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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올 사람은 와
작성일 : 19-10-11 09:08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4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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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초라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나는 주방을 줄리에게 맡겨 놓은 채 가게 문 앞에 앉아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꾸무럭했다.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가, 다리가 아파 도로 앉았다.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점심 전부터 이러고 있었으니 오후 두 시가 넘은 지금까지 서너 시간은 됐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내내 확신을 갖고 도로와 골목을 살폈다.

 

 그는 온다.

 반드시 올 것이다.

 노인 인드라의 단정한 이목구비를 나는 기억했다.

 그가 몇 십 년쯤 젊어진다 해도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도로 건너편에서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인드라는 아니었다.

 길고 가는 팔다리를 휘적휘적 움직이며 박 사장이 오고 있었다.

 

 “어제 왜 안 왔어? 내가 우리 집에 오라고 했잖아.”

 “아팠어요.”

 “그러고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어디가 아파?”

 “몸살에 장티푸스요.”

 “아하.”

 

 박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티푸스 정도는 교민들이 달고 사는 병이다 보니 오히려 안도하는 눈치였다.

 

 “뎅기열이 아닌 게 다행인 줄 알아. 그건 약도 없어. 파파야만 배터지게 먹어대야 한다고.”

 “장티푸스도 아파요.”

 

 나는 장티푸스가 설사나 하는 병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손끝발끝까지 쑤시고 저린 병인 줄은 정말 몰랐다.

 

 “아프지. 하지만 항생제가 있잖아.”

 “큰 위로가 됐습니다.”

 “어느 병원 갔어?”

 “위자야 병원이요.”

 “아이쿠. 거긴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가지 말아야 되는데. 사람 여럿 잡은 노인네가 있거든.”

 “죽을 만큼 아팠어요.”

 

 새해 첫날 일어나자마자 병원부터 찾았다.

 다행히 남자카르타 위자야에 한국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이 문을 열었다.

 의사는 날 진찰하더니 피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티푸스 진단 키트로 검사하자 10분 만에 결과가 나왔다.

 

 “장티푸스네요.”

 “심각한가요?”

 

 의사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고 내 안색을 살폈다.

 그는 숱 적은 백발에 환갑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장티푸스균이 우글댑니다. 장티푸스 목장이에요.”

 “음... 상태가 나쁘다는 말씀이죠?”

 “네.”

 

 유머감각이 특이한 의사였다.

 나는 그가 어쩌다 적도 남쪽까지 흘러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몸이 피로한 상태에서 균에 감염됐습니다. 약 먹고 푹 쉬세요.”

 “조심해야 할 음식이 있나요?”

 “밥이나 잘 드세요.”

 

 나는 장티푸스가 어디서 옮았는지 따져보았다.

 며칠 전 박 사장과 함께 바닷가인 까뿍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은 적 있는데, 그게 잘못됐을 가능성이 컸다.

 

 “형님은 괜찮아요?”

 “나는 장티푸스균 보균자야. 늘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시지.”

 “근데 웬일이에요?”

 “밥 먹으러 왔어.”

 “들어가세요. 줄리가 비빔밥 만들어줄 거예요.”

 “줄리? 마흐무드가 아니고?”

 

 나는 마흐무드 도망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박 사장은 연신 하핫, 하핫,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훌륭한 직원을 소개해 주셨어요.”

 “사실 걔가 음흉하다는 말이 좀 있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덕분에 주방이 텅 비었어요.”

 “빨리 새 꼬끼(요리사) 구해야겠는데? 내가 구해줄까?”

 “아뇨. 이미 구했어요.”“벌써? 어딨어?”

 

 박 사장이 놀라 가게 문 안을 기웃거렸다.

 나는 골목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곧 올 거예요.”

 “아는 사람인가?”

 “제가 여기서 형님 말고 아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지만 올 거예요. 저는 알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장티푸스가 심했나 보군.”

 

 박 사장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골목과 도로를 주시했다.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키가 작고 눈이 큰 남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땅만 보며 걷고 있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다가 장애물이 나오면 고개를 들었다.

 

 “왔군.”

 

 나는 인드라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내가 상상한 그대로 순한 인상의 반듯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미소를 지으면 틀림없이 보조개가 드러날 것이다.

 

 “이봐요, 이봐!”

 

 나는 인드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인드라가 내 쪽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부르는 건지 확신하지 못해 머뭇거렸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드라!”

 

 인드라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오토바이 한 대가 흙탕물을 튀기며 그 옆을 지나갔다.

 인드라는 펄쩍 뛰어 오토바이를 피한 뒤 운전자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회색 면바지 밑단이 검게 물들었다.

 

 “걱정 말고 이리 와!”

 

 인드라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않고 멀찍이 서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참다못해 그에게 갔다.

 물구덩이를 몇 개 건너 뛰어 그에게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자리 찾고 있지?”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아는 사람한테 들었어. 일이 필요하면 우리 식당으로 와.”

 

 나는 손가락으로 돌담 간판을 가리켰다.

 인드라가 눈을 잔뜩 찌푸리며 돌담을 보았다.

 

 “한식당인가요?”

 “맞아.”

 “주방 보조 찾으세요?”

 “아니. 셰프로 일해야 돼.”

 

 인드라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괴상한 외국인에게서 빨리 도망치고 싶은 것 같았다.

 

 “저는 셰프로 일한 적이 없는데요.”

 “상관없어.”

 “한식당에서 일해본 적도 없어요.”

 “상관없어.”

 “상관이 많을 것 같은데요.”

 “흠...”

 

 나는 팔짱을 끼고 인드라를 노려보았다.

 인드라가 나를 마주 보았다.

 맑고 큰 눈동자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약해보이지만 강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아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드라. 요리를 사랑하지?”

 “네.”

 “요리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

 “네.”

 “그럼 된 거야. 나를 따라 와.”

 

 나는 인드라를 앞세우고 돌담으로 갔다.

 돌담 현관문에서 인드라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스뜨르.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나를 믿어. 우린 성공할 거야.”

 “미스뜨르가 걱정돼서 하는 말입니다.”

 “글쎄, 한번만 믿어보라고!”

 

 나는 인드라의 어깨를 떠밀었다.

 인드라가 마지못해 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등 뒤에 붙어 서서 그를 주방에 들여보냈다.

 

 박 사장이 다가와 내 어깨를 쳤다.

 그는 줄리가 만들어준 비빔밥을 다 먹고 젓가락으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너무 어린 거 아냐?”

 “저는 자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셰프는 경험이 있어야 돼.”

 “염려마세요. 저는 성공하게 돼 있어요.”

 

 박 사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냅킨을 집어 박 사장에게 건넸다.

 

 “제 걱정 마시고 고추장이나 닦으세요.”

 “어제 아들이랑 얘기를 좀 했어.”

 “네?”

 “대화라는 걸 했다고.”

 “또 호통 치셨어요?”

 “아니. 서로를 이해하면서 격려하는 그런 훈훈한 가족 풍경을 만들어 냈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장한 일을 하셨어요?”

 

 박 사장이 말을 머뭇거렸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 그는 돌담을 찾아온 것이다.

 

 “자네 말대로 죽을 때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지. 스티브 잡스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어. 내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아보는 거 말이야.”

 

 박 사장은 그 말을 마치고 돌담을 나섰다.

 나는 주방 앞에 잠시 서 있었다.

 그냥 멍청하게 서서 박 사장이 돌담 현관문에서 벤을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지랄 맞은 미래는 계속 지랄 맞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우리 자신 말이다.

 

 “미스뜨르, 뭐 하세요?”

 

 리리가 무슨 일 있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제야 인드라가 기다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인드라, 나이가 몇 살이지?”

 “스물다섯이요.”

 “열 살 차이밖에 안 나네. 좋아. 오늘부터 일을 시작하지.”

 “오늘이요?”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그건 그래요.”

 

 인드라의 등 뒤에서 오, 오, 하는 탄성이 들렸다.

 홀 직원들이 배식구에 다닥다닥 붙어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줄리, 이 친구 잘 생겼지?”

 “아뇨.”

 “리리, 이 친구 이민호 닮지 않았어?”

 “전혀요.”

 “인드라, 저 브따위족들을 조심해. 널 잡아먹을 지도 몰라.”

 

 우리는 당장 수업에 들어갔다.

 나는 레시피 목록을 넘겨주고 하나씩 만들어보라고 시켰다.

 인드라는 기억력이 좋았다.

 레시피를 한번 꼼꼼히 읽은 뒤 다시 들춰보지 않고도 요리를 해냈다.

 고추장, 간장, 참기름 등 생소한 소스나 양념이 나올 때마다 이름을 일러 주었는데, 한번 듣고 바로 기억해냈다.

 그렇게 우리는 갈비를 재고, 떡갈비를 빚고, 채소를 다듬어 돌솥비빔밥을 만들고, 비벼먹을 소스도 만들었다.

 

 인드라는 창의력도 있었다.

 펜을 빌리더니 레시피 목록에 자신의 아이디어나 궁금한 부분을 적기 시작했다.

 그런 창의력에 고집이 세트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인드라와 레시피를 놓고 다투던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잡채가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인드라에게 물었다.

 인드라는 잡채를 만든 뒤 레시피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표정은 무섭도록 진지했다.

 그에게 요리는 이슬람보다 더 경건한 종교였다.

 

 “미스뜨르, 잡채에 방오를 넣는 게 좋겠어요.”

 “방오가 뭔데?”

 

 인드라가 핸드폰을 꺼내 방오라는 소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건 인도네시아인이 사랑하는 검은 소스였는데, 달콤하고 감칠맛이 좋아서 고기나 볶음밥 등에 많이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러면 면 색깔이 검어지잖아.”

 “조금 검어져도 돼요.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을 거예요.”

 “안 돼.”

 “제가 방오를 가져 올 테니 맛이나 한번 보세요.”

 

 그 첫날 나는 알아봤어야 했다.

 요리에서만큼은 누구도 인드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인드라는 기어이 내 허락을 받아내더니, 시장에 가서 방오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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