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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차우의 마을 이야기
작가 : 치르비
작품등록일 : 2019.10.9

꿈능력자 차우에게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이상한 사건들.
믿을 수 있는 것은 친한 친구와 시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꿈들 뿐.
과연 그는 평범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1화
작성일 : 19-10-09 14:34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1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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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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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새벽, 차우는 눈을 떴다.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한 꿈자리와, 바람이 불 때마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창틀이 그의 수면을 방해했던 것이다.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난 차우는 씩씩대며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단순히 바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며칠 전 차우의 형이 고의로 창문을 망가뜨린 이후부터 이랬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부터 창문은 열린 채로 고정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고, 창틀은 금이 간 채 잔뜩 날선 소리를 냈다. 차우는 형을 떠올리며 짧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쓸모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차우는 신경질적으로 창틀을 두드렸다. 생각해보면 형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서 도움이 되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확실히 손재주는 차우 자신이 인정해줄 만큼 대단했지만, 그의 인성을 생각한다면 재능이 아무리 좋아도 하등 쓸모가 없었다.

 

 아버지가 오시면 고쳐달라고 해야지. 창틀의 상태를 대충 살펴보던 차우는 그리 생각했다. 직접 고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문제점을 집어낼 수 없었다. 차라리 한 달에 한 번 찾아오시는 아버지에게 수리를 부탁하는 편에 훨씬 더 이롭게 여겨졌다. 마침 내일 아버지가 물건을 가지러 집에 들르실 예정이니, 조용히 부탁을 드리면 되리라.

 차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옷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낡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은 뒤, 세수를 하고, 방을 나왔다.

 

 

 

 올해 열일곱 살을 맞이한 차우는 마을 어른들에게서 어엿한 남자 취급을 받았지만, 여전히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인 건 변함없었다. 다른 모든 마을의 십대 청소년들처럼 그는 어머니의 간섭을 지겨워했고 형인 차드의 행패에 항상 불만을 토해냈다. 차우는 이런 가족이 싫지는 않았지만, 개인생활만큼은 제대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곤 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존재는 오로지 아버지뿐이었다. 멀리 지방에 나가 일하시는 아버지는 한 달의 한 번씩 집을 찾아와 그의 고민을 말없이 들어주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평균적인 키와 탄탄한 체격,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피부가 상당히 하얬으며, 점점 굵어지기 시작한 얼굴에는 여드름이 살짝 나있었다. 17살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어느 아이와 다를 것 없는 삶의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제 아비를 닮아간다고 칭찬했지만, 차우는 자신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쪽을 더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하루는 아주 길었다. 태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마을 끝에 있는 교회에서 종을 울리면, 상점가의 가게들이 문을 열며 가장 먼저 아침의 시작을 알렸다. 빵을 굽고, 꽃을 진열하며, 쇼윈도를 닦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위함이었다. 고객의 입맛이란 시간에 따라 자주 변하는 법이니 상인들은 언제나 눈과 귀를 열어두어야 했다. 그들은 서로 정보를 활발히 교환하며 이른 아침부터 성심성의껏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상인들이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손님맞이를 준비할 때, 마을에 사는 다른 주민들은 그제야 잠에서 깨 아침을 시작했다. 몇몇은 꿋꿋하게 잠을 청했지만 차우는 그럴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항상 일찍 일어나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습관이 되어서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운, 한 번 깨면 밤이 될 때까지 절대 잠들 수 없는 체질도 한몫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마을의 어머니들은 불을 피워 지상에 남은 새벽을 몰아내고, 굴뚝으로 연기를 피워 아침을 알린 뒤, 바쁘게 주방을 정리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 시간이 끝나면 주민 모두 당연하다는 듯 제 할 일을 시작했다. 차우 역시 밖으로 나가 일거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대부분 친구들과 만든 모임에서 일하며 마을 어른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다니는 것이 전부였지만, 가끔 형인 차드를 찾아가 장난을 치곤했다. 차우보다 네 살 더 많은 차드는 그릇을 파는 가게에서 일을 도왔는데, 주인이 아주 무섭기로 소문이 나 그 점을 자주 이용하곤 했다.

 

 

 

 약속시간 되자 차우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어젯밤, 모임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돕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차우는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이윽고 바에부스트로 숲으로 빠지는 길목으로 빠졌다. 그대로 쭉 걸어간다면 숲 입구에 도착하겠지만, 차우는 그런 위험한 숲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대신 그는 길 중간에 난 좁은 길로 들어갔다. 풀숲으로 가려져있었지만 차우는 익숙하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얼마 후, 그는 커다란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치우가 속해있는 ‘자원봉사 모임’은 마을에서 유명한 전통 있는 집단이었다. 마을이 세워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혈기 넘치는 젊은이 세 명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으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은 이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땀 흘려 쌓아올린 실적은 이 전통은 지금껏 굳건하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전통이 있는 사실, 지금은 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 치고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남들을 돕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처음에 모임은 탄생배경과 아주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움직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임은 조직화되었다. 선대 모임 가입자들은 규칙을 만들고, 리더를 뽑았으며, 의뢰 형식으로 문제해결을 신청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몇몇은 처음 취지와 어울리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조직화되자 수명이 훨씬 길어진 것이었다.

 

 “어서와!”

 

 차우가 공터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청년이 반갑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옅은 오렌지색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인상이 유난히도 눈에 띄는 청년이었다. 차우도 그에 답하듯 손을 흔들었다.

 

 “안녕, 사틴. 나 안 늦었지?”

 

 사틴은 차우와 같은 17살의 청년이었다. 모임 내에서 차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옅은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차우보다 약간 더 마른 체격은 날카로운 인상과 더불어 그를 매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보이는 걸 즐기는 듯 했다.-차우는 사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간당간당했어. 이제 막 시작했거든.”

 

 사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모았다. 그러자 공터에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한곳으로 집합했고, 차우와 사틴도 그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임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의뢰는 어젯밤에 말했듯이 이번에는 의뢰자 전원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로서, 대부분 사소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이니 어려울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우는 저 목록 속에 분명 힘들고 귀찮은 일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틀리기를 내심 바랐지만, 불행히도 불안한 직감은 언제나 잘 맞는 법이었다.

 

 기나긴 임무 설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사틴을 찾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카락,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매로 하여금 고전적인 미인을 연상케 하는 그녀는 모임의 리더 역할을 맡은 스물한 살의 처녀 네로였다.

 

 “사틴, 와서 좀 도와줄래?”

 

 그러자 사틴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차우,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봐. 금방 다녀올게.”

 

 그는 차우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자리를 떴다. 이어서 네로의 지시에 따라 사틴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모였고, 집집마다 다녀오며 받아온 ‘의뢰 목록’을 한 사람씩 분량을 정해 정리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두 사람씩 짝을 지었다. 보통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팀을 이룬 뒤에 의뢰를 해결하는 편이었기에 이번에도 그 형식을 따랐다.

 

 차우는 사틴과 팀이 되었다. 이미 아이들이 모임을 가지기 전에 누구와 팀이 될지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기 때문에, 그로서는 사틴과 팀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사틴이 돌아갈 때 까지 제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사틴은 네로를 중심으로 한 이 모임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터였다.

 

 간혹 다른 친구들이 다가와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차우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사실, 지금 그는 간밤에 꿨던 꿈 때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는 단지 몇몇 장면만을 기억할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꿈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꿈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순서는 제비뽑기로 하자.”

 

 팀이 모두 정해지고 문서 정리가 모두 끝나자, 사틴이 직접 나서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차우는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에서 꿈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사틴과 따로 해도 됐었다. 그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믿어 주리라. 그러니 지금은 일단 현실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차우가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사틴이 품에서 제비를 꺼내고 있었다. 투박하게 자른 제비가 바람을 따라 그의 손에서 펄럭였다. 뒤이어 사틴은 제비에 속임수 같은 건 절대로 쓰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뽑으라고 말했다.

 

 “그 말 믿어도 돼?”

 

 차우가 의심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내가 그렇게 양심 없는 놈은 아니라고.”

 “야 이 사기꾼아. 그게 네가 할 소리냐? 하도 사기를 치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자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차우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틴은 믿으라는 듯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

 

 “좋아. 네 말 한 번 믿어 볼께. 자, 그럼 시작하자고.”

 

 사틴은 그 말에 크게 항의했지만 차우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 사틴이 도박이나 뽑기 같은 종류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게임을 할 때마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자주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 사틴의 속임수에 넘어가기 일쑤였고, 나름대로 게임에 자신감이 있는 차우마저도 가끔 그의 계략에 빠지곤 했다. 자신의 의심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각각 팀마다 제비를 하나씩 뽑아갔고, 마지막으로 차우가 제비를 뽑음으로서 추천이 끝났다.

 

 차우는 제비를 확인했다. 맨 마지막이었다.

 

 “아, 이게 뭐야!”

 

 사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좋은 제비가 내 마음대로 뽑아지겠냐.”

 

 사틴은 씩씩거리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차우는 다 듣지 못했지만, 손을 써두었다-라는 식의 말 하나만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뱉고 다른 친구들이 신경을 돌린 틈을 타 사틴의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사틴은 머리를 감싸 쥐며 차우를 째려봤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추첨이 끝나자 주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네로가 나서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사소한 의뢰가 좀 많아서 양이 많아. 그러니까 한 팀당 두 개씩 의뢰를 잡도록. 자, 첫 번째 팀 나와서 골라가.”

 

 네로의 지시에 따라 첫 번째로 당첨된 팀이 나왔다. 뒤이어 차례대로 두개씩 의뢰를 집어갔는데, 차우와 사틴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어려운 의뢰들만이 남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의 차례가 되자 서둘러 목록을 확인했다.

 

 “아오 진짜, 양심 없는 것들! 그래도 뒤에 있는 사람 생각해서 쉬운 의뢰 하나 정도는 남겨둬야지, 이게 뭐야! 이게!”

 

 사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는 두 눈을 비빈 뒤 목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와주는 거에 힘들고 말고가 어디 있어.”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리 할머니랑 제리 할아버지는 아니야. 두 분이 얼마나 빡세게 사람을 굴리는데!”

 

 사틴이 짜증을 부리는 동안 뒤이어 차우가 의뢰를 확인했다. 하나는 마리 할머니네 집에 있는 정원을 관리해야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제리 할아버지 집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차우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그때였다. 사틴은 한참을 뭐라고 궁시렁거리다가 차우에게 달라붙었다.

 

 “차우, 뭐라도 좀 해봐. 하나라도 좋으니까 의뢰교환하자고, 응? 한꺼번에 양쪽에 갔다가는 당장 일주일동안 앓을 거야.”

 

 차우는 잠시 사틴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의뢰교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저기, 혹시 자진해서 우리랑 의뢰교환해줄 사람 있어?”

 

 그러자 모두가 침묵을 유지했다. 서로가 눈치만 살펴보며 불안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십 분 동안 결과를 기다렸지만, 결국 직접 나서서 의뢰를 교환하자고 하는 이는 없었다. 네로가 나서서 아이들을 가볍게 설득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사틴은 이에 기운 빠진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고, 차우는 그런 사틴을 말없이 위로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차우도 두 사람의 깐깐한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참이었다. 특히 마리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예전에 실수로 누군가가 마리 할머니의 꽃병을 깨트릴 뻔한 적이 있었다. 꽃병은 실금 하나 가지 않은 채 말끔했음에도, 할머니는 그와 상관없이 거의 죽일 듯이 덤비시며 화를 내셨다. 그때 그 현장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본 차우의 입장로서는 이 의뢰가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제리 할아버지도 안 그런 듯 하시면서 은근 이것저것 참견을 잘하시고.’

 

 누군가가 굳이 두 사람을 비교하며 더 나은 쪽을 선택하라고 차우에게 묻는다면,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제리 할아버지 쪽을 선택할 터였다. 적어도 이쪽은 사람을 배려할 줄 아니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둘 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에서는 변함없었다.

 

 

 

 ****

 

 

 

 “진짜 하기 싫다. 그냥 확 도망칠까?”

 

 사틴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하기 싫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해야 해.”

 

 여름의 끝자락에서 힘없이 밀려나온 바람은 점점 차갑게 돌변했고, 나무는 조금씩 발가벗겨지며 가을이 다가옴을 알렸다. 낮이 되자 상점가는 더욱 분주해졌다. 차우의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규모가 큰데다가 도시와의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마을 주민뿐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 찾아온 사람과 여행자들도 섞여있었다.

 

 그들은 상점가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각 팀이 뿔뿔이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두 사람 역시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그냥 벌 받은 셈 쳐. 내가 아무한테도 그 사실 말 안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그런데 넌 어떻게 그 제비에도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냐? 애초에 그게 가능하기나 하냐?”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하려······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다! 됐냐? 속임수라면, 어려울 거 없어. 그건 손놀림만 좋으면 되니까.”

 

 차우가 무섭게 째려보자 사틴은 툴툴거리며 마지못해 말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갔다가는 차우의 무시무시한 헤드락에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사틴은 작게 몸을 떨었다.

 

 “그래서, 차우. 할망구가 뭐 사야 한다고 했더라?”

 

 사틴의 말에 차우는 째려보기를 그만두고 바지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마리 할머니 집에 먼저 들린 그들이 심부름을 위해 받아온 종이였다.

 

 “어디보자······. 조경용 가위하고 홍차티백 세트.”

 “저번에 가위가 부러지셨다고 하신 것 같은데······. 그런데 뜬금없이 웬 홍차티백 세트?”

 “며칠 전에 친구들 대접하신다고 많이 쓰셨는데, 이번에도 많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사야 할 개수가 좀 많아.”

 “하여간 아주 돈지랄을 하시네. 돈지랄을. 그거 요즘 유행하는 신상품이라고 엄청 비싼 데. 저번에 내가 엄마랑 구하러 갔다가 눈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그거 살 돈은 있냐?”

 “돈은 할머니께서 주셨어. 그리고 말은 곱게 써.”

 

 사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때, 할머니 앞에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차우가 뭐라고 한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옆을 지나가던 두 아주머니의 대화에 그는 입을 닫았다. 두 아주머니는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우는 그들이 다른 마을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을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아직도 안 해결이 안 된 건가요?”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찌푸렸다.

 

 “듣기로는 그러더라고요. 벌써 1년이나 됐는데 아무도 못 찾았으니······.”

 “분명 정부에서 사람을 보냈다고 한 것 같은데.”

 “네, 맞아요. 계속 사람을 보냈는데도 결국 해결을 못했대요. 듣기로는 단서도 제대로 못 잡아서 허탕만 쳤다나.”

 

 두 아주머니는 그리 말하며 몸서리를 쳤다.

 

 이윽고 두 사람이 지나가자 사틴이 말했다.

 

 “그······납치 사건 말하는 건가?”

 “그렇겠지.”

 “벌써 일 년이나 지난 사건인데 단서 하나 못 잡다니······. 정부가 무능한 건지, 범인이 똑똑한 건지 원.”

 

 그때 뭔가가 떠오른 차우가 말했다.

 

 “네로 누나는 그거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해?”

 “나도 잘 모르겠어. 회의할 때에도 그 건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걸.”

 

 사틴은 그리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차우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네로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앞뒤 사정 보지 않고 오직 해결만을 위해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이런 의심을 좀 더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납치 사건이 벌어진 건 1년 전이었고, 그때 모임의 리더 역시 네로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자기랑 같이 범인 찾으러 갈 사람정도는 뽑을 줄 알았는데······.

 

 

 ****

 

 

 어쨌든 물건을 사서 가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들은 그쯤에서 잡담을 멈추고 잡화점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두 블록을 더 걸어가 큰 사거리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졌다. 다시 오 분 정도를 열심히 걸어 잠시 후, 그들은 대형 잡화점 앞에 도착했다.

 

 잡화점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 역시 바깥과 사정이 비슷했다. 두 사람은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고생 좀 하겠는데.’

 

 차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세워진지 1년 남짓 된 대형 잡화점은 다른 가게와 비교하면 신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영업개시부터 대단한 인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그 인기에 힘입어 입소문까지 탄 덕분에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평일에도 사람이 북적거릴 정도였다. 두 사람이 찾는 물건도 모두 이 잡화점에서 팔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멀리까지 나갈 수고를 덜 수는 있었다. 하지만 차우는 작은 꽃집을 운영하시는 어머니께서 이 잡화점이 생긴 이후로 장사가 잘 안 된다며, 다른 장사꾼들이 몹시 걱정을 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늙은이 혼자서 이런 걸 유지한다는 게 참 대단하단 말이야.”

 

 문 앞에 서서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낼 때, 사틴이 말했다.

 

 “제리 할아버지는 정정하시잖아.”

 “맞아. 그런데 그렇게 힘도 넘치시는 분이 왜 의뢰 같은 걸 신청하셔서 사람 곤란하게 만드시는 건지 원······. 다른 건 몰라도 그냥 잡다한 집안일이잖아. 솔직히 그 노친네, 우리보다 몸이 더 좋은데, 무슨 도움을 받겠다고······.”

 “글쎄,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지.”

 

 차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대형 잡화점의 주인인 제리 할아버지는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힘이 넘치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우는 그가 올해 74세라는 사실을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 직접 본 사람만 알지만 제리 할아버지는 거의 삼사십 대로 보일만한 젊은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간혹 친구들은 제리 할아버지가 실은 사람을 잡아먹어서 젊음을 유지하는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겨우 안으로 파고든 두 사람은 조경용 가위를 구한 뒤, 선반 끝에 있던 홍차 티백 세트를 사람들 틈바구니-이곳에는 특히 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에서 가까스로 꺼냈다.

 하지만 안으로 파고든 것만큼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도 문제였다. 사람들이 지나갈 틈을 만들어주지 않는 통에 두 사람은 카운터까지 가는데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발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고, 중간에는 누군가 지갑을 훔쳐가려는 걸 눈치 챈 사틴이 재빠르게 그것을 저지하기도 했다. 마침내 사람들 사이를 뚫고 카운터 앞까지 나온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뱉었다.

 

 “다시는 들어가기 싫어······.”

 

 차우가 말했다. 숨은 거칠었고 목소리는 지쳐있었다.

 

 “정말 수고했어. 고생 많았지?”

 

 그때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굵직하나 성량 자체는 매우 큰 목소리였다.

 

 차우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체격 좋은 직원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검붉은 색의 짧고 빳빳한 머리카락, 뚜렷한 이목구비에 자부심으로 가득한 다부진 얼굴, 맑은 호박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눈. 태양빛에 자연적으로 그을려진 구릿빛 피부는 흠집하나 없이 매끈했고, 우람하고 단단한 근육은 갈색빛깔의 직원용 의복 위로 세세하게 드러났다. 차우와 사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키가 컸으며,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드문드문 삶에 대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그는 제 눈동자와 비슷한 호박색의 꿀물이 든 컵을 건넸다. 컵을 받아든 치우와 사틴은 단숨에 마셔버렸다.

 

 “최근에 손님이 더 많아져서 아마 들어가기도 힘들었을 거야.”

 “고마워, 지로 형. 그런데 직원이 이런 걸 우리한테 줘도 되는 거야?”

 

 꿀물을 모두 마신 후, 컵을 돌려주며 차우가 말했다.

 

 “괜찮아. 사장님이 그 정도는 눈감아주시니까. 그리고 어차피 지금은 다들 물건 고르느라 바빠서 여기 볼 여유도 없어.”

 

 지로라고 불린 직원이 대답했다. 그 말에 차우와 사틴은 주위를 둘러봤다. 안에서 물건을 고르는 손님이 많은데 반해,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 손님은 드물었다.

 

 “물론 좀 있다가는 좀 바빠지겠지만.”

 

 그리 말한 지로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할아범이 아직도 잘 해주셔?”

 

 사틴이 말했다.

 

 “응. 정말 잘해주셔. 저번에는 어머니 드리라고 비싼 간식세트를 선물로 주셨다니까?”

 “하긴, 네가 돈이 된다는 걸 안 이상 그 할아범이 널 놓칠 리 없지.”

 

 차우는 팔꿈치로 사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사틴은 히죽거리며 왜 그러냐는 듯 차우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지로는 호탕하게 웃었다.

 

 “칭찬 고마워.”

 “지로 형, 이건 칭찬이 아니야.”

 “일 잘한다고 말해주는데 칭찬이지 뭐.”

 

 차우는 마지못해 한숨을 내뱉었다. 가끔 그는 지로의 낙관주의가 너무 대책 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지로도 이렇게 기뻐하는 걸 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나저나, 이거 계산 좀 해줄래?”

 “조경용 가위하고 홍차 티백 세트 말이지? 알았어. 그런데 홍차 티백은 많이 사서 뭐하게? 마리 할머님한테 드리려고?”

 

 차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로를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지?

 

 그는 지로가 홍차 티백 세트를 확인하고, 돈을 받아 거슬러준 뒤, 계산서를 꼼꼼히 적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지로가 두 사람에게 다시 신경을 돌리자 차우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어, 진짜야? 사실 전에 마리 할머님께서 간식 파티에 초대해주신 적이 있거든. 그때 한 번 마셔봤어. 맛있더라.”

 

 그러자 사틴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역시 인기인은 달라도 뭐가 다르단 말이야.”

 “난 그냥 열심히 하는 것뿐인걸.”

 

 지로는 그리 말하며 다시 활짝 웃었다. 그리고 봉투에 가위와 홍차 티백 세트를 넣고서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게 인기의 비결이라는 건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

 

 차우가 말했다.

 

 “뭐든 열심히 하면 좋잖아. 안 그래?”

 

 차우는 지로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 말은 지로의 삶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다. 몸이 약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해야 했다. 삶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리하여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그들은 나름대로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을, 지로는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보인 셈이었다.

 

 두 사람은 지로에게 인사한 뒤 바로 잡화점을 나왔다. 그때 즈음부터 카운터 주변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서둘러 나와야했다. 물건을 계산하려는 무리에 간신히 휘말리지 않고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오자, 사틴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또 저 속에 깔려서 죽는 줄 알았네.”

 

 카운터는 순식간에 계산하려는 손님으로 가득 차 정신없이 바빠졌다. 모두가 제 물건을 먼저 계산해주기를 요구했지만, 지로는 그런 손님들을 차례대로 줄을 서달라고 부탁하며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제 할 일이 급한 손님들은 지로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빨리 사가지고 가자. 더 늦었다가는 분명 혼날 거야.”

 

 사틴이 말했다. 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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