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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16화
작성일 : 19-10-04 22:36     조회 : 211     추천 : 0     분량 : 7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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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호는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자신의 엔터테이먼트 사무실에 갔다.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터져 발바닥에 땀나게 이리 저리 뛰었다.

 가만히 펜대만 굴리며 여유롭게 연예인 관리하는 줄 알았던 신참 직원은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 끝에서 끝까지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받고 해명하느라 정신없었다.

 이 사무실에서 땀 한방울 안 흘리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이 사단을 일으킨 당사자, 제호뿐이다.

 제호는 나대표의 회전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한껏 뒤로 젖혀 뱅글뱅글 도는 것 말곤 할 일이 없었다. 전화벨이 미친 듯 울리고, 해명하는 직원들의 피곤에 절은 목소리가 뒤섞여 환청처럼 들렸다. 그 소리가 제호 자신을 탓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다.

 죄송하다는 말이.... 빨리 뛰라는 고함이....

 제호보고 불편해져라... 불편해져라.... 하고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데뷔 이후 최대의 스캔들과 위기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이 벌려 놓은 일을 정작 자신은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능함에 미치도록 열 받았다.

 이렇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인지 제호는 처절이 느꼈다.

 지금 할 줄 아는 거라곤 회전의자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다급하고 정신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터져 들어오더니 다시 닫혔다.

 제호는 빙그르르 돌아 고개를 뒤로 젖혀 출입구를 보았다.

 낯선 환경에 노출되어 잔뜩 위축 된 윤아의 상이 거꾸로 들어왔다.

 전화기들이 쉽 없이 울려대고 직원들이 목을 쉬게 만든 당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윤아가 제호가 있는 공간에 들어온다면 그건 스캔들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귀신 본 것처럼 놀란 제호는 일어나려고 버둥대다가 헛디뎌 그만 우스꽝스럽게 넘어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그가 넘어지자 윤아는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도움을 주었다.

 제호는 자신의 자켓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 같은 존재라 여긴 윤아에게 하찮은 부축을 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윤아를 밀치고 재빨리 일어나 제호는 어깨를 털었다.

 

 “뭐야, 너. 니가 여기 왜 있어!”

 “저...”

 “내가 불렀어.”

 

 나대표가 탱글 거리는 파마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들어왔다.

 생긴 거나 행동하는 게 가볍고 방정맞아 보이지만 지금은 진지했다.

 평소 제호에게 ‘우주대스타’ 라고 모셔대며 능글맞게 웃어대던 기름진 웃음 끼는 확 빼고 문을 잠갔다. 제호는 자신의 스캔들을 막을 의무가 있는 나대표가 윤아를 자신 앞에 데려 놓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대표님, 스캔들이 터졌음 막아야지, 더 헤집어 놓자는 거예요?”

 “성윤아씬 개인비서로 들어 온지 한 달 정도 됐고, 난영씨랑은 예전부터 친한 언니 동생 사이라 결혼 준비 도와주다보니 약간의 트러블도 있었지만, 지금은 화해한 상태. 그래서 둘 데이트 할 때도 따라다닌다. 그럼 기깍기 딱 맞춰지잖아.”

 

 나대표의 얘기도 일리가 있었다. 제호는 나대표를 의외라는 듯 보았다.

 맨날 뺀질뺀질 사무실에 앉아 시간만 때우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만 뒤지는 한심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위기상황이 되니까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갔다.

 나대표는 세간의 흐름을 귀신같이 읽어내고,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

 

 윤아는 바로 제호의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시키는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슈트를 장착한 제호는 코디의 메이크업을 오만하게 받고 있었다.

 제호가 손을 후치 자 코디 내리고 문을 닫았고, 윤아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니가 웬일이냐. 이런 일을 선뜻 하겠다 하고.”

 “아저씨가 페이를 쎄게 줄 거라 해서요. 오빠 선물 사주려면 급전도 좀 필요하고.”

 “너 돈 필요 없다며.”

 “제가 언제요? 살려면 돈은 필요하죠.”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며 바락바락 대들었던 게 엊그제였는데 시치미 뚝 떼는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선물을 만인에게 널리널리 자랑하고 싶어 하는 심정은 여자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다.

 윤아는 가슴을 한껏 내밀며 목걸이를 봐주길 바라는데 아무 반응 없자 더 힘껏 내밀었다.

 이럴 때 남자는 귀찮고 짜증나도 맞장구 쳐주는게 신상에 좋다.

 

 “그래, 목걸이 예쁘다.”

 “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울 오빠가 사줬어요. 내가 절~대 사달라고도 안했는데 사준 거예요. 물론, 날 생각하는 마음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거겠지만.”

 “그래, 좋겠다. 너 남친 선물 값 벌고 싶음 제대로 해라. 농땡이 부리면 가차 없이 깎을 거야.”

 

 쳇- 불평 가득한 윤아를 본체만체 하고 하얗고 고른 이를 한껏 보이면서 제호는 벤에서 내렸다. 여자들의 환호성이 찢어질 듯 들렸다.

 

 

 

 

 

 개인 비서라는 역할이 참 위치가 애매했다. 시키면 하고 기라면 기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윤아는 난영 병원의 로비를 대걸레질 하였다.

 벼는 익을수록 허리를 숙이는데 어렵지 않지만 사람은 뼈가 있으니 굽힌 허리도 가끔 펴줘야 한다. 우두둑 거리는 허리를 움직이며 잠시 쉬던 윤아의 귀에 난영의 간질거리는 웃음소리 들렸다. 윤아는 호기심을 못 참고 조심스럽게 진료실 쪽으로 갔다.

 살짝 문을 열어 살피는데 제호가 난영의 목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사랑해.”

 “알았어, 그만, 그만.”

 

 난영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높아져만 가고, 윤아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질투가 베인 눈초리로 되어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는 문을 소리 안 나게 닫고 신경질적으로 노크했다.

 난영은 얼른 제호를 밀쳤다.

 

 “왜!”

 “청소 다 끝났는데요!”

 

 제호는 문을 열고 얼굴만 배꼼 내밀었다.

 

 “그럼 다른데 청소하면 되잖아.”

 “알겠어요.”

 

 진료실 문을 억지로 밀고 들어간 윤아는 대걸레질 하면서 제호의 다리 사이, 난영의 발밑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댔다. 난영과 제호는 몸을 피하느라 의도치 않게 왈츠를 추었다.

 

 “그만! 여긴 됐구,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왜요? 일 제대로 안하면 월급 깎는다면서요.”

 “지금은 좀 대충해! 애가 왜 이렇게 유두리가 없어.”

 

 윤아의 유두리 없는 일처리는 제호의 집에서까지 이어졌다.

 제호의 식기를 흐르는 물에 대충 거품을 씻고 그릇을 개수대에 놓았다.

 깔끔한 성격의 제호가 언성을 안 높일 수가 없었다.

 그는 공처럼 말린 빨랫감을 들고 와서 씩씩거렸다.

 

 “따로따로 빨아야지! 완전 공처럼 됐잖아!”

 

 윤아의 설거지하는 모습은 제호에게 이차 폭격을 했다.

 그는 그릇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는데 쭉 미끄러졌다.

 

 “비눗물이 그대로네. 좀 제대로 할 수 없어?! 자꾸 이럼 월급 안 준다!”

 “대충 하라며요. 왜 한입으로 두 말해요?”

 

 제호는 말 귀를 못 알아듣는 개인 비서 때문에 복창이 터진다. 터져.

 

 

 

 

 

 

 제호는 난영을 잠깐 만나고 헤어질 사이가 아닌 진지한 관계로 여기고 있었다.

 입술은 개방적이어도 마인드는 보수적이었던 제호는 사랑의 완성을 결혼으로 보았다.

 둘의 결혼 준비는 난영의 웨딩드레스를 골라주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둘의 애정관계에 고춧가루를 팍팍 치는 존재가 자꾸 훈수를 두어대었다.

 

 “드레스만 예쁘면 뭐해. 까만 얼굴이 더 부각되어 보이잖아. 신부가 부각되어야지.

 안 그래요, 언니?“

 

 난영이 드레스를 걸치고 나타날 때마다 제호는 우와-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윤아의 거드는 말 때문에 드레스는 계속 바뀌었다.

 

 “드레슨 참 예쁜데... 팔이 뚱뚱해 보이지 않나? ...... 언니 얼굴엔 분홍색은 안 받는다. ........

 너무 딱 붙는다. 똥배까지 신경 써야지. 한 달 내내 굶는다고 없어질 밴 아닌 것 같은데.“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마음으로 윤아는 도와주고 있다 착각하지만 그녀의 말은 계속 오른손에게 강 스매싱을 날리는 꼴이었다. 기분이 팍 상한 난영 커튼 뒤로 들어가 버렸고, 계속 되는 탈의에 지쳐버린 제호는 발끈해버렸다.

 

 “야! 그냥 예쁘다고 하면 되지. 이럴 거면 가!”

 “친한 언니가 드레스 고르는데, 아만 설정이라두 그냥 넘어갈 순 없죠. 대충하지 말라면서요.”

 

 얄미운 역의 전형을 여주인공이 하고 있다.

 우리의 남주인공은 이걸 확 그냥! 주먹이 올라가는 걸 꾹꾹 내리 참았다.

 둘의 갈등은 드레스룸에서 활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발단은 윤아는 셔츠 다림질 하다가 야! 하고 복식 고성부터 내지르며 들어오는 제호로 인해 서였다.

 

 “왜요! 왜! 내가 또 뭘 잘못했다고!”

 

 대들긴 했어도 그의 꾸지람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지 윤아는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말 한마디 했다고 우는 여자만큼 남자에게 주눅을 안겨주는 건 없을 것이다.

 

 “야... 너 왜 그래..”

 “맨날 뭐라 하기만 하구. 잘 하랬다가 대충 하랬다가.. 나보고 어쩌라고.. 엉엉...”

 “알았어, 미안해. 니가 조금만 유두리 있게... 아니다.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 울지 마. 뚝”

 

 제호는 윤아를 일으키는데 그녀가 와락 끌어안고 울었다.

 당황은 했지만 우선 달래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제호는 토닥거려주었다.

 조금 진정된 윤아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적거려 눈물을 닦았다.

 제호는 한 소리 하고 싶어도 또 울릴까봐 말을 말자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괜찮으면 단추 좀 풀어줄 수 있어? 내가 잘 못 풀어서.”

 

 사실 그건 핑계다. 하얀 콧물로 범벅 된 셔츠를 자신의 손으로 만져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선 오해 할 만 한 말이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뱀이 허물 벗듯 재빨리 셔츠를 벗어버린 제호 때문에 윤아의 시야가 그의 맨몸에 가렸다.

 

 “뭐예요!”

 

 제호는 아랑곳 않고 새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렸던 윤아는 아무 반응 없자 손가락 사이로 살펴보았다,

 그녀의 시야에 제호의 가슴팍이 들어왔다.

 

 “엄마야!”

 

 허둥대다가 뒤로 넘어질 뻔 하는 것을 제호가 잡아주었다.

 상기된 얼굴에 계속 파장이 이는 눈동자, 턱턱 걸리는 미세한 숨소리.

 제호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설마, 너..... 아니지?”

 “네?”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한 윤아를 제호는 그냥 놔버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게 만들었다.

 

 “너 진짜 나 사랑 하냐?”

 

 순간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하는 윤아를 지겹다는 표정으로 제호는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라. 우리가 같은 병에만 안 걸렸음 넌 날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일 텐데.

 날 빛낼 수 없는 니가 내 옆에 어울린다 생각해?”

 

 정말 모욕적인 말이었다. 여자는 모멸감을 느끼면 억울함에 눈물부터 그러차게 되었다.

 하지만 울면 진짜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거다.

 입술에 피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을 꽉 붙들고 안 놔줄 것이다.

 

 “이해는 돼. 몸이 통하면 마음도 동한다고. 입술이 땡기니까 마음도 흔들릴 수 있긴 하거든.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제호는 윤아의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같잖은 위로랍시고 주는 손길이 더욱 기분이 엿 같았다.

 

 “정신은 아저씨가 차려야 될 것 같은데. 아저씨 같이 늙다리에다 이기적이고 잘난 척 쩌는 남자 줘도 안 가져요!”

 

 윤아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좋아하는 걸 들켜 퇴짜 맞는 것도 자존심 상하지만, 좋아한다 넘겨짚고 거절하다 헛다리짚은 것도 즐겁지는 않다.

 무안해진 손을 괜히 맨손 체조를 하며 풀어보려는데 그의 콧속에 타는 냄새가 훅 들어왔다.

 내 심장이 타는 냄새는 절대 아닐 테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다가 자신의 명품 셔츠에 올려진 다리미에서 지글지글 연기가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첫 급여 봉투만큼 일하는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건 없을 것이다.

 팔도 다리도 얇은 건 참 좋지만 고기와 봉투는 두툼한 게 좋은 게 한국사람의 마음인데 윤아의 봉투는 얇아도 한참 얇았다.

 

 “태워먹은 셔츠 값 정돈 빼줄까 했는데, 괜히 오해할까봐 확실하게 계산했어.”

 “네, 잘하셨어요. 우리 사이가 계산적인데 확실히 해야죠. 근데 너무 뺀 거 아니에요?”

 

 “수표네?”

 

 수표라는 존재는 얇은 봉투에 반비례와 뚱뚱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희한한 녀석이다.

 복사꽃처럼 활짝 핀 윤아에게 제호는 무슨 선물을 할 거냐고 물었다.

 

 “그게 문젠데요... 아저씨가 나랑 같이 선물 고르러 가면 안돼요?”

 “내가 왜.”

 “전 남친들이 내가 사준 건 대놓고 싫다 하고, 뭘 좋아하는지 말도 안 해줬어요. 오빠도 그럼 어떡해요. 제발요, 네?”

 

 하는 짓이 유두리가 없는 게 선물하는 센스도 없을 거라 짐작한 제호는 허락했다.

 

 “그럼 사와 봐. 괜찮은진 봐줄게.”

 

 그렇게 반지의 원정대의 고난과 맞먹는 윤아의 선물사기 원정은 시작되었다.

 구두를 내밀어 보지만 싸구려를 어디에 내비냐며 팍 쳐버렸다.

 선물 원정의 끝은 항상 제호가 있는 장소이었다.

 헤어 캡을 뒤집어쓰고 잡지를 보는 그 앞에 지갑을 내미는 윤아는 정말 어렵게 구해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가빴다.

 

 “차라리 여길 꽉 채울 만큼 돈을 줘. 그걸 더 좋아할걸?”

 

 제호는 선물에 들어간 정성과 시간 따윈 쳐다보지도 않고 아웃 해 버렸다.

 풀이 죽어선 지갑 들고 나가려는 윤아를 그가 잡아 옆자리에 앉혔다.

 

 “온 김에 너도 하고 가. 그 꼴로 같이 다니기 창피하니까.”

 

 윤아가 내민 홍삼 셋트는 대놓고 음흉하다며 면박을 주기 일쑤.

 운동화, 시계, 가방, 넥타이핀, 금반지, 은목걸이 등등, 파라노마처럼 지나갔지만 모두 퇴짜 놓았다.

 윤아는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넥타이를 내밀었다. 도자기 감정하듯 이리저리 살피던 제호는 괜찮다는 평을 하였다.

 

 “근데 색깔이 넘 후지다. 로열블루가 낫지 않을까?”

 “아, 더 이상 못해! 진짜!!”

 

 선물 찾기의 기나긴 여정은 윤아를 철퍼덕 주저앉아 땡깡을 피우게 만들었다.

 

 “하여튼 센스 하곤. 이정도 했음 곰도 패션피플이 됐겠다. 오늘 마침 쉬는 날이구,

 쇼핑할 생각이었으니까 바꾸러 같이 가주지 뭐.“

 

 윤아는 천진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보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따라 웃게 만들었다.

 

 

 

 

 

 아이쇼핑을 하는 제호의 주위로 몇몇이 알아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윤아는 혹시나 저번처럼 스캔들이 날까 염려해 몇 발자국 뒤 떨어져 걸었다.

 

 “내외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스타시니 까요. 괜히 제 옆에 있다 빛 잃음 어떡해요?”

 

 저번에 드레스룸에서 한 제호의 말에 아직 앙금이 있는 듯 했다.

 제호는 윤아의 팔을 끌어 자기 옆에 세웠다.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개인비서. 너 하나 땜에 없어질 광채가 아니니까.”

 

 윤아는 재수 없어 죽겠다는 얼굴로 콧방귀 뀌며 제호를 따라갔다.

 넥타이 진열대를 쭉 살피다가 슬림한 로열 블루를 집은 제호는 자신의 목에 대보고 거울을 응시했다.

 

 “이런 칙칙한 타이도 내가 받쳐주니 특별하네. 역시 패션은 얼굴이야.”

 

 윤아는 제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타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뭐야, 이거. 안 치워?”

 “아저씨가 할 거 아니잖아요. 이걸 오빠 출근할 때 메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제호는 이상하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타이를 뒤집어 가격을 확인하던 윤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무슨 넥타이 값이 월급을 다 잡아 먹냐.”

 “싸구려 사주고 책잡히던지, 비싼 거 사주고 생색내던지. 알아서해. 이건 내가 사야겠다.”

 

 제호가 들고 카운터로 가려는데 윤아가 넥타이를 낚아챘다.

 카운터 점원에게 포장해달라고 말하며 설레어 하는 윤아를 그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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