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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11화
작성일 : 19-10-04 22:28     조회 : 205     추천 : 0     분량 : 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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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뜨거운 것에 입 주변을 덴 듯 화끈거리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비가 그쳐 살짝 고개를 내민 해가 구름에 감춰 점점 어둠에 휩싸 였다. 시간이 없다.

 제호는 윤아의 팔을 잡고 데려가려는데 그녀는 엉덩이를 쭉 빼며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그는 성질을 버럭 냈다.

 

 “또 뭐!”

 “잠깐만요, 잠깐이면 돼요.”

 

 처음 보는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제호는 쥐었던 손을 풀었다.

 윤아는 10분의 유예시간을 받고 수에게로 갔다.

 비도 맞고, 출장의 여독으로 몸이 노곤했던 수는 의자에 기대 졸고 있었다.

 아직 덜 마른 셔츠 자락이 수의 몸은 서늘하게 만들었다. 팔짱을 끼어 팔을 비벼 보지만 혼자서는 추위를 쉽게 가시지 못했다. 그러다 누군가 끌어안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품 같은 따뜻함에 떨렸던 몸이 풀어졌다. 수는 스르르 눈을 떴다.

 그의 눈엔 윤아가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윤아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수가 다가와주길 기다렸다.

 수는 깨질 듯 윤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천천히 키스를 했다.

 그 누구도 다치거나 상처 받지 않은 입맞춤이었다. 수가 입안에 들어오는 그녀의 타액은 달았다. 머리가 찡할 정도의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밥을 계속 씹을 때 입 안에 서서히 맴도는 달콤함에 질리지가 않을 것 같았다. 수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상하며 기대했던 키스를 배반하지 않아서였다. 짜릿하고 마력을 가지진 않았으나 평범하고 풋풋한 키스도 나쁘지 않았다.

 이들의 예사로운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눈이 있었으니, 선글라스를 쓴 제호다.

 

 “참 폼 안 나게 한다.”

 

 제호는 다년간 키스씬 경험으로 쌓인 노하우로 각도는 이렇게, 입은 저렇게 혼자 궁시렁 거렸다. 실내라 잘 안 보이는지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말로는 관심 없는 척 했어도 눈은 계속 그들에게 향했다.

 역시 자기가 직접 해봐도 남이 하는 거 보는 것만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건 없다.

 나도 연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랑 키스하고 싶다....

 제호의 부러운 마음이 언뜻 눈매에 묻어나왔다.

 연기로 하는 키스는 가슴이 아닌 머리가 먼저 움직인다. 키스의 강도는 어느 정도 할 것인지, 언제 얼만큼 각도를 틀어야 카메라에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잘 보일지, 어느 순간에 눈물을 멋있게 흘릴 수 있을지.... 수많은 계산이 적용 되었다.

 상대방을 향해 보내는 뜨거운 눈길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멋있게 사랑할 수 있을지 신경쓰느라 정작 상대방에겐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는 상대에게 오로지 집중하며 할 수 있는 키스.

 그 키스를 사라하는 난영과 나누지 못한다는 게 씁쓸해졌다.

 윤아에게 사랑의 부속물로 따라오는 키스를 누릴 수 있게 해주자 순순히 제호를 따랐다.

 부산으로 향하는 차의 핸들을 잡은 제호는 계속 옆을 힐끔 거렸다.

 윤아는 가는 내내 입술을 매만지며 키스 했던 순간을 리플레이 했다. 가만히 있어도 미소가 새어나왔다. 운전하던 제호는 탐탁찮은 얼굴로 윤아를 힐끔 거렸다.

 

 “그렇게 좋냐?”

 “이런 기분 정말 처음이에요. 내 세포 하나하나가 사랑으로 가득 찬 느낌.”

 

 윤아는 감격에 차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키스를 하면 감전 시킬 수 있다는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온연히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키스는 사랑의 완성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윤아는 그에게 느꼈던 불안정한 사랑의 조각 하나를 키스를 통해 찾았다.

 키스는 두 사람의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키스라는 장애물 때문에 언제 깨질지 모를 위태로운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윤아의 온몸을 행복으로 젖게 했다. 왜 태어났나 들었던 하늘에 대한 원망이, 태어나서 그를 만나서 감사하다는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그를 만나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감동은 온 몸에 전율이 오게 했다. 윤아의 눈가엔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어이구, 울기까지?”

 “아저씨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정말.”

 

 사랑은 원수도 용서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재수 없게 엮어버린 징글징글한 인간이라고 여겼는데 그 마음이 어느새 동전 뒤집듯 바뀌어 버렸다.

 제호에게 고마웠다. 그가 강제로 키스를 해주지 않았다면 윤아가 수와 키스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뻐하는 윤아의 얼굴을 지그시 보는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남들보다 다르다는 건 아무리 같아지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에는 모든 상처는 자신의 몫으로 밖에 안 남는다는 걸 제호는 앞선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제호도 한 때는 함께 하려고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평범한 사람은 어떤지 관찰하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두꺼운 가면을 얼굴에 쓰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가면은 점점 피부에 달라붙어 숨 쉬는 것도 어려웠다. 배우라지만 일상이 연기인 건 힘들었다. 진짜 자신을 잃어가고, 점점 완벽하게 평범함을 연기할수록 공허함은 담배가 타고 남은 재처럼 남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폐쇄였다. 모두 다 의심하고, 두꺼운 벽을 세워 진짜 알맹이만은 지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편이 나았다.

 

 “언제 밝힐 거냐?”

 “뭘요?”

 “키스 못한다는 거. 운명이 따로 있는 것도.”

 “무슨 소리에요, 그게? 내 운명은 오빠에요.”

 

 제호도 처음에는 윤아보다 더 부정했다. 윤아를 자신의 운명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십년 넘게 키스가 발목 잡아 아무것도 못했던 자신의 족쇄를 윤아가 한 번에 풀어주었다. 윤아의 입술 덕에 멜로의 키스씬을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란 걸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자신이 한 키스 덕에 그녀는 키스를 할 수 있었다. 서로가 없으면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존재. 그건 운명이라는 말이 아님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윤아는 인정하기 싫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찢어져 너덜너덜 해져버린 수와의 사랑을 겨우 봉합한 상태였다. 윤아는 지금의 사랑에 집중하고자 했다.

 제호도 신경 끄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자신이 신경 쓴다고 될 일도 아니고, 남 일에 쓸 시간을 자신에게 쏟기에도 아까울 때였다.

 

 

 

 

 보조석에 앉은 사람의 숙명은 언제나 잠과의 사투다. 옆에서 운전자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맘 편이 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병든 닭이 졸 듯 꾸벅 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한 윤아였다. 분명 잠깐 자다가 일어났는데 어슴푸레하게 했는데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컴컴한 밤이 내렸다.

 어둠은 차의 헤드라이트만 빼고 모든 곳에 내려 아무도 없는 세상에 제호와 윤아 단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윤아가 슬쩍 본 제호는 이 어둠에 그리 겁을 집어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안전밸트를 꽉 쥐며 빨리 다른 차들이 나타나 주길, 누군가 나타나 혼자라는 느낌에서 벗어나게 해주길 윤아는 간절히 바랬다.

 갓길에 어떤 여자가 서 있었는데 제호가 꽤 많이 밟아 금방 지나가 버렸다.

 윤아는 이 어둠에 둘 뿐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얼마 안가 공포와 불안으로 변했다. 오밤중, 아무도 없는 도로에 여자가 서 있다는 게 이상하였다.

 윤아는 순간의 기억을 잡아 여자의 생김새를 생각해냈다.

 주변에 내린 어둠보다 더 짙은 색의 긴 머리. 그리고 두 눈이 비인간적으로 크고 흰자가 안 보이며 검은 눈동자로만 채워져 있었다. 윤아의 머릿속을 스치는 공포의 이미지가 점점 선명하게 떠올라 두려움의 감정에 집어 삼키게 했다. 오 밤 중 운전자를 떨게 한 자유로 귀신과 흡사한 모습이란 게 윤아를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차 안을 찌르고 튀어나오는 것 같은 비명에 제호도 온몸이 경련을 일 듯 꿈틀대어 저절로 브레이크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제호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뭐야, 뭔데 그래?”

 “웬 여자가 도로 옆에 있었어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말까지 더듬은 윤아로 인해 제호는 백미러로 뒤를 확인 했다.

 

 “아무도 없는데? 잘못 본거 아냐?”

 “귀신인가?”

 “귀신은 무슨”

 “후진 해봐요.”

 “확인해서 뭐해. 쓸데없는데 쓸 시간 없거든.”

 “진짜 사람이면 어떡해요. 밤에다 날도 추운데. 설마, 진짜 귀신 일까봐 겁나서 그래요?”

 “아니거든!”

 

 제호는 눈을 도깨비마냥 부라리며 부인했지만 심장은 냉탕에 갑자기 던져진 것 마냥 확 쪼그라들었다. 목 뒤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 것 마냥 섬뜩 했다.

 애써 잊고 지냈던 공포의 기억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키의 반 토막 만했던 초등학교 시절, 외할머니가 계시던 시골에서 오줌을 갈기다가 마주쳤던 긴 머리를 허리까지 내리고 후레시마냥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던 귀신과 눈을 딱 마주쳤다. 어린 제호는 오줌이 사방에 튀는 것도 모를만큼 혼비백산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황급히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는 감았던 눈을 뜨지 않고 제호의 등을 토닥이며 헛것을 본 거라며 다독였지만 제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둠보다 더 짙은 머리를 하고 노려보던 그 눈빛이 어떻게 헛것이란 말인가. 제호는 그때 이후 공포 영화는 아예 보지도 못했고, 배우가 되고 나서도 피 튀기는 액션 영화는 찍어도 귀신 나오는 건 공짜 시사회 표가 나와도 보러 못 갈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런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는 한 때 날렸던 액션 배우였고, 그 전에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무섭다고 자기 입으로 내뱉는 건 왠지 자신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선전하는 것 같았다. 제호는 자신의 치부를 윤아에게 들켜 괜한 치부의 꼬리표를 달까봐 더 더 과장되게 발끈했다.

 

 “맞구만, 뭘”

 “아니라고!”

 “가 봐요, 그럼”

 

 순간 욕지기가 속 안 좋은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왜 사람이란 존재는 몸에서 보내는 위험 신호보다 호기심이 앞질러 가는 것일까. 공포 영화에서 호기심에 기분이 쎄한 곳으로 가다가 제일 먼저 살해당하게 된다는 법칙을 윤아는 모르나 보았다.

 하지만 안 간다고 하면 윤아의 비아냥거리는 속 긁는 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별 거 아닐 거야……. 별 거 아닐 거야…….

 안심되는 말로 갈비뼈를 북 치듯 둥둥 대는 심장을 달랬다.

 물에 푹 익힌 미역처럼 흐물흐물 해진 손가락에 억지로 힘을 주고 기어를 바꿔 후진하였다.

 

 “가봐서 아무것도 아니기만 해봐.”

 

 이 말은 제호의 협박이자 바람이었다. 아무 것도 아니길 바라며 바람과 같이 빠르게 후진을 했는데 일그러진 형체의 여자가 휙 지나갔다.

 제호의 턱이 삐걱 거리며 벌어져 그대로 얼어버렸다.

 머리는 빠르게 사이렌을 울려댔다.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경고 신호를 보냈다. 스톱을 외친 윤아가 앞으로 천천히 가보라고 했다.

 공포로 혼잡해진 머릿속은 사차선에서 10중 추돌 난 것처럼 마비되어 버렸다.

 정상적이라면 머릿속에서 쩌렁 쩌렁 울려대는 경고음을 따라 엑셀을 밟아 되도록 빨리 도로를 벗어나려고 노력했겠지만, 비빔밥처럼 싹싹 비벼진 뇌구조가 자존심도 없이 윤아의 말을 따랐다. 차를 천천히 후진 시켰는데 괜히 으스스한 기분에 제호는 뒷목을 매만졌다.

 어둑한 숲만 비추던 창문이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풀거리는 긴 머리를 드러내며 뒤돌아 서 있었다. 왠지 머리카락 앞에 엄청난 얼굴이 숨겨져 있어 죽어도 보기가 싫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노란 옷의 여인은 머리가 뱅그르르 돌아가더니 뻥 뚫린 눈으로 제호와 윤아를 바라보았다. 뻥 뚫린 두 눈은 깊이 빨려 들어가는 어둠에 두 사람을 집아 삼켰다.

 제호는 참고 참았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굵고 날카로운 제호의 비명에 놀란 윤아는 덩달아 고음을 내질렀다. 제호는 긴장으로 온 몸이 응축 되어 자기도 모르게 엑셀을 밟아버렸다.

 차가 갑자기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출발해 가드레일을 들이 박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차를 빠져 나온 제호와 윤아는 발을 어찌 둘지 몰라 동동 굴렀다.

 차 안에 가만히 있기엔 만에 하나가 명치끝에 걸렸다.

 만에 하나 저 여자가 오 밤 중 길을 잃은 선글라스 쓴 여자라면 차 한 대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다. 쌀쌀해진 밤길을 헤매던 살아 있는 여자라면 그냥 내버려 둔다는 건 인간으로서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귀신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어찌 되었든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다는 건 제호와 윤아 모두 동의하게 되었다.

 제호와 윤아는 한 발짝, 한 발짝 노란 옷의 여인에게 다가가면서 오금이 저릿저릿하고 밤바람이 유난히 뼈를 콕콕 찔렀다. 식은땀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러 더 오한이 들었다.

 이 둘은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서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제호와 윤아는 두려운 마음을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여인에게 다가갔다.

 생존 앞에선 남자의 자존심이고, 스타의 체면이고 모두 토끼 앞에 놓인 갈비 뼈다귀마냥 쓸모없는 것이었다. 차 안에선 안 무섭다면 바락바락 우겼던 제호가 윤아의 등을 떠밀면서 먼저 확인하라고 하였다.

 이럴 땐 남자가 먼저 가야죠! 레이디 퍼스트 몰라?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윤아가 힘으로 확 밀어 얼떨결에 그는 여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그의 몸에 차갑고 딱딱하게 와 닿는 촉감이 노란 옷의 여인이 사람은 아님을 알려주었다.

 어찌 되었든 확인은 해야 되었기에 제호는 녹슨 기계처럼 덜덜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노란 옷의 정체는 공사 중 사람 판넬의 안전제일 옷이었다. 그녀의 성별은 밋밋한 가슴을 소유한 남자였다. 미역처럼 나풀대던 긴 머리카락은 찢어진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던 거였다.

 제호가 봉지를 벗기니 사시사철 미소만 짓고 있는 푸근한 아저씨의 얼굴이 드러났다.

 겨우 이런 것 땜에 놀랐단 말이야?!

 겉으로는 화를 내면서 동시에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귀신인 줄 알았다가 아니란 걸 확인 했을 때 딱딱한 라면깡이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가 푹 익힌 것처럼 순식간에 팍 퍼졌다. 식은땀은 멈추고, 판넬만 보였던 좁은 시야는 안정적으로 벌어져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코끝으로 짜고 비릿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가만히 귀 기울였을 때 청량하고 거대한 소리가 들어왔다.

 밤바다가 아름답다는 건 귀로 들었을 때 알 수 있다.

 철썩- 철썩- 부딪히는 소리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이 그저 짙은 어둠만 주는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밤바다의 정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제호의 시선에 들어온 바다도 처음엔 경계 없는 어둠만 있다가 점점 컴컴함에 익숙해지니 성난 듯 일렁이는 파도가 보였고, 그 위에 사람이 허우적거렸다.

 윤아도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바로 이물감 있는 무언가를 캐치했다.

 둘은 서로 미루던 아까와는 달리 너나 할 거 없이 황급히 바닷가로 뛰어갔다.

 가까이 보니 정말 어떤 남자가 넘실대는 파도에 갇혀 허우적대고 있었다.

 윤아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에 놀라 허둥지둥 할 뿐이었다.

 반면, 제호는 긴급한 상황일수록 이성은 냉정하고 차분해졌다.

 혼잡했던 머릿속 도로는 말끔하게 정리 되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빠르게 판단이 내려졌다.

 

 “어떻게 좀 해봐요!”

 “이럴 때 일수록 신중해야해. 우선 119에 전활 걸고, 우린 빨리 여길 뜨는 거야.”

 “저렇게 놔두고 가자고요?”

 “같이 있는 거 사람들 눈에 띄어 좋을 게 뭐 있다고. 난 내 스타성 깎아먹는 짓 따윈 하고 싶지 않아.”

 “사람이 왜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요?!”

 

 윤아는 머리가 마비되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게 되면 불덩어리처럼 끓는 가슴을 따랐다.

 심장은 정의와 불의를 참지 못하게 단련되었고, 무식한 용기와 거침없음만 담고 있었다. 윤아는 심장이 말하는 대로 지체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제호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면 윤아를 따라 들어간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윤아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머릿속 교통은 다시 추돌사고를 일으킨 4차선이 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원활이 움직였던 이성이 다시 마비가 되어버렸다.

 극도로 수동적이 되어버린 제호는 어린 아이마냥 우물쭈물 대다가 윤아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파도 속에서 사람을 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는지, 아님 파도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먹잇감으로 던져진 건지 모르겠다. 숨을 쉬기 위해 벌려진 입으로 하염없이 짠물이 밀고 들어왔다. 이대로 파도의 덫에 갇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세 사람이 대자연의 입맛엔 안 맞았나 보다. 갑자기 미끄러져 내려가는 파도가 뭍으로 세 사람을 뱉어놓고 다시 가버렸다. 윤아와 제호는 정신없이 입 안을 채우던 바닷물을 뱉어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보니 죽은 참 다랑어 마냥 퍼져 있는 퉁퉁한 남자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손을 뻗치는 건 이성보다 인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둘은 지쳐 축 늘어진 팔과 없는 힘을 쥐어짜 남자를 질질 끌고 올라왔다.

 바닷물에 한껏 절어 있던 남자는 성별이 의심될 만큼 배와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소매가 뜯어진 허름한 티셔츠에 상하가 정말 안 어울리는 츄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턱은 페리카나가 먹이를 잔뜩 저장해 놓은 것처럼 부풀어 있었고 얼굴에 비해 너무도 작아 보이는 해리포터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의 나이가 30대 정도로 짐작 되고 고시생 또는 백수 중 하나일 거라 예감되었다.

 

 “인공호흡을 해야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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