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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비키니 아머의 그녀(1)
작성일 : 19-10-10 20:35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5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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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슬슬 면회 끝날 시간이다."

 

 "...그렇군요."

 

 "너도 슬슬 감 잡고 있겠지? 다음이 언제일지."

 

 "...길겠죠. 아주."

 

 "이번엔..."

 

 동시에 둥실하고 허공에 떠오르는 타이머.

 

 99Y:364D:24:00:00

 

 "100년이다."

 

 100년.

 

 길다. 너무 길다.

 

 숨이 탁 막혔다.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큰소리를 땅땅 친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생각해 보면 그녀를 미워하던 예전에도, 시간이 지나 원망도 증오도 흐릿해진 지금도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언제나 해냈다는 성취감을 주는 커다란 보상이었다.

 

 "......"

 

 "뭘 그렇게 보냐."

 

 "...당신요. 100년간 못 볼 예쁜 얼굴이니 눈 보신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생각해보면 그녀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증오로 인해.

 

 때마침 불어온 호숫가의 젖은 바람이 그녀의 백금발을 마음껏 흐트러트리며 지나간다. 휘날리는 머리칼을 살짝 누르며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성화와도 같아서...

 

 "보지 마. 닳아."

 

 눈이 내리는 한 겨울의 어느 시골, 멀리서 울리는 산 너머의 종소리와도 같은 맑은 목소리가 마음을 흔든다.

 

 "여기선 닳아도 금방 회복된다면서요. 그러니 조금만 더요."

 

 이제부터 저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100년의 시간에도 퇴색되지 않도록 눈에 꼭꼭 새겨두자.

 

 "그렇게 줘 팼는데도 아직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걸 보면 너도 참 어지간한 놈이다."

 

 약간 질린 얼굴과 함께 돌아온 핀잔.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녀는 비가 내리는 호수의 경치를 향해 눈을 돌림으로서 내게 시간을 더 주었다.

 

 "나도 이 풍경은 좋아해..."

 

 "......"

 

 10초. 그렇게 딱 10초 후 그녀는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가렸다. 아니 정정. 움켜쥐었다.

 

 으직.

 

 "아파파파파팟?!!"

 

 "이제 그만."

 

 다행히 내 얼굴 가죽을 벗겨 데스마스크를 만들 생각이나 눈과 입을 코에다 수렴시킬 의도는 없었던지 난 금방 풀려났다.

 

 "으, 네..."

 

 10초. 너무 짧아 아쉽기 그지없지만 뭐, 그래도 괜찮다.

 

 난 웃었다.

 

 "100년... 힘내보겠습니다. 그때 다시 뵙도록 하죠."

 

 이 시험이 언제까지 이어질 거냐는 질문은 이제 하지 않는다. 대신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으려 하는 무언가를 꿀꺽 눌러 삼키곤 그녀를 향해 그저 있는 힘껏 웃음 지을 뿐이다.

 

 "시끄러, 이 섀꺄. 이제 관두라고 안 할 테니 실컷 후회나 해라. 니 맘대로 하라지. 나 간다. 100년 있다 보자."

 

 와장창.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찢어진 공간의 틈새로 몸을 밀어 넣는 그녀.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침묵으로 배웅하던 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하나에 그녀를 크게 불렀다.

 

 "저기!!!"

 

 "또 왜!!!"

 

 "누님이라 불러도 되나요!!!"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틈새에 절반이상 몸을 집어넣은 그녀였기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신님 프로감정사인 나이기에 알 수 있다. 분명 기가 막힌 표정이겠지. 그리고 동시에 저걸 튀겨죽일까 삶아죽일까 고민하는 표정도 같이 짓고 있을 거다.

 

 결국 침묵 끝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한마디였다.

 

 "지랄."

 

 그 한마디를 끝으로 모습을 감춘 그녀를 보며 난 다시 한 번 웃고 말았다.

 

 ------------------

 99Y:364D:23:59:55

 타이머가 작동을 시작한다.

 

 100년.

 100년.

 100년.

 

 "으흐흐흐."

 

 웃음이 나왔다.

 

 머리위의 양동이가 두 배는 더 무거워 진 것 같이 느껴진다. 아마 그녀가 가버렸기 때문일 터, 그녀와 얼굴을 대면하고 있는 두 시간 남짓 동안 내가 얼마나 들떠 있었던지를 알 수 있는 증거다.

 

 난 그래도 웃었다.

 

 미쳤냐고? 아니다. 이 100년을 보다 즐겁게 보낼 방법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으흐흐흐흐흐흐."

 

 다시 웃는다.

 

 그녀는 나와 대화하는 동안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그건 바로,

 

 '이 땅의 랜드마크라 할 만한 굵직굵직한 장소는 다 내 눈과 뜻 아래 있다. 누구도 개입하지 못해.'

 

 '은빛 침엽수. '겨울나무'로군... 이비 일족인가. 잠시라도 내 눈을 가리려면 최소 지천급(Cherubim, 2위계)이어야 할 테니 결국 '유카리스티아'뿐이군.'

 

 라는 두 마디를 내가 듣게 한 것이다.

 

 랜드마크니 이비일족이니 하는 것은 사실 내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녀가 날 줄곧 지켜보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내 말과 내 모습이 그녀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이냐고? 물론이다. 내 말과 내 모습이 전해진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일방통행이긴 하지만 무려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의미 아닌가?!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데 어떻게 대화 운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씀이다. 정말 과묵한 사람은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실제 허다하다. 예를 들어 볼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날 맡아주신 큰아버지는 내 사촌들과 있을 땐 허허거리다가도 나와 둘이서만 있게 되면 정말 과묵해지셨다. 가령 여름휴가가 안 맞아 숙모와 사촌만 따로 해외 바캉스를 보내고, 뒤늦은 3일 휴가를 부득이 나와 집에서 소하하시던 큰아버지는 당시...

 

 '식사하셨어요?'

 

 끄떡.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들어가 쉬세요.'

 

 흠.

 

 '아, 밖에 비 오는데.'

 

 음.

 

 만으로 삼일을 때우셨다.

 

 세상엔 이런 과묵한 사람들도 있는 거다.

 

 으흠. 좌우지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거다. 내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전달되기만 해도 그건 대화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

 

 만약 그걸론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면 가끔은 내가 열심히 눈에 새겨놓은 그녀의 이미지를 이용해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누님의 미모는 비에 젖어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는군요."

 

 '흐, 흐흥. 그렇게 칭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

 

 "다만... 추위로 파랗게 질린 입술이 너무나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요. 제가 저의 넉넉한 품으로 누님을 따뜻하게 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포옥.

 

 '흐흥. 정말로 추워서 그런 거거든!? 다른 의도는 없거든!?'

 

 같은 플레이로 놀아보는 것도!!!

 

 "......"

 

 아, 이, 이건 안 되겠다. 하면 그 순간 벼락 맞아 죽을 거야.

 

 하지만 뭐, 저런 건 안 된다 쳐도 '그렇군', '그래'같은 맞장구가 돌아오는 것 정돈 상상해도 괜찮을 거다. 그리고 그 정도면 훌륭한 대화지 뭐.

 

 대화가 가능한 삶. 생각만 해도 기쁘다.

 

 그리고 그날부터 천계에 전설로 남을 나의 혼자놀기가 시작되었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69Y:364D:21:33:17

 

 100년을 시작하고 30년. 어느새 늙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네가 되었을 즈음,

 

 "자, 누님! 오늘도 즐거운 끝말잇기를 해 볼까요! 오, 제법 하시는 군요. 시작하자마자 '편람'이라니. 하지만 그 정도론 제 발목을 잡지... 에? 북한어 금지? 거기다 고유명사도 금지? 누님. 이러시면 곤란한데. 그건 시작할 때 먼저 말씀하지 않으시면. 아, 알겠어요. 참... 누님도 승부라면 어린애처럼 고집을 피우신다니까. 람으로 시작하는 단어라, 그럼 람다! 다중? 중요! 요람? 또 람? 람바다! 다방? 방관! 관람? 람? 아, 누님. 이건 정말 아닌데..."

 

 "rpg명작이라 하면 역시 FF시리즈죠. 그렇죠? 아, 누님. 역시 뭘 좀 아시네. FF7? 좋은 게임이긴 한데, 그보다 더 괜찮은 물건이 있었어요. 바로 FFT! 캬! 이건 파고들어본 사람만 알죠. 스토리부터가 정말! 전 그거 플레이시간만 500시간을 넘겼었어요. 람자같은 경우엔 어빌리티 올마스터에다... 히로인? 히로인은 당연히 알마죠. 아그리아스? 음. 히로인이라고 하기엔 좀."

 

 "으하하하핫! 여기서 함정카드 발동! 받으시죠! 격류장!!!. 어떻습니까, 누님 저의 이 절륜한 공격이! 아니! 여기서 신의 심판이라고!? 근데 아까 한 장 쓰지 않으셨나요? 엑! OCG룰?"

 

 난 목표한대로 혼자놀기의 달인이 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재미있게 놀고 계시군요?

 

 "...엥??!!"

 

 그와 동시에 예기치 못한 손님 하나를 맞이했다.

 

 "......"

 

 "응? 왜 그러시나요? 그런 귀신 본 듯한 얼굴을 하고?"

 

 거 참,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혼자놀기 30년이면 상상이 현실에 구현되기도 하는구나.

 

 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친한 척을 하는 아가씨를 가만히 살폈다.

 

 누님신의 미모를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엎드려 절을 했을 만큼의 아름다운 외모의, 10대 후반에서 막 20대로 접어드려는 풋풋한 젊음과 건강미가 느껴지는 아가씨다. 거기에 은빛으로 빛나는 풍성한 머리칼을 허리께까지 기르고 그 끝을 파란색의 커다란 리본으로 묶어 포인트를 준 것도 훌륭하다. 175를 넘어 180에 가까운 훤칠한 키와 세련된 미모와 맞물려 언밸런스한 귀여움을 드러냈으니까. 드러냈는데, 근데, 근데, 왜 옷차림이...

 

 헐.

 

 "비키니 아머?"

 

 세상에. 누님신 못지않은 저 훌륭한 가슴과 강렬한 몸매를 가리는 게 무려 비, 비키니 아머뿐이다!!!

 

 "아, 젠장. 아무리 내 망상이라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잖아. 내가 그토록 굶었었나?"

 

 "......"

 

 그렇다. 굶긴 굶었다.

 

 생각해보니 여기와 서만 무려 42년을 굶었다!!!

 

 정신이, 정확히는 자기인식연령이 20대의 상태로 유지되다 보니 전혀 실감을 못했을 뿐.

 

 42년. 42년? 42녀어언??!!!

 

 정말? 레알? 진짜!?

 

 아니 잠깐 있어봐. 이거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닌데. 생각 좀 해 보자.

 

 내 인생역정을 요약하자면 남중->남고->공대->군대, 가 아니라 천계다. 덕분에 고3까지 가족 아닌 여자라곤 과장 좀 보태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그 학점은 따기 더럽게 빡센 주제에 여자라곤 쥐뿔도 없는 공대를 갔지. 여친? 그게 뭔데?

 즉, 즉, 나는, 나는!

 

 63년 동정이다!!!!!!

 

 아, 이럴 수가. 이걸 이제 와서 깨닫다니!

 이제 보니 난 그냥 대마법사도 아니고 우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슈퍼 울트라 초 대마법사가 아닌가!!!

 

 난 이제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렬하고 어두운 충동에 휘말렸다.

  세계. 세계라고? 그게 뭔데? X까라 그래. 그게 내가 60년 동정인생을 구가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들은 내 동정에 대해 책임을 져야해! 그래. 집어던지자. 이 물양동이 따위 당장 집어던져 버리자!!!

 

 "음... 절 보면서 그렇게 세상 다 산 표정을 지으시면... 좀 심란한데요."

 

 "시끄럿!! 지금 난 내 동정보다 인류를 개미눈꼽 만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 인간됨에 좌절하는 중이란 말이다! 망상 따위가 방해하지 맛!"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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