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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레드타일
작가 : Chadik
작품등록일 : 2016.9.10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해킹하는 것만이 유일한 낙인 '최소향'은 우연히 특별할 것 없는 SNS 계정을 뒤져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개인정보를 해킹하게 된다. 대규모로 조작된 개인정보들과 그 조작된 정보에 연관된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의문의 남자.
하지만 김소향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인터넷 속의 남겨진 단서들을 찾아나서게 된다.

 
수요일
작성일 : 16-10-05 13:48     조회 : 452     추천 : 1     분량 : 8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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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클럽에서 늦게 돌아온 탓에 늦잠을 자버렸다. 늦잠이라고 해봐야 5분 정도지만 거의 강박적으로 매일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나에게는 5분도 대단히 늦은 것이다.

 집에서 나서기 전 ‘한마음병원’의 직원카드를 챙겨 주머니에 단단히 챙겨 넣었다. 한마음 병원의 IT팀 대리가 일단 내 직업이다. 직급이야 어떻던 그런 건 그냥 허울이고 실제는 임시 계약직에 최저임금을 받는다. 한 달에 기껏 백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월급이라고 받고 있는데 요즘 같은 시기에는 다들 사정이 다르지 않으니 불평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20대 초반에는 이런 불합리에 분노도 해보고 집회에도 나가봤지만 이제는 어차피 망할 나라 신경 쓰는 시간조차 아깝다. 무엇보다 내게는 짭짤한 부수입원이 있고 돈 쓸 데라고는 게임이나 하드웨어 부품을 사들이는 정도이니 돈이 딱히 모자라지도 않고 덕분에 삶이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쪼들리지는 않으니 만족하는 편이다.

 난 매일 똑같은 시간에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매번 같은 번호의 플랫폼에 서서 같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20분간 지하철로 왕복을 한다. 가능하면 매일 정확한 시간에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중간에 늦어 뛰거나 바쁘게 걷지도 않는다. 내 보폭은 대략 70 cm 정도이며 집에서 지하철 플랫폼까지 약 400미터 가량이고 7분 20초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1분 정도를 걷는다. 조금만 시간에 민감하다면 시간에 쫓겨 지하철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남들을 밀치지 않아도 되고 떠나려는 지하철을 잡으려 가방을 문틈 사이로 집어 던지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똑같은 번호의 지하철 플랫폼에서 내려, 같은 라인을 따라 걸은 뒤 계단을 올라 지하철 출입구로 나왔다. 길 건너 앞에 초록색의 ‘한마음병원’ 옥외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휴가도 연차도 없는 내가 벌써 2년째 주말을 제외하고 꾸준히 보고 있는 풍경이다. 횡단보도 앞에 언제나처럼 ‘곧 때가온다’ 라는 피켓을 어깨에 걸친 ‘김종말씨’를 만난다. 물론 본명이 ‘김종말씨’는 아니다. 단순히 길에서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에 병원의 직원들이 우스개로 지어준 별명이다. 그와는 3개월째 이 자리에서 아침마다 만나고 있다.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 남아 있는 동전들을 모두 털어 ‘김종말씨’의 종말박스에 집어넣었다. 그는 길을 지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박스에 돈을 넣어주는 행위 자체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그의 무신경함이 좋다. 만일 그가 고맙다는 인사치레라도 한번 던졌다면 다시는 그의 종말박스에 동전을 넣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김종말씨’를 도울 생각으로 동전을 넣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갑에 동전이 남아 하루 종일 지갑 속에서 덜그럭거리는 귀찮음이 싫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노상 위에서 종말과 죄 그리고 심판이라는 단어만을 이용해 열변을 토하는 ‘김종말씨’를 뒤로하고 나는 길을 건너 병원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들을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지나쳐 동쪽 외각계단을 타고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와 지하의 곰팡이 냄새가 섞여 묘하게 코를 찔렀는데 난 이 냄새가 나쁘지 않다. 지하 3층에 시신 안치소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마치 지하로 내려갈수록 위의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오히려 재미있어진다.

 더 이상 내려갈 계단이 없는 지하3층에 도착해 긴 복도를 지나 시체 운반하는 카트가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끼고 돌면 내가 일하는 회색의 오래된 사무실 문이 눈에 들어온다. ‘전산실’이라고 적힌 족히 20년은 된 듯 보이는 낡은 간판이 달린 문 앞에서 직원 카드 키를 인식기에 가져다 대었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전산실 팀장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정수기 앞에서 자신의 물통에 물을 가득 받고 있었다.

 “어. 소향씨. 왔어.”

 “예. 왔어요”

 팀장은 언제나 그렇듯 인사만으로도 날 불편해 한다. 2년동안 보고 있지만 거의 매일 아침 인사와 저녁 퇴근 인사 이외에는 말도 섞지 않으면서 우리는 여전히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심각한 편이기는 하지만 팀장의 경우에는 그의 인생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름까지 알고 지내는 여자는 거의 내가 유일했다. 정확히는 여자를 상대로 한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다. 뭐 그렇다고 그가 싫다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니 말이다.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덕후로 90년대 애니메이션 OST 앨범들을 잔뜩 가지고 있으며 실제 배우가 나오는 포르노보다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선호한다는 정도이다. 그보다 그를 정의하는 더 좋은 정보라면 그의 스팀 라이브러리의 게임이 2500개가 넘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인간이다. 쇼핑목록만 확인해도 맥도날드 빅맥세트가 아니면 편의점 도시락 이외에는 모두 게임이나 만화책으로 채워져 있다.

 난 어깨에 멘 가방을 내 자리 뒤의 옷걸이에 걸고 외투도 그 옆에 걸었다. 익숙하게 컴퓨터를 켜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데스크톱 본체와 연결했다. 윙 하는 펜 돌아가는 소리가 좋다. 데스크톱은 자비로 구비한 커스텀 기기로 병원에서 주는 고물은 진작에 반납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사이 팀장은 새로 나온 게임을 실행시키고는 몇 십 년은 사용한 듯한 낡은 소니 헤드폰을 뒤집어 썼다. 이제부터는 누군가 우리를 찾기 전까지 자유시간이었다. 여유롭게 보안 시스템에 접속한 뒤 접속로그를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네트워크 보안을 위해 ‘헤이스만’이라는 사설외주업체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보안레벨등급은 그다지 높지 않다. 어디까지나 접속 트래픽만을 체크하여 해킹유무를 판정하는데 그 정도로는 요즘 아이들의 장난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병원 게이트 서버에 보안 프로토콜을 설치해 작업했다. 물론 병원에서는 내 보안 작업에 대해서 모른다. 내 작업은 적어도 연봉 3억정도의 전문서버보안 프로그래머가 최소 6개월은 작업해야 구축할 수 있는 네트워크 보안망이고, 내게 지급되는 월급은 고작 120만원 정도인데 그것을 그냥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해킹만 하는 내 입장에서 보안체계에 대한 구축을 실제설계하고 구현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난 보안 프로토콜에 접속해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 접속한 기록을 체크했다. 새벽 사이에 총88회 접속기록이 있었고 그 중 4 차례의 해부 해킹 이슈가 있었다. 그 중 세 건이 성공했는데 세 개 모두 마약류 처방전에 대한 추가 수량 작업이었고 접속 IP는 ‘둘둘하나’라고 이름 붙인 익숙한 주소였다. 최근 삼 개월간 이 IP주소로 정기적인 해킹 작업이 들어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조사해본 결과 고등학생 셋이 용돈벌이로 하는 짓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있는 소소한 일이고 해서 별 문제 삼지 않고 있었기에 난 부디 헤이스만의 보안팀이 이들을 빨리 발견하기만을 바라며(그럴 리는 없겠지만) 해당 로그를 삭제했다.

 이후 병원내의 감시카메라를 체크할 수 있는 보안실 서버에 접속했다. 내게는 접속 권한이 없었지만 미리 구해놓은 보안과장 계정으로 로그인한 후 내과에서 시작해서 정신과까지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곧 찾고 있던 남자를 발견하고는 카메라 화면을 멈추었다.

 감시 카메라 모니터에 비치는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신경과의 남자 간호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종규. 올해 5년차 마취의다. 성격도 좋고 다정다감하며 누구에게나 친절한 남자다. 간혹 SNS에 ‘좋아요’를 받기 위해 뜬금없이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고 보유한 포르노 컬렉션에 게이물이 적지 않다는 것만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하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며 약물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6개월 전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소개팅을 하는 편이지만 딱히 누군가와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도 않는다. 친구들과 주말에 야구장에 가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여가생활이고 멍청한 핸드폰 게임을 달고 살지만 현금결제는 하지 않는다. 아직 서른 초반이라 90년대 후반의 가요들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좋아하는 노래는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이다. 영화나 책을 보는 성격은 아니지만 최근 마블 영화라면 꼭 극장에 가서 챙겨보는 편이고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물론 속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남자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이만큼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것과 그의 웃는 모습이 매우 근사하다는 것 정도이다.

 난 종규씨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그의 개인 노트북을 해킹해서 웹 캠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체크한다. 그의 속옷이 몇 장인지 알고 빨래를 돌릴 때 양말만 따로 빨아 넌다는 것도 알고 자위할 때는 항상 알몸이고 사정 후에는 휴지보다는 물티슈를 선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난 그를 사랑하고 이 사람 없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어차피 현실적으로 남남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내 이름도, 내가 이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도, 심지어 내 존재자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어떤 형태로든 그의 인생에 나라는 존재를 끼워 넣어야 하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런다 해도 그것을 사랑이라 정의할 수도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이 있고 지금 상태에서도 난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게 변하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잠시 모니터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려는 순간 종규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45분으로 매일 정기적으로 친구들과 병원을 빠져나가 커피를 한잔 사 들고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잠시 그가 친구들과 병원 로비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카메라 서너 대를 돌려가며 지켜보았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직원 키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난 누가 들어오려는지 고개를 빼꼼이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영미가 문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같은 병원의 정신과 간호사다. 지금 내가 이 병원에서 일하는 것은 그녀가 날 이곳에 소개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와우’를 그만둘 수 있었다. 일상생활과 공존할 수 없는 게임이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아침 일찍….”

 난 모른 척 물었지만 사실 그녀의 방문 이유를 알고 있었다. 6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어제 날짜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두 달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프러포즈의 이유가 바람 피우던 다른 여자에게 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내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알려줘 봤자 처음에는 안 믿을 테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서로 치고 받고 며칠 징징거리면서 날 귀찮게 하다가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없던 일로 하고 다시 그를 만나고 또 다시 얼마 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그런 식으로 날 말려 죽일 뻔 했었으니까.

 “잠깐 나와봐, 할 이야기가 있어.”

 영미가 사무실 밖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날 불렀고 난 최대한 귀찮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평소 때 내가 어떻게 짜증을 냈었는지 곰곰이 생각한 후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나 나가기 싫은데……”

 “닥치고 따라와.”

 난 그녀에게 강제로 이끌려 영안실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와 주차장 계단을 타고 지상위로 올라와 햇빛 아래에 섰다.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병원 뒤쪽의 작은 화단 벤치에 최대한 지친 포즈로 앉아 강렬한 늦여름 햇살 아래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시작했다. ‘여름이 끝나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시작할 때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그 놈팽이 새끼 만나 떡이나 쳤겠지.”

 난 관심 없다는 듯 화단 위의 꽃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뭐 그러긴 했지만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게?”

 다 알고 있는 일을 물어보니 살짝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모른 척 말을 돌리며 흥미 없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결혼이라도 하재?”

 그녀는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아팠다.

 “……. 미쳤구만…”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어? 엄청 오래 기다렸거든!”

 현재에 만족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감당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합니다. 안영미씨. 그럼 전 이만….”

 “가자. 커피 사줄게.”

 그녀는 언제나처럼 내 행동과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날 휘두른다. 뭐 나쁘지는 않으니 언제나처럼 그녀의 장단에 맞추어 휘둘려 준다. 일단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일단 마지막으로 난 그녀와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나 내려가서 어제 영화 받아 놓은 거 봐야 한단 말이야.”

 “무슨 영화?”

 “말하면 아냐?”

 난 비아냥대며 대답했다.

 “영화 같은 거 보다 남자나 좀 만나야 하는 거 아냐?

 “내 나이에 제대로 된 남자 만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그건 남자 쪽도 마찬가지지.”

 내 말 따위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날 끌고 가는 그녀를 따라 뒷문을 통해 병원을 빠져나가 조그마한 동네의 단골 카페로 향했다.

 “지금까지 네가 만난 남자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기는 했어?”

 내 질문에 영미는 잠시 생각해보려 했지만 곧 포기하고 고개를 흔들었고 난 말을 계속 이었다.

 “서른 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우리 나이랑 같다는 건 아냐? 이제 남자는 그만 만나고 그냥 혼자 지내보는 건 어때?”

 내가 말을 끊고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도 날 바라본다.

 “너처럼?”

 난 고개를 끄떡였다.

 “편해.”

 “농담도.”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카페로 들어가 카운터에서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주문한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카페 안쪽으로 들어서자 병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 종규씨 안녕.”

 “아, 미영님.”

 방금 전까지 병원 카메라로 스토킹하고 있었던 그가 거짓말처럼 그곳에 앉아 있었다. 병원 친구들과 함께 커피한잔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잡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친구들하고 커피나 마시고 요즘 꽤 지내기 좋으신가 보네요.”

 “한가한 걸로 따지면 미영씨 못지 않죠.”

 장난스럽게 묻는 미영의 말에 종규씨도 히죽 웃으며 받아 쳤다. 이년은 잘생긴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분명 어제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 받았다는 이슈는 완전히 잊어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이 서로 농담을 던지는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슬쩍 그 자리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져 카페 입구 쪽에서 서성였다. 일단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섞이고 싶지 않았고 종규씨가 내 존재자체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난 최대한 눈에 뜨이지 않게 후드를 눌러쓰고 영미가 대화를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영미는 내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고 난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싫다고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굳이 싫다고 징징거리는 날 억지고 그 무리 쪽으로 끌고 가 소개했다.

 “이쪽은 내 친구 김소향이에요. 병원 IT부서에서 일하죠. 신사분들 컴퓨터는 다 이분이 조립한 거니 알아들 두세요.”

 난 대답 대신 고개만 까딱였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마취의 이종규입니다.”

 그때서야 나도 주춤거리며 인사한다. 사실 인사라기보다는 당황해 작은 목소리로 주절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 대답에 영미가 잠시 흠칫하다가 곧 빵 터져 웃었다.

 “지금이 무슨 80년대냐 ‘처.. 처..음….처음 뵙겠습니다’는 무슨….”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아니 정확하게는 더 과장해서 흉내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잇는다.

 “얘가 남자랑은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이고는 내가 창피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날 다독이기 시작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처음 만나는 사이라면 그렇게 인사하는 게 정상이죠.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때서야 카운터에서 커피를 가져가라며 우리를 불렀고, 그때서야 우리는 그에게 다시 간단히 인사를 했다.

 “완전 잘생기지 않았냐?”

 카페를 나서며 영미가 나를 바라보고는 묻는 건지 자기 생각이 그렇다는 건지 대충 말을 내뱉었다. 난 한숨을 쉬고 잠시 그녀를 흘겨 본 후 정색을 하며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결혼하기로 하신 분에게도 물어보시죠? 회사에 잘생긴 남자가 있는데 관심이 있고 바람도 피워보고 싶다고, 그래도 되겠냐고 말이죠.”

 내 말에 그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장난스럽게 내 말투를 따라 대답했다.

 “아니! 난 분명 바람은 피겠지만 모르게 피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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