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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14
작성일 : 19-10-10 12:09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22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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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문인가.

  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군대에서 바라보던 그 달이었다. 마동에게 달빛을 내리며 말을 걸어주고 어깨에 내려 앉아 훈련의 고단함을 잠재워 주었던 그 달이었다. 오래전의 달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늘도 밤하늘에 떠올라 매일같이 달리는 마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동은 제대 후 여러 가지 일에 매달리고 생활하는 부분에 깊게 박혀있어서 그간 달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달빛아래서 꽉 끌어안은 후 달에게 강한 끌림을 받았다. 그동안 마동은 잘도 달의 존재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용케도 외면하며 지내왔다. 군대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용기와 힘을 받았던 달이었다. 마동은 고개를 들어 큰 달을 한참 바라보니 머리가 맑아졌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느낌이 새로웠다. 놀랍도록 새로운 기분이었다. 웜홀에 빠져들어 몸이 먼지가 되는 느낌이었다. 웜홀에 빠져나왔을 때는 새로 태어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깨끗한 정화수로 찌든 때를 벗겨 낸 물탱크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몸속에서 에너지가 들끓어 오르는 묵직한 기운이 전해졌다. 아드레날린주사를 몇 통을 맞은 기분이었다. 무엇을 하든 그 어떤 것을 하든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은 분명 하나지만 서양의 달은 음습하고 암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관념이 가득하다면 동양에서 말하는 달은 신비로워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기도를 담는 정념과 청초함이 가득했다. 동양은 태양보다 달을 더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달은 마동의 음기 속에 달 만이 다지고 있는 기운으로 한껏 불어 넣어 주었다. 달을 오랫동안보고 있었는데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한 기분이 들었다. 반응이 오려고 했다. 마동은 얼른 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리를 풀었다.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가득안고 달림으로써 주위에서 일어나는 음화현상을 버리려고 했다. 조깅으로 묵직한 에너지의 기운을 승화시키려고 했다. 충분히 몸을 풀고 난 뒤 마동은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더욱 빠르게 움직였고 보폭의 격차도 좁아졌고 보폭의 넓이는 좀 더 벌어졌다. 마동은 노인과 마주치기전보다 더욱 빠르게 달렸다. 달은 그동안의 어떤 날보다 더 환하게 자신을 드러냈고 마동의 몸 상태는 절정에 달해있었다. 달리면서 느껴지는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스쳤다. 마동은 자전거보다 더 빠르게 바람을 가르며 사람들이 없는 보도사이를 질주했다. 지금 같은 몸 상태라면 육상대회에서도 모든 분야를 석권할 것이다. 마동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더 이상 마동 자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했다.

  내일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데 어떠한 음식물도 먹지 않으면 검사가 더 용이할 수 있다. 잘 된 일이다. 지금 이대로의 몸 상태라면 검사 따위는 받지 않아도 되지만 분명 몸은 어떠한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달리는데 목 부분의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따가웠다. 마동은 자신이 딱히 어떤 부분에 대해서 변이가 일어나는지 감지해내지 못했지만 신체의 여러 부분과 머릿속의 여러 구간에서 변이는 일어나고 있었다. 달빛이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상쾌함은 실존적이다. 가상이나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니체의 사상이 가득했다. 권위가 꽉 찬 이곳에서 권력이 무엇인지 권세를 모두 거부하는 상쾌함이었다. 니체는 깨달음으로 어느 순간 몸을 채우더니 사람의 괴로움을 서서히 비워버렸다. 달빛은 니체를 닮았다. 니체는 드디어 가치를 전환함으로 영혼이 맑게 되었다. 달의 형상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가치전환을 이루고 있는 상쾌한 달빛이 저 먼 곳에서 달리고 있는 마동에게 쏟아졌다. 달리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마동은 진정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느낌이 강하고 생생해서 손으로 만져질 것 같았다. 10킬로미터를 단숨에 달리고 해안가의 조깅코스로 다시 접어들었다. 여름밤의 해안가는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작은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사람들, 해안가에서 돗자리를 치고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시에서 마련한 휴양소에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깔고 수박을 잘라서 먹고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밤이면 만취한 사람들이 쥐약을 먹은 배고픈 들개처럼 휘청거리며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곧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무리가 바다에 들어가면 어디선가 휘슬소리가 들리고 경비대에 끌려 밖으로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마동이 달리는 해안의 바다는 기존 바다에 인접한 해수욕장처럼 서서히 깊어지는 바다가 아니었다. 시에서 해수욕장으로 개조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투자했지만 정부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해수욕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시의 시청과 구청은 오랜 시간 정부와 줄다리기에서 해수욕장으로 허가를 받았고 전국의 해수욕장에 이곳의 해변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시청과 구청의 도시개발과에서는 투자를 받은 자본으로 30미터이상 바다 속으로 걸어가도 허리정도밖에 물이 오지 않게 해수욕장의 바다 높이를 맞추었다. 10킬로미터 내의 바다 속의 수질과 수온도 조절을 했고 생태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하여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지는 밤이 되면 멀리 나가있던 작은 게나 붕장어 같은 물고기가 해안가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게 하려고 시간을 들여 연구를 하고 꾸준하게 조성했다. 해변의 많은 소나무 대신 야자수 스무 종류를 심어서 추이를 관찰했다. 덕분에 해수욕장은 낮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는 밤의 해변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겨울역시 바다낚시를 허용해서 수채화 같은 모습이 공존하는 해수욕장으로 전국에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시사철 어느 정도의 호황을 꾸준하게 이어가게 된 해수욕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얕은 수심을 가진 바다라도 바다였다. 바다의 속성은 해양학자들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바다는 고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히스테릭한 여자와 흡사했다. 언제 어떤 표정으로 바뀔지 모른다. 고요하게만 보이는 잔잔한 바다라도 만취한 사람이 뛰어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사고의 위험성이 다분했고 사고가 나면 시에서도 꽤 난처한 입장이 된다. 정부가 채결을 결정해준 것은 사고가 없어야 한다는 조항에 도시가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해변은 바다사고가 하직 한 번도 없었고 안전에 더욱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가족단위의 인파가 이곳 해변으로 몰려들었다. 만취해서 객기로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는 더 멀리 나가려는 습성을 지니는 사람도 있었다. 해안 경비대는 호루라기를 불며 야간 입수를 금지시켰다.

  마동은 자신처럼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 손을 잡고 해안가를 다니는 연인들, 각종 음료와 먹을거리를 먹는 풍경을 보면서 등대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한여름 밤의 세계에 녹아들고 있었다. 등대로 올라가는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동 앞에서 누군가 송아지만한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송아지만한 개를 두 마리나 몰고 마동의 옆을 스칠 때 개들이 마동을 보며 으르렁 거렸다. 이내 짖어 대기 시작했다.

  컹 컹. 컹 컹 컹.

  송아지만한 덩치의 개가 짖는 소리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인도 주위의 사람들 못지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주인은 개들에게 안 돼! 같은 말을 큰소리로 했다. 큰개가 으르렁 거리며 짖는 소리는 무섭기까지 했다. 마동은 놀라지도 몸을 뒤로 물리지도 않았다. 큰 덩치의 개주인만 더 놀라는 모습이었다. 혹시 자신의 개들이 마동에게 뛰어 들지나 않나 노심초사했다. 주인은 주름하나 없는 먼싱웨어 여름용 니트와 반바지를 입었다. 거대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할 복장으로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이 녀석들이 왜 이러지, 하는 눈빛으로 개들의 목줄을 잡아 당겼고 개들에게 안 돼!라고 소리 질렀지만 개들은 더 크게 짖어댔다.

  “샘, 샘, 쉿! 쉬잇! 안 돼! 쟈크, 왜 그래! 안 돼! 쉿!” 주인은 당황스러운 눈빛이 완연한 채 자신의 개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했다. 개들이 두 발을 들며 마동에게로 오려고 하니 주인의 힘으로는 개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개의 이름이 샘? 쟈크? 저 사람은 영화를 많이 본 모양이구나.

  개들은 힘을 주며 마동에게 덤벼들 기세를 취하며 발버둥을 치니 주인은 그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주인의 덩치도 만만찮았지만 무리였다. 마동은 개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개들의 눈을 쳐다보았다. 순간 개들의 눈에는 경계와 무서움이 동시에 스며들어가기 시작했다. 개들이 한 마리였다면 아마 마동을 보며 짖지도 못했을 것이다. 개들은 마동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동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개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두려움은 개들의 눈동자 속에 꽉 들어차서 공포를 만들어냈다. 마동의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개들의 눈동자는 점점 작아져 줄어들었다. 개들은 마동의 눈에서 무엇을 읽어냈다. 개들은 마동의 눈과 마주치고 몇 초가 지나자 하늘로 솟아오른 꼬리가 밑으로 내려가서 엉덩이 안으로 말려들어가 버렸고 짖어대던 소리는 끙끙 앓는 소리로 바뀌었다. 개들은 마동의 시선을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개들의 주인은 뜻하지 않던 개들의 행동과 반응에 쩔쩔매고 있었다. 주인은 풀죽은 개들의 모습을 처음 보는 양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개들을 쓰다듬어가면서 왜 그러냐고 계속 물었다. 주인은 고개를 돌려 마동을 쳐다보았다. 마동은 개 주인이 개들이 마동을 향해 짖고 달려들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줄 알았지만 그저 마동을 무섭게 쳐다 볼 뿐이었다. 개들의 표정은 이내 앞니 빠진 힘 잃은 중환자 같은 얼굴을 하고 마동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끙끙 거렸다. 개들이 너무 갑작스레 짖어서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놀랐지만 개들의 주인은 자신의 풀죽은 개들만 걱정되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들은 낑낑 소리를 내며 움직이지도 못했고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한 마리가 오줌을 갈겼다. 오줌은 바닥과 털에 그대로 모래와 함께 뒤섞였다. 주인은 샘을 부르며 계속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동을 무섭게 노려보던 개들의 주인도 마음이 바뀌었는지 마동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진심은 없었다. 마동은 괜찮다고 말했다. 송아지만한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킨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주인으로서 조련자로서 꽤 자질도 갖추고 있어야 하고 훈련도 받아야 한다. 개들 뿐 아니라 주인도 같이 개들의 옆에서 개들을 리드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큰 개들을 사람들 틈에서 서로에게 불편함이 없이 산책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큰 개들이 주위의 급작스런 상황에 놀라서 발광을 하게 되면 훈련받지 못한 일반인 큰 개들의 리드믹컬한 움직임을 제압 할 수 없다. 이는 곧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개들은 당황하면 인간처럼 현실적 이해관계에 대해서 타협을 모른다. 조련자는 침착함과 오래된 경험이 쌓여야 큰 개들을 제압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이 개들의 주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마동에게 사과를 하고 개의 주인은 개들을 데리고 가던 길로 갔다. 개 주인의 생각이 마동의 의식에 와서 닿았다.

  -저놈은 뭐하는 놈일까. 어째서 우리 아이들이 어처럼 짖어댈까. 아이들이 관찰자로서의 능력이 저하된 것일까. 감각이 무뎌진 것일까.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갑자기 이렇게 아이들이 크게 짖어대고 달려들려고 하는 경우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은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훈련의 과정을 망각하고 미친 듯이 한 사람을 보고 짖어댈 리가 없다.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30대 남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엇인가 감지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심하게 짖는 모습은 훈련소에서 조금 벗어난 산장에서 야외 훈련을 했을 때였다. 겨울이었고 본디 이 녀석들은 추운 날씨에 강한 녀석들이다. 다른 종의 개들보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집을 강직하게 지킬 수 있는 아이들이다. 겨울의 산장에 밤이 드리우고 들개들이 먹잇감을 찾아 산장근처에 내려왔을 때 이 녀석들이 크게 짖어댄걸 본 적이 있다. 지금도 바로 그때처럼 이 녀석들이 짖었다. 단지 그때와 다른 점은 그땐 들개들에게 달려들어 무리수가 많은 그 녀석들을 산장근처에서 밖으로 내 몰아 버렸지만 저 사람과 눈빛이 마주한 후 병든 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주인은 뒤돌아 마동을 잠깐 쳐다보았다.

  -자신들보다 사납고 무리수가 많아도 주인이 위협에 처하면 달려들었던 녀석들이다. 그렇게 훈련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이렇게 맥없이 꼬리를 내리는 녀석들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훈련이 확실하게 되어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녀석들은 저놈에게 어떤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무엇일까. 이 녀석들의 반응과 행동으로 봤을 때 ‘혼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과 어떤 기류 같은 것이 있다. 그 어떤 기류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풍기는 아우라는 아니다. 저놈에게 이 녀석들은 무엇을 느꼈단 말인가-

  개 주인의 생각이 들렸고 개들과 개의 주인이 멀어지면서 그 생각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동의 변이에 대해서 개들은 감지했다. 개들은, 집안의 작은 강아지를 제외하고 짐승의 본능에 가까운 큰 덩치의 개들은 마동의 변이를 알아챘다. 변이는 회색빛깔을 지니고 있어서 개들에게는 대항해야 할 두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네거티브 적인 면을 본 것이다. 곧이어 마동의 귓전에 웅웅거리며 이명이 서서히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후에 내과병동 대기실에서 들렸던 이명과 같은 소리가 마동의 귀 주위에서 웅웅거리며 날파리 떼처럼 날아들었다. 수만 마리의 벌레 떼가 움직이는 소리, 쎄사사사사사삭 하는 기분 나쁜 소리들이 잡음처럼 들리더니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수 만 마리의 날벌레들이 모여들더니 한 마리 위에 한 마리가 붙어 버리고 그 위에 또 한 마리, 한 마리, 열 마리, 수십 마리가 붙어 버렸다. 끔찍한 광경이다. 이내 이명은 덩어리가 되어서 마동의 귀 안으로 우악스럽게 끼어들었다. 이명은 공명이 되었다. 공명 때문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마동은 하나로 뭉쳐진 소리의 덩어리에 집중을 했다. 마동의 머릿속 사고는 몇 일전에 비해서 더욱 원활하게 가동되고 수치적응과 상황대처 능력이 빠르고 정확했다. 이번 클라이언트의 어려운 꿈 리모델링도 막힘없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마동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서번트 물질이 뇌에서 흘러나와 이런 변이가 찾아왔다면 마동은 나름대로 다행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동은 해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았다.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벤치에 양 팔을 뻗어 팔굽혀펴기를 15회 한 다음 다리에 스트레칭을 했다. 허벅지의 근육이 경륜선수만큼 찰지고 갈라져 있었다. 신체의 변화와 함께 이번 클라이언트의 작업을 하룻밤 만에 해버린 능력의 상승도 변이에 속했다. 개들이 마동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몹시 무섭게 짖어댔다. 역시 변이 때문이다. 마동은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 또 집중.

  뭉쳐있는 공명으로 정신을 모았다. 뭉쳐진 공명 속에서 소리를 하나씩 뽑아낼 수 있었다. 마동의 능력 밖 작업도 변이가 가져다 준 귀결이라면 마음이 조금 아팠다. 하지만 수용하고자 마동은 생각하고 다짐했다. 받아들이자,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 이미 그러기를 했잖아. 그러면 된다. 무의식은 이미 변이를 받아들였다. 변이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부분은 의식이었다. 의식은 아직 귀속되지 않고 마동 자신의 자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 사살에 마동은 조금 안심했다. 보통사람들도 신체의 변화를 겪고 의식의 다변화를 꿈꾸고 자신도 모르게 변이된다고 분홍간호사가 말했다. 어쩌면, 까지 생각한 다음 마동은 생각을 접고 다시 팔굽혀펴기를 계속했다. 그 이후에 생각을 계속 한다고 해도 올바른 결론은 없고 혼란만 있을 뿐이다. 부딪히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엔진의 성능에 따른 자동차의 반응소리), 밤바다의 소리, 모래를 밟은 소리, 아기가 우는 소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강이 흐르는 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명 속에 뭉쳐져 있었다. 웅웅, 공명이 귓속에 가득 차 있었고 마동은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정신을 한곳으로 모았다. 마동은 눈을 감고 무릎을 풀어주고 앉았다 일어났다. 그 동작을 반복했다. 15회씩 같은 패턴으로 팔굽혀펴기와 함께 4파트를 했다. 정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무더운 여름밤이었고 인파에 끈적끈적함이 더해졌지만 마동은 땀을 전혀 흘리지 않았다. 하나로 뭉쳐진 소리의 공명에서 원하는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지 이제 마동은 자신의 집중력을 실험해보았다. 마동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벤치에 등을 기대로 앉았다. 눈을 감고 뜨지 않았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의 소리를 올렸다. 노랫소리는 공명에 가려져 아무리 크게 키워도 들리지 않았다. 노래는 귀에 전달되지 않고 뭉쳐진 공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노래 소리를 더 키웠다. 노래는 공명에 가려져 전혀 들리지 않았다.

  웅 웅 웅.

  마동은 정신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오래전 처음 입사해서 훈련을 받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에 시간과 자아를 모두 쏟아 부었을 때처럼 신경을 한 곳에 모아서 집중했다. 물에 불은 실처럼 잔가지가 많이 뻗어 나와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실에 초를 바르고 잔가지가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두려고 집중을 한다. 매일 했었다. 하루에 10시간씩 투자를 해서 정신을 그러모으는 훈련을 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기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정신을 모은다는 것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정신이 도달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시냅스를 사용해야 하고 세포를 분열시켜야 한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오너가 옆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이 놀랄 일을 우리가 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동에게는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고 오너는 말했다. 마동은 정신을 모으기 위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올렸다. 지금은 머릿속의 공간에서 그녀가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의 신비스러운 눈빛과 가슴골.

  가슴골에 파묻히는 마동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존재는 소설가에게는 연필이었으며 피아니스트에게는 피아노였고 축구선수에게는 축구공이었다. 그녀는 어디에서 이곳으로 왔을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떠올리면 끝없는 질문만 계속됐다. 마동은 공허한 질문을 한 자신을 책망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마침내 하나의 공명 속에서 노래라는 소리를 뽑아냈다. 뽑아낸 소리를 통해서 들려오는 음악을 뮤즈의 레지스턴스였다. 비로소 노랫소리가 마동의 머리에 전달이 되었다. 노래는 이어폰으로 마동의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공명 속에서 뽑아낸 소리로써 마동의 의식에 전달이 되었다. 뮤즈의 노래다. 뮤즈는 영국밴드다. 초기의 뮤즈모습은 라디오 헤드의 카피 그룹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들은 노력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다. 의심을 종식시켰다. 마동은 뮤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죽 늘어놓았다. 영화 속에서도 뮤즈의 노래가 나온 적이 있다. ‘7파운스’라는 영화에 뮤즈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주인공 벤은 자신의 죄책감으로 매일 죽음으로 향해 가는 훈련을 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부인을 잃은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 벤은 완전함과 무의식 사이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잃을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이라고 믿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7명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싶었던 벤. 사랑하는 에밀리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뮤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영상은 아주 침울했다. 벤은 자신의 죽음이 죄책감을 해결하는 방안이라 여겼다. 늘 유쾌한 윌 스미스의 우울한 연기를 볼 수 있었고 뮤즈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마동은 얼굴에 미소를 살며시 만들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미소를.

  자 이제, 마동은 노랫소리 이면의 다른 소리도 뽑아내려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머릿속 노래를 끊고 이어폰으로 들리는 노랫소리의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소리를 줄이라는 경고가 휴대전화기 화면에 떴다.

  집. 중.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한꺼번에 들을 수는 없었다. 딱히 집어서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선이 있었다. 주위 10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에 마동은 도전했다. 마동의 집중력이 하나로 뭉쳐진 사람들의 공명에 가서 닿았다. 그리고 뇌파를 채취하듯 날카롭고 뾰족한 바늘 끝이 공명을 뚫고 조심스레 들어갔다. 사람들이 의식을 드러냈다. 그들의 의식은 희미했다. 웅웅거리며 크게 들리는 노랫소리 사이를 벌리고 마동의 머릿속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들어온 것이다. 마동은 다시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웅 웅.

  -이 여자와 오늘 잘까- 웅 웅.

  -이 남자를 믿어도 될까- 웅 웅.

  -월급을 속였는데 들키면 어쩌지- 웅 웅.

  -존나 덥다. 씹할.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웅 웅.

  -빨리 한잔마시고 섹스하고 싶다- 웅 웅.

  불명확하고 오래된 고다르 영화 속 장면처럼 그들의 언어는 마동의 귀를 통해 머릿속에 잡음 섞인 모순의 미립자로 따갑게 들어왔다. 대부분 술을 마셨고 무더위에 지쳤고 젊은 남자들은 여자와 몸을 나누기를 바라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이젠 꽤 정확하게 그들의 생각이 들렸다. 마동은 벤치에 앉은 채 이어폰을 뺀 다음 귀를 양 손으로 막았다. 지금 들리는 이명은 오후의 병원에서보다 그 소리가 명확했다.

  다시 집중.

  어떠한 특징을 띠고 타인의 의식은 공명의 사이를 뚫고 보이지 않는 바람에 실려 정확하게 마동의 귀 안으로 틈입되었다. 이명으로 전달되는 소리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서 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마동은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으며 사람들과 의식을 자의로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 의식의 소리는 말소리와는 달랐으며 그들의 의식은 뒤죽박죽이었다. 낡은 건물 속의 오래된 공간과 새로운 인테리어 공간처럼 들쑥날쑥 이었다. 대부분 입으로 나오는 말과 생각은 일치하지 않았고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멜 깁슨의 ‘왓 위민 원트’에서 여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생각은 실제 행동과 구어로 하는 말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오류적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해변에 가득 모여있다는 것이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이렇게 사람들의 의식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변이를 위한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에 도달한다고 해서 마동에게 있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정신의 집중이 마동의 자아에 도움이 되는 걸까, 변이가 오기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지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밖에 없는 일이며 해야 할 일이라고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은 사람들의 의식이 내는 제각각의 소리가 마동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을 때 엄청난 이질감의 의식 하나가 침입해왔다. 그것은 마동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소리와 소음, 의식의 이명이 혼재해있는 혼잡한 소리사이를 예리하게 벌리고 마동의 의식으로 파고들었다. 침투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의 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또렷한 소리였으며 이질감은 굉장했다.

  -이것 봐 자네는 누구 보통 인간들과 다른 양상을 띠고 이다-

  언어는 이상했다. 마침표가 없었다.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문단은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어떤 누군가의 의식이 분명했다. 그 의식은 사람들의 뒤죽박죽인 의식을 지나 정확하게 마동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마동이 집중하여 그 의식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마동에게 그 의식이 직접 다가온 것이다. 분명 인간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의식의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동에게 전달된 의식의 소리는 아주 강한 성질의 도드라진 전기 파장 같은 잡음이었다. 거부할 만큼 어두운 의식의 소리도 아니었다. 대기의 울림이 달랐고 그 의식의 소리는 진공관을 타고 흐르는 빛처럼 흔들림 없이 많은 무의식의 소리 사이사이를 거쳐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심지어는 부딪히지도 않고 마동의 의식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소리가 침투하듯 들어왔으면 두 번째는 배려있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마동에게 와서 닿았다. 마동은 처음 소리를 듣고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각자의 즐거움에 심취해있었고 그들 중 마동의 뇌파에 접근하여 의식을 전달할만한 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봐 그쪽을 아무리 찾아도 나는 눈에 띄지 않다 너의 뒤쪽에 있는 작은 간이카페가 보이다 그쪽으로 걸어올 수 있다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마동은 벤치에서 일어나서 해변을 등지고 음의 파장이 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길거리에서 폭죽을 파는 곳에서 학생이 목젖이 터져라 폭죽을 팔려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폭죽은 불법이지만 곳곳에서 폭죽판매가 성행했다. 학생 뒤에는 팔뚝의 문신을 드러낸 채 학생의 선배로 보이는 아이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폭죽을 사러왔다가 폭죽의 가격에 놀라는 표정을 짓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이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학생에게 돈을 지불하고 폭죽 10개 들이 한 묶음세트를 집어 들었다. 여자는 낱개로 된 하나만 사자고 했지만 남자는 그대로 돈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동은 그들을 지나쳐 간이카페로 갔다. 간이카페는 시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커피와 각종 음료를 팔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지역조직에게 벌어들인 금액의 몇 퍼센트를 갖다 줘야 한다. 합법적으로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불만은 불만대로 듣고 시청에서 단속이 나오면 조직의 연락망을 통해 미리 연락을 받아 위기는 모면했지만 하루 장사는 끝이었다. 하루를 벌어들이지 못하면 이상하지만 이틀이 손해가 났다. 조직에게 바치는 납입액이 세금을 능가했다. 조선시대 세금징수의 악행이 고스란히 내려오고 있었다. 간이카페의 주인들은 활기차고 한몫을 챙길 수 있는 여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 중 한 간이카페 앞에 마동은 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들어 놓은 작은 카페였다. 밖에서 보이는 실내는 4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남녀커플들이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앉아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마동은 소리의 파장이 부르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간이카페의 오른편을 돌아서 뒤편으로 가니 거대한 블랙 그레이트데인 견이 목줄을 한 채 일어서 있다가 마동이 오는 소리를 듣고 마동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이 사뭇 가벼워 보였다. 무게감이 없어 보였다. 마동이 달리기를 할 때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젯밤에 봤던 그 개였다. 눈빛이 달랐던 그 거대한 대형견.

  아마도 카페의 주인이 기르는 개인 모양이다. 아주 초대형견이다. 두발로 벌떡 일어선다면 성인남자의 키도 훌쩍 넘을 것이다. 분명 훈련을 제대로 받았고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고 집을 잘 지킬 것이다. 이렇게 큰 초대형 견은 목적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키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을 매일 시켜줘야 하고 인간이 먹는 음식을 먹이지 않아야 한다. 이 그레이트데인은 주인과의 교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마동은 알 수 있었다. 덩치가 엄청났지만 미끈한 모습에 움직임은 날렵했다. 몸을 살짝 트는 모습에서도 훈련을 받지 않은 개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앞다리는 땅을 디디고 있었고 뒷다리는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처럼 뒤로 죽 뻗고 있었다. 턱은 상향 15도 정도 들고 있었다.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처럼 보였다. 온몸이 어두운 색으로 검은빛이 좋았고 반질거리는 털은 달빛을 받아 더욱 신비스러운 광채였다. 지구의 모든 소리를 들으려는 듯 귀는 하늘로 쫑긋 올라가 있고 꼬리는 C자형으로 끝은 하늘너머의 종족과 교신이라도 하듯 한 지점을 향해 있었다. 털의 매혹적인 검은 빛깔은 눈 밑으로 해서 입까지 이어졌다. 움푹 들어간 눈은 또렷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개의 몸은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듯 강하게 보였지만 눈빛은 그리움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레이트데인의 눈동자에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을 들여다보는 착각이 자꾸 들어서 마동은 가슴이 뛰었다. 그레이트데인의 눈동자에서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는 달리 일종의 편안함이 서려 있었다. 오래된 낡은 혼란이 마동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만약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다. 마동은 자신도 모르게 그 그레이트데인 곁으로 가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개는 가만히 마동에게 반질한 머리를 내주었다. 마동은 초대형 그레이트데인을 처음 보았다.

  이렇게 큰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구나. 마동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카페의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큰 개를 키우려면 집 마당이 넓거나 옥상이라도 커야 한다. 한국 땅에서는 좀체 키우기가 힘든 개였다. 뒷문으로 카페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마동과 그레이트데인의 모습을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덩치는 있지만 몸은 마르고 스포츠형의 짧은 머리모양을 하고 검은 반팔 티셔츠와 검은 여름데님바지를 입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만 세련되어 보였다.

  “장군이는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거 같소.”

  주인도 그레이트데인을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초대형견의 이름은 장군이었다. 장군이가 주인을 보자 아주 반갑게 짖어대고 두 앞발을 들어 주인의 가슴에 올렸다. 컹 컹 거리는 소리는 해안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소리를 들어보시오. 이렇게 큰데 말이어. 초원 같은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하는데 지금처럼 묶여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주인은 진정으로 장군이가 답답해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적어도 마동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마동은 주인의 의식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제가 이렇게 큰 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장군이는 지금 불만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주인을 아주 좋아하고 말이죠.” 마동은 계속 말을 이었다. “개들의 의식은 주인을 향한 사랑이 전부입니다. 아주 기이한 생물체 같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완전체의 애정 어린 모순덩어리가 있다면 개가 아닐까합니다. 개는 죽기 전까지 주인에게 하던 행동이나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의식을 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니까요. 개들은 사랑으로만 똘똘 뭉쳐 있어서 아주 행복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가장 불쌍한 동물이 틀림없습니다.”

  마동의 말을 듣고 장군이의 주인은 보드랍고 짧은 털을 가진 장군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미소를 지었다. 코 옆으로 주름이 깊게 패였다. 주름은 곧 얼굴 전체로 피어올랐다. 기분 좋은 주름이었다.

  “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군요. 개의 내면에 대해서 말이오. 내가 괜스레 기분이 좋구먼. 사실 장군이도 훈련소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었소. 개를 훈련시킨다는 것이 인간이 편리하고자, 인간이 좀 더 개에 다가가는 방식이잖소. 개는 어쩌면 훈련 같은 것이 필요 없는지 모르지. 하지만 인간은 개를 훈련시켜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개에게 일임하고 있소. 인간이 가지 못하는 달에 개가 최초로 날아갔지만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지. 위배 적이오. 인간이란 그래.”

  “헌데 장군이는 다른 개들에 비해서 훈련소에 오래 있지 않았소. 한 달 정도 있다가 퇴소를 했지. 훈련소에서 연락이 왔더군. 더 훈련시켜야 할 개가 아니라고 말이오. 그래서 데리고 왔지. 훈련소의 말 그대로였소. 우리 장군이는.” 주인은 장군이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개의 머리라는 것은 주인이 쓰다듬기 좋게 그렇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마동은 주인과 장군이 가까이 있었다. 장군이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 보게. 대부분 낯선 이들이 가까이 오면 아주 크게 짖어 대는데 당신은 좀 다르군요. 당신을 처음 보자마자 잘 따르는 것 같소. 이럴 때 주인은 질투를 느끼지. 이례적이야.” 주인은 잭 니콜슨 같은 표정으로 장군이의 상체를 안아줬다.

  “장군이가 낯선 사람에게는 크게 짖는군요.”

  “그럼요. 이렇게 큰 개들은 대부분 그러합니다. 주인을 지켜야 한다고 훈련을 받은 개들은 사명감 같은 것이 몸에 가득 차 있나보오. 아주 당연한 것이지. 장군이가 이곳으로 온 낯선이에게 방어적이 아닌 자세는 처음 보는 듯 하오. 당신도 개를 좋아하시오? 집에 개를 키우고 있소?”

  “아니요. 키우지 않습니다. 굉장히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마동은 장군이의 눈을 보며 주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 이 시간쯤에 한 번 더 오시오. 장군이를 산책 시킬 건데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이오.”

  이렇게 큰 개들은 산책시키기 힘들다. 앞서 두 마리의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끌려가는 주인에게서도 그 모습을 봤지만 장군이가 힘 있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면 아마 주인은 휘청휘청하며 딸려 갈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마동은 자신을 불러들인 의식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나를 부른 의식을 지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도 나처럼 변이를 일으키고 있기에 나를 알아본 것일까.

  마동을 이곳으로 부른 의식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레이트데인 장군이와 장군이 주인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 별일이 없다면 이곳으로 조깅을 하러 올 겁니다. 들리겠습니다.”

  -반드시 내일 오도록 하다-

  진공관을 흐르는 듯 기이하고 이질적인 의식이 다시 한 번 들렸다. 장군이의 주인과 이야기하는 동안 자의식으로 마동에게 의식을 전했고 곧 사라졌다. 문체도 깨지고 소리도 완전하게 사람이 내는 소리와는 달랐다. 이질적인 의식의 소리는 또렷하게 마동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동에게 다가온 이질적인 의식의 소리는 시작도 끝도 없었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빈 공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전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마동은 장군이의 주인에게 내일 조깅을 하면서 이곳에 들리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을 시켜준 다음 그곳을 벗어났다. 마동은 카페를 벗어나 해변의 조깅코스로 다시 올라왔다. 카페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마동의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장군이가 마동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꼬리는 살아서 따로 움직이는 도마뱀 같았다. 장군이는 묘한 눈빛으로 마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동은 고개를 뒤로 돌린 채 장군이의 눈빛을 응시했다. 한참을 그 눈빛을 쳐다보았다. 동물 같지 않는 눈빛.

  장군이와 1분 정도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일렁이던 어떤 작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 마음은 마동의 것이 아니다. 곧이어 자주 꾸던 꿈속의 그곳이 나타나더니 손을 잡고 병원을 거닐던 어린 시절 마동의 모습도 희미하게 나타났다.

  이 작고 미미한 마음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마동은 작은 마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동의 마음속에 누군가의 그리움이 숨어 있었다. 분명 마동이 지니고 있는, 마동의 그리움과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마동은 자신에게 자문했다.

  나에게 그리움이라는 것이 생존해 있었을까.

  마동은 그동안 그리움 따위의 감정은 물기를 바짝 말린 수건처럼 완전하게 건조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마동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마음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동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 마동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지나간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감정일 뿐이다. 추억을 재생하는 감정은 삶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마동의 입장이었다. 특히, 마동은 자신이 하는 일에 타인이 이루지 못한 고장 난 꿈의 집약을 채취하고 갉고 닦아서 완전한 하나의 꿈을 만들어 리모델링하는 것이 직업이다.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지나간 감정에 젖어있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 여겼다. 회사에 입사하기 이전부터 마동은 그런 주의였다. 감정의 결여를 언제부터 받아들였는지, 그동안 그리움이라는 작은 떨림도 없이 잘 도 지내왔다구, 어떻게 지금껏 생활해왔냐고 자문했다. 질문은 여러 개였지만 질문에 맞는 답은 늘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마동은 그리운 감정을 결여시킨 채 지금껏 지내왔다. 그것이 마동이 선택한 하나의 방법론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론이 존재한다. 자본론, 실존론, 종교론 등등. 사라진 대 수학자와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론’이 세상사에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념은 오히려 레닌이 만들어낸 마케팅 같은 것이다. 마케팅은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들의 의식을 파고들어서 선동을 하기도 하고 작은 기업을 대번에 공룡기업으로 만들기도 한다. 대중이란 꽤 단순해서 하나의 반복적인 마케팅을 계속 주입시키면 그것이 ‘앎’이자 ‘옳음’으로 받아들인다.

  나만의 방법론이 내가 치열한 인간사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리움이 가득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명도.

  대학교 때 같이 동거를 하던 여자도, 고향집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를 어머니도, 지나쳤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그립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아버지도 그리운 존재에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동은 장군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가슴에 일렁이는 작은 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작은 마음은 마동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온 신경세포를 통해 전달했다.

  도대체 누구의 마음일까.

  마동은 대학교 때를 잠시 떠 올렸다. 동거를 했던 그 여자의 마음은 필시 아니었다. 마동보다 3살 많고 피아노를 전공하던 여자, 두 사람은 섹스를 했다. 그것이 그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상적인 그 여자의 모습이었다. 갈구하던 여자의 몸은 거짓말처럼 옷을 벗는 순간 달라졌다. 땀 때문에 얼굴에 무늬를 만들어낸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마동은 불우했고 그녀는 마음이 가난했다. 그렇다고 마동이 마음이 풍족하고 그녀에게 돈이 많았다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엇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가난하게 대학에 진학하여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했다. 그녀를 만난 건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었다. 그곳은 대형 한식레스토랑으로 숯으로 요리를 하는 대형 전문 식당이었다. 마동은 그곳에서 접시도 닦고 조리용 불판에 들어갈 숯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하다 보면 숯을 만지게 되는 위치에 오르고 숯 관리를 잘하면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숯은 향이 배이게 요리하는 음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숯을 관리하는 것에는 집중을 요했다. 주로 백탄참숯을 사용하는 레스토랑이라 숯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레스토랑 뒤편 정원에는 참나무장작이 가득 쌓여있고 마동은 직접 그 장작을 잘라서 숯으로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백탄은 1300도의 고열로 가열하고 골고루 태워줘야 한다. 그리고 질 좋은 흙으로 백탄을 덮어 산소를 차단하고 식히는 과정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아주 까다로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탄생되어야 숯은 유해성분이 빠져나가고 최고급의 숯으로 남게 되어 손님들의 상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마동은 숯을 다루는 것을 유독 잘했고 이전에 숯을 만지던 이들에 비해 숯에 대한 집중도가 뛰어났다.

  그녀는 홀에서 파트타임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3살 많은 그녀는 마동보다 석 달 먼저 일을 했다. 마동은 그녀를 만나기전에 몇몇의 여자들과 잠을 자기는 했지만 그 관계가 발전하지는 않았다. 섹스를 하고 등을 보이며 헤어지는 것에 익숙했고 편했다. 마동은 가난했기에 남녀사이에 일어나는, 확인받으려는 마음이 깔린 기념일을 챙기거나 여행은 사치였다. 그녀는 피아노를 공부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아르바이트의 급여를 받았지만 집에 피아노가 없는 그녀는 이곳을 피아노를 연습하는 연습실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수업을 들으며 수업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동은 학과 후에는 식당에서 숯을 관리하는 일을 자정이 넘도록 했다. 수업시간을 쪼개서 마동이 했던 아르바이트에는 세계의 건축사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아르누보양식이나 고전건축양식에 대해서 가르치는 일도 했고 대형 제과점에서 신제품을 시식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환경미화원들의 싸리 빗자루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거리는 드물었고 결국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숯불을 다루는 일까지 하게 되었는데 숯을 다루는 일이 꽤 오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동은 숯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고 집중했다. 숯을 다루는 일은 정신을 흩뜨려 놓고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숯은 살아있어서 마동이 얼마나 숯에게 애정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질 좋은 백탄으로 바뀌거나 하찮은 숯으로 떨어지거나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마동에게 달린 것이다. 달구어진 숯은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뜨거운 심장을 보는 것 같았다. 정성을 기울이면 그 붉은 빛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숯의 몸을 몽땅 달구며 피어올랐다. 숯이 지니는 붉은 혁명은 아름다운 아르누보를 넘어서는 미학이 담겨 있었다. 마동은 숯불을 다루면서 불꽃이 지니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색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신의 마음이 투사되었다. 마동은 숯의 불빛에 현혹되어서 하마터면 손으로 숯을 잡을 뻔했다. 숯불 속의 가녀린 불꽃은 마치 마동 속에 있는 심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마동은 숯불을 바라보는 것에 빠져버려서 다른 숯불의 관리를 놓쳐버렸다. 그 순간 숯불은 아우성을 일으키고 탄성과 절규를 부르짖으며 꺼져갔다. 숯불의 전도열을 이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 올 스톱이 되었고 예약된 손님들은 레스토랑 측에 불만을 토로했다. 마동은 사장과 매니저에게 각각 불려가서 질책을 들어야했고 불을 관리하는 사람이 새로 들어오는 대로 마동은 레스토랑에서 퇴출이었다. 프로들이 밀집한 레스토랑에서는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해주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오는 길에 좋은 건물 1층에 위치한 바에서 땅콩에 맥주를 들이켰다. 마동은 이름도 모르는 꽤 비싼 맥주를 4잔이나 마셨다. 가격이 비싼 맥주를 많이 마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주는 싫었다. 곰장어 구이에 문어무침에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기는 싫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 패배자의 모습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힘이 들 때마다 헤밍웨이의 말이 떠올랐다.

  맥주를 마시는 바는 창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 실내가 환하게 보였다. 밖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마동을 알아보고 들어와서 마동 옆에 앉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였다. 두 사람은 같이 맥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 땅콩의 껍질까지 씹어 먹었는데도 땅콩의 껍질은 테이블에 쌓여갔다. 계속 맥주를 마셨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른다. 둘 다 술을 많이 마시고 두 사람은 그녀의 집에서 같이 잠을 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살림을 합치니 생활비가 반으로 줄었다. 두 사람은 그 어떤 것보다 그것이 가장 기뻤다. 찌는 듯 무더운 방에서 에어컨이 없어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살갗을 비볐다. 몸을 타고 흐르는 끈적끈적한 것이 땀인지 다른 분비물인지 분간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꽤나 부드러웠다. 살갗의 냄새를 맡았고 피부의 감촉을 파악했다. 추운 날씨에는 헤어드라이기를 켜가며 서로의 체온을 녹였다. 무엇을 해도 괜찮았다. 그런 시기였다. 어쩌다가 우리들의 아르바이트가 없는 시간에는 그녀가 마동을 이끌고 학교에 있는 그녀가 연습하는 피아노연습실에서 그녀는 마동에게 피아노곡을 들려주었다. 그 마저도 연습실이 비어 있어야 가능했다. 마동은 옆에서 가만히 그녀가 연주하는 피아노곡을 들었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고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 두 사람은 불판 위의 버터처럼 녹아들었다. 돈이 없어서 굉장한 행복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불안했던 마음들이 풍요로웠다. 마동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를 만나는 것에 삐딱한 시선도, 나이가 어린 마동을 만나는 것에 대한 그녀주위의 반응도 두 사람에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래봐야 고작 세 살 터울이었다. 마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녀를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그녀도 마동을 무엇보다 사랑해 주었다. 그들은 소박했고 나름대로 행복했다. 마동은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고 그녀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진심’을 다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최선을 다하는 것과 진심을 하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며 진심이 경계는 어디까지 인지 마동은 알지 못했다. 진실 된 것과 정직한 것에서 오는 차이를 말하라고 하는 것처럼 모호했다. 가위를 파는 사람들은 가위의 용도를 정직하게 알고 있지만 가위를 구입한 소비자는 가위를 자르는 것에만 쓰지는 않았다. 진실과 정직의 애매한 경계를 사람들은 어쩌면 알지 못한다.

  지금은 그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혀.

  마동은 그립다는 감정을 그녀를 떠올리며 느껴 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면접을 거쳐 훈련과 난관을 헤쳐 지금의 회사에서 일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만 정신을 쏟았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섹스를 하고 싶으면 가끔씩 가는 바에서 젊은 바텐더 아가씨와 잠을 잤다. 그 바텐더 아가씨는 마동과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느낌과 그녀의 어법으로 알 수 있었다. 마동의 페니스는 이스터석상과 닮았다고 했다. 그래, 맞다. 스쳐 가듯 지나간 그 바텐더 아가씨의 입을 통해서 이스터석상이라는 말을 한 번 들었다. 그녀는 얼굴은 통통했지만 허리는 잘록했고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입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력이 묘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난처하다. 바텐더 아가씨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잠자리에서는 고집스럽고 어린아이 같다고만 했다.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남자친구는 칭얼대기만 한다고 침대위에서 마동의 가슴에 볼을 대고 말을 하곤 했다. 남자들은 침대에서 여자들에게 대체로 배려가 없는 모양이었다. 배려가 없는 남자는 여자에게 불만을 자아내게 한다. 마동의 가슴 밑바닥에 메마르게 웅크리고 있던 작은 그리움은 아마도 마동이 잃어버린 기억에서 파생되어 오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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