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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입술은 안돼요
작가 : 시나뉴
작품등록일 : 2019.10.4

- 운명이란 아주 징글징글한 단어다.
지구상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인데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단 하나
그 사람이 아니면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뜻 아닌가.
사랑은 하고 싶은데 자신의 ‘치명적’ 결점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운명이란 게 낭만적이기 보단 웬수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받아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차이는 연애를 반복해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차이는 연애만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운명의 ‘진리’를 ‘감전키스’를 하는 남녀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제 4화
작성일 : 19-10-04 22:14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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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아는 음습한 방에 핀 곰팡이 마냥 벽지 한구석에 습한 아우라를 뿜으며 울고 있었다.

 울음은 뇌가 있는 감정 표현이었다. 온 몸의 물이 빠져나갈 것처럼 울다가도 지칠 때쯤 알아서 숨을 골라 휴식을 취했다. 진정이 되었다 싶으면 다시 울게 만든 기억이 떠올라 또 다시 울게 만들었다. 이 지능적인 감정 표현은 윤아를 끝없이 울다 말다를 반복하게 해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뜨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짜디 짠 눈물에 절여진 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확인 했다. 눈물이 나쁜 기억이라는 독소를 품고 다 빠져나왔나보다.

 독침에 쏘인 것 마냥 눈이 퉁퉁 부어 얼굴이 흉했다. 거울을 덮어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그런데 이때껏 자신이 무의식 적으로 무언가를 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윤아는 의아해하며 입에 든 것을 손바닥에 뱉어냈다. 잇자국이 정신없이 찍힌 껌이었다.

 윤아는 껌을 보고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 입에 껌 뱉어 놓고 갔어."

 

 그에 대해 아는 건 극히 일부였다. 키스를 환상적으로 잘 한다는 것과 또 하나, 단물이 빠지고 플레인 요거트 향만 살짝 나는 씹던 껌뿐이었다.

 남의 입에 사탕이 아닌 껌을 뱉어 놓고 간 그의 비 매너에 자신이 꼭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하얀 이가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통곡을 하던 윤아는 코 푼 휴지에 껌을 싸서 벽에 집어던졌다. 씹던 껌은 뱉어서 버리면 그 뿐이었다.

 쓰레기 같은 자식. 그냥 똥 맞았다 생각하고 씻고 버려버리면 되겠는데 눈은 자꾸 버려진 휴지 뭉치로 향했다. 수도 꼭지를 꽉 조인 듯 울음을 뚝 그친 윤아는 잠시 골몰히 생각하더니 던진 휴지를 다시 집어왔다. 그리고 휴지에 늘러 붙어 있는 껌을 떼어냈다.

 

 "이것두 기념인데 그냥 버리긴 좀 그렇지?"

 

 껌을 코팅지에 발라 놓고 셀로판지로 꾹 눌렀다.

 윤아는 컴퓨터 옆에 둔 상자를 열었다. 장수와 함께 데이트 했던 기념품들이 담겨 있다.

 떡볶이 찍어 먹던 꼬치, 오백원짜리 동전 등 자잘한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윤아의 사랑 한 조각이었다. 사랑에도 꾸준하게 밥을 주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수를 계속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윤아의 사랑은 물을 굶어 시들어지는 화초 같았다.

 남들이 볼 땐 쓰레기 같은 조각이었지만 그녀에겐 사랑을 유지 할 한 모금의 간절한 먹이였다. 그 일용할 양식들 속에 코팅된 껌을 넣고서는 쾅 소리 나게 뚜껑을 닫았다.

 윤아는 이 껌이 썩어 문드러져도 절대 쓰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사고가 나도 이보다 당황스럽진 않겠다. 이거 지 맘대로 부딪쳐 놓고 말도 없이 가버리고, 완전 뺑소니 아니야?!"

 

 뺑소니. 사고를 당해도 누군지 모르니 보상 받을 곳도 없고, 상처를 받았어도 치료나 고통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열이 바짝 섰다. 하지만 이 분노의 열기를 누구에게 뿜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뺑소니를 당한 재수 없는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난영은 가운차림으로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스파이 접선하는 것 마냥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다가 제호의 차에 올라탔다.

 차에는 얼빠진 듯 보이는 그가 다리는 달달 떨면서 난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진 얼마나 됐어요?"

 

 제호는 미묘하게 경련이 오는 손가락으로 소매를 살짝 잡아 올려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태릉에서 여기까지 30분정도. 최대한 밟은 거예요. 이제 어떡하죠?"

 "직접 확인해 볼 수밖에 없죠, 뭐. 이건 치료 목적이니까 오해하진 마세요."

 

 무뚝뚝하게 말한 난영은 제호를 끌어 당겨 깊게 키스했다.

 키스에도 여러 가지 맛이 존재한다. 엄청 달기만 한 순수한 키스. 달콤함은 처음엔 중독 적이나 계속 된다는 지겹고 짜증만 날 뿐이다. 횡단보도에서의 키스는 달았다. 그것도 많이.

 하지만 달콤함에 빠져들어 계속 먹게 된다면 수명은 타들어 가는 담배꽁초 같이 되어버릴 것이다. 단 것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전까지가 딱 적당했다.

 그런데 난영의 키스는 전혀 달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하고 짠 맛도 느껴졌다.

 하지만 역겹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른의 맛이 났다. 진짜 어른의 키스를 하려면 사탕과 초콜릿의 달콤함에 자신의 냄새를 가리는 게 아니라 그대로 전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의 숨 냄새와 타액의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날것 그대로의 상대를 파악해갔다.

 처음엔 당황하던 제호도 적응에 키스에 몰입하려는데 난영이 입술을 떼어버렸다.

 약간 달뜬 한숨과 태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다시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어때요?"

 "아무렇지 않은데요?"

 

 그녀와의 키스가 꽤 마음에 들었다는 티를 내기엔 자존심이 상해 얼굴을 차갑게 식히고 별 일 아닌 듯 연기를 했다. 잠깐 감정 정리를 하고 제호는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동영상 속 그녀와 키스를 하면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해도 감전을 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을 바꿔 줄 영화라고 생각한 멜로의 남주인공 배역도 따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희망적인 결과로 도출이 되자 제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됐어. 그 여자면 될 줄 알았다니까!"

 

 제호는 좋아하다가 난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갈 수 있었던 제호의 눈길이 난영에게 머물면서 둘 사이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이거 효과가 오래가야 될 텐데. 얼마나 갈까요?"

 "직접 확인 안 하면 모르겠죠?"

 

 두 사람은 누구 하나 먼저 할 거 없이 동시에 서로를 안고 격하게 키스를 하였다.

 치료라는 것은 둘이 다시 키스하려는 핑계일 뿐이었다. 난영의 그에게 품은 연민과 치료법을 늦게 알려 주었다는 죄책감이 키스 한번으로 인해 사랑으로 바뀌었다.

 제호는 그저 자신을 치료해주는 주치의이자 내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에서 키스 한 번으로 좀 더 애틋하며 소중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키스는 감정이 무르익을 때 따 먹는 맛난 열매이기도 하다.

 또 데면데면한 감정을 무르익게 해주는 태양과 바람이기도 했다.

 이들의 키스는 후자에 가까웠다. 난영을 처음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자신의 입술을 느끼며 어느 순간 전기 맞은 듯 정수리가 따끔하더니 아득히 멀어져 가는 의식의 소멸을 느꼈다.

 눈 떴을 땐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제호의 얼굴과 떨리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제호에게 난영 만큼 완벽한 파트너는 없을 거였다. 의사에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믿을만하고, 편하고.... 그는 그녀와의 키스로 인해 한 가지 확신 할 수 있었다.

 난영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고......

 그는 한 번 정했으면 빠르고 신속하게 행동을 하는 성미였다.

 스포츠 신문 1면에는 톱스타 이제호, 미모의 의사와 약혼하다! 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들이 도배 되었다.

 

 

 

 

 

 

 윤아는 새하얀 병원의 진료실이 낯선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전화 받은 건 바로 어제. 수의 전화를 뜬 눈으로 기다리며 겨우 잠들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눈이 떠지고 핸드폰을 받았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고 전화를 했단다. 아무리 낮 시간 때라지만 단잠을 깨운 건 새벽에 전화한 것만큼 예의가 없다. 잠도 덜 깨고, 신경이 잔뜩 날선 윤아의 목소리는 예의 따윈 집어던진 앙칼진 목소리였다. 대충 신경질적으로 전화하지 말라 하고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찬물을 끼얹는 명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료법이 있습니다.’

 신종 스팸 전화인가, 사기꾼인가.... 여러 의심이 들었지만 만나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만 무엇이라도 하면 얻든 뺏기든 바뀌는 부분이 있다. 뺏길 걱정을 하기엔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에 윤아는 약속에 응했다.

 이렇게 사람 없는 병원은 또 처음 보았다. 그런데 병원은 잘 관리가 된 듯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난영이 그녀를 맞이했다.

 왠지 한니발 렉터 박사처럼 아무도 없는 병원에서 이상한 실험을 하는 것처럼 느낌이 쎄 했다. 난영은 긴장 풀라는 눈빛으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모르게 신뢰감을 주었다. 윤아는 약간 마음을 놓고 화답하듯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진짜, 제 병을 고칠 수 있나요?"

 "그러니 연락드렸죠. 자세한 건 테스트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이론상은 이래요."

 

 난영은 제호에게 설명해주었듯 윤아에게도 그들의 병명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마이너스 전자가 많은 전기를 가졌다 해봐요. 만약 플러스 전자가 많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서로 타액이 섞여서 일시적으로 중성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거죠."

 "그럼 저랑 반대 전자를 가진 사람이랑 키슬 해야 된단 거잖아요."

 

 윤아는 실망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때껏 자신의 운명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하지만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걸 이제서 찾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딨는줄 알구..."

 "있어요, 윤아씨랑 같은 사람이."

 "네?!"

 

 토끼눈이 된 윤아는 주위가 환할 정도로 활짝 웃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세상이 자길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격해 말도 잘 안 나왔다. 어린 새 숨은 가쁘게 쌔액 쌔액 쉬게 되었고 얼굴은 빨간 연지곤지를 찍은 조선 신부마냥 볼 주위만 빨갰다.

 

 "저랑 똑같은 사람이라고요?"

 "윤아씰 보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만나볼래요?"

 

 윤아는 꼬리에 모터 달린 강아지마냥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영은 건조한 손길로 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전에 서명을 좀. 저희 환자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냥 만나서 말로 하면 될 걸. 뭐 이런 거 까지."

 "저희 환자가 의심이 좀 많아서요."

 

 윤아는 살짝 섭섭해졌다. 자신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이 사람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런데 자신과 같다는 누군간 만나기도 전에 경계하고 날을 세웠다.

 자신이 준만큼 받을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그녀는 다시금 깨달으면 씁쓸함은 혼자의 몫으로 삼켰다.

 난영은 제호의 집에 갈 때와 똑같이 윤아에게도 헬멧을 뒤집어 씌웠다.

 여러 비싼 차들로 즐비한 그의 집 지하주차장에서 내렸다

 왠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세계에 발을 뻗은 듯 걱정이 밀려왔다.

 헬멧의 답답함 때문인지 더욱 숨이 가빠지고 머리와 얼굴이 간지러웠다. 긁적이는데도 간지러움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가보면 알 거예요."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윤아는 난영을 따라 제호의 거실로 입성했다.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요."

 

 난영은 서재 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윤아는 답답한 헬멧에서 벗어 난지 얼마 안 되어 전기 쇼크 먹은 것처럼 머리가 사방으로 뻗쳐버렸다.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면서 그녀의 눈길은 살면서 한 번도 본적 없는 거실의 뷰를 예의 주시했다. 샹들레가 거대한 천장을 황금빛으로 만들었다.

 티비와 소파, 부엌으로 가는 동선이 합리적으로 딱 짜여 어디 하나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졌다. 벽에는 제호가 온몸에 나르시스를 뿜어내는 독사진이 쭉 걸려 있었다.

 물에 젖은 채 반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사진, 장미꽃을 입에 물고 그윽하게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사진.... 이십대 가장 빛나던 때의 제호의 모습이 사진 액자 속에 박제 되어 있었다.

 

 "이제호 팬인가?"

 

 한편에는 팬들이 준 선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포장도 안 뜯은 최신형 안마기부터 시작해 곰 인형들까지 다양했다. 이 정도 살폈으면 연예인의 집이 아닐까 의심이라도 해 볼 텐데 윤아는 짐작조차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살아온 틀에서만 생각이 머문다.

 서민의 삶에, 티비에 나오는 게 아닌 보는 입장에 익숙해졌던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를 만나기 위해 만났다는 것 쉽게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방식으로 최대한 쥐어짜내어 생각한 것은 이제호를 좋아하는 돈 좀 있는 사람이라는 것 밖에 미치지 못했다.

 윤아의 시선은 산처럼 쌓인 선물더미에서 손수 만든 곰 인형을 집어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갖고 싶음 가져요."

 

 여자의 목소리에 익숙했던 윤아의 귀에 오랜만에 들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뒷 목을 낚아채듯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윤아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온몸에 전기가 흐른 듯 번쩍 놀라 뒤돌아보았다.

 

 

 

 

 

 

 

 

 

 

 얼.

 정신의 줏대, 영혼, 정신을 뜻한다.

 흔히 정신이 나간다는 말을 얼 빠진다 라고 일컫는다.

 갑작스런 충격과 공포를 받았을 때 인간의 영혼이 잠시 탈출 하는 것을 말한다.

 윤아의 각막에 비친 상은 충격과 공포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사람이 왜 내 앞에 있는지, 내가 왜 이 사람의 집에 있는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가 맞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TV광고에서나 볼 톱스타 이제호가 눈앞에 떡 하니 서 있다니......

 놀라움에 무릎은 저절로 꺾여 몸이 뒤로 빠졌다. 그 바람에 윤아의 손이 쌓아놓은 선물들을 짓누르면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윤아는 당황해하며 대충 주워 올려놓았다.

 제호의 미간이 세로로 날이 세워졌다. 남에게 집안 정리를 맡기는 게 싫어서 집 청소 하는데 하루의 반을 이용하는 그였다. 선물의 산이 대충 쌓여 있는 것 같아도 합리적으로 오래되고 비싼 순으로 무너지지 않게 쌓여 있었다. 그런데 윤아는 제호의 순서를 망치고 두서없이 쌓고 있었다.

 

 "놔두세요. 가서 앉죠."

 

 어쩌다 보니 손바닥 안에 들어온 곰돌이를 쥔 윤아는 쭈뼛거리며 소파 끄트머리에 가 앉았다.

 불안감은 몸을 가만히 있게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리는 차마 못 떨겠고,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다. 손에 들고 있는 곰돌이를 자신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움찔 놀라 들고 있던 걸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주인 있는 물건에 함부로..."

 "가져도 상관없어요. 놔두면 어차피 버릴 건데요, 뭐."

 "버려요?"

 "주는 대로 마음을 다 받다보면 이 집 가득 채워도 모자랄걸요?"

 

 선물이란 건 언제는 받아도 즐겁다. 그런데 그 대가가 그 사람의 명성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면 받아도 불안할 것이다. 이 선물이 언제 끊길지 모르고, 이 마음의 무게가 처음엔 고마워도 점점 부담스럽고 짜증이 나게 되었다. 삼십대 초반까지 하루만 되어도 거실 한 켠에 선물이 탑처럼 쌓여 버리거나 매니저에게 처분하라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선물로 쌓여가는 탑이 그의 인기에 대한 자존심이 올라가고 “어차피 버릴 건데, 뭐.” 라는 그의 말은 습관처럼 붙어버렸다. 하지만 이 선물의 탑이 갈아 치워 진지 선물 이후로 없었다. 이 탑의 먼지가 소복이 쌓여 닦아낼 때마다 제호는 자신이 이 선물 탑처럼 될까봐 겁이 났다. 한 구석을 차지해 먼지만 쌓여가는 귀찮은 존재.

 그래서 그가 더욱 재기에 목말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습관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 윤아는 스타랍시고 으스대는 얼굴을 하는 제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만든 마음이 처음 보는 그녀의 손끝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는데 그는 알아주지 못한다는 게 더 기분 나빴다.

 청맹과니한테 보석을 목에 걸어준들 한 낫 돌멩이 정도로 밖에 못 여길 거라고 생각해 윤아는 곰돌이를 가방에 넣었다. 이들 사이 먼지처럼 껴 있던 약혼자 난영은 이 둘의 신경전 사이 서먹하게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마실 것 좀 내올게요.“

 

 난영은 이제 내 집처럼 익숙한 그의 부엌으로 향했다. 신경전은 관둔 제호는 약혼자를 따랐다. 그는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지만 속은 끓고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자기 남자와 키스를 한 여자가 앞에 있다니.....

 그리고 그의 치료를 위해서는 그녀와의 주기적인 키스가 필요하다니 말이다.

 그걸 알고도 약혼자는 윤아를 이곳까지 데려와 제호와 연결까지 지켜줬다.

 그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더 애틋해 지고, 더 깊어진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난영은 무덤덤하게 차 준비를 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누군가 보는 지금 제호가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그저 그녀의 손을 길고 커다란 손으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뿐이었다.

 

 "고마워."

 

 천 문장의 마음을 어떻게 다 세 글자에 다 담겠는가.

 하지만 그의 사우나 같은 손길에 말하지 않은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었다.

 미국의 한 박사가 연구했다. 사랑해, 힘내, 고마워....

 라는 말이 가진 단어가 상대에게 주는 영향은 단 3% 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나머지 97%는 말에 담기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보내는 부드러운 눈길.... 따뜻한 온기를 보내는 손길....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 그의 행동과 목소리가 고마워 라는 느낌을 뿜어낼 때 상대에게 그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된다.

 난영은 그의 천 마디 말을 알아듣고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의 자상함을 모두 내 것으로 해도 되나 뭉클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아가 있는 걸 의식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제호는 손을 더 꽉 잡았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난영씨 먼저 가. 별 말 안 할 건데 혹시나...."

 

 말끝을 흐리는 그 끝에 말로 할 수 없는 묵직한 메타포가 마침표를 찍었다.

 제호는 여자친구를 두고 낯선 여자와 '입술'에 대해 말을 오고가야 한다는 것에 미안함을 가졌다. 난영은 제호의 뜻을 알아차리고 괜히 착잡해졌다. 애써 입 꼬리를 올린 그녀는 미소 속에 감정을 숨겼다.

 

 "알았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것만큼 숨 막히는 건 없을 것이다.

 윤아와 제호 사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그 무엇보다 탁하고 무거운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제호는 긴장해서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윤아는 그런 제호의 모습이 신경 쓰여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성윤아씨."

 "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저도요.“

 

 그는 사실 그녀와의 만남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데려오라 해놓고 불편한 티를 차마 낼 수가 없었다. 제호의 시선은 계속 벽시계로 향했다. 째깍 째깍. 소리와 함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이 여자와 나누는 겉치레식 대화가 오고 가는 게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조금 더 대활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서먹한 걸 풀면 좋은데.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네."

 

 누구는 시간이 있나. 윤아는 그의 말로 시간 많은 사람을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그는 약혼자에게 보였던 다정한 배려 따윈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쓰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예의상 던지는 한 톨의 시간마저 쓰기 싫은 듯 보였다.

 그저 빨리 묵은 채무를 처리하려는 손길로 제호는 시나리오를 윤아에게 내밀었다.

 

 "이번에 제가 들어갈 작품이에요. 시나리오상 딥키스가 네 번이 들어가는데, 알다시피 우리가 그냥 상대방이랑 하면 위험하잖아요."

 

 윤아는 생명 한 줌을 내뱉듯 힘없이 한숨을 쉬었다. 박스에 넣어둔 사랑의 조각들로도 한계가 있어 이미 그녀의 사랑의 크기는 쪼그라든 잎사귀만큼 지치고, 마음은 바짝 말라갔다.

 따뜻했던 온기는 환각처럼 실제였는지 상상이었는지 모르게 남아 있었고, 수의 얼굴은 동영상처럼 선명했다가 지금은 점점 추상화처럼 일그러지고 희미해졌다.

 

 "저도 그것 땜에 걱정이에요."

 "걱정을 한방에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키스하기 전에 당신이랑 미리 하면 다른 여자랑 키스를 해도 괜찮더라고요. 실험을 해보니 하루는 갔어요. 그 입술, 잠깐만 빌려주셔야겠습니다.“

 

 심장이 방광 근처까지 뛰어내렸다가 동맥의 탄성을 타고 다시 횡경막을 치고 올라왔다.

 딸꾹.... 딸꾹.... 트림 비슷한 딸꾹질 소리가 윤아의 입에서 났다.

 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티비에서만 보았던 연예인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대생 보고 입술 좀 빌려달라니.... 즐겨 있던 로맨틱 소설에나 나올법한 설레는 일이 지금 자신한테 일어났다는 것이 윤아는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내 심장이 얼음물에 담근 듯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의 표정과 행동에서 달달한 말과 다른 쓰디 쓴 제스쳐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제호는 그 말을 하며 미간을 세로로 접으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나 곰곰이 그의 말을 돌려 곱씹어 보던 윤아는 ‘실험’ 이라는 단어를 무심코 놓치고 넘겨버렸다고 깨닫게 되었다.

 

 "저... 잠깐만요. 이해가 안 되는데. 저를 가지고 실험을 해봐요? 언제?"

 "기억나실 텐데요. 성윤아씨 다니는 여대 앞, 횡단보도"

 

 윤아는 번개가 번쩍 치듯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신 보지 않을 거라고 닫아 놨던 껌 딱지가 상자 안에서 꿈틀대었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어도 그날의 기억은 잠가놓은 상자 사이를 비집고 나와 윤아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하루 웬 종일 머리에서 고장 난 시계태엽마냥 기억 하나가 계속 되감겨졌었다.

 기억의 초침이 다시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제호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윤아의 입술에 키스 하는 기억.

 두 입술이 떼어지기 전에 태엽은 다시 감겨 또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태엽의 나사 하나가 빠질 때까지의 키스의 시계바퀴는 계속 돌아 미칠 정도로 힘들었었다.

 그때 혼자 짊어졌어야 했던 고통을 안겨준 것이 다른 아닌 눈앞에 있는 이 남자라고?!

 윤아는 끌어 넘치는 양은냄비마냥 뚜껑을 들어올렸다.

 

 "공짜로 바라는 거 아닙니다. 원하시는 건 얼마든지..."

 "이봐요! 사람 치고 도망갔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사과? 제가 왜요? 제가 뭐 뺑소니 범이라도 됩니까? 말 이상하게 하시네."

 "뺑소니만 범죈 줄 알아요? 허락도 없이 막! 키스한 것도 범죄에요! 범죄! 기분 나빠, 증말"

 "저 입술이 예쁜 남자 5년 연속 1위 먹은 사람이에요. 이런 입술이 어쩔 수 없이 들이대 줬는데 그게 기분나빠할 일인가? 좋아요. 뺑소니라 치고 합의금 물게요. 얼말 원해요?"

 

 윤아는 기가 막혀 화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자의든 타의든 그 사람을 치어서 심장을 찢고 머리를 흔들었으면 사과가 먼저가 아닌가.

 그런데 이 남자, 인성이 글러먹었다. 더 이상 이 남자의 오만한과 역겨운 나르시즘을 참고 못 봐주겠다. 윤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가려고 하는데 제호가 거칠게 팔을 잡았다.

 제호의 손아귀에서 욱신 거려오는 팔목 때문에 윤아는 더욱 짜증이 났다.

 감정을 가득 실어 윤아는 제호 손을 뿌리쳤다.

 

 "손대지 마요! 아저씨!!"

 

 겨울바람을 쌩쌩 뿌리며 그의 집을 나가 버렸다. 그녀가 서릿발처럼 날린 말 때문에 제호는 충격을 받아 돌처럼 얼어붙었다.

 

 "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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