아?”라고 물었다. 샤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싱글벙글한 하이란은 “오, 멋지다!”라고 말하며 킥킥거렸다.

 

  “그런데 수업은 다 끝난 것 같은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향로의 불도 아직 그대로고, 반딧불이도 계속 남아 있네?” 샤키가 물었다. 샤니는 수업시간에 있었던 얘기를 대충 꺼냈다. 그러자 샤키는 오늘이 그날이었냐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지금 3학년들이 신입생 때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회고하며, 당시에 자기가 어디서 문제를 제기했었는지 시범을 보이겠다고 말한 뒤 단상으로 올라가 지휘봉을 잡았다.

  

  샤키는 전쟁 일지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 연기를 흩뜨렸다. 그러자 반딧불이가 다시 주위를 스치고 가면서 처음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 장씩 일지를 넘겨가면서 샤키는 병력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하류에 포진한 코르군 국경수비대 3개 사단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런데 두크린강 건너 반대편에 집결한 적군은 웬일인지 아군의 움직임보다 한 발 빠르게 미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군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자 이번에는 적군의 일부만 배에 올라 강을 건너려고 하여 그쪽으로 아군이 집결하게 만들고, 대부분의 병력은 중류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은 이미 강을 건너기 전부터 아군의 이동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건 이미 나리프 장군이 말한 것과 같은데요?” 하멜은 냉정하게 질문을 던졌다. 샤키는 얘기가 아직 안 끝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아군 안에 첩자가 있어서 기밀을 적에게 전달했다고 치자. 어떻게 3개 사단의 첩자가 동시에 몰래 송골매를 날릴 수 있겠니? 공중을 보면 비둘기떼도 정신없이 날아다니지? 이때는 급박한 상황이라 아군의 정찰조류도 안전하게 무리를 지어서 행동했는데, 3개 사단에서 날린 각각의 첩보가 동시에 적에게 들어갔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이건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적이 이미 아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샤키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하이란은 "제 말이 바로 그것이예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3학년 선배들은 그 어떤 방법이 어떤 것이었다고 추측을 하거나 결론을 내렸나요?” 하멜이 차분하게 물었다. 샤키는 우선 열기구의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샤니는 “어쩜 오빠랑 하이란과 생각이 똑같을 수 있지?”라고 말하며 웃었다.

  하이란은 샤키를 보며 싱긋 웃었고, 하멜은 얼굴이 약간 굳어지며 속이 좀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리를 피해 극장의 뒤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아군 송골매가 본 것만 영상으로 재현시킬 수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여기 위에서 저 영상을 내려다보니 반딧불이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좀 달라보이네요.” 하멜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게 무슨 뜻이냐며 나머지 세 사람도 위로 올라와서 함께 영상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보는 각도가 틀려지니 반딧불이가 그리는 모양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샤키도 여기서 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잠깐! 방금 뭐가 지나갔죠?” 말없이 바라보던 하이란이 갑자기 날카롭게 말했다.

  “어? 뭐가? 난 못 봤는데?”

  “그걸 못 봤어요? 그럼 이전으로 전쟁 일지를 좀 돌려보실래요?”

  "이전으로? 어, 그래 아, 알았어...” 하이란의 성급한 재촉에 샤키는 서둘러 다시 단상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그리고 책장을 앞으로 넘겨 이제 됐냐고 하이란을 향해 소리쳤다. 하이란이 됐다는 표시를 하며 손을 가볍게 흔들자, 샤키도 기뻐하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반딧불이가 만들어 내는 영상이 갑자기 홱홱 바뀌었다.

 

  “거기! 거기를 계속 반복하세요!” 하이란은 다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충 감을 잡은 샤키는, 정리를 위해 남아있던 나리프 장군의 부관에게 책장을 좀 넘겨달라고 정중히 부탁하고는 다시 극장의 위로 올라왔다. 영문을 모르는 부관 장교는 어린 것들이 별 걸 가지고 다 귀찮게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둘기가 무리를 지어서 난다고 했죠? 저 영상이 비둘기라면 그 위로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저 그림자는 무엇일까요? 저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게 구름일 리는 없잖아요?” 하이란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로 계속 반복되는 영상에서는, 비둘기떼가 날아갈 때 그 위로 휙 하고 지나가는 희미하고 넓은 그림자가 분명히 보였다.

  "어디... 뭐가 보여?" 샤니는 계속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어... 정말 그렇네? 뭔가 순식간에 지나가긴 했어...” 유심히 바라본 하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샤키도 아래에서 볼 때는 전혀 저런 영상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7일 전쟁' 당시 아군 조류의 대부분은 정찰을 위해 주로 전쟁터를 내려다보았지 더 위쪽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겠죠. 물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요. 그러니까 스치는 저 영상이 희미했던 것이고, 극장 밑에서 관찰한 어느 누구도 여태껏 저걸 눈치채지 못했던 거예요. 휙 지나가는 저 영상은 분명 적군이 가진 어떤 첨단 정찰장비의 그림자가 분명하지 않을까요? 그것 말고 다른 가능성이 지금 있나요?” 하이란이 명쾌하게 추리를 했다.

  그러자 하멜은 요즘 자신이 얀스와 몰래 연구 중인 하늘을 날 수 있는 어떤 비행체를 퓨그가 이미 개발했었겠다는 추측을 했다. '사자의 심장'을 차지한 호크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레오 박사의 예언에 의하면 그 유성은 인간이나 사물을 공중으로 들어올릴 수 있다고 분명히 강조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여기서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들어 날린 종이학이 어떻게 활공하는지 그 속도나 궤도에 대한 지식이 훤한 하멜에게도, 저렇게 빠른 속도로 스치는 그림자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장비였길래 저렇게 빠를 수가 있지? 겨울바람을 받아 날린 큰 연이라면 그림자가 오히려 더 넓게 퍼졌을 테고...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혹시 적군의 송골매떼는 아니었을까?” 그래도 뭔가 의문이 많이 남는다는 표정으로 샤니가 말했다.

  “아니, 적의 송골매들이 다가왔다면 우리의 비둘기떼가 대번에 혼비백산하고 달아났겠지. 하지만 보다시피 비둘기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어. 그건 비둘기가 겁을 먹을 만한 천적을 본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거나, 비둘기의 비행 고도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날았다는 얘기야. 저만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어쨌든 우리 코르보다도 훨씬 앞선 적의 기술이 '7일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데 한 몫을 한 것이지, 단지 병력의 차이나 내부 첩자의 배신에 의한 게 아니었을 거야.” 하이란이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샤키와 샤니는 하이란의 명석함에 감탄을 연발했다.

 

  “선배님, 우리가 역사 재현관에서 반딧불이로 볼 수 있는 기록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7일 전쟁' 말고 혹시 다른 것도 모두 볼 수 있나요?” 하멜은 19년 전 여름에, 유성이 코르의 국경에 가까운 맨츠 벌판 어디에 떨어졌다면, 혹시 그것을 본 조류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본능적으로 물었다.

  “다른 것? 구체적으로 다른 뭐가 궁금한 건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하이란이 말했다.

  “어? 어... 그러니까... 뭐, 예를 들면 국경수비대의 정찰 일지랄까...” 어설픈 표정으로 하멜이 대충 얼버무렸다.

  "정찰 일지? 그런 건 봐서 뭐 하려고?" 샤니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기로 군사기밀에 속하는 자료는 생도들에게는 공개를 하지 않아. 우리에겐 교육용 자료만이 허락되고 그외의 비밀자료는 육군사령부의 문서보관소 담당자가 아니면 꺼내어 볼 수가 없어.” 샤키가 담담하게 말했다.

  “육군사령부의 담당자요? 그 담당자가 대체 누구인데요?” 몸이 닳은 듯 하멜이 물었고, 하이란과 샤니는 이런 모습을 보고 좀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는 몰라도 어차피 모두 에반의 수하 아니겠어? 정 궁금하다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밖에는 없겠네. 너희들의 동급생인 에보크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 밥맛 없는 에보크 말이야...” 샤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 * * 

 

  4월 중순,

  ‘콕센 세계의 과학과 무기들’이란 제목으로 얀스의 첫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이스트 포인트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된 얀스는 무척 겸손한 모습으로 생도들 앞에 섰다. 강의실 뒤에는 에반의 수하 몇 명이 들어와, 얀스가 강의 중에 혹시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을지 감시하고 있었다. 법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에반이 얀스의 강의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할 권한이 있거나 그럴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미 코르 안에서는 그 누구도 에반이 하는 일에 당당하게 항의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국왕인 휘레스조차도...    

  그런 걸 잘 알고 있는 얀스이기에, 자존심은 많이 상했지만 에반의 수하에게 당장 나가라고 언성을 높이며 강의실의 분위기를 흐리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꾹 참고 강의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얀스는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진 두루마리 몇 장을 펼쳐 칠판에 걸어놓았다.

  *얇은 천을 새의 날개처럼 넓게 펼쳐놓고 그 아래에 사람이 타고 있는 그림도 있었고, 삼각형의 큰 천 네 장을 붙여서 고깔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아래 드리워진 줄에 사람이 매달린 그림도 있었다. 나선형으로 비틀어지고 위로 향한 둥근 날개 아래에 사람이 앉아 있을 공간이 마련된 원형 기구의 그림도 있었다. 물론 얀스가 연구실에서 이미 하멜과 토론을 했던 내용이었다.

  

  콕센 세계에서 개발 중인 첨단 군사장비에 대한 강의를 하겠다고 첫 마디를 던진 얀스는, 먼저 **기다란 망원경을 여러 개 꺼내어 생도들에게 돌렸다. 자신이 만들어 전에 네론(Nehron) 왕국의 군사들에게 보급했던 것보다 배율이 훨씬 더 좋아진 신제품이라며 여러 기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생도들은 저 멀리 있는 물체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자 신기하다며 탄성을 질렀다. 얀스는 그런 기구를 지금도 많이 만들고 있다며 즐겁게 말했다.

  하지만 에보크는 망원경의 기능을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전쟁에서 칼을 휘두르다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칼이 부러지면 이걸로 대신 쓰면 되겠다며, 망원경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고 비웃었다. 얀스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여기 나선형의 날개가 있는 이 기계가 어떤 건지 짐작할 수 있는 생도가 있습니까?” 얀스가 지휘봉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하이란이 자신있게 손을 들고 말했다.

  “파르코 장군님께서 개발하신 나선형 장치는 현재 코르의 전함에도 사용되고 있어 대단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는 날개가 위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 기계는 안에 탄 사람을 수직으로 오르내리게 할 목적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몇몇 생도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보크가 가소롭다는 듯 하이란을 쳐다보며 손을 들었다.

  “제가 볼 때 저건 성 위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나 투석을 막아주는 이동용 방패 같습니다. 근데 크기만 크지 실효성은 별로 없겠는데요? 전쟁터에서 저걸 끌고 다닐 시간이 있기나 한 걸까요? 콕센에서는 저런 쓸데없는 것도 첨단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쪽은 참 웃기는 세상인가 보군요." 에보크는 얀스와 콕센 세계를 싸잡아 비웃었다. 에보크와 친한 생도들과 뒤에 있던 에반의 수하들은 배꼽을 잡으며 낄낄거렸다. 그러나 얀스는 화가 났으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하이란 생도가 말한 대로 이것은 사람을 수직으로 이동시키려는 장치입니다. 아직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선형의 날개를 힘차게 돌릴 수 있는 동력만 갖춘다면 전쟁에서 이 장치가 가져다 줄 효과는 놀랍지 않을까요?” 얀스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저 조그만 기계 어디에 어떤 동력을 단다는 말씀입니까? 사람을 수직으로 들어올리려면 차라리 송골매를 새끼 때부터 훈련시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몇십 마리를 모아다 줄을 매달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교수님은 저런 것이 가능할 거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계신 겁니까?” 에보크는 계속 비꼬면서 말했다. 하지만 얀스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것은 어떤 장치 같아 보입니까, 에보크 생도?” 이번에는 하멜의 종이학과 비슷하게 만든 장치를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얇은 천으로 만든 날개의 밑에 사람을 매달았다... 음... 콕센 사람들은 저런 걸 등에 붙이고 춤을 추나 보죠? 학처럼 큰 날개를 붙였으니 학춤을 추면 되겠군요. 전쟁터에서 학춤을 추는 게 콕센이란 세상에서는 첨단인가 보죠?” 에보크가 또 비웃었다. 얀스의 인내심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자 눈치를 챈 샤니가 번쩍 손을 들었다.

  “새가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닮은 것으로 봐서, 가벼운 천을 크게 만들어 사람을 매달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사람도 새처럼 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드신 기구 같습니다.”

  “아주 잘 맞혔습니다.” 얀스가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샤니는 으쓱해서 하이란과 하멜을 쳐다보았다. 하멜이 잘했다며 가볍게 손뼉을 쳐주자 하이란이 눈을 찡그리며 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멜은 움찔해서 이내 박수를 멈추고 죄지은 사람 마냥 시선을 피했다.

  “아니, 실험은 해보셨습니까?” 에보크는 짜증을 내며 얀스에게 물었다.

    ​

  * 글라이더, 낙하산, 헬리콥터의 가능성을 상상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

      

  ** 망원경은 하멜이 살았던 1600년대부터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갈릴레이와 케플러, 뉴턴을 거치며 그 기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음.

  

 ​ 

  얀스는 적당한 크기로 만든 모형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자신이 직접 탁자로 올라갔다. 에보크와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 탁자 위로 올라가는 예의도 모르는 교수가 어디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 수군거렸다.

  “이 정도 무게를 가진 나무조각이 사람이라고 칩시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당연히 바로 떨어지지요? 하지만 이 모형을 아주 커다랗게 만들었다는 가정 하에 날개 밑에 사람이 매달릴 공간을 만들고... 이렇게 날려보면...” 얀스은 모형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던졌다. 모형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활강을 하다가 하이란의 책상에 뚝 떨어졌다.

  “그래! 이거야! 그게 바로 이거였어!!!”

  순간 하이란이 무릎을 탁 치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다른 생도들은 깜짝 놀랐다. 물론 이유는 알지 못했다. 샤니도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하지만 노천극장의 반딧불이 영상이 생각난 하멜은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거 보십시오, 교수님. 어정쩡하게 조금 날다가 그냥 뚝 떨어지지 않습니까? 의미없는 실험은 이제 그만하시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얀스를 쳐다보며 에보크가 말했다.

  “아니요, 실제로 이것을 아주 크게 만들면 인간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겠는데요?” 하이란은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말했다.

  “네, 맞습니다. 인간도 큰 날개를 달고 바람을 잘 이용한다면 이렇게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구는 내가 '글라이더'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꿈만은 아닙니다. 조만간 여러분과 함께 글라이더를 만들어 우리도 새처럼 한 번 날아봅시다." 얀스가 경쾌하게 말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구에 감탄을 하는 생도가 많았고 중간에 박수가 나오기도 하였다. 하이란은 하멜이 날리던 종이접기가 생각나 슬쩍 한 번 쳐다보았고, 하멜은 자신이 직접 접은 종이학을 꺼내며 “글라이더!”라고 속삭이며 으쓱해했다.

  얀스는 고깔 모양으로 만든 ‘낙하산’이라는 기구에도 나무를 매달아 떨어뜨리는 실험을 보여주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하강 속도가 느려져 사람이 다치지 않을 거란 얘기도 했다.

  

  “그걸 전쟁에 어떻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거죠?” 낙하산 실험을 본 에보크가 이번에는 호기심이 생긴 듯 차분하고 냉정하게 물었다.

  “여러분, 우리가 글라이더의 성능을 계속 발전시킨다면, 언젠가는 이것을 타고 디퍼슨까지 날아가 낙하산을 펼쳐 황제가 자는 방에 침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군들, 호크런의 심장을 도려내는 상상을 한 번 해보세요. 글라이더에서 포탄을 바로 떨어뜨려 적의 매머드 군단을 박살내고 적의 전함을 침몰시키는 꿈도 꾸어보란 말입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제는 육지만 생각하지 말고 하늘과 바다를 지배할 포부를 가집시다. 퓨그가 가지지 못한 첨단 무기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지난 '7일 전쟁'에서 당한 치욕을 백 배 천 배로 갚아주자는 얘기입니다. 저 간악한 호크런이 이번에는 우리 폐하께 무릎을 꿇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꼭 봐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 감격의 순간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 봅시다!!” 얀스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일장 연설을 하자 생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다.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도 터져나왔다.

  

  뒤에서 수업을 참관하던 에반의 수하들은 얀스의 강의 내용에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마지막 연설에서 육지를 넘어선 하늘과 바다 얘기가 나오자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생도들보다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11화> 2019 / 10 / 22 200 0 9017   
9 <10화> 2019 / 10 / 14 215 0 21478   
8 <9화> 2019 / 10 / 14 198 0 22527   
7 <8화>계속... 2019 / 9 / 6 202 0 13288   
6 <8화> 2019 / 9 / 6 191 0 39876   
5 <7화> 2019 / 9 / 4 204 0 11387   
4 <5화><6화> 2019 / 9 / 4 214 0 25708   
3 <3화><4화> 2019 / 9 / 3 203 0 20275   
2 <1화><2화> 2019 / 9 / 3 211 0 19385   
1 <프롤로그> 2019 / 9 / 3 349 0 6660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