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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9화
작성일 : 19-10-04 22:23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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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호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요구에 당황해 말문이 턱 막혔다. 입술을 빌릴 수 있는 건 제호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중심은 자기 위주로 동간다고 여기는 그에게 윤아가 요구를 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구라는 건 상대보다 우위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신보다 가진 거 없고, 인기도 없고, 지극히 평범한 윤아가 자기에게 요구라는 걸 한다는 것이 기가 찼다. 제호는 입 아프게 할 대꾸를 하는 대신 그녀를 이끌어 서재로 향했다. 그가 내민 계약서 한 장이 윤아의 입을 막혀버렸다.

 

 “거기서 갑은 나고, 을은 너야.”

 “위..위약금이 1억원?!”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으로 서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촬영을 위해 합의하에 하는 건 공적인거고, 니 애인이랑 키스하려고 날 이용하는 건 사적인거야.”

 “이.. 이런 법이 어딨어요!”

 “그러게 계약서에 무턱대고 사인하래? 돌다리라도 두드려 보지 않음 건너면 안 되는 거야.”

 

 윤아는 말도 안 되는 사기 계약에 얼굴이 시뻘게 질 정도로 화가 났다.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계약서가 찢길 듯 팽팽해졌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불안하게 떨리는 계약서가 혹시나 다칠까 해 제호는 재빨리 쏙 빼가 다시 서랍에 넣어 잠가버렸다.

 

 “모레 키스신 있는데 지방촬영이라 1박 2일은 잡아야 할 거야. 다시 연락 할 테니까, 나가봐.”

 

 제호는 빨리 윤아를 내쫓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싶었다. 하지만 윤아는 가라면 가는 말 잘 듣는 강아지가 아니었다. 그가 그녀로부터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필사적이듯, 윤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와의 키스를 얻어내야 했다.

 그래서 휘휘 손을 젓은 제호를 살쾡이 같은 눈으로 보던 윤아는 사냥을 하듯 확 달려들었다.

 먹잇감인 제호의 주둥이를 향해 돌진을 했으나 팔이 길어 우월한 제호로 인해 저지당했다.

 

 “한번 만요, 오빠가 나 차버리기 전에 잡아야 된다고요!”

 “그건 니 사정이고. 빨랑 안 나가!”

 

 제호는 참아주는 마지노선의 한계를 넘어버렸다. 자신의 아버지면 속에서 천불이 끓어도 참고 봉양하겠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를 위해서 그런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은 윤아의 태도였다.

 닭똥집 같은 입술을 쭉 내밀고 자신의 고귀한 입술을 탐하려고 하는 걸 봐주고 이 집안에 들여놓을 이유는 없었다. 윤아의 얼굴을 가차 없이 현관문 밖으로 밀쳐낸 제호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제호는 오랜만에 스스로 차를 운전해 촬영 장소로 가게 되었다. 그가 핸들을 잡은 이유는 보조석에 앉은 윤아 때문이었다. 영화 촬영이란 건 대본이 아닌 대기와의 싸움이다.

 앞 씬이 한 시간 오버되면 기본 대기 시간이 두 세 시간은 훌쩍 넘었다. 얼마나 대기할지 모르니 윤아를 충전기마냥 데려가야 했다. 주변에 윤아의 존재를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던 제호는 손수 운전을 하는 불편을 감수했다.

 그는 전방을 주시하며 옆을 힐끗 거렸다. 윤아는 제호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핸드폰을 부여잡아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끝끝내 듣기 어려웠다. 윤아는 습관적으로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차 안에는 그녀가 내뱉은 돌덩이 같은 날숨이 무겁게 깔렸다. 그득한 이산화탄소는 운전자를 산소부족으로 깜빡 잠들게 만들만큼 큰 위협이 되었다. 제호는 참고 가려다가 계속 신경이 쓰여 윤아를 탐탁지 않게 보았다.

 

 “127번”

 “네?”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는데 너 핸드폰 보고 한숨 쉬는 횟수.”

 “뭐 그런 걸 세 봐요?”

 “니가 자꾸 신경 쓰이니까.”

 

 그녀는 그가 별 뜻 없이 얘기한 걸 알지만 꼭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것 마냥 설레어졌다.

 이 세상은 아무리 욕해도 외모지상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윤아는 생각했다.

 잘 생긴 남자는 눈빛 하나 만으로도 여자의 마음을 흔들 수 있으니 말이었다.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윤아도 여자였다. 잘생긴 연예인이 옆에 있는데 가슴이 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흔들려도 넘어가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연예인에게 호감을 갖는 것과 제호를 사랑하는 감정은 다르니까 말이다.

 그녀가 마음을 굳히는 동안 차 안에서 말은 사라지고, 생각이 끝나는 사이 어느새 차는 부산의 한 도로에 멈췄다. 제호는 미리 도착한 나대표에게 연락해 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촬영은 조명을 치고 카메라 세팅이 지연 되어서 세 네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윤아를 호텔로 보내 대기 시키고, 자신은 촬영장에 가서 분장하고 있으면 딱 되겠다고 제호는 계산하였다. 거리를 보니 차도 많고 지나가는 사람도 많이 자칫 잘못하면 제호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뒤로 손을 뻗어 헬멧을 윤아에게 건넸다.

 

 “좀만 내려가면 팰리스 호텔 보일거야. 니 이름으로 예약해 놨으니까 대기 타고 있어.”

 

 윤아는 그 얘길 듣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답답함만 눈에 들어오고 귀가 막혀 있었다. 더 이상 핸드폰을 조물딱 대다가는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윤아는 핸드폰 종료 버튼을 꾹 눌러 꺼 버렸다. 핸드폰에만 매달린다고 그가 연락이 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조그만 기계에 매달려 있기 싫었다.

 

 “내가 왜 아저씨 말을 들어야 해요?”

 “계약 했잖아.”

 “입술을 계약 한 거지, 내 몸을 묶어 놓은 건 아니잖아요.”

 

 제호는 윤아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약서라는 것은 아무리 치밀하게 짜도 허점이 있었다. 계약서를 쓸 때 입술이 아니라 몸까지 묶어놨어야 했다며 제호는 뒤늦게 후회했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의 몸과 다리를 그 어떤 사슬로도 묶을 수 없었다.

 윤아는 그래도 헬멧은 눌러 쓰고 내릴 준비를 했다. 그가 얼굴이 많이 팔린 사람이라 먼지만한 시선에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갑갑한 헬멧을 쓰고 좁은 차에 앉아 있으니 숨이 더 막혀왔다. 빨리 내리려는 윤아의 팔을 제호가 꽉 붙잡았다.

 

 “니 혼자만 놀러 가냐?”

 “같이 헬멧 쓰고 돌아다니면 참 눈에 안 띄고 좋겠네요.”

 “요즘 핸드폰이 전화만 걸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도 꽤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음악이 나오면 발이 먼저 움직이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즐겼다. 하지만 이제 거리를 그냥 걸어가는 것도 어려웠다. 거리를 걷다가 무심코 잡초 하나를 밟거나 가래를 뱉는 건 누구나 하지만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작은 법을 하나 어긴 것만으로도 주위에 지켜보는 촬영해 인터넷에 퍼뜨릴 것이었다. 누군가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활동적인 제호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그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오는 부산의 정취에 제호는 피가 끓었다. 당장 해운대로 뛰어가 바닷물에 몸을 적시며 놀고 싶었고,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밤새 떠들고도 싶었다.

 제호는 윤아의 발과 눈을 빌려 자유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윤아는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연예인이라 해도 디스패치에 걸리지 않고 번화가 곳곳을 돌아다닐 방법이 생겼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말이었다. 부산하면 바로 자갈치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억센 부산 사투리로 쩌렁 쩌렁 호객 행위를 하는 아줌마들의 목청에 정신이 사나웠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생경하면서도 호기심을 일게 했다. 살아 팔딱 거리는 갈치와 멸치는 윤아가 살면서 처음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구경을 하는데 이때다 싶어 매달리는 아줌마로 인해 당황스러워 했다. 아줌마는 싱싱함을 보여주려고 은갈치의 꼬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갈치가 어찌나 힘이 찬지 펄떡거리며 윤아에게 바닷물방울을 흩뿌렸다.

 그 생경하지만 활기찬 볼거리는 윤아의 동공 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렌즈로도 동시 전송 되었다. 제호는 분장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그녀가 보낸 영상을 보았다.

 이어폰을 끼고 소리까지 들으니 직접 가지 않아도 자갈치 시장의 생것의 느낌이 생생이 다가왔다. 윤아는 기분이 좋으면 발끝이 저릿저릿하고 속에서부터 기쁨의 감정이 찌를 듯 올라와 돌고래 웃음소리를 내며 콩콩 뛰어야 했다. 기쁘면 기쁜 감정을, 슬프면 슬픈 감정 그대로 내질러야 속이 편한 성격이었다. 제호는 눈을 감고 아이 메이크업을 받다가 이어폰을 찌르고 들어오는 돌고래 웃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귀를 찡하게 만드는 소음에 제호는 재빨리 이어폰을 뽑았다. 시큰거리는 귀를 부여잡고 한껏 인상을 찡그리는 그의 모습에 메이크업 해주던 코디가 놀랐다. 자신의 메이크업 과정 중 어디 아프게 한 게 있는 지 해서 걱정도 하면서 말이었다. 제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애써 미소 지었다. 속으로는 미소에 차마 베이게 하지 못한 수천가지의 욕을 하면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욕을 밖으로 차마 할 수 없었던 게 윤아... 너무나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녀의 미소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 버렸다. 코디는 무서운 지 얼굴과 어깨가 바짝 움츠려들었다. 까칠했다가 웃었다가 감정의 최고선과 최하선이 해일처럼 왔다갔다 거리는데 안 무서울 수가 없었다.

 빨리 메이크업을 마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아는 씨앗 호떡 하나를 사서 입에 물었다.

 아뜨뜨 거리면서도 열심히 베어 물어 먹었다. 입안에 따뜻한 설탕물이 탁 터지고, 씹을 때 씨앗이 짓이겨지면서 고소한 풍미가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그 맛은 발끝을 춤추게 하는 맛이었다. 그 맛에 집중을 하려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구겨 넣고 호들갑스럽게 먹으며 좋아했다.

 

 “혼자 먹으니까 맛있냐?”

 

 바지 앞주머니에서 제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는 것에 한 눈 팔다가 뒤늦게 그의 존재를 생각해낸 윤아는 호떡을 입에 물고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제호는 강아지가 먹이를 물 듯 호떡을 문 윤아를 보고 입맛만 쩝쩝 다셨다. 황갈색 설탕물이 뚝뚝 흐르는 호떡의 비주얼은 침이 안 고이게 할 수 없었다.

 제호의 위장은 식단 조절로 인해 닭 가슴살과 달걀만 담아내어서 식욕을 자극하는 호떡의 향연에 위액을 폭발했다. 혀 뿌리부근이 찌릿해지면서 먹이 앞에 둔 개 마냥 제호 자신도 모르게 군침이 꿀떡 삼켜졌다.

 

 “먹어 볼래요?”

 

 윤아는 약 올리듯 호떡을 카메라 렌즈 쪽에 갖다 대며 아~ 했다.

 

 제호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헤 벌려보았지만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스마트폰 한 귀퉁이를 물고 쭉쭉 빨며 모니터에 나온 호떡의 맛을 느끼고 싶었으나 느껴지는 건 쇠 맛뿐이었다. 꾸루룩 위장 뒤틀리는 소리가 천장을 뒤흔들 정도였다.

 

 “하나 사갔고 갈까요?”

 “사람 놀리냐? 다이어트 하는데.”

 

 다빈치가 빚어놓은 신의 걸작 같이 생긴 인물이라도 거울 앞에선 모두 열등했다.

 제호는 자신이 나쁘지는 않게 생겼다고는 확신했지만 언제 질지 모르는 미모에 항상 불안했다. 조금만 입맛 당기는 걸 먹으면 근육이 처지고, 턱에 살이 붙었다. 영화란 건 자신이 죽어서까지 남을 수 있는 매체라 외모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이 들어가고 제호는 퍽퍽한 닭 가슴살과 야채로만 버텨왔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 하는 고통.

 제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욕구 하나가 거세된 채 꽤 오랜 기간 동안 지내왔다. 만질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는 기름진 음식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억울하기도 했다. 윤아는 약올리듯 스마트폰을 보며 맛나게 먹다가 멈췄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윤아는 자신이 먹는 걸로 그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남은 호떡은 버렸다. 허기란 것은 눈앞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자극 받은 위는 끝없이 기름진 것을 달라고 쥐어짰다. 배고픔을 잊을 만큼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윤아는 폰을 주머니에 넣고서 어디론가 향해 달렸다.

 그는 갑자기 암전이 된 핸드폰 화면 때문에 폰이 고장 난 줄 알고 흔들어 보았다. 고장 난 건 아닌 것 같은 게 둔탁하게 뛰는 소리와 윤아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제호는 가까이 살펴보는데 갑자기 빛이 쏟아졌다. 잠깐 인상을 찡그렸던 그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손바닥에 푸른 바다가 담겼다.

 에메랄드빛 하늘에는 솜사탕을 이어붙인 듯 떠 있었다. 하늘이 바닥까지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그건 하늘의 연장선이 아니었다. 미세하게 이분 되어 아래쪽은 철썩 철썩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요동쳤다. 하늘과 닮은 바다였다.

 아...!

 제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에 취해 탄성을 질렀다. 이미 배고픔은 파도에 씻긴 듯 사라졌다. 그는 손바닥만 한 바다의 정경에 위안을 느끼고 가슴이 탁 트였다.

 

 “사는 것도 사랑도 이랬으면 좋겠다, 아저씨.”

 

 하늘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느끼라고 구름을 띄우지 않는다. 바다도 우리에게 모든 걸 내주면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냥 하늘과 바다는 움직일 뿐이었다.

 원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하는 삶이라면 고뇌란 없을 것이다.

 준만큼 받고 싶고, 받으려고 기다리지 않으면 이리 아프지 않을 텐데 말이었다.

 제호는 시원한 바다에 발을 담구고 싶었다. 찰싹하고 발목에 감기는 파도, 그 청량함...

 하지만 지금 그의 발은 딱딱한 구두 속에 갇혀 있었다.

 

 “시원하겠다.”

 “아름답고, 고요하기도 해요. 앗!”

 “야, 괜찮아?”

 

 갑자기 화면이 격하게 요동쳤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란 제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화면에 윤아의 발이 들어왔다. 운동화를 신은 발이 파도에 젖어버렸다.

 그녀의 상황이 심각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제호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말 끝나자마자 이게 뭐냐. 다 젖었다.”

 “말리면 괜찮아져. 그만 놀고 호텔로 가. 괜히 감기 걸려서 나한테 옮기지나 말고.”

 “고마워요, 아저씨.”

 “뭐가.”

 “서울에서 탈출시켜줘서. 서울은 기다리는 거 말곤 할 게 없어.”

 “고맙다”

 

 의외의 말에 윤아는 놀랬다. 둘이 알고 나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고맙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건 무엇이 고마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뭐가요?”

  “이렇게 맘껏 돌아다닌 적 첨이야. 아이워킹이긴 하지만”

 

 제호는 직접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녀가 보았던 평범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평범했던 시절에는 그리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풍경이었다. 오히려 벗어나고 싶었다.

 고약한 생선 비린내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온갖 오물이 섞인 하수구 냄새가 나는 집에서 탈출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화려한 스타가 되는 것 하나였다.

 화려한 사람들만 만나고, 화려한 곳만 눈에 담으며 살아가고 싶었다. 제호는 평범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제호는 그 짓이 얼마나 멍청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려한 것은 노력하고 운만 받쳐준다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잃은 평범한 일상은 노력한다고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제호가 평범의 소중함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잊어버린 것에 대한 씁쓸한 회상에 잠겨 있던 그를 깨운 건 막내 스텝이었다. 스텝은 촬영 스탠바이 다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키스씬은 한참 뒤에 있어 윤아에게 또 연락한다는 말을 하고 제호는 황급히 촬영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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