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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6화
작성일 : 19-10-04 22:18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1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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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가 눈을 떴어

 온통 네 생각만 떠다녀

 생각을 내보내려고 창문을 열었어

 그런데 창문밖에 있던 네 생각이 오히려 밀고 들어오는 거야

 어쩌면 좋지?

 

 -윤보영 시인-

 

 

 

 그에게 뜸뜸이 오던 전화마저 끊겼다. 그에 대한 생각이 눈앞을 가려 그녀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작렬하는 태양 때문에 놀이터의 바닥은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띵했다.

 냄새도 막을 수 없는 게 놀이터를 뛰노는 아이들의 발이었다.

 아이들은 몰랑거리는 바닥 감촉이 마음에 들어 더 세게 발을 구르고 뛰어다녔다.

 다른 아이들 엄마들은 행여나 다칠까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시어머니 욕들을 쏘곤거렸다. 그런데 윤아의 시선은 자신이 돌보는 샛별이 아닌 핸드폰에 빼앗겨 버렸다.

 수에 대한 생각이 눈앞을 안개처럼 감싸버려 샛별이 놀이터 곳곳을 팝콘 튀기듯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전화를 걸었지만 그 끝은 야속하게도 기계적인 그녀의 매정한 말 뿐이었다. 하지만 초조함이 물밀 듯이 들어와 다시 통화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오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바쁘면 문자라도 줘. 걱정돼 죽겠단 말야."

 

 윤아는 떨리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겨우 확인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기가 찼다. 생각해보니 윤아는 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가 사는 집, 그의 부모,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다 못 해 회사가 정확히 어딘지... 직업과 회사 근처 직장에 다닌다는 것과 점심 먹을 때 자신의 아지트를 가끔 이용 했다는 것, 핸드폰 번호 빼고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윤아는 계속 전화를 걸었다. 차라리 한번 연락을 끊고 일하느라 바빴다며 무심하게 대했으면 그녀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는 갑자기 연락이 와 바로 한 시간 전 헤어졌다 만난 사람처럼 애정어리게 윤아를 봐주었다.

 그 한 번의 달콤함이 그녀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분명 갑자기 연락을 받아 또 해사한 미소로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며....

 그때, 윤아의 눈 밖에 난 샛별은 통통 뛰어 미끄럼틀 위로 올라갔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엔 무지개 색으로 물든 우레탄 바닥이 굉장히 멀어보였다. 샛별은 바닥이 푹신거리니까 떨어지면 다시 튀어 올라 위로 설 거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거라고 믿었다.

 난간 위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서서 두 팔을 쭉 뻗었다. 첫 비행을 하는 아기 새처럼 짧은 팔을 한껏 벌려 펄럭였다. 계속 같은 목소리를 들으니까 윤아는 짜증이 치밀었다.

 폰을 닫고 자신의 시선을 받아야 할 샛별의 생각을 떠올리고 고개를 돌렸다.

 윤아는 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달렸다.

 날지 못하고 떨어지는 새가 된 샛별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바람

 

 헤어짐은 바람처럼 해야 한다.

 바람이 나무와

 바람이 별과

 바람이 또 바람과 어떤 이별을 하던가.

 그냥 스치어갈 뿐

 뼈도 눈물도 남기지 않고

 장삼 자락만 흔들지 않더냐.

 세상 모든 것 떠날 때 찌꺼기를 남기건만

 머문 적 없다고 바람은

 자리마저,

 자리마저 쓸어버리지 않느냐.

 (구광렬·시인, 1956-)

 

 

 최대한 슬픈 기색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미안함, 슬픔, 자책의 감정을 수북이 쌓인 낙엽 마냥 이 집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죄스러운 마음에 눈을 못 마주치겠는 샛별이 엄마에게 쓰레기를 떠넘기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한 눈을 팔지만 않았더라도.... 수많은 후회와 자책이 남아 눈을 붉게 충혈 되게 했다. 실수는 했으나 얼마나 아이를 좋아했단 걸 알았기에 엄마는 이렇게 윤아를 내보낸다는 것이 좀 찜찜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윤아에게 흰 봉투를 건넸다.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 실려고 이러실까.... 윤아는 봉투를 빤히 보며 이것을 들고 가면 평생 이 일이 얹혀 소화도 안 될 것 같았다. 정중하게 봉투를 밀은 그녀는 겨우 용기를 내어 샛별 엄마를 바라보았다.

 

 "샛별이 우유라도 더 사주 세요.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목소리가 물 먹은 양처럼 떨렸다. 엄청 짠 젤리가 목 안을 꽉 메웠다. 애써 꿀꺽 삼키며 인사하고 떠나는데...."언니!" 하고 부르며 한 발에 기브스를 한 샛별이 절뚝거리며 나왔다.

 어미를 잃은 아기 코알라마냥 두 팔을 벌려 윤아 앞에 섰다. 초롱거리는 눈빛을 쓸어버리고 시처럼 이별하기란 어려웠다. 모질게 뒤돌지 못하고 주저앉아 샛별과 눈을 마주쳤다.

 

 "나 잊음 안 돼."

 

 물기가 젖은 눈으로 윤아를 바라보던 샛별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제호가 준 곰 인형을 손에 꼭 쥔 샛별과 윤아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바람같이 헤어지는 건 현실세계에선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바람이 아닌데 나무와 별과 또 바람처럼 어떻게 같은 이별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쏟은 시간과 애정이 바람처럼 가볍지가 않는데 그냥 스치어갈 수 있냔 말이다.

 윤아는 샛별의 사진을 받아들고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고 말하며 찌꺼기를 남겼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윤아는 샛별을 와락 끌어안아 대신 체온으로 전했다.

 

 

 

 

 협상이란 건 한 쪽이 조금 내주고 다른 쪽이 조금 내주어 조절 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한 쪽이 하나도 양보 하지 않으려면 다른 쪽이 약간 손해 보는 장사를 하더라도 많이 내주면 또 성립이 된다.

 하지만 둘 다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협상은 결단코 이뤄질 수 없다.

 제호는 하나를 절대 내어줄 수 없었다. 그걸 내준다면 다 내주는 거라 마찬가지 이었다.

 감독은 지독한 연인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려면 혀가 오고 가는 깊은 키스를 나눠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호는 난감했다. 자신의 치료원인 윤아는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어 구슬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럴 때 촬영 순서 바꾸는 것도 안 된다, 키스 빼주는 것도 안 된다... 하나도 안 뺏기려는 감독에게 화가 난 제호는 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사람 다루는 재주가 좋은 나대표가 감독 마음 상하지 않게 짧게 다독이고는 급히 제호를 따랐다. 나대표는 둘 다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이 보기엔 정말 별 거 아닌 일 가지고 몇 시간째 아등바등 싸우니까 말이다.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과 시리아 전쟁터에서 오늘 사느냐 죽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논쟁거리도 안 되는 거 가지고 죽자고 달려드니까 우습기도 했다.

 

 "하여튼, 둘 다 고집하곤"

 "그냥.... 해요."

 "진짜? 딥키스는 안된다며."

 "이제 나도 연기 변신이란 거 해야죠. 대신 크랭크인 미루는 거 더 안돼요?"

 "이미 기사까지 나서 그건 좀 곤란한데."

 "하 - 그럼 강제로라도 해야 하나."

 

 협상이라는 것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지 되는 거였다. 많은 대화와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어야 했다. 조급하면 목마른 자가 삽을 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협상이 아니라 늑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땅만 파주려다가 우물 만들 돌까지 쌓아 달라 하고는 집까지 만들어 내라고 할 것이었다.

 제호는 절대 삽을 쥘 성격이 아니었다. 안되면 상대의 손에 억지로 삽을 쥐어 협박이라도 해야 했다.

 

 "뭘 강제로 해?"

 "그런 게 있어요. 나대표님 저녁 안 드셨죠."

 "응, 먹으러 갈까? 요 앞에 스시집 죽이는데"

 

 제호는 낮에 윤아가 안겨주었던 도시락 통을 나대표 품에 안겼다.

 

 "것 좀 처리해 주세요. 갑니다."

 

 나대표는 가는 제호를 보며 뚜껑을 열어 김밥을 입에 넣었다.

 뭐지 이 오묘한 맛은? 오이, 계란 지단, 맛살, 김 등 재료 하나하나가 맛이 살아 있어도 너무 살아 있었다. 맛이 없다라고 해도 뭐하고, 있다 라고 하기에도 뭐한 그런 김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김밥을 싸면 대충 해도 맛있다는 음식이 이런 맛이 나지?

 삼키기에는 그리 내키기 않았던 나대표는 무표정한 얼굴로 도로 뱉어 버렸다.

 

 

 

 

 

 

 

 난 매일 꿈을 꾸죠

 함께 얘기 나누는 꿈

 하지만 그 후에 아픔을 그대 알수 없죠

 

 한 걸음 뒤엔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댄 영원히 내 모습 볼 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며 내게 손짓하면

 언제나 사랑할텐데

 

 -인형의 꿈-

 

 

 윤아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다 짊어진 사람 마냥 힘없이 축 쳐져서 걷고 있었다.

 그를 못 만난 지 벌써 이주일. 항상 같은 꿈을 꿨다. 꿈이라 뭉뚱그려졌지만 무언가 함께 이야기를 했다. 자신한테 보냈던 따스한 눈빛과 목소리...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말도 안 되게 그가 사라져 있었다. 이곳저곳 긴 밤 여기 저기 거리를 홀로 헤매다가 찾았는데 그는 자신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처럼 대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 나한테 화가 났나? 온갖 무서운 생각이 다 들어 그에게 매달렸으나 뿌리치고 다시 안 올 사람처럼 가버렸다.

 눈을 떠 익숙한 천장이 눈에 담겼을 때 꿈이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얼굴을 적신 눈물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꿈이라고 자신을 달래 보았지만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뚝뚝 조금씩 계속 흘렀다. 눈물이 베개를 적실 때 먹먹한 슬픔이 무겁게 내려왔다.

 다시 보면 자신을 못 알아볼지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꿈보다 지독한 현실.

 그 잔인함이 오늘도 이어진다는 것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자신의 고뇌에 주변의 상황이 마비된 채 걷고 있던 윤아는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 것도 몰랐다. 선팅이 짙게 된 차가 윤아의 발걸음에 맞춰 거북이처럼 따라갔다.

 정말 한 걸음 뒤에 항상 차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고개만 돌리면 바로 볼 수 있을만큼 바짝 따려 다녔던 차를 윤아는 골목 어귀에 설치된 오목 거울에서 발견을 하고 뚝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뒤를 바로 돌아보지 않고 오목 거울을 통해 차체를 자세히 보았다.

 어디서 많이 본 차였다.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인생 중 꽤 많이 스쳐간 차의 형태를 찾아내었다. 꽤 오래지 않은 기억에서 이 차 모양과 똑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신호등 키스를 한 뒤 부리나케 떠난 남자. 보기만 해도 이가 뿌드득 갈리는 짜증나는 인간 이제호!!!

 윤아는 화나는 걸 억누르며 차로 향해 보조석 창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나자 조금 더 감정을 실어 세게 노크했다. 애마의 창문이 부서질까 염려되었던 제호는 창문을 내려 정체를 드러냈다. 달팽이도 아니고 껍질 안에 숨어서 느릿느릿 보고만 있는 그의 행동이 윤아의 심기를 건드렸다. 할 말 있으면 얼굴 내밀고 가까이서 말하라는 의미로 창문 안으로 몸을 쑥 집어넣었다.

 

 "아저씨, 내 사생해요?"

 

 갑자기!

 제호가 차를 출발시켜 버렸다. 반동에 반쯤 걸쳐졌던 몸이 기우뚱 하면서 앞으로 쏠렸다.

 손이 창틀을 잡고 있어 얼굴은 그대로 조수석 의자에 처박혔다.

 윤아는 몸이 차에 반쯤 걸쳐져서는 세우라며 두 발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엑셀을 더 밟으며 한 손을 핸들에서 떼었다. 긴 팔을 척 뻗어 윤아의 허리춤을 잡더니 월척을 끌어올리듯 잡아당겼다.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려 차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보조석에 구겨지듯 올라타게 된 윤아는 도끼눈을 뜨고 그를 보다가 점점 가까워지는 빌라 대문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녀에게 쏠렸던 시선을 돌린 제호는 재빨리 핸들을 반대편으로 돌려 충돌의 위기를 면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빌라가 가까워졌을 때 브레이크 먼저 잡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 겁이 없는 건지 운전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오히려 엑셀을 더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바퀴 돌면서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만들어 내는 날카로운 하모니가 윤아의 심장을 생사의 기로에 선 것처럼 뛰게 만들었다.

 차를 깔끔하게 직선도로에 멈춘 제호는 깔끔하게 액션을 성공했다는 기쁨에 우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윤아는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현실에선 NG 가 한번 잘못되면 그대로 끝인데 제호는 사는 게 모두 영화 촬영장인 줄 아나 보다.

 

 "안전벨트 매. 좀 밟을 거니까."

 

 액션 배우답게 멋진 대사 한 줄 읊어주고 엑셀을 밟았다. 그의 애마는 굉음소리를 내며 거리를 빠져나갔다. 윤아의 비명도 엑셀을 밟았다. 죽고 사는데 재촬영이 없다는 걸아니까 윤아는 안전벨트를 생명줄마냥 꼭 잡았다.

 

 

 

 

 

 

 

 

 미친 사람에겐 매가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잘못하다가 목숨이 위험해 질 수 있었다.

 미친 사람에겐 고분고분 말을 따라주는 게 최상의 방법이었다. 윤아는 힘을 빼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랐지만 제호는 혹시나 도망갈까 염려가 되어 잡은 팔 손아귀에 더 힘이 들어갔다.

 악력 때문에 손끝이 저릴 정도 아파와 욕이 저절로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꽉 참았다.

 윤아는 자신의 소파에 집어던져지고 나서야 몸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아무 생각도 담지 않은 얼굴로 내려다보는 제호의 표정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윤아에게 굉장히 위압적이게 보였다. 그녀는 몸을 최대한 뒤로 밀착했으나 닿는 건 소파 등이었고 잡히는 건 쿠션뿐이었다. 쿠션을 방패마냥 앞으로 내민 윤아는 잔뜩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진짜 저한테 왜 이러세요?"

 "성윤아씨,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심적으로 여유가 없다. 밥 사주고, 차 사주고. 살살 달래가며 친해져서 부탁하기엔 내가 시간이 없어."

 "시간을 쓰기가 싫은 거겠죠.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남자는 맘이 없음 시간 쓸 여유도 없다고."

 

 윤아는 상처 받은 기억을 잘 잊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을 보면 어떤 말로 자신의 상처에 이쑤시개를 꽂았는지 바로 끄집어내었다. 비릿한 표정과 제스쳐 등이 생생히 떠올라 똑같은 아픔이 명치를 콕 찔러왔다.

 제호는 순간 뜨끔 했다. 짜증나는 상황도 의연히 미소로 대쳐 할 수 있다 자부심을 가졌는데 뇌가 투명 유리관 안에 담겨 훤히 보인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그는 언론에서도 신비주의 배우로 불리는 남자였다. 자신의 병이 들킬까 무서워 꽁꽁 감추는 게 버릇이 된 것이었다. 제호는 이 여자를 통해 치료만 할 줄 알았지 자신의 정체가 드러 날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자신의 벽에 들어올 사람은 난영 뿐이었다.

 제호는 윤아가 자신의 벽을 부술까 무서웠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여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필이면 이런 게."

 "아저씨랑 같아서 짜증나죠? 피차일반입니다. 바람둥이 아저씨."

 "바람둥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랑 키스하려고 아등바등 인 게 바람둥이지 뭐예요?"

 "여자가 아니라 내 인생에 아등바등 인거야. 내 배우 메리트, 꿈! 그것 좀 이루겠다는 게 잘못된 거냐?!"

 

 제호는 난영 말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토해냈다.

 진심이란 건 성역이 없었다. 악연이든 별 사이가 안 되든 진심은 상대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흔든다고 진심이 온연히 상대의 결정을 바꾸는 건 아니었다.

 그 진심이 상대의 뚝심보다 날카롭게 찌르고 부시지 않는 한 결과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절박한 얼굴의 제호 때문에 윤아는 살짝 흔들릴 뻔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고 마음 다잡았다.

 

 "그래도 안돼요."

 "대체 왜? 돈도 싫다, 뭘 해줘야 해줄래, 어?!"

 "뭘 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사랑이 그렇게 딱딱 계산 되는 건 줄 아시나 보죠?“

 

 누가 뭐라 하든 윤아는 사랑만큼은 순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 모든 것이 돈과 숫자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사랑만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움직이는 건 오로지 감정 뿐.

 윤아의 감정은 오로지 수에게 향해 있었고, 누군가 비집고 올 틈 따윈 없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제호의 짜증스러운 표정이 한껏 사랑의 불길을 가득 담을 얼굴로 바뀌었다.

 그 뜨거운 눈동자 안에 윤아를 담고 사우나 같은 손길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보는 건지 영문을 몰랐던 윤아는 늑대 앞의 토끼마냥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먹은 눈망을로 바라봤다.

 

 "....사랑해.”

 

 그는 그녀의 얼굴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윤아의 심장은 미치도록 뛰었다.

 자신이 지킬박사와 하이드 앞에 던져진 희생양이 된 것 같았다. 화냈다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감정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한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하나였다. 공포.

 윤아는 이렇게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손길이 언제 복수에 불타 목을 조를지 모른다는 무서운 상상이 뻗쳐 오줌 마려운 사람 마냥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미치도록 사랑한다, 성윤아..."

 

 제호는 점점 윤아에게 끌리듯 다가가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피할 때가 없었다.

 윤아는 차마 그의 얼굴에 단 숨을 뱉을 수 없어 얼굴이 시뻘게져 핏대가 설 정도였다.

 신선한 산소공급이 중단되자 생명에 위협을 느낀 심장은 살려달라며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심장은 착각을 잘 하는 장기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두근대는 게 설레어 뛰는 거라고 착각했다. 이상하다, 내가 이 남자에게 감정이 있는 건가? 혼란스러워 하는 윤아에게 제호가 키스를 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참았던 숨이 비눗방울처럼 제호의 입에서 터졌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윤아의 입술 사이로 그의 타액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꽃의 꿀은 오랜만에 마셔도 달콤한 법이었다. 머리가 띵 해질 정도로 달콤한 타액을 들이 삼켰다. 아득히 퍼지는 정신은 밀쳐내야 한다는 의지마저 상실하게 만들었다.

 윤아는 키스에 잠식 되어 눈을 감고 그의 숨을 공유했다. 단 맛은 과도하게 섭취하면 두통과 속도 울렁거리게 했다. 제호는 몸을 망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윤아의 입술을 겨우 떼어내고 꿀처럼 촉촉이 젖은 눈빛을 보냈다.

 달뜬 숨을 감추는 삼키는 것도 잠시, 그의 표정은 빙산의 일각처럼 뼛속까지 차가운 얼굴로 변했다.

 

 "이렇게 말하면 해줄 거냐?"

 

 건조하고 짜증이 잔뜩 베인 오만한 얼굴.

 이것이 이 남자의 진짜 얼굴이었다. 몇 초 사이에 수많은 얼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에게 진심이란 게 존재하기나 할까. 윤아는 그에게 혐오감이 불러 일어났다.

 진심을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양치기 소년이 아무리 늑대가 나타났다고 아무리 절박하게 소리쳐 본들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 사람만큼은 절대 믿지 말아야 한다.

 윤아의 머리 한 구석에 제호에 대한 위험 표지판이 절대 뽑히지 않은 듯 말뚝 박아졌다.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징이 필요하다고 윤아는 생각했다.

 이 분노의 감정을 한껏 담아 그녀는 제호의 이마를 성난 황소마냥 들이받아 버렸다.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반짝여 그리스 성전 같아 보이는 거실에서 화난 신의 음성 같은 제호의 비명이 집안 곳곳을 울려 퍼졌다. 천장에 달린 샹들레의 크리스탈 눈물도 살짝 진자 운동을 했다. 이마를 부여잡고 불붙은 사람마냥 바닥을 데구르르 굴러대는 제호를 윤아는 꼴좋다는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이마는 발갛게 부풀어 올랐지만 때린 사람은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사랑 갖고 장난치지 마, 아저씨. 또 다시 tv밖으로 기어 나와서 내 앞에 나타나면 이걸로 안 끝내!"

 

 윤아는 제호를 만나면서 한 가지 깨달았다.

 첫사랑과 연예인은 실제로 만나면 좋을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멋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멀리서 지켜봤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였다.

 찰리 채플린이 이런 말을 했었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 두 존재는 딱 멀리서 보면서 환상을 키우고 아쉬움을 먹어야 선망의 대상이 되는 법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선망은커녕 여자에게 받힌 이마를 손거울로 살피는 한 찌질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 내 이마에 혹이라도 나봐! 바로 고소장 날아갈 줄 알아!"

 

 거울 속 자신의 멋진 얼굴이 금이라도 갈까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윤아는 갖잖게 느껴졌다.

 저 징글징글한 나르시시즘!

 윤아는 벼룩의 간만큼 있던 정도 뚝 떨어졌다. 더 있다가는 빈대가 옮기듯 찌질함이 내 것이 될 것 같아 빠르게 그의 집을 빠져 나갔다.

 

 

 

 

 

 

 

 벽면 가득 연인들이 오고 갔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갈색 벽에 남긴 수많은 이름과 하트들이 이 카페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왔다 갔는지 증거가 되었다. 카페에 흐르는 잔잔한 팝송은 열 개를 기준으로 계속 리플레이 했다. 하루 종일 카페에 발이 묶여 있던 직원들은 하도 들어 노래가 바뀔 때마다 입으로 가사를 읊조렸다.

 저녁. 차보다는 밥이 어울리는 시간이라 손님은 뜸뜸 했다.

 둘 씩 짝지어 있는 손님들 사이 윤아가 홀로 앉아 있었다. 차라리 공부라도 하는 냥 무언가라도 보고 있으면 좋겠건만 아무것도 없이 문가를 기웃거리는 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티가 확연이 났다. 그러기만을 한 시간.....

 홀로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만큼 쓸쓸해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것도 홀로 준비한 이벤트를 누군가가 와서 봐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것만큼....

 언제 문가의 종을 울리며 들어올지 모를 그를 위해 서둘러 100일 기념 준비를 했다.

 살짝 비대칭인 빵틀에 덕지덕지 뭍은 생크림이 제과점에서 나온 사이즈는 아니었다.

 초를 하나하나 꼽는 윤아의 손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오븐에 든 케익 틀을 꺼내다가 데어서 얻은 밴드 하나. 비뚤거리고 모난 틀을 자르려다가 베인 밴드 둘,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을 쏟고 싶었던 윤아는 파라핀을 녹여 초까지 만들었다.

 다 식은 줄 알았던 촛농을 만지다가 또 데어 반창고가 하나 더 늘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심장이 박힌 듯 두근두근 뛰었다. 화끈거리고 찡하게 아팠다.

 윤아는 혼자 고깔을 쓰고 처량하게 앉아 문 쪽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녁시간이 끝났는지 종이 정신없이 울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움찔거리며 들어오는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지만 그와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처량함은 혼자일 때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해질 때 더 느껴진다.

 혼자 케익 앞에 놓고 고깔모자까지 쓰고는 멍하니 앉아 있으니 안 되었다는 따끔한 시선이 안 갈 수 없었다. 손마디 박동이 점점 더 울렸고, 욱신거리는 고통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테이블이 지진 난 것처럼 울려 주눅 든 윤아의 어깨가 움찔했다.

 지진의 진원지가 핸드폰이라는 거 알게 되고 피하지 않고 달려들어 받았다.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윤아는 발신자 확인도 안하고 바로 받았다.

 

 "오빠야?"

 "야! 너 내 전화 수신거부 해놨더라! 내가 김미영 팀장이냐?!"

 

 기다리던 님이 아니라 기다리지 않은 징글징글한 놈이었다.

 제호는 시도 때도 없이 윤아에게 연락을 해 키스해달라고 졸라댔다.

 윤아는 보이스피싱 마냥 짜증 한 번 내고 끊길 반복했다. 촬영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진 제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그녀를 괴롭혔다. 잠결에 받는 쓸데없는 전화만큼 짜증나는 건 없었다. 윤아는 그의 전화를 수신 거부를 해놨으나 제호는 다른 사람의 전화까지 빌려 걸었던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귀를 더럽히지 않고 뚝 끊어버렸다.

 하지만 핸드폰은 쉬지 않고 울었다. 어두웠던 액정이 반딧불 엉덩이처럼 환하게 빛나면서 문자 하나가 떴다.

 ‘내일 나 키스씬 촬영이야. 너 없음 안돼. 도와줘, 제발.’

 

 의외였다. 자존심 빼고는 시체인 그가 뻣뻣한 손가락을 구부려 도와달라고 하다니.

 활자로만 이어진 문장은 건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눈물과 느낌표 표시가 빽빽하게 차지한 메시지에는 그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순간 다 가진 스타인 그가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앞날 걱정이었다. 지금 그의 걱정을 해주기엔 윤아의 코가 석자도 안 되었다.

 자비도 여유가 부릴 수 잇는 것이었다. 여유가 안 되는데 계속 구걸을 하면 곤란하다 못해 짜증까지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양심이 바늘로 찌르듯 콕콕 아파오니 윤아는 자신만의 핑계를 댔다. 순진한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힘든 척 연기를 하는 거라고 말이다.

 윤아는 그 눈물에 속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으며 바로 제호 번호를 스팸으로 등록시켰다.

 야속한 시간은 굳이 시계를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윤아가 만든 초가 완전 녹아서 케익 위가 촛농 범벅이 되었다.

 촛농이 딱딱하게 굳은 케익은 이제 아무도 먹을 수 없는 기념품이 되어 버렸다.

 박제된 케익의 주인공은 촛농에 발이라도 굳어버린 듯 아직 오지 않았다.

 기다림이라는 건 분노, 절망, 허탈 등 당연해야 되는 감정마저 잊게 만들었다.

 윤아의 마음은 먼지같이 흩어져 아무런 고통도 미움도 담지 않았다.

 

 

 

 

 

 도시의 밤하늘은 매연으로 더욱 희뿌옇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할당량의 알을 낳기 위해 묶여 있던 닭의 신세였던 빌딩들이 빼곡히 즐비해 있었다. 짙은 밤에 빌딩의 불은 꺼져 을씨년스러웠다. 뜨문 뜨문 불이 켜져 있고,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아직 할당량을 끝내지 못한 직장인들이 닭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윤아는 거리의 여자처럼 계속 헤맸다.

 손에는 케익 상자와 구겨진 고깔모자를 들고 그가 다닌다는 직장을 찾기 위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을 돌아다녔다. 어둠이 내린 직장의 거리는 술 취한 직장인들로 인사불성이었다.

 풀어헤친 넥타이로 비틀거리며 나무 아래 술을 게워 놓고 끝 없는 경쟁 상대인 동료와 술기운에 멱살을 쥐고 싸웠다. 윤아는 작은 어깨를 더 옹송그리고는 토사물과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진땀을 뺐다.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다리가 저려오고 발바닥은 찡하게 아파왔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손에 준 케익 상자를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자신의 정성과 상처, 집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의 대가라는 생각에 쥔 손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윤아의 발이 뚝 멈췄다. 반투명 유리로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타일처럼 도배된 건문의 입구에서 수가 나왔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이 그녀의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윤아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무릎에 입을 묻고 서럽게 토해냈지만 그는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윤아의 주변은 어둠과 차가운 공기만이 눈총을 줄 뿐이다.

 울음도 받아줄 이가 없으면 쓸모없는 감정 소비였다. 촛불 꺼지듯 푹 꺼져버린 슬픔에 윤아는 짠 침을 삼키고 볼을 따끔거리게 하는 눈물길을 손등으로 닦았다.

 윤아는 나뭇가지가 큰 팔을 벌리고 있는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보는 그를 관찰했다.

 모두가 다 퇴근한 밤공기는 차가웠다. 일하다가 나온 수는 얇은 셔츠 한 장 차림으로 훕연장소로 나왔다. 흡연장소는 정문 구석 꼭 비행청소년들이 일탈할 것 같은 음습한 장소에 위치했다. 수는 오들오들 떨면서 구석에서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마셨다.

 회색빛 연기에 가려졌다 드러난 수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거뭇거뭇한 수염과 멀리 실핏줄이 흰동자를 빨갛게 덮고 있어 빨간 눈은 멀리서 보면 피를 며칠 굶은 뱀파이어처럼 어두운 아우라를 발했다.

 수많은 기다림 끝에 본 반가운 얼굴이었다. 기다림만 준 그에게 원망과 화를 쏟아낼 줄 알았다. 캐릭터에 안 맞게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하고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이런 미친 상태따위 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정말 본인도 모를 만큼 청개구리 같았다.

 처음 재회 했을 때 그를 보면 그리움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낯설음과 아무 감정도 못 느꼈던 것과 같았다. 수의 초라한 얼굴을 보니 짠한 마음이 윤아의 감정을 흔들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멀미하는 것처럼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윤아는 간헐적으로 떨려오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집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검지 끝이 칼로 찌르는 듯 한 고통이 찌르르 타고 올랐다.

 건조한 신호음이 귀뚜라미가 울 듯 찌르르르 찌르르르 울었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실루엣이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담배를 지져 끄고 뒷주머니에서 몸을 흔드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기쁨에 발끝이 베베 꼬여 동동 구르면서 윤아는 그가 빨리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하지만 수는 멀리서 봐도 인상을 팍 쓰며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집어넣었다.

 윤아의 귀에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매정한 여자의 말만 들리다가 삑 하는 괴음이 귓전을 아프게 때렸다. 그는 손에 뭍은 담배 연기를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또 다시 알을 낳으러 들어갔다. 진이 다 빠진 어깨를 해 가지고는 터덜터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네. 아만 바빠도 담배 필 시간은 있구나."

 

 윤아는 알지 못했다. 수가 왜 자신의 발신을 확인하고 미간을 세로로 좁혔는지를...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왜 담배를 필 시간은 있으면서 자신의 전화를 받을 시간은 없는지를....

 윤아는 알지 못했다. 왜 자신의 확신은 틀리고, 제호가 비꼬듯 한 말은 맞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자신의 애정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헤집어 보지만 걸리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건 ‘키스’ 때문이다. 그거 말고도 자신의 연애 인생이 계속 삐그덕대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에 똑같다는 실망감....

 또 다시 키스로 상대를 감전시킨다는 걸림돌에 넘어졌다는 자책감....

 이미 지쳐버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또 다시 볼을 타고 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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