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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젖은 어둠은 마음으로 흐른다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남녀의 생존이라는 직업

 
젖은 어둠은 마음으로 흐른다11
작성일 : 19-10-06 13:57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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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시간 좀 내줘”라는 내 말에,

  “왜? 데이트?“라고 리사가 말했다.

  “뭐 비슷한 거.”

  내일은 거스턴에 일하러 가기 한 시간 전에 리사를 만났으면 했다. 리사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일탈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일탈 속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탈은 없다. 나는 조금 일찍 고시원을 나오면 되지만 리사는 미용실을 조퇴해야 한다.

  “한 시간 일찍 가서 청소하고 원장님께 아양을 떨었어.”

  “나 차가 없어서 불편하지 않아?”

  리사는 가방을 빙빙 돌리며 걷다가 “차 안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하잖아? 이 도시에서 차가 있는 게 더 불편해.”

 

  나는 리사를 데리고 백화점에 들어갔다. 리사는 모르겠지만 나는 백화점과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었다. 티셔츠 두 장으로 매일 번갈아 가면서 입다 보니 헤지고 색이 바래서 나 가난해,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3층의 한편에 있는 볼펜 파는 곳으로 리사를 데리고 갔다. 리사는 볼펜을 따로 파는 곳이 백화점에 있다며 신기해했다. 이것저것 볼펜을 구경하더니 점점 낯빛이 어두워졌다. 볼펜은 저렴한 게 6만원 정도였고 대체로 10만원이 넘었다.

  “볼펜 주제에 너무 비싼 거 아냐?”라며 리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면 알겠지만 같은 볼펜은 없어. 전부 직접 만든 수제 볼펜이야. 오늘 너 생일이잖아.”

  리사는 잠시 움찔했다.

  “얼마 전에 화장실 청소할 때 전화하면서 말하는 거 들었어.”

  “하지만 이렇게 비싼 볼펜을…….”

  “세상에 하나뿐인 볼펜이야.”

 

  매장의 직원이 우리가 하는 대화를 진열된 미소를 하고 듣고 있었다. 진열장에서 마음에 드는 볼펜은 16만 원짜리와 18만 2천 원짜리 볼펜이었다. 18만 원짜리 볼펜을 보지 않았다면 16만 원짜리 볼펜을 선물했을 것이다. 하지만 18만 원짜리 볼펜은 훨씬 마음을 잡아당겼다. 볼의 느낌도, 손에 쥐었을 때 감촉도 대단했다. 현금으로 17만 원이 있는데 18만 원짜리를 깎아 달라고 했다. 진열된 미소를 한 직원은 안 된다고 했다. 몇 번의 딜레이가 있었지만 직원에게 거절당했다.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고작 만 원이 더 없어서 나는 정말 사주고 싶은 볼펜을 사지 못한다. 리사는 16만 원짜리도 좋다고 했다. 순간 그 녀석이 미웠다. 이왕 줄 거 18만 원 주지, 17만 원을 남기고 떠나가 버려서 이렇게 서서 점원을 상대로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런 엉망인 내게 짜증이 났다.

  “만 원은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와서 드리겠습니다. 꼭 이 볼펜으로 하고 싶어요.“

  내 말에 매장 안쪽에 있던 매니저가 듣고 17만 원에 18만 2천 원짜리 볼펜을 포장해주었다.

  “이 볼펜은 우브라 보고테라는 이름의 볼펜입니다. 딱 하나뿐이에요. 만든 사람의 입장이 있어서 백 원도 깎아주지 않지만 손님에게는 이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중간에 이렇게 금링으로 튜닝을 했어요. 볼펜을 쥐고 글을 오래 써도 손마디에 무리를 주지 않을 겁니다. 우드 펜이라 시간이 지나면 은은하게 나무 향이 날 겁니다. 그러니까 사용할수록 마음에 드는 볼펜이 될 겁니다. 언제든지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생일 축 리사’라고 문구도 새겨주었다.

 

  거스턴으로 오는 내내 리사는 볼펜을 하늘에 들어 보이고 허공에 글을 쓰는 시늉을 했다.

  “17만원으로 가방도 하나 못 사는데 뭐, 볼펜보다 비싼 옷이 더 많잖아, 그만 티를 내.”

  리사는 내 말을 무시했다. 볼펜을 들고 마치 지휘자가 된 듯 거리를 춤을 추며 걸었다.

  “이건 세상에서 하나뿐인 거잖아.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나도 세상에 하나뿐인 것처럼 특별하게 느껴져. 공장에서 찍어내는 비싼 자동차는 또 사면되지만 넌 자동차처럼 다시 살 수 없잖아, 그래서 네가 특별해,라고 하는 것 같아. 나도 여자잖아. 여자는 그럴 때가 있어.”

  리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줬어.” 그리고 웃었다.

  “에? 그럴 리가.”

  나는 특별한 돈으로 리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리사가 이 돈의 출처를 알면 화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이 도시에서 돈이란 아침에는 여기 있던 돈이 밤에는 고작 저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돈으로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든다면 난 엉망진창인 인간이라도 상관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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