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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8화
작성일 : 19-10-04 22:22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8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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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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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상황.

 하지만 윤아의 머릿속엔 여러 장르의 장면이 떠올랐다.

 꽃다발 뒤에 감춰진 사악한 강도가 손에 든 걸로 윤아를 내리치는 공포 스릴러.

 꽃다발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꽃처럼 보이는 상추 무더기를 들고 있던 배달 아저씨여서 실망한 코미디.

 꽃다발인줄 받아봤더니 굉음과 함께 폭발하게 되는 액션.

 꽤 많은 상황을 구슬려 보았는데 반전이 윤아의 뒷머리를 강타했다.

 꽃다발은 공포도 코미디도 액션도 아닌.... 멜로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풍성한 꽃다발을 내리니 수의 미소 띤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윤아는 이해가 안 되었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그렇게 가버리더니... 그래서 멜로는 끝났다 여기게 만들어 버리더니 왜.....

 수는 이해가 안 되었다.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처럼 울음과 공허만 윤아의 얼굴.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안면의 근육들이 넘실넘실 춤추더니 잔뜩 움츠려들어 울음을 토해냈다. 윤아의 얼굴에는 김이 잔뜩 묻었다. 못•생•김

 

 “대체 나한테 왜 그래?”

 

 윤아는 요즘 날씨 같은 그의 마음에 짜증이 치밀었다.

 비올 거 같이 잔뜩 흐려서 우산을 챙기게 해놓고 비소식이 없게 해 우산을 짐을 만들게 하거나.... 갑자기 세상 무너질 것 같이 비가 쏟아져 급하게 우산을 사니 딱 끊어져 버리거나...

 비를 바라면 가뭄이 오고, 여행을 가려고 할 때 비가 쏟아지고....

 날씨처럼 수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었다. 이리 따뜻했던 미소가 또 언제 바뀌어 폭우와 천둥을 내릴지 몰라 불안했다. 차라리 썩은 무를 잘라내듯 했으면 하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되겠는가. 형태가 없는 게 마음이니 아무리 썰어내고 난도질해도 그에 대한 마음은 잘라지지 않았다. 눈가에 얼마 매달리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수가 밤톨만한 엄지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 아깐 너무 예민했지? 미안. 화 풀라고 여기 예쁜 꽃도 가져왔잖아.”

 “꽃이면 다 되는지 알아? 하루 종일 오빠만 기다리고, 무슨 일 있나 걱정 하고.

 머릿속이 오빠로 가득차서 전부 다 엉망이야! 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니가 날린 비둘기 땜에 얼마나 손해 본 줄 알아?!”

 

 윤아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비둘기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화를 내는 것일까. 꼬투리를 잡아도 비둘기라는 말도 안 되는 걸 뒤집어씌운다는 것에 윤아는 화가 났다.

 

 “너 땜에 증권사한테 저주의 색인 녹색까지 밟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최악이었어! 일하는 내내 니가 미워 죽겠더니.... 다 끝나니까 너한테 화낸 게 걸려 죽겠더라.”

 

 통화와 종료. 둘 사이에서 수는 아무것도 선택 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포기 하지도 않았다.

 이별을 할 때 수만의 룰이 있었다. 함께 한 즐거운 기억이 더 이상 감흥을 주지 않을 때, 더 이상 인연을 이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윤아와 미소 짓던 순간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하니 이대로 끝내기에는 마음에 부유물이 남았다.

 자신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윤아는 울었고, 대체 자기에게 왜 그러냐고 화를 냈다. 수는 더 이상 화를 내고 따지는 걸 멈추고 싶었다. 내가 얼마만큼 더 화가 났는지 납득시키고 우기는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수는 그저 윤아의 눈물을 멈추고 바라던 미소를 짓게 해주고 싶었다.

 근육들이 잔뜩 움츠러든 그녀 얼굴의 손끝으로 살살 문질러 폈다. 그의 장난스런 손길에 윤아는 그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득달 같이 싸우다가도 결국에 누그러뜨려지는 게 연인 사이인 것 같다.

 윤아는 수를 미워 죽겠다는 듯 흘겨보다가 꽃다발을 빼앗듯 가져가 버렸다.

 그 모습에 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여자의 화를 푸는데 향기 좋은 꽃 만 한 게 없었다.

 윤아는 수를 귀한 도자기를 껴안듯 살포시 꼭 끌어안았다.

 

 “오빠, 나 너무 힘들었어. 오빠두 많이 힘들었지?”

 “응, 엄청. 너도 많이 힘들었지?”

 

 이제 어떤 이유로 싸우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사랑하고, 아직은 그 사랑을 이어가고 싶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로를 보듬는 손길에 둘은 힘들었던 마음이 불 속에 던져진 눈송이마냥 풀려버렸다.

 수는 포옹을 풀고 윤아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아까 못한 거... 지금 해볼까?”

 

 윤아는 아침 댓바람부터 그와의 키스를 원했다. 직장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윤아가 키스를 원할 때까지 참고 있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수는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맛 볼 최상의 달콤한 입술에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지만 단단히 감싸고 마음 가는대로 향했다. 하지만 윤아는 가슴 보다 눈이 먼저 움직였다. 벽시계에 눈이 갔다. 12시 5분. 제호가 말한 ‘24시간의 키스 유효시간’이 이미 지나버린 것이었다. 지금 키스를 하면 감전시킬 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먼저 감지되자 윤아의 손은 자동적으로 수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안 돼, 이젠.”

 “너,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니냐?”

 

 안 된다는 말 뒤에 윤아는 많은 마음을 숨겼다. 기왕 오는 거면 조금 더 빨리 오지하는 수에 대한 원망과 시간에 대한 야속함이 일었다. 하지만 수는 그녀가 숨긴 말 뒤의 수많은 마음들을 알 리가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윤아는 이랬다저랬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안하무인에 사람 가지고 노는 것으로 밖에 안 보였다. 한 두 번은 밀당으로 봐줄 수 있었는데 계속 되니까 윤아의 인성이 글러먹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하지 않은 것들로 인하여 겨우 딱 풀로 붙여놓은 이들의 관계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툭 떨어져 버렸다. 윤아의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턱 막혔다. 전 남자친구들에게 들어온 이별 전 말을 수가 똑같이 내뱉고 있는데도 해줄 말이 없었다. 어쭙잖은 거짓말로 속이려들다가 그가 조금만 다그쳐도 진실을 말할 것 같았다.

 나는 키스로 감전시킨다는 말이 재채기 하듯 튀어나올까봐 간질거리는 입술을 꾹 눌러 참았다. 수의 눈에 윤아가 트림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실망을 하게 되니까 실망할 거리만 찾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있다가는 실망만 늘 거 같아 차갑게 가버렸다.

 지금 놓치면 바로 끝이야! 라는 적신호가 윤아를 맨발로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게 만들었다.

 수는 엘리베이터 아래 버튼을 신경질적이게 눌렀다.

 

 “왜 그래. 오빠.”

 “뭐뭐! 늦었으니까 가보겠다는 것도 잘못이냐?!”

 

 또 한 번 양파의 껍질이 벗겨지고 보이고 싶지 않는 민낯이 나타났다.

 수는 진짜 화가 나면 말을 배배 비꼬아서 상대방 속을 박박 긁어 놓았다. 비꼬듯 말 하는 것 때문에 학창시절에 꽤 많은 주먹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직이란 곳에 적응해 살면서 가면을 쓰는 법을 배우다 보니까 비꼬는 법을 잊어 버렸었다.

 참았던 화를 쏟아내자 수는 더 상대의 비위를 긁어 부스럼 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더 이상 같이 있다간 더한 짓까지 할 거 같아 도망갔다.

 윤아는 따라 타려다가 기다렸던 족발 배달부가 내리는 것에 멈칫했다.

 수는 윤아의 팔을 뿌리치고 가려 하였고, 돼지 머리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듯 생긴 배달부는 주인이 없는 집으로 향했다.

 두 남자 어느 것도 윤아는 놓칠 수 없었다. 배달부와 수의 팔을 잡고 윤아는 번갈아 보며 말하느라 정신없었다.

 

 “잠깐만, 그거 제 거예요.”

 “505호에요?”

 “좀 묻자! 대체 왜 그러는데?! 해주겠다 할 땐 밀쳐내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달라붙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고!“

 

 세 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말만 해댔다. 서로 맞지 않는 대화가 오묘하게 합을 이뤄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윤아와 수의 갈등은 터질 대로 터졌다. 그는 윤아와 사귀고 나서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따지고 들었다.

 도대체 윤아는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게 뭐길래 자꾸 당기지 않고 밀어내기만 할까.

 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윤아는 해명할수록 일은 계속 꼬여갔다.

 

 “네, 오해야, 오빠”

 “오..오빠요?”

 “아저씨 말구요!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

 하지만 오빠랑 밀당 하려구 그런 건 정말 아니야. 믿어줘. 얼마에요?“

 “5만원이요”

 

 오해의 실타래는 엉켜 고리를 푸는데 온 신경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배달부가 중간에 툭툭 흔들어서 자르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만큼 설키여 버렸다.

 윤아는 자꾸 중요한 순간에 인터셉트해서 방해만 놓는 족발 배달부를 되도록 빨리 치워버려야 했다. 빨리 돈을 쥐어주고 보내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 하기야 누가 밖에서야 지갑이 신줏단지지 집에선 어딘가 박혀 있는지 모를 존재가 아닌가.

 

 “잠깐 집까지 같이 가면 안 될까? 받아 놓구 얘기해, 응?”

 

 수는 인내심의 퓨즈가 끊겼다. 오늘 정말 윤아에 대한 실망을 많이 했다. 이런 상황에도 그녀가 싫증이 난다거나 더 이상 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더 이상하였다.

 그는 이때껏 여자에게 쓴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웠다. 어떤 때는 버는 족족 다 써버려 카드 값 갚느라 허리가 휘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쓴 거니 괜찮았다. 그런데 윤아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그렇게 아깝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너한텐 꽃다발보다 족발이 더 어울리는 거 같다.”

 

 수는 꽃다발 괜히 샀다는 후회가 치밀었다. 꽃가지고 국 끓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아귀에 들린 꽃다발은 쓸모가 없었다. 이 꽃다발 살 돈이면 한우 A++ 2인분은 시켜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환불도 안 되는 이 꽃 떼기를 들고 수는 미간을 잔뜩 찡그려서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윤아는 그를 따라 잡기 위에 올라타려 했지만 야속한 족발 배달부가 그녀를 잡았다.

 

 “돈은 내고 가셔야죠.”

 

 돼지 같은 인상의 배달부는 생긴 것만큼이나 남의 사정은 봐주지 않았다. 자신의 손끝으로 인해 한 연인이 깨질지 붙을지 모르는데 배달부에게 중요한 건 음식 값뿐이었다.

 야속한 엘리베이터는 수를 품고서는 내려가 버렸다. 눈앞이 컴컴해졌다.

 이제 그는 그녀의 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다신 잡을 수나 있을지, 없을지 기약도 남기지 않은 채..... 윤아의 손끝에 남아 있던 그의 차가운 온기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다시 한 번 그를 느끼고 싶어 손아귀를 쥐어보았지만 잡히는 건 먼지가 갇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배달부는 윤아의 지갑에서 배춧잎 세장을 받고 나서야 떨어져 쿨내 풀풀 풍기며 가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족발 대짜 하나뿐이었다. 윤아는 족발 다리를 집어 들고 우적우적 뜯어 먹고서는 양 볼이 미어지도록 씹으면서 막상 삼키지는 않았다. 목이 메었는지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치는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뭘 잘했다고 눈물이 나나 몰라... 모든 것을 망친 자신에게 울 자격 따윈 없다 여긴 윤아는 뼈다귀로 허벅지를 치면서 참아내었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제호는 영화를 보다가 잠에든 듯 손엔 리모컨이 쥐어지고, TV에서는 황해가 재생되고 있었다. 장면을 잠깐 설명하자면 면가와 일행들이 애국가를 보며 식사 중 이었다.

 양동이에 삶아놓은 족발을 손으로 꺼내 짐승이 먹이를 물어뜯듯 먹고 있었다.

 제호의 달콤한 수면은 살벌한 육식 장면이 아닌 시끄럽게 울리는 초인종과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제호는 몸은 이불 속에 감추고 싶었지만 귓전을 채찍질 하는 소리를 도저히 못 참고 신경질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눈이 벌겋고 신경이 바짝 날이 선 게 잠을 깨운 사람을 죽일 듯 보았다. 제호는 잠을 깊게 못 자는 예민한 성격이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잠에 빠져 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쩔 땐 눈만 감고 밤을 샌 적도 많았다.

 잠들기까지의 어둠이 주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티비 소리로라도 채워야 했다.

 실로 오랜만에 잔 꿀잠이었다. 밤새 어딘가를 계속 헤매는 희미한 꿈도 안 꾸고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 들었는데 그것을 깨운 것이었다.

 연예인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자는 것 깨우면 헐크로 변해 초인종 누른 사람에게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싶었다. 연예인의 본분을 망각하고 머리는 까치집이고 얼굴엔 베게자국 그대로 난 참으로 인간적인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 밖은 욕을 잊어버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것이 서 있었다. 윤아가 족발 뼈를 들고 얼굴엔 눈물 콧물 자국이 들러붙어 있었다.

 밀고 들어오는 윤아가 마치 면가라도 되는 냥 제호는 겁먹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 주인의 허락도 없이 소파로 가 앉았다. 제호는 하필 이때 영화적 상상력이 폭발했다. 잠이 덜 깬 그의 눈엔 윤아가 족발 뼈로 위협을 가하는 강도처럼 보였다. 최대한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겁먹은 표정을 꾹 눌러 삼킨 제호는 멀찍이 떨어져서 소파 한 귀퉁이에 자리했다. 푹신함이 엉덩이에 짝 감기자 윤아는 안정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안 들어왔던 윤아의 시야기 넓혀지며 그제 서야 제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게 되었다.

 

 “연예인도 자다 깨면 별거 없구나.”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제호는 전신거울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이때껏 살면서 이 모양 이 꼴로 여자 앞에 선 건 처음이었다. 그는 가장 멋진 얼굴을 여성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난영과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순간에도 완전히 정신을 놓지 않았다.

 선잠을 자더라도 아침에 햇살을 쫙 받았을 때 침대 광고 한 편 찍는 것처럼 상쾌하게 일어났다. 난영은 이런 제호의 숨긴 노력을 모르고 자고 일어나도 멋진 그를 더욱 사랑했다.

 제호는 까치집이 머리를 손으로 빗어 대충 정돈해보지만 한번 자리 잡힌 머리칼은 죽지 않고 그대로였다. 순간 울컥했다. 제호의 미모를 자신보다 못하다 여긴 윤아가 해서였다.

 

 “사돈 남 말 하네. 지는.”

 

 윤아는 코웃음을 쳤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뭐라 한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아무리 자신이 족발을 들고 울면서 왔다 해도 똥 묻은 개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기에 은연 중 남의 얼굴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윤아의 시야에 잡힌 그는 연예인이라 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본 전신거울 속 족발 든 면상은 윤아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마 콧등 개기름으로 번들거리고, 볼의 모공은 분화구 같으며 울던 눈은 붕어처럼 툭 튀어 나왔다. 옷 꼬라지는 말해 못 해. 하얀 코딱지 같은 게 덕지덕지 묻은 티셔츠에 몸 빼 바지 같은 헐렁한 추리닝까지.

 딱 집에서밖에 입지 못할 옷이었다. 윤아는 이런 차림으로 수를 만난 거였다.

 거울이 없을 때가 참 좋았다. 자신의 얼굴을 바로 알아 얻는 건 자괴감과 절망감뿐이었다.

 윤아는 메두사가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충격을 받아 돌이 된 것처럼 놀라 족발을 놓쳐 버렸다. 윤아는 똥은 자신에게 묻은 것이었단 걸 안 순간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씨, 어디서 족발을”

 

 깔끔한 걸 좋아하는 제호에게 짐승의 뼈다귀는 흉물 그 자체였다. 뼈다귀에 오염된 물건까지 싸잡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하필 밑에 깔린 양탄자는 산지 하루 밖에 안 된 한정판이었다. 기름진 오염물질에 전염되기 전에 빨리 양탄자를 구해내야 했다.

 제호는 신물이 올라오는 걸 꾹 잡고 검지와 엄지로 족발의 끝을 살짝 잡아 올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끄덩한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빠른 걸음으로 부엌으로 간 제호는 쓰레기통에 홱 던졌다.

 

 “쪽팔려 진짜. 이 꼴로...”

 

 윤아는 무심코 눈물 자국을 손으로 쓱쓱 문질러 닦다가 족발 기름이 눈에 들어가 버렸다.

 거실로 돌아온 제호는 “따가워!”를 외치며 눈을 감싸고 버둥거리는 윤아를 발견했다.

 제호는 윤아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안 보낼 수가 없었다.

 

 “가지가지 한다.”

 

 제호는 윤아의 팔을 잡아 일으키더니 심봉사를 끄는 심청이 마냥 그녀를 부엌 개수대로 데려갔다. 제호는 물을 틀어주고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여겼는데 윤아는 엉뚱한 곳을 더듬거렸다.

 억지로 입을 벌려 밥까지 먹여줘야 하는 판이었다.

 그는 심청이가 어떤 마음으로 삼 백석에 팔려갔는지 알겠다. 앞 못 보는 사람 봉양하기란 차라리 먹을 거 쥐어주고 떠나는 게 속 편하다는 걸 말이다.

 최대한 도와줘도 못해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주는데 인생을 낭비 할 바엔 차라리 삼 백석 받고 청나라로 가 팔자 고치는 게 낫다고 여긴 것일 것이다. 제호는 치밀어 오는 화를 참고 물로 윤아의 눈을 씻겨주었다. 미워도 자신의 병을 치료해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윤아 덕에 키스씬을 무사히 치룰 수 있었고, 조만간 치료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치료법을 찾아 윤아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제호는 꾹 참고 심청이 노릇을 해 줄 요량이었다.

 제호의 손길로 그녀의 눈앞에 엉겨 붙은 기름기가 씻겨 내려갔다. 그제야 앞이 보이게 된 윤아는 자기가 얼굴을 마저 씻었다.

 

 “내가 부르지 않음 함부로 집에 찾아오는 일 없게 하라 했을 텐데. 너 이거 계약 위반이야.”

 “부탁이 있어서요.”

 

 윤아의 얼굴에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남의 집에서 수건을 달라기 뭐했던 유나는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여자가 뭐 저래?’ 제호는 살다 살다 이런 여자는 처음 보았다. 그는 스타이기 전에 남자였다. 제호가 만난 여자들은 깔끔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애썼다. 노력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제호가 보기에는 예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윤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과도한 내숭은 보기 불편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비위가 상했다.

 

 “그 입술, 나도 좀 빌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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