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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물이 찰랑이는 양동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청년은, 팔이 빠질 것 같은 아픔에 끙끙대며 자신을 천계로 끌고 온 눈매 사나운 여신에게 질문했다.

-누님. 이 물양동이는 뭐죠?

-그거 지구.

-네?

-그거 떨어트리는 순간 70억이 죽거든? 그 꼴 보기 싫음 버텨라?


10년.

20년.

100년.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양동이를 고쳐들며 이를 부득 갈았다.


-망할 년들. 이쁜 것들은 얼굴값을 한다더니...

 
나는 여행을 떠난다(2)
작성일 : 19-10-09 23:38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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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제법 여기저길 돌아다니더구나."

 

 "그랬었죠..."

 

 그녀의 말대로 그동안 난 제법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날 은빛나무를 보고 얻은 용기를 동력원 삼아 걷고 또 걸은 결과, 난 100여일 만에 놀랍게도 무려 숲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10만평은 족히 되어 보였으니 숲이라기 보단 커다란 수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행여나 거친 길 때문에 넘어져 물양동이라도 엎을까 싶어 깊이 들어가진 못하고 곁만 빙글빙글 돌았지만... 그땐 그것만으로 너무나도 행복했다.

 

 숲을 떠나 그 이듬해, 슬슬 그 숲이 이 별에 있는 유일한 볼거리가 아니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할 즈음, 강 하나를 발견했다. 넓이가 1km는 족히 돼 보이는 강이었다. 만약 강이 있다면 불투명한 우유같은 액체가 흐르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하얀 강바닥 위를 넘실거리며 도도히 흐르는 것은 틀림없는 맑고 투명한 물이었다.

 

 ...깊이가 얕은 곳을 찾아 물에 발을 담그고 하루 종일 파닥거린 것도, 물 한 모금 마셔보겠다고 바둥거리다 신발 한 짝을 떠내려 보낸 것도, 그 신발을 근 일 주일을 쫓아간 것도 지금와선 좋은 추억이다. 아마.

 

 여하튼 그날 이후 여행루트를 바꿨다. 강을 따라 상류로 가기로 한 것이다. 응? 왜 상류냐고? 강줄기를 따라간다면 하류길이 편하지 않냐고? 답은 간단했다. 상류가 내리막(!)이었기 때문이다. 이 강은 웃기는 게... 높은 곳이 상류, 낮은 곳이 하류가 아니라 상류 쪽과 하류 쪽을 미리 딱 정해놓고선 지형 따윈 상관없이 무조건 하류 쪽으로 흐르도록 강요라도 당하는 것 같았다.

 

 물이 흘러내리는 쪽에 언덕이 있거나 경사가 있어도 휘돌아 다른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지형을 무시하고 막 거슬러 올라간다. 물 자체가 이상한가 싶어 한 움큼 가량 떠서(발로 했다. 힘들었다) 밖에다 부으면 이건 또 그냥 경사에 맞춰 흐른다. 기기괴괴.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로 가득한 곳이니 이게 뭔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 참.

 

 아 그러고 보니,

 

 난 잠시 회상을 중지했다.

 

 이 별, 그녀가 만든 거였지?

 

 순간적으로 어떤 장면이 손에 잡힐 듯이 떠오른다.

 

 '어? 지형지물을 만든 뒤에 강을 흐르게 했어야 하는데 순서 틀려버렸네. 이럼 엉망인데... 몰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 귀찮아'

 

 아, 이럴 수가. 이 누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법해! 이런, 몰라도 될 이 별의 창조신화, 아니 비화를 하나 알고 말았다.

 

 따악!!!

 

 또 맞았다.

 

 "아니다. 그런 거. 쓸데없는 상상 하지마라."

 

 젠장. 또 내 생각 읽었어.

 

 "정말로요?"

 

 "물론이다."

 

 "정말로 정말로?"

 

 "...맞는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

 

 아, 이 누님, 방금 내 눈 피했어.

 

 ------------------

 차치하고, 그렇게 강을 따라 걸으며 숲 하나와 계곡 하나를 거쳐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강의 원천이 되는 거대한 호수였다. 둘레만 약 300km에 가까운 이 호수는 항상 하늘이 회백색의 구름에 둘러싸여 24시간 365일 비가 내리는 곳이었다. 원래 지구에서도 찾아다니며 비 구경을 할 정도로(자카르타까지 갔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던 내게 있어, 하늘에선 비가 흩날리고 호수에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곳은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결국 그렇게 눌러앉게 된 것이 3년 전, 이후 줄곧 난 여기서 머물고 있다.

 

 "그건 그렇고, 10년 넘게 고생했으면 네놈도 이젠 슬슬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또 그 이야기신가요."

 

 "닥치고 들어."

 

 "넵."

 

 "여튼 뭐, 넌 제법 잘해냈다. 12년이라니. 이 세계의 신으로서 내가 보증하지. 여기까지 해낼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말이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건 싫어하지만, 천의 하나 만의하나 네가 이 시험을 통과한다 해도 네겐 아무런 보상이 없을 거다. 왜? 내가 안 줄 거니까. 장담컨데 결국 남는 건 늙어빠진 네 몸뚱아리 하나뿐일 거다."

 

 "......"

 

 "혹여 이곳과 지구의 시간흐름 비율이 10대1이라고 했던 말을 의지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물론 여기서 10년을 보낸다고 해도 네 세계에선 1년밖엔 흐르지 않겠지. 하지만 바꿔 말하면 여기서의 100년이면 그쪽세계에서의 10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단 이야기다."

 

 "......"

 

 "자, 질문이다. 혹시 훗날 늙은 몸이나마 옛 지인들에게, 그리고 지금네놈 머릿속에 떠오른 추억 가득한 그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나?"

 

 "...!!!"

 

 "시험이 500년 1000년 지속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

 

 "너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네놈은 네 늙은 몸뚱이를 안주시킬 장소조차 찾지 못하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마치게 될 거다. 모든 생명들이 너의 인내와 희생으로 인해 살아남고 너의 눈물로 인해 번영할 시간을 가졌음에도, 무지한 그들에게 있어 넌 그저 늙어빠지고 무능하며 추한 늙은이일 뿐일 테지. 그런 취급을 견딜 수 있나? 아, 물론 여기서 그랬듯 잘 견디겠지. 널 비웃는 작자들을 볼 때마다 네 자존감을 찢고 인내하면서 말이야."

 

 "......"

 

 "그러다 더 늙고 병들어 죽는 최후의 순간이 오면, 장담컨데 넌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다."

 

 "......"

 

 -내가 너희들을 구했는데.

 

 "......"

 

 "그리곤 죽겠지. 아마 네가 죽든 말든 세계는 잘 돌아갈 거다. 너 때문에. 네가 구원했으니까. 자부심? 자기만족? 세계를 구해? 아무도 모르는 진실이 망상과 뭐가 다르지? 죽을 때쯤엔 너조차도 그게 실제였는지 망상인지조차 구분 짓지 못하게 될 거다. 사후세계에서의 보답을 바라느냐? 내가 말했을 텐데. 이 우주에서 죽는 자는 그저 라이프스트림이라는 리소스로 되돌아갈 뿐이라고."

 

 "......"

 

 "자 어떠냐. 보답 없는 희생이란 말이 가지는 의미를 네가 알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해줬다. 이제 실감이 오나?"

 

 "......"

 

 "마지막 권유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물양동이를 내려놓는다면 네게 주천(Dominions)의 좌를 주겠다. 지천과 좌천 아래의 제 4위계이며, 천족(2~6위계)과 권족(7~9위계)들 중에서도 제법 높은 위치에 해당하는 자리다. 내 천계를 통 털어도 그 수가 일만이 안 되니까. 물론 천족인 만큼 기본적으론 영생에 가까운 삶이 보장되지."

 

 "......"

 

 "누차 이야기하지만, 세계의 종말은 그저 때가 되었을 뿐이다. 넌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 했고. 혹여 다른 이들이 죽는 가운데 너만이 천족으로서 영생을 받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거라면 그건 착각이다. 그들은 네 12년의 노력으로 인해 적어도 1년이 넘는 삶을 더 누렸다. 감사를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책망 받을 일은 아니야. 네가 얻는 영생은 배신의 대가가 아니라 그저 네 예상치 못한 건투에 대한 내 소소한 구경 값일 뿐이다."

 

 

 "......"

 

 "자, 대답은?"

 

 ...정론이다. 너무나도 정론이다. 무려 신의 말씀이다. 더할 나위 없이 옳은 말씀이겠지. 하지만.

 

 난 힘들게, 정말 힘들게 입을 뗐다.

 

 "그전에, 저도 질문하나 드려도 됩니까?"

 

 내 말투가 진중해진 것을 느꼈는지 그녀가 호기심어린 음성으로 대답했다.

 

 "흠? 말해봐라."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뭐?"

 

 "저번에도 한번 같은 질문을 드렸었지요. 그땐 스트레스 풀러 온다는 대답으로 제 염장을 지르셨습니다만, 오늘은 좀 더 제대로 된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

 

 "그리고 이 타이머는 왜 제게 붙여놓으셨습니까?"

 

 그녀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10년이면 제법 긴 시간이지요. 덕분에 많은걸 생각하고 적지 않은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께선 몇 번이고 제게 이 물양동이를, 세계를 내던져버리라고 말씀하셨지요. 심지어 이번엔 과분한 대가까지 거시면서.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정말 제가 꺾이는 걸 원하셨다면 그보다 훨씬 더 쉽고 나은 방법을 쓰셨을 겁니다."

 

 "......"

 

 "시험시작 직후 왜 절 혼자 방치하지 않으셨습니까? 실제로 전 시험을 시작하고 단 하루 만에 이미 한계에 달해있었습니다. 그대로 모른 체 하셨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아마 양동이를 내던졌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제게 24시간이란 목표를 주고 일주일간 매일 저를 찾아오셨죠. 그 뒤에는 한 달, 그 뒤에는 일 년. 마치 제가 시험에 익숙해지길 원하기라도 하듯이."

 

 "......"

 

 난 이번엔 옆에 떠있는 타이머를 가리켰다.

 

 "언뜻 보면 저를 놀리기 위한 장치로 보이지만, 밤낮구분도, 움직이는 천체도, 심지어 하나뿐인 광원의 움직임조차 없는 이별에서 이건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알게 해주는 장치였습니다. 이게 없었더라면 이 시험을 견디는 것이 두 배는 힘들었겠죠. 망망대해에 조난을 당했다 해도 멀리 섬이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정말 크니까요."

 

 "......"

 

 "언제나 제 생각을 읽곤 하셨으니 이번엔 제가 당신의 생각을 맞춰보겠습니다. 당신께선 망설이고 계신 겁니다. 당신의 손으로 끝내려 했지만 그래도 결국 당신이 돌봐온 세계고 생명이었으니까요. 모순된 두 감정, 그 양쪽 모두가 진심이기에... 당신께선 당신의 결정을 저라는 주사위에 맡기고도 손을 떼지 못하시는 겁니다."

 

 -차마 떨치지 못한 마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이 유예가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주사위가 보다 오랫동안 구르기를 소원하면서."

 

 "......"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 사라진 것을 보며 난 잠시 혀로 입술을 축였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아마 그녀의 비위를 제대로 거스를 것이다. 그녀의 분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바짝 오른다.

 

 그래도, 말해야 했다.

 

 "이전에 당신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셨죠.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네놈의 의지와 선택으로 일어난 일들이다.'라고."

 

 "......"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10년간,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친 끝에, 겨우... 달아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렇기에 감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를 온전히 받아들인 이상, 이 문제는 이제 당신의 손을 떠났습니다. 도와주신 건 감사드립니다만, 이젠 제가 결정할 저의 문제가 된 겁니다. 이제껏 당신께선 절 오래 구르는 주사위쯤으로 생각하고 이리도 건드려 보고 저리도 건드려보고 했을지 모릅니다만, 이제부턴 아닙니다. 그러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라는 안일하고 물렁한 마음으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아주세요."

 

 "......"

 

 "주사위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오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굴러도 제가, 제 의지로 구르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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