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거대늑대의 품에 잠을 자고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션’ 대단한 능력임을 내가 걸어왔던 거리와 저것을 타고 온 거리를 비교했을 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굉장히 신나하며 거대늑대 위에서 일기를 쓰던 그녀 덕분에 우리는 단숨에 ‘우완제국’의 검문소를 빠져나왔고 밤이 깊어 숲속에서 캠핑을 하고 있다.

　 그녀의 첫인상은 썩 좋지 못했다. 말괄량이처럼 생겼으면서 그녀의 행동도 그녀의 얼굴을 닮아 ‘도르만제국’에 대해, ‘전사’에 대해, ‘나’에 대해 쉴 틈 없이 질문을 쏘아 올렸다. 우리가 궁금해야할 것은 하나이다. 어떻게 해야 ‘마왕’을 빨리 물리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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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에겐 험난했던 그 숲은 둘이 되니, 금방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금세 이 마을에 왔다. 이쪽 길로 ‘상그라제국’을 간다면, 반드시 이 마을에서 따뜻한 옷을 구비해두라는 우연히 마주친 모험가의 말 때문이었다. 궁수는 추워보이진 않았지만 꼭 가고 싶다 하였고, 나는 확실히 추위를 좀 타기 시작했기에 이 도시의 허름한 여관에 왔다.

　 그리고 옷을 구비하기 위해 장비상점에 왔을 때, 베테랑 모험가로 보이는 자들이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늠름한 전사, 도도해 보이는 마법사, 관능미 넘치는 도적, 귀엽게 생긴 성직자 그리고 작고 볼품없는 짐꾼으로 구성된 파티였다. 그 파티 중에 정확히 2년 전에 봤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도르만제국의 20번째 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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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랖 넓은 우리 ‘22번째 궁수용사’에게 저들은 ‘용사 20팀’이라고 말을 했고, 그것을 이유로 우리는 함께 ‘상그라제국’으로 가고 있다. 그들도 ‘상그라제국’에 가기위해 그 상점에 왔고, 그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20번째 전사용사’는 후배 용사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었던 것 같다. 뭐, ‘상그라제국’에 쉽게만 갈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지.

　 리더 격으로 보이던 ‘20번째 전사용사’는 정의로워 보였으나, 허세가 가득했다. 가볍게 물리칠 수 있는 마물도 큰 동작과 쓸데없는 동작, 팀원플레이 강조하는 명령하달로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통솔력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로인해, ‘상그라제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연장된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도도해보였던 ‘20번째 마법사용사’는 그런 그를 선망의 눈빛으로 보았다. 하지만, 반대로 나와 우리 궁수에게는 가소로운 눈빛으로 보곤 했다. 뭐.. 우리가 그들보다 약했던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체력을 아끼며 가고 있으니 별로 상관없다.

　 관능미 넘쳐 보이는 ‘20번째 도적용사’도 그런 그를 선망의 눈빛으로 보았다. 자신의 리더를 졸졸 따라다니며, 칭찬의 말을 아까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이 참 많은 우리 팀원이 하나 있기에 그녀에겐 고마웠다.

　 귀여워 보이는 ‘20번째 성직자용사’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줄곧 자신의 리더가 보고 있을 때, 우리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했으며, 자신이 귀여운 외모인 걸 아는지, 일부로 백치미 있는 행동을 하곤 했다. 제일 역겨웠다.

　 밖에서 들리는 ‘20번째 전사용사’와 ‘20번째 마법사용사’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 일기를 쓰는 지금 마물에게서 빼앗은 이 동굴엔 또 한명의 사람이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작고 볼품없는 짐꾼, 아니, ‘20번째 궁수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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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그라제국’으로 가는 길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다른 길을 통해서 갈 것을 이라며 후회했다. 마물이 강해서가 아니다. 너무 춥다. 그리고 저들과 만난 것이다. 그들은 ‘20번째 궁수용사’를 멸시하고 있었고, 따돌리고 있었다.

　 뜨거운 밤을 보낸 ‘20번째 마법사용사’는 그에게 우리보다 더욱 가소로운 눈뿐만 아니라 험한 욕을 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을 서슴없이 그에게 날렸다. 저게 마물에게 먹히는 마법이라면 상당한 고위마법에 속할 것이다.

　 관능미 넘쳐 보였던 ‘20번째 도적용사’는 그를 노예 취급했다. 모든 잡다한 일을 그에게 시켰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따랐다. 가는 길 도중 심심할 때마다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고 그것을 보고 그녀는 웃었다. 보기 불편했다.

　 귀여워 보였던 ‘20번째 성직자용사’는 모든 불평, 불만을 그의 탓으로 돌리다가도 자신의 리더가 보고 있을 때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곤 짐짝처럼 여기던 그에게 자신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며 과도한 선행을 보이는 척 했다. 오늘은 역겨움 순위 2위를 차지하였다.

　 그들의 리더인 ‘20번째 전사용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그는 정의의 사도인 마냥 그녀들에게 혼을 냈다. 동료가 어떻다느니, 용사가 어떻다느니, 자신은 어떻다느니, 온갖 설교를 한 뒤 뿌듯해 하는 표정으로 앞장서 갔다. 그런 그를 그녀들은 선망의 눈으로 보고 있다. 제일 역겨웠다. 역겨움 그 자체였다.

　 밖에서 들리는 ‘20번째 전사용사’와 ‘20번째 도적용사’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 일기를 쓰는 지금 ‘20번째 궁수용사’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가 ‘용사협정’ 1년이 지났음은 물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이들과 함께 다니는 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난 처음으로 오늘 그에게 말을 걸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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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번째 궁수용사’는 ‘우완제국’에 강제로 선발된 ‘사람’이었다. 아니, 독하게 말해 그는 ‘우완제국’에 강제로 선발된 ‘노예’였다. 단지, 같은 파티에 그를 따돌리는 용사들처럼 ‘특이한 능력’을 가졌기에 선발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파티에 용사들과는 전혀 달랐다. 활을 잘 쏘지도, 강한 힘도,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또한, 신체능력은 평범한 사람보다도 못했다. 더욱이 체구도 작고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불쾌하게 생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같은 파티에 용사들과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모른다는 점이다. ‘용사’를 선발할 때에, 즉, ‘특이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여부는 제국에 있는 ‘수정구’를 만지며 검증된다. 보통의 경우, 정말 그런 ‘특이한 능력’을 가졌는지 확인 차 ‘수정구’를 사용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반대로 사용되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반드시 함께 움직여야하는 ‘용사협정’ 1년이 지났음에도 왜 저들과 함께 동행 하는지에 대해서.. 그는 말했다.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고, 이들과 같이 다님으로써 그나마 ‘마물’의 먹이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위해 반박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자신을 데려가 줄 수 있냐고,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그가 또 입을 뗐다. 적어도, ‘20번째 전사용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난 ‘20번째 전사용사’는 당신을 데리고 다니며, 더욱 빛나 보이고 싶어 하는 것뿐이라고 반박하자. 그는 나에게 또 물었다. 그래서 자신을 데려가 줄 수 있냐고, 나는 당황하며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용사 팀에 의견 없이 혼자 결정하긴 힘들다고 얼버무렸다. 그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느낌의 하루였다. 그는 멸시받고 무시당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뜨거운 밤을 보낸 ‘20번째 도적용사’가 죽인 ‘마물’을 그가 매만지는 모습을 보았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들리는 ‘20번째 전사용사’와 ‘20번째 성직자용사’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 일기를 쓰는 지금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20번째 용사’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죽은 ‘마물’을 왜 매만졌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항상 그들을 동정하며 매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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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앞장서 가는 ‘20번째 전사용사’가 다리가 부러져 걷지 못하는 눈여우를 발견했다. 그 눈여우를 안고 ‘20번째 전사용사’는 우리에게 왔다.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그 눈여우는 살기위해 사납게 발버둥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뜨거운 밤을 보낸 ‘20번째 성직자용사’는 좋은 식사재료를 구했다며 그를 찬양했다. 그러자 ‘20번째 전사용사’는 식량은 넉넉하다며 생명에 대한 열변을 토하며, 직접 그 눈여우를 성심껏 치료했다. 그런 그를 본, 우리 ‘22번째 궁수용사’는 나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것을 들은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밖에서 들리는 ‘20번째 전사용사’와 ‘그녀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이 일기를 쓰는 지금 ‘마물을 동정’ 하는 그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오늘 앞장서 가던 ‘20번째 전사용사’가 눈여우의 다리를 일부로 부러뜨리는 것을 이야기를 하며, 내일부터 이 파티에서 빠질 것을 말했다. 그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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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자신을 뽐낸 ‘20번째 전사용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설교를 한 뒤, ‘용사 20팀’은 떠났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오지랖이 넓음을 반성하고 있는 우리 ‘궁수용사’도 동의했다.

　 그리고 오늘 많은 ‘마물’을 만났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것보다 나았다. 우리는 그동안 비축해두었던 체력을 쏟아냈고, 지금은 여관의 창문너머로 한 슬로건이 보인다. ‘신의 권능 아래, 우리는 번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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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단잠을 잤던 것 같다. 늘 같은 허름한 침대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나와 궁수는 ‘22번째 성직자용사’를 만나기 위해 ‘거대한 신전’으로 갔다. ‘용사 22팀’이 모두 모여 있다는 생각에 어서 정비를 마치고 갈 생각에 설렜었다. 궁수는 다른 의미로 설렜던 것 같다.

　 그 신전에서 ‘22번째 성직자용사’를 만났다. 그는 죄스러운 얼굴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기도를 방해했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며 우리의 봇물 터지듯 나오는 질문에 당황했다. 다소 예쁘게 생겼지만, 나에겐 썩 좋지 못한 인상이었다. 이런 자가 제대로 ‘마물’을 물리칠 수 있을까? 그녀는 아직까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