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10화
작성일 : 19-10-04 22:26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787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제호가 가라 한 호텔은 그의 집만큼 넓고 화려했다. 넓은 스위트룸은 소리 지르며 밤새 뛰어다녀도 될 만큼 널찍하였다. 냉장고를 여니 비싸서 구경도 못하는 브랜드의 탄산수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제 자신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아도 된다니, 윤아는 기뻐하며 마구 마셨다. 우선 바닷물에 절여진 몸을 씻고 싶었다. 화장실은 그녀의 원룸만 했다.

 대리석이 깔린 타일과 사람 둘은 넉넉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윤아는 태어나 처음으로 입욕제를 왕창 넣고 거품 목욕을 했다. 너무 많이 넣어 거품이 욕조를 넘쳐서 윤아의 작은 얼굴을 거품 속에 파묻히게 만들었다. 그래도 윤아는 즐거운 듯 거품을 공중 위로 날리며 특유의 돌고래 비명소리를 냈다. 목욕에 한껏 시간을 쓰고 나온 윤아는 타올 차림으로 나와 침대 위를 방방 뛰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에서 떨어져 나온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윤아의 마음 안에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어린 아이가 하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 아이처럼 놀아줘야 했지만 그녀의 삶에는 제약이 많았다. 침대가 없어 두꺼운 보료 위에서 뛰면 바로 아래층 아줌마가 득달같이 뛰어와 항의를 했다. 뛰고 싶어 발끝이 간질거려도 꾹 참고 억누르며 애써 어른스러운 척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마음껏 어린이스러워도 되었다. 침대 위를 방방 뛰며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윤아는 잘못 뛰다가 발이 걸려서 넘어져 버렸다. 발끝을 찌르르르 하게 통과하는 고통에 윤아는 인상을 쓰며 발가락을 잡았는데 손 등에 딱딱한 물체가 짚여졌다. 한동안 잊고 있던 핸드폰이었다.

 폰에 대해 품는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주었다가 역시나... 하는 실망을 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해도 폰에 대한 기대를 져 버릴 수 없었다.

 딱 한번 만이었다. 한 번만 하고 그를 기다리고, 미련을 갖는 걸 포기하려고 했다. 하도 눌러 이제 지겨운 1번을 눌렀다. 건조한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얼마 안가 뚝 끊겨 버렸다.

 윤아는 깜박거리는 숫자를 보고 미간이 꿈틀거렸다. 5초.

 5초 만에 끊긴 통화. 수가 받지도 않고 종료버튼을 눌러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담배 필 시간은 있는 사람이 하루 종일 전화 꺼놓다가 겨우 걸린 통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버려?!

 이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가 꽃다발을 들고 달래러 올 정도로 여자친구로 생각한다면 더더욱 이래서는 안 되었다.

 윤아가 여기서 뚜껑이 안 열리고 배기겠냐는 말이다. 타올을 벗어던지고 아직 덜 마른 몸에 옷을 걸쳤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휘날리며 안락한 호텔을 벗어나 택시에 몸을 실었다.

 

 남자친구의 수신거부로 애꿎은 피해를 본 사람은 제호이었다. 윤아는 제호의 전화를 잘근잘근 씹었다. 키스씬 촬영이 코앞이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할 때 윤아는 없었다.

 제호에게 그녀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한 번도 그 마음대로 따른 적이 없었다. 그의 절박함과 사정을 알면서 번번이 엇나가는 걸 보면 골탕 먹이는 게 분명했다.

 제호는 또 다시 대기실을 뱅글뱅글 돌며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신호음이 끊기고 나서 어김없이 핸드폰 속에 상수 하는 여인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멘트를 되풀이 했다.

 

 “뭐 이런 기집애가 다 있어!”

 

 욕을 해보지만 그 말은 윤아에게 전해지지 않고 대기실 천장을 메아리처 다시 제호에게 들려왔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하나 눈 앞이 캄캄해질 시점, 나대표가 급하게 들어왔다.

 

 “스타! 감독이 난리야, 다들 스탠바이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딜레이 시킬 거야.”

 “대표님, 촬영 반나절만 미뤄줘요.”

 

 윤아가 없으면 촬영은 할 수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끌어다 다시 제호의 옆에 붙들어 놔야 했다. 제호는 메이크업 티슈로 기껏 세 네시간 걸려 한 분장을 지우고, 세팅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민낯이 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윤아를 추적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윤아는 비를 맞으며 수의 회사 앞 벤치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그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하염없이 시간만 잡아먹다가 윤아가 먼저 지쳐 쓰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어딘가 달랐다. 앙 다문 파리한 입술과 비를 맞아도 식지 않고 독해진 눈빛이 일 한번 제대로 칠 것처럼 보였다. 수를 만나기 전엔 죽어도 안 일어나겠다는 각오인지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가 딱딱 부딪히고 엉덩이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들어 옷과 피부 사이 달라붙었다. 습기를 먹은 개미가 다리를 온 전시 물고 다니며 빨리 일어나 몸을 말리라고 괴롭혔다. 하지만 윤아는 벤치를 부여잡고 버텼다. 얼마나 비를 맞았을까... 내뱉는 공기가 펄펄 끓는 주전가 연기만큼 뜨거웠다. 윤아는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았다. 얼음으로 손을 조각한 듯 이마에 닿자마자 차가움이 퍼져나갔다. 이마를 뗀 손바닥은 방금 회초리를 맞은 듯 뜨겁고 얼얼했다. 열이 나는 게 틀림없었다. 추적추적 일정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꿈속처럼 희미해져 갈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성윤아?”

 

 우산을 들고 회사에 들어가려던 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설마가 진짜였다.

 

 “여기서 뭐해? 아니, 언제부터 있었어.”

 

 윤아는 꿀을 입에 바른 듯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힘을 주어 입을 열어 보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딱딱 거리는 이가 부딪히는 소리만 나왔다.

 수는 순간 욱했다. 출장을 갔다가 진이 빠져서 한국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바로 집에 갈 수 없었다. 망할 놈의 상사가 당장 출장 보고를 하라는 말에 납덩어리를 매단 것 같은 발을 질질 끌어 회사에 온 것이었다. 상사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수는 바로 집으로 가 맥주 한 캔 마시고 바로 곯아 떨어졌을 거다. 그는 그녀가 무섭기까지 했다. 사람이 얼마나 무모하면 안 올 가능성이 9할이 넘는 비오는 날에 미련스러울 만큼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까.

 1할에 모든 것을 걸 만큼 자신이 그리 좋은 것일까. 수는 윤아가 이해가 안되었다.

 그는 사랑을 해도 자기 몸까지는 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눈에 윤아의 무모한 행동은 답답하고, 짜증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너 땜에 짜증나 돌아버리겠다. 아주!”

 

 수가 말은 그렇게 해도 손에 든 우산을 윤아에게 안기고 양복 자켓을 벗어 여리게 떨리는 어깨에 걸쳐줬다. 윤아의 등에 그의 따뜻한 체온이 덮였다. 점점 차지기만 했던 그녀의 몸이 수의 온기에 전염 되어 점점 노곤해졌다. 다리의 뼈와 근육이 면처럼 풀어 헤쳐져 윤아는 그의 품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는 단단한 팔에 그녀를 안았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둘이 이토록 가깝게 포옹하는 게 말이다. 두 사람 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왜 그랬는지.... 물어볼 말과 들어야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그저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대로 있고 싶었다.

 

 

 

 

 

 

 

 

 

 주식 시장에도 휴일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주식 매입과 매도로 불티났을 전화가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빨갛고 녹색인 화살표만으로 사람의 심장을 쥐었다 폈다 하는 주식 판은 커졌다. 수는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여유로움을 느껴 생경했다.

 적막한 사무실에서 물 끓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수는 자기 입맛대로 핫초코를 타 윤아에게 건넸다. 코끝으로 과하게 달달한 냄새가 파고들었다. 단 것을 싫어하는 윤아는 싫다는 내색은 못하고 호로록 마셨다. 비어있던 위장에 확 들어오는 단 맛에 머리가 띵하고 신물이 물씬 올라왔다. 이 악물고 신물을 꾹꾹 눌러 참던 윤아는 젖은 머리를 터는 수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내리붙는 빗방울에 하얀 셔츠가 달라붙어 근육질의 살갗이 은근히 드러났다. 강아지 같이 머리를 흔들어 물방울을 터는 반전 모습이 윤아의 얼굴을 다시 발갛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내가 일 있어서 안 와봤음 어쩔 뻔 했어. 하여튼 무모해.”

 “무모한 게 사랑 아닌가.”

 

 무모하다.

 앞뒤를 잘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신중성이나 꾀가 없다.

 생각을 깊이하면 무모해질 수 없었다. 무모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도 없다.

 만약, 윤아가 안 될 생각을 먼저 해 포기를 하고 기다리기만 했다면 수와 만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운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그녀는 믿고 확신했다.

 정말 순수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런 게 윤아의 매력이다. 수는 자신도 모르게 무장해제 되어 웃고 말았다. 손을 안 뻗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귀여워 윤아의 머리를 헝클였다.

 

 “근데 사랑이라고 하기엔 우리 너무 한 게 없다.”

 “손도 잡고, 허그도 하고, 뽀뽀도 했는데.”

 “그런 건 요즘 유치원생들도 다 해. 아침저녁 인사로. 사랑한다며.”

 “사랑해.”

 

 피터 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라는 게 있다.

 몸은 성인이되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어린이나 소년이 되기를 원하는 심리상태 또는 그러한 행동을 말했다. 윤아는 어쩌면 자신이 동화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툴고, 실수투성이라도 다 용서 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어린 시절이다.

 윤아는 언제까지고 용서가 되는 줄 알았다. 부족하고, 실수해도 미안하다 웃으며 다시 하면 되도 이해해줄 거라며 말이었다. 하지만 용서는 어린아이일 때뿐이다.

 윤아는 왜 이렇게 몸이 크고 나이가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길 원해던 게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제 어른인 걸 인정해야 된다는 걸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두려움에서 도망가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 하였다.

 윤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도망가지도, 피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수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켜 그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얼굴에 미역처럼 달라붙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떼어주며 아끼었다. 그리고 수는 천천히 윤아의 입술로 다가갔지만 살짝 주저 했다. 그녀가 또 자신의 입술을 피하고 밀쳐낼까 봐서다.

 하지만 윤아는 피하지 않았다. 더 이상 상대방이 다칠까봐 미리 걱정하는 아이 같은 배려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른의 사랑이란 이기적임을 알고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오욕칠정을 채우기 위해 상대를 교묘히 배려라는 탈을 쓰고 대하는 것.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이기적이 되어보려고 했다.

 윤아는 다가오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고, 수의 숨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올 만큼 가까이 했다.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잇새를 살짝 벌렸고 눈을 감아 촉촉한 입술을 기다렸다. 말캉한 입술이 윤아의 입술을 먹듯이 감추고 벌려진 잇새로 분홍빛 혀가 부드럽게 들어가려는데 탱크 지나가는 것처럼 울려 퍼지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멈칫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순간 울린 전화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전화를 받기도 그렇고 안 받기도 그런 상황이었다. 윤아는 피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중요한 전화라도 수만큼 간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수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는 전화를 놓치지 않고 다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윤아에게 고백했으면 뺨 한 대 맞고 욕 한 소리 얻어먹고 거짓말이라 손가락질 받을 말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두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일용, 하나는 연애용. 한 번 놓친 통화가 주요 고객이나 주식 매도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용 스마트폰은 중독적으로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반면, 윤아가 유일하게 알고 있던 연애용 스마트폰은 꺼놓기 일쑤였다. 그에게 연애란 빡빡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였다. 만나고 싶음 만나고, 하고 싶은 하고, 생각 날때마다 보고.... 치열한 일상 속의 작고 소중한 한 숨이었다.

 수는 습관적으로 윤아에게 온 전화를 받으라고 하였다.

 

 “야! 이 기집애야!!”

 

 그의 허락으로 받은 핸드폰 너머에서는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제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윤아는 그때서야 제호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격양된 목소리로 파악할 수 있는 건 그가 말도 없이 도망간 그녀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또 윤아는 약속을 안 지켰다는 미안함과 그의 목소리를 수가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불안이 밀려왔다. 빨리 이 시한폭탄 같은 핸드폰을 해결하고 와야겠다는 제대로 말도 안하고 도망치듯 복도로 나갔다.

 

 “어디서 욕지거리야! 이 아저씨야!”

 

 기집애라는 말은 욱하게 여자의 마음을 긁었다. 이놈 저놈이라는 말은 별 데미지 없이 하는데 말이었다. 윤아가 욱하는 단어가 있는 것처럼 제호도 아저씨라는 말이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그는 도망친 그녀를 향해 분노의 질주 중이었다.

 전화가 안 되었지만 제호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있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키스를 하면서까지 잡고 싶었던 그 남자에게 갔을 것이다. 제호는 자신과 윤아가 출발했던 서울로 방향을 잡고 운전을 하면서 계속 전화를 걸다가 수십 통 만에 받았다.

 중요한 촬영 앞두고 갑자기 사라져 사람 속을 싹 갈아 엎어놓고는 잘 한 거 하나 없으면서 바락 바락 대드는데 없던 화도 나올 지경이었다. 제호는 심장이 펌핑 하는 분노의 피가 온몸으로 퍼져 순간적인 힘을 주체 못해 핸들을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너 나 물먹이려구 작정했냐?! 전화 문자 다 씹고 잠수 타면 다야? 정말 1억원 물리게 해줘?!”

 

 사람을 묶을 수 있는 건 한 장의 돈이나 계약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윤아에게 그의 협박은 씨알도 안 먹혔다. 그녀를 묶을 수 있는 건 오로지 마음뿐이었다.

 오히려 그의 협박은 밟으면 더 오기가 생기가 들이 받고 싶어지는 잡초 근성을 더욱 파릇파릇하게 세웠다. 윤아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어이, 갑 아저씨. 나한텐 그쪽 일이 사적이고, 울 오빠가 공적이야. 1억원? 알바 열나게 해서 물어준다. 팬 마음 곰돌이처럼 하찮게 여기는 거 죄다 인터넷에 까발리는 건 보너스루!“

 

 제호는 수의 회사 앞에서 윤아와 만났다.

 평생 안 그치 것처럼 쏟아붙던 하늘은 어느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혔지만 둘 사이의 기류는 무겁기만 했다. 둘은 서부 영화에서 총을 끼고 목숨을 건 한 판을 벌이는 것처럼 대치했다. 제호는 날이 어두운대도 선글라스를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쓰고 있었다. 외계인의 눈 같이 얼굴의 반을 다 덮어버린 제호는 위압적으로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눈은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 감정은 입가에 숨기기 제일 쉽지만 눈빛은 어려운 법이었다. 그런데 검고 불투명한 가리개에 눈을 가린다면 그 사람에 대한 아무것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를 준다. 공포란 자신이 투명하게 확인하지 못할 때 생기는 생존과 관련된 본능적 신호라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어 버렸다.

 심장은 말했다. 눈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위험해! 도망쳐!!

 갈빗대를 부수고 나올 것 같이 심장은 미친 듯이 백 미터 달리기를 했다.

 제호는 순간적으로 윤아의 두 볼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그의 억센 손이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몰라 등골이 오싹했다.

 

 “때리기만 해봐! 진짜 올려 버린다! 다...”

 

 제호는 손이 아니라 입술로 때렸다. 갑자기 세게 부딪히는 바람에 이가 부딪혀 코끝이 찡했다. 아! 하는 탄성이 기포처럼 터져 나와 자연스럽게 제호의 혀가 그녀의 입 사이를 뱀처럼 기어가 휘어 감았다. 독사 같은 그의 이빨은 물어뜯을 듯이 윤아의 입술과 혀를 흡입하고 잘근 잘근 씹어 삼켰다. 윤아는 처음 경험해보는 키스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의 입술과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거미줄에 점점 더 얽히는 듯 하였다.

 윤아가 그를 밀어낼수록 제호는 더욱 힘으로 끌어안아 둘 사이에 손가락만한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바다에 빠졌을 때의 기분이었다. 숨 못 쉬는 고통에 버둥대다가 서서히 몽롱해지면서 환각의 상태에 빠졌다. 팔 다리의 힘이 풀리고 온몸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의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제호는 옭아매던 손을 풀었다. 해면체마냥 흐물흐물해진 윤아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손바닥으로 축축한 벽돌의 습기가 올라왔다. 터질 듯한 그녀의 열을 비를 머금은 바닥을 만지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윤아는 거의 생명을 위협했던 그를 노려보았다.

 

 “뭐예요!”

 “빌려 달라며. 빌려줬으니까 됐지? 가자.”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1 제 20화 -마지막화- 2019 / 10 / 4 216 0 4063   
20 제 19화 2019 / 10 / 4 215 0 7463   
19 제 18화 2019 / 10 / 4 234 0 6128   
18 제 17화 2019 / 10 / 4 245 0 7370   
17 제16화 2019 / 10 / 4 211 0 7262   
16 제 15화 2019 / 10 / 4 220 0 11253   
15 제 14화 2019 / 10 / 4 233 0 6496   
14 제 13화 2019 / 10 / 4 226 0 9002   
13 제 12화 2019 / 10 / 4 230 0 6690   
12 제 11화 2019 / 10 / 4 205 0 8270   
11 제 10화 2019 / 10 / 4 253 0 7873   
10 제 9화 2019 / 10 / 4 232 0 7234   
9 제 8화 2019 / 10 / 4 213 0 8443   
8 제 7화 2019 / 10 / 4 215 0 15261   
7 제 6화 2019 / 10 / 4 238 0 13988   
6 제 5화 2019 / 10 / 4 227 0 9941   
5 제 4화 2019 / 10 / 4 199 0 10728   
4 제 3화 2019 / 10 / 4 187 0 9490   
3 제 3화 2019 / 10 / 4 225 0 12584   
2 제 1화 2019 / 10 / 4 206 0 14361   
1 프롤로그 2019 / 10 / 4 377 0 1049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고통 추적자
시나뉴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