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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18
작성일 : 19-10-14 11:03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2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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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에게 또렷한 의식으로 오늘밤 조깅을 하러 오라고 전달한 존재에 대해서 마동은 심증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오늘 가서 확인을 해 볼 요량이다. 마동은 그 모습을 심상했다. 그 소리의 의식이 누군지 짐작이 갔고 어떠한 변이를 겪고 있는지 의문도 가졌다. 그 존재는 마동 안의 무의식적인 초자아를 알아차린 것이다.

  마동은 천천히 혼신의 힘과 기를 다해서 몸을 풀었다. 굳어있던 근육이 풀어지고 텐션을 가할수록 몸은 그 반응을 더욱 뇌에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낮에 마신 걸쭉한 음료 덕에 오늘 밤은 더욱 활기차고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하늘을 날아간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파트의 옥상에서 건너편 아파트의 옥상으로 뛰어서 넘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번 해볼까.

  그런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다. 실패한다면 당연히 낭패지만 성공을 한다고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파트의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뛰는 것이 영화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 역시 낭패다. 평범함에서 벗어나면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속에서 사유가 빠져버려 타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한다.

  무릎부터 서서히 스트레칭을 한 다음 발목을 풀었다. 병원의 수면실에서 나와서 마동은 완구도매점에서 사라진 사장의 빈 공간을 느끼고 만두가게에서 만두모녀의 부재가 남긴 공허도 느꼈다.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의 어떠한 부분을 지긋이 눌러주는 마음속의 작은 마음 하나가 느껴졌다.

  작은 마음이 나의 초자아일까.

  완구점의 사장, 만두모녀 그리고 이스터석상의 모습은 마동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가 되었다. 마동 속의 또 다른 자신은 그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본 것이다. 무엇일가. 병원에서 나와 천천히 그 풍경들을 스치고 지나쳐 도로가의 이스터석상을 닮은 주차요원을 찾았다. 완구점사장과 만두모녀는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그는 그 곳에 늘 있었다. 이스터석상의 모습은 전혀 변함없이 본인의 일에 충실했다. 예전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입을 계속 오물거리며 자신의 구역 안에 주차되어있는 자동차들의 주차시간을 모두 꿰고 있었고 자동차에서 시동을 거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이스터석상의 턱을 지닌 주차요원은 멋을 지니고 있었다. 외모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으나 마동의 눈에는 그 멋이 보였다.

  모자람도 없고 넘쳐남도 없는 모습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에 마동은 대단함을 느꼈다. 마동의 의식을 들여다보는 다른 존재가 있다해도 이스터석상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보는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에게 어떠한 관념도 느끼지 못했지만 마동은 달랐다. 마동은 이스터석상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두려움도 느꼈다. 마동은 잠깐 이스터석상과 눈이 마주쳤다.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는데 ‘고통의 깊이에 따라서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 얕은 고통은 깊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했다.

  이스터석상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 그 이외의 것들은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하나를 제대로 얻으려면 여러 개를 완벽하게 버려야 하고 그러기까지 이스터석상은 고통을 이겨내 왔다. 우리는 그 이념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스터석상은 매일매일 꾸준하게 변함없이 그것을 지켜내고 있었다. 반복되는 이스터석상의 행동에서는 ‘타인을 배려한 사유’가 있었다. 날이 갈수록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은 까맣게 변해갔다. 어떤 식으로든 인간은 변한다. 저러다가 숯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세상이 완전히 변하더라도 이스터석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모습을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마동은 아파트 밑으로 내려와 달빛을 받으며 몸을 풀었다. 달빛은 마동의 어떠한 심리적방해로부터 방어막 같은 역할까지 해주었다. 다리의 스트레칭을 끈기 있게 했다. 체내의 혈류가 초현실적으로 움직였다. 세포의 분자가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재배열되고 있었다. 기이했다. 빠르게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류가 팔과 다리를 통해서 흐르며 신경을 전부 긁고 지나갔다. 척추에서 전해져 오는 날렵하고 무서운 서늘함이 순식간에 머리로 올라왔다.

  마동은 주먹을 쥐어 보았다. 자신의 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기분. 헤모글로빈 수치가 오르는 것이 온몸을 통해서 느껴진다. 18, 19, 20, 30, 50.

  여름밤 대기의 산소가 폐 속으로 훅하고 엄청나게 들어옴과 동시에 혈관을 타고 산소의 운동도 빨라졌다. 마동은 다리를 풀어주고(다리를 뻗어서 근육에 텐션을 가할 수 있을 만큼) 목을 움직이고 손목을 돌리고 마지막으로 허리를 풀었다. 몸의 여러 관절을 차례차례 천천히 힘을 주어 텐션을 가했다. 근육은 제자리를 찾았고 자리에서 착실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경주마처럼 한껏 고무되었다. 마동의 근육은 낮 동안은 공벌레처럼 쪼그라들어 있다가, 달이 떠오른 지금은 양껏 기지개를 폈다. 마동은 양팔을 접어서 등 뒤로 들어 올렸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등 세모근이 올라왔다. 치골이 드러났고 광배근 역시 확연하게 모습을 보였다. 가슴은 탄탄했고 자리를 잘 잡았다. 허벅지의 근육역시 말처럼 갈라졌다.

  근육의 변이도 일어났다.

  더 이상 신기할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마동은 자신의 신체변이에 놀라고 있었다. 병원에서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의사에게 변이에 대한 이야기를 또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은 대부분 변이를 거치고 있다고 했다. 지구라는 거대한 이 별도 하나의 생물체라고 친다면 지구역시 늘 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생활하는 모든 생물은 당연히 변이를 하는 것이다.

  오후에 의사는 마동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그 속도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세대를 건너 또 세대를 지나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죠. 지구에 있는 생물체는 모두 변이를 거쳤고 여전히 변이를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생물체를 이분법으로 나뉜다면 인간과 그 이외의 생물이겠죠. 인간과 후자가 다른 점이 뭔지 아십니까. 다른 생물체의 변이는 생존에 관한 것입니다. 살기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몇 만 년을 아니, 몇 십만 년을 거쳐 변이를 했습니다. 밀림에 살고 있는 나방의 애벌레가 포식자들의 틈 속에서 살기위해 꼬리가 뱀의 얼굴을 닮게 변이를 했어요. 덕분에 포식자들은 애벌레의 꼬리를 보고 자신의 천적인 줄 알고 도망을 갑니다.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모든 생물체에 변이가 일어났는데 제가 볼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이 꽃입니다.”

  “꽃이요?” 마동은 물었다.

  “네, 특히 난초인데 다윈은 난초에 관한 연구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지상 최대의 쇼’라는 책에 아주 잘 나타나 있어요. 야생의 양동이난초는 자신의 포자를 퍼트려야 하지만 바람에 의존할 수만은 없었지요. 그래서 벌을 꾀어들게 하기 위해 냄새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 냄새에 수컷 유글로신 벌은 난초가 뿜어내는 냄새를 따라 찾아옵니다. 이 수컷 벌도 암컷 벌을 꾀려면 향수를 제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난초의 냄새물질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난초에게 와야합니다. 벌이 양동이처럼 생긴 난초의 가장자리에 내려 앉아 말랑말랑한 향수물질을 긁어내어 뒷다리의 주머니에 담습니다. 그런데 양동이난초의 가장자리는 무척 미끄러워요. 벌은 양동이난초의 중앙에 빠지고 그 속의 액체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양동이난초의 기둥은 미끄럽기 때문에 벌이 기어 올라올 수가 없어요. 벌이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양동이 옆면에 벌만 한 크기의 구멍이 있는데 그곳으로 벌이 이동을 합니다. 구멍은 벌의 크기에 꽉 끼고 벌이 움직일수록 빡빡해집니다. 그때 양동이난초는 양동이 모양의 잎이 수축이 되면서 벌을 사로잡습니다. 난초는 벌을 먹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난초는 벌을 잡고 있는 동안 화분괴(polinia) 두 개를 벌의 등에 붙이죠. 화분괴의 풀이 굳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벌어야 하는 행위를 양동이난초가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양동이난초의 턱이 다시 느슨해지며 벌을 풀어줍니다. 그러면 벌은 화분괴 두 개를 등에 붙인 채 날아갑니다. 어디로 날아갈까요?”

  “냄새가 나는 다른 양동이 난초?”

  “그렇습니다. 그들은 생존의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이죠. 벌은 또 다른 양동이난초로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다른 양동이난초에서 양동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등에 붙어 있는 화분괴가 떨어지면서 두 번째 난초의 암술머리를 수정시키는 것이죠.” 의사는 의자를 뒤로 돌려 서적이 많은 곳에서 하나의 도감을 꺼냈다. 책을 펼쳐 마동에게 자신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야생의 난초가 벌에게 화분괴를 묻히기 위해 변화된 모습들이 차례로 있었다. 새삼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것을 자연계의 공진화(coevolution)의 사례입니다. 다른 종과의 협력에 의해서 유전자가 조작되는 것이죠.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세월과 함께 시간을 거쳐 변이를 합니다. 다윈은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했습니다. 생물들 간의 일어나는 현상으로 서로 협력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냈습니다. 몇 십만 년에 걸쳐서 말이죠. 그런데 공진화는 상대방에게 이득을 얻지 못하는 종들 사이에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포식자와 먹이 또는 기생자와 숙주 같은 경우입니다. 이를 두고 리처드 도킨스라는 학자는 ‘무기경쟁’이라 했습니다. 인간에게도 무기경쟁의 변이가 일어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신체적 뿐만 아니라 내제적인 변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동은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마동은 지금 자신의 몸 안에 기생하는 무엇과 무기경쟁을 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 무엇과 공진화가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몸 안에 기생하는 무엇이 어떤 식으로든 마동의 변이를 꾀하고 있다. 밖에서 놀다가 집으로 와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관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아차린 아이처럼 마동은 말 같은 근육의 신체를 느끼며 잠시 멍 해졌다. 마동에게 일어났던 변이의 양식을 떠올리면 지금 근육의 변이가 특별 할 것도 없지만 자신의 근육 양과 세세한 근육의 갈라짐을 보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이와 무기경쟁과 공진화현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몸은 다 풀었다. 천천히 달리며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서 해안의 조깅코스를 달려 장군이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숨이 막힐 만큼 여름밤의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무더웠지만 현실감을 상실한 마동에게는 무더운 공기가 와 닿지 못했다. 마동은 천천히 달려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났을 때 누군가 뒤에서 마동을 불렀다. 마동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최원해가 서있었다. 펄럭이는 체육복반바지를 입고 대학교 과 티셔츠를 어디서 구했는지 입고 있었다. 티셔츠의 목 부분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있었고 이미 조깅을 한 번 하고 온 것처럼 늘어난 라운드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인상을 풍겼다. 운동화는 평소 그의 구두와 비슷한 취향으로 조깅슈즈가 아닌 그저 운동화였다. 운동화의 이름과 모습만 빌린 그런 신발이었다. 저런 운동화를 신고 50분 이상 달리면 발바닥에 무리가 전해질 수 있다. 기능을 잃어버린 운동화의 발목위로 지정할 수 없는 색감의 양말이 한껏 올라와 있었다.

  어째서 최원해가 이곳에 있을까.

  “이 이봐…… 혹시나 했는데 말이지. 자네 낮에 볼 때와는 정말 다르군.” 최원해가 말과 의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그는 마동의 모습을 보며 다우트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원해는 심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그의 시선은 비교적 정확함을 넘어 적확했기에 낮과 밤의 다른 마동의 모습을 본 최원해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최원해가 봐왔던 마동은 회사를 속인다거나 일탈적인 행위가 없는 인간이었다. 어떤 면으로 자신과 비슷하다고 최원해는 생각했다. 요 며칠 마동의 상태는 분명 걷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바로 오늘 낮에 봤을 때에도 마동의 모습은 암 말기 환자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최원해의 눈앞에 서있는 마동의 모습은 낮에 봤던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했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트랙에서 달리기 준비를 하는 육상선수 같은 육체가 최원해의 눈앞에 서 있었다. 최원해는 마동의 모습을 보며 짧은 시간 혼란스러워했다.

  “우리 회사의 그 이름이 뭐더라? 왜 있잖은가? 언제나 회색정장만 입고 다니는…… 옆 사무실의 그 사람 있지 왜.” 허리가 완전히 펴지지 않고 구부정한 자세로 최원해는 마동을 바라보았다. 마동은 최원해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튼 그 친구가 자네 동네에 살고 있더군. 그 친구의 말로는 자네가 어제 아주 활발한 체력과 건장한 체격으로 조깅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처음엔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지. 왜냐하면 자네가 잘 알지 않나.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까 또 그 친구의 말에 의심이 가면서도 이곳으로 한 번 와보고 싶었다네”라고 하면서 팔을 들어서 어깨를 돌리는 자세를 취했다. 운동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나 나타나는 자세였다. 최원해는 다시 앉았다가 일어났다. 역시 준비운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엉성한 자세다. 헬스클럽을 다닌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할 동작이었다. 어정쩡함이 극에 달한 동작으로 무릎을 굽혔다 폈다. 동작을 끝내더니 마동의 얼굴 가까이 안경을 쓴 큰 바위 얼굴이 다가왔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자네 집 앞으로 왔네. 자네가 조깅을 하러 가면 나도 뒤따라가려고 말이야. 자네가 약속했잖나. 나와 같이 조깅을 하기로 말이지. 아니 나를 데리고 조깅을 하겠다고 말이야. 자네에게 이런저런 질문 같은 건 하지 않겠네. 회사의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고 나는 일과를 마쳤고 말이지. 자네를 따라서 조깅만 하면 되는 것이니 말이야.”

  최원해는 그 큰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억지스러운 웃음이었고 최원해 같지 않은 말투였다.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덮어두고 조깅을 따라 오겠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하지만 최원해의 의식을 들여다봐도 마동에 대해서 딱히 다른 생각은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마동을 따라서 조깅을 하겠다는 의지뿐이었다. 마동과 눈이 마주치자 최원해가 크게 웃었지만 어색하기만 했고 어딘가 모난 웃음 그것이었다.

  “저를 따라오시려면 준비운동을 많이 하세요.” 마동은 최원해를 위해 다시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어, 그래그래, 그러지. 자네 지금 보니 상당한 근육질이구만. 정말 달리기만으로 그러한 근육을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군. 암튼 부럽네”라며 마동의 가슴을 툭 쳤다. 최원해는 마동의 근육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근육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집어 삼키며 준비운동을 따라했다. 최원해는 허리가 거의 꺾이지 않았다. 마동은 할 수 없이 그의 허리를 조금 눌러서 배를 무릎 가까이 닿도록 했을 때 최원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이봐! 이봐 잠깐, 사람을 그렇게 심하게 다루면 어떻게 하나. 달리기도 전에 몸이 남아나질 않겠구만.” 최원해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이미 티셔츠의 반은 젖어서 색이 달랐다. 마동은 그의 하소연에도 지면에 엉덩이가 닿을 만큼 다리를 펴서 쭉쭉 뻗는 동작을 따라하라고 했다. 최원해의 몸은 구체관절 로봇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뻣뻣했다. 모든 움직임에 거국적으로 나온 배가 방해를 했다. 라운드네크라인이 늘어난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있음에도 그 배를 가릴 수는 없었다. 앉을 때나 허리를 구부릴 때 보기 싫게 불룩 나온 배 때문에 저항이 생겼다. 마동은 최원해의 스트레칭 포즈가 엉망이면 옆에서 보조를 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소름 돋는 신음소리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 대체로 엉망이었다.

  마동은 최원해에게 자 이제,라며 달려가기를 권했고 그도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이며 마동의 뒤를 따라 무더운 여름밤 속을 뛰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최원해가 잘 따라왔다. 마동은 그의 페이스에 맞춰서 달려야 했기에 평소보다 느리게 달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의 앞에서 천천히 달려가며 최원해의 페이스메이커를 해주었다. 마동의 몸 상태는 그 어떤 날보다 최고조의 상태였지만 그 어느 날보다 느리게 달려야 했다. 마치 3800CC의 고성능 자동차로 카메라도 방해자도 없는 죽 뻗은 도로에서 시속 7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15분 정도 지나니 최원해는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누구나 15분이 지나면 숨이 차오르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 고비를 넘기고 대부분 사람들은 꾸준하게 달리는 것이다. 그러면 페이스의 조절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지만 최원해에게 그 평범함을 바라는 것은 지나침이었다. 더 이상 이 페이스로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준비운동을 한 시간가량 한 다음에 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신체가 달려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운동을 해주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못하고 출발을 했다. 마동은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다. 최원해가 신고 있는 운동화도 한 시간이상 달릴 수 있는 조깅슈즈가 아니었다. 여러모로 조깅을 하기에는 수축되고 모자람이 많은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동은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평지인 해안도로를 죽 달리는 것보다 저수지 쪽의 산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빠르게 걷는 방향으로 하자.

  그쪽이 최원해 발바닥이나 무릎에 무리가 덜 전달 될 것 같았다. 평지처럼 달리지 않아도 되고 오르막길이 많아서 걷는 것만으로도 다리근육에 긴장을 주고 운동량은 더 많다. 최원해의 운동화는 무겁고 바닥이 필요 이상으로 두꺼워서 산길을 걷는 용도에 더 적합하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평소에 바닷가의 평지코스로 접어들기 전에 아파트단지의 저수지 쪽의 산행코스를 거쳐 바닷가의 평지코스로 종종 달렸는데 최원해 덕에 오늘은 그곳의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저수지 쪽의 산행코스는 동절기에는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산이 금지인 코스다. 5월부터 시작되는 하절기, 동절기가 시작되는 11월 말까지는 밤새도록 코스가 오픈이 되었다. 도심지에 있는 산이라고는 하나 산속이 깊고 침엽수가 많다. 술이라도 마시고 추운 겨울에 들어가서 의식을 잃으면 곧 죽을 수 있다. 인간은 겨울철에 산속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당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하지 말라고 하면 인간은 그 명제에 반기를 들며 꿋꿋하게 하지 말라는 행위를 실행하고 불행한 결과로 뉴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인간은 기존의 틀을 비틀고 싶어 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교의 담벼락을 지나 저수지가 보이는 산행 길을 올라 구불구불한 산속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봐, 이보라고, 헉헉, 왜 이 길로 가나.” 최원해의 얼굴은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반팔 끝 부분으로 얼굴의 땀과 번들거리는 기름을 한 번에 닦으며 마동을 불러 세웠다.

  “이 길로 언제나 달립니다, 제가 집에서 조깅을 하면. 전 항상 달리면서 이 길을 올랐지만 부장님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는 겁니다.” 마동은 일일이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최원해는 안경을 벗어서 이마의 땀을 티셔츠 끝으로 닦은 다음 마동의 뒤를 따랐다. 숨소리가 대단했다. 초등학교의 담벼락을 지나면서 부터 길이 숲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경사가 50도 가까이 꺾인 산길이다.

  “이봐, 나를 좀 데리고 가라고, 헉헉”

  마동이 경사면을 올라가다가 잠시 멈추고 최원해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최원해의 의식은 마동이 꾀병을 부려서 낮에 회사업무를 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동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최원해는 회사 내 모든 사원들의 심리나 행동을 숙지하고 있는 인간이다. 심지어 회사직원들의 음식취향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머리는 지극히 혼란스럽지만 마동을 의심하는 마음을 접었다. 외모와 말투, 스타일의 뒤떨어짐을 무시한다면 최원해의 통찰력은 타인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 오너는 그런 최원해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회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최원해는 마동의 지금 이런 모습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낮에 본 마동의 상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조깅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원해 역시 사회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성인이 지니고 있는 장점과 그 장점을 취득하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여 인간관계를 적당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최원해는 어딘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흙탕의 물웅덩이처럼 아침햇살을 갑자기 먹어 버린 어두운 잿빛구름처럼 음산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 내 직원들도 선뜻 최원해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모습은 없었고 최원해 역시 연못 속의 잉어를 보듯 그들을 쳐다볼 뿐 신경 쓰지 않았다. 회식이 있으면 참석했다가 2차에서는 따라 붙지도 않았다. 설령 같이 간다고 해도 어느 순간 몰래 빠져나가 없어져 버리곤 했다. 마동은 문득 최원해가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이 궁금했다.

  마동은 그가 따라붙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경사면을 올랐다. 저 먼 바다의 하늘 위에서 마른번개가 번쩍였다. 등산로의 바닥은 시멘트나 코르크로 잘 닦아 놓은 인공적인 바닥에서 벗어났다. 운동화 밑으로 흙바닥의 울퉁불퉁한 질감이 전해졌다. 더위가 혀를 날름거리는 여름밤은 어둠이 깊게 깔리지 않아서 밤에 조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지만 산속이라면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시에서는 하절기에 산행을 허용한 대신 산행 로의 모든 부분에 가로등을 설치했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했다. 한때 주민 대표가,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낸 세금까지 들어간다며 따지고 들었지만 이후로는 고요해졌고 결국은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숲의 원형은 헤치지 않으며 등산로를 만들었다. 덕분에 마동은 간간이 산행 길을 달릴 수 있었다. 숲속의 달리는 기분은 브레싱하다. 침엽수에서 살균성을 지닌 물질이 뿜어져 나온다. 겨울의 산속보다는 여름의 산속에서 더 풍부하게 나무의 상쾌한 향을 맡으로 달릴 수 있다. 흙바닥에 발을 디디며 달려 올라가는 야간 숲속의 조깅을 무엇보다 상쾌하지만 최원해 때문에 달리지는 못하고 조금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최원해도 이 상쾌함을 맡아보면 코스가 그렇게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동을 따라오면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침엽수에서 뿜어내는 기분 좋은 피톤치드가 인체에 아주 유익하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 거리며 힘을 다해 마동의 뒤를 따라 붙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땀 때문에 티셔츠의 네크라인 부분은 환자가 입을 다물지 못해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축축하게 환자복을 물들인 것 같은 도형을 만들어냈다.

  “원하는 걸 얻는데 시간이 단축 될 겁니다, 최부장님께서도. 이런 길을 매일 달린다면 말이에요”라고 마동은 말했다. 마동은 전혀 숨이 차지 않았다. 경사가 조금 더 심해졌고 몸을 앞으로 구부려야 했다. 최원해는 빨리 걸어 올라가는 것도 벅차 보였다.

  “내가 자네와 많은 대화를(헉헉)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자네는 가만 보면(헉헉)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을 하는 경향이 있네(헉헉). 그거 자네는 알고 있나?” 최원해는 숨이 차서 입에서 겨우 말이 나왔다. 중간에 헉헉 거리는 소리가 성애 중에 내뱉는 욕망에 가득 찬 소리처럼 들렸다. 최원해의 목소리는 입에서 겨우 나왔다. 주전자의 뚜껑을 통해서 증기가 겨우 빠져 나오듯이.

  “거북하신가요. 듣기에?”

  “아니, 그건 아니네만(헉헉). 평소의 자네는 언어습관에 좀 묘한 구석이(헉헉) 있는 거 같아서 말이지. 지금 자네에게(헉헉) 거북한 것은 말이네(헉헉). 이렇게 산길을(헉헉) 뛰어 올라가면서(헉헉) 전혀 숨차 오르는 기미가(헉헉) 없이 말을 한다는 거네(헉헉). 그런 자네가 조금(헉헉) 거북하네만.” 최원해는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마동은 전혀 숨이 차오르는 것 같지 않고 최원해에 비해 땀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받아 들여졌다. 마동은 그렇다고 일부러 숨이 차오르는 척 하기는 싫었다.

  “중요합니다. 꾸준하게 하는 것이, 분명 최부장님도 이 코스를 일주일에 삼, 사일만 달리면 곧 이렇게 경사가 심한 곳도 다리 근육이 당긴다던가, 숨이 차오르는 증상이 서서히 사라질 겁니다.”

  “이봐, 마치(헉헉) 헬스클럽 트레이너처럼 말을 하는군(헉헉). 자네(헉헉).”

  “여기 코스는 겨울에는 저녁이 되면 들어오지 못합니다. 오를 수 있을 때 열심히 오르는 겁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오케이(헉헉).“

  마동은 최원해를 이끌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여러 번 나왔다. 그 코스를 지나면 풀숲의 산길이 나오고 평지 같은 부분의 산행코스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천천히 달리면 된다.

  “자네가 살고 있는 동네의 산에도(헉헉) 운동을 하게끔(헉헉) 잘 해 놨구만.”

  “부장님, 몸에 무리가 옵니다, 말을 너무 하시면 안 됩니다.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놓은 곳은 부장님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잘 해놨을 겁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주민들을 위해서 근린생활시설을 잘 갖추어 놨어요.”

  “근린생활시설? 하하하. 아이고(헉헉). 자네 참 재미있구만(헉헉). 도대체 그건 언제 쩍 말인가. 아이구, 기침이.”

  최원해는 숨이 차오르는 가운데 기침을 콜록콜록 했다.

  “부장님 말을 많이 하시면……”

  이제 산길은 평지로 이어졌고 가로등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이 없었음에도 달빛과 빛을 받은 여름밤의 공기 덕에 시야각이 넓었다. 마동의 눈에는 어두운 산속의 풀벌레까지 띄었다. 저 먼 곳에서 마른번개가 치는 것을 마동과 최원해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마동은 고개를 돌려 최원해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끓어오르는 숨을 참아가며 마동을 향해 손을 저으며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최원해에게 마른번개는 문화권 밖의 이야기처럼.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눈앞에서 같이 봤지만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최원해는 숨이 넘어가면서도 마동에게 계속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최원해 부장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뭐랄까(헉헉). 대학시절의 동아리는 말이지(헉헉) 그 목적을 이루려고 집단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헉헉) 그 나이 때엔 이성에 관심이(헉헉) 더 가기 마련이잖나. 주말에 집합해서(헉헉) 정해진 산으로 등산을 하게 되면(헉헉) 여학생들에게 지기 싫은 건 물론이고(헉헉) 다른 남자학생들에 비해서(헉헉) 튼튼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때가 대학교 때란 말이지(헉헉).”

  평지가 이어져 최원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위는 무성한 풀과 나무, 나무와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사이를 사람 두 명이 지나갈만한 길이 죽 뻗어있었다. 최원해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차오르는 것보다 덜 했지만 말하는 중간 중간 숨이 가빠서 참아가면서 자신의 대학교 시절에 등산동아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했다.

  숲속의 중간쯤에 들어서니 풀벌레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마치 생명이 끝나가는 미어켓 떼가 합창을 하듯 한꺼번에 숲의 어느 부분에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스럽고 무참히 들렸다. 식수로 사용되는 저수지를 끼고 빙 둘러싼 산에는 작은 동물들이 있었고 저수지에는 민물고기들과 자라가 서식하고 있었다. 잡아들였다가 적발되면 현장에서 검거가 된다. 숲에는 뱀도 많았다. 아파트 단지의 스피커를 타고 숲으로 등산을 갈 때 뱀을 조심하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침엽수의 나무는 무더운 날을 여러 해 견디면서 나름대로 이 계절에 적응을 끝냈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침엽수는 공진화현상을 거쳐 활엽수와 함께 저수지 옆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을 터득했다. 진화를 하여 지금의 모습까지 왔다.

  덕분에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무의 기운을 뿜어 내 줄 수 있었다. 나무는 세계로 가지들을 뻗고 장마기간에 우후죽순으로 내리는 비를 흠뻑 빨아들여 숨을 한층 더 나무의 세계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녹음은 어느 때보다 짙어지고 숲은 확고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보이는 마른뇌우.

  바람이 대기를 가르고 숲 속의 나무들을 훑고 지나갔다. 스르륵 쿠르릉. 기이한 바람의 소리였다.

  바람소리?

  바람소리가 들렸을 때 처음에는 그것이 바람소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바람소리가 여러 번 들렸지만 바람소리라고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동의 귓전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는 스산함을 넘었다. 겨울의 칼날 같은 바람보다 더했다.

  한여름 밤의 바람소리가 왜 이토록 스산하게 들릴까.

  그 날(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난 밤)의 바람소리도 스산했다. 바람소리가 슉슉하며 몇 번 들리는 동안 바람소리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꽤 여러 번 스르르륵하며 귓전을 울릴 때 그것이 소리로서의 완연한 무기체를 이루었고 마동의 귀에 들어왔을 때 더욱 완벽한 바람소리가 되었다. 소리는 나무와 나무사이를, 가지와 가지사이를 훑고 부드럽게 다가와 마동에게 내려앉는 보편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은 포향을 지녔고 어둡고 광대한 자연이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잠자고 있던 포식자의 본능에 점화를 울리는 소리였다. 바람소리가 들리자 마자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올렸고 더불어 그날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때의 바람소리, 치누크가 몰고 온 초현실의 세계가 다가왔다. 저 멀리 마른번개는 빙영을 자아내며 크게 하늘에서 성난 모습으로 바닥에 내리 꽂혔다. 대단했다. 저렇게 큰 번개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해졌다. 이상했다. 마치 공중으로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최원해도 나처럼 이럴까. 아니다, 최원해는 변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최원해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마동은 자신의 배속에 무엇인가 꾸물거리는 액상물질이 가득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배 안에서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떠한 살아있는 물질이 기어 다니고 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복통이 일어날 것만 같았고 눈앞에 펼쳐진 숲의 공기가 순식간에 팽창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공기의 이완과 수축이 몇 번 반복되더니 보는 앞에서 그대로 부풀어 올랐다. 바람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면서 마동의 몸을 짓눌렀다. 바람은 냉정했고 차가웠다. 차가운 겨울의 바람이었다. 바람에 살이 닿으니 따갑고 견디기 힘들었다. 피부가 새로운 표피로 덮여 공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온 몸의 세포가 일어났고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숲 속의 나무들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공기가 뒤틀어지고 공간이 비틀어졌다. 벌어진 공간과 공기의 틈으로 불투명한 공기층이 틈을 벌렸고 마동은 그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거부할 수 없고 저항조차 불가능했다. 마동의 몸에서 축축하고 기분 나쁜 돌기가 만져졌다. 최원해가 흘린 땀을 빨아먹은 것처럼 더럽고 불쾌하고 축축한 돌기였다. 돌기는 이내 딱딱하고 얼음처럼 차가워졌으며 시간과 공간을 뒤 흔들기 시작했다.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의 기억이 액체와 기체의 중간상태에 머물러 있는 물질처럼 설명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가 바람소리로 인해 순식간에 깨어나서 저수지의 표면을 갈라놓으며 마동의 수면파동을 뒤집었다. 불안과 희망의 해체가 마동의 눈앞에 보였다. 입을 벌리자 그 속에서 수십 개의 자줏빛 포자가 흘러 나왔다.

 

  나는 어떻게 지내왔는가. 누군가는 나에게 이타적이지 못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동안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향한 비방이 도의를 넘어서는 것을 많이 봐왔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채워졌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자존부의사회 아닌가. 자유연애를 하며 원하는 것을 버튼을 눌러 가지는 자동판매기의 세계인 것이다. 눈앞의 것을 보는 타인들에 비해 나는 그 너머를 보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 기억이 사라져버린 사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일이 제일 영향이 많았다. 그 사고 내지는 사건은 나를 바꾸어 놓았다. 사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나만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에 늘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고통을 겪는다.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타인이며 결국 타인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쩐 면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런 경의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의 개체에서 벗어난 수를 생각해본다면 세상의 이면에는 한 면을 제외한 또 다른 어떠한 면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때로는 ‘제시’라는 부분에서 막히는 경우가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 저기 보이는 남녀의 모습이나 가족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정의를 하면 그저 달콤함을 유지하거나 지켜내기 위해서 막중하게 큰 저항이 사랑 속에서는 가득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 책임이라는 묘한 감정이나 보이지 않는 형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시간을 달려와 늙어 버렸다거나 이미 사랑이라고 하는 위대한 모순으로 인해 누군가를 잃어 버렸을 때이다.

  사랑, 그것은 만질 수 없는 감촉의 질이 좋다는 것을 안다.

  사랑, 그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심안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촉촉하고 달달하지만은 않지만 혀로 느껴지는 맛이다.

  체험으로, 몸으로 알 수 있는 그것. 나는 그동안 애써 사랑을 외면하면서 지내왔다. 사랑을 하게 되면 타인에 대해서 비방을 하는 경우를 만나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사랑을 나눈다는 거 나에게는 보통의 일은 아니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밤꽃냄새가 났다. 여름이 지나고 밤나무근처에 가면 저녁의 냉랭한 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밤꽃냄새가 여기저기서 안개처럼 퍼졌다. 밤꽃냄새는 연약했지만 생기를 품었다. 달이 빛을 발하고 해면의 조개들이 큰 소리로 울었다. 밤꽃냄새는 기억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마동은 기억이 뒤죽박죽에다가 떨어져 나가버린 깨져있는 기억이 많았다. 마동의 눈앞에 어떤 광경이 나타났다. 보이는 저 광경이 마동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마동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마동의 인격과 기억의 배열이 재구성되어서 배치가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마동을 이루고 있는 에고가 어딘가로 실뱀장어처럼 기어서 달아난다.

  에고는 달아나면서 몸이 작아져갔다. 점점 작아지더니 완두콩만한 작아져 버리고 에고가 섰던 자리에 또 다른 에고가 몸집을 부풀리더니 작아진 원래의 에고를 어딘가에 집어넣어 가둬버린다. 원래의 에고는 겁이 많고 가녀린 몸이었고 원래 에고가 지니고 있던 인격은 새롭게 자라난 에고와 의식을 공유하지 못할 터였다. 원래의 작은 에고는 어딘가에 갇혀서 꺼내 달라고 말하지만 새로운 에고는 그 말을 무시했다. 새로운 에고는 기형적으로 덩치가 점점 커졌다. 표정도 없고 무시무시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얼굴이었다. 새롭게 자란 에고는 발을 바닥에서 떼더니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다. 걸어가는 모습이 설인이 무릎까지 오는 눈밭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에고가 걸어간 곳에는 작은 공터가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놀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에고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작은 공터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에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작은 공간의 중간에 모여앉아 재잘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무엇인가 만지기도 했다. 새로운 에고는 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은 은색의 철제 큰 바구니에 담겨있는 무엇인가를 만지고 입에 넣어서 씹어 먹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도넛이었다. 요즘처럼 여러 종류의 맛과 초콜릿이나 딸기시럽이 듬뿍 들어있는 식감이 좋고 입맛을 돋게 하는 도넛이 아니라 그저 중간이 뻥 뚫린 밀가루 빵에 설탕이 발린 단순한 도넛이었다. 주위는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보이고 집들의 오늬무늬 벽이 아주 오래되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낡은 가구처럼 허름한 벽돌로 쌓여있는 벽에는 정의할 수 없는 페인트 색이 무늬에 걸맞지 않게 칠해져있다. 집들은 낮았고 기왓장이 지붕에 덮여있거나 옥상이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이 공터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앉아 있는 공터는 흙바닥이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은 아마 아이들이 모여 놀이를 하는 요량으로 파 놓은 것이다. 공터의 맞은편에 작은 슈퍼가 보였다. 슈퍼라기보다는 구멍가게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과자나 음료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음료는 사이다와 콜라 그리고 환타 뿐이고 맥주와 소주가 보였다. 소주병은 뚜껑을 돌려서 따는 것이 아니라 병따개로 따는 소주병이었다.

  이곳의 기억이 있는 원래 에고는 새로운 에고를 밀어내고 새로운 에고의 몸을 들어 올려보려고 하지만 새로운 에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에고는 갇혀있던 원래 에고의 기억을 힘으로 밀어냈다. 새로운 에고는 기억을 밀어내는 것으로 모자라 그 기억을 분쇄하고 파편으로 만들어버린 자음 아이들이 파 놓은 땅을 더 깊게 파낸 다음 그 안에 묻어 버렸다.

  새로운 에고의 얼굴은 황폐하고 싸늘한 표정이었다. 칼로 긁어버린 것처럼 목소리는 갈라졌다. 새로운 에고에게 들릴 리가 없다. 들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에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새로운 에고가 아이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도넛향이 새로운 에고의 코를 향해 손가락으로 찌르듯 달려들었다. 알 수 없는 기름에 갓 튀겨낸 밀가루 도넛 향은 달콤했으며 야릇한 감촉 같은 것이었다. 감촉은 조금씩 흥분을 더했으며 엷은 희미함에서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야릇한 기운은 쾌감으로 다가왔고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어 갔다. 감촉은 점점 흥분을 뜨겁게 달구었다. 열기가 가열되어 갔다. 열기에 옷을 벗어야만 할 것 같았다. 도넛의 향이 이렇게 욕정 적이고 감미로운지 새로운 에고는 그 향에 젖어 들었다. 새로운 에고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도넛 향의 쾌감은 새로운 에고를 감싸고 옷을 벗어버리게 만들었다. 새로운 에고는 도넛 향에 정신이 빠져 나간다. 얼굴이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얼굴의 피부는 조금씩 썩어나가기 시작하더니 녹아내리면서 지니고 있던 모습에서 벗어났다. 불에 지진 인두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듯 몸은 불덩이 같았다. 도넛의 애잔했던 향기는 새로운 에고에게 욕망으로 그리고 욕정의 모습으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간절한 목마름.

  참을 수 없는 맛.

  새로운 에고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는 철제 바구니 앞으로 거인처럼 걸어가더니 아이들이 먹고 있는 도넛을 빼앗아 먹었다. 원래의 에고는 더 큰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아이들은 괴롭히지 마.

  새로운 에고가 아이들의 도넛을 빼앗아 버리자 아이들은 서로 울면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른보다 더 커져 버리고 어른 5명의 힘보다 강한 새로운 에고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새로운 에고가 아이들에게 빼앗은 도넛을 입에 넣고 마구 씹어 삼켰다. 새로운 에고는 도넛의 맛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욕정의 맛이자 황홀의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도넛의 맛은 처음이었다.

  너무 맛있는 도넛을 지들끼리 먹어? 그동안 내가 이렇게 크게 변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나에게 먹어보라고 하지 않았단 말이야!

  새로운 에고는 손에 들고 있는 도넛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아이들이 먹고 있는 도넛을 전부 빼앗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고는 화가 머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런 보잘것없는 아이들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아이들을 새로운 에고는 밀쳐 내거나 완력으로 제압했다. 간단한일이었다. 아이는 휙 날아가서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저 옆으로 꼬꾸라지기도 했다. 작은 공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새로운 에고는 일단 도넛을 먹는 것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점점 눈동자가 사라져 갔다. 눈자위는 단일 색으로 물들었고 눈동자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내 뒤집어 지더니 눈동자가 새로운 에고의 눈에서 소멸했다. 변해버린 얼굴과 눈동자는 절망감이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새로운 에고의 그런 행동에 반기라도 하듯 한 아이가 달려들었다. 새로운 에고는 어린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발로 아이의 얼굴을 짓눌렀다. 아이도 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붙었다. 불구덩이 속에 갇혀 버린 삶을 살아가는 아이가 문으로 손톱을 긁어 대듯 처절하게 새로운 에고의 다리를 붙들었다. 새로운 에고는 아이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아이는 끽 하는 소리를 내더니 목에서 벌건 신물을 쏟아냈다. 새로운 에고는 아이의 얼굴을 종잇조각처럼 찌그러트렸다. 새로운 에고는 그런 아이를 집어서 귀찮다는 듯 저쪽으로 던져 버렸다.

  너희가 실체를 알고 있느냐! 실존하는 내가 주인이 되는 거야!

  새로운 에고는 도넛을 먹을 수록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버려진 아이의 얼굴은 코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고 작은 얼굴이 전부 붉게 물들었다. 새로운 에고는 만족하는 듯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도넛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울면서 보고 있다가 그중 한 아이가 새로운 에고에게 덤벼들었다. 새로운 에고는 성가시다는 듯 아이의 머리털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아이의 눈에 보이는 새로운 에고의 모습은 괴물 같았다. 새로운 에고는 손에 들린 아이를 축구공을 차듯 공중에서 발로 차 버렸다. 아이의 갈비뼈가 여러 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부서진 갈비뼈는 폐를 찔렀다. 아이의 입은 벌어지고 눈은 한 지점을 향한 채 그대로 멈춰 버렸다. 새로운 에고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뛰어가서 쓰러져있는 아이의 얼굴을 발로 밟아버렸다.

  마동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 제발 그 아이들을 건드리지 말아줘!

  폭력을 휘두르는 새로운 에고는 마동에게서 떨어져간 놈이기 때문에 마동 자신이 막아야 했다. 저대로 놔뒀다간 아이들이 맞아서 죽을지도 모른다. 마동은 시끄러운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괴롭히는 새로운 에고의 저 모습은 혐오스러움을 넘어섰다. 저 녀석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증오가 마동의 몸을 적셨다.

  물처럼 발끝에서부터 무릎을 지나 차오르는 느낌. 내 자체가 체재가 되고 관념이 되어서 과오를 죽여야 한다.

  그때 한 아이의 뺨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나갔다. 마동의 마음에 증오가 물처럼 끓어올랐다.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 있는 저 녀석을 죽여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뜨거운 에너지의 파동이 마음에 느껴졌다. 괴물로 변해버린 녀석의 횡포를 막고 숨을 끊어버리는 것은 ‘악’을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다.

  악은 평범하다. 악의 평범성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악이라는 것은 도처에 널렸다. 순박하기만 하던 이웃집아저씨가 결국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악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나쁘고 몹쓸 것이고 어쩌다가 가끔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철학가가 말했지, 사람들은 내 여자가 술집에서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있으면 그건 바람이라고 하지만 그저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일지도 몰라. 정녕 무서운 건 같이 베토벤을 공유하고 카프카를 논하고 바이런을 좋아하는 마음이 같아서 손을 잡지 않아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것이 더 무서운 거야. 악이란 그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거지. 마음속에 있다가 언제 어떻게 튀어 나올지 몰라. 마동은 언젠가 희미하지만 증오가 열병을 앓듯 불타올랐던 적이 있었다. 너무나 어렴풋하지만 지금처럼 증오로 불타올랐다.

  그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 증오를 어떤 식으로 표출했을까.

  불투명하다. 아무리 떠올려도 흐리터분하기만 하다. 증오가 마동의 몸속을 전부 장악하고 마동에게 명령을 했지만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때의 정경도 지금과 비슷하다. 지금은 새로운 에고가 여러 명을 괴롭히고 있지만 그때는 여러 명이 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모습 같았다.

  나는 그때 증오로 몸이 뜨거웠으며 어떻게 되었을까. 아아, 중요한 건 지금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계속 떠올리려 하지 말자. 지금 저 녀석을 찢어발겨 놓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마동은 사력을 다 했다. 움직이기 위해. 마동은 팔을 뻗었다. 마동을 붙잡고 있는 방해자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마동을 가둬놓고 마동의 팔다리를 누르고 있는 관념에서 있는 힘을 다해 마동을 붙들어 매고 있는 방해를 집어 뜯었다. 팔의 핏줄이 불거지더니 피부를 뚫고 튀어 올라왔다. 동맥인지 정맥인지 분간 할 수 없는 혈관이 터져 피가 솟구쳤다. 마동의 피부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몸은 자줏빛을 띠었다. 마동은 소리를 질렀다. 포효했다. 마동을 짓누르고 있는 방해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크랙이 보이더니 벌어지고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깨지고 부서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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