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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13화
작성일 : 19-10-04 22:31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9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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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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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윤아와 수의 첫 키스는 제호의 가슴에도 불을 지폈다.

 연기가 아닌 진짜 사랑하는 여인과 나누는 키스.

 제호는 이때껏 하지 못했던 원초적인 본능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아와의 키스가 필요했다. 제호는 윤아와의 키스를 그저 도구로만 생각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존재로 말이었다.

 문제는 난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하고, 옷을 벗고, 신음을 흘리는 게 익숙했던 제호와는 달리 난영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남의 알몸과 신음은 보고 들었어도 자신을 드러내는 게 낯선 난영에게 윤아를 이용해 키스 해보자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얘기일 것이다.

 제호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말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윤아의 그 말도 안 되는 얘길 듣고 고장 난 차를 움직이게 한 것처럼, 상황만 바쳐준다면 할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윤아는 난영과 제호 사이에 끼어서 난처하게 되었다.

 이 사이 끼어 있는 음식물마냥 윤아는 뽑아 버리고 싶으나 뽑히지 않는 짜증나는 존재가 되어갔다.

 

 “제정신이야?”

 “자연스러운 거지. 사랑하는 사람이랑 키스 하고 싶은 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나나 윤아씨한테도.”

 “상관없어요. 우린 배터리랑 충전기 사인데요, 뭐. 그냥 필요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건데

 무슨 예읠 차릴 필요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아저씨?“

 

 윤아는 캐릭터답지 않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쿨해지려 노력했다.

 그동안 머릿속이 고장 난 DVD 플레이어 같았다. CD를 빼려고 별 짓을 다해 봐도 빠지지 않고 같은 장면만 수백, 수천 번 재생을 해댔다. 부산 가는 길, 어깨를 감싸 안은 제호의 손...

 그만 보고 싶어 눈을 감아 보아도 영상은 눈꺼풀을 뒤집고 들어와 계속 틀어댔다.

 눈을 감아도, 떠도 보기 싫은 영상을 억지로 보는 고통에 일주일 내내 시달렸다.

 무시하자. 윤아는 수백 번 노력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본능일 뿐이었다.

 예쁘고 멋진 것에 자연적으로 눈이 가고, 끌리는 거랑 똑같았다.

 제호에겐 자기 보고 떨리는 이성의 눈길이 당연한 것이고, 다른 이가 자길 좋아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윤아는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본능에 충실한 반응일 뿐이라며 세뇌시켰다.

 그러자 오랜만에 제호를 봐도 차갑게 식은 돌처럼 굴 수 있었다.

 윤아에게 그날의 기억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저 추위를 달래기 위한 도구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건 제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영은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어요? 다른 사람 침이 잔뜩 뭍은 입술을 들이대겠다는 건데.

 당하는 사람은 불쾌하지. 소름끼치고.“

 “소름? 그 정도야? 알았어, 그럼.”

 “윤아씨도 웬만하면 사귀는 분한테 말해요. 그게 예의니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모는 법이었다.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난영을 더 설득하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속은 답답하지만 제호가 한 발 물러서는 게 맞았다.

 윤아는 난영의 말에 혼란스러웠다.

 예의란 게 도대체 어디 선까지 허용된다는 말인가.

 말 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던 윤아는 난영의 말이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말하는 게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골몰하게 만들었다

 

 

 

 

 

 

 

 

 “오빠, 할 말이 있는데, 난... 키...키...”

 

 자신의 치부를 밝히는 것은 연습 하는 것도 힘들었다.

 윤아는 긴장 되는지 후- 한숨을 쉬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보드카페, 간간히 함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벌칙을 주려는 사람과 안 받으려는 실랑이가 내부를 쩌렁 쩌렁 울렸다. 다들 게임과 같이 게임 하는 상대만 신경 쓸 뿐 홀로 보드도 펴지 않고 앉아 있는 윤아에게 줄 시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윤아는 버릇처럼 주위 눈치를 보더니 생수로 위장한 소주를 꺼내 커피에 부으려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이 튀어나와 검고 굵은 손가락으로 생수를 잡았다.

 그 손의 주인은 수였다. 윤아는 코앞에서 크게 치는 북소리에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여파로 인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가 버리고 윤아의 혼은 홀로 어둠 속을 헤맸다. 가장 부끄러운 결점을 가장 들키기 싫은 사람에게 보이고 말았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온몸이 뜬 눈으로 가위에 눌린 듯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수는 윤아의 병을 뺏어 테이블에 놓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연인의 보지 말아야 할 걸 보고 실망한 얼굴이 아니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 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윤아는 그의 미소가 이해 안되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스러운 면을 발견했으면 미간이 세로로 좁혀지고 입가는 돌처럼 굳어 버릴 것이다. 그는 결점마저 덮어줄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가 아님, 이미 그녀의 결점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윤아는 혼란스러웠다.

 

 “그냥 말해. 술 힘 빌리지 말고.”

 “오빠, 난... 남들이 그냥 말하는 걸 말하는데 몇 배의 용기가 필요해. 술 힘이라두 빌리지 않음 도저히 말하기 힘들다구.”

 “세상에 용기 낼 일도, 긴장할 일도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 알콜 중독되는 거 순식간이다.

 이 오빠가 게임 하듯 용기 내는 법 알려줄까?“

 “게임?”

 

 의외였다. 힘들게 고백한 윤아의 결점을 두고 의지박약이라고 탓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엉뚱하게도 게임을 하자면서 할리갈리 카드를 빼들었다.

 수가 말하는 게임의 규칙은 아주 간단했다.

 할리갈리는 서로 번갈아 가며 카드를 내다가 같은 과일이 다섯 개가 모이면 재빨리 초인종을 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수는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을 더했다.

 초인종을 치는 사람이 질문을 하고, 다섯 개가 모일 때까지 다른 사람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게 수가 만든 할리갈리의 룰이었다.

 그는 그녀와 카드를 번갈아 대며 연인끼리 터놓기엔 곤란한 답을 쏟아냈다.

 

 “키스 했을 때 젤 기분 좋았던 여잔 첫사랑 이었어. 과외 선생님이었는데, 속궁합도 기가 막혔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꼭 기분 좋을 순 없다.

 서로의 민낯을 벗겨 보는 기분 나쁜 진실로 용기가 불러온 그림자와 같았다.

 현재 여자 친구로서 남자 친구의 과거의 여인들을 알아간다는 게 썩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윤아는 자기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분 나쁘다는 듯 카드를 툭 던졌다. 수는 윤아가 게임에 기분이 상했다는 걸 바로 눈치를 챘다.

 

 “거짓말 하지 않기, 무슨 말을 해도 뒤끝 없기.”

 “알고 있어.”

 

 룰이라는 건 지지부진한 감정의 여파를 끊어내는 좋은 변명이었다.

 게임의 룰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화내는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윤아는 화내게 되면 자신의 속이 좁다는 걸 인증하게 만드는 거라 부글부글 끓어오는 감정을 참았다. 자신의 카드 레몬 세 개가 이미 놓여 진 카드와 합쳐 레몬이 다섯 개라는 걸 캐치한 윤아가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러나 수의 반사 신경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질문할 차례지? 일이삼 중에 세 번째 큰 비밀을 말해봐.”

 “........ 사실 나 친구가 없어. 왜 반마다 그런 애 있잖아. 그냥 착한 애. 그게 나야.

 말하니까 쫌 챙피하네.“

 

 가슴 한켠에 암 덩어리처럼 자리잡은 슬픔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말 한마디로 이렇게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질 줄 윤아는 몰랐다.

 윤아는 얼굴만큼 살짝 빨개진 손가락으로 카드를 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어물쩡거리다가 기회를 놓쳐 버리지 않기 위해 재빨리 초인종을 눌렀다.

 

 “오빠랑 같은 질문.”

 “세번째 비밀이라... 니네 학교에서 점심 먹던 거... 사실 점쟁이가 나한테 화 기운이 많다고

 여자들 많은 곳에서 기를 좀 받아야 된다 해서야.“

 “오빠 그런 거 믿어?”

 “그런 거라고 무시할게 아니다 너? 그분 말 들었으니까 내가 이때까지 크게 안 망한 거야.”

 

 젊은 남자가 미신을 맹신 한다니.... 수 입장에선 엄청 큰 비밀을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은 것이었다. 예전에 한 경제학자가 이렇게 말했다.

 주식이 위험한 달은 8월이다. 그 외 위험한 달은 1월,2월,3월,4월,5월,6월,7월, 9월 10월, 11월, 12월이다.

 애들 말장난 같은 이 말은 코웃음과 함께 주식이란 게 참 어렵고 무섭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이 무서운 주식의 늪에 두 발이 빠져 기를 쓰고 허우적대야 평지 위에 설 수 있는 수에게 점이란 유일한 희망과 숨통이었다. 경제학과에서 배운 대로 수치를 계산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 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1초의 차이가 수백억의 손해를 만들어냈다.

 대학에서 배웠던 모든 건 현장에선 쓸모없는 휴지 조각 같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본 좌절감에서 수는 매달린 만한 것이 필요했다.

 고객의 욕과 멱살잡이, 상사의 쪼임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우울한 마음에 스마트폰 무료 사주를 본 게 첫 시작이었다. 다음 달부터 풀린다는 사주 풀이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 그 달은 큰 일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월급 한 자락을 떼어 유료앱을 결제할 정도로 수는 사주 보는데 빠져 있었다. 그러다 점집을 전전하게 되었고, 복채 수십만원은 우습게 날리면서도 수는 아까움보다 안도를 느껴갔다.

 유명한 점쟁이가 하는 말은 무조건 했고, 그 말대로 했을 땐 완벽한 타이밍에 주식을 치고 빠져 큰 손해를 안 나게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고객한테 고맙다는 말까지 들을 수 있었다. 계산적인 일을 하면서 계산적이지 않은 걸 믿는다고 한다면 보통 실망할 수도 있을 텐데 윤아는 연민이 갔다. 직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럴까.... 윤아의 모성애가 발동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안 만나 준다 찡찡 거리고, 우겼던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미안 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던 윤아는 갑자기 풉 웃음이 뿜어져 나왔다.

 갑작스런 감정의 곡선을 보인 윤아를 제호는 의아하게 보았다.

 윤아가 웃은 이유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수 때문이 아닌 그와 함께 한 추억 때문이었다.

 비둘기 때문에 싸웠던 말도 안되는 커플 싸움의 전말을 알게 된 윤아는 저절로 피식 웃게 되었다. 윤아의 정신이 카페를 벗어나 도로 위에 머문 사이.

 수는 재빨리 게임을 진행해 윤아의 귀에 땡- 치는 소리가 들리게 했다.

 

 “두번째 비밀은?”

 “.....사고가 있었어.”

 “사고?”

 “그때 잃은 것두 있고, 얻은 것두 있어. 하나 뿐인 친구 수경일 잃고, 흉터는 얻고. 여기에.”

 

 그녀는 자신의 배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때 처음으로 수의 미간이 세 겹으로 꿈틀댔다. 수에겐 충격이었다.

 항상 해실해실 웃고 있는 윤아에게 그런 트라우마가 있을 줄 몰랐다.

 윤아의 영상을 본 사람은 모두 그녀의 배에 난 흉터의 정체를 알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윤아의 영상을 볼 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사건이 생겨 보지 못했다. 윤아에게 처음 들은 슬픔... 그 슬픔이 배에 자리하고 있다 하니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아 쪽으로 가 앉더니 그녀의 웃옷 아래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윤아는 갑작스런 손길에 당황했다. 하지만 흉터보다 살짝 나온 뱃살이 더 걸렸다.

 수의 손에 물컹거리는 뱃살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있는 힘껏 배를 끌어당기고 숨을 흡- 참았다. 손끝에 울퉁불퉁한 흉터가 매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엄청 큰 사고였나 보다.”

 

 수는 손을 뺐다. 윤아는 소리 안 나게 긴장했던 배에 힘을 풀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아팠겠다, 우리 애인.”

 

 그에게서 처음 듣는 다정한 위로..... 참으로 달고 따스했다.

 사랑 받는 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고가 나고, 흉터는 시간이 지나니 아물었다.

 하지만 흉터가 옷깃에 쓸릴 때마다 뼛속까지 찌르는 시큰한 고통에 괴로워했다.

 고드름을 흉터로 매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 얼음이 수의 손끝에서 사르르 녹았다.

 이제 아무리 옷깃이 스쳐도 후벼 파는 고통은 사라졌다.

 더 이상 게임을 진행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낼 것 같았다. 그럼 너무 궁상맞지 않은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고, 그것에 취에 눈물까지 보이는 게 말이었다.

 

 “별루 재미없다. 그만할까?”

 “왜, 난 좋은데. 힘든 거 말해줬으니 내 비밀은 공짜루 들려줄게.”

 

 수는 윤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 때문에 내가 망가질까 무서워.”

 

 윤아는 의외라는 눈길을 보냈다. 좋게 말하면 서글 대는 성격, 나쁘게 말하면 능글거리는 수가 사랑을 무서워 하니 말이었다. 하지만 윤아는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다.

 나의 연인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는 생각 말이었다.

 겁이 많은 동물일수록 갑옷을 두르고 가시를 세우는 법이었다.

 껄렁거리면서 자신을 사랑에 매어 있는 건 싫은 척 쿨한 척 했지만 그 변명은 모두 사랑이라는 위험한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휘둘리다가 겨우 지탱해온 일상이 망가지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깊게 빠지기 전에 그만둬. 난 쿨 하고 멋있는 것만 하고 싶거든.

 헤어질 때 구질구질하게 구는 건 나하고 안 맞아.“

 “나한테도 그럴 거야?”

 “글쎄, 아직 그 단계까진 안 간 것 같은데.”

 

 윤아는 섭섭해지려는 마음이 물방울처럼 올라왔다. 수의 말은 예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각오해두라는 경고와 마찬가지였다.

 이 관계는 언젠간 수틀리면 끝날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윤아는 끝이라는 단어가 생경스럽고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끝날지 모른다는 은유를 남긴 수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아직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많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으로 윤아는 편안해졌다.

 수는 다시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세 번째부턴 안 봐줘.”

 

 게임이 막바지로 치달았다. 카드 한 장 한 장, 내미는데 긴장감이 넘쳤다.

 모인 카드가 다섯 장이 된 순간.

 둘이 동시에 초인종을 향해 손을 내미는데 수가 기를 쓰고 윤아의 손등을 때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남자는 승부의 세계에선 애인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다.

 수는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느라 발개진 손등을 쥐고 노려보는 애인의 눈초리는 감지하지 못했다.

 

 “마지막 질문. 술 마셔야 말할 수 있다는 첫 번째 비밀이 뭐야?”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막상 말하려니 돌덩이가 목에 탁 걸리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실을 어디까지 밝혀야 할까. 키스를 하면 이성을 감전 시킨다는 사실만 밝힐까...

 윤아는 수의 입장이 되어 튀어나올 수 있는 질문을 예상해 보았다.

 그럼 저번에 나랑 키스 했을 때는 왜 괜찮았어? 이렇게 물어보게 된다면 윤아는 제호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호도 윤아처럼 키스를 하면 이성을 감전 시킨다고 알린다면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생각해볼 자시고도 없었다. 그 순간 둘의 사이는 끝날 것이다.

 키스는 서로의 타액을 옮겨 상대방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감기가 옮는 것처럼 제호에게 불안 병까지 전염 되었나보다.

 윤아는 생각 안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수 백 가지의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좀 먹고 있는 걸 막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윤아를 보고 수는 답답해 엉덩이가 들썩였다.

 초 단위를 가지고 노는 수에게 윤아의 더딘 행동은 참고 견디기 힘든 시간 낭비였다.

 

 “5초 안에 말 안하면 게임에서 지는 거야. 나 1주일간 연락 끊고, 잠수탈거다. 5,4,3..”

 “아.. 알았어. 사... 사실... 나.. 키슬 못해.”

 

 또 다시 그의 얼굴을 못 보고, 그의 목소리를 못 들어 비실비실 시들어갈 바엔 1억 원짜리 약속을 깨는 게 나았다. 윤아는 오래 묵혀 놓아 머니가 켜켜이 쌓인 비밀을 풀어냈다.

 눈 질끈 감고 한 고백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실눈을 떠보니 수는 놀라기는커녕 뚱한 얼굴로 윤아를 바라보았다.

 

 “겨우? 그게 비밀이야?”

 “나한텐 심각해! 키스 못하는 것 땜에 이때껏 남자한테 차이기만 하구...”

 “걱정 마. 키스도 하다 보면 느니까. 내가 늘 만큼 해줄게.”

 

 그의 능글맞은 멘트에도 그녀는 심각함을 풀지 않았다. 윤아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동영상으로 자신의 비밀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사람들은 모두 윤아의 얘기를 안 믿었다. 키스를 해 감전 당하여 기절해야지만 윤아의 상태에 대해 확신했다. 그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를 감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윤아는 그럴 수 없었다. 자기로 인해 수를 다치게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차라리 자신의 무릎이 깨져 피가 철철 흐르는 게 덜 아플 것이다.

 심장에 박혀 있는 그가 감전 되어 쓰러지는 상상만 해도 가슴 한켠이 쪼여오는 고통이 엄습해왔다.

 

 “만약에, 오빠.... 내가 양치를 해도 숨길 수 없을 만큼 입 냄새가 심하거나,

 키스를 하면 상대를 감전시키는 여자라 해도... 받아줄 수 있어?“

 

 윤아는 ‘만약에’ 라는 모호한 어법으로 수의 의중을 떠보았다.

 키스를 하면 감전 시키는 여자라도 그는 자신을 받아줄까....

 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윤아의 입술이 바싹 탔다.

 하지만 그는 멀뚱히 보기만 할 뿐 대답을 안 했다.

 또 엉뚱한 소릴 늘어놓는다고 여겨 대답할 가치도 없다 본건가.... 아님 반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오래 생각하는 것인가...

 긴장감으로 윤아의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파하하! 수의 웃음소리가 카페 한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넌 무슨 농담을 그렇게 뜬금포로 날리냐. 가만 보면 엉뚱해.

 만약이라 했으니까 만약으로 대답할게. 평범한 남자라면 그런 여자 사귀기 쉽지 않지.

 사겨봤자 안 좋을 게 분명하고.“

 “왜? 냄새나구 감전 시키는 게 뭐 큰 죈가?”

 “이를 닦아도 입 냄새가 난다는 건 간이나 위가 안 좋다는 건데, 아픈 여자 데리고 요양할 일 있어? 그리고 감전...”

 

 수는 정말 어이가 없는지 계속 피식 거렸다.

 

 “아만 지어낸 얘기라도 말이 안 된다... 암튼 감전을 시킨다면 몸의 세포를 태운단건데.

 자기 건강 해치면서까지 연애할 간 큰 남자가 있을까? 있다 해도 난 사양이야.

 난 평범하지만 알콩달콩한 사랑이 좋아. 우리처럼“

 

 윤아는 만약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려는 데 목구멍이 머리카락 뭉치가 껴 있는 하수구 구멍처럼 막혔다. 충격적이었다. 수의 사랑론과 윤아는 정반대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평범하지만 알콩달콩 한 연애를 꿈꾸는 남자와 키스를 하면 상대를 감전시키는 결코 평범해지지 못하는 여자.

 끝이 보였다. 윤아가 수에게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 둘의 관계는 끝이었다.

 난영의 말이 가시처럼 걸렸다. 비밀을 알리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

 그 말이 바늘이 되어 윤아의 양심을 콕콕 질러댔다. 하지만 윤아는 그 불편함을 견디기로 했다. 예의를 어기더라도 사랑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윤아는 숨이 납처럼 무거워 뱉어내는 것도 싶지가 않았다. 심장은 썩은 물처럼 고여 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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