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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19화
작성일 : 19-10-04 22:44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7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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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역은 지금 촬영 준비 하느라 분주했다. 분장을 마친 제호는 눈치를 보더니 기차 칸으로 들어갔다. 스파이 접선하는 것 마냥 주위를 둘러보더니 화장실에 쑥 들어갔다.

 화장실엔 윤아가 미리 기다리고 있어 밀폐 된 그 공간은 두 사람만으로 꽉 찼다.

 제호는 들어오자마자 바로 윤아에게 키스했다. 감정 없이 그저 입술만 탐하는 욕심 가득한 키스를 받는 것만큼 기분 나쁜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은 싫다고 했잖아요!”

 “뭐, 진심으로 해주길 바래?”

 

 목적을 달성한 제호는 차갑게 돌아섰다. 윤아는 입술을 매만지면서 울음이 터져 무너져 버렸다.

 

 “네.... 네...”

 

 제호는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여배우가 제호에게 애절한 키스를 하고 뒤돌아서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출발하고, 제호는 허공으로 손을 뻗으면 눈물을 툭 흘렸다.

 

 “사랑해....”

 

 대본에는 눈물 한 방울이었지만 제호는 울컥 자신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감독의 컷 소리에도 제호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분위기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다들 왜 저래? 하는 얼굴이었다.

 나대표가 당황해서 튀어나와 제호를 부축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아무래도 우리 이배우가 인물에 격하게 빠져든 모양입니다. 감독님, 잠깐 쉬었다 가시죠.”

 

 제호는 나대표의 부축에도 무너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는 또 익숙해진 하얀 천장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이번에는 약혼자가 아닌 의사의 본분에 충실 하려는 듯 난영은 가운 차림으로 링거액을 조절했다.

 

 “과로는 아닌데. 무슨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 있었어?”

 

 제호는 난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사랑해, 난영씨. 사랑해...”

 “어째 꼭 사랑해야 된단 소리처럼 들린다.”

 

 미세하게 떨리는 제호의 동공..... 난영은 그의 손을 풀어버렸다.

 

 “아무생각 말고 쉬어.”

 

 그녀가 나가자 그는 참았던 웃음과 본마음이 나왔다.

 

 “사랑 한다 수 백 번 외쳐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닌가봐. 너 지금 뭐하니?”

 

 

 

 

 살짝 파리한 얼굴로 제호는 다시 기차 씬 촬영에 임했다. 코디가 분첩으로 두드리는데 메이크업이 잘 먹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제호씨, 감정을 터뜨리지 말고 헤어지는 고통을 속으로 꾹 참는 걸로 가줘요.”

 “네.”

 “레디, 액션!”

 

 허공으로 손을 뻗는 제호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눈물이 천천히 고이게 했다.

 희뿌연 제호의 시각이 눈물이 뚝 떨어지자 서서히 선명해지면서 저 멀리 헬멧을 쓴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설마... 그의 얼굴에 살짝 기대감이 서렸다.

 

 “컷! 마지막 표정 좋았어.”

 

 헬멧과 얘기한 막내 스텝이 난처한 얼굴로 조감독에게 와서 무어라 했다.

 조감독, 감독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제호씨한테 택배가 왔다는데요. 중요 한 거라 꼭 직접 줘야 된답니다.”

 “아, 집중 좀 할라 하면! 빨랑 주고 가라 그래!”

 

 막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조감독으로 인해 헬멧은 성큼성큼 가다가 점점 걸음이 빨라지더니 박스를 버리고 제호를 향해 돌진했다.

 헬멧과 제호가 충돌 하려는 찰나 보호 창이 열리고 그에게 키스를 하였다.

 익숙한 감촉, 익숙한 숨결.... 그는 윤아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윤아는 살짝 입술을 때면서 보호 창을 내리며 “미안해요, 근데 사랑해요.” 하고는 멋있게 돌아서 가려는데 제호가 돌려세웠다. 그리고 헬멧을 확 벗겨버렸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윤아의 두 볼을 안타깝게 끌어안은 제호는 격렬히 키스를 퍼부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든 사진을 찍든 상관없이 오로지 둘에게만 집중해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제 18화

 

 톱스타가 약혼녀가 아닌 여자와 키스를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가십거리는 없을 것이다.

 스텝들 경악하면서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스타의 사고를 막는 게 일인 나대표는 일일이 막느라 쩔쩔매었다.

 

 “어어! 거기 찍지 마! 찍었다간 고소할거야!”

 

 나대표가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사이 막내가 급하게 찍고 도망쳤다.

 그는 저 놈 잡아라! 하며 출렁이는 배로 쫓아갔다. 그의 무거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신문 타이틀은 제호가 따내고 말았다.

 각 신문들은 ‘톱스타 이제호, 양다리?’ ‘개인 비서의 실체. 이제호의 세컨드, 이제호 막장 연애 풀 스토리.’ 등 최대한 자극적이게 뽑아내고 막내가 찍은 제호와 윤아의 키스 사진이 선명하게 실렸다. 제호의 소속사는 전화 벨소리 환청이 들릴 정도로 쉬지 않고 울려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대표의 눈치만 볼 뿐 받지를 않았다.

 제호는 저번 스캔들 터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눈을 감고 회전의자를 빙글빙글 돌리기만 하였다.

 

 “지금부터 핸드폰 배터리 빼. 단 한 줄이라도 소속사 입장 기자들한테 나가기만 해봐!

 모두 모가지야!!“

 

 나대표의 으름장에 감히 따질 수 없었던 직원은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받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대표는 신경질 날 정도로 계속 울려대는 전화에 열이 뻗쳐 전화기를 박살내 버렸다. 인터넷 확인하던 직원 중 하나가 다급하게 나대표를 불렀다.

 포털사이트에는 성윤아, 감전녀, 성윤아 신상이 실시간 검색어 1,2,3순위이었다.

 연관검색에서 성윤아 딸을 클릭하는데. 샛별 엄마 미니홈피의 윤아와 샛별의 사진이 떴다.

 샛별 얼굴엔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고, 손에 들린 곰인형이 확대 되었다.

 곰인형을 만들었다는 팬이 제호와 윤아 사이 낳은 딸이 아니냐고 자기 생각을 얘기 했는데

 그 내용이 기정사실로 기사화 되어 버렸다. 설상가상에 첩첩 산중이었다.

 

 “빨리 아니라고 정정기사 요청해!”

 

 하지만 이미 대중은 제호에게 돌아서고 말았다. 아무도 소속사 공식입장을 아무도 안 믿고,

 제호를 애 딸렸는데 딴 여자랑 결혼하려 한 파렴치한으로 몰고 갔다.

 그의 차기작은 물 건너갔고 입술이 예쁜 남자 1위에서 가장 꼴불견 스타 1위로 추락을 해버렸다. 나대표는 더 이상 안 내려가려고 최후의 발악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대기 중에도 악재는 계속 터져 나왔다. 제호가 맡은 수십개의 CF가 다 취소 되어버렸다.

 

 “너 그거 다 물다간 지난 십년동안 번 돈 다 잃고 알거지 되는 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 너 여자들 감전 시킨다 인정해봐. 작품 다 끊겨. 배우 인생도 끝이라고!”

 

 정말 최악이다, 제호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뒤집어씌우자. 그 여자 정신병자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더니 결국 일 쳤다. 감전키스도 지어 낸 거다! 언론 창구 하나 없는 일반인이 뭐 어쩔 거야.”

 “나대표님!”

 “여기서 끝나려 그래, 인마!”

 “나 그냥 쫓아내요. ......위약금 덤탱이 씌워도 원망 안 할게. 같이 있다가... 대표님까지 생매장 당해요.”

 “스타.....”

 “죄송해요, 근데... 그 여자 다칠 거 뻔히 보이는데, 모른 척 연기 하는 거 여기선 못하겠어요.”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고는 결심한 듯 회견장 물을 열었다.

 나대표가 제호의 손을 그러쥐었다.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 나대표, 의리는 지킨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하는 나대표의 모습에 제호는 피식 웃음이 났다.

 둘이 손을 잡고 같이 문을 열고 나가자 셔터가 정신없이 터졌다.

 그때 윤아는 난영을 찾아갔다.

 

 “저 아저씨 사랑해요.”

 “그래서요. 내가 머리채라도 잡고 싸워주길 바래요? 왜 그런 소릴 해요?”

 “죄송해요. 아저씨가 나 때문에 다 잃게 생겼는데 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언니도 아저씨 사랑하잖아요. 그 사람 지키고 싶은 건 같은 맘일 것 같아 왔어요.

 저 어떡해야 되요? 어떡하면 그 사람을 지킬 수 있어요?“

 “방법이 있다면... 할래요? 윤아씨가 망가지는 일이라도.”

 

 윤아는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였다. 그녀가 지킬려 한 제호는 가시방석 같은 기자 회견을 하고 있었다.

 

 “우선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실망시켜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 어떤 변명도 안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비판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당분간 자숙을...”

 “키스 하면 상대를 감전 시킨다는 게 사실입니까?”

 

 기자들은 제호의 형식적인 변명에 관심이 없는 듯 말을 끊고 질문을 하였다.

 옆에 앉은 나대표가 테이블 밑으로 제호의 손을 꽉 잡고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제호의 얼굴과 윤아의 표정이 닮았다.

 

 “그렇게 되면 윤아씬. 평생 제호씨 빛 뒤에 숨은 그림자로 살아야 되겠죠.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사랑에도 운명에도, 난 윤아씨한테 밀리는군요.”

 “네?”

 “지금까지 질투 나서 말 안 했는데. 제호씨도 윤아씨랑 같은 맘이에요.”

 “우린 그럼 안돼요. 같이 무너질 거예요.”

 “나도 남들 해볼 만큼 사랑했고, 이별했지만. 아픔은 감당하기 쉬웠어요.

 이 사람은 내 운명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편해지거든. 사람들은 내 옆 사람이 운명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평생을 함께 해도 이 사람과 같이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재다가 끝나버리죠. 근데 둘은 서로가 아님 안 되잖아요.“

 “왜 그런 얘길 하는 거예요?”

 “서로한테 안 보이고 제 3자 일 때만 보이는 걸 알려주는 것뿐이에요. 진단하고, 알려주는 건 내 몫이니까. 난 알약을 손에 쥐어줄 순 있지만,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건 윤아씨가 해야죠.”

 

 윤아가 선택의 순간 결정을 내렸듯 제호도 답을 내놓았다.

 

 “...사실입니다.”

 

 기자들을 웅성거리는 시간도 아까운 듯 노트북이 부서져라 정신없이 타이핑하느라 바빴다.

 

 “저는 키스를 못하는 병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병이 아니었어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운명을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행운이었습니다.”

 

 바쁘게 키보드를 치던 기자들은 동시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타이핑을 멈췄다.

 

 “이제호씨, 잠깐 이것 좀 보시죠.”

 

 기자가 프로젝트를 켜 스크린에 윤아의 동영상을 띄웠다. 화면에는 피시방으로 보이는 곳에 윤아가 헤드폰 마이크를 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냥 관심 받는 게 좋아서 어떻게 하면 더 관심 끌까 하다가 키스하면 감전된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병이.”

 

 그녀의 동영상 고백은 스마트 폰을 통해 빠르게 사람들이 접했다.

 

 “이제호씬...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저만요. 이제호 싫어하는 여자가 세상에 어딨겠어요. 그렇게 멋진 남잘.... 제호씨 욕하지 마세요. 절욕하세요. 너무 사랑해서, 제호씨 애인이라고, 딸도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제 비뚤어진 사랑이 그 사람을 더 이상 힘들게 하는 게 싫어 이렇게 다시, 동영상을 올립니다. 이제호씨, 힘들게 해드려 미안합니다. 행복하세요.”

 

 물기 가득한 눈으로 미소 짓고는 윤아의 동영상이 마무리가 되었다.

 제호는 눈물을 안 흘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눈이 벌겋게 충혈 되어 갔다.

 

 “이제호씨, 저 말이 전부 사실 입니까? 그렇담 왜 인정한 겁니까?”

 

 “대답해주십시오!” 하는 기자들의 닦달이 꿈결처럼 웅웅거렸다.

 시야가 흐리고, 이곳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보다 못한 나대표가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대고 대신 대답을 했다.

 

 “사실입니다. 이배운 행여 일반인인 성윤아씨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까 염려해 모든 짐을 자기가 짊어지고 가려 했습니다. 이배운 팬들의 마음을 쉽게 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신경 써서 문제지요. 죄가 있다면 저런 여자인지 모르고 개인 비서로 쓴 대표인 저에게 있습니다.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손으로 눈을 가리고 흐느끼는 나대표를 제호는 보았다. 우는 시늉만 하는 걸 보다가 제호는 그만 못 참고 기자회견장을 뛰쳐나갔다. 뛰면서 윤아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지금은 그저 달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윤아는 모든 것을 마치고 처벅처벅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여학생 무리가 따라가면서 위협적으로 불러댔다.

 설마 나 부르는 건가? 아니겠지... 하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으로 윤아는 안 돌아보고 걸음을 빨리 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야!!”

 

 책가방이 윤아 뒤통수를 강타해 버렸다.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에 올라타려는 제호를 로드 매니저 둘이 붙잡았다.

 

 “놔, 이거 못 놔!”

 

 몸부림치는 제호를 나대표가 무섭게 다가오더니 가차 없이 따귀를 때렸다.

 

 “이게 우주 대스타라고 떠받들어 줬더니 정신까지 안드로메다로 갔어!”

 “윤아한테 가봐야 되요.”

 “그 여자한테 목숨 값 빚졌음 국으로 입 닫고 있어. 그 여자가 어떤 심정으로 동영상 올렸는지 알면 너 이러면 안 돼. 인마!”

 

 그녀 덕분에 배우로서 생명이 인공호흡 되었으면서 그는 윤아가 힘들어 할 게 뻔한 데 손 한번 제대로 못쓰는 상황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그저 부술 듯 차를 치고 때리며 자신의 손과 발에 고통을 안겨주는 걸로 죄책감을 더는 것 밖에 없었다.

 찌그러진 차 후레쉬에서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제호의 넓고 환했던 집은 쪽방 빈민촌 같은 어두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두껍게 커튼을 쳐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공간에서 수염도 안 자르고 초췌하게 그저 숨만 쉬었다. 소파에 기대어 선잠을 자다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눈이 억지로 떠졌다.

 난영이 들어오더니 제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꼴이 이게 뭐야?”

 

 그녀는 커튼을 확 열어젖혔는데 제호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커튼을 다시 쳐버렸다.

 

 “가, 피곤해.”

 “윤아씨...”

 “걔 얘긴 꺼내지 말구. 듣기 싫어.”

 “듣기 싫어도 들어! 당신 지키자고 그 여자가 그림자가 됐으니까.”

 

 난영은 빼 놓은 렌선을 노트북에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동영상을 틀어주었는데 윤아가 흠씬 두들겨 맞고 쓰레기더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제호는 차마 못 보겠는지 고개를 돌렸다.

 화면 밖에 여고생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잔인하게 들렸다.

 제호는 바로 사무실을 찾아갔다. 콧털을 뽑으며 뽕짝을 흥얼거리던 나대표는 문이 쾅 열리고 제호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 딸꾹질을 해댔다.

 

 “스타... 딸꾹, 왔어?”

 “윤아 일, 왜 말 안했어요.”

 

 나대표는 가슴을 치며 딸꾹질을 꿀꺽 삼켰다.

 

 “말하면 끄억- 뭐가 달라져? 그 여자가 감당해야 될 일이야, 신경 꺼. 그리고 꼴이 그게 뭐냐. 개봉일 받아놨어. 피부 관리 좀 받고 홍보 할 준비나 해.”

 

 

 

 

 

 

 무슨 일인지 다 하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윤아도 상처 받는 연약한 여자일 뿐이었다.

 이불 속에 숨어서는 핸드폰과 집전화 전원을 다 빼놓았다.

 초인종이 쉼 없이 울리고, 밖에선 여중생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댔다.

 그만... 제발 그만... 모든 것이 멈추길 주문을 걸면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계속 된 괴롭힘에 지쳐 먹지도, 자지도 못해 파리하였다.

 윤아의 집 앞은 낙서와 쓰레기로 가득찼다. 꺼져라, 죽어라 매직으로 욕설을 써 놓은 여중생들은 자기들이 써놓은 욕 창작물을 보고 킬킬 거렸다.

 

 “재밌니?”

 

 선글라스 쓴 제호가 여중생들 앞에 섰다. 여중생들은 호들갑 떨며 스마트 폰으로 제호에게 들이밀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현관문 낙서들을 바라보았다.

 

 “사인 한번 기가 막히게 해놨네. 거기다 말고 여기다가 좀 해봐라.”

 

 제호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여중생들이 부끄러워 하며 제호의 손바닥에 싸인 하려고 펜을 갖다 대었다. 팬을 우악스럽게 잡는 제호의 악력에 펜이 우두둑 부러졌다.

 

 “너희는 하나, 둘, 셋이 욕 한마디, 낙서 하나일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은 천, 이천, 삼천개의 상처로 날아와.”

 

 제호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서는 그렁그렁해졌다. 손바닥에서는 핏물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여중생들은 겁이 나 부들거렸다.

 

 “오빠, 피나요....”

 “내 맘보다 더 아플까.”

 

 제호는 아프게 웃으며 여중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핏물이 머리카락에 묻어났다.

 

 “너도 언젠가 진짜 운명을 만나면 알게 될 거야. 지켜주지 못해 심장이 찢기는 것 같은 아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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